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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 매독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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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과테말라 매독 실험은 1946년부터 1948년까지 미국 공중 보건국과 국립 보건원이 주도하여 과테말라에서 진행된 인체 실험이다. 이 연구는 페니실린의 성병 예방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약 1,500명에서 5,000명에 달하는 과테말라인에게 매독, 임질, 연성하감 등의 성병을 의도적으로 감염시켰다. 실험 대상자들은 성매매 여성, 죄수, 군인, 고아, 정신병원 환자 등 취약 계층이었으며, 이들에게는 실험의 목적이나 감염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2010년 실험 기록이 공개되면서 미국 정부는 공식 사과했고, 생명윤리 문제 연구 대통령 위원회는 이 실험이 심각한 윤리 위반을 포함했다고 결론 내렸다. 피해자 및 유족들은 소송을 제기했으나, 보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2. 실험 배경

존 컷틀러 박사가 터스키기 매독 연구 대상자로부터 혈액을 채취하고 있다.


20세기 초, 매독은 심각한 공중 보건 문제였으며, 효과적인 치료법 개발이 시급했다. 당시 아르스페나민을 사용한 실험이 진행되었고, 1940년대에는 페니실린을 이용한 매독 예방 연구가 이루어졌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과 함께 미군을 성병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노력으로 성병 치료 연구가 더욱 중요해졌다.[7] 당시 성병은 35만 명의 군인에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정되었는데, 이는 1년 동안 2개 사단을 없애는 것과 같았고, 약 3400만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초래했다.[7]

1943년부터 1944년까지 진행된 테르 오트 교도소 실험은 성병 치료 및 예방 조치에 대한 첫 현장 실험이었다.[7][8] 이 실험의 목표는 교도소에서 모집한 사람을 임질에 감염시켜 더 나은 성병 예방 요법을 찾는 것이었다. 테르 오트 실험은 과테말라 실험의 전조였다.

과테말라 측 조사 위원회 위원장인 에스파다 전 부통령은 미국이 인체 실험을 한 이유로 당시 미국 남성의 10%가 매독, 60%가 임질에 감염되어 심각한 문제였다는 점을 들고 있다.[45]

1946년 7월부터 1948년 12월까지 미국 공중 보건국과 미국 국립 보건원 주도로 의사들에 의해 인체 실험이 과테말라에서 행해졌다. 당시 미국의 강한 영향 아래에 있던 과테말라의 국가적 배경과, 미국에 유학한 과테말라 백인 의사가 본국에서 실험을 실시할 것을 미국 측에 추천했다는 설이 실험 장소 선정의 이유로 제시된다.[45]

2. 1. 역사적 맥락

20세기 초, 하타 사하치로는 토끼에게 매독 치료제인 아르스페나민을 주사하는 실험을 진행했다.[7] 1940년대에는 페니실린을 사용한 매독 예방 연구가 이루어졌다. 비슷한 시기, 미국 외과 차관보 토머스 파란 박사 등 의료 전문가들은 성병에 대한 지식을 넓히고 더 효과적인 예방 및 치료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은 이러한 연구를 더욱 촉진시켰다. 당시 성병은 35만 명의 미군에게 영향을 미쳐 2개 사단 전체를 1년 동안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 수 있었고, 이는 약 3400만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초래했다.[7] 이러한 상황은 성병 치료 연구의 시급성을 높였다.

1943년부터 1944년까지 진행된 테르 오트 교도소 실험은 성병 치료 및 예방 연구의 첫 현장 실험이었다. 이 실험은 과테말라 매독 실험에 참여할 많은 사람들에 의해 수행되고 지원되었다.[7][8] 테르 오트 교도소 실험의 목표는 교도소 수감자들을 임질에 감염시켜 더 나은 예방 요법을 찾는 것이었다. 초기에는 인체 실험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토머스 파란 박사와 존 A. 로저스 대령의 지원으로 존 F. 매호니 박사와 카시우스 J. 반 스라이크 박사가 실험을 시작할 수 있었다. 존 커틀러 박사는 이 실험을 돕고 이후 과테말라 매독 실험을 이끌었다.[9]

테르 오트 실험은 과테말라 실험의 전조였다. 이는 군 지도자들이 성병과의 전쟁을 위해 새로운 연구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추진했는지, 그리고 개인 동의와 관련된 윤리적 제약, 법적 문제, 부정적 여론을 피하기 위해 연구자들이 과테말라를 선택한 이유를 보여주었다.[7]

