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양준혁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양준혁은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로, 1993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프로 데뷔하여 2010년 은퇴할 때까지 18년간 활약했다. 타격왕 4회, 신인왕 1회, 골든글러브 8회 수상했으며, 삼성 라이온즈의 영구 결번(10번)으로 지정되었다. 2000안타, 통산 최다 홈런 기록을 세우는 등 굵직한 기록을 남겼으며, 선수협 결성을 주도하기도 했다. 은퇴 후에는 야구 해설가 및 방송인으로 활동하며, 양준혁 야구재단을 설립하여 야구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한국 프로 야구 100도루 클럽 - 최정 (야구 선수)
    최정은 KBO 리그에서 활약하며 3루수로 두각을 나타내고, 한국시리즈 MVP와 리그 홈런 1위를 기록하고 KBO 리그 통산 최다 홈런 기록을 경신한 야구 선수이다.
  • 한국 프로 야구 100도루 클럽 - 김재걸
    김재걸은 삼성 라이온즈에서 선수로 활약하고 코치로 활동하며, 2005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하고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국가대표로도 선발된 전 야구 선수이자 야구 코치이다.
  • 한국 프로 야구 2000안타 클럽 - 정성훈 (1980년)
    정성훈은 1999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여 KBO 리그에서 2223경기에 출전, 2159안타를 기록한 은퇴한 야구 선수이자 현재 SPOTV 해설위원 겸 JTBC 최강 야구 출연자이다.
  • 한국 프로 야구 2000안타 클럽 - 장성호 (야구인)
    장성호는 KBO 리그에서 20년간 활약하며 통산 2100안타, 타격왕, 출루율 1위 등을 기록한 은퇴한 야구 선수이자 현재 KBS N 스포츠의 야구 해설위원이다.
양준혁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양준혁
이름양준혁
로마자 표기Yang Junhyeok
한글양준혁
한자梁埈赫
별칭양신
출생지대구광역시 중구
생년월일1969년 5월 26일
신장188cm
체중95kg
포지션외야수, 1루수, 지명타자
타석
투구
데뷔KBO 리그 / 1993년 4월 10일
마지막 경기KBO 리그 / 2010년 9월 19일
드래프트1993년 1차 지명 (삼성 라이온즈)
연봉4억 5000만 원 (2010년)
영구 결번삼성 라이온즈 #10
소속팀삼성 라이온즈 (1993년~1998년)
해태 타이거즈 (1999년)
LG 트윈스 (2000년~2001년)
삼성 라이온즈 (2002년~2010년)
선수 경력
아마추어대구상업고등학교
영남대학교
상무 피닉스 (1991년 ~ 1992년)
프로삼성 라이온즈 (1993년 ~ 1998년)
해태 타이거즈 (1999년)
LG 트윈스 (2000년 ~ 2001년)
삼성 라이온즈 (2002년 ~ 2010년)
해설 경력
방송사SBS ESPN 해설 (2011년 ~ 2013년)
MBC 스포츠+ 해설 (2014년 ~ 현재)
국가대표
선발1990년 아시안 게임 (베이징)
수상 내역
KBO 신인왕1993년
KBO 골든글러브1996년, 1997년, 1998년, 2001년, 2003년, 2004년, 2006년, 2007년
KBO 올스타1993년, 1995년,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10년
KBO 타격왕1993년, 1996년, 1998년, 2001년
최다 안타1996년, 1998년
출루율 1위1993년, 1998년, 2006년
장타율 1위1993년, 1996년
타점 1위1994년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조아바이톤상2010년
KBO 리그 기록
통산 타율0.316
통산 안타2,318개
통산 홈런351개
통산 타점1,389점
통산 도루193개
통산 볼넷1,278개
통산 타수7,332
기타 정보
공식 웹사이트삼성 라이온즈 레전드
관련 기사'양신'을 떠나보내며
The Art of Letting Go: The great Korean bat flip mystery
참고 자료양준혁, 올 시즌 끝난 뒤 은퇴 선언

2. 선수 경력

2. 1. 야구 시작 ~ 고등학교 시절

1969년 대구 중구에서 태어난 양준혁은 양일환 삼성 라이온즈 2군 투수 코치가 그의 사촌형이고, 삼촌 또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투수 출신이었다.[23] 어린 시절 사촌 형과 삼촌이 야구를 하는 것을 보면서 자란 그는 야구에 흥미를 느껴 자신도 야구를 하겠다고 부모에게 말했지만,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던 이유로 부모는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야구에 대한 그의 열정이 강해 결국 가족들에게 허락을 받고 남도초등학교 4학년 시절부터 야구를 시작했다.[23] 처음에는 투수였던 그는 왼손잡이에 공도 빠른 편이었으나, 투수를 하면 팔이 아파서 싫어했다.

경운중학교를 거친 그는 대구상업고등학교타자로 전향했으며,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이미 학교의 4번 타자를 맡았다. 당시에는 몸이 마르고 힘이 없어 홈런이 많지는 않았으나, 도루를 잘 하는 편이었고 타율도 높았다.[24]

2. 2. 영남대학교 시절

양준혁은 1988년 영남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다.[25] 당시 삼성 라이온즈 감독이었던 박영길이 대학 진학을 권유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서울특별시 소재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삼성에서의 데뷔를 위해 영남대학교를 선택했다. 대학 선수 시절 동안 그는 많은 기록과 수상 경력을 쌓았다. 1988년 대학 선수권 대회에서 5할 4푼 5리의 타율로 타격상을 받았고,[25] 1989년에는 대학 추계 리그에서 도루상을 수상했다.[26]

1988년과 1989년, 아마추어 야구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국가 대표로 발탁되어 제2회 한·미 선수권 대회와 푸에르토리코에서 개최된 제 9회 대륙간컵에 출전했다.[26] 1989년 대만에서 열린 제2회 IBA회장배 대회에 국가 대표로 출전하여 우승을 경험했다.[26] 1990년에는 전국대학 춘계리그에서 도루상을 수상했고, 9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 경기 대회에도 국가 대표로 출전했다.[26]

1992년 영남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지명을 기다렸으나, 삼성은 김태한을 먼저 지명했다. 삼성은 1991년 말 열린 신인 드래프트에서 김태한을 1차 지명한 뒤 이듬해 드래프트에서 양준혁을 1차 지명했다.[26][27][28] 쌍방울이 양준혁을 2차 지명했으나, 그는 상무에 입대하여 병역을 이행했다.

1991년 11월 1992년 신인 드래프트 전, 양준혁은 제25회 대통령기에 출전해 타점상을 받았고, 제 41회 백호기에서 도루상을 차지해 대학 시절 도루상을 3번이나 차지했다. 1991년 시즌 오프, 삼성 라이온즈의 지명을 받지 못하고 쌍방울 레이더스의 지명을 받았으나, 대구에서 뛰고 싶어 쌍방울 입단을 거부했다.

2. 3. 상무 시절

삼성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진해서 상무에 입대하였다. 병역 결정을 위한 신체 검사 당시 상근 예비역으로 판정을 받아 1년간 현역병 생활을 한 후 방위병으로 전환해 복무하였다.[26] 상무 시절 대통령배 추계 실업리그에 나가 홈런왕을 차지하게 되었고, 그 외에 여러 경기에 출전하여 좋은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26] 그 전까지는 몸이 말랐으나 상무 때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서 프로 첫 해까지 82kg로 몸무게가 불어났다.[24] 상무 피닉스박치왕 감독은 양준혁과 상무 동기이다.

