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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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희강왕은 신라의 제44대 왕이다. 이찬의 직위에 있을 때 반란을 일으켜 조카인 애장왕을 살해하고 김언승을 즉위시키는 데 가담했으며, 흥덕왕 사후 왕위 계승 분쟁에서 김제륭을 지지했다. 즉위 후에는 측근들의 반란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후 희강왕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경주 내남면 망성리에 왕릉으로 추정되는 사적이 있다.
| 이름 | 희강왕 |
|---|
| 한글 | 희강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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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 | 僖康王 |
|---|
| 로마자 표기 | Huigang w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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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 매큔-라이샤워 표기 | Hŭigang w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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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 (이름) | 김제륭 (金悌隆) 또는 김제옹 (金悌顒) |
|---|
| 로마자 표기 (휘) | Gim Jeryung 또는 Gim Je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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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수 | 제43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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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위 기간 | 836년 - 838년 |
|---|
| 이전 국왕 | 흥덕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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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국왕 | 민애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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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원성왕의 손자인 김헌정의 아들이다.
809년 이찬의 직위에 있을 때 친척 형 김언승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조카인 애장왕을 죽이고 김언승을 즉위시켰다. 또한 애장왕과 왕을 시위하던 왕의 동생 김체명(金體明)도 함께 살해하였다.
836년 흥덕왕(興德王)이 사망하자, 왕위 계승을 놓고 김명(시중), 이홍(아찬), 배훤백의 지지를 받는 김제륭(희강왕)과 김우징(아찬), 조카 김예징(禮徵), 김양(金陽)의 지지를 받는 숙부 김균정이 대립하였다. 처음에는 김균정파가 왕궁에 들어가 우세를 점했으나, 김제륭파의 대군이 들이닥쳐 김균정 등을 패주시켰고, 난전 중에 김균정이 살해되어 김제륭이 즉위하게 되었다. 김양은 화살을 맞아 김우징 등과 더불어 청해진의 궁복(弓福)에게 달아나 의탁하였다.
즉위 후 희강왕은 자신을 지지한 김명을 상대등에, 이홍을 시중에 임명하여 권력 안정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재위 3년째인 838년 정월, 김명과 이홍 등이 반란을 일으켜 왕의 측근 귀족들을 살해하였다. 이에 희강왕은 자신을 옹립한 세력에게 버림받았음을 깨닫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후 희강왕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망성리의 사적 제220호가 그의 왕릉으로 비정되고 있다.
2.1. 즉위 전
원성왕의 손자 김헌정의 아들이다.
809년 이찬의 직위에 있을 때 친척 형 김언승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이때 조카인 애장왕을 죽이고 김언승을 즉위시켰다. 또한 애장왕과 왕을 시위하던 왕의 동생 김체명(金體明)도 함께 살해하였다.
836년 흥덕왕(興德王)이 사망하자, 왕위 계승을 놓고 시중 김명(金明), 아찬 이홍(利弘), 배훤백(裵萱伯)의 지지를 받는 김제륭(희강왕)과 아찬 김우징(金祐徵), 조카 김예징(禮徵), 김양(金陽)의 지지를 받는 숙부 김균정이 대립하였다. 처음에는 김균정파가 왕궁에 들어가 우세를 점했으나, 김제륭파의 대군이 들이닥쳐 김균정 등을 패주시켰고, 난전 중에 김균정이 살해되어 김제륭이 즉위하게 되었다. 김양은 화살을 맞아 김우징 등과 더불어 청해진의 궁복(弓福)에게 달아나 의탁하였다.
2.2. 즉위 후
희강왕은 즉위 후 자신을 지지한 김명을 상대등에, 이홍을 시중에 임명하여 권력 안정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재위 3년째인 838년 정월, 김명과 이홍 등이 반란을 일으켜 왕의 측근 귀족들을 살해하였다. 이에 희강왕은 자신을 옹립한 세력에게 버림받았음을 깨닫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후 희강왕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망성리의 사적 제220호가 그의 왕릉으로 비정되고 있다.
4. 희강왕이 등장하는 작품
2004년부터 2005년까지 방영된 KBS 드라마 《해신》에서 배우 장기용이 희강왕 역을 연기했다.
4.1. 드라마
2004년부터 2005년까지 방영된 KBS 드라마 《해신》에서 배우 장기용이 희강왕 역을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