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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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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스가 산은 일본 나라현에 위치한 산으로, 예로부터 신성한 산으로 숭배받아 왔다. 768년 후지와라노 나가테가 가스가타이샤를 건립하면서 후지와라 씨의 지배력이 강화되었고, 841년에는 사냥과 벌목이 금지된 신성한 지역이 되었다. 가스가타이샤와 고후쿠지의 관리 하에 산악 신앙의 수행장이자 기우제 영지로 존중받았으며, 가스가 산 원시림은 고도 나라의 문화재의 일부로서 세계 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미카사 산으로도 불리며, 만엽집에 시가 많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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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가산
개요
가스가산 전경 (중앙 우측에 미카사산, 뒤쪽에 하나야마)
가스가산 전경 (중앙 우측에 미카사산, 뒤쪽에 하나야마)
위치일본 나라현 나라시
높이498 m
종류
지리
산계기이산지
하천이치도강
사와강
역사
문화재 지정나라 공원 (나라현 지정 사적)
세계유산고도 나라의 문화재
기타
관련 정보가스가산 원시림
가스가타이샤
고후쿠사
도다이사
나라 공원

2. 역사

2. 1. 고대

옛부터 가스가 산은 신이 깃든 산(神体山, 신나비산)으로 숭배되었다. 헤이조쿄 천도(710년) 이후 조정에서 존중하였고, 견당사는 가스가 산 근처에서 천신과 토지신에게 항해 안전을 기원했다. 768년에는 후지와라노 나가테가 조부 후지와라노 후히토와 연관된 가스가 산 기슭에 가스가타이샤(春日大社)를 건립하였다. 그러나 최근 신사 유적 발굴 결과 등을 통해 건립 연도가 더 이전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후지와라 씨의 세력 신장과 함께 가스가 산 일대에 대한 후지와라 씨의 지배력이 강화되었고, 841년에는 가스가타이샤의 신역으로 사냥과 벌목이 금지되었다. 가스가타이샤의 신체산으로 여겨진 가스가 산은 가스가타이샤와 인근의 고후쿠지(興福寺)의 관리 하에, 가스가 산에 자생하는 비쭈기나무를 뿌리 채 뽑아 가스가타이샤 신령이 깃든 ‘가스가 신목’이라 칭하고, 고후쿠지가스가타이샤가 강소(強訴)를 할 때 신목을 내세웠다.

또한 가스가 산은 산악 신앙의 수행장이자 기우제를 비는 영지로, 고후쿠지를 비롯한 나라 승려들에게 존중받았으며, 가스가 산 석굴 불상 등 고대에서 중세에 걸쳐 많은 불교 유적이 남아있다. 신산으로 살생 금지가 지켜져 왔기 때문에 광대한 원시림(가스가산 원시림)이 오늘까지 남아있어 고도 나라의 문화재의 일부로서 세계 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File:Mount_Wakakusa_and_Mount_Kasuga,_enkei.jpg|thumb|250px|right|

가스가 산의 스기는 가스가 삼나무로 알려져 있으며, 메이지 시대에는 쓰러진 나무를 운반하여 출하하고, 그 수익을 공원 조성 비용에 충당했다.[1] "화산"이라는 이름은 고후쿠지가 여기에서 시키미 꽃을 채취하는 데서 유래했다.[1]

2. 2. 중세

768년, 후지와라노 나가테가 조부 후지와라노 후히토 등을 기려 가스가타이샤(春日大社)를 건립했다.[1] (최근 발굴 결과로 건립 연도가 더 이전이라는 설이 유력하다)[1] 후지와라 씨의 세력 신장과 함께 가스가 산 일대에 대한 지배력이 강화되었다.[1] 841년, 가스가타이샤의 신역으로 지정되어 사냥과 벌목이 금지되었다.[1] 가스가타이샤와 인근 고후쿠지(興福寺)의 관리 하에 놓였으며, 가스가 산 석굴 불상 등 고대에서 중세에 걸친 불교 유적이 남아있다.[1]

와카쿠사 산(왼쪽)・카스가 산(오른쪽), 왼쪽 끝은 도다이지대불전이다.


가스가 산은 산악 신앙의 수행장이자 기우제를 비는 영지로 나라의 승려들에게 존중받았다.[1]

2. 3. 근대

2. 4. 현대

3. 미카사 산(御蓋山)

해발 297m이며, 미카사 산(三笠山)으로도 표기한다. 산세가 삿갓을 엎어놓은 듯한 형태를 하고 있어 이름 붙여졌다. 산정의 우운봉(浮雲峰)은 768년(진호경운 2년), 춘일대사의 제신인 무타케미카즈치노미코토가 후지와라 씨에 의해 권청되어 흰 사슴을 타고 내려온 장소로 여겨지며, 혼구 신사(本宮神社)가 모셔져 있다.

만엽집에는 이 산을 읊은 시가 많이 있다.

야마베노 아카히토/山部赤人일본어의 "높은 언덕의 미카사 산에 우는 새가 멈추면 이어지는 사랑도 할지도"(만엽집 권3・373)와 아베노 나카마로가 중국에서 일본을 그리며 읊은 시 "하늘의 아득함을 올려다보니 카스가의 미카사 산에 떠오른 달이여"(고금집 권9・406)는 백인일수에도 선정되어 널리 알려져 있다.

에도 시대 이후 북쪽 이웃의 와카쿠사 산 (옛 이름: 가즈라오 산, 쓰즈라오 산)이 그 3층의 산세로 인해 미카사 산으로 불리게 되었고, 국토지리원의 지도에서도 와카쿠사 산(미카사 산), 카스가 산(미카사 산)으로 표기되는 등 혼동이 있었으나, 1935년 (쇼와 10년), 미카사노미야미야고 선사 시에 미카사 산(미카사 산)과 와카쿠사 산과의 구별이 뚜렷해졌다.

미카사 산

4. 명칭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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