2. 3. 1. 이후 파동

양준혁이 쌍방울의 지명을 거부하며 상무에 자진 입대했을 때 그와 삼성 사이의 밀약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당시 쌍방울의 감독이었던 김인식 감독 및 대부분의 야구 관계자들이 예상하고 있었다.[28] 양준혁이 1993년 제대한 뒤 결국 삼성에 입단하게 되자, 제도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KBO는 2차 지명의 보호권을 3년으로 늘렸다(현재는 2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과 양준혁 간의 밀약의 존재는 정황상의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었으므로 정작 당시에는 이 사건의 파장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28] 그러나 5년 후 양준혁이 삼성에서 해태로 트레이드되었을 때, 오랜 잠적 끝에 가진 인터뷰에서 과거 트레이드 당시 있었던 삼성과의 모종의 거래를 폭로하면서 문제가 크게 불거졌다. 그는 1991년 삼성이 일단 급한 투수를 보강하기 위해 김태한을 1차 지명한 후, 자신을 1차 지명하기 위해 군에 입대하도록 권유했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당시 2차 1순위권자였던 OB에서 백지 수표와 아파트를 제의했지만 거절했으며, 2차 2순위권자였던 쌍방울이 지명하였지만, 삼성의 권유대로 상무에 입대하고 난 뒤 월급조로 삼성으로부터 매달 100만 원씩을 받았다는 사실도 함께 밝혔다.[29]

이러한 일이 있은 후 해태의 김응용 감독은 "양준혁을 회유하여 팀에 입단하게 한 삼성의 행위를 문제 삼기 위해 구단이 직접 행동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당시 양준혁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던 해태는 '양준혁의 삼성 입단은 명백한 규약 위반이다'라며 문제를 제기하였고, 이에 KBO는 삼성에 1993년 양준혁의 입단경위서 제출을 요구했다.[30][31]

삼성은 이러한 의혹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다가 "오래된 일이라 자세히 생각나지 않고, 경리 장부에 매월 100만 원의 지출 내역이 있는지 확실치 않다. 일단 확인 작업을 거치겠다"라는 입장을 밝혔다.[32] 이후 양준혁이 해태로의 이적을 동의하게 되면서 이 사건에 대한 여론의 관심도 잠잠해졌고, 점차 대중의 기억 속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2. 4. 신인 시절 (삼성 라이온즈)

양준혁은 군 복무를 마치고 1993년 삼성이 1차 지명함으로써 오랫동안 원했던 구단에 입단하게 되었고, 역대 타자 최고액인 계약금 1억 100만 원, 연봉 1800만 원에 계약을 체결하였다.[33] 1993년 4월 10일 자신의 프로 첫 경기 쌍방울과의 경기에서 임창식으로부터 첫 안타를 뽑으며 5타수 5안타를 치는 무서운 활약을 선보였고, 이후에도 꾸준히 활약하며 신인임에도 팀의 3번 타자로 출전하였다.[33] 당시 여러 전문가들은 양준혁, 김성래, 강기웅, 이종두가 있는 삼성의 중심 타선을 문제로 지적하고 약체로 취급하였으나,[33] 신인 양준혁의 대활약과 부상에서 돌아온 4번 타자 김성래 및 이종두의 활약으로 팀은 준우승까지 하였다.[16]

양준혁은 데뷔 첫 해부터 김성래와 MVP 경쟁을 벌였는데, 타율(0.341)과 득점(82점)에서 김성래를 압도했지만, 홈런에서 밀렸고 타점은 1점 차이로 뒤진 채 시즌을 마감했다. 삼성 구단은 MVP 김성래, 최우수 신인 선수를 양준혁으로 정했으며, 우용득 감독은 남은 두 경기에서 양준혁과 김성래를 모두 내보내지 않았다. MVP 투표 결과 홈런왕과 타점왕인 김성래가 압도적인 표를 받고, 득점과 타율에서 앞섰던 양준혁은 단 2표만 받아 MVP는 김성래가 되었다.[34]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준혁은 타격왕과 신인상을 수상하며 삼성 라이온즈 최초의 신인왕이 되었다. 한 팀에서 MVP와 신인왕을 동시에 배출한 것은 1985년 해태 타이거즈김성한(MVP)과 이순철(신인왕)에 이어 2번째였다.

2. 5. 20-20 클럽

1996 시즌에 양준혁은 최초로 전 경기 출장과 3할 4푼 6리의 타율로 수위 타자가 되었고, 28홈런과 23도루[37]로 20-20을 기록했다. 1996년 8월 15일에 프로 데뷔 첫 20-20 클럽에 가입했으며, 팀 사상 최초의 기록이었다. 2007 시즌에는 역대 최고령 20-20 클럽에 가입했다.

양준혁은 20-20을 4번 달성하여 박재홍과 함께 최다 20-20 달성 선수로 기록되어 있다.

2. 5. 1. MVP 재도전

1996년에 양준혁은 20-20클럽을 달성하여 MVP에 다시 도전하게 되었다. 타율 3할 4푼 6리와 28홈런, 23도루[37]를 기록하여 MVP 후보로 거론되었다. 그러나 삼성은 팀 역사상 최악의 성적인 6위를 기록했고, 박재홍은 사상 첫 30-30 클럽을 달성했으며, 구대성은 다승왕과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여 양준혁은 MVP 수상에 실패했다.[38]

MVP 선정에는 팀 성적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데, 삼성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면 양준혁의 MVP 수상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1996년 삼성은 6위에 그쳤고, 신인 박재홍의 30-30 클럽 달성, 구대성의 뛰어난 활약으로 인해 양준혁은 최고 수위 타자와 최다 안타, 장타율 1위를 기록하고도 MVP 투표에서 탈락하고,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2. 6.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

1999년 양준혁은 선수협 파동과 연봉 협상 문제로 삼성에서 해태로 트레이드되었다.[39][40] 당시 삼성은 양준혁과의 연봉 협상을 피하고자 유망주였던 곽채진, 황두성과 함께 해태 타이거즈 투수 임창용을 상대로 하는 현금 트레이드를 단행했다.[39][40]

이에 양준혁은 트레이드를 거부하며 미국 마이너 리그 베이스볼 진출을 시도했다.[41][42][43] 그러나 자유 계약 선수 제도와 해태 타이거즈 감독 김응용의 설득으로 결국 해태에 합류하게 되었다.[30][46][47][48]

해태에 합류한 양준혁은 1999년 1월 8일 팀 훈련에 합류, 김응용 감독과 함께 해태의 V10을 다짐하며 전지 훈련을 떠났다.[49][50] 라이벌 팀으로 트레이드되었음에도 대구 팬들은 양준혁을 따뜻하게 맞이했고,[51] 이후 FA를 선언했을 때 김응용 감독이 그의 삼성 라이온즈 복귀를 돕게 된다.

2. 7. 선수협 결성

양준혁은 해태로 트레이드된 후 선수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 결성을 주도했다.[52] 그는 선수협의 설립 목적을 "국내 프로 야구 선수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대외 홍보를 강화하며 야구의 건전한 보급과 지원을 통해 장기적으로 한국 프로 야구를 국제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데 있다"라고 밝히며, 선수협이 노동 조합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52] 옷을 벗을 각오까지 하고 선수협 결성에 나섰다고 밝히면서 선수들의 권익과 복지 차원에서 추진한다고 말했다.[53]

구단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선수협 결성을 강행하자, 해태는 임의 탈퇴도 불사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보이며 정면 대립했다.[54][55] 결국 2000년 1월 22일 선수협이 공식 출범했으며, 초대 회장은 송진우가 맡았다.[56]

선수협 출범 후, KBO는 양준혁의 영구 제명을 추진했으나, 시민 단체의 지지와 선수들의 전지 훈련 불참 선언으로 압박을 받았다.[57] 결국 2000 시즌 시범 경기 개막 직전 선수협과 KBO의 협상이 타결되어, '선수협은 올 시즌 종료 후 결성하고 제도개선위원회는 4월 3일 발족시킨다'는 내용의 합의가 이루어졌다.[57][58][59]

한편, 1999년 양상문은 선수회 문제로 구단과 대립하여 임창용과의 맞트레이드로 황두성 등과 함께 3대 1 트레이드를 통해 기아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로 이적했다.

