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용
1. 개요
임창용은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로, 투수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광주진흥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5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여 한국 프로야구에 데뷔했다. 이후 삼성 라이온즈,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일본), 시카고 컵스(미국), KIA 타이거즈를 거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KBO 리그에서 2회의 최우수 구원 투수상과 1회의 최다 세이브, 최우수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받았으며, NPB에서도 128세이브를 기록했다. 또한,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했다.
주요 기록으로는 KBO 통산 760경기 출장, 130승, 258세이브를 기록했으며, 뱀직구로 불리는 독특한 투구 폼과 최고 160km/h의 빠른 직구를 구사했다. 하지만, 도박, 무면허 운전, 경기 중 스마트폰 사용 등 여러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 이름 | 임창용 |
|---|---|
| 한자 | 林昌勇 |
| 로마자 표기 | Im Changyong |
| 로마자 표기 (매큔-라이샤워) | Im Ch'angyong |
| IPA | im.tɕʰaŋ.joŋ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출생일 | 1976년 6월 4일 |
|---|---|
| 출생지 | 대한민국 광주광역시 |
| 포지션 | 투수 |
| 투구 | 우투 |
| 타석 | 우타 |
| 신장 | 182cm |
| 체중 | 80kg |
| 소속 구단 | 해태 타이거즈 (1995년 ~ 1998년) 삼성 라이온즈 (1999년 ~ 2007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2008년 ~ 2012년) 시카고 컵스 (2013년) 삼성 라이온즈 (2014년 ~ 2015년) KIA 타이거즈 (2016년 ~ 2018년) |
|---|---|
| 데뷔 리그 | KBO 리그 |
| 데뷔일 | 1995년 6월 18일 |
| 데뷔팀 | 해태 타이거즈 |
| 일본 프로 야구 데뷔 리그 | NPB |
| 일본 프로 야구 데뷔일 | 2008년 3월 28일 |
| 일본 프로 야구 데뷔팀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
| 메이저 리그 데뷔 리그 | MLB |
| 메이저 리그 데뷔일 | 2013년 9월 7일 |
| 메이저 리그 데뷔팀 | 시카고 컵스 |
| 마지막 KBO 리그 팀 | KIA 타이거즈 |
| 마지막 KBO 리그 경기일 | 2018년 10월 16일 |
| 마지막 일본 프로 야구 리그 팀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
| 마지막 일본 프로 야구 리그 경기일 | 2012년 6월 22일 |
| 마지막 메이저 리그 팀 | 시카고 컵스 |
| 마지막 메이저 리그 경기일 | 2013년 9월 27일 |
| 승패 기록 | 130승 86패 |
|---|---|
| 평균자책점 | 3.45 |
| 탈삼진 | 1,474 |
| 세이브 | 258 |
| 승패 기록 | 11승 13패 |
|---|---|
| 평균자책점 | 2.09 |
| 탈삼진 | 231 |
| 세이브 | 128 |
| 승패 기록 | 0승 0패 |
|---|---|
| 평균자책점 | 5.40 |
| 탈삼진 | 5 |
| 세이브 | 0 |
| 수상 내역 | 2× 한국시리즈 우승 (2014, 2017) KBO 리그 평균자책점 1위 (1999) 4× KBO 리그 구원왕 (1998, 1999, 2004, 2015) |
|---|
| 대표팀 |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
|---|---|
| 올림픽 | 2000년 하계 올림픽 |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17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 아시안 게임 | 1998년 아시안 게임, 2002년 아시안 게임, 2014년 아시안 게임 |
|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 2003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
| 올림픽 | 2000 시드니 동메달 |
|---|---|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2009 로스앤젤레스 은메달 |
| 아시안 게임 | 1998 방콕 금메달 2002 부산 금메달 2014 인천 금메달 |
|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 2003 삿포로 동메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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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 야구 150세이브 클럽 -
조규제
조규제는 KBO 리그에서 투수로 활동하며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 신인왕과 구원왕을 수상하는 등 뛰어난 성적을 거둔 야구 선수 출신 코치로, 은퇴 후 프로 팀 투수 코치를 거쳐 현재 제주고등학교 야구부 투수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
한국 프로 야구 150세이브 클럽 -
진필중
진필중은 1995년 OB 베어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99년 16승 36세이브를 기록하며 한국 신기록을 세웠으며, KIA 타이거즈, LG 트윈스를 거쳐 2008년 키움 히어로즈에서 은퇴한 전 KBO 리그 투수이다. -
나주 임씨 -
임동원
대한민국의 군인 출신 정치인이자 외교관인 임동원은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군과 정부의 요직을 거쳐 나이지리아, 오스트레일리아 대사, 통일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등을 역임하며 김대중 정부 시절 햇볕정책의 핵심 역할을 수행했으나, 제2연평해전 발언과 불법 감청 혐의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
나주 임씨 -
임채진
임채진은 대한민국의 법조인으로 제36대 검찰총장을 역임했으며, 검사로 임용되어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을 거쳤고, 검찰총장 재임 중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비리 수사를 지휘했으나 논란과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사퇴하고 삼성 뇌물 수수 의혹 등으로 비판을 받았다. -
2003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참가 선수 -
박한이
박한이는 KBO 리그에서 19시즌 동안 활약하며 통산 안타 3위, 득점 4위, 출전 경기 4위를 기록하고 골든글러브와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한 대한민국의 전직 프로 야구 선수이자 현 삼성 라이온즈 코치이다. -
2003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참가 선수 -
이승엽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이자 현 두산 베어스 감독인 이승엽은 KBO 리그 최초 50홈런 및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세우며 '국민 타자'로 활약했고, 일본 프로야구 선수 생활 후 KBO 리그로 복귀하여 은퇴, 이후 방송 해설 및 사회 활동을 거쳐 두산 베어스 감독으로 부임했다.
2. 선수 시절
임창용은 1995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98년 시즌 후 양준혁, 황두성, 곽채진과의 3대 1 트레이드로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다. 2007년 시즌 후에는 일본 프로 야구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계약하며 해외로 진출했고, 2012년 시즌 후에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시카고 컵스와 계약했다. 2014년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했으며, 2016년에는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여 2018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2.1. 한국 프로야구 시절
1995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한 임창용은 선동렬이 중일 드래곤스로 이적한 후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1996년과 1997년 팀의 연속 우승에 기여했다. 1998년에는 최우수 구원 투수 타이틀을 획득했고, 시즌 후 양준혁, 황두성, 곽채진과의 3대 1 트레이드를 통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다.
1999년 최우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활약했고, 잦은 등판으로 "애니콜"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참가하여 동메달을 획득, 병역 면제 혜택을 받았다. 2001년부터 선발 투수로 전환하여 2002년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2002년 시즌 후 메이저 리그 진출을 시도했으나 낮은 입찰액으로 무산되었고, 일본 프로 야구 진출 또한 실패하며 삼성과 재계약했다. 2004년 해외 진출을 재차 모색했으나 실패, 삼성에 잔류하여 다시 마무리 투수로 복귀했다.
