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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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계관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교관으로, 평양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어를 전공했다. 1969년 외교관 생활을 시작하여 외무성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1998년부터 2010년까지 외무성 제1부상을 역임했다. 특히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맡아 북한의 핵 프로그램 폐기 협상을 주도했다. 2010년 외무성 제1차관으로 임명되었으며, 2019년 퇴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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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양세봉은 만주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이끌며 대한통의부, 참의부, 정의부, 조선혁명군 등에서 활약한 독립군 지휘관으로서, 한중 연합군을 편성하여 융링제 전투 등에서 승리했으나 일본군 밀정의 계략으로 암살당했고 남북한 모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 평안북도 출신 - 김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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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영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정치인으로, 조선공산당 창당에 참여하고 해방 후 조선공산당 재건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나, 한국 전쟁 이후 김일성 정권에 의해 처형되어 그의 생애와 활동은 논란과 재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김계관 | |
---|---|
기본 정보 | |
이름 | 김계관 |
원어 이름 | 김계관 |
한자 표기 | 金桂官 |
로마자 표기 | Gim Gye-gwan |
출생일 | 1943년 7월 6일 |
출생지 | 평안북도 |
정당 | 조선로동당 |
직위 | |
직책 | 외무성 제1부상 |
임기 시작 | 2010년 9월 |
임기 종료 | 2019년 4월 |
이전 직책 | 강석주 |
후임 직책 | 최선희 |
지도자 | 김정일 김정은 |
기타 정보 | |
일본어 표기 | きむ げぐぁん |
일본어 가타카나 표기 | キム ゲグァン |
영어 표기 | Kim Kye-gwan |
한자 표기 (다른 표기) | 金桂冠 金桂寛 |
2. 경력
김계관은 평양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어를 전공했으며, 알제리 유학 경험이 있다. 1969년 알제리에서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후, 외무성에서 주요 직책을 역임했다.[7][8]
2007년 2월, 김계관은 북한 핵 프로그램 폐기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는 핵폭탄 실험으로 세계를 경악시킨 지 불과 4개월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11] 같은 해 6월에는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와 만나 영변 핵시설 가동을 즉시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09년 8월에는 북한에 감금된 두 명의 미국 기자 석방 문제로 방북한 빌 클린턴을, 2010년 8월에는 북한에 감금된 미국인 교사 석방을 위해 방북한 지미 카터를 평양 공항에서 맞이했다.[1][2]
2010년 12월, 김계관은 비공식적으로 빌 리처드슨 미국 뉴멕시코주 주지사를 북한으로 초청했으며[4], 2011년 7월에는 미국 국무부 관계자들과 회담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했다. 2018년 5월에는 핵무기 폐기 논의에 참여했다.[5]
2. 1. 주요 경력
연도 | 직책 |
---|---|
1969년 | 알제리 주재 외교관[7], 알제리 대사관 서기관[8] |
1975년 | 외교부 1등서기관 |
1985년 | 외교부 전문위원(제1급 연구원) |
1989년 | 외교부 순회대사 |
1991년 | 외교부 참사 |
1992년 | 조미고위급회담에서 김용순 수행, 외무성 순회대사 |
1993년 | 조미고위급협의 차석대표 |
1995년 | 외무성 부부상(외무차관)[9], 경수로 문제를 둘러싼 조미 차관급 협의 대표 |
1995년 1월 ~ 2010년 9월 | 외무성 부부상 |
1997년 | 대한민국, 중화인민공화국, 미국과의 4자 회담 본회의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단장 |
1998년 9월 ~ 2010년 9월 | 외무성 제1부상 |
1998년 11월 | 외무차관(외무성 부상) |
1999년 9월 | 베를린 조미 고위급 협의[10]에서 경제 제재 완화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 잠정 중단 합의 |
2003년 8월 | 최고인민회의 제11기 대의원 |
2004년 2월 ~ 2008년 12월 | 북핵 6자회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석대표 |
2004년 | 제2회, 제3회 6자회담 대표 |
2005년 | 제4회 6자회담, 제5회 6자회담 제1세션 대표 |
2006년 | 제5회 6자회담 제2세션 대표, 4월 8일 방일 |
2007년 | 제5회 6자회담 제3세션, 제6회 6자회담 대표, 핵 프로그램 폐기 합의(2월),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와 영변 핵시설 가동 즉시 중단 발표(6월) |
2008년 | 크리스토퍼 힐 국무차관보와 조미 협의 |
2009년 8월 | 방북한 빌 클린턴을 평양국제공항에서 맞이[1], 방북한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 무대위 부부장(외무차관)과 회담 |
2010년 8월 | 방북한 지미 카터를 평양국제공항에서 맞이[2] |
2010년 9월 | 강석주 대신 외무성 제1차관 임명[3], 외무성 제1부상 |
2010년 12월 | 빌 리처드슨을 북한으로 초청 |
2011년 7월 | 미국 국무부 관계자들과 회담 위해 뉴욕 방문 |
