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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레시 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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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구레시 산불은 1971년 4월 27일 일본 구레시 히로마치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다. 수로 복구 공사 중 모닥불이 마른 풀에 옮겨붙어 시작되었으며, 건조한 날씨와 강한 바람으로 인해 불길이 빠르게 확산되었다. 이 화재로 인해 소방관 18명이 순직하고, 340헥타르의 산림이 소실되는 큰 피해가 발생했다. 급경사면에서의 예상치 못한 불길 확산, 기상 조건에 대한 판단 미숙, 미흡한 초기 진압 기술 등이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적되었으며, 이후 산림 화재 진압에 소방 헬기 활용의 중요성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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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레시 산불
기본 정보
잿빛 고개에 있는 위령비
잿빛 고개에 있는 위령비
위치일본 히로시마현 구레시
발생일1971년 (쇼와 46년) 4월 27일
발생 시간11시 10분
면적340 ha (헥타르)
원인모닥불에 의한 실화
사망자18명

2. 발생

1971년 4월 27일 오전 11시 10분경, 구레시 히로마치 가도노구치에 있는 오바리야마 사유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1] 발화 원인은 수로 복구 공사를 하던 작업자가 피운 모닥불바람에 의해 근처 마른 풀에 옮겨붙은 것이었다.[1] 당시 맑은 날씨건조한 상태였고, 전날부터 화재 경보가 발령된 상태였다.[1] 게다가 동남동풍이 평균 5m, 최대 14m로 강하게 불어 불길이 빠르게 번졌다.[1]

같은 날 11시 18분, 구레시 소방국 동부 소방서에 화재 신고가 접수되어 소방대원 16명이 출동하여 진화 작업을 시작했다.[1] 그러나 불길이 거세져 소방 펌프차 109대와 구레시 소방국 직원 84명, 소방대원 400여 명을 추가 투입했다.[1] 또한 구레 시장과 히로시마현 지사에게 연락하여 자위대 출동을 요청했다.[1] 최종적으로 히로시마시 소방국 직원, 육상자위대원, 해상자위대원, 영림서 직원, 지역 소방대원 등 연인원 1,900여 명이 진화 작업에 참여했다.[1]

불길은 24시간 넘게 계속 타올랐고, 다음 날인 28일 오전 11시경 비가 내리면서 진화되었다.[1] 이 화재로 국유림 115헥타르, 시유림 85헥타르, 사유림 140헥타르 등 총 340헥타르가 소실되었다.[1] 다행히 시가지나 민가로 불이 번지지는 않았지만, 진화 작업 중이던 소방관 18명이 순직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1]

3. 피해

소방청에 따르면 구레시 소속 베테랑급 소방관들이 주로 희생되어 큰 충격을 주었다.[6] 이 산불로 소방관 18명이 순직하였는데, 이는 과거 유례가 없는 참사였다.[2]

산불로 인해 국유림 115ha, 시유림 85ha, 사유림 140ha 등 총 340ha (840 에이커) 규모의 산림이 잿더미로 변했다.[6] 이는 한국 고성 산불에 필적하는 대형 산불이었다.

이후 잿더미가 된 지역에 나무를 심어 산림을 복구했지만, 곳곳에 나무가 듬성듬성 심어져 있어 피해 흔적이 남아있다.

4. 대참사의 원인 및 교훈

1971년 4월 27일 발생한 구레시 산불은 18명의 소방관이 순직하는 대참사로 이어졌으며, 이 사건은 다음과 같은 원인과 교훈을 남겼다.[2]


  • 급경사면에서의 화재 확산: 불길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급경사면을 타고 내려와 소방관들이 대피할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다. 소방청 연구원들은 현장 조사와 과거 미국의 산림 화재 사례 비교 분석을 통해, "급격한 발화"(flare up) 현상[4]에 의한 것으로 판단했다.
  • 풍향 고려 부족: 강한 동남동풍이 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2소대를 풍하(風下)인 동쪽으로 파견한 판단 착오가 있었다. 이는 1954년 도야마루 태풍 내습 시 발생한 이와나이 대화재 등 과거 사례를 통해, 소화 활동 시 해당 지역의 고유한 기상 조건을 고려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주었다.
  • 미흡한 초기 대응 및 소화 기술: 당시에는 공중 소화 등 산림 화재에 대한 소화 기술이 부족하여 초기 진압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화재에서는 민간 항공기 한 대만이 공중 소화에 투입되었을 뿐이었다.

교훈이 화재를 계기로, 대규모 산림 화재에서 소방 헬기가 활용되기 시작했으며, 전국 산간에 풍향계, 습도계가 설치되는 등 산림 화재 예방 및 대응 시스템이 강화되었다. 또한, 산림 화재에서의 소화 기술, 소화 장비의 충실, 신형 소화 약제의 개발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5. 유사 사고

1977년 기타큐슈시 고쿠라미나미구 히라오다이의 츠라누키산에서 산불이 발생하여 소방관 5명이 순직하였다. 화재 원인은 초원에서의 들불이었으며, 이 사고 또한 오바리야마에서와 마찬가지로 급경사면에서 불이 번져 피해가 커졌다.[1]

6. 한국에 주는 시사점

이 산불은 대한민국에도 산불 대응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산불은 급격하게 번지며 막대한 인명 및 재산 피해를 발생시킨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1954년 도야마루 태풍 내습 시 발생한 이와나이 대화재와 같이, "고유하고 국지적인 기상 조건을 경시"하면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4] 따라서 산불 발생 시, 국지적인 기상 상황과 지형 조건을 고려하여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응해야 한다.

당시 일본에서는 공중 소화 등 산림 화재에서의 소화 기술이 미숙했고, 이 화재에서도 공중 소화에 투입된 헬리콥터는 민간 항공기 한 대뿐이었다.[4] "만약 미국 등과 같이 헬리콥터, 비행기에 의한 공중 소화가 주가 되었다면, 이러한 참사는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는 지적이 나왔다.[4] 이는 산림 화재에서의 소화 기술, 소화 장비의 충실, 신형 소화 약제의 개발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이 화재를 교훈 삼아, 이후 대규모 산림 화재에서 소방 헬기도 활용되게 되었다.

진보 진영에서는 재난 대응 시스템 강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으며, 특히 소방 인력 및 장비 확충, 소방관 처우 개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참조

[1] 문서 呉市消防局
[2] 문서 品川勝島倉庫爆発火災
[3] 문서 熱傷
[4] 문서 화재
[5] 문서 소방관
[6] 문서 남양주시 퇴계원읍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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