2005년부터 팔꿈치 부상과 구단과의 갈등으로 성적이 하락했고, 오승환의 등장으로 팀 내 입지가 줄어들었다. 2006년 토미 존 수술을 받고 재활, 이 해에는 단 1경기 등판에 그쳤다.
2.1.1. 해태 타이거즈 시절
광주진흥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5년 해태 타이거즈에 고졸우선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놀기 좋아하는 성격 때문에 첫 해를 대부분 2군에서 보냈다. 당시 해태 타이거즈의 2군 감독이었던 김성근의 밑에서 혹독한 훈련을 거치며, 입단 2년차부터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96년에 그와 김정수가 MLB 뉴욕 양키스의 마리아노 리베라, 존 웨틀랜드처럼 불펜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 정규 시즌 1위, 팀의 8번째 우승에 공헌했다. 1997년 풀 타임 마무리로 데뷔하여 14승 8패, 26세이브를 기록하며 KIA 타이거즈로 팀 명칭이 바뀌기 전 마지막 우승에 공헌했다. 이 해 불펜과 마무리를 오가며 135이닝을 소화했는데 이는 1993년 선동열의 125이닝보다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하며 '창용 불패'의 신화를 만들었다. 1998년에는 시즌 최다인 34세이브를 기록하며 역대 최연소 구원왕(22세)에 올랐다. 이후 1998년 아시안 게임부터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구원 투수로 꾸준히 선발되어 2000년 하계 올림픽에서 동메달, 1998년과 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두 차례 획득했다.
2.1.2. 삼성 라이온즈 시절
1998년 오프 시즌에 양준혁, 황두성, 곽채진과 3대 1 트레이드로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다. 1999년에는 71경기 130이닝 이상을 소화하며 최우수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획득했고, 어떤 상황에서든 필요할 때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로, 등판이 과도한 편이었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브랜드명이기도 한 "Samsung Anycall(애니콜)"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2000년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야구 한국 대표팀으로 출전하여 동메달을 획득, 병역을 면제받았다. 2001년부터 선발 투수로 전향했다. 2002년 시즌에는 17승을 거두며 한국시리즈 우승에도 기여했다. 시즌 오프에는 메이저리그 이적을 계획하고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입찰을 받았으나, 제시된 입찰액이 500로 낮아 구단이 난색을 표하며 무산되었다. 같은 해 오프 시즌에는 FA 자격을 행사하여 일본 프로야구 진출을 목표로 했으나 이 또한 실패하고, 결국 삼성과 재계약했다. 그는 오랫동안 해외 이적을 강하게 원하는 선수였다.
2004년에는 東北楽天ゴールデンイーグルス와 福岡ソフトバンクホークス에 2002년 경기 비디오를 보내는 등 계약을 시도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와도 협상을 진행했지만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아 결국 삼성과 2년 계약을 맺고 잔류했다. 이때 어머니가 삼성 측과의 계약 거부와 메이저리그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등 큰 화제가 되었다. 2004년부터는 팀 사정으로 다시 마무리 투수로 돌아왔다.
2005년부터 등판 과다로 인한 피로 누적 때문에 팔꿈치 부상을 입고 성적이 하락했다. 이 시기에는 인대 부상 외에도, 야구계에서 손꼽히는 500의 고액 연봉과 해외 이적을 둘러싼 구단과의 갈등으로 인해 야구에 집중하지 못하고 좋지 않은 성적을 거듭했다. 그 사이 팀은 선동열 감독 체제 아래 오승환이 절대적인 마무리 투수로 자리 잡고, 강력한 투수진을 중심으로 하는 팀으로 변모하면서, 과거와 같은 존재감은 완전히 사라졌다. 10월에는 토미 존 수술을 받았다. 2006년 시즌 등판 경기는 단 1경기에 불과했다.
2.2. 일본 프로야구 시절
2007년 부진한 성적을 거둔 임창용은 새로운 환경과 동기 부여를 위해 일본 프로 야구 진출을 시도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FA 계약이 종료되는 시점이었고, 구단은 해외 진출을 조건 없이 허용하기로 합의했기에 좋은 기회였다. 2007년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가 끝나자마자 일본 진출 의사를 밝혔고, 구단의 동의를 얻었다.
일본 프로 야구 팀 중 센트럴 리그의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가 가장 먼저 관심을 보였다. 야쿠르트는 에이스 투수 2명과의 재계약에 실패하고 좌완 이시이 가즈히사가 세이부 라이온스로 이적해 투수진 보강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임창용은 야쿠르트와 2년간 연봉 1,500만 엔(한화 약 1억 2,400만 원)의 조건으로 계약하며 일본에 진출했다.
임창용은 팀의 마무리 투수로 2008년 첫 시즌부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2008년 요미우리와의 개막 경기에서 구원 등판했고, 마무리 이가라시 료타의 부상으로 다음 날 마무리로 등판해 일본 진출 후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이날 첫 삼진은 이승엽에게서 얻어냈다. 그의 속구는 뱀처럼 빠르고 꾸불꾸불하게 날아간다고 하여 '뱀직구'라 불렸으며, 최고 구속은 일본에서 세 번째로 빠른 160km/h였다. 일본 진출 한국 선수 중 최초로 올스타전 팬 투표 부문 1위를 기록하며 올스타전에 출전하기도 했다.
2.2.1.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절
2007년 말, 임창용은 부진한 불펜을 강화하기 위해 일본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입단했다. 2008년 NPB 시즌에서 51이닝을 던져 3.00의 평균자책점으로 33세이브(NPB 리그 5위)를 기록했다. 2009년 NPB 시즌에는 몇 달 동안 평균자책점 0.00을 기록하며 "미스터 제로"라는 별명을 얻었고, 마무리 투수로 센트럴리그 팀의 2009년 NPB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짧은 기간 동안 평균자책점이 1.84까지 상승하자 2군으로 내려갔지만, 야쿠르트의 약한 불펜을 강화하기 위해 다시 콜업되었다.
2008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2년 계약(3년차 이후는 구단 옵션, 추정 연봉 300 + 인센티브, 2년차 추정 500 + 인센티브)을 맺고 입단이 결정되었다. 등번호는 12번이었다. 스프링 캠프에서 감독 고다 시게루(高田繁)는 한국 프로야구 시절 임창용의 실적을 인정하여 느린 페이스의 조정을 허용했다. 이것이 효과를 거두어 오픈전에서 150km/h의 투구를 선보이며 팔꿈치 부상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켰다. 시즌 초반에는 셋업맨 역할이 기대되었지만, 마무리를 맡을 예정이었던 이가라시 료타(五十嵐亮太)가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마무리를 맡게 되었다. 이가라시가 복귀하고 중간 계투인 오시모토 타케히코(押本健彦)와 마츠오카 켄이치(松岡健一)도 안정적인 투구 내용을 이어가면서, 이 해 경기 후반부는 이가라시 → 마츠오카 → 오시모토 → 임창용이라는 계투진이 스왈로스의 필승 계투조로 자리 잡았다. 9월 4일 주니치 드래곤즈(中日ドラゴンズ)전에서 시즌 30세이브를 기록했다. 일본 데뷔 첫 해에 30세이브 이상을 기록한 것은 1990년 요다 고(与田剛), 2000년 에디 갈라드(エディ・ギャラード)에 이어 역대 3번째였다. 그러나 이 무렵부터 피로가 누적되어 컨디션이 흔들리기 시작하여 9월 17일에는 엔트리에서 말소되었고, 10월까지 복귀하지 못했다. 10월 8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横浜ベイスターズ)전에서 한일 통산 200세이브를 달성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2008年北京オリンピック) 출전에 긍정적이었지만, 약물 복용 위반이 적발된 다니엘 리오스(ダニエル・リオス)의 긴급 해고로 인해 팀 전력 저하를 막기 위해 야쿠르트는 7월에 대한야구협회(韓国野球委員会)에 임창용의 올림픽 출전 요청을 거부할 것을 전달했다.
