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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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은 선운사 도솔암으로 오르는 절벽에 새겨진 고려 초기의 마애여래좌상이다. 높이 약 15.7m, 무릎 너비 약 8.5m의 거대한 불상으로, 연꽃무늬 받침돌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얼굴은 평판적이고 네모진 형태이나, 파격적인 미소를 띠고 있으며, 고려 시대의 특징을 보이는 양식으로 제작되었다. 불상에는 조선의 멸망을 예언하는 비밀 기록이 감실에 보관되어 있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동학 농민 혁명과 관련된 이야기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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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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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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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대한민국 |
유형 | 보물 |
명칭 |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 |
영문 명칭 | Rock-carved Seated Buddha at Dongburam Hermitage Site of Seonunsa Temple, Gochang |
지정 번호 | 1200 |
위치 |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 도솔길 294, 선운사 (삼인리) |
시대 | 고려시대 |
지정일 | 1994년 5월 2일 |
문화재청 ID | 12,12000000,35 |
추가 정보 | |
유형 문화재 지정 (해제) | 선운사동불암마애불상 (30) |
지정일 (유형 문화재) | 1973년 6월 23일 |
해제일 (유형 문화재) | 1994년 5월 2일 |
문화재청 ID (유형 문화재) | 21,00300000,35 |
2. 역사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은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불상이다. 정확한 조성 시기에 대해서는 신라 말, 고려, 조선 시대 등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며, 백제 위덕왕 때 검단 선사가 만들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이 불상에는 마애불 가슴 부위의 감실에 숨겨진 비결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비결은 조선의 멸망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동학 농민 혁명 당시 동학 접주 손화중이 가져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1]
2. 1. 조성 시기 및 배경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은 커다란 바위벽에 새긴 불상으로, 신체 높이가 약 15.7m, 무릎 너비는 약 8.5m이며 연꽃무늬를 새긴 받침돌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마애불 양식은 고려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지만, 조성 시기는 신라 말기, 고려 시대, 조선 시대 등으로 의견이 다양하며, 백제 위덕왕 때 검단 선사가 새겼다는 전설도 있다.마애불 머리 위에는 네모난 구멍들이 뚫려 있고, 그 구멍에 목재가 박혀 있는 것도 있다. 이것들은 마애불을 더 웅장하게 꾸미기 위해 설치했던 닫집(법당 안의 부처님을 모신 자리 위에 만든 집 모형)의 흔적이다.
가슴 아래 새겨진 복장(불상을 만들 때, 그 가슴에 금, 은, 칠보와 같은 보물이나 서책 등을 넣는 것)에는 비밀스러운 기록이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내용은 복장 안에 보관된 비기가 알려지는 날 조선이 망한다는 것이다. 18세기 말 전라감사 이서구가 그 기록을 꺼내 보려다 천둥 소리와 함께 벼락이 떨어져 ‘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어 본다’라는 대목만 보고 도로 넣었다고 한다. 100여 년 후 동학 농민 혁명이 움트던 1892년에 동학 접주 손화중이 그 기록을 무사히 꺼내 가져갔다고 한다. 이는 당시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던 농민들의 염원을 엿볼 수 있는 전설이기도 하다.
