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와라 남가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후지와라 남가는 후지와라 씨의 분파로, 나라 시대에 후지와라노 무치마로의 아들 대에서 도요나리, 나카마로, 오토마로, 코세마로를 시조로 하는 4개의 계통으로 나뉘었다. 헤이안 시대에는 시케의 세력에 밀려 쇠퇴했지만, 코세마로의 자손은 중하급 귀족으로 명맥을 유지하며 많은 학자들을 배출했다. 후지와라 남가 출신 인물들은 학문, 가인, 무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으며, 특히 헤이안 시대 말기에는 다이라노 기요모리와 결탁한 후지와라노 미치노리가 권세를 얻기도 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후지와라 남가 - 후지와라노 나카마로
후지와라노 나카마로는 706년에 태어나 뛰어난 재능으로 권력을 키워 757년 자신의 사위를 옹립하고 개혁 정치를 추진했으나 난을 일으킨 후 처형당했다. - 후지와라 남가 - 신제이
신제이는 헤이안 시대 말기의 관료이자 학자로, 호겐의 난에서 승리하여 권력을 휘둘렀으나, 권력 남용으로 반발을 사 헤이지의 난 때 암살당했다.
2. 역사
아스카 시대부터 나라 시대에 걸쳐 율령 국가 확립을 주도한 정치가후지와라노 후히토의 네 아들(후지와라 사형제)은 나가야 왕의 변으로 정권을 장악했다. 사형제 중 장남 후지와라노 무치마로는 우대신까지 올랐으나, 737년 천연두 유행으로 다른 형제들과 함께 사망했다.[1]
이후 후지와라 남가는 여러 가문으로 분열되어 중앙 정계에서 쇠퇴하거나, 일부는 지방으로 내려가 무가가 되기도 하였다.
2. 1. 나라 시대
후지와라노 후히토의 4명의 아들(후지와라 사형제)은 729년 나가야 왕의 변으로 정적 나가야 왕을 제거하고, 여동생 고묘시를 쇼무 천황의 황후로 세워 정권을 장악했다. 사형제의 장남인 후지와라노 무치마로는 묘당의 수반을 맡아 우대신까지 올랐지만, 737년 천연두 유행으로 다른 형제들과 함께 사망했다.[1]이후 묘당의 실권은 황족 다치바나노 모로에에게 넘어갔지만, 무치마로의 장남 후지와라노 도요나리는 749년 우대신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고켄 천황이 즉위하고 황태후가 된 고묘시 아래에 자미중대가 설치되어, 무치마로의 차남 나카마로가 장관(자미령)을 맡았다. 나카마로는 자미중대를 태정관과는 별개의 국정 기관으로 권한을 강화했고, 다치바나노 나라마로가 중심이 되어 이를 제거하려 한 난을 미연에 방지하여 많은 황족, 타 씨족 외에 형 도요나리를 포함한 정적을 제거했다. 준닌 조정에서 나카마로는 아들 3명을 산기에 임명하고, 자신은 최초의 태정대신까지 올랐지만, 764년 에미노 오시카츠의 난으로 실각했다.
2. 2. 헤이안 시대 초기
나라 시대 말기부터 헤이안 시대 초기에 걸쳐 후지와라 씨족(藤原氏族) 시케(式家)가 대두하면서 난케(南家)의 세력은 쇠퇴했다. 간무 천황 대에 도요나리의 아들 쓰구나와와 오토마로의 아들 고레키미가 우대신이 되었으나, 시케의 다네쓰구에 비해 눈에 띄는 실적은 없었다.[1] 헤이제이 천황 대에 다이나곤 오토모(고레키미의 아들)와 주나곤 오토에이(쓰구나와의 아들)가 이요 친왕의 변에 연좌되어 실각하면서 도요나리, 오토마로 계통은 쇠퇴했다. 사가 천황 대에 고세마로의 자손인 사다쓰구와 미모리가 주나곤까지 올랐으나, 준나 천황 대에는 난케 출신 의정관이 없을 정도로 호케(北家)나 시케에 비해 세력을 뻗치지 못했다. 닌묘 천황 대에 미모리가 우대신이 되었으나 재임 2년 만에 사망하면서, 이후 후지와라 씨족(藤原氏族) 호케(北家)와 겐지의 세력에 밀려 30년 이상 공경을 배출하지 못했다.2. 3. 헤이안 시대 중기 이후
헤이안 중기 이후, 코세마로의 자손들은 중하급 귀족으로 명맥을 유지하며 학자를 많이 배출했다. 헤이안 시대 말기에 다이라노 기요모리와 결탁한 신제(후지와라노 미치노리)가 권세를 얻기도 했다.[1] 고시라카와 법황의 측근이자 순토쿠 천황의 외조부가 된 후지와라노 노리스에의 자손에서 도조가인 다카쿠라 가문이 나왔다. 무로마치 시대 말에 다카쿠라 가문은 무사에서 끊겼고, 에도 시대에 부흥하여 야부가 (후지와라 호케 간인류 요쓰지 지류)로 개칭하였다.오토마로의 계통에서는 후지와라노 타메노리의 자손이 지방으로 내려가 무가가 되었으며, 구도 씨, 이토 씨, 니카이도 씨, 사가라 씨, 깃카와 씨, 아마노 씨 등을 배출했다.