2009년, 일본 프로야구에서의 활약이 인정되어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09 ワールド・ベースボール・クラシック)에 출전하여 마무리를 맡았다.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결승 토너먼트(2009 ワールド・ベースボール・クラシック 決勝トーナメント) 결승전에서는 이치로(イチロー)에게 결승 2타점 적시타를 맞고 패전 투수가 되었다. 준결승전까지 4경기 출전에서는 무실점 호투를 보였고,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2세이브를 기록하며 한국의 결승 진출에 기여했다.
시즌 중에는 전년과 마찬가지로 전반기에는 당시 구단 기록인 20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고, 5월 15일 메이지 진구 야구장(明治神宮野球場)에서 열린 한신 타이거스(阪神タイガース)전 9회, 아라이 타카히로(新井貴浩)의 타석에서 던진 5구째 직구가 자신의 최고 속도인 160km/h를 기록하는 등 좋은 컨디션을 유지했다. 한국 언론에서는 "사사키 가즈히로(佐々木主浩)를 뛰어넘는다.", "0점대 평균자책점도 가능하다." 등으로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8월에 접어들면서 전년과 마찬가지로 피로 누적으로 컨디션이 흔들리기 시작하여 9월 3일에는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9월 15일에는 재등록되었지만, 올스타전 이후 평균자책점은 6점대가 되었다. 한편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이 걸린 10월 9일 한신전에서는 선발 이시카와 마사노리(石川雅規)에 이어 8회 1사 3루에서 등판했다. 어려운 이닝을 넘어서는 등판이었지만 1이닝 2/3를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팀의 CS 진출을 결정지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주니치와의 1차전 1경기에 등판하여 1점차 리드 상황에서 8회 1사 1, 2루의 역전 위기를 막아내며 마무리 투수 역할을 수행했다.
2010년 전반기에는 팀 타선의 부진으로 인해 등판 기회가 거의 없었고, 등판하더라도 조정 등판이나 동점 상황이 많아 세이브를 기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부상으로 인한 이탈도 있었지만, 교류전 후반부터 등판 기회가 급증했고, 시즌 후반에도 주춤하지 않고 팀의 구원 에이스로서 팀을 지원하며 세이브 수, 평균자책점, WHIP 모두 일본 진출 이후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
2008년부터의 계약이 이 해로 만료되었다. 이후 본인의 메이저리그 진출 의향과 금전적인 문제로 협상이 난항을 겪었고, 일부 스포츠 신문에서는 이적이 확실시된다는 정보도 나왔지만, 돌연 11월 28일에 야쿠르트와 2년 계약(선수와 구단 양측이 합의할 경우에만 3년차까지 계약 연장이 가능한 상호 옵션 포함)을 맺고 야쿠르트 잔류가 결정되었다. 연봉은 2년 총액 750 플러스 인센티브, 3년차까지 계약을 연장할 경우 총액 1420(금액은 추정)이었다.
2011년 5월 4일 주니치전에서 일본에서의 통산 100세이브를 달성했는데, 통산 173번째 등판에서 기록 달성이었다. 10월 29일 2011년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2011年のセントラル・リーグクライマックスシリーズ)에서 포스트시즌 사상 최초의 1구 세이브를 달성했다.
2012년에는 부진하여 5월 30일 1군 승격 후, 본래의 마무리 투수가 아닌 중간 계투로 등판을 계속했지만, 오른쪽 팔꿈치 통증으로 6월 23일 엔트리에서 말소되었고, 26일 군마현 다테바야시시(館林市)의 병원에서 검진을 받은 결과 "오른쪽 팔꿈치 내측 측부 인대 손상"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7월에 오른쪽 팔꿈치 인대 재건 수술을 받고 전치 1년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복귀 시점이 불투명한 데다 고액 연봉도 부담이 되어 구단은 다음 해 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11월 30일, 보류 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어 자유 계약 선수로 공시되었다.
2.3. 미국 프로야구 시절
2012년 12월 14일 시카고 컵스에 입단하며, KBO, NPB, MLB 순으로 활약한 역대 3번째 선수가 되었다. 팔꿈치 수술 및 재활 후 루키 리그를 거쳐 트리플 A까지 올라갔다. 마이너 21경기에 등판해 22.1이닝 동안 13피안타, 4실점,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2013년 9월 5일 확대 엔트리 시행으로 셋업맨 마이클 보우덴이 방출 대기 조치되고, 임창용이 MLB로 승격되면서 한국인 14번째 메이저 리거가 되었다. 2013년 9월 7일 밀워키전에서 ⅔이닝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을 기록했고, 최고 구속은 93마일(150km)이었다. 피안타는 야쿠르트 시절 동료였던 아오키 노리치카에게 허용했다. 2005년 구대성의 한국인 최고령 MLB 데뷔 기록을 경신했고, 시카고 컵스 데뷔 선수 중에서는 조 베리에 이어 2번째로 고령이었다.
2013년 12월 3일 논텐더 방출되었다. 이후 시카고 컵스에 초청 선수 자격으로 재합류, 시범경기에 등판하며 MLB 재진입을 노렸으나 마이너로 강등되자 구단에 방출을 요청했다.
2.3.1. 시카고 컵스 시절
2012년 시즌 후, 임창용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시카고 컵스와 계약을 맺었다. 2013년 9월 4일 컵스는 임창용을 메이저 리그로 승격시켰다. 시즌 후, 시카고는 임창용과의 계약을 갱신하지 않아 그는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컵스는 그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다시 체결했지만, 2014년 3월 24일에 그를 방출했다.
2.4. 한국 프로야구 복귀
광주진흥고등학교 시절 4번 타자로 활약했으며, 광주 지역 고교 예선에서 서재응과 김병현에게 홈런을 친 적이 있다. 1998년 오프 시즌에 양준혁, 황두성, 곽채진과의 3대 1 트레이드로 삼성 라이온즈에 이적했다.
1999년 71경기 130이닝 이상을 소화하며 최우수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획득했고, 어떤 상황에서든 등판하는 투수에게 붙는 "Samsung Anycall(애니콜)"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야구에 한국 대표팀으로 출전, 동메달 획득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2001년부터 선발 투수로 전향했고, 2002년 시즌에는 17승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시즌 후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포스팅 시스템에 참여했으나, 입찰액이 500000USD로 낮아 무산되었다. FA 자격으로 일본 프로야구 진출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삼성과 재계약했다.