2. 2. 연구 목적

이 연구는 성관계 후 성병 감염을 예방하는 데 있어서 페니실린의 효능을 관찰하고, 다양한 성병에 대한 페니실린 이외의 다른 약물을 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13][10] 그 결과 약 696명의 과테말라인이 의도적으로 매독, 임질 및 연성하감에 감염되었다.[13]

3. 실험 내용

1946년 7월부터 1948년 12월까지 미국 공중 보건국과 미국 국립 보건원 주도로 의사들에 의해 인체 실험이 행해졌다. 과테말라 측 조사 위원회 위원장인 에스파다 전 부통령은 당시 미국 남성의 10%가 매독, 60%가 임질에 감염되어 심각한 문제였다는 점을 실험의 이유로 들고 있다.[45]

3. 1. 실험 장소 선정 이유

미국 내에서는 인체 실험에 대한 윤리적, 법적 제약이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과테말라가 실험 장소로 선정되었다.[7] 과테말라 성병 관리국장 후안 푸네스 박사가 과테말라에서의 실험을 제안했다.[12]

일부 연구에 따르면, 미국 당국이 소수 집단으로 간주하는 대상에게 실험을 진행하기 위해 과테말라를 선택했다는 인종적 동기가 있었다.[10] 과테말라 죄수들이 매춘부에게 돈을 지불할 특권이 있어, 감염이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었다는 점도 실험 장소 선정에 영향을 미쳤다.[12]

1946년 7월부터 1948년 12월까지 미국 공중 보건국과 미국 국립 보건원 주도로 의사들에 의해 인체 실험이 행해졌는데, 당시 미국의 강한 영향 아래에 있던 과테말라의 배경과 미국 유학 경험이 있는 과테말라 백인 의사의 제안 또한 실험 장소 선정의 이유로 언급된다.[45]

3. 2. 실험 방법

이 연구는 1946년부터 1948년까지 미국 공중 보건국이 주도했다.[10] 초기 실험은 USPHS의 연구자들이 토끼에서 배양한 세균으로 매춘부들을 감염시킨 뒤, 이들에게 돈을 주고 죄수들과 성관계를 갖도록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과테말라의 매춘부들은 정부 진료소에서 성병 감염 여부를 주 2회 검사받아야 했다. 실험 목적으로, 감염된 성매매 여성들은 과테말라 공중 보건부 장관의 지시로 커틀러 박사에게 보내졌다.[19]

연구자들은 한 명의 매춘부가 71분 안에 최대 8명의 남자와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높은 감염률을 만들려 했다. 그러나 죄수들이 반복적인 채혈을 거부하여, 이러한 시도는 충분히 빠른 감염을 유발하는 데 실패했다.[12]

커틀러가 과테말라 시티에 있는 정신병원인 아실로 데 알리에나도스의 원장인 카를로스 살바도 박사의 제안을 수락한 후, 연구자들은 대상자들에게 직접 접종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19] 이 병원은 인력 부족에 시달렸고 기본적인 장비와 의약품도 부족했다. 원래는 감옥의 자원봉사자들에게 지급될 예정이었던 1500USD가 항간질제인 딜란틴과 기타 필요한 장비를 구입하기 위해 정신병원에 전달되었다.[12]

의사들은 종종 매독균을 환자의 척수액에 주사하거나, 피부를 긁어 감염을 더 쉽게 만들었다. 환자들에게 감염시킨 매독균 균주는 다른 감염된 환자 또는 정의되지 않은 "길거리 균주"에서 수집되었다.[17]

1946년과 1948년 사이 매독 실험에 참여한 과테말라 정신병원의 환자들


1947년, 커틀러는 과테말라 군인들을 대상으로 임질 실험을 시작했다. 1년 반 동안 약 600명의 군인이 이 질병에 감염되었다. 감염된 성매매 여성들은 군인들을 감염시키는 데 사용되었고, 군인들의 음경에서 채취한 임질 고름이 다른 군인들에게 주입되었다.[19] 약 80명의 군인을 대상으로 연성 궤양 실험도 동시에 진행되었으며, 의사들은 군인들의 팔을 긁어 상처를 감염시켰다. 군 관계자 또는 환자 의사들의 동의는 있었지만, 대상자 본인들의 동의는 보고되지 않았다.[17]

3. 3. 실험 대상자

이 실험에는 현지 수감자, 군인, 매춘부, 고아, 정신과 병원 입원 환자 등 취약 계층이 주로 참여했다.[10][17] 이들은 원주민 과테말라인과 빈곤층 과테말라인이 다수였으며, 연령대는 10세에서 72세까지 다양했지만 평균 20대였다.[11] 피험자들에게는 실험 의도와 감염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가족 등에게 2차 감염이 발생했다는 지적도 있다.[45]