2. 8. LG 트윈스로 트레이드

양준혁은 2000년 선수협 파동 여파로 LG로 트레이드되었다.[60][61][62] 해태의 감독 김응용이 양준혁을 "선수 + 현금" 방식으로 트레이드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LG 권혁철 사장이 영입 의사를 밝혔다. SK도 양준혁 영입에 나섰으나, 해태가 요구한 '10승 투수' 조건에 난색을 표했다. 결국 LG가 전년도에 10승을 거두었던 투수 손혁에 현금 5억 원을 얹어 현금 트레이드하여 양준혁을 영입하게 되었다.[63][64][65] 양준혁은 LG로 가는 이 트레이드에 불만이 없음을 밝혔다.[66]

손혁은 이적을 거부하고 은퇴 의사를 굽히지 않았고, 해태 구단은 2000년 4월 16일에 임의탈퇴 신청을 했다. 그러나 KBO 이상국 사무총장의 제안으로 해태 구단은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하지 않았다. 손혁은 후에 팀에 돌아왔지만, 2002년 시즌 후 진필중을 상대로 김창희와 함께 두산 베어스에 트레이드된 후 2004년에 은퇴했다.[67]

LG 이적 후 양준혁의 등번호는 안상준이 이미 10번을 사용하고 있어 57번을 달았으나, 2001 시즌부터 다시 10번을 사용하게 되었다. LG 이적 첫해에는 타율이 0.235까지 떨어지는 부진을 겪기도 했지만,[70] 이후 타격 페이스가 살아나 3할이 넘는 타율로 시즌을 마쳤다. 2001년에는 0.355의 타율로 타격왕에 오르며 FA 자격을 얻었다.

2. 9.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

2001년 말 FA 자격을 얻어 친정팀 삼성으로 복귀했다.[71][72] FA 선언 과정에서 LG와 협상이 결렬된 후, 김응용 감독의 부름을 받아 삼성과 계약했다.[86] 이 과정에서 뉴욕 메츠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았으나,[87][88][89][90] 김응용 감독과의 인연 및 국내 잔류를 선택했다.[91] 당시 뉴욕 메츠는 계약 기간 2년에 계약금과 연봉 120만 달러(당시 15억 6천만원)를 제시하려 했으며, 양준혁을 1루수 또는 외야수로 기용할 계획이었다.[92] 뉴욕 메츠는 양준혁을 이치로와 비교하며 수비는 떨어지지만 타격은 비슷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92]

2. 10. 첫 우승

2002 시즌 친정팀 삼성 라이온즈에 복귀한 양준혁은 10년 연속 3할 타율에 도전했으나, 2할 7푼대의 타율로 실패했다.[93] 시즌 전 자체 청백전과 시범 경기에서 대활약을 펼치며 이종범, 이병규와 함께 타격 부문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만,[94] 시즌 개막 후 '탈수기 타법'으로 4할 1푼 7리의 타율을 기록하다가 2할 5푼대까지 떨어지는 등 극심한 타격 부진을 겪었다.[95] 6월에는 타격 부진의 원인이 불운과 타격폼 수정의 반복, 부담감과 스트레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밝혔다.[96]

전반기 이후 타격감을 회복하는 듯했으나, 후반기에 다시 2할 5푼 6리까지 타율이 하락하며 결국 10년 연속 3할 타율을 포기하고 팀의 정규 시즌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97] 비록 10년 연속 3할 타율에는 실패했지만, 세 자릿수 안타는 기록하며 팀의 정규 시즌 우승에 기여했다.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경산 볼파크에서 특별 타격 훈련을 자청한 양준혁은,[98] 1차전에서 2루타를 치고 후속 타자의 플라이 때 3루까지 전력 질주하는 등 허슬 플레이를 선보였다.[99] 3차전에서는 팀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고,[100] 4차전까지 4할 2푼 9리의 타율을 기록하며 활약했다. 팀은 4, 5차전에서 연패했지만, 결국 6차전에서 승리하며 양준혁은 프로 데뷔 후 첫 우승을 경험하게 되었다.[16]

우승 후 양준혁은 마이너스 옵션으로 인해 팀에 1억 원을 반납해야 했으나, 구단의 배려로 면제받았다.[101] 삼성 라이온즈는 양준혁이 선수단 내 끈끈한 팀워크를 형성하며 정규 리그 1위와 한국시리즈 첫 우승에 공헌한 점을 고려하여 마이너스 옵션을 해제했다고 밝혔다.[102][103] 양준혁은 구단의 배려에 감사하며 내년에 더 잘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102][103]

2. 11. 두 번째 부진

2005 시즌에 양준혁은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104] 훈련 부족이나 타격폼 변화의 문제는 아니었고, 심정수와 함께 팀 자체 청백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추가 훈련까지 소화했다.[104] 1루수 수비를 위한 훈련도 병행했으나, 시범 경기에서는 지명타자로 출전하며 타격감이 좋지 않았다.[104] 시즌 개막 후에도 부진은 이어졌고, 최고참으로서 명예 회복을 위해 특타를 자청했지만 심정수, 진갑용과 함께 좀처럼 살아나지 못했다.[105] 한때 현대전에서 4타점을 올리고 연타석 홈런을 기록하며 부활하는 듯했지만, 다시 침묵하며 타율은 2할 4푼대까지 떨어졌다.[105]

선동열 감독은 타격감 회복을 위해 노력했지만, 양준혁의 부진은 계속되었다.[106] 하지만 시즌 중 장종훈의 최다 안타 기록과 타이를 이루고, 곧이어 380경기나 앞서 이 기록을 경신하는 쾌거를 이뤘다.[107][108] 그러나 이 시점에도 타율은 2할 3푼 8리에 불과했다.[107][108] 그럼에도 13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는 저력을 보였다.

6월 이후에도 타율은 2할 3푼에 머물렀고, 특타에도 불구하고 타격감은 회복되지 않았다.[109] 전력 분석팀은 양준혁의 문제점으로 상체 회전과 몸쪽 공에 대한 약점을 지적했다.[110] 7월 들어 잠시 타율이 상승하며 1,593경기 만에 1800안타와 최다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111] 9월 들어 출장 경기 수가 줄면서 13년 연속 100안타 달성이 어려워 보였으나, 한화전과 LG전에서 안타를 추가하며 힘겹게 기록을 이어갔다.[111] 최종 타율은 2할 6푼 1리, 13홈런 50타점으로 시즌을 마감했다.[111][112]

비록 정규 시즌에서는 부진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활약하며 팀의 두 번째 우승에 기여했다.[113][114] 특히 3차전에서 이재우를 상대로 3점 홈런을 치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113][114]

2. 12. 2000안타

2007년 6월 9일, 두산과의 경기에서 3회초 우월 2타점 2루타를 기록한 다음 9회초에 이승학을 상대로 좌중간에 떨어지는 안타를 쳐내면서 한국 프로 야구 사상 최초로 2000안타를 달성하였다.[115] 1루를 밟은 뒤 양준혁은 삼성선동열 감독과 두산의 김경문 감독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았다. 2000안타를 달성한 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달리는 순간 과거에 어려웠던 순간이 생각 났고, 1루를 밟는 순간 정말 기뻤다."라고 말했다. 한국 야구 위원회는 양준혁에게 타자 모형과 2000안타를 상징하는 숫자가 담긴 크리스탈 상패를, 김응용 삼성 사장은 황금 배트를 증정했다. 그가 2000안타를 친 공은 현재 야구 박물관에 있다.[116]

