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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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051년은 북송의 황우 3년, 요나라의 중희 20년, 일본의 에이쇼 6년 등에 해당하며, 노르웨이 국왕 하랄 3세가 스코틀랜드를 침략하고, 교황 레오 9세가 베르사이유에서 회의에 참석하는 등의 사건이 일어났다. 이븐 알하이삼은 망원경에 대한 이론을 기술했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성당이 완공되었다. 유럽에서는 노르망디의 윌리엄이 메인 지배권을 두고 싸웠으며, 헝가리 왕국은 베르테스 전투에서 신성 로마 제국에 승리했다. 또한 힐라리온 오브 키예프는 키예프의 동방 정교회 최초의 비(非)그리스인 대주교가 되었고, 사보이의 베르타, 미푸, 미불 등이 태어났으며 앨프릭 푸토크, 아츠아키라 친왕 등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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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숫자 | MLI |
연도별 정보 | |
기원전 | 기원전 1051년 |
11세기 | 11세기 |
1050년대 | 1050년대 |
1052년 | 1052년 |
1053년 | 1053년 |
2. 연호
wikitext
3. 기년
4. 사건
- 노르웨이의 국왕 하랄 3세가 스코틀랜드를 침략했다.
- 교황 레오 9세가 베르사이유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했다.
- 아랍의 이븐 알하이삼이 망원경에 대한 이론을 기술했다.
-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성당이 완공되었다.
4. 1. 유럽
- 봄 - 노르망디의 윌리엄이 노르망디에서 자신의 권력을 강화했다. 그는 메인 백작 휴 4세가 사망한 후 메인 지역의 지배권을 두고 다투었으며, 서부 프랑스의 알랑송과 돔프롱 요새를 포위했다.
- 5월 19일 - 프랑스 국왕 앙리 1세가 랭스 대성당에서 키예프의 안나와 결혼했다. 한편, 노르망디의 윌리엄은 발두인 5세의 딸 플랑드르의 마틸다와 결혼했는데, 앙리 1세는 이를 자신의 왕위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다.[1]
- 여름 - 풀리아와 칼라브리아 백작인 오트빌의 드라고는 남부 이탈리아에서 교황 레오 9세를 만났다. 교황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3세가 "가톨릭 교회의 자유"를 회복시키기 위해 파견한 인물이었다. 드라고는 교황에게 롬바르디아 지역에서 노르만족의 약탈 행위를 중단시키겠다고 약속해야 했다. 그러나 드라고는 돌아가던 중 8월 10일, 보비노 근처에서 비잔틴 세력의 음모로 암살당했다.
- 가을 - 베르테스 전투에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3세가 이끄는 군대가 헝가리 왕국을 침공했으나, 헝가리의 언드라시 1세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다.
- 불로뉴 백작 유스타스 2세가 잉글랜드를 방문하여 국왕 참회왕 에드워드의 궁정에서 환대를 받았다. 그러나 도버에서 유스타스 백작의 수행단과 현지 주민들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여 사상자가 나왔다. 에드워드 왕은 이 사건의 책임을 도버 주민들에게 돌리고 웨섹스 백작 고드윈에게 처벌을 명령했다. 고드윈이 왕명을 거부하자, 에드워드는 군대를 동원하여 고드윈 가문을 망명시켰다.
- 참회왕 에드워드는 노르망디의 윌리엄을 잉글랜드로 초대했다. 이때 에드워드가 자신이 사망할 경우 윌리엄에게 잉글랜드 왕위를 약속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2]
- 헤레겔드(흔히 데네겔드로 알려짐) 세금이 참회왕 에드워드에 의해 폐지되었다. 이 세금은 오랫동안 바이킹의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방어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징수되었다.[3]
- 전구년의 역이 시작되었다 (~106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