실험 참여자 수는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약 1,500명[29]에서 최대 5,000명 이상[10]으로 추정된다. 확인된 참여자는 1,308명이며, 이 중 678명이 어떤 형태로든 치료를 받은 것으로 기록되었다.[11]

참가자들은 미국 정부의 자금으로 고용된 감염된 여성 성매매 여성과의 만남을 통해 매독균에 노출되었다.[16] 다른 시도로는 남성 피험자의 생식기, 팔뚝, 얼굴 등에 세균을 붓거나, 심지어 척추 천공을 통해 감염시키기도 했다.[13] 초기에는 매춘부들을 감염시킨 뒤 죄수들과 성관계를 갖도록 했으나, 죄수들이 반복적인 채혈을 거부하여 직접 접종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었다.[12] 의사들은 매독균을 환자의 척수액에 주사하거나, 피부를 긁어 감염을 더 쉽게 만들었다.[17]

1947년에는 군인들을 대상으로 임질 실험이 시작되었다. 약 600명의 군인이 감염되었으며, 감염된 성매매 여성들이 군인들을 감염시키는 데 사용되었고, 군인들의 음경에서 채취한 임질 고름이 다른 군인들에게 주입되었다.[19]

실험 대상자였던 베르타라는 여성 환자의 사례는 이 실험의 비윤리성을 보여준다. 베르타는 매독균 주사를 맞고 옴에 걸렸으며, 피부가 썩어 들어가는 등 심각한 증상을 겪었다. 결국 베르타는 사망했는데, 사망 당일 임질 고름을 눈, 요도, 직장에 주입받고 다시 매독에 감염되는 등 비인간적인 처치를 받았다.[7][20]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이 연구가 대상자를 심각한 건강 위협에 의도적으로 노출시키고, 실험 절차에 대한 지식과 동의를 얻지 않았으며, 취약한 집단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비윤리적이라고 평가했다.[21] 실험 과정에서 83명이 사망했지만, 실험과의 정확한 관계는 기록되지 않았다.[7][21]

3. 4. 실험 윤리 문제

피험자들은 연구의 목적과 세부 사항에 대해 알지 못했으며, 사전 동의를 제공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13] 실험에는 미국 정부의 자금으로 고용된 감염된 여성 성매매 여성과의 만남, 남성 피험자의 생식기 등에 세균을 붓는 행위, 척추 천공 등이 포함되었다.[13][16]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연구 설계와 수행이 여러 면에서 비윤리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여기에는 알려진 심각한 건강 위협에 대한 대상자의 의도적인 노출, 연구 대상자의 실험 절차에 대한 지식과 동의 부족, 그리고 매우 취약한 집단의 이용이 포함된다.[21]

실험 대상자는 현지 수감자, 군인, 매춘부, 고아, 정신과 병원 입원 환자 등 약 1,160명이었다.[45] 이들에게는 매독 스피로헤타·임균이 접종되었다. 과테말라에서는 매춘이 합법이었기 때문에[45] 성병에 걸린 매춘부와 성관계를 맺게 하여 감염시키는 사례도 있었다.[44]

피험자에게 실험 의도와 감염 사실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 등에게 2차 감염이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45]

4. 실험 관련 인물

과테말라 매독 실험에는 여러 인물들이 관여했다. 주요 인물로는 실험을 주도한 존 찰스 커틀러 박사, 당시 미국 의무총감이었던 토머스 파란, 그리고 성병 연구소 소장이었던 존 F. 마호니 박사가 있다.


  • 존 찰스 커틀러 (Dr. John Charles Cutler): 미국 공중 보건 서비스 소속 의사로, 과테말라 매독 실험을 주도했다.[25] 테레호트 교도소 실험과 터스키기 매독 실험에도 참여했다.
  • 토머스 파란 (Thomas Parran): 1936년부터 1948년까지 미국 의무총감을 지냈으며, 과테말라에서의 실험을 승인했다. 그는 "알다시피, 우리는 이 나라[미국]에서 그런 실험을 할 수 없었습니다."[14]라고 언급하며 실험의 윤리적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다.
  • 존 F. 마호니 (Dr. John F. Mahoney): 1929년부터 스테이튼 아일랜드의 성병 연구소 소장을 역임했으며, 과테말라 매독 연구 보조금을 승인한 매독 연구 위원회 위원이었다.[7]


이들 외에도 범미 보건 기구의 세균학자 제네비브 스타우트(Genevieve Stout), 과테말라 국립 보건부 성병 부서 책임자 후안 푸네스 박사(Dr. Juan Funes), 과테말라 정신병원 원장 카를로스 살바도 박사(Dr. Carlos Salvado) 등이 실험에 관여했다.[7]