2. 13. 성구회 출범

2009년 1월 13일 송진우, 전준호와 함께 성구회를 출범하였다.[117] 성구회는 투수 통산 200승 또는 300세이브, 타자 2000안타 이상을 기록하면 가입이 가능하며, 양준혁은 2202안타로 창단 회원 자격을 얻었다.[117] 그는 성구회 출범 이후 기자 회견에서 "작은 모임이지만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며, 청소년 야구 육성을 통해 건전한 운동 문화에 힘쓰겠다고 밝혔다.[118] 또한 "우리 세 명만의 모임이 아니라 100년, 200년을 바라보고 만든 단체"라며, 유소년 야구뿐만 아니라 중, 고교 야구 저변 확대에 힘쓰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118] 성구회 창단 멤버들은 "받은 사랑을 팬들에게 돌려 주고 싶다"라고 말했다.[119]

2. 14. 통산 최다 홈런 기록

2009년 5월 9일 대구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홈경기에서 상대 투수 좌완 류택현의 바깥쪽 패스트 볼을 밀어치는 좌월 홈런(비거리 110m)을 기록하여 시즌 2호 홈런이자 통산 341호 홈런을 기록하였다. 이 홈런으로 양준혁은 장종훈롯데 자이언츠 2군 타격 코치가 가지고 있던 340개의 통산 홈런 기록을 경신하였다.[120] 그는 홈런을 치고 난 후 인터뷰에서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갔다가 처음 등록하였고, 적응이 되지 않은 상황이라 홈런을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냥 풀 스윙을 했는데 넘어갔다"며 소감을 밝히면서도 "장종훈 선배가 생각난다"며 그의 기록을 기리고 싶다고 말하였다. 또한 "세울 수 있는 기록은 이미 갖고 있다. 팀에 필요한 선수로 남고 싶다"고 밝혔다.[120]

이로써 그는 통산 타격 8개 부문(최다 홈런, 최다 안타, 통산 최다 2루타, 통산 최다 루타, 통산 최다 타점, 통산 사사구, 통산 타수, 통산 득점)에서 1위를 기록하게 되었다.[121] 이후 7월 14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통산 350홈런을 달성하며 KBO 리그 최초 기록을 세웠다. 그의 최다 홈런 기록은 2013년 이승엽이 경신하게 된다.

3. 은퇴

2010년 시즌 삼성 라이온즈2008년 시즌부터 과감하게 진행시킨 주축 선수들의 세대 교체를 더욱 탄력적으로 이행했었다.[122] 이 과정에서 양준혁은 노장 선수로서 점차 출전 기회가 줄어 들었는데, 이에 대해 그는 마음을 비운 뒤 한참 심사숙고하다 18년 프로 현역 선수 생활의[123] 마침표를 찍기로 결심했다.[124] 자신이 선수 생활을 더 이어 가기보다 자신이 차지하고 있던 1군 엔트리 자리 하나를 어린 후배 선수들에게 양보함으로써 후배들이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출전 기회를 더 많이 잡을 수 있도록 배려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선동열 감독의 무언의 압박을 받았고, 그가 사랑하는 코칭 스탭과 구단 운영진에겐 자신이 은퇴함으로써 좀 더 원활히 세대 교체를 실행할 수 있도록 배려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그는 다른 구단으로 이적하여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얻으면서 현역 선수 생활을 유지할 수도 있었으나 일부러 그런 선택은 하지 않았다. 현역 선수 생활에 미련을 갖기보단 영원히 삼성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고 싶었고, 박수칠 때 떠나고 싶었기 때문이다.[125][126][127][128][129][130][131]

시즌 중반 올스타전에 출전하여 좋은 활약을 펼친 양준혁은 올스타전 바로 다음날 자신의 은퇴 결정을 대대적으로 발표하였다.[132] 삼성 라이온즈 구단은 그의 은퇴 결정을 존중해 주었고, 그에 걸맞게 성대한 은퇴식 및 은퇴 경기가 치러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알렸다. 9월 19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를 양준혁의 은퇴 경기 날짜로 정하고 구단은 일찌감치 그날 행사를 준비하였다.[133][134][135][136] 은퇴 행사의 이름을 《''Blue Blood in NO.10''》라 지으며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였고, 팬들의 반응은 점차 뜨거워졌다. 인터넷 예매분 7000석은 25분 만에 매진이 되었고, 은퇴 경기 바로 전날 경기장 앞에 텐트를 치며 일찌감치 기다리는 팬들도 많았다.[77][137][138][139][140][141][142][143]

은퇴 경기 시구는 양준혁의 아버지가 했고, 양준혁이 시타를 했다. 그가 그동안 밟아 왔던 그라운드를 되밟아 본다는 의미로 1회부터 4회까진 1루수, 5회부터 8회까진 우익수, 9회에는 좌익수로 경기에 나왔다. 공격할 때는 3번 타자로 출전하였다. 5회말이 끝나고 6회초가 시작되기 직전엔 10분 정도의 시간을 할애하여 여러 단체들이 준비한 공로패, 감사패 전달식이 있었다.

이날 상대 선발 투수는 김광현이었다. 자신의 프로 데뷔 경기를 삼성을 상대로 치뤘던 김광현은 그 경기에서 첫 피홈런을 맞았는데, 그 홈런의 주인공이 바로 양준혁이었다. 그때와는 반대로 양준혁의 프로 마지막 경기에 김광현이 선발 투수로 등판하면서 서로 묘한 인연이 되었다.[144][145] 은퇴 경기에서 양준혁은 선발 투수 김광현에게 3타석 삼진 아웃을 당했고, 구원 투수 송은범을 상대로 2루쪽 땅볼 타구 땐 1루까지 전력질주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양준혁 자신이 데뷔 초부터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비춰지고, 보이길 바랐으며, 자신이 되기를 바라왔던 그 모습과 똑 닮은, 포기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진취적으로 달려 나가는 그의 선수 생활을 단적으로, 함축적으로 보여줬다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은퇴 경기는 총 4타수 무안타로 경기를 마감하였다. 은퇴 경기가 끝나고 정식 은퇴식이 시작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며, 양준혁은 은퇴식 도중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양준혁의 등번호 10번은 이 은퇴식을 기점으로 영구 결번되었다.[146][147]

그는 눈물로 고별사를 읽으며 그동안의 성원에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아래는 은퇴식에서 발표한 고별사 전문이다.[148]

{{인용문2|여러분! 야구를 사랑하시는 모든 야구팬 여러분! 저는 삼성 라이온즈 양준혁입니다. 감사합니다.

2010년 9월 19일 바로 오늘까지 저 야구 선수 양준혁을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야구를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야구 선수로서 참 행복했습니다. 물론 모든 스포츠에서 그렇듯이 선수로서 힘든 순간도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 힘들었던 순간들도 제가 가질 수 있는 행복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더 뛰어야 하지 않냐고, 또 더 뛰고 싶지 않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저 역시 현역 선수로 더 뛰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야구는 제 모든 것이니까요. 그러나 벤치를 지키며 선수 생활을 연장하기보다는 팬 여러분께 좋은 모습으로 기억될 때 떠나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결정했기에 미련없이 떠나기로 했습니다.

