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당 (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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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일랜드 녹색당은 1981년 창당된 정당으로, 환경 보호를 핵심 가치로 한다. 초기에는 '아일랜드 생태당'으로 시작하여 여러 차례 당명 변경을 거쳤으며, 1989년 총선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을 배출하며 성장했다. 2007년에는 연립 정부에 참여했으나, 2011년 총선에서 의석을 모두 잃는 등 부침을 겪었다. 이후 2016년 총선에서 다시 의석을 확보하고, 2020년 총선에서 12석을 얻으며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했으나, 2024년 지방선거와 유럽의회 선거에서 부진한 결과를 보였다. 녹색당은 생태적 지혜, 사회 정의, 풀뿌리 민주주의, 비폭력 등의 이념을 바탕으로 환경 정책 외에도 다양한 사회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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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 (아일랜드) - [정당]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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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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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자 표기 | Comhaontas Glas |
의미 | 녹색 연합 |
국가 | 아일랜드 북아일랜드 |
창립일 | 1981년 12월 3일 (아일랜드 생태당으로) |
본부 | 더블린, 아일랜드, 16–17 Suffolk Street |
청년 조직 | 청년 녹색당 |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지도부 | |
대표 | 로더릭 오고먼 |
부대표 | 로이신 가비 |
북아일랜드 대표 | 말 오하라 |
의장 | 폴린 오라일리 |
정치 성향 및 이념 | |
정치적 위치 | 중도좌파 |
이념 | 녹색 정치 친유럽주의 |
국제 관계 | |
국제 조직 | 글로벌 그린즈 |
유럽 정당 | 유럽 녹색당 |
유럽 의회 그룹 | 녹색당-유럽 자유 연합 |
관련 정당 | |
영국 제휴 정당 | 녹색당 북아일랜드 |
색상 | |
색상 | 녹색 |
당원 | |
당원 수 (2024년) | 3,425명 |
의석 현황 | |
도일 에런 (아일랜드 하원) | 1/174석 |
세나드 에런 (아일랜드 상원) | 5/60석 |
아일랜드 지방 정부 | 23/949석 |
북아일랜드 지방 정부 | 5/462석 |
2. 역사
1981년 크리스토퍼 페테스(Christopher Fettes)를 중심으로 '아일랜드 생태당'이 창당되었다.[7] 1982년 11월 총선에서 0.2%의 득표율을 기록하는 등 초기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후 '녹색 연합'으로 당명을 변경한 후, 1984년 유럽 의회 선거에서 로저 갈랜드(Roger Garland) 후보가 더블린 선거구에서 1.9%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1985년 지방 선거에서는 마커스 쿠니한이 킬러니(Killarney) 도시 지역 의회에 당선되어 첫 승리를 거두었다. 1989년 총선에서 로저 갈랜드(Roger Garland)가 더블린 남부(Dublin South)(Dáil constituency) 선거구에서 당선되어 다일 에이레안(Dáil Éireann)에 첫 의석을 확보했다.
선거 | 의석 수 | 1차 투표 | 득표율(%) |
---|---|---|---|
1982년 총선 | 0 | 3,716 | 0.2% |
1987년 총선 | 0 | 7,159 | 0.4% |
1989년 총선 | 1 | 24,827 | 1.5% |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녹색당은 달 에런(아일랜드 하원)과 유럽 의회에서 의석을 확보하며 꾸준히 성장했다. 2002년 총선에서 6명의 하원 의원을 당선시키며 큰 성과를 거두었고, 2004년 지방선거에서는 지방 의회와 시 의회 의원 수를 크게 늘렸다. 2007년에는 북아일랜드 의회에도 진출했다.
2007년 총선 이후 녹색당은 피아나 파일, 진보 민주당과 함께 연립 정부를 구성하여 처음으로 집권 여당이 되었다. 그러나 2008년 이후 금융 위기 대응 과정에서 지지율이 급락했고, 2011년 총선에서는 모든 의석을 잃는 참패를 겪었다.
2011년 총선 이후, 이먼 라이언이 당 대표로, 캐서린 마틴이 부대표로 선출되었다. 이후 녹색당은 재기를 위해 노력했고, 2016년 2월 하원 선거에서 2석을 회복하였다. 2020년 아일랜드 총선거에서는 12석을 확보하며 다시 한번 주요 정당으로 부상했다.