4. 1. 존 찰스 커틀러 (Dr. John Charles Cutler)



존 찰스 커틀러 박사는 미국 공중 보건 서비스 성병 연구소 의사로, 과테말라 매독 실험을 주도했다.[25] 1942년 공중 보건 서비스에 합류하여 위관 장교로 복무했으며,[26] 1943년부터 1944년까지는 자원한 죄수들에게 임질을 감염시키는 테레호트 교도소 실험에 참여했다.[7]

커틀러는 흑인 미국인들에게 매독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한 터스키기 매독 실험의 후반부에도 참여했다. 이 실험으로 100명 이상이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했다. 1993년 터스키기 매독 연구에 관한 다큐멘터리 "치명적인 기만"에서 커틀러는 "그들이 치료를 받지 않는 것이 중요했고,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많은 양의 페니실린을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연구를 방해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행동을 옹호했다.[27]

터스키기 실험은 이미 감염된 사람들에게서 매독의 자연적인 진행 과정을 따랐지만, 과테말라에서는 의사들이 건강한 사람들에게 의도적으로 질병을 감염시켰고, 일부는 치료하지 않으면 치명적일 수 있었다. 커틀러 팀은 미국 군대가 제공한 과테말라의 실험실에서 질병이 다른 감염 부위에 나타날 때 전염률이 다른지 알아냈다. 커틀러는 감염 부위 연구를 위한 프로토콜을 만들었고, 흉터 형성이나 포피 내 피내 주사를 통해 감염되면 질병이 93%-100% 발생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전염 연구 후 커틀러는 질병의 치료 가능성에 집중하여 사람들을 모집, 감염시킨 다음 치료 그룹 또는 대조 그룹에 넣었다. 치료 그룹에는 오르부스-마파르센 또는 페니실린을 투여하여 효과를 확인했고, 대조 그룹에는 질병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투여하지 않았다.[28] 연구자들은 매독에 감염된 매춘부들에게 죄수들과 성관계를 갖도록 돈을 지불했고, 다른 피실험자들은 박테리아를 직접 접종하여 감염시켰다.[29] 임질, 매독 및 연성 하감에 대한 의도적인 노출을 통해 총 1,308명이 실험에 참여했다. 10~72세의 이 그룹에서 678명(52%)이 어떤 형태로든 치료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7] 그러나 커틀러는 모두 치료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커틀러 박사는 1948년 12월에 떠날 때까지 과테말라에서 의도적인 감염 실험에 참여했다.[7]

과테말라 매독 연구 이후 커틀러는 1949년 세계 보건 기구로부터 동남아시아 지역의 성병을 시연하기 위한 인도 기반 프로그램을 이끌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26]

존 커틀러는 1958년 미국 공중 보건 서비스 부차관보가 되었다. 1967년 그는 피츠버그 대학교 보건대학원 국제 보건 교수로 임명되면서 임기를 마쳤다. 1968년에는 학교의 학장 대행이 되어 1969년까지 재직했다. 2008년 사망 후 그의 터스키기 실험에서의 역할이 공개되었고 그의 유산은 박탈되었다.[7]

4. 2. 토머스 파란 (Thomas Parran)

토머스 파란은 1936년부터 1948년까지 미국 의무총감을 지냈다. 1938년 의회에서 공중 보건 예방 노력과 성병(STD) 분야의 과학 연구에 대한 자금 확대를 증언하면서 성병 연구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였다. 터스키기 매독 실험과 테르 오트 교도소 실험의 일부를 감독하기도 했다.

파란은 매독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생물학적으로 다르다"고 묘사했으며,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은 "백인 여성보다 두 배 반 더 오랫동안 감염된 상태로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인종 간 생물학적 차이는 터스키기 실험 지속의 정당성을 제공했다.

과테말라에서 그는 테레호트 실험을 새로운 환자 그룹으로 지속하는 것에 대한 최종 승인을 내렸다. 그는 또한 과테말라에서 의도적이고 무지한 매독 감염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파란은 커틀러 박사에게 "알다시피, 우리는 이 나라[미국]에서 그런 실험을 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말하며, 과테말라에서 진행되는 실험의 윤리적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14]

의무총감 재직 후 피츠버그 대학교 공중 보건 대학 초대 학장으로 일했다. 이후 대학 행정직에서 은퇴하여 멜론 가문과 관련된 아발론 재단 회장이 되었고, A. W. 멜론 교육 및 자선 신탁에서 활동했다. 1968년에 사망했으며, 1969년 피츠버그 대학교 공중 보건 대학은 그의 이름을 따서 파란 홀로 명명되었다. 이 건물은 비윤리적인 실험 관여로 인해 2018년에 이름이 변경되었다.