2004년 東北楽天ゴールデンイーグルス와 福岡ソフトバンクホークス에 경기 비디오를 보내는 등 계약을 시도했고, 메이저리그와도 협상했지만 결렬되어 삼성과 2년 계약을 맺었다. 어머니가 계약 거부와 메이저리그 계약을 일방적으로 발표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팀 사정으로 마무리 투수로 복귀했다.
2005년부터 과다 등판으로 인한 피로 누적과 팔꿈치 부상으로 성적이 하락했다. 500의 고액 연봉, 해외 이적 문제로 구단과 갈등하며 야구에 집중하지 못했다. 선동렬 감독 체제에서 오승환이 마무리 투수로 자리 잡으며 존재감이 사라졌고, 10월에는 토미 존 수술을 받았다. 2006년 시즌 등판은 1경기에 불과했다.
2.4.1. 삼성 라이온즈 복귀
복귀 후 2014년 4월 13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구원 등판해 2408일 만에 구원 승을 달성했으며, 5월 4일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한일 통산 300세이브를 기록했다. 이후 받은 격려금 20을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에게 기부했다. 그러나 시즌이 갈수록 체력적인 문제와 함께 구위가 저하됐고 예전과 다르게 블론 세이브도 많아졌다.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당시 감독이었던 류중일은 그를 마무리로 계속 기용했고, 2015년에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듯 마무리 투수로 활약해 역대 최고령 구원왕에 등극했다. 2015년 3월 31일 kt 위즈와의 경기에서 통산 세 자릿수 승리 및 200세이브를 달성했으며, 이 기록은 김용수 이후 역대 2번째, 세이브 부문에선 역대 4번째였다. 2015년 8월 16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한일 통산 350세이브를 달성했다.
2.4.2. KIA 타이거즈 복귀
2016년 3월 28일 친정 팀에 복귀하며 연봉 300에 계약을 맺었다. 그는 사죄의 뜻으로 연봉을 전액 기부했다. 2018년 10월 24일 재계약을 포기하고 방출됐다.
3. 주요 기록
| 연도 | 소속 | 나이 | 승리 | 패전 | 승률 | 평균자책점 | 출장 | 선발 | 완투 | 완봉 | 세이브 | 홀드 | 이닝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고의사구 | 탈삼진 | 몸맞는공 | 보크 | 폭투 | 실점 | 자책점 | 타자수 | WHIP |
|---|---|---|---|---|---|---|---|---|---|---|---|---|---|---|---|---|---|---|---|---|---|---|---|---|---|
| 1995 | 해태 | 19 | 0 | 2 | .000 | 5.83 | 14 | 2 | 0 | 0 | 0 | 0 | 29.1 | 37 | 0 | 5 | 0 | 16 | 3 | 0 | 1 | 19 | 19 | 126 | 1.43 |
| 1996 | 20 | 7 | 7 | .500 | 3.22 | 49 | 7 | 0 | 0 | 0 | 0 | 114.2 | 91 | 8 | 38 | 1 | 78 | 6 | 0 | 4 | 48 | 41 | 469 | 1.13 | |
| 1997 | 21 | 14 | 8 | .636 | 2.33 | 64 | 0 | 0 | 0 | 26 | 0 | 135.0 | 93 | 6 | 36 | 7 | 120 | 6 | 0 | 1 | 44 | 35 | 526 | 0.96 | |
| 1998 | 22 | 8 | 7 | .533 | 1.89 | 59 | 0 | 0 | 0 | 34 | 0 | 133.2 | 90 | 4 | 30 | 8 | 141 | 12 | 0 | 2 | 35 | 28 | 524 | 0.90 | |
| 1999 | 삼성 | 23 | 13 | 4 | .765 | 2.14 | 71 | 0 | 0 | 0 | 38 | 0 | 138.2 | 91 | 10 | 29 | 3 | 141 | 7 | 0 | 3 | 33 | 33 | 535 | 0.87 |
| 2000 | 24 | 5 | 4 | .556 | 1.52 | 52 | 0 | 0 | 0 | 30 | 0 | 88.2 | 58 | 2 | 22 | 2 | 95 | 9 | 1 | 3 | 19 | 15 | 345 | 0.90 | |
| 2001 | 25 | 14 | 6 | .700 | 3.90 | 30 | 29 | 1 | 1 | 1 | 0 | 184.2 | 169 | 25 | 62 | 7 | 136 | 17 | 1 | 2 | 88 | 80 | 791 | 1.25 | |
| 2002 | 26 | 17 | 6 | .739 | 3.08 | 36 | 29 | 0 | 0 | 2 | 0 | 204.1 | 188 | 24 | 34 | 4 | 160 | 24 | 0 | 2 | 82 | 70 | 841 | 1.09 | |
| 2003 | 27 | 13 | 3 | .813 | 3.55 | 28 | 26 | 1 | 1 | 1 | 0 | 147.0 | 141 | 15 | 44 | 1 | 85 | 15 | 0 | 1 | 63 | 58 | 618 | 1.26 | |
| 2004 | 28 | 2 | 4 | .333 | 2.01 | 61 | 0 | 0 | 0 | 36 | 0 | 67.0 | 51 | 4 | 22 | 1 | 67 | 4 | 0 | 0 | 19 | 15 | 271 | 1.09 | |
| 2005 | 29 | 5 | 8 | .385 | 6.50 | 29 | 14 | 0 | 0 | 0 | 3 | 91.1 | 110 | 11 | 36 | 1 | 70 | 15 | 1 | 3 | 67 | 66 | 427 | 1.60 | |
| 2006 | 30 | 1 | 0 | 1.000 | 4.50 | 1 | 0 | 0 | 0 | 0 | 0 | 2.0 | 3 | 0 | 1 | 0 | 0 | 0 | 0 | 0 | 1 | 1 | 9 | 2.00 | |
| 2007 | 31 | 5 | 7 | .417 | 4.90 | 40 | 21 | 0 | 0 | 0 | 3 | 119.1 | 138 | 9 | 44 | 1 | 62 | 10 | 0 | 0 | 68 | 65 | 536 | 1.53 | |
| 2008 | 야쿠르트 | 32 | 1 | 5 | .167 | 3.00 | 54 | 0 | 0 | 0 | 33 | 3 | 51.0 | 55 | 6 | 9 | 3 | 50 | 2 | 0 | 1 | 18 | 17 | 214 | 1.25 |
| 2009 | 33 | 5 | 4 | .556 | 2.05 | 57 | 0 | 0 | 0 | 28 | 5 | 57.0 | 40 | 4 | 19 | 4 | 52 | 2 | 0 | 2 | 15 | 13 | 229 | 1.04 | |
| 2010 | 34 | 1 | 2 | .333 | 1.46 | 53 | 0 | 0 | 0 | 35 | 6 | 55.2 | 32 | 3 | 16 | 1 | 53 | 2 | 0 | 1 | 9 | 9 | 214 | 0.86 | |
| 2011 | 35 | 4 | 2 | .667 | 2.17 | 65 | 0 | 0 | 0 | 32 | 4 | 62.1 | 40 | 2 | 22 | 3 | 69 | 3 | 0 | 3 | 15 | 15 | 247 | 1.00 | |