3. 주요 인물
아스카 시대부터 나라 시대에 걸쳐 율령 국가의 확립을 주도한 정치가후지와라노 후히토의 4명의 아들(후지와라 사형제)은 진키 6년 (729년) 나가야 왕의 변으로 정적 나가야 왕을 제거하고, 여동생 고묘시를 쇼무 천황의 황후로 세워 정권을 장악했다.[1] 사형제의 장남인 후지와라노 무치마로는 묘당의 수반을 맡아 우대신까지 올랐지만, 덴표 9년 (737년) 천연두 유행으로 다른 형제들과 함께 사망했다.
이후 묘당의 실권은 황족 다치바나노 모로에에게 넘어갔지만, 그 아래에서 무치마로의 장남 후지와라노 도요나리는 순조롭게 승진하여 덴표 간포 원년 (749년) 우대신에 임명되었다. 한편, 같은 해 고켄 천황이 즉위하여 황태후가 된 고묘시 아래에 자미중대가 설치되어, 조카 나카마로(무치마로의 차남)가 장관(자미령)을 맡았다. 나카마로는 자미중대를 태정관과는 별개의 국정 기관으로 그 권한을 강화해 나갔고, 모로에의 아들 다치바나노 나라마로가 중심이 되어 이를 배제하려 했던 난도 미연에 방지하여 많은 황족·타 씨족 외에 형 도요나리를 포함한 정적을 제거했다. 준닌 조정에서는 아들 3명을 산기에 임명하고, 자신은 인신 최초의 태정대신(당풍으로 고쳐 "대사")까지 올랐지만, 덴표호지 8년 (764년) 에미노 오시카츠의 난으로 실각했다.
그 후 나라 시대 말기부터 헤이안 시대 초기에, 무치마로·후사사키의 동생 우마카이에서 시작되는 후지와라 시케가 대두하면서, 난가의 세력은 쇠퇴했다. 간무 조정에서 도요나리의 아들 쓰구나와와 무치마로 삼남 오토마로의 아들 코레키미가 잇따라 우대신이 되었다. 쓰구나와와 코레키미는 시케의 후지와라노 타네쓰구에 비하면 눈에 띄는 실적과 존재감은 없지만, 그 승진과 중용은 우세했다고 평가받는다.[1] 하지만, 그 다음 헤이제이 조정의 다이도 2년 (807년)에 다이나곤후지와라노 오토모 (코레키미의 아들) · 주나곤후지와라노 오토에이 (쓰구나와의 아들)가 이요 친왕의 변에 연좌되어 실각하고, 도요나리·오토마로의 계통도 쇠퇴했다.
사가 조정에 들어가자, 무치마로 사남 코세마로의 자손인 사다쓰구 · 미모리가 주나곤까지 올랐지만, 준나 조정에 들어가자 한동안 난가 출신 의정관이 부재하는 시기가 계속되는 등, 대신을 배출한 호케(우치마로 · 소닌 · 후유쓰구)나 시케(오구시)에 비해 세력을 뻗치지 못했다. 닌묘 조정에서는 미모리가 우대신으로 올라 난가에서 약 50년 만의 대신이 되지만, 불과 재임 2년 만에 사망하면, 이후 급속히 대두한 후지와라 호케와 겐지의 세력에 밀려, 30년 이상 난가에서는 공경을 배출하지 못했다.