2. 2. 전설과 민간 신앙
이 불상에는 마애불 명치 부위에 있는 감실에 비결이 들어 있어 그것이 꺼내지는 날 조선이 망한다는 등 여러 가지 설화가 전해진다. 이 때문에 동학 농민군이 비결을 탈취해 갔다는 말도 전해진다. 가슴 아래 새겨진 복장에는 비밀스러운 기록이 숨겨져 있는데, 그 내용은 복장 안에 보관된 비기가 알려지는 날 조선은 망한다는 것이다. 18세기 말 전라감사 이서구가 그 기록을 꺼내 보려다 천둥 소리와 함께 벼락이 떨어져 ‘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어 본다’라는 대목만 보고 도로 넣었다고 한다. 100여 년 후 동학 농민 혁명이 움트던 1892년에 동학 접주 손화중이 그 기록을 무사히 꺼내 가져갔다고 한다. 이는 당시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는 농민들의 염원을 엿볼 수 있는 전설이기도 하다.[1]3. 형태 및 특징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은 선운사 도솔암으로 오르는 길 옆 절벽에 새겨져 있다. 이 불상은 고려 초기의 거대한 마애불 계통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으며, 여러 가지 설화가 전해진다. 그중에는 마애불 명치 부위에 있는 감실에 비결이 들어 있어 그것이 꺼내지는 날 조선이 망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 때문에 동학 농민군이 비결을 탈취해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3. 1. 전체적인 모습
머리 주위를 깊이 파고 머리 부분에서 아래로 내려가면서 점차 두껍게 새기고 있다.평판적이고 네모진 얼굴은 다소 딱딱하지만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가느다란 눈과 우뚝 솟은 코, 일자로 도드라지게 나타낸 입술 등으로 얼굴 전체에 파격적인 미소를 띠고 있다. 목에는 3개의 가느다란 주름이 있지만 상체와 머리가 거의 맞붙어서, 상체 위에 머리를 올려 놓은 것처럼 보인다. 상체는 사각형인데 가슴이 넓고 평판적이어서 양감 없는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옷주름은 선을 이용해 형식적으로 표현하였고, 평판적인 가슴 아래로는 치마의 띠매듭이 선명하게 가로질러 새겨져 있다. 무릎 위에 나란히 놓은 두 손은 체구에 비해 유난히 큼직하고 투박하여 사실성이 떨어지는데, 이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과 비슷한 고려 특유의 마애불 양식이다. 층단을 이루어 비교적 높게 되어 있는 대좌는 상대에 옷자락이 늘어져 덮여 있으며, 하대에는 아래를 향하고 있는 연꽃무늬를 표현하였다.
3. 2. 상체와 하체
머리 주위를 깊이 파고 머리 부분에서 아래로 내려가면서 점차 두껍게 새기고 있다.평판적이고 네모진 얼굴은 다소 딱딱하지만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가느다란 눈과 우뚝 솟은 코, 일자로 도드라지게 나타낸 입술 등으로 얼굴 전체에 파격적인 미소를 띠고 있다. 목에는 3개의 가느다란 주름이 있지만 상체와 머리가 거의 맞붙어서, 상체 위에 머리를 올려 놓은 것처럼 보인다. 상체는 사각형인데 가슴이 넓고 평판적이어서 양감 없는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옷주름은 선을 이용해 형식적으로 표현하였고, 평판적인 가슴 아래로는 치마의 띠매듭이 선명하게 가로질러 새겨져 있다. 무릎 위에 나란히 놓은 두 손은 체구에 비해 유난히 큼직하고 투박하여 사실성이 떨어지는데, 이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과 비슷한 고려 특유의 마애불 양식이다.
3. 3. 손과 대좌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옷주름은 선을 이용해 형식적으로 표현하였고, 평판적인 가슴 아래로는 치마의 띠매듭이 선명하게 가로질러 새겨져 있다. 무릎 위에 나란히 놓은 두 손은 체구에 비해 유난히 큼직하고 투박하여 사실성이 떨어지는데 이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과 비슷한 고려 특유의 마애불 양식이다. 층단을 이루어 비교적 높게 되어 있는 대좌는 상대에 옷자락이 늘어져 덮여 있으며, 하대에는 아래를 향하고 있는 연꽃무늬를 표현하였다.3. 4. 닫집
마애불 머리 위에는 네모난 구멍들이 뚫려 있고, 그 구멍에 목재가 박혀 있는 것도 있다. 이것들은 마애불의 장엄함을 위해 설치한 닫집(법당의 부처를 모신 자리 위에 만들어 다는 집 모형)이 있었던 흔적이다.[1] 닫집은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구조물로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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