| 2012 | 36 | 0 | 0 | ---- | 0.00 | 9 | 0 | 0 | 0 | 0 | 3 | 7.0 | 6 | 0 | 2 | 0 | 7 | 0 | 0 | 1 | 0 | 0 | 28 | 1.14 | |
| 2013 | CHC | 37 | 0 | 0 | ---- | 5.40 | 6 | 0 | 0 | 0 | 0 | 0 | 5.0 | 6 | 0 | 7 | 1 | 5 | 1 | 0 | 1 | 3 | 3 | 27 | 2.60 |
| 2014 | 삼성 | 38 | 5 | 4 | .556 | 5.84 | 49 | 0 | 0 | 0 | 31 | 0 | 44.2 | 50 | 4 | 21 | 0 | 52 | 4 | 0 | 5 | 33 | 29 | 205 | 1.59 |
| 2015 | 39 | 5 | 2 | .714 | 2.83 | 55 | 0 | 0 | 0 | 33 | 0 | 54.0 | 45 | 2 | 13 | 2 | 71 | 3 | 0 | 1 | 17 | 17 | 219 | 1.07 | |
| 2016 | KIA | 40 | 3 | 3 | .500 | 4.37 | 34 | 0 | 0 | 0 | 15 | 0 | 35.0 | 45 | 5 | 10 | 3 | 38 | 1 | 1 | 5 | 18 | 17 | 159 | 1.57 |
| 2017 | 41 | 8 | 6 | .571 | 3.78 | 51 | 0 | 0 | 0 | 7 | 9 | 50.0 | 51 | 3 | 22 | - | 58 | 5 | 1 | 5 | 18 | 17 | 225 | 1.46 | |
| 2018 | 42 | 5 | 5 | .500 | 5.42 | 37 | 12 | 0 | 0 | 4 | 4 | 86.1 | 92 | 16 | 29 | 1 | 84 | 0 | 0 | 5 | 54 | 52 | 358 | 1.40 | |
| KBO 통산 : 18년 || 130 || 86 || .602 || 3.45 || 760 || 140 || 2 || 2 || 258 || 19 || 1675.2 || 1492 || 145 || 476 || 42 || 1416 || 136 || 4 || 38 || 708 || 641 || 6959 || 1.18 | |||||||||||||||||||||||||
| NPB 통산 : 5년 || 11 || 13 || .458 || 2.09 || 238 || 0 || 0 || 0 || 128 || 21 || 233.0 || 173 || 15 || 68 || 11 || 231 || 9 || 0 || 7 || 57 || 54 || 932 || 1.03 | |||||||||||||||||||||||||
| MLB 통산 : 1년 || 0 || 0 || ---- || 5.40 || 6 || 0 || 0 || 0 || 0 || 0 || 5.0 || 6 || 0 || 7 || 1 || 5 || 1 || 0 || 1 || 3 || 3 || 27 || 2.60 | |||||||||||||||||||||||||
* 시즌 기록 중 굵은 글씨는 해당 시즌 최고 기록
; KBO
* 최우수 구원 투수상: 2회 (1998년, 2004년)
* 최다 세이브: 1회 (2015년)
* 최우수 평균자책점: 1회 (1999년)
* 첫 등판 : 1995년 6월 18일, 대 삼성 라이온즈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전
* 최연소 구원왕 : 1998년 22세, 34세이브 기록
* 평균 자책점 1위 : 1999년 마무리로서 규정 이닝을 채우며 평균 자책점 1위(2.14) 등극
* 최연소 100세이브 : 2000년 4월 14일, 대 해태 전(대구)
* 3년 연속 30세이브 달성 : 역대 첫 번째로 1998년(34세이브), 1999년(38세이브), 2000년(30세이브)
* 선발로 전향 : 2001년(14승), 2002년(17승), 2003년(13승)
* 최연소 150세이브 : 2004년 6월 27일, 대 롯데 전(사직)
* 프로 통산 2번째(최연소)로 100승 150세이브 : 통산 100승-100세이브는 그와 선동열, 김용수, 송진우만 달성(통산 100선발승 이상 - 100세이브 이상은 송진우가 유일)(163선발승 103세이브)
* 프로 통산 13번째 투수 부문 534경기 출장
* 한일 통산 300세이브 : 2014년 5월 4일, 대 NC 전(대구)
* 프로 통산 2번째 100승 200세이브, 역대 4번째 200세이브 : 2015년 3월 31일, 대 kt 위즈 전 (수원) (100승 200세이브는 김용수 다음으로 역대 2번째로 달성)
; NPB 기록
* 첫 등판: 2008년 3월 28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1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8회초에 구원 등판, 1이닝 무실점
* 첫 탈삼진: 상동, 8회초에 이승엽으로부터
* 첫 세이브: 2008년 3월 29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2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 첫 승리: 2008년 5월 23일, 대 지바 롯데 마린스 2차전(지바 마린 스타디움)
* 첫 홀드: 2008년 7월 5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7차전(히로시마 시민 구장)
* 통산 100세이브: 2011년 5월 4일, 대 주니치 드래곤즈 5차전 (메이지 진구 야구장)
* 올스타 게임 출전: 3회 (2009년, 2010년, 2011년)
; MLB 기록
* 첫 등판 : 2013년 9월 7일, 대 밀워키 브루어스 (리글리 필드), 7회초에 구원 등판, ⅔이닝 1피안타 1볼넷 무실점
* 첫 탈삼진: 2013년 9월 14일,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17차전 (밀러 파크), 7회말 4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조나단 루크로이를 상대로 헛스윙 삼진
* 한국인 최고령(37세) MLB 데뷔 기록 경신, 이전 기록은 2005년 4월 4일 뉴욕 메츠에 데뷔한 구대성 (36세)
3.1. KBO
광주진흥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5년 해태 타이거즈에 고졸우선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놀기 좋아하는 성격 때문에 첫 해를 대부분 2군에서 보냈다. 당시 해태 타이거즈의 2군 감독이었던 김성근의 밑에서 혹독한 훈련을 거치며, 입단 2년차부터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96년에 그와 김정수가 마치 MLB 뉴욕 양키스의 마리아노 리베라, 존 웨틀랜드처럼 불펜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 정규 시즌 1위, 팀의 8번째 우승에 공헌했다. 1997년 풀 타임 마무리로 데뷔하여 14승 8패, 26세이브를 기록하며 KIA 타이거즈로 팀 명칭이 바뀌기 전 마지막 우승에 공헌했다. 이 해 불펜과 마무리를 오가며 135이닝을 소화했는데 이는 1993년 선동열의 125이닝보다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하며 '창용 불패'의 신화를 만들었다. 1998년에는 시즌 최다인 34세이브를 기록하며 역대 최연소 구원왕(22세)에 올랐다.