헤이안 중기 이후에는, 코세마로의 자손이 중하급 귀족으로서 이어져, 학자를 많이 배출했다. 헤이안 시대 말기에 다이라노 기요모리와 결탁하여 세력을 얻은 인가신 후지와라노 미치노리(신제)가 그 대표이다. 또한 고시라카와 법황의 측근으로 후에 순도쿠 천황의 외조부가 된 노리스에의 자손에서, 도조가인 다카쿠라가(무로마치 시대 말에 무사 절가, 에도 시대에 부흥하여 야부가로 개호)가 나왔다.
오토마로의 계통에서 헤이안 중기에 무인으로서 두각을 나타낸 후지와라노 타메노리의 자손은, 지방으로 내려가 각지의 무가가 되어, 구도 씨·이토 씨·니카이도 씨·사가라 씨·깃카와 씨·아마노 씨 등을 배출했다.
하위 섹션에서 다루지 않은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3. 1. 무치마로의 직계 자손
3. 2. 도요나리 계통
후지와라노 무치마로의 장남 후지와라노 도요나리의 계통이다.
3. 3. 나카마로 계통
후지와라노 무치마로의 차남은 藤原仲麻呂|후지와라 나카마로일본어이다. 후지와라노 나카마로의 아들로는 후지와라노 사네쓰구, 후지와라노 사네사키, 후지와라노 곤주마로, 후지와라노 아사카리, 후지와라노 하케오, 후지와라노 사쓰오, 후지와라노 신카치, 도쿠이치가 있었다.3. 4. 오토마로 계통
후지와라노 무치마로의 삼남 후지와라노 오토마로를 시조로 한다.오토마로의 아들 후지와라노 고레키미는 우다이진(오른쪽 대신)까지 올랐다. 고레키미의 아들로는 후지와라노 웅우가 있고, 딸 후지와라노 키쓰코는 간무 천황의 부인이자 이요 친왕의 어머니이다.
3. 5. 코세마로 계통
후지와라노 무치마로의 넷째 아들인 후지와라노 고세마로를 시조로 하는 가계이다.
4. 계보
후지와라노 후히토의 넷째 아들 후지와라노 무치마로를 시조로 하는 후지와라 남가는 나라 시대부터 헤이안 시대에 걸쳐 번성한 가문이다. 무치마로는 나가야 왕의 변에서 나가야 왕을 제거하고 여동생 고묘 황후를 쇼무 천황의 황후로 세워 정권을 장악했다.[1] 그러나 737년 천연두로 형제들과 함께 사망했다.
이후 후지와라 남가는 무치마로의 아들 대에서 여러 분파로 나뉘었다. 장남 후지와라노 도요나리와 삼남 후지와라노 오토마로 계통은 간무 천황 대에 우대신을 배출하며 잠시 세력을 회복했으나, 이요 친왕의 변에 연루되어 몰락했다. 차남 후지와라노 나카마로는 자미중대를 기반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태정대신에 올랐으나, 에미노 오시카츠의 난으로 몰락했다.
사남 후지와라노 고세마로의 자손들은 중앙 정계에서 크게 활약하지는 못했지만, 중하급 귀족으로서 명맥을 이으며 학자와 인가신을 배출했다. 특히 헤이안 시대 말기 후지와라노 미치노리(신제)는 다이라노 기요모리와 결탁하여 권세를 누렸고, 그의 후손 후지와라노 노리스에는 고시라카와 법황의 측근으로 활약하며 다카쿠라가를 일으켰다.
한편, 오토마로의 계통에서는 헤이안 중기에 무인으로 두각을 나타낸 후지와라노 타메노리가 나왔고, 그의 자손들은 지방으로 내려가 구도 씨, 이토 씨, 니카이도 씨, 사가라 씨, 깃카와 씨, 아마노 씨 등 여러 무가를 형성했다.
4. 1. 주요 분파
후지와라노 무치마로를 시조로 하는 후지와라 남가는 여러 분파로 나뉘었다. 주요 분파와 그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참조
[1]
서적
長岡京前期の政治的動向
吉川弘文館
2022
[2]
문서
[3]
문서
[4]
문서
[5]
문서
[6]
문서
[7]
문서
[8]
문서
[9]
문서
[10]
문서
[11]
문서
[12]
문서
[13]
문서
[14]
문서
[15]
문서
[16]
문서
[17]
문서
[18]
문서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