4. 3. 존 F. 마호니 (Dr. John F. Mahoney)

마호니는 1914년 피츠버그 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18년에 미국 공중보건 서비스의 부외과 의사가 되었다. 1929년에는 스테이튼 아일랜드의 성병 연구소 소장을 역임했으며, 이곳에서 1943년 테르 오트 교도소 실험이 시작될 때 커틀러가 그를 보조했다.

테르 오트 교도소 실험 중단 후, 마호니는 매독 환자들에게 정확한 임질 감염이 이루어지지 않자 페니실린이 매독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것으로 전환했다. 그의 연구는 페니실린 치료법에 큰 성공을 거두었고, 미군은 성병 처방에 이를 도입했다. 그러나 마호니와 그의 협력자들은 이 질병을 완전히 근절할 수 있는 장기적인 전망에 의문을 제기했다.[7]

마호니, 커틀러, 파란 등은 더 작고 통제된 개인 집단이 치료법을 찾는 데 더 유용하다고 판단하여 과테말라 시민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마호니는 과테말라 연구 보조금을 승인한 매독 연구 위원회의 위원이었으며, 과테말라 매독 연구 동안 실험의 주요 감독자로서 커틀러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1946년, 매독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존 마호니는 매독 치료제로 페니실린을 발견한 공로로 래스커상을 수상했다.[7]

과테말라 매독 연구 완료 후, 1948년 세계보건기구의 의장이 되었다. 1950년에는 뉴욕시 보건부 커미셔너가 되었고, 1957년 사망할 때까지 그 직책을 수행했다.[7]

4. 4. 기타 관련 인물

제네비브 스타우트(Genevieve Stout)는 범미 보건 기구의 세균학자로, 과테말라 연구소에서 혈청학 연구를 장려하고 설립했다.[7] 1948년부터 중앙 아메리카에서 VDRL(성병 연구소) 및 훈련 센터를 시작했으며 1951년까지 과테말라에 머물렀다. 마호니 박사는 1948년 커틀러 박사가 떠난 후 그녀를 과테말라 연구소 관리자로 임명했다. 그녀는 푸네스 박사, 살바도 박사의 도움을 받아 성병 연구(STD)를 위한 여러 독립적인 혈청학 실험을 수행했다.[7]

후안 푸네스 박사(Dr. Juan Funes)는 과테말라 국립 보건부 성병 부서 책임자였으며, 성병 및 성병 예방 병원(VDSPH)에서 성병에 걸린 성 노동자를 커틀러 박사에게 보냈다.[7] 그는 과테말라로 실험을 이전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12]

카를로스 살바도 박사(Dr. Carlos Salvado)는 과테말라 정신병원의 원장이었으며, 매독 연구의 일부가 이 병원에서 수행되었다. 살바도 박사는 의도적인 노출 실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7]

푸네스 박사와 살바도 박사는 미국 범미 보건국의 직원이기도 했으며, 커틀러 박사와의 작업 이후에도 과테말라에 남아 경력 발전을 위해 매독 실험 대상자들에 대한 관찰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에는 고아, 수감자, 정신 질환자, 학교 어린이로부터 혈액 표본 및 요추 천자를 통한 데이터 수집이 포함되었다. 이들은 1953년까지 참가자들로부터 표본을 계속 수집했다.[7]

5. 실험 결과 및 영향

이 연구는 1946년부터 1948년까지 미국 공중 보건국이 주도했다.[10] 실험에는 약 1,500명에서 5,000명 이상의 과테말라인이 참여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피험자 수는 불분명하며, 연구 결과는 발표되지 않았다.[29][10]

연구 목적은 성관계 후 페니실린의 성병 예방 효과를 관찰하는 것이었다. 약 696명의 과테말라인이 의도적으로 매독, 임질, 연성하감에 감염되었다.[13] 감염 방법은 미국 정부가 고용한 감염된 성매매 여성과의 만남, 남성 피험자의 생식기 등에 세균을 붓는 행위, 척추 주사 등이었다.[16][13] 매독 양성 반응을 보인 참가자는 페니실린으로 치료받았으나, 모든 피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았는지, 완치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13]

연구는 1948년에 공식 종료되었으나, 의사들은 1958년까지 조직 샘플 채취 및 부검을 계속했다.[17] 실험 과정에서 83명이 사망했으나 실험과의 연관성은 입증되지 않았다.[44] 연구자들은 방대한 데이터에도 불구하고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으며, 실험 종료 이유도 불분명하다.[18] 피험자에게 실험 의도와 감염 사실을 알리지 않아 가족 등에게 2차 감염이 발생했다는 지적도 있다.[45]

