맨위로가기

황두성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황두성은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로, 투수로서 선수 생활을 했다. 성균관대학교를 중퇴하고 1997년 삼성 라이온즈에 포수로 입단했으나, 투수로 전향했다. 이후 해태 타이거즈, 현대 유니콘스, 우리 히어로즈를 거치며 2011년 은퇴했다. 2005년 현대 유니콘스에서 프로 9년 만에 첫 승을 거두며 주력 선수로 성장했고, 2007년에는 한국 대표팀에도 선발되었다. 2012년부터는 삼성 라이온즈의 2군 코치를 역임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서울길동초등학교 동문 - 유재웅
    유재웅은 두산 베어스와 SK 와이번스에서 외야수로 활동했던 전 KBO 리그 선수로, 두산에서 유망주로 주목받았으나 SK 이적 후 은퇴했으며 현재는 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 서울길동초등학교 동문 - 김준완
    김준완은 고려대학교 야구부 주장이었으나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하고 NC 다이노스에 입단하여 KBO 리그 외야수로 활동했으며, 상무 야구단에서 군 복무 후 키움 히어로즈를 거쳐 은퇴, 이후 상무와 키움에서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 배명중학교 동문 - 김원섭
    김원섭은 외야수와 1루수로 활동하며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즈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2008년 3할 타율을 기록하고 2009년 끝내기 만루 홈런을 기록하며 팀 우승에 기여했으며, 현재는 야구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아마추어 선수들을 지도한다.
  • 배명중학교 동문 - 이경필
    이경필은 전 KBO 리그 두산 베어스 투수로 1990년대 후반 10승 이상을 기록했으나 부상과 병역 비리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은퇴 후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히어로즈 선수 - 이숭용
    이숭용은 경희대학교 1루수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현대 유니콘스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고, 넥센 히어로즈를 거쳐 KBO 리그 통산 2000경기 출장을 달성한 후 해설가, 코치, 단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SSG 랜더스 감독이다.
  • 히어로즈 선수 - 강귀태
    강귀태는 1998년 현대 유니콘스에 지명된 포수로, 대학 시절 국가대표로 활동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2002년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하여 백업 포수로 활동하다 넥센 히어로즈에서 주전으로 활약하기도 했으나, 부상과 젊은 선수들의 성장으로 2013년 기아 타이거즈에서 은퇴했으며, 선수 기록보다는 여러 투수들의 주요 기록 달성을 막은 '레코드 브레이커'로 유명한 11시즌 통산 816경기 출전, 타율 0.255, 31홈런, 215타점을 기록한 선수이다.
황두성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현대 유니콘스 시절 황두성
현대 유니콘스 시절
원어명Hwang Doo-Seong
로마자 표기Hwang Doo-Seong
한글 표기황두성
한자 표기黃斗聖
선수 정보
국적대한민국
출신지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생년월일1976년 11월 16일
신장187
체중96
포지션투수, 포수 (입단 당시)
투구
타석
프로 입단 정보
프로 입단 연도1997년
드래프트 순위1997년 2차 3순위(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KBO / 1999년 4월 3일
인천 대 현대전 구원
마지막 경기KBO / 2009년 9월 22일
목동 대 롯데전 선발
선수 경력
선수 경력삼성 라이온즈 (1997년 ~ 1998년)
해태 타이거즈 (1999년 ~ 2000년)
현대 유니콘스 (2001년 ~ 2007년)
우리 히어로즈·히어로즈 (2008년 ~ 2011년)
코치 경력
코치 경력삼성 라이온즈 트레이닝코치 (2012년 ~ 2013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트레이닝코치 (2014년)
삼성 라이온즈 2군 트레이닝코치 (2015년 ~ 2019년)
삼성 라이온즈 불펜코치 (2020년 ~ 2021년)
삼성 라이온즈 투수코치 (2022년)
삼성 라이온즈 2군 투수코치 (2022년)
국가대표 경력
대표 국가대한민국
야구 월드컵2007년 대만

2. 선수 경력

배명고등학교 졸업 후 성균관대학교에 진학했으나 중퇴하고, 1997년 포수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이후 투수로 전향했지만 삼성에서는 1군 등판 기회를 잡지 못하고 1998년 12월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되었다. 해태에서도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2000년 시즌 후 방출되어 2001년 현대 유니콘스로 이적했다.

현대 이적 후에도 한동안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나, 2005년 프로 데뷔 9년 만에 첫 승을 거두며 중간 계투로 11승을 기록, 늦깎이 스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7승을 기록했고, 같은 해 제37회 IBAF 월드컵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현대 유니콘스 해체 후 2008년부터는 우리 히어로즈 소속으로 뛰며 선발과 마무리를 가리지 않고 활약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세계 최종 예선과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되었으나, WBC 본선에는 부진으로 참가하지 못했다.

2010년 부상으로 시즌을 쉬었고, 2011년에도 어깨 재활로 등판하지 못한 채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후에는 2012년부터 삼성 라이온즈의 2군 코치로 활동했으며, 2014년에는 일본 프로 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코치 연수를 받기도 했다. 2015년 삼성 2군 코치로 복귀했다.

2. 1. 삼성 라이온즈 시절

배명고등학교 졸업 후 성균관대학교에 진학했으나 중퇴하고, 1997년 포수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입단 후 시력이 좋지 않아 당시 코치였던 장호연의 제안으로 투수로 전향했다.[1] 그러나 삼성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한 번도 1군 경기에 출장하지 못했다. 결국 1998년 12월, 양준혁, 곽채진과 함께 해태 타이거즈임창용을 상대로 한 3:1 트레이드를 통해 해태 타이거즈로 이적하게 되었다.