복귀 후 2014년 4월 13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구원 등판해 2408일만에 구원 승을 달성했으며, 5월 4일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한일 통산 300세이브를 기록했다. 이후 받은 격려금 20을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에게 기부했다. 그러나 시즌이 갈수록 체력적인 문제와 함께 구위가 저하됐고 예전과 다르게 블론 세이브도 많아졌다.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당시 감독이었던 류중일은 그를 마무리로 계속 기용했고 2015년에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듯 마무리로 활약해 역대 최고령 구원왕에 등극했다. 2015년 3월 31일 kt 위즈와의 경기에서 통산 세 자릿수 승리 및 200세이브를 달성했으며 이 기록은 김용수 이후 역대 2번째, 세이브 부문에선 역대 4번째였다. 2015년 8월 16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한일 통산 350세이브를 달성했다.
도박 사건 후 그의 요청과 절실한 반성에 힘입어 2016년 3월 28일 친정 팀에 복귀하며 연봉 300에 계약을 맺었다. 그는 사죄의 뜻으로 연봉을 전액 기부했다.
2018년 10월 24일 재계약을 포기하고 방출됐다.
* 첫 등판 : 1995년 6월 18일, 대 삼성 라이온즈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전
* 최연소 구원왕 : 1998년 22세, 34세이브 기록
* 평균 자책점 1위 : 1999년 마무리로서 규정 이닝을 채우며 평균 자책점 1위(2.14) 등극
* 최연소 100세이브 : 2000년 4월 14일, 대 해태 전(대구)
* 3년 연속 30세이브 달성 : 역대 첫 번째로 1998년(34세이브), 1999년(38세이브), 2000년(30세이브)
* 선발로 전향 : 2001년(14승), 2002년(17승), 2003년(13승)
* 최연소 150세이브 : 2004년 6월 27일, 대 롯데 전(사직)
* 프로 통산 2번째(최연소)로 100승 150세이브 : 통산 100승-100세이브는 그와 선동열, 김용수, 송진우만 달성(통산 100선발승 이상 - 100세이브 이상은 송진우가 유일)(163선발승 103세이브)
* 프로 통산 13번째 투수 부문 534경기 출장
* 한일 통산 300세이브 : 2014년 5월 4일, 대 NC 전(대구)
* 프로 통산 2번째 100승 200세이브, 역대 4번째 200세이브 : 2015년 3월 31일, 대 kt 위즈 전 (수원) (100승 200세이브는 김용수 다음으로 역대 2번째로 달성)
광주진흥고등학교 시절에는 4번 타자였으며, 광주 지역 고교 예선에서 나중에 메이저리거로 활약한 서재응과 김병현으로부터 홈런을 친 적이 있다.
1995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했다. 해태에서는 중일 드래곤스로 이적한 선동열의 뒤를 이어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1996년과 1997년 연속 우승에 기여했다.
1998년에는 최우수 구원 투수 타이틀을 획득하는 등 일찍부터 팀의 주축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1998년 오프 시즌에 양준혁, 황두성, 곽채진과 3대 1 트레이드를 통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다.
1999년에는 71경기 130이닝 이상을 소화하며 최우수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획득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필요할 때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로, 등판이 과도한 편이었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브랜드명이기도 한 "Samsung Anycall(에니콜)"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한국 대표팀으로 출전하여 동메달을 획득, 병역을 면제받았다.
2001년부터 선발 투수로 전향했다.
2002년 시즌에는 17승을 거두며 한국시리즈 우승에도 기여했다. 시즌 오프에는 메이저리그 이적을 계획하고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입찰을 받았으나, 제시된 입찰액이 500000USD로 낮아 구단이 난색을 표하며 무산되었다. 같은 해 오프 시즌에는 FA 자격을 행사하여 일본 프로야구 진출을 목표로 했으나 이 또한 실패하고, 결국 삼성과 재계약했다. 그는 오랫동안 해외 이적을 강하게 원하는 선수였다.
2004년에는 일본 프로 야구의 東北楽天ゴールデンイーグルス와 福岡ソフトバンクホークス에 2002년 경기 비디오를 보내는 등 계약을 시도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와도 협상을 진행했지만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아 결국 삼성과 2년 계약을 맺고 잔류했다. 이때 어머니가 삼성 측과의 계약 거부와 메이저리그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등 큰 화제가 되었다. 2004년부터는 팀 사정으로 다시 마무리 투수로 돌아왔다.
2005년부터 등판 과다로 인한 피로 누적 때문에 팔꿈치 부상을 입고 성적이 하락했다. 이 시기에는 인대 부상 외에도, 야구계에서 손꼽히는 500의 고액 연봉과 해외 이적을 둘러싼 구단과의 갈등으로 인해 야구에 집중하지 못하고 좋지 않은 성적을 거듭했다. 그 사이 팀은 선동열 감독 체제 아래 오승환이 절대적인 마무리 투수로 자리 잡고, 강력한 투수진을 중심으로 하는 팀으로 변모하면서, 과거와 같은 존재감은 완전히 사라졌다. 2005년 10월에는 토미 존 수술을 받았다.
2006년 시즌 등판 경기는 단 1경기에 불과했다.
| 년도 | 팀 | 등판 | 선발 | 완투 | 완봉 | 무사구 | 승리 | 패전 | 세이브 | 홀드 | 승률 | 타자 | 투구이닝 | 피안타 | 피홈런 | 사구 | 고의사구 | 사구 | 탈삼진 | 폭투 | 보크 | 실점 | 자책점 | 평균자책점 | WHIP | |
|---|---|---|---|---|---|---|---|---|---|---|---|---|---|---|---|---|---|---|---|---|---|---|---|---|---|---|
| 1995년 | 기아(구 해태) | 14 | 2 | 0 | 0 | 0 | 0 | 0 | 2 | 0 | 0 | .000 | 126 | 29.1 | 37 | 0 | 5 | 0 | 3 | 16 | 1 | 0 | 19 | 19 | 5.83 | 1.43 |
| 1996년 | 49 | 7 | 0 | 0 | 0 | 7 | 7 | 0 | 0 | .500 | 469 | 114.2 | 91 | 8 | 38 | 1 | 6 | 78 | 4 | 0 | 48 | 41 | 3.22 | 1.12 | ||
| 1997년 | 64 | 0 | 0 | 0 | 0 | 14 | 8 | 26 | 0 | .636 | 526 | 135.0 | 93 | 6 | 36 | 7 | 6 | 120 | 1 | 0 | 44 | 35 | 2.33 | 0.96 | ||
| 1998년 | 59 | 0 | 0 | 0 | 0 | 8 | 7 | 34 | 0 | .533 | 524 | 133.2 | 90 | 4 | 30 | 8 | 12 | 141 | 2 | 0 | 35 | 28 | 1.89 | 0.90 | ||