이곳 대구, 라이온즈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해서 행복했고, 이제 오늘 고향품에서 떠날 수 있게 돼서 더더욱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이제 저는 프로 야구 선수 양준혁이 아닌 인간 양준혁으로 새로운 인생을 향해 또 다른 출발을 하려 합니다. 앞으로 제게 어떤 인생 항로가 펼쳐질 지 모르겠지만 또 다른 성공을 향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양준혁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과 성원을 이제는 열심히 뛰며 땀흘리는 라이온즈 후배 선수, 아니 대한민국의 모든 야구 선수들에게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제게 보여 주신 여러분의 뜨거운 사랑과 힘찬 응원의 목소리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뼛속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모두들 사랑합니다.|양준혁|2010년 9월 19일}}

양준혁 선수의 은퇴 경기와 은퇴식은 KBS N 스포츠와 DMB 채널 QBS로 생중계되었다.

3. 1. 은퇴 이후

2010년 9월 19일 현역에서 은퇴한 양준혁은 야구 해설가로 활동하며,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있다.[5] 2011년부터 SBS ESPN에서 야구 해설 위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같은 해 4월부터 KBS 2TV의 예능 프로그램 해피선데이의 한 코너인 남자의 자격에 출연했다.[5]

또한, 야구 저변 확대를 위한 다양한 자선 사업을 펼치고 있다. 양준혁 야구재단을 설립하고, 소년 야구팀을 창단하는 등 야구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2022년 3월에는 General Entertainment와 계약을 체결했다.[5]

4. 개인사

2021년 3월 13일에 19세 연하의 가수 박현선과 결혼했다.[161] 스승 김응용 감독이 주례를 맡았다. 류택현, 박재홍과 더불어 KBO 리그의 대표적인 미혼 선수였다.[161] 2024년 8월 12일에는 아내의 임신 소식을 발표했고,[6] 2024년 12월 11일에 장녀가 태어났다.[162]

5. 주요 기록


도리그

팀경

기타







2

3











실희

타희

















O
P
S1993삼성10645638182130271232289049066168407.341.436.5981.0351994123496427621282111920887154156370427.300.386.487.873199512552743881137341202338482067786507.313.418.532.94919961265304368915133228272872318058286764.346.452.6241.07619971265614429414532530277982517010103277757.328.455.6271.0821998126552456801563012726989151403872656914.342.450.5901.0401999기아131588496961602313228110521121482756814.323.421.567.9872000LG117514432791353021521492154037345656.313.415.495.9112001124531439791562031422492125288041559.355.499.510.9592002삼성13243739160108232141775023013935569.276.349.453.8012003133551490901613723330192254249264913.329.395.6141.009200413358447995151300282651035212898135310.315.434.553.98720051244633946110315113159501030262554416.261.367.404.7712006126533413631253111319781127171031094311.303.446.477.923200712354444278149340222497220812911574412.337.456.5631.019200811444338549107162815149112246473710.278.264.392.7562009823222495182160111314834156344247.329.464.526.9902010641751421034601432001022823203.239.371.303.674KBO : 18년21358807733212992318458253513879138919311914731278150102910166.316.421.529.950



== 최고령 기록 ==

양준혁은 2007년 10월 5일 부산 롯데전에서 1회 안타와 3회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한 뒤 2루 도루를 성공하여 최고령 20-20 클럽(38세 4개월 10일)에 가입했다. 종전 기록은 이종범의 33세 28일이며, 양준혁의 20-20은 개인 통산 4번째(22홈런 20도루)로 박재홍과 타이기록이다. 2008년 10월 11일 대구 롯데와의 포스트 시즌 경기에서는 7회 1사 1루 상황에서 2-4로 뒤진 상황에 강영식을 상대로 우중간 펜스를 넘기는 홈런을 기록하며 포스트 시즌 최고령 홈런(39세 4개월 15일) 기록을 경신했다. 종전 기록은 이만수의 39세 22일이다.[19]

5. 1. 최고령 기록

양준혁은 2007년 10월 5일 부산 롯데전에서 1회 안타와 3회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한 뒤 2루 도루를 성공하여 최고령 20-20 클럽(38세 4개월 10일)에 가입했다. 종전 기록은 이종범의 33세 28일이며, 양준혁의 20-20은 개인 통산 4번째(22홈런 20도루)로 박재홍과 타이기록이다. 2008년 10월 11일 대구 롯데와의 포스트 시즌 경기에서는 7회 1사 1루 상황에서 2-4로 뒤진 상황에 강영식을 상대로 우중간 펜스를 넘기는 홈런을 기록하며 포스트 시즌 최고령 홈런(39세 4개월 15일) 기록을 경신했다. 종전 기록은 이만수의 39세 22일이다.[19]

6. 수상 · 타이틀 경력

외야수 (1996, 1997, 2003), 지명타자 (1998, 2001, 2006, 2007), 1루수 (2004)

6. 1. 대학

영남대학교 시절, 1988년에 대학 선수권 대회 타격상을 수상하였다. 1989년에는 전국 대학 추계 리그 도루상을 수상하였다. 1990년에는 전국 대학 춘계 리그 도루상을 수상하였다. 1991년에는 대통령기 대회 타점상 및 백호기 대회 도루상을 수상하였다. 1992년에는 대통령배 실업 추계 리그 홈런상을 수상하였다.

6. 2. 선수 시절·은퇴 후

외야수 (1996, 1997, 2003), 지명타자 (1998, 2001, 2006, 2007), 1루수 (2004)

7. 방송 출연

2011년 4월 기준으로 양준혁은 KBS2에서 방영되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인 해피선데이의 남자 출연진으로 출연했다.[5] 2022년 3월에는 General Entertainment와 계약을 체결했다.[5]

7. 1. 드라마

7. 2. 영화

7. 3. 예능

2011년 4월 기준으로 양준혁은 KBS2에서 방영되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인 해피선데이의 남자 출연진으로 출연했다.[5] 2022년 3월에는 General Entertainment와 계약을 체결했다.[5]

연도제목역할비고참고자료
2022Back to the Ground참가자[7]
The First Business in the World참가자[8]
'Filial Sons Village''출연진[9]
2023'Worlds First Merchant''참가자시즌 2[10]


8. 홍보대사

양준혁은 2002년 아동학대예방 홍보대사를 시작으로, 2007년 경북지방경찰청 교통홍보대사, 2009년 전국한우협회 한우 홍보대사 및 홍명보 장학재단 셰어 더 드림 풋볼 매치 홍보대사를 역임했다. 2011년에는 구세군 홍보대사, 스포츠바우처 홍보대사, 투르 드 코리아 홍보대사, 생명나눔 친선대사, 대구시 홍보대사, 월드비전 홍보대사 등 다양한 분야의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2012년에는 통일부 홍보대사와 제9회 한국스페셜올림픽 전국하계대회 홍보대사를, 2013년에는 국립대구과학관 홍보대사, 전국생활체육대축전 홍보대사, 대구경찰청 홍보대사, 자살예방 홍보대사를 역임했다. 2014년에는 기후변화주간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참조