2011년 12월 ~ | 김정일장의위원회 위원 |
2016년 5월 ~ |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
2017년 4월 ~ |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 위원 |
2017년 4월 |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 위원 취임[12] |
2018년 5월 | 핵무기 폐기 논의 참여[5] |
2019년 4월 | 제14기 최고인민회의 제1회 회의에서 최선희 제1외무차관 및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 위원 취임으로 퇴임 |
김계관은 북핵 문제와 대미 외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북한의 외교관이다. 1990년대 초부터 북미 협상에 참여하기 시작하여, 1995년부터 2010년까지 외무성 부부상 및 제1부상을 역임하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3. 북핵 협상 및 대미 외교
특히 2004년부터 2008년까지는 북핵 6자회담에서 북한 측 수석대표를 맡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인 협상을 주도했다. 2007년에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 폐기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으며, 이는 핵실험 이후 불과 4개월 만에 이루어진 성과였다. 또한 크리스토퍼 힐 당시 미국 국무부 차관보와 회담하여 영변 핵시설 가동 중단을 발표하는 등 북핵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김계관은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석방 문제에도 관여했다. 2009년에는 미국 기자 석방을 위해 방북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영접했고,[1] 2010년에는 미국인 교사 석방을 위해 방북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맞이했다.[2]
2010년에는 빌 리처드슨 당시 미국 뉴멕시코 주지사를 초청해 회담을 가졌으며,[4] 2011년에는 미국 국무부 관계자들과 만나 한반도 평화 회담을 논의하기도 했다. 2018년에는 다시 핵무기 폐기 논의에 참여하는[5] 등 북핵 문제와 대미 외교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3. 1. 주요 활동
김계관은 평양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어를 전공했으며, 알제리 유학 경험이 있다. 1969년 알제리에서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후, 외무성에서 주요 직책을 맡아왔다.[7][8]
직책 | 기간 |
---|---|
외무성 순회대사 | 1992년 ~ |
외무성 부부상 | 1995년 1월 ~ 2010년 9월[9] |
외무성 제1부상 | 1998년 9월 ~ 2010년 9월 |
북핵 6자회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석대표 | 2004년 2월 ~ 2008년 12월 |
외무성 제1부상 | 2010년 9월 ~ [3] |
김정일 장의위원회 위원 | 2011년 12월 ~ |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 2016년 5월 ~ |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 위원 | 2017년 4월 ~ [12] |
김계관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주요 협상가로 활동했다. 2007년 2월에는 그의 도움으로 북한이 핵 프로그램 폐기에 합의했는데, 이는 핵폭탄 실험으로 세계를 경악시킨 지 불과 4개월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는 북한의 핵 야망과 관련된 주요 대변인이자 수석 협상가로서, 북한 핵 폐기 협상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2007년 6월,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계관은 그와 만나 북한이 영변 핵시설 가동을 즉시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09년 8월에는 북한에 감금된 두 명의 미국 기자 석방 문제로 방북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평양 공항에서 맞이했다.[1] 2010년 8월에는 북한에 감금된 미국인 교사 석방 문제로 방북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맞이했다.[2]
2010년 12월에는 빌 리처드슨 미국 뉴멕시코 주지사를 북한으로 비공식 초청하여 회담을 가졌다.[4] 2011년 7월에는 뉴욕에서 미국 국무부 관계자들과 만나 평화 회담을 위한 논의를 진행했다.
2018년 5월에는 핵무기 폐기 논의에 참여했다.[5]
참조
[1]
뉴스
Clinton, 2 journalists on way to US from NKorea
http://hosted.ap.org[...]
Associated Press
2009-08-05
[2]
뉴스
NKorea: Ex-President Carter arrives in Pyongyang
https://web.archive.[...]
Associated Press
2010-08-25
[3]
웹사이트
Impact Player: Kim Kye-gwan
https://www.csis.org[...]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2013-11-26
[4]
뉴스
US governor visits North Korea
http://english.aljaz[...]
2010-12-16
[5]
웹사이트
Trump welcomes NK 'warm' response to canceled summit
https://www.msn.com/[...]
2018-05-25
[6]
웹사이트
중국, 일본, 북한 매체의 김계관 이름 표기 차이
[7]
뉴스
북한의 김계관은 미소짓는 암살자
https://japanese.joi[...]
중앙일보
2007-02-16
[8]
서적
[9]
웹사이트
[10]
웹사이트
[11]
웹사이트
[12]
뉴스
북한, 대미 강경 자세 유지...김정은, 특수부대 시찰
https://www.nikkei.c[...]
일본경제신문
2017-04-14
[13]
웹사이트
https://nkinfo.uni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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