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전국체육대회
1. 개요
1922년 전국체육대회는 야구, 정구, 축구 종목으로 진행되었으며, 경성부의 여러 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야구는 배재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정구는 보성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는 경성중학 운동장과 배재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다. 경기, 경남, 경북, 전남, 전북, 평남, 평북, 황해 지역에서 선수단이 참가했으며, 경기도가 종합 1위를 차지했다.
| 연도 | 1922년 |
|---|---|
| 종류 | 하계 |
| 대회 | 제3회 전국체육대회 |
| 개최국 | 일제강점기 조선 |
| 개최지 | 경성 |
| 개막일 | 1922년 2월 11일 |
| 폐막일 | 1922년 11월 25일 |
| 주경기장 | 배재고등보통학교 운동장 |
| 선수단 | 8 |
|---|---|
| 종목 | 3 |
| 세부 종목 | 8 |
| 일반부 종목 | 3 |
| 일반부 세부 종목 | 4 |
| 18세 이하부 종목 | 3 |
| 18세 이하부 세부 종목 | 4 |
| 개회 선언 | 고원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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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1월 -
1922년 영국 총선
1922년 영국 총선은 보수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노동당이 약진했으며 자유당은 분열과 몰락을 겪었고, 앤드루 보너 로가 이끄는 보수당이 승리하여 양당 체제를 공고히 했다. -
1922년 5월 -
1922년 전조선축구대회 (평양기독교청년회)
1922년 평양기독교청년회 주최로 열린 전조선축구대회는 사회부와 학생부로 나뉘어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된 일제강점기 한국의 축구 대회로, 민족의 자긍심 고취와 유대감 강화를 목적으로 개최되어 한국 축구 초창기 역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받는다. -
1922년 10월 -
로마 진군
로마 진군은 1922년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끄는 파시스트들이 로마로 진군하여 권력을 장악한 사건으로, 이탈리아의 사회적 혼란 속에서 파시즘 세력을 확장한 무솔리니가 국왕으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아 파시스트당이 정권을 잡는 계기가 되었다. -
1922년 10월 -
1922년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1922년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는 브라질에서 개최되었으며, 브라질이 파라과이와의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여 우승을 차지했고, 후안 프란시아가 4골로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2. 경기 종목
1922년 전국체육대회는 야구, 정구, 축구 세 종목으로 구성되었다. 각 종목은 해당 종목의 전조선대회 형식으로 개최되었다.
야구는 1922년 10월 '제3회 전조선야구대회'로 열렸으며, 중등부와 청년부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정구는 5월 '제2회 전조선정구대회'로 개최되었고, 역시 중등부와 청년부 경기가 치러졌다. 축구는 특이하게 1922년 한 해에 두 번의 대회가 열렸다. 2월에 '제2회 전조선축구대회'가, 11월에 '제3회 전조선축구대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는 대회 개최 시기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다. 축구 역시 두 대회 모두 중학부와 청년부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2.1. 야구
야구 종목은 제3회 전조선야구대회로 진행되었다. 1922년 10월 14일부터 사흘간 배재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개최되었으며, 중등부와 청년부로 나뉘어 경기가 열렸다. 중등부에서는 배재고등보통학교가, 청년부에서는 중앙체육단이 각각 우승을 차지했다. 중학부 우승팀인 배재고등보통학교 선수단에게는 후원사인 동아일보가 마련하고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이 제작한 우승기가 수여되었다.
2.1.1. 경기 진행
야구 종목은 제3회 전조선야구대회로 진행되었다. 1921년에 개최된 제1회 전조선소년야구대회에서 발생한 난동 사건으로 징계를 받았던 배재고등보통학교는 조선체육회 이사회의 결의와 7개 학교 교장들의 태도 완화로 1922년 9월 21일에 징계가 해제되었다. 이에 따라 제3회 전조선야구대회는 1922년 10월 14일부터 사흘간 배재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개최되었다.
중등부 종목에서는 8개 선수단이 참가하여 배재고등보통학교가 결승에서 숭실중학을 5:2로 꺾고 우승했다. 청년부 종목에서는 6개 선수단이 참가하여 중앙체육단이 배재구락부를 12:5로 이기며 우승을 차지했다. 중학부 우승을 한 배재고등보통학교 선수단에게는 후원사인 동아일보가 일본 도쿄에서 들여온 재료로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이 자수를 놓아 만든 우승기를 수여했다.
2.1.2. 참가 선수단 및 경기 결과
야구 종목은 제3회 전조선야구대회로 진행되었다. 1921년 제1회 전조선소년야구대회에서 발생한 문제로 징계를 받았던 배재고등보통학교는 조선체육회 이사회 결의와 관련 학교장들의 입장 변화로 1922년 9월 21일 징계가 해제되었다. 이에 따라 제3회 전조선야구대회는 1922년 10월 14일부터 사흘간 배재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개최되었다.
중학부 경기에는 총 8개 선수단이 참가했다. 결승전에서는 배재고등보통학교가 숭실중학을 5:2로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청년부 경기에는 6개 선수단이 참가했으며, 중앙체육단이 배재구락부를 12:5로 꺾고 우승했다.