2010년 5월, 웰즐리 대학교 수잔 리바비 교수가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실험 기록을 발견하여 공개했다.[43] 같은 해 10월, 미국 정부는 공식 사과를 발표하고 인권 침해를 비난했다.[34][32][33]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알바로 콜롬 과테말라 대통령에게 전화로 사과했다.[20]

미국 정부는 생명윤리 문제 연구 대통령 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했고, 위원회는 실험이 심각한 윤리 위반을 포함한다고 결론 내렸다.[7]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캐슬린 시벨리우스 보건복지부 장관은 공동 성명을 통해 사과하고, 연구 행동이 미국의 가치와 과테말라 국민에 대한 존엄성에 어긋난다고 밝혔다.[34] 오바마 대통령은 콜롬 대통령에게 사과했다.[20]

2011년 1월, 미국 정부는 의학 연구소에 실험 검토를 요청했고,[29][7] 생명윤리 문제 연구 대통령 위원회는 국제 전문가 패널을 소집하여 인체 대상 의학 연구의 현재 상태를 검토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도록 요청받았다.[37] 2011년 9월, 위원회는 '윤리적으로 불가능한: 1946년부터 1948년까지 과테말라의 성병 연구' 보고서를 발표하고, 과테말라 실험 관련 사실, 당시 미국 정부 관계자 및 의학 연구 기관의 인식 및 관여 정도, 역사적 맥락, 당시 의학 및 윤리적 기준과의 일치/불일치 여부를 조사했다.[7] 조사는 과테말라 실험이 기본적인 윤리 위반을 포함한다고 결론 내렸다.[7][38]

인권 운동가들은 희생자 가족에게 배상 (전환기 정의)을 요구했다.[25] 이후 리바비 교수의 발표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클린턴 국무장관, 시벨리우스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과 및 조사 시작 성명이 이어졌다.[43] 양국 조사 결과 6명의 생존 피해자가 인정되었으나, 비인정 피해자들의 배상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44]

5. 1. 실험 결과

이 연구는 1946년부터 1948년까지 미국 공중 보건국이 주도했다.[10] 실험에 참여한 전체 피험자 수는 불분명하다. 일부 자료에 따르면 약 1,500명의 연구 대상이 참여했지만, 그 결과는 결코 발표되지 않았다.[29] 다른 자료에 따르면 어린이를 포함하여 5,000명 이상의 개인이 연구에 참여했다.[10]

이 연구의 목적은 성관계 후 성병 감염을 예방하는 데 있어서 페니실린의 효능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약 696명의 과테말라인이 의도적으로 매독, 임질 및 연성하감에 감염되었다.[13] 참가자들은 미국 정부의 자금으로 고용된 감염된 여성 성매매 여성과의 허가된 만남을 통해 매독균에 노출되었다.[16] 참가자들에게 병원체를 전달하려는 다른 시도에는 남성 피험자의 생식기, 팔뚝 및 얼굴과 같은 다양한 가볍게 긁힌 신체 부위에 세균을 붓는 것이 포함되었다. 일부 피험자는 심지어 척추를 강제로 찔러 감염되었다.[13] 그 후 매독 양성 반응을 보인 참가자는 페니실린으로 치료받았다. 그러나 모든 피험자에게 적절한 치료가 제공되었는지 또는 감염된 개인이 완치되었는지에 대한 증거는 없다.[13]

이 연구는 1948년에 공식적으로 종료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의사들은 1958년까지 이전 참가자들의 조직 샘플을 채취하고 부검을 계속했다.[17] 실험 과정에서 83명의 환자가 사망했지만, 실험 참여와 사망 간의 연관성은 입증되지 않았다. 1951년까지 최소 69명이 사망했다는 보도도 있다.[44]

연구가 오랫동안 진행되었고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수집했음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은 과테말라 매독 실험에서 어떤 것도 발표하지 않았다. 연구자들이 투스키기 매독 연구에 대한 연구를 나중에 발표했기 때문에 출판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연구자의 가능성은 낮다. 실험이 종료된 이유나 중단되었는지에 대한 증거는 없다.[18]

피험자에게 실험 의도와 감염 사실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 등에게 2차 감염이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45]

5. 2. 실험 발각 및 사과

2010년 5월, 웰즐리 대학교의 역사학자 수잔 리바비 교수가 피츠버그 대학교 공문서 보관소에서 인체 실험 기록을 발견하여 공개했다.[43] 같은 해 2010년 10월, 미국 정부는 공식 사과를 발표했고, 인권 침해는 시간이 흘러도 비난받아야 한다고 밝혔다.[34][32][33]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알바로 콜롬 과테말라 대통령에게 전화로 사과했다.[20]

5. 3. 후속 조치

2010년 10월, 미국 정부는 공식 사과를 했고, 시간이 아무리 흘렀어도 의학 연구에서의 인권 침해는 비난받아야 한다고 발표했다.[34][32][33]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생명윤리 문제 연구 대통령 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했다.

