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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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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극동건설은 1947년 설립된 대영건설사를 전신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건설 회사이다. 1950년대 남대문시장 신축, 서울시민회관 건설 등을 시작으로 1970년대에는 아산방조제, 서울 지하철 1호선 건설 등 정부 발주 공사를 수행하며 성장했다. 1986년 국제그룹의 건설 부문을 인수하며 사업을 확장했으나, 외환 위기 이후 부도 처리되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후 론스타, 웅진그룹의 인수 과정을 거쳐 2013년 웅진그룹에서 독립했다. 현재는 부산 남구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아파트 브랜드 '극동 스타클래스'를 통해 주택 사업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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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건설 - [회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극동건설주식회사
원어Kukdong Engineering & Construction Co.,Ltd.
글로벌 리더 기업의 이미지를 스마트한 느낌의 워터마크로 이니셜 'K'에 친환경적인 디자인 모티브를 적용하여 글로벌 트랜드를 선도하는 리더의 위상을 표현
종류주식회사
창립1947년 4월 28일 (대영건설사)
1953년 (극동건설 (現))
국가대한민국
장소부산광역시 남구 수영로 295, 401호
인물문정동, 박용득 (대표이사)
산업건축, 토목, 플랜트공사, 주택건설
대표 제품스타클래스
웹사이트극동건설 공식 웹사이트
재무 정보 (2022년)
매출액387,898,655,668원
영업 이익8,633,551,023원

2. 역사

극동건설의 전신은 1947년 창업자 김용산 회장이 세운 대영건설사다.[3] 1953년 극동건설(주)로 이름을 바꿨다.[3] 극동건설은 1954년 남대문시장 신축공사를 맡았다.[3] 1956년 서울시민회관을, 1967년에는 대연각 호텔을 각각 지었다.[3] 1970년대 들어 아산방조제, 서울 지하철 1호선, 남양방조제 등 정부가 발주한 공사를 잇따라 따내며 사업 영역을 넓혔다.[3] 1970년대 극동건설은 현대건설, 대림산업, 삼환기업, 삼부토건 등과 함께 ‘건설 5인방’으로 불리며 업계를 주도했다.[3] 1986년 신군부에 의해 해체된 국제그룹 계열사 국제상사의 건설부문(국제종합건설)을 인수했다.[3] 같은 해 동서증권과 동서경제연구소를 인수하며 금융업에 진출했다.[3] 동서증권, 국제종합건설을 인수하며 무리하게 자금을 지출하였고, 굵직한 건설을 꾸준히 해왔던 극동건설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7년과 1998년 두 회사가 잇따라 부도를 내면서 경영난에 빠졌다. 극동건설도 1998년 부도 처리됐고 이 해 7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3] 2003년 6월 극동건설은 1700억 원에 외국계 투자회사인 론스타에 인수됐다. 이 해에 극동건설은 법정관리 절차를 마쳤다.[3] 2007년 웅진그룹의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현 (주)웅진)가 론스타로부터 극동건설을 인수하면서 지배주주가 됐다.[3] 2013년 2월 극동건설은 웅진그룹으로부터 독립하였고, 법정관리도 마쳤다.[3] 2017년 12월 본점을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서 부산광역시 연제구로 이전하였다.[3] 현재는 부산 남구에 본사를 두고 있다.

2. 1. 설립 초기 (1947~1970년대)

극동건설의 전신은 1947년 창업자 김용산 회장이 세운 대영건설사다.[3] 1953년 극동건설(주)로 이름을 바꿨다.[3] 극동건설은 1954년 남대문시장 신축공사를 맡았다.[3] 1956년 서울시민회관을, 1967년에는 대연각 호텔을 각각 지었다.[3] 1970년대 들어 아산방조제, 서울 지하철 1호선, 남양방조제 등 정부가 발주한 공사를 잇따라 따내며 사업 영역을 넓혔다.[3]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종합제철항 건설에도 참여했다. 1970년대 극동건설은 현대건설, 대림산업, 삼환기업, 삼부토건 등과 함께 ‘건설 5인방’으로 불리며 업계를 주도했다.[3]

2. 2. 국제그룹 인수와 외환 위기 (1980~1990년대)

1986년 신군부에 의해 해체된 국제그룹 계열사 국제상사의 건설부문(국제종합건설)을 인수했다.[3] 같은 해 동서증권과 동서경제연구소를 인수하며 금융업에 진출했다.[3] 국제그룹 인수는 전두환 정권의 부당한 압력에 의한 것으로, 이후 극동건설 경영난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3]

