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에스나이데르
1. 개요
후안 에스나이데르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선수 시절 공격수로 활약했으며, 레알 마드리드, 레알 사라고사,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유벤투스 등 유럽의 여러 클럽에서 뛰었다. 레알 사라고사 소속으로 1994-95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선수로도 3경기에 출전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 활동하며, 헤타페 CF, 제프 유나이티드 지바, 레노파 야마구치 FC 등의 팀을 맡았다.
| 본명 | 후안 에두아르도 에스나이데르 벨렌 |
|---|---|
| 출생일 | 1973년 3월 5일 |
| 출생지 | 아르헨티나 마르델플라타 |
| 키 | 178cm |
| 포지션 | 축구 공격수 |
| 별칭 | El alemán (엘 알레만, 독일인) El tanque (엘 탄케, 전차) |
| 유소년 클럽 | 페로 카릴 오에스테 |
|---|---|
| 프로 클럽 | 1990-1991: 페로 카릴 오에스테 1991-1993: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1991-1993: 레알 마드리드 1993-1995: 사라고사 1995-1996: 레알 마드리드 1996-1997: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97-1998: 에스파뇰 1999-2001: 유벤투스 2000-2001: 사라고사 (임대) 2001: 포르투 2002: 카데테스 데 산 마르틴 2002: 리버 플레이트 2003: 아작시오 2003-2004: 무르시아 2005: 뉴얼스 올드 보이스 |
| 클럽별 출전 및 득점 (리그) | 페로 카릴 오에스테: 6경기 0골 레알 마드리드 B: 44경기 18골 레알 마드리드: 10경기 1골 레알 사라고사: 61경기 29골 레알 마드리드: 20경기 1골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35경기 16골 에스파뇰: 37경기 15골 유벤투스: 16경기 0골 레알 사라고사 (임대): 17경기 11골 포르투: 3경기 0골 카데테스 산 마르틴: 정보 없음 리버 플레이트: 9경기 0골 아작시오: 4경기 0골 무르시아: 17경기 1골 뉴얼스: 10경기 1골 |
| 총 출전 및 득점 | 261경기 83골 |
| 청소년 국가대표 | 1991: 아르헨티나 U-20: 7경기 7골 |
|---|---|
| 국가대표 | 1995-1997: 아르헨티나: 3경기 3골 |
| 감독 팀 | 2009-2010: 헤타페 (수석 코치) 2011-2012: 사라고사 B 2013: 코르도바 2016: 헤타페 2017-2019: 제프 유나이티드 지바 2023: 레노파 야마구치 2024: PSBS 비악 |
|---|
-
헤타페 CF의 축구 감독 -
미카엘 라우드루프
미카엘 라우드루프는 "덴마크의 왕자"라고도 불리는 덴마크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뛰어난 기술과 우아한 플레이로 FC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등에서 활약하며 수많은 우승을 경험했고 덴마크 국가대표로도 맹활약했다. -
헤타페 CF의 축구 감독 -
베른트 슈스터
베른트 슈스터는 독일 출신 축구 선수 및 감독으로, 선수 시절 스페인 주요 클럽에서 라리가 우승 등 다양한 트로피를 획득하고 서독 국가대표로 UEFA 유로 1980 우승을 경험했으며, 감독으로서는 헤타페 CF의 코파 델 레이 준우승, 레알 마드리드의 라리가 우승 등을 이끌었다. -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의 축구 감독 -
오쿠데라 야스히코
오쿠데라 야스히코는 1970년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한 최초의 일본인 선수로, 일본 리그 우승과 천황배 우승, 분데스리가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아시아 선수 최초 득점을 기록했으며, 일본 대표팀으로 32경기 출전 후 은퇴하여 지도자, 해설가, 구단 사장 등으로 활동하며 일본 축구 발전에 기여했다. -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의 축구 감독 -
나가누마 겐
나가누마 겐은 일본의 축구 선수, 감독, 행정가로, 선수로서는 올림픽에 출전하고, 감독으로서는 올림픽 메달을 획득했으며, 행정가로서 일본 축구 발전에 기여했다. -
코르도바 CF의 축구 감독 -
엔리케 페레스 디아스
엔리케 페레스 디아스는 스페인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수비수로서 레알 마드리드에서 라리가 7회 우승과 유러피언컵 2회 우승을 포함한 11개의 주요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로도 활약했고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 활동했다. -
코르도바 CF의 축구 감독 -
호세 무르시아
호세 무르시아는 스페인 출신의 축구 감독이자 선수 출신으로, 선수 시절은 세군다 디비시온 B에서 보냈고, 은퇴 후에는 코르도바 CF B팀 감독을 시작으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군 감독, 알바세테 발롬피에, FC 브라쇼브 등 여러 클럽을 거쳐 2017년부터 알 샤하니야 SC 감독을 맡아 1부 리그 승격을 이끌었다.