위원회는 실험이 "오늘날의 기준과 연구자들 자신의 이해에 비추어 볼 때 심각한 윤리 위반을 포함했다"고 결론 내렸다.[7]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캐슬린 시벨리우스 보건복지부 장관은 공동 성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 비록 이러한 사건이 64년 전에 발생했지만, 우리는 공중 보건이라는 미명 하에 이처럼 비난받을 만한 연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분노합니다. 우리는 이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깊이 유감이며, 이처럼 혐오스러운 연구 관행의 영향을 받은 모든 개인에게 사과드립니다. 연구 중 나타난 행동은 미국의 가치, 또는 과테말라 국민에 대한 인간 존엄성과 깊은 존중에 대한 우리의 헌신을 나타내지 않습니다.[34]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 실험을 "반인륜적 범죄"라고 불렀던 알바로 콜롬 대통령에게 사과했다.[20]

미국 정부는 2011년 1월부터 이 실험에 대한 검토를 수행하도록 의학 연구소에 요청했다.[29][7] 생명윤리 문제 연구 대통령 위원회는 전 세계 인체 대상 의학 연구의 현재 상태를 검토하고 이러한 종류의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국제 전문가 패널을 소집하도록 요청받았다.[37] 2011년 9월에 출판된 위원회 보고서인 '윤리적으로 불가능한: 1946년부터 1948년까지 과테말라의 성병 연구'는 다음 네 가지 질문에 답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 1946년에서 1948년 사이에 미국 공중 보건국(PHS)의 자금 지원을 받은 일련의 성병 노출 연구와 관련된 과테말라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가?

# 당시 미국 정부 관리들과 의학 연구 기관의 다른 사람들이 연구 프로토콜을 어느 정도까지 알고 있었으며, 어느 정도까지 적극적으로 이를 용이하게 하거나 지원했는가?

# 이러한 연구가 수행된 역사적 맥락은 무엇이었는가?

# 연구는 당시의 관련 의학 및 윤리적 기준 및 관례와 어떻게 일치하거나 벗어났는가?[7]

조사는 "과테말라 실험이 연구자들이 당시 의학 윤리의 요구 사항을 스스로 인식한 것과 비교해 볼 때에도, 양심에 어긋나는 기본적인 윤리 위반을 포함했다"고 결론 내렸다.[7][38]

인권 운동가들은 희생자 가족에게 배상 (전환기 정의)을 요구했다.[25]

이후 미국 웰즐리 대학교의 역사학자 수잔 리바비 교수가 피츠버그 대학교 공문서 보관소에서 인체 실험 기록을 발견하여[43], 2010년5월 학회 발표를 통해 공개되었다. 이를 받아들여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같은 해 10월 1일, 과테말라의 알바로 콜롬 대통령에게 전화로 사과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캐슬린 시벨리우스 보건복지부 장관도 같은 날 미국 연방 정부에 의한 조사를 시작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43]

양국에 각각 조사위원회를 설치한 결과, 명부 등의 자료 대조를 통해 6명의 "생존 피해자"가 인정되었지만, "비인정 피해자"로부터도 배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44]

6. 법적 대응 및 배상 문제

2011년 3월, 과테말라 실험 피해자와 유족 7명은 미국 정부를 상대로 연방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미국이 동의를 구하지 않은 잘못이 있으며, 대부분 빈곤 속에 살고 있는 가족들의 의료적 피해와 생계 손실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 연방 판사 레지 왈튼은 미국 정부가 미국 밖에서 저지른 행위에 대해 면책 특권을 가진다고 판결하여 소송을 기각했다.[41]

2015년 4월, 774명의 원고는 존스 홉킨스 대학교, 제약회사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퀴브, 록펠러 재단을 상대로 10억 달러(10억달러) 규모의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들은 존스 홉킨스 대학교가 실험 설계, 계획, 자금 지원 및 승인에 관여했을 뿐만 아니라, 실험 과정을 통제, 감독, 지원, 장려, 참여 및 지시했다며 실험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고 주장했다.[41]

2019년 1월, 미국 지방 법원 판사 테오도어 추앙은 해외 인권 침해와 관련하여 미국 법원에서 외국 기업을 보호하는 최근 대법원 판결이 의회 승인 없이는 국내 기업에도 적용될 수 없다는 피고 측 주장을 기각했다. 그러나 2022년 4월, 지방 법원은 피고의 손을 들어주며, 파란 박사와 그의 동료들이 록펠러 재단을 대신하여 행동한 것이 아니며, 존스 홉킨스 직원이 파란, 마호니 또는 커틀러 박사가 저지른 법 위반을 돕거나 교사한 적이 없다고 판결했다.