중학부 우승팀인 배재고등보통학교 선수단에게는 특별한 우승기가 수여되었다. 후원사인 동아일보가 일본 도쿄에서 구해온 재료를 사용하여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직접 자수를 놓아 만든 것이었다.
2.2. 정구
정구 종목은 제2회 전조선정구대회로 진행되었으며, 1922년 5월 20일부터 사흘간 열렸다. 중등부와 청년부로 나뉘어 경기가 치러졌다.
2.2.1. 경기 진행
정구 종목은 제2회 전조선정구대회로 진행되었다. 이전 해의 대회는 다른 행사에서의 난동으로 인해 연기되었으나, 제2회 전조선축구대회가 별다른 문제 없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자 조선체육회는 1922년 5월 20일부터 사흘간 제2회 전조선정구대회를 개최했다. 중등부에서는 총 6개 선수단이 참가했으며, 이전 대회 우승팀인 송도고등보통학교가 결승에서 휘문고등보통학교를 3:2로 꺾고 다시 한번 우승을 차지했다. 청년부에서는 8개 선수단이 참가하여 금강청년회가 결승에서 목포청년회를 3:1로 이기고 우승했다.
2.2.2. 참가 선수단 및 경기 결과
정구 종목은 제2회 전조선정구대회로 진행되었다. 전년도 대회는 다른 대회에서 발생한 난동으로 연기되었으나, 제2회 전조선축구대회가 별다른 사고 없이 마무리되자 조선체육회는 1922년 5월 20일부터 사흘간 제2회 전조선정구대회를 개최했다.
중등부에서는 6개 선수단이 참가했으며, 결승에서 송도고등보통학교가 휘문고등보통학교를 3:2로 꺾고 전년도에 이어 다시 우승했다. 청년부에서는 8개 선수단이 참가하여 금강청년회가 결승에서 목포청년회를 3:1로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2.3. 축구
축구 종목은 제2회 전조선축구대회와 제3회 전조선축구대회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제2회 대회는 1922년 2월 11일부터 사흘간 경성중학 운동장에서 개최되었고, 제3회 대회는 같은 해 11월 23일부터 사흘간 휘문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다. 이는 원래 조선체육회가 추운 2월 대신 가을에 대회를 열기로 결정했으나, 대회 간 간격이 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1922년에 두 번의 대회를 연이어 개최했기 때문이다.
중학부 종목에서는 휘문고등보통학교가 제2회 대회에서 중앙고등보통학교를 꺾고 우승한 데 이어, 제3회 대회에서도 숭실중학을 상대로 승리하며 대회 2연패를 달성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청년부에서는 제2회 대회에서 평양무오단이, 제3회 대회에서는 불교청년회가 각각 우승을 차지했다.
2.3.1. 경기 진행
축구 종목은 제2회 전조선축구대회와 제3회 전조선축구대회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제2회 전조선축구대회는 1922년 2월 11일부터 사흘간 경성중학 운동장에서 개최되었다. 중학부 경기에는 7개 선수단이 참가했으며, 결승전에서 휘문고등보통학교가 중앙고등보통학교를 3:0으로 꺾고 우승했다. 청년부 경기에는 11개 선수단이 참가했고, 평양무오단이 결승에서 불교청년회를 3:0으로 이기며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 종료 후, 조선체육회는 추운 2월에 축구 경기를 진행하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에 따라 다음 대회부터는 날씨가 좋은 가을인 11월에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다음 해 11월에 대회를 개최하면 제2회 대회와 제3회 대회 사이의 기간이 거의 2년으로 길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조선체육회는 제2회 대회가 열린 해인 1922년 11월 23일부터 사흘간 휘문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제3회 전조선축구대회를 앞당겨 개최했다.
제3회 대회 중학부에서는 13개 선수단이 참가하여 경쟁했으며, 휘문고등보통학교가 숭실중학과의 접전 끝에 연장전에서 2:1로 승리하며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청년부에서는 12개 선수단이 참가했고, 불교청년회가 건강구락부를 2:0으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2.3.2. 참가 선수단 및 경기 결과
축구 종목은 제2회 전조선축구대회와 제3회 전조선축구대회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제2회 전조선축구대회는 1922년 2월 11일부터 사흘간 경성중학 운동장에서 열렸다. 중학부에서는 7개 선수단이 참가했으며, 휘문고등보통학교가 결승에서 중앙고등보통학교를 3:0으로 꺾고 우승했다. 청년부에서는 11개 선수단이 참가하여 평양무오단이 결승에서 불교청년회를 3:0으로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 이후 조선체육회는 추운 2월에 대회를 여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다음 대회부터는 가을인 11월에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다음 해에 개최하면 대회 간 간격이 거의 2년으로 벌어지기 때문에, 제2회 대회가 열린 해인 1922년 11월 23일부터 사흘간 휘문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제3회 전조선축구대회를 개최했다.
제3회 전조선축구대회 중학부에서는 13개 선수단이 참가했다. 휘문고등보통학교가 숭실중학을 상대로 연장전 끝에 2:1로 승리하며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청년부에서는 12개 선수단이 참가했으며, 불교청년회가 건강구락부를 2:0으로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3. 경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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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선수단
5. 대회 일정
| 개막식 | 종목 경기 | 결선 경기 | 폐막식 |
6. 메달 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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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최종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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