2. 선수 경력
후안 에스나이데르는 페로 카릴 오에스테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레알 마드리드, 레알 사라고사,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에스파뇰, 유벤투스 등 여러 클럽에서 활약했다. 특히 레알 사라고사에서 두 번의 코파 델 레이 우승과 1994–95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결승전에서 아스널을 상대로 득점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3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
페로카릴 오에스테 유스 출신으로, 1990년 9월 2일 CA 벨레스 사르스필드와의 경기에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다음 시즌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하여 레알 마드리드 B팀에서 2시즌 동안 20골 가까이 기록했지만, 1군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고 1993-94 시즌에 레알 사라고사로 이적했다. 1994-95 시즌 UEFA 컵 위너스 컵에서는 이안 라이트에 이어 8골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1995년, 사라고사에서의 활약으로 레알 마드리드로 복귀했지만, 1995-96 시즌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는 단 1골에 그쳤다. 시즌 종료 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하여 1996-97 시즌 리그 16골을 기록하며 최고의 기량을 선보였다. 다음 시즌 RCD 에스파뇰로 이적하여 반년 만에 리그 13골을 기록했다. 1999년 1월,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의 부상으로 대체 선수를 찾던 유벤투스로 이적했지만, 토리노를 연고로 하는 팀에 적응하지 못했다. 2000년 12월에는 친정팀 레알 사라고사로 임대 이적하여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포르투, 리버 플레이트 등 여러 클럽에서 활약했으며, 2002년 리버 플레이트 소속으로 아르헨티나 클라우수라 (후기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005년, 뉴웰스 올드 보이스에서 은퇴했다.
2.1. 클럽 경력
부에노스아이레스주 마르델플라타에서 태어난 에스나이데르는 페로 카릴 오에스테에서 축구 선수 경력을 시작하여 1990년 9월 2일 벨레스 사르스필드를 상대로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단 6경기 후 레알 마드리드에 영입되었으며, 1990–91 시즌 동안 1군에서 2경기에 출전했고,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레알 마드리드 리저브 팀에서 20골 가까이 득점했다.
그러나 에스나이데르는 주전 선수로 정착하지 못했고, 1993–94 시즌에 레알 사라고사로 임대되었다. 그는 빠르게 유럽 축구에서 가장 뛰어난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성장했고, 1994–95 UEFA 컵 위너스컵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결승전에서 아스널을 상대로 득점했다. 또한 이안 라이트에 이어 대회 득점 2위를 기록했다(그는 라 리가에서도 16골을 추가했다).
1995년 7월, 레알 마드리드는 레알 사라고사에 두 배 이상의 금액을 지불하고 에스나이데르를 다시 영입했지만, 1995–96 시즌에 단 한 골만 기록하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1996–97 시즌을 위해 에스나이데르를 영입했고, 그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21골을 기록하며 다시 최고의 기량을 선보였다.
에스나이데르는 아틀레티코에서 방출된 후 바르셀로나를 연고지로 하는 에스파뇰에 합류하여 리그에서 13골을 성공시키며 또 한 번 좋은 시즌을 보냈다. 1999년 1월,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가 심각한 무릎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면서 그의 대체 선수로 유벤투스에 약 4500000GBP의 이적료로 영입되었지만, 토리노를 연고로 하는 팀에 적응하지 못했다. 2000년 12월 말, 레알 사라고사로 돌아간 그는 단 17경기에서 11골을 기록하며 강등을 면하는 데 기여했으며(여기에는 2001년 4월 14일 바르셀로나와의 4–4 무승부에서 2골이 포함되었다), 코파 델 레이에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에스나이데르는 포르투 (동료 선수 후안 안토니오 피치가 몇 달 후 적응하지 못하고 떠난 다음 시즌에 합류), 카데테스 데 산 마르틴, 리버 플레이트, 아작시오 그리고 레알 무르시아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아르헨티나의 뉴웰스 올드 보이스에서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그는 1995년 아르헨티나 대표팀에 데뷔하여 국제 A매치 3경기에 출전, 2골을 기록했다. 그에 앞서 포르투갈에서 열린 1991년 FIFA U-20 세계 선수권 대회에 U-20 대표팀으로 출전하기도 했다.
| 아르헨티나 | ||
|---|---|---|
| 연도 | 출전 | 골 |
| 1995 | 1 | 2 |
| 1996 | 1 | 0 |
| 1997 | 1 | 0 |
| | 3 || 2 |
3. 감독 경력
2008년, 헤타페 CF의 수석 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2011년, 세군다 디비시온 B(3부 리그)에 소속된 레알 사라고사의 B팀 사라고사 B 감독으로 취임했다. 팀은 16위로 시즌을 마쳤지만, UB 콩쿠엔세와의 강등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여 잔류했다. 2013년 4월, 세군다 디비시온(2부 리그)에서 10위로 고전하던 코르도바 CF의 감독으로 취임했지만, 팀은 14위로 시즌을 마감하며 해임되었다.
2015년, 헤타페 CF의 감독으로 복귀했지만, 팀은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강등 후에도 지휘봉을 잡았으나, 성적 부진으로 시즌 도중 해임되었다.