2. 2. 해태 타이거즈 시절

삼성 라이온즈에서 1998년 12월, 양준혁 등과 함께 임창용을 상대로 한 3:1 트레이드를 통해 해태 타이거즈로 이적했다. 트레이드된 첫 해에 1군에 올라왔으나 뚜렷한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주로 2군에 머물렀다. 결국 해태 타이거즈에서는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2군에서의 성적 부진으로 2000년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2. 3. 현대 유니콘스 시절

2001년 현대 유니콘스로 이적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적 첫해에는 단 1경기 출전에 그쳤다.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진은 상당히 탄탄했기 때문에 황두성에게는 1군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고, 주로 2군에 머물렀다.

그러던 중 2005년, 팀 투수들의 부진을 틈타 2군에서 꾸준히 선수 생활을 이어오던 그는 마침내 1군에 올라와 기회를 잡았다. 처음에는 불펜 투수로 자주 등판하다가 점차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마당쇠 역할을 수행했다. 2005년 한 해 동안 무려 60경기에 등판하여 11승 9패, 3점대 초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프로 데뷔 9년 만에 거둔 첫 승도 바로 이 해에 기록하며 늦깎이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의 주무기는 140km/h 중후반대의 묵직한 직구와 체인지업이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 뛰어난 탈삼진 능력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혔다.

뛰어난 탈삼진 능력을 인정받아 2006년 시즌 초반에는 마무리 투수 보직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2005년의 지나친 등판으로 인한 혹사 후유증으로 인해 크게 부진했고, 결국 2군에서 재활 기간을 거쳐야 했다. 시즌 중반 1군에 복귀한 후에는 다시 불펜 투수로 등판하며 전천후 투수로서 활약했고, 2006년 시즌을 3점대 평균자책점으로 마감했다.

2007년 시즌 역시 처음에는 불펜에서 시작했으나, 6월경 팀 선발진이 난조를 보이자 선발 투수로 전환하여 활약했다. 특히 2007년 10월 5일,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공식 경기였던 한화 이글스와의 고별전에서 경기 후반에 등판하여 세이브를 기록했는데, 이는 그 해 황두성의 유일한 세이브였다. 그는 훗날 은퇴 인터뷰에서 팀의 고별 경기를 잊을 수 없다고 회상하기도 했다.[2] 2007년 시즌 최종 성적은 7승 9패 1세이브, 4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제37회 IBAF 월드컵 국가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했다.

2. 4. 넥센 히어로즈 시절

현대 유니콘스 해체 후 2008년부터 넥센 히어로즈 소속으로 활동했다. 이적 첫 해에는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활약하여 벤치의 신뢰를 얻었다. 2008년 시즌 초반에는 선발로 뛰었으나, 팀이 마무리 투수 부재로 어려움을 겪자 자진해서 잠시 마무리 투수로 전향하기도 했다. 이후 일본인 투수 다카쓰가 영입되면서 다시 선발 투수로 돌아왔다. 같은 해 3월에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세계 최종 예선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되었다.

2009년에는 WBC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으나, 하와이 합숙 훈련과 도쿄 연습 경기에서 컨디션 난조를 보이며 부진했다. 결국 당초 기대했던 셋업맨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임태훈과 교체되어 대회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2009년 시즌 초반에는 마무리 투수로 시작했으나 구위가 떨어져 잠시 2군에 내려갔다. 이후 시즌 중반 1군에 복귀하여 선발 투수로 활약하며, 최종적으로 40경기에 등판해 8승 3패 9세이브,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2010년 스프링 캠프 도중 어깨 통증을 느껴 재활에 들어갔으나 회복에 실패했고, 무릎 부상까지 겹치면서 결국 2010년 시즌에는 한 경기도 1군에 등판하지 못했다. 2011년에도 어깨 재활로 시즌 전체를 쉬었으며, 시즌 종료 후인 11월 25일 보류 명단에서 제외되어 팀에서 방출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은퇴 이후

2012년부터 삼성 라이온즈의 잔류군 코치로 활동했다.[3] 2014년 3월 16일부터 8월 말까지 일본 프로 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2군에서 트레이닝 코치 연수를 받았다. 2015년부터 삼성의 2군 코치로 복귀했다.

4. 출신 학교

5. 통산 기록






판승

리패









타피





진실








WHIP1997삼성 라이온즈1군 출장 없음19981999해태400008.17063433.243.241.562000300003.25073337.367.361.912001현대100001.02000000.000.002.002002400006.04134223.006.001.172003100003.03003113.009.001.002004300005.1122209813.500.002.2520056011917128.2106154113753473.299.581.14200647440571.15574014235313.9117.921.332007467913139.2121135114276694.459.151.232008우리
히어로즈
넥센
346881104.18810457750474.056.641.27200940839092.17610357937363.517.701.2020101군 출장 없음2011통산 성적: 15년24336331916563.2479582335312702473.948.481.26


참조

[1] 뉴스 "황두성, "장례식장에서 받은 방출 통보 서러웠다"" http://sports.news.n[...] 아시아경제
[2] 뉴스 "'은퇴' 황두성, "현대 마지막 경기 잊을 수 없다"" http://osen.mt.co.kr[...] OSEN
[3] 뉴스 "황두성, 삼성에서 지도자로 변신…잔류군 코치 계약" http://www.asiae.co.[...] 아시아경제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