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년은 수나라의 연호 대업 3년, 신라 건복 24년, 일본 추고 천황 15년에 해당하는 해이다. 보니파키우스 3세가 로마 교황으로 취임했고, 일본에서는 오노노 이모코를 수나라에 사절로 파견했으며, 법륭사가 건립되었다. 또한, 할레이 혜성이 관측되었고, 수나라 양제는 신하 가오 징을 처형했다.
서고트족, 오스트라시아인, 네우스트리아인, 롬바르드족이 부르고뉴 왕국의 테우데리크 2세에 맞서 동맹을 맺었다. 테우데리크 2세의 할머니와 누이가 서고트족 왕 비테리크의 딸이자 테우데리크 2세의 아내인 에르멘베르가를 살해했기 때문이다. 나르본 주변에서 전투가 벌어졌지만, 자세한 내용이나 결과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대략적인 연도).
오스트라시아의 브룬힐다 왕비는 프로타디우스의 죽음에 대한 복수로 알레만니아 공작 운켈렌의 발을 자른 후 그를 축출했다(''알레만니 법전''에 따름).
웨섹스의 케올울프 왕이 서섹스 왕국과 싸웠다.[1]
포카스 황제는 로마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보니파키우스 3세에게 "전 세계의 주교"라는 칭호를 수여했다.
수이코 천황은 오노노 이모코를 수나라 조정에 파견하는 사절로 임명하였다 (일본의 중국 사신 방문). 천황은 그를 양제 황제에게 조공을 바치게 하고, 섭정왕 쇼토쿠 태자가 보낸 유명한 국서를 전달하게 하였다. 그 서한은 "해가 뜨는 곳의 천자(일본)가 해 지는 곳의 천자(중국)에게, 건강을 기원합니다."라고 시작한다. (전통적인 일본식 날짜: 607년 7월 3일).[1]
양제는 자신의 신하 가오 징이 황제의 정책, 특히 투르크족인 투주에의 복속된 야미 카간에 대해 여러 비판적인 발언을 한 것에 분노하였다. 그는 처형당하였고 (참수), 가오 징의 아들들은 국경 지방 (중국 북부)으로 유배되었다.
수이코 천황 15년 7월 3일 - 오노노 이모코 등을 수에 파견하였다(수에 파견된 사절). 국서에 "해 뜨는 곳의 천자가 해 지는 곳의 천자에게 글을 보낸다. 평안하신가"라고 적어 양제가 격노했다.
4. 1. 동아시아
8월 1일 - 수이코 천황은 오노노 이모코를 수나라 조정에 파견하는 사절로 임명하였다 (일본의 중국 사신 방문). 천황은 그를 양제 황제에게 조공을 바치게 하고, 섭정왕 쇼토쿠 태자가 보낸 유명한 국서를 전달하게 하였다. 그 서한은 "해가 뜨는 곳의 천자(일본)가 해 지는 곳의 천자(중국)에게, 건강을 기원합니다."라고 시작한다. (전통적인 일본식 날짜: 607년 7월 3일).[1]
서고트족, 오스트라시아인, 네우스트리아인, 롬바르드족이 부르고뉴 왕국의 테우데리크 2세에 맞서 동맹을 맺었다. 테우데리크 2세의 할머니와 누이가 서고트족 왕 비테리크의 딸이자 테우데리크 2세의 아내인 에르멘베르가를 살해했기 때문이다. 나르본 주변에서 전투가 벌어졌지만, 자세한 내용이나 결과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대략적인 연도).
오스트라시아의 브룬힐다 왕비는 프로타디우스의 죽음에 대한 복수로 알레만니아 공작 운켈렌의 발을 자른 후 그를 축출했다(''알레만니 법전''에 따름).
웨섹스의 케올울프 왕이 서섹스 왕국과 싸웠다.[1]
2월 19일 – 작년 사망한 사비니아누스 교황 이후 공석이었던 교황좌가 로마 출신의 가톨릭교회 부제의 선출로 종결되었다. 보니파시오 3세가 66대 교황으로 선출되었지만 같은 해에 사망했다.
포카스 황제는 로마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보니파키우스 3세에게 "전 세계의 주교"라는 칭호를 수여했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