| 1999년 | 삼성 | 71 | 0 | 0 | 0 | 0 | 13 | 4 | 38 | 0 | .765 | 535 | 138.2 | 91 | 10 | 29 | 3 | 7 | 141 | 3 | 0 | 33 | 33 | 2.14 | 0.87 | |
| 2000년 | 52 | 0 | 0 | 0 | 0 | 5 | 4 | 30 | 0 | .556 | 345 | 88.2 | 58 | 2 | 22 | 2 | 9 | 95 | 3 | 1 | 19 | 15 | 1.52 | 0.90 | ||
| 2001년 | 30 | 29 | 1 | 1 | 0 | 14 | 6 | 1 | 0 | .700 | 791 | 184.2 | 169 | 25 | 62 | 7 | 17 | 136 | 2 | 1 | 88 | 80 | 3.90 | 1.25 | ||
| 2002년 | 36 | 29 | 0 | 0 | 0 | 17 | 6 | 2 | 0 | .739 | 841 | 204.1 | 188 | 24 | 34 | 4 | 24 | 160 | 2 | 0 | 82 | 70 | 3.08 | 1.09 | ||
| 2003년 | 28 | 26 | 1 | 1 | 0 | 13 | 3 | 1 | 0 | .812 | 618 | 147.0 | 141 | 15 | 44 | 1 | 15 | 85 | 1 | 0 | 63 | 58 | 3.55 | 1.26 | ||
| 2004년 | 61 | 0 | 0 | 0 | 0 | 2 | 4 | 36 | 0 | .333 | 271 | 67.0 | 51 | 4 | 22 | 1 | 4 | 67 | 0 | 0 | 19 | 15 | 2.01 | 1.09 | ||
| 2005년 | 29 | 14 | 0 | 0 | 0 | 5 | 8 | 0 | 3 | .385 | 427 | 91.1 | 110 | 11 | 36 | 1 | 15 | 70 | 3 | 1 | 67 | 66 | 6.50 | 1.60 | ||
| 2006년 | 1 | 0 | 0 | 0 | 0 | 1 | 0 | 0 | 0 | 1.000 | 9 | 2.0 | 3 | 0 | 1 | 0 | 0 | 0 | 0 | 0 | 1 | 1 | 4.50 | 2.00 | ||
| 2007년 | 40 | 21 | 0 | 0 | 0 | 5 | 7 | 0 | 3 | .417 | 536 | 119.1 | 138 | 9 | 44 | 1 | 10 | 62 | 0 | 0 | 68 | 65 | 4.90 | 1.53 | ||
| 2014년 | 삼성 | 49 | 0 | 0 | 0 | 0 | 5 | 4 | 31 | 0 | .556 | 205 | 44.2 | 50 | 4 | 21 | 0 | 4 | 52 | 5 | 0 | 33 | 29 | 5.84 | 1.59 | |
| 2015년 | 55 | 0 | 0 | 0 | 0 | 5 | 2 | 33 | 0 | .714 | 219 | 54.0 | 45 | 2 | 13 | 2 | 3 | 71 | 1 | 0 | 17 | 17 | 2.83 | 1.07 | ||
| 2016년 | 기아 | 34 | 0 | 0 | 0 | 0 | 3 | 3 | 15 | 0 | .500 | 159 | 35.0 | 45 | 5 | 10 | 3 | 1 | 38 | 5 | 1 | 18 | 17 | 4.37 | 1.57 | |
| 2017년 | 51 | 0 | 0 | 0 | 0 | 8 | 6 | 7 | 9 | .571 | 225 | 50.0 | 51 | 3 | 22 | 2 | 5 | 58 | 2 | 0 | 22 | 21 | 3.78 | 1.46 | ||
| 2018년 | 37 | 12 | 0 | 0 | 0 | 5 | 5 | 4 | 4 | .500 | 388 | 86.1 | 92 | 16 | 29 | 1 | 11 | 84 | 5 | 0 | 54 | 52 | 5.42 | 1.40 | ||
| KBO(한국야구위원회): 18년 | 760 | 140 | 2 | 2 | 0 | 130 | 86 | 258 | 19 | .602 | 7214 | 1725.2 | 1543 | 148 | 498 | 42 | 152 | 1474 | 40 | 4 | 730 | 662 | 3.45 | 1.18 | ||
* 각 연도의 굵은 글씨는 리그 최고 기록임
* 해태(해태 타이거즈)는 2001년 기아(기아 타이거즈)로 구단명을 변경함
; KBO
* 최우수 구원 투수상: 2회 (1998년, 2004년)
* 최다 세이브: 1회 (2015년)
* 최우수 평균자책점: 1회 (1999년)
3.2. NPB
2007년 시즌 후, 삼성 라이온즈에서 사실상 전력 외로 분류되자 임창용은 일본 프로 야구 진출을 다시 시도했다.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가 그에게 관심을 보였고, 2008년 2년 계약(3년차 이후는 구단 옵션, 추정 연봉 300 + 인센티브, 2년차 추정 500 + 인센티브)을 맺고 입단했다. 등번호는 12번을 받았다.
2008년 첫 시즌부터 팀의 간판 마무리로 뛰어난 활약을 했다. 이가라시 료타의 부상으로 개막 초부터 마무리를 맡아 활약했고, 필승 계투조의 일원으로 자리잡았다. 9월 4일 주니치 드래건스전에서 시즌 30세이브를 기록했는데, 이는 일본 데뷔 첫 해 30세이브 이상을 기록한 역대 3번째 기록이었다. 10월 8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전에서는 한일 통산 200세이브를 달성했다.
2009년에는 자신의 최고 구속인 160km를 기록했고, 한국 선수 최초로 팬 투표 1위로 올스타전에 선정되기도 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다.
2010년에는 팀 타선의 부진으로 등판 기회가 적었지만,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좋은 모습을 보이며 일본 진출 이후 최고의 기록을 달성했다. 시즌 후 야쿠르트와 2년 재계약(선수와 구단 양측이 합의할 경우에만 3년차까지 계약 연장이 가능한 상호 옵션 포함)을 맺었다. 연봉은 2년 총액 750 플러스 인센티브, 3년차까지 계약을 연장할 경우 총액 1420(금액은 추정)였다.
2011년 5월 4일 주니치전에서 일본 통산 100세이브를 달성했다.
2012년에는 부상으로 인해 7월에 오른쪽 팔꿈치 인대 재건 수술을 받았고, 구단은 다음 해 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11월 30일, 자유 계약 선수로 공시되었다.
; NPB 기록
* 첫 등판: 2008년 3월 28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1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8회초에 구원 등판, 1이닝 무실점
* 첫 탈삼진: 상동, 8회초에 이승엽으로부터
* 첫 세이브: 2008년 3월 29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2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 첫 승리: 2008년 5월 23일, 대 지바 롯데 마린스 2차전(지바 마린 스타디움)
* 첫 홀드: 2008년 7월 5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7차전(히로시마 시민 구장)
* 통산 100세이브: 2011년 5월 4일, 대 주니치 드래곤즈 5차전 (메이지 진구 야구장)
* 올스타 게임 출전: 3회 (2009년, 2010년, 2011년)
3.3. MLB
2012년 12월 14일 시카고 컵스에 입단하여 한국, 일본, MLB(미국 메이저리그) 순으로 활약한 역대 3번째 선수가 되었다. 팔꿈치 수술 후 재활을 거쳐 루키 리그부터 트리플 A까지 올라갔고, 마이너 21경기에 등판해 22.1이닝 동안 13피안타, 4실점,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2013년 9월 5일 셋업맨 마이클 보우덴을 방출 대기 조치하고 MLB로 승격되어, 한국인으로는 14번째 메이저 리거가 되었다.