[1] 웹사이트 [프로야구 카툰] '양신'을 떠나보내며 http://news.naver.co[...] 2010-09-24
[2] 웹사이트 Veteran slugger Yang Joon-hyuk plays farewell game http://english.yonha[...] 2010-09-19
[3] 웹사이트 The Art of Letting Go: The great Korean bat flip mystery http://www.espn.com/[...] 2016-10-04
[4] 웹사이트 http://www.samsungli[...] 2016-11-13
[5] 웹사이트 양준혁, 장군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김성주·정성호와 한솥밥 [공식] https://entertain.na[...] OSEN 2022-03-29
[6] 웹사이트 '19살 차이' 양준혁♥박현선 "시험관 한 번에 임신…쌍둥이 중 하나 떠나" [동상이몽2](종합) https://m.entertain.[...] MyDaily 2024-08-12
[7] 웹사이트 [단독] '양신' 양준혁, '빽 투 더 그라운드' 출격…은퇴 12년만에 야구선수 복귀 https://entertain.na[...] News1 2022-02-11
[8] 웹사이트 격투X유도X야구X농구X머슬X개그 6개팀 18인의 친근한 선수들 공개 ('천하제일장사') https://entertain.na[...] Ten Asia 2022-09-20
[9] 웹사이트 [공식] 애정촌→솔로나라→'효자촌'..남규홍 PD 새 예능 공개 https://entertain.na[...] Sports Chosun 2022-11-17
[10] 웹사이트 천하제일장사2’ 조진형·남경진·모태범, 인터뷰…조진형 "피지컬팀 마선호·김경진, 우승 확률 50% https://entertain.na[...] Channel A 2023-03-22
[11] 웹사이트 양준혁, “스티브 블래스 병 때문에 외야 전향” http://sports.khan.c[...] 2010-08-23
[12] 웹사이트 https://sports.news.[...]
[13] 기타
[14] 웹사이트 프로 야구 카툰 - ‘양신’을 떠나보내며 https://news.naver.c[...] 2010-09
[15] 기타
[16] 웹사이트 OB의 재구성 - 삼성 역대 최고 타선 http://isplus.joins.[...] 2010-04
[17] 기타
[18] 웹사이트 삼성 양준혁 "세월은 오래된 라이벌일 뿐" https://news.naver.c[...] 2008-05-26
[19] 기타
[20] 방송 베이스볼 투나잇 야! MBC Sports+ 2010-07-27, 2010-07-28, 2010-07-29
[21] 방송 아이 러브 베이스볼 http://www.kbsn.co.k[...] KBS N Sports 2010-08
[22] 뉴스 양준혁, 올 시즌 끝난 뒤 은퇴 선언 https://news.naver.c[...] OSEN 2010-07-26
[23] 웹사이트 굿바이, 장충 리틀 야구장 https://news.naver.c[...] 2010-06
[24] 뉴스 “스스로 명품이 되지 않으면 생존 못해” http://www.munhwa.co[...] 문화일보 2007-06-09
[25] 웹인용 삼성 라이온즈 홈페이지 양준혁 http://www.samsungli[...] 2009-02-12
[26] 웹인용 아마경력/수상 http://www.yangjunhy[...] 2009-02-12
[27] 웹인용 야구는 인연을 낳고 - 양준혁과 김태한 http://www.yangjunhy[...] 스포츠서울 2009-11-29
[28] 뉴스 김인식 감독 가슴에 박힌 ‘16년 미운 털’ 양준혁.. http://article.joins[...] 중앙일보 스포츠 2009-02-13
[29] 기타
[30] 웹인용 양준혁 파동 재트레이드 없다 http://www.yangjunhy[...] 일간스포츠 2009-02-13
[31] 웹인용 KBO "93년 양준혁 입단경위서 제출하라" http://www.yangjunhy[...] 스포츠조선 2009-02-13
[32] 웹인용 양준혁 뒷돈 `아니땐 굴뚝에 연기날까` http://www.yangjunhy[...] 스포츠조선 2009-02-13
[33] 뉴스 베이스볼 라운지 - 93년 삼성의 빅볼 https://news.naver.c[...] 일간스포츠 2009-01-24
[34] 뉴스 논란이 됐던 MVP 투표들 SPORTS 2.0 2009-01-24
[35] 뉴스 ‘95 프로야구 팡파르<1>판도분석...전력비슷…춘추전국예상 http://www.kookje.co[...] 국제신문 2019-11-17
[36] 뉴스 '94프로야구 韓(한)대화2점홈런에 李(이)만수 역전적시타 5월하늘 노장투혼"활활" https://newslibrary.[...] 경향신문 1994-05-02
[37] 웹사이트
[38] 뉴스 SC 매거진 2008시즌 MVP-신인왕 선정 'D-1'..유력후보 누구? http://sports.chosun[...] 스포츠조선 2008-11-04
[39] 웹인용 양준혁·임창용 `슈퍼 빅 딜` http://www.yangjunhy[...] 경향신문 1998-12-14
[40] 웹인용 임창용-양준혁 트레이드 "이보다 더 클순 없다" http://www.yangjunhy[...] 조선일보 1998-12-14
[41] 웹인용 양준혁 "트레이드 거부" 미국서 야구연수 1년 결정 http://www.yangjunhy[...] 스포츠조선 1998-12-23
[42] 웹인용 양준혁 파동 새 국면 "마이너 리그서 뛰겠다" http://www.yangjunhy[...] 일간스포츠 1998-12-23
[43] 웹인용 양준혁 미국진출 완벽한 해태선수, 현 제도상 불가능 http://www.yangjunhy[...] 일간스포츠 1998-12-23
[44] 웹인용 삼성 "양준혁 현대행 노" 해태에 요청할듯 http://www.yangjunhy[...] 스포츠조선 1998-12-24
[45] 웹인용 양준혁 해태 법대로 하겠다 http://www.yangjunhy[...] 스포츠조선 1998-12-27
[46] 웹인용 양준혁 김응룡 감독에 전격 사과 심경 변화 http://www.yangjunhy[...] 스포츠조선 1998-12-30
[47] 웹인용 FA제도 도입만으로도 큰 발전 http://www.yangjunhy[...] 스포츠조선 1998-12-30
[48] 웹인용 양준혁 해태 합류 내년 日진출 모색 http://www.yangjunhy[...] 스포츠조선 1998-12-30
[49] 웹인용 양준혁, 인사차 해태구단 방문 http://www.yangjunhy[...] 동아일보 1999-01-08
[50] 웹인용 양준혁-김응룡 해태 V10 결의 http://www.yangjunhy[...] 스포츠서울 1999-01-12
[51] 웹사이트 양준혁, 결코 평범하지 않은 2000안타 http://www.dailian.c[...] 데일리안
[52] 웹인용 양준혁 "옷 벗을 각오로 선수협 결성을 성사시키겠다" http://www.yangjunhy[...] 스포츠투데이 2000-01-18
[53] 웹인용 양준혁 일문일답 http://www.yangjunhy[...] 스포츠투데이 2000-01-18
[54] 웹인용 해태 "양준혁 임의탈퇴도 불사" http://www.yangjunhy[...] 스포츠조선 2000-01-19
[55] 웹인용 해태-양준혁 `임의탈퇴`-`야구포기` 정면충돌 http://www.yangjunhy[...] 일간스포츠 2000-01-19
[56] 웹인용 선수회 출범 http://www.yangjunhy[...] 스포츠서울 2000-01-22
[57] 웹인용 선수협 시민단체 동참 "실체인정" 압박 http://www.yangjunhy[...] 스포츠조선 2000-01-26
[58] 웹인용 선수협 승리 그날까지 http://www.yangjunhy[...] 스포츠서울 2000-02-08
[59] 웹인용 선수협 대타협 http://www.yangjunhy[...] 스포츠서울 2000-03-11
[60] 웹인용 LG, `양준혁 사겠다` http://www.yangjunhy[...] 스포츠투데이 2000-03-23