외환 위기 직후인 1997년과 1998년 국제종합건설과 동서증권이 잇따라 부도를 내면서 경영난에 빠졌고,[3] 극동건설도 1998년 부도 처리된 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3]

2. 3. 론스타, 웅진그룹 인수와 법정관리 (2000년대~2010년대)

2003년 6월, 극동건설은 외국계 투자회사인 론스타에 1700억 원에 인수되어 법정관리 절차를 마쳤다.[3] 2007년에는 웅진그룹의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현 (주)웅진)가 론스타로부터 극동건설을 인수했다.[3]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인해 경영난이 심화되었고, 2012년 웅진그룹은 유동성 위기를 겪는 극동건설을 살리기 위해 웅진코웨이 매각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경영권 꼼수 논란으로 그룹 이미지가 나빠졌고, 극동건설의 재무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단기차입금이 4164억원으로 증가하는 등 독자적으로 재정 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워, 결국 14년 만에 두 번째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되었다.[4]

2013년 2월, 극동건설은 웅진그룹에서 독립했다.[3][4]

2. 4. 최근 현황 (2010년대~현재)

2017년 12월 본사를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서 부산광역시 연제구로 이전하였다.[3] 현재는 부산 남구에 본사를 두고 있다.

3. 주요 프로젝트

극동건설은 1954년 남대문시장 신축공사를 맡았고, 1956년 서울시민회관을, 1967년에는 21층 짜리 대연각 호텔을 지었다. 1969년 경부고속도로, 1970년 포항종합제철항 등 정부가 발주한 사업을 했으며, 1970년대 아산방조제와 서울 지하철 1호선, 남양방조제 건설에 참여하였다. 한국고속철도 부산역울산역, 서경주역, 나원역(동해선), 한강방화대교, 말레이시아페트로나스빌딩을 지었다.

4. 기업 구조 및 경영

4. 1. 본점 및 지점

극동건설의 본점은 부산광역시 남구 수영로 295, 401호에 위치해 있다. 서울사무소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163, 8층 (공덕동)에 있다. 해외지사는 카자흐스탄 알마티와 베트남 하노이 등을 포함하여 여러 국가에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다.

4. 2. 역대 임원

극동건설의 역대 임원은 다음과 같다.
대표이사 회장

  • 김용산 (1972~1998)
  • 송인회 (2010~2012)

대표이사 수석부회장

  • 김명근 (1994~1997)

대표이사 부회장

  • 김명근 (1985~1994)
  • 김세중 (1994~1998)

대표이사 사장

  • 김용산 (1953~1972)
  • 김명근 (1972~1985)
  • 김홍중 (1985~1986)
  • 김세중 (1988~1994)
  • 김천만 (1994~1998)
  • 한용호 (2003~2005)
  • 김종명 (2005~2007)
  • 안인식 (2007~2009)
  • 윤춘호 (2009~2012)
  • 강의철 (2012)
  • 박상철 (2014~2016)
  • 조기붕 (2016~2017)
  • 남관우 (2017)
  • 임정 (2017~2018)
  • 송범 (2018~2019)
  • 문정동 (2019~ )
  • 박용득 (2023~ )

대표이사 부사장

  • 김세중 (1987~1988)
  • 김천만 (1993~1994)
  • 김정훈 (2012~2014)

관리인

  • 심상수 (1998~2000)
  • 구명준 (2000~2003)

4. 3. 브랜드

극동건설은 아파트 브랜드 "극동 스타클래스"를 2005년 8월 론칭했다. 이 브랜드는 스타클래스(starclass)의 모기업인 극동건설의 기업 브랜드를 결합한 것이다. 'STAR'와 'CLASS'를 결합한 것으로, 밝게 빛나는 별과 품격 있는 계층을 상징하며, 아름다운 삶을 위한 첨단 기술과 감성적인 풍요로움으로 가득한 감성주거공간을 의미한다.