2016년 11월 25일, J2 리그의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지바 감독으로 취임했다. 2017 시즌, 팀을 6위로 이끌며 J1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준결승에서 나고야 그램퍼스에 패했다. 2018 시즌에는 리그 최다 실점 2위를 기록하며 14위로 시즌을 마쳤다. 2019 시즌 초반 부진으로 미토 홀리호크전 이후 해임되었다.
2023년 5월 29일, 레노파 야마구치 FC의 감독으로 취임했으나, 같은 해 11월 13일 퇴임했다.
2024년 5월 13일, 인도네시아 1부 리그로 승격한 PSBS 비악의 감독으로 취임했지만, 개막 후 3경기 전패로 9월 10일 해임되었다.
| 팀 | 시작 | 종료 | 기록 | |||||||
|---|---|---|---|---|---|---|---|---|---|---|
| 경기 | 승리 | 무승부 | 패배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률 | |||
| 사라고사 B | 2011년 7월 1일 | 2012년 6월 30일 | 40 | 13 | 11 | 16 | 50 | 60 | -10 | 32.5 |
| 코르도바 | 2013년 4월 8일 | 2013년 6월 11일 | 9 | 2 | 1 | 6 | 12 | 14 | -2 | 22.2 |
| 헤타페 | 2016년 4월 12일 | 2016년 9월 26일 | 14 | 3 | 5 | 6 | 13 | 22 | -9 | 21.4 |
| 제프 유나이티드 지바 | 2017년 2월 26일 | 2019년 3월 17일 | 89 | 37 | 16 | 36 | 148 | 144 | +4 | 41.6 |
| 레노파 야마구치 | 2023년 6월 8일 | 2023년 11월 13일 | 23 | 6 | 7 | 10 | 20 | 33 | -13 | 26.1 |
| PSBS 비악 | 2024년 5월 14일 | 2024년 9월 10일 | 3 | 0 | 0 | 3 | 2 | 7 | -5 | 0.00 |
| 총 경력 | 178 | 61 | 40 | 77 | 245 | 280 | -35 | 34.3 | ||
4. 논란
사라고사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시절, 에스나이데르는 많은 이들에게 유럽 축구계에서 가장 유망한 공격수 중 한 명으로 여겨졌으나, 잦은 돌발 행동과 거친 플레이로 인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96–97 UEFA 챔피언스 리그 아약스와의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한 후, 리처드 비치게에게 격렬한 양발 태클을 시도했으나 옐로 카드를 받는 데 그쳤다. 이후 라토미르 안티치 감독에 의해 교체되자 분노하며 욕설을 퍼부었고, 다음 날 헤수스 길 회장에 의해 이적 명단에 올랐다.
2000–01 시즌 막바지, 사라고사가 1부 리그 잔류를 위해 고군분투하던 중, 에스나이데르는 다음 시즌 전력 외 통보를 받은 후 셀타 데 비고 선수에게 팔꿈치로 가격하여 퇴장당했다. 그러나 에스나이데르는 이것이 주된 이유가 아니라고 부인했다.
1991년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는 심판 가이 고탈스에게 머리 받기를 하고 "개자식"이라고 욕설을 한 혐의로 퇴장당했다. 이로 인해 1년간 국제 축구 출전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고, 아르헨티나는 1993 FIFA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 실격 처리되었다.
5. 개인사
에스나이데르는 볼가 독일인과 스페인인의 후손이다. 그의 성은 "재단사"를 의미하는 독일어 슈나이더의 스페인어 표기이다.
2012년 크리스마스에 에스나이데르는 17세의 아들을 질병으로 잃었다. 그의 아들 중 한 명인 후안 역시 축구 선수이자 포워드였으며, 사라고사를 대표하기도 했다. 또 다른 아들 파쿤도는 그가 포르투에서 활동할 당시 태어났으며, 역시 축구를 했다.
6. 수상 내역
에스나이데르는 선수 시절 여러 대회에서 우승을 경험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스페인 국왕컵 1회(1992-93), 레알 사라고사에서 코파 델 레이 2회(1993-94, 2000-01)와 UEFA 컵 위너스 컵 1회(1994-95), 유벤투스에서 UEFA 인터토토컵 1회(1999), 리버 플레이트에서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1회(2002 클라우수라) 우승을 차지했다. 개인적으로는 1991년 남미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 득점왕을 기록했다.
6.1. 선수
| 구단 | 대회 | 우승 횟수 | 우승 연도 |
|---|---|---|---|
| 레알 마드리드 | 코파 델 레이 | 1회 | 1992–93 |
| 레알 사라고사 | 코파 델 레이 | 2회 | 1993–94, 2000–01 |
| UEFA 컵 위너스 컵 | 1회 | 1994–95 | |
| 유벤투스 | UEFA 인터토토컵 | 1회 | 1999 |
| 리버 플레이트 |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 1회 | 2002 클라우수라 |
| 개인 | 남미 청소년 선수권 대회 득점왕 (199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