[61] 웹인용 김응룡 감독 "양준혁 팔겠다" http://www.yangjunhy[...] 일간스포츠 2000-03-23
[62] 웹인용 LG, `양준혁 사겠다` http://www.yangjunhy[...] 스포츠 투데이 2000-03-23
[63] 웹인용 양준혁 쟁탈전 불붙었다 http://www.yangjunhy[...] 스포츠 조선 2000-03-23
[64] 웹인용 `양준혁 트레이드` 다른팀 반응 http://www.yangjunhy[...] 스포츠 서울 2000-03-23
[65] 웹인용 줌업 양준혁-손혁 빅딜의 배경 http://www.yangjunhy[...] 일간 스포츠 2000-03-24
[66] 웹인용 "이번 트레이드 절대 불만 없다" http://www.yangjunhy[...] 스포츠 조선 2000-03-24
[67] 웹인용 (현장메모) 양준혁 "어느 팀이야?" http://yangjunhyuk.c[...] 일간스포츠 2000-04-24
[68] 웹인용 양준혁 등번호 어떻게 될까 http://yangjunhyuk.c[...] 스포츠서울 2000-04-12
[69] 웹인용 양준혁 등번호 어떻게 될까 http://yangjunhyuk.c[...] 스포츠서울 2000-04-24
[70] 웹인용 LG 양준혁 2할3푼... 의기소침 http://yangjunhyuk.c[...] 스포츠투데이 2000-05-11
[71] 웹인용 1년 단축…FA 시장 더 뜨거워진다 http://www.yangjunhy[...] goodday 2001-11-01
[72] 웹인용 양준혁 FA 선언… 훈련 도중 귀국 http://www.yangjunhy[...] 스포츠서울 2001-11-03
[73] 웹인용 양준혁, FA 신청서 구단에 공식 제출 http://www.yangjunhy[...] 스포츠서울 2001-11-06
[74] 웹인용 LG "협상 불가능" 초강수 http://www.yangjunhy[...] 일간스포츠 2001-11-20
[75] 웹인용 36억 NO! LG-양준혁 협상 결렬 http://www.yangjunhy[...] 스포츠투데이 2001-11-20
[76] 웹인용 LG "양준혁 나가라" 36억원 말도안돼 http://www.yangjunhy[...] goodday 2001-11-21
[77] 뉴스 양준혁 “2002년 미국 야구 도전했을 것” https://news.naver.c[...] 연합 뉴스 2010-09-00
[78] 웹인용 양준혁 "36억 포기… 자존심만 세워달라" http://www.yangjunhy[...] 스포츠투데이 2001-11-25
[79] 웹인용 양준혁 "내 새 둥지는 어디…" http://www.yangjunhy[...] 스포츠조선 2001-11-28
[80] 웹인용 기아 '양준혁 포기' 최종 결정 http://www.yangjunhy[...] goodday 2001-12-04
[81] 웹인용 기아 "양준혁 영입 포기" http://www.yangjunhy[...] 일간스포츠 2001-12-09
[82] 웹인용 미아 위기 양준혁 삼성서 러브콜 http://www.yangjunhy[...] 스포츠투데이 2001-11-28
[83] 웹인용 삼성 '양준혁 영입' 긴급회의…김기태 수준 검토 http://www.yangjunhy[...] goodday 2001-11-30
[84] 웹인용 양준혁 '삼성행 굳혔다' 27억원 입단조건 합의 http://www.yangjunhy[...] goodday 2001-12-14
[85] 웹인용 양준혁 첫 공식협상…삼성 컴백 급물살 http://www.yangjunhy[...] 스포츠서울 2001-12-17
[86] 웹인용 양준혁 27억 삼성행, FA 사상 최고액 사인 http://www.yangjunhy[...] 스포츠 조선 2001-12-21
[87] 뉴스 양준혁, 파란만장했던 18년간의 프로 생활 http://news.sportsse[...] 스포츠 서울 2010-07-00
[88] 뉴스 양준혁, 뉴욕 메츠 제안서 9년 만에 공개 http://sports.chosun[...] 스포츠 조선 2010-09-15
[89] 뉴스 양준혁, 뉴욕 메츠를 알아봤던 사연은 http://sports.chosun[...] 스포츠 조선 2010-09-15
[90] 뉴스 양준혁 뉴욕 메츠 제안서와 국내 프로 야구 제안서의 비교 http://sports.chosun[...] 스포츠 조선 2010-09-16
[91] 뉴스 김응룡 사장이 말하는 양준혁... 술-담배 모르는 모범적인 선수 http://news.chosun.c[...] 스포츠 조선 2010-09-19
[92] 웹인용 양준혁 뉴욕 메츠 갈 뻔했다 http://www.yangjunhy[...] 스포츠조선 2001-12-27
[93] 웹인용 KBO, 설문 1위 - 양준혁 3할 달성 http://www.yangjunhy[...] 중앙일보 2002-02-20
[94] 웹인용 프로 야구 개막 ― 타격 부문 후보 http://www.yangjunhy[...] 스포츠투데이 2002-04-03
[95] 웹인용 양준혁 ‘10연속 3할’ 주저앉나 http://www.yangjunhy[...] 스포츠 투데이 2002-06-11
[96] 웹인용 삼성 양준혁은 6월 '위기의 남자' http://www.yangjunhy[...] 스포츠서울 2002-06-05
[97] 웹인용 체크체크 양준혁, '10년 3할' 포기 http://www.yangjunhy[...] 스포츠조선 2002-08-02
[98] 웹인용 양준혁, KS서 명예 회복 다짐 http://www.yangjunhy[...] 스포츠조선 2002-10-27
[99] 웹인용 양준혁 "우승 위해서라면?" http://www.yangjunhy[...] 스포츠조선 2002-11-04
[100] 웹인용 "역시! 양준혁" 감독 기대에 부응 http://www.yangjunhy[...] 일간스포츠 2002-11-06
[101] 웹인용 양준혁 1억 반납 "아! 10타점" http://www.yangjunhy[...] goodday 2002-11-20
[102] 웹인용 삼성 양준혁, 1억 반납 모면 http://www.yangjunhy[...] 스포츠 서울 2002-11-21
[103] 웹인용 삼성, 양준혁 마이너스 옵션 1억 안 받기로 http://www.yangjunhy[...] 스포츠서울 2002-11-21
[104] 웹인용 양준혁 "반쪽 선수는 싫어" …수비 훈련 구슬땀 http://www.yangjunhy[...] 스포츠투데이 2005-03-07
[105] 웹인용 양준혁 특타 자청 "최고참 명예 회복" http://www.yangjunhy[...] 스포츠투데이 2005-04-08
[106] 웹인용 '2할4푼대 부진' 삼성 양준혁, 26일 만에 대포 가동 타격 http://www.yangjunhy[...] 스포츠투데이 2005-05-29
[107] 웹인용 1771안타 양준혁 최다타이,장종훈 기록 깼다 http://www.yangjunhy[...] 스포츠투데이 2005-06-22
[108] 웹인용 양준혁 최다 안타... 장종훈보다 380경기 먼저 쐈다 http://www.yangjunhy[...] 스포츠투데이 2005-06-26
[109] 웹인용 세상에 이런 일이… 천하의 양준혁 시즌 타율 2할 3푼 http://www.yangjunhy[...] 일간스포츠 2005-07-01
[110] 웹인용 신보순의 스카우팅 리포트 (9) 삼성 양준혁 http://www.yangjunhy[...] 스포츠조선 2005-07-08
[111] 웹인용 양준혁 1593경기만에 1800안타 http://www.yangjunhy[...] 스포츠투데이 2005-08-04
[112] 웹인용 양준혁, 천신만고 끝에 얻은 13년 연속 100안타 http://www.yangjunhy[...] 마이 데일리 2005-09-20
[113] 웹인용 양준혁 '반창고 투혼' http://www.yangjunhy[...] 스포츠서울 2005-10-18
[114] 웹인용 양준혁 "이제야 보답했다" http://www.yangjunhy[...] 연합뉴스 2005-10-18
[115] 뉴스 2000 안타…양준혁 ‘신화 쏘다’ http://www.heraldbiz[...] 해럴드경제 생생뉴스 2007-06-10
[116] 뉴스 양준혁 2000안타 기념 시상 '푸짐하네!' http://osen.freechal[...] osen 2007-06-15