2013년 9월 7일 밀워키 브루어스전에서 ⅔이닝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을 기록했다. 최고 구속은 93마일(150km)이었고, 1피안타는 야쿠르트에서 함께했던 외야수 아오키 노리치카에게 허용했다. 2005년 구대성이 세운 한국인 최고령 MLB 데뷔 기록을 경신했으며, 시카고 컵스에서 데뷔한 선수들 중 조 베리에 이어 2번째로 고령이었다.
2013년 12월 3일 논텐더 방출되었다. 이후 시카고 컵스에 초청 선수 자격으로 재합류한 뒤 시범경기에 등판해 MLB 재진입을 노렸지만 마이너로 강등당하자 결국 구단에 방출을 요청했다.
; MLB 기록
* 첫 등판 : 2013년 9월 7일, 대 밀워키 브루어스 (리글리 필드), 7회초에 구원 등판, ⅔이닝 1피안타 1볼넷 무실점
* 첫 탈삼진: 2013년 9월 14일,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17차전 (밀러 파크), 7회말 4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조나단 루크로이를 상대로 헛스윙 삼진
* 한국인 최고령(37세) MLB 데뷔 기록 경신, 이전 기록은 2005년 4월 4일 뉴욕 메츠에 데뷔한 구대성 (36세)
| 년도 | 팀 | 등판 | 선발 | 완투 | 완봉 | 무사구 | 승리 | 패전 | 세이브 | 홀드 | 승률 | 타자 | 투구 이닝 | 피안타 | 피홈런 | 사구 | 고의사구 | 사구 | 탈삼진 | 폭투 | 보크 | 실점 | 자책점 | 평균자책점 | WHIP |
|---|---|---|---|---|---|---|---|---|---|---|---|---|---|---|---|---|---|---|---|---|---|---|---|---|---|
| 2013 | 시카고 컵스(CHC) | 6 | 0 | 0 | 0 | 0 | 0 | 0 | 0 | 0 | --- | 27 | 5.0 | 6 | 0 | 7 | 1 | 1 | 5 | 1 | 0 | 3 | 3 | 5.40 | 2.60 |
| MLB(메이저리그): 1년 | 6 | 0 | 0 | 0 | 0 | 0 | 0 | 0 | 0 | --- | 27 | 5.0 | 6 | 0 | 7 | 1 | 1 | 5 | 1 | 0 | 3 | 3 | 5.40 | 2.60 | |
4. 국가대표 경력
임창용은 1998년 아시안 게임부터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구원 투수로 꾸준히 선발되어 2000년 하계 올림픽에서 동메달, 1998년과 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국가대표로 참가한 주요 대회는 다음과 같다.
*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 2000년 시드니 올림픽
*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 2009년 WBC
*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
* 2017년 WBC
2009년 WBC에서는 다음과 같은 활약을 보였다.
* 2009년 3월 18일 본선 일본 전(펫코 파크): 세이브 투수로 등판하여 2/3 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탈삼진 1개를 기록했다.
| 팀명 | 결과 |
|---|---|
| 대한민국 | 4 |
| 일본 | 1 |
* 2009년 3월 24일 결승 일본 전(다저스타디움): 패전 투수. 9회에 등판하여 2이닝 동안 4피안타 2실점, 볼넷 5개를 기록했다.
| 팀명 | 결과 |
|---|---|
| 대한민국 | 3 |
| 일본 | 5 |
5. 논란
2015년 삼성 라이온즈가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있을 때, 임창용을 포함한 주축 투수 4명이 마카오에서 도박을 했다는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들은 2015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되었고, 팀은 두산 베어스에 패했다. WBSC 프리미어 12 국가대표였던 이들은 모두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임창용은 검찰 조사에서 도박 혐의를 시인했고, KBO는 그에게 복귀 시 72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내렸으며, 검찰은 벌금 200만원을 부과했다.
2017년 WBC 국가대표로 출전 예정이었던 임창용은 일본 오키나와 전지 훈련 도중 무면허 접촉 사고를 일으켜 벌금을 냈다. 그는 면허 갱신 기간이 지난 것을 몰랐다고 해명했다.
2017년 9월 12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임창용이 불펜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모습이 포착되어 논란이 되었으나, 엄중 경고 조치에 그쳤다.
2009년 올스타전에서는 임창용의 지각으로 동료 선수들이 탑승한 비행기가 지연되는 사건이 있었다.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결승전에서 이치로에게 결승타를 맞은 것에 대해, 임창용이 코치의 고의사구 사인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승부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국 투수 코치가 이치로와 승부하고 싶어 감독의 고의사구 사인을 묵살했고, 임창용에게는 지시가 전달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임창용은 여론을 고려할 때 승부를 피할 수 없었다고 회고하며, 코치를 비난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2016년 8월 21일 두산 베어스 경기에서는 2루 주자 오재원에게 견제구를 던지려다 2루수와 유격수가 모두 베이스에 없는 것을 보고 유격수에게 송구했는데, 이 공이 크게 빗나가 주자를 위협하는 상황이 되어 퇴장당했다.
은퇴 후에는 금전 문제가 자주 보도되었는데, 2021년 4월에는 지인 여성에게 25을 빌린 후 15을 갚지 않아 사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2022년 7월에는 다시 불법 도박으로 적발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6. 특기
삼성에서 뛸 당시 위기 상황 때마다 등판하여 '애니콜'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일본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절에는 '야쿠르트 수호신', '미스터 제로', '이무타임' 등의 별명으로 불렸다. 이름 때문에 '창드래곤' 또는 '창드'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도박 사건 이후 '칩창용'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도 얻었다.
임창용은 공이 뱀처럼 휘어져 나가는 '뱀직구'를 던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180cm, 79kg의 신체 조건을 가진 오른손 사이드암 투수인 그는 최고 160km/h의 포심 패스트볼을 던질 수 있었지만, 주로 150km/h에서 153km/h 사이의 속구를 구사했다. 그의 주무기는 독특한 움직임을 가진 투심 패스트볼로, '뱀직구'라는 별명을 얻게 된 구종이다. 그 외에도 70마일대 후반(약 113km/h~121km/h)의 날카로운 수평 움직임을 가진 슬라이더, 80마일대 중반(약 129km/h~137km/h)의 포크볼, 그리고 거의 사용하지 않던 60mi/h의 느린 커브볼을 구사했다.
임창용은 여러 투구폼을 구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투수 중 한 명이었다. 주로 사이드암과 언더핸드로 투구했지만, 필요에 따라 ¾ 투구폼도 사용할 수 있었다. 최고 160km/h의 직구를 구사하는 것이 그의 무기였다. 직구는 휘어지는 특징 때문에 한국에서는 "뱀 직구"라고 불렸다. 2018년, 42세의 나이에도 최고 148km/h를 기록할 정도로 뛰어난 구위를 자랑했다. 변화구로는 슬라이더와 포크볼을 구사했다. 장타력을 가진 타자에게도 겁먹지 않고, 강타자일수록 더 좋은 공을 던지는 배짱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