5. 수상 경력

극동건설은 2015년 대한민국 녹색경영대상 친환경건설부문에서 환경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2011년에는 스타클래스 남산으로 그린주거문화대상 마케팅부문 대상과 아시아건설종합대상 고객만족상을 수상했으며,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대십자 훈장을 받았다. 2010년에는 대한민국 건설문화대상 서울특별시장 표창, 환경부장관 표창, 하반기 주거문화대상 우량기업부문 대상, 건설협력증진대상 공로부문, 경부고속철도 2단계 건설 관련 대통령 표창, 녹색건설산업대상 대기업 경영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2008년에는 서울대학교 R&D센터로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했고, 건설협력증진대상 국토해양부장관 표창과 캄보디아 정부 산업훈장을 받았다. 2007년에는 타운하우스부문 대상으로 하반기 주거문화대상을 수상하고, 행정중심복합도시 공동주택지 건축설계공모(P7지역)에 당선되었다. 2006년에는 철탑산업훈장과 건설협력증진대상 공로부문을 수상했다.

2005년에는 스타클래스로 제5회 fn 하우징 파워브랜드 대상을 받았다. 2004년 경부선 부산역사 증축 기타공사 준공으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2001년에는 밀양 다목적댐 건설로 철탑산업훈장, 대구월드컵경기장 건설로 제10회 건축상 및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2000년 중앙고속도로 건설, 1999년 아산공업용수도 건설, 수도권 광역상수도 건설로 각각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97년에는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Petrones Twin Tower)를 준공했으며, 이는 준공 당시 세계 최고층 건축물로 기록되었다. 1993년에는 제5회 국제건설상 동상을 수상했다. 1987년에는 단국대 퇴계기념중앙도서관과 단국대 천안캠퍼스 학생회관으로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받았다. 1985년 서울지하철 건설공사로 철탑산업훈장을 받았고, 1981년에는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75년에는 제14차 아시아-서태평양 건설인대회 토목부문 금상(아산만방조제 공사)을 수상했다. 1974년 아산만, 남양만방조제 공사로 철탑산업훈장, 1970년 경부고속도로 건설공사로 석탑산업훈장을 받았다.

6. 논란 및 사건

6. 1. 국제그룹 강제 해체와 인수

1985년 전두환 정권의 국제그룹 해체 지시는 기업 활동의 자유를 침해한 위헌적 조치로 평가된다. 당시 국제그룹은 대표적인 회사였으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은 무리한 기업 확장과 해외 공사 부실 등을 그룹 해체의 표면적인 이유로 밝혔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양정모 회장이 전두환 정부에 밉보여 그룹이 해체됐다는 것이 정설이며, 총선 때 국제그룹의 협조가 부족했던 점이나 전두환 대통령 주최 만찬에 양 회장이 폭설로 늦게 참석한 것이 원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제일은행은 '국제그룹 정상화 방안'을 발표하여, 국제상사 건설부문과 동서증권을 극동건설그룹에 인수시켰다. 연합철강은 동국제강그룹, 나머지 계열사는 한일그룹으로 각각 인수되었으며, 성신토건과 국제토건은 청산되었다. 이러한 국제그룹 해체 과정에서의 인수는 이후 극동건설의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이어져 1998년 부도의 한 원인이 되었다는 평가가 있다.

6. 2. 웅진그룹 인수와 법정관리

2007년 웅진그룹의 극동건설 인수는 긍정적인 시너지를 기대했으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다.[4] 2012년 웅진그룹은 유동성 위기를 겪는 극동건설을 살리기 위해 웅진코웨이 매각을 시도했지만, 경영권을 둘러싼 꼼수 논란으로 그룹 이미지가 훼손되었고, 극동건설의 재무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4]

극동건설은 상반기 49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며 호전되는 듯 보였으나,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부채, 특히 상반기말 기준 4164억원에 달하는 단기차입금과 1년 이내 갚아야 할 534억원의 차입금은 큰 부담이었다.[4] 웅진그룹은 고강도 자구책을 통해 조기 정상화와 채권자, 고객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밝혔으나,[4] 결국 극동건설은 14년 만에 두 번째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되었다.[4] 이는 한국 기업 구조조정 과정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사례로 평가받는다.[4]

2013년 극동건설은 웅진그룹에서 벗어나 다시 부활하였다.[4]

참조

[1] 뉴스 "'두 번째 법정관리' 비운의 극동건설은 어떤 회사?" https://news.naver.c[...] 뉴시스 2012-09-26
[2] 뉴스 "35년 세든 극동빌딩, 생보협 직원이 새 이름 지어" https://news.naver.c[...] 머니투데이 2013-08-29
[3] 뉴스 "극동건설 ‘5대 메이저에서 몰락까지” http://www.newspim.c[...] 뉴스핌 2012-09-26
[4] 뉴스 "극동건설, 법정관리 18개월만에 조기졸업" https://news.naver.c[...] 뉴스1 2012-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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