[117] 뉴스 ‘별중의 별’ 모임 성구회 공식 출범 http://www.donga.com[...] 동아 스포츠 2009-01-14
[118] 뉴스 양준혁.'작은 모임이지만 많은 성원 부탁드려요' http://osen.freechal[...] OSEN 2009-01-13
[119] 뉴스 성구회, "받은 사랑을 팬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http://osen.freechal[...] OSEN 2009-01-13
[120] 뉴스 양준혁 "장종훈 선배 기리고 싶다"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09-05-09
[121] 뉴스 양준혁 통산 최다 홈런 신기록 http://www.asiatoday[...] 아시아투데이 2009-05-09
[122] 뉴스 리빌딩 미완성? 여전히 배고픈 SUN http://osen.mt.co.kr[...] OSEN 2010-08
[123] 뉴스 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 - 기록의 암흑기를 예고한 양준혁의 은퇴 http://osen.mt.co.kr[...] OSEN 2010-07
[124] 칼럼 양준혁의 은퇴 다음날 https://news.naver.c[...] 스포츠 춘추 2010-07
[125] 뉴스 은퇴 선언 양준혁의 첫날… 선배들의 한마디 http://sports.khan.c[...] 스포츠 칸 2010-07-27
[126] 뉴스 10대1 인터뷰 - 양준혁 “SK로 가고픈 마음도 있었다” http://sports.chosun[...] 스포츠 조선 2010-08-03
[127] 뉴스 양준혁 돌연 은퇴 선언 까닭은 http://www.seoul.co.[...] 서울신문 2010-08-03
[128] 뉴스 야구 인생 2막 양준혁, 마음 편하고 홀가분하다 http://osen.mt.co.kr[...] OSEN 2010-09-06
[129] 칼럼 은퇴 선수들의 빛과 그림자 https://news.naver.c[...] 스포츠 춘추 2010-09
[130] 뉴스 양준혁 “야구 좀 한다는 후배들 내가 볼땐 아직 멀었다” http://sports.khan.c[...] 스포츠 칸 2010-08-18
[131] 뉴스 양준혁이 말하는 ‘나의 프로 인생’ http://news.donga.co[...] 동아일보 2010-08-27
[132] 뉴스 양준혁 “내 라이벌은 선입견이었다” http://news.donga.co[...] 동아일보 2010-07-28
[133] 뉴스 양준혁 은퇴 경기… SK 표정 관리? http://www.khan.co.k[...] 경향일보 2010-09-14
[134] 뉴스 야신이 양신 딜레마에 빠졌다 http://sports.chosun[...] 스포츠 조선 2010-09-18
[135] 뉴스 삼성 양준혁, 은퇴 경기서 눈물? 글쎄요 http://sports.chosun[...] 스포츠 조선 2010-09-18
[136] 뉴스 양준혁, “이놈의 팔자, 끝까지 즐길 수가 없네” http://sports.khan.c[...] 스포츠 칸 2010-09-18
[137] 뉴스 베일 벗은 양준혁 은퇴 행사, 7000석 이미 매진 http://news.sportsse[...] 스포츠 서울 2010-09
[138] 뉴스 양준혁 은퇴 경기 앞둔 대구 구장, 텐트족까지 등장 http://osen.mt.co.kr[...] OSEN 2010-09-18
[139] 뉴스 양준혁 은퇴 경기 보기 위해 등장한 텐트족 무려 54시간 줄서기 http://sports.chosun[...] 스포츠 조선 2010-09-19
[140] 뉴스 양준혁을 위한 장미 200송이 http://sports.chosun[...] 스포츠 조선 2010-09-19
[141] 뉴스 은퇴 양준혁, 한효주 사인.. 큰 선물 인증샷 http://star.moneytod[...] 머니투데이 2010-09-00
[142] 뉴스 선동열 감독 “양준혁은 복받은 선수... 은퇴식 부러워” http://spn.edaily.co[...] 이데일리 2010-09-00
[143] 뉴스 선동열 · 이만수 “양준혁 부럽다”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10-09-00
[144] 뉴스 처음과 끝을 공유한 양준혁-김광현의 아름다운 대결 http://www.cbs.co.kr[...] 노컷뉴스 2010-09-00
[145] 뉴스 양준혁 VS 김광현, 아름다웠던 3번의 승부 http://spn.edaily.co[...] 이데일리 2010-09-00
[146] 뉴스 양준혁의, 양준혁에 의한, 양준혁을 위한 ‘굿바이 쇼’ https://archive.toda[...] 중앙일보 2010-09-16
[147] 칼럼 눈물의 은퇴식? 은퇴식도 잔치다! https://news.naver.c[...] 스포츠춘추 2010-08-00
[148] 뉴스 양준혁 은퇴 고별사 전문 http://news.khan.co.[...] 경향신문 2010-09-19
[149] 뉴스 '은퇴' 양준혁, 멈추지 않는 야구 선행 http://osen.mt.co.kr[...] Osen 2010-10-24
[150] 뉴스 양준혁, '전국 청소년 야구대축제' 개최 http://sportsworldi.[...] 스포츠월드 2010-10-20
[151] 뉴스 실업 득세 대학 몰락 https://newslibrary.[...] 경향신문 1991-03-22
[152] 뉴스 상무아마野球(야구)"돌풍 예고" https://newslibrary.[...] 동아일보 1992-01-10
[153] 뉴스 홍명보 자선축구 경기, 고종수와 양준혁 뛴다 http://www.ibest11.c[...] 베스트일레븐닷컴 2010-12-21
[154] 뉴스 '양신' 골에 놀란 홍명보 감독 "나도 못 넣어 봤는데" https://news.naver.c[...] 뉴시스 2010-12-25
[155] 뉴스 양준혁이 축구선수로 골을 넣었다? 홍명보 자선 축구 경기에 1만명 몰려 http://ens.vop.co.kr[...] 민중의소리 2010-12-25
[156] 뉴스 야구 방송 해설자로 데뷔 앞둔 양준혁 http://news.hankooki[...] 한국일보 2011-03-07
[157] 뉴스 남격 합류 양준혁 "이경규 형님 믿고 갈게요!" http://news.sportsse[...] 스포츠서울 2011-03-14
[158] 뉴스 양준혁 야구재단, 내달 13일 출범 http://www.segye.com[...] 세계일보 2011-05-30
[159] 뉴스 양준혁 해설위원, 에세이 출간 https://news.joins.c[...] 일간스포츠 2011-07-19
[160] 뉴스 양준혁, 국내 최초 '다문화 유소년 야구단' 창단 http://sports.chosun[...] 스포츠조선 2011-11-20
[161] 뉴스 양준혁♥박현선, 결혼식 현장 공개...사랑의 하트 뿅뿅 https://m.entertain.[...] MBN null
[162] 뉴스 55세 양준혁 아빠 됐다 "산모·아이 모두 건강" https://m.entertain.[...] 뉴시스 null
[163] 뉴스 삼성 양준혁 선수, 개인 통산 최다 안타 https://news.naver.c[...] 스포츠조선 2005-06-25
[164] 뉴스 기록왕 양준혁, 홈런 역사도 바꾼다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08-09-05
[165] 뉴스 <프로야구> 김동주 잠실 구장 첫 장외 홈런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00-05-04
[166] 뉴스 역대 최장거리 홈런은? http://www.sportsseo[...] 스포츠서울 2007-04-22
[167] 뉴스 삼성 양준혁, 역대 첫 통산 1200 4사구 기록 http://news.chosun.c[...] 스포츠조선 2007-07-29
[168] 뉴스 배영수,'차ㆍ포 뗀' SK에 6실점 KO패 http://osen.freechal[...] Osen 2005-06-18
[169] 뉴스 양준혁 2112경기 출전 프로야구 최다 null 경향신문 2010-06-04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