많은 과테말라 국민들은 미국의 사과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1]

6. 1. 소송 제기

2011년 3월, 과테말라 실험 피해자와 유족 7명은 미국 정부를 상대로 연방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미국이 동의를 구하지 않은 잘못이 있으며, 대부분 빈곤 속에 살고 있는 가족들의 의료적 피해와 생계 손실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 연방 판사 레지 왈튼은 미국 정부가 미국 밖에서 저지른 행위에 대해 면책 특권을 가진다고 판결하여 소송을 기각했다.[41]

2015년 4월, 774명의 원고는 존스 홉킨스 대학교, 제약회사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퀴브, 록펠러 재단을 상대로 10억 달러(10억달러) 규모의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들은 존스 홉킨스 대학교가 실험 설계, 계획, 자금 지원 및 승인에 관여했을 뿐만 아니라, 실험 과정을 통제, 감독, 지원, 장려, 참여 및 지시했다며 실험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고 주장했다.[41]

2019년 1월, 미국 지방 법원 판사 테오도어 추앙은 해외 인권 침해와 관련하여 미국 법원에서 외국 기업을 보호하는 최근 대법원 판결이 의회 승인 없이는 국내 기업에도 적용될 수 없다는 피고 측 주장을 기각했다. 그러나 2022년 4월, 지방 법원은 피고의 손을 들어주며, 파란 박사와 그의 동료들이 록펠러 재단을 대신하여 행동한 것이 아니며, 존스 홉킨스 직원이 파란, 마호니 또는 커틀러 박사가 저지른 법 위반을 돕거나 교사한 적이 없다고 판결했다.

6. 2. 배상 문제

많은 과테말라 국민들은 미국의 사과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2011년 3월, 7명의 원고는 과테말라 매독 실험에 대한 손해 배상을 요구하며 미국 정부를 상대로 연방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1] 이 소송은 미국이 동의를 구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주장했으며, 대부분의 가족이 빈곤 속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의료적 피해와 생계 손실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1] 미국 연방 판사 레지 왈튼은 미국 정부가 미국 밖에서 저지른 행위에 대해 면책 특권을 가진다고 판결하여 소송을 기각했다.[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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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뉴스 U.S. apologizes for syphilis experiment in Guatemala https://www.reuters.[...] 2022-08-08
[3] 뉴스 Guatemalans file class action suit over US medical experiments http://jurist.org/pa[...] JURIST 2011-03-15
[4] 웹사이트 Docket for Estate of Arturo Giron Alvarez v.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19-1530 - CourtListener.com https://www.courtlis[...] 2022-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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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논문 Ethical Failures and History Lessons: The U.S. Public Health Service Research Studies in Tuskegee and Guatemala 2012-06
[9] 논문 Principles, progress and harm in the Guatemala Syphilis Study https://sti.bmj.com/[...] 20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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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논문 First, Do No Harm: The US Sexually Transmitted Disease Experiments in Guatemala 2013-12
[12] 논문 The Best Possible Intentions Testing Prophylactic Approaches on Humans in Developing Countries 2013-02
[13] 논문 President Obama apologises to Guatemala over 1940s syphilis study https://www.bmj.com/[...] 201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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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뉴스 U.S. apologizes for newly revealed syphilis experiments done in Guatemala http://www.washingto[...] 201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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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뉴스 米政府:40年代に生体実験 受刑者らに性病感染 毎日新聞 2010-10-02
[44] 뉴스 ことば:グアテマラ人体実験 - 毎日jp(毎日新聞) http://mainichi.jp/w[...] 毎日jp(毎日新聞) 2012-01-21
[45] 뉴스 グアテマラ:アメリカの人体実験 貧しい先住民が標的 - 毎日jp(毎日新聞) http://mainichi.jp/p[...] 毎日jp(毎日新聞) 2012-01-21
[46] 웹인용 Guatemalans 'died' in 1940s US syphilis study http://www.bbc.co.uk[...] BBC News 2011-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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