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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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희필은 평안남도 용강군 출신으로 육군 사병으로 입대하여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했다. 6.25 전쟁에 참전하고 육군대학, 국방대학원 등을 졸업했으며, 5.16 군사 정변에 참여했다. 이후 군사고등재판소 재판관, 27보병사단 사단장, 3군사령부 참모장, 육군대학 총장 등을 역임하고 육군 소장으로 예편했다. 예편 후 중앙정보부 차장보, 국가안보회의 상근위원 등을 거쳐 한국조폐공사 이사장을 지냈다. 1993년 사망했으며, 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羅熙弼|나희필중국어은 평안남도 용강군 출신으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군인이다. 5.16 군사 정변에 가담하였으며, 박정희 정권에서 군 요직과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 등 정보기관 간부를 역임하였다. 전역 후에는 한국조폐공사 이사장을 지냈으며, 새문안교회 장로로 활동하다 1993년 사망했다.
2. 생애
군 복무와 공직 생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하위 섹션을 참고하라.
2. 1. 군 복무
羅熙弼|나희필중국어은 1926년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태어나 육군 사병으로 입대했다. 이후 육군사관학교 교도대 병사로 복무 중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여 1948년 5기로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하였다.[2] 1948년 육군 제5연대 제2대대장 부관을 거쳐 1949년 육군보병학교를 수료하고, 1950년 미국 미주리 종합군사학원을 수료하였다.[2]
1950년 육군 대위로 6.25 전쟁에 참전하여 수도경비사령부 제25연대 제2대대장 직무대리로 1950년 6월 26일 의정부 전투, 동두천 지구 전투, 포천지구 전투 등에 출전하였다.[2]
1952년 육군대학에 입교하여 1953년 수료하였고, 1955년 국방대학교에 입교하여 1956년 수료하였다.[2] 1956년 육군대학에서 근무하였으며, 1957년 51연대 연대장을 역임하였다.[2] 1960년 국방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2]
1961년 2군 사령부 인사담당 참모를 지냈으며, 5.16 군사 정변에 가담하였다. 이는 군사 쿠데타로 민주주의 질서를 훼손한 사건으로 비판받는다.[2] 1965년 군사고등재판소 재판관을 역임하였다.[2]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는데, 이때 참전 장교 위로차 지급된 여성을 홀로 거절하였다는 일화가 있다.[2] 1967년 27보병사단 사단장을 역임하였고, 1968년 27사단 재직 중 박정희의 술 권유를 신앙을 이유로 적극 거절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2]
1969년 육군본부 관리참모부 차장을 지냈으며, 3군 사령부 창설에 참여하였다.[2] 1973년 1월 20일 3군사령부 창설 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하여 3군사령부 창설 직전까지 이를 주관하였고, 1973년 3군사령부 참모장을 역임하였다.[2] 1974년 육군본부 작전 참모부장과 예비사단장을 거쳐 1975년 육군 대학 총장을 지내고 1977년 육군 소장으로 예편하였다.[2]
2. 2. 공직 생활 및 사망
1977년 중앙정보부 차장보에 임명되었다.[2] 1978년 11월 16일 국가안보회의 비상기획위위원회 부위원장(차관급)이 되었다.[2] 1981년 1월 국가안전기획부 차장보가 되었다.[2] 1982년 5월 20일 국가안보회의 상근위원 겸 비상기획위위원회 위원장(장관급) 겸 국무위원이 되었고,[2] 5월 21일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관급)에 임명되었다.[2]
1984년 5월 4일 한국조폐공사 이사장에 임명되어 1987년까지 재직했다.[2] 1987년 4월 27일 한국조폐공사 이사장에 재임명되어[2] 1989년까지 재직 후 퇴직하였다.
새문안교회 장로였다.[2] 1993년 9월 19일 서울국군통합병원에서 사망했다.[2]
3. 상훈
4. 신념
6.25 전쟁 당시 나희필은 상관인 연대장이 주는 술을 거절하였다. 연대장은 사회생활을 하려면 술은 어쩔 수 없이 마셔야 한다고 하였지만, 그는 술을 마실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1968년 27사단장으로 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이 주최한 만찬에서 대통령이 직접 따라 준 술을 끝까지 거절하여 다른 장군들을 놀라게 하였다. 거듭 술을 권하던 박정희 대통령은 민망해했고 장내는 얼어붙었지만, 그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박종규 경호실장이 그를 힐책하기도 했다. 그는 인사불이익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오히려 소장으로 진급하였다. 그는 기독교 신자로 신앙과 성경 교리에 철저하였으며, 평생 술, 담배, 여자를 철저히 배격하였다.[1]
참조
[1]
뉴스
화제의책/ 신앙의 장군 나희필 장로
http://www.pckworld.[...]
[2]
서적
대한민국 군인 정승화
휴먼앤북스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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