2. 1. 초기(1981년 ~ 1989년): 창당과 성장
1981년, 크리스토퍼 페테스(Christopher Fettes)를 중심으로 '아일랜드 생태당'이 창당되었다.[7] 당시 첫 공개 행사는 소규모로 진행되었는데, 1982년 11월 총선 출마 발표 자리에는 후보 7명, 당원 20명, 기자 1명만이 참석했다. 페테스는 당선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언급했지만, 참석 기자 윌리 클링건은 "가장 멋지고, 정직하며, 매력적인 기자회견"이었다고 회상했다.[7] 생태당은 해당 총선에서 0.2%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후 '녹색 연합'으로 당명을 변경한 후, 1984년 유럽 의회 선거에서 로저 갈랜드(Roger Garland) 후보가 더블린 선거구에서 1.9%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1985년 지방 선거에서는 마커스 쿠니한이 킬러니(Killarney) 도시 지역 의회에 당선되어 첫 승리를 거두었다. 이는 전년도 유럽 의회 선거에서 더블린에서 5,200표를 얻은 결과였다. 당은 전국적으로 34명의 후보를 내세워 0.6%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1989년 총선에서 녹색당은 로저 갈랜드(Roger Garland)가 더블린 남부(Dublin South)(Dáil constituency) 선거구에서 당선되어 다일 에이레안(Dáil Éireann)에 첫 의석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선거 | 의석 수 | 1차 투표 | 득표율(%) |
---|---|---|---|
1982년 총선 | 0 | 3,716 | 0.2% |
1987년 총선 | 0 | 7,159 | 0.4% |
1989년 총선 | 1 | 24,827 | 1.5% |
2. 2. 발전기(1990년 ~ 2007년): 의회 진출과 확장
1989년 총선에서 녹색당은 처음으로 달 에런(아일랜드 하원)에 1석을 얻으며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112] 1992년 총선에서는 트레버 사전트가 더블린 북부 선거구에서 당선되어 의석을 유지했다.[112] 1994년 유럽 의회 선거에서는 패트리샤 맥케나와 누알라 에른이 당선되어 2석을 확보했다.[112] 1997년 총선에서는 존 고름리가 더블린 남동부 선거구에서 당선되어 의석을 추가했다.[112]2002년 총선에서 녹색당은 6명의 하원 의원을 당선시키며 큰 성과를 거두었다.[112] 2004년 지방선거에서는 지방 의회 의원 수를 8명에서 18명으로, 시 의회 의원 수를 5명에서 14명으로 늘리며 성장세를 이어갔다.[112] 2007년에는 북아일랜드 의회에 처음으로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112]
2. 3. 첫 집권과 위기(2007년 ~ 2011년): 연립정부 참여와 몰락
녹색당은 2007년 총선 이후 처음으로 정부에 참여했다. 총선에서 1순위 투표 비율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선된 국회의원 수는 이전과 같은 6명을 유지했다. 메리 화이트는 칼로우-킬케니에서 처음으로 의석을 차지했지만, 댄 보일은 코크 사우스-센트럴에서 의석을 잃었다.[8][9] 녹색당은 피아나 파일과 진보 민주당 연정에 대한 대안을 선호한다고 밝혔지만, 어떤 연정 파트너도 배제하지 않았다. 피네 게일은 신 페인과의 연정을 배제했고,[10] 이는 녹색당과 피아나 파일의 협상의 길을 열었다.피아나 파일과의 연정에 대한 아이디어를 "매국 행위"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11] 키어런 커프 국회의원은 협상이 시작되기 전에 자신의 블로그에 "피아나 파일과의 거래는 악마와의 거래가 될 것이며…[녹색당은] 당으로서 몰락할 것"이라고 적었다.[12] 장기간의 협상 끝에,[13] 녹색당과 피아나 파일 간에 정부 프로그램 초안에 합의했다.[14][15] 초기 녹색당의 요구 사항에는 기업 기부금 관련 법 제정, 민간 병원 건설을 위한 공유지 사용 유예, M3 고속도로의 타라 언덕 부근 노선 변경 등이 포함되었지만, 이러한 요구 사항들은 최종 정부 프로그램에는 포함되지 않았다.[11] 2007년 6월 13일, 더블린 맨션 하우스에서 열린 녹색당 당원 투표에서 86%(441대 67, 무효표 2표)의 찬성으로 피아나 파일과의 연정 참여가 가결되었다. 다음 날, 6명의 녹색당 국회의원은 버티 아헌의 타오이세흐 재선을 지지했다.[16] 신임 당 대표 존 고름리는 환경, 유산 및 지방 정부 장관으로, 이먼 라이언은 통신, 에너지 및 천연자원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트레버 사전트는 식량 및 원예 담당 농업, 어업 및 식량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정부에 참여하기 전, 녹색당은 쉘 투 시 운동,[17] M3 고속도로를 타라에서 우회하는 운동, 그리고 (다소 미미하지만) 미국 군대의 섀넌 공항 사용 종식 운동[18]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녹색당이 정부에 참여한 후에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정부 정책에 실질적인 변화가 없었는데, 이는 이먼 라이언이 재임 중 코리브 가스 프로젝트를 감독했음을 의미한다. 녹색당은 마지막 연례 회의에서 코리브 가스 논란에 대한 조사를 정부 참여의 전제 조건으로 삼았지만,[19] 총선 후 피아나 파일과의 협상 과정에서 입장을 바꿨다.
2008년 예산에는 녹색당이 선거 전 요구했던 휘발유, 경유, 가정 난방유와 같은 연료에 대한 탄소세가 포함되지 않았다.[20] 그러나 2010년 예산에는 탄소세가 도입되었다.[21] 2008년 예산에는 존 고름리가 발표한 별도의 탄소 예산이 포함되었는데,[22] 이는 새로운 에너지 효율 세금 공제,[20] 2009년 1월부터 백열전구 금지,[23] 통근자의 자전거 구매를 장려하는 세금 제도,[24] 그리고 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하는 새로운 차량 등록세 체계를 도입했다.[25]
2008년 1월 19일, 리스본 조약 지지 여부에 대한 특별 당대회에서 당원의 63.5%가 조약 지지를 찬성했지만, 당의 정책 문제에 대한 3분의 2 찬성 요건에는 미달했다. 결과적으로 녹색당은 첫 번째 리스본 조약 국민투표에서 공식적인 캠페인을 벌이지 않았지만, 개별 당원들은 서로 다른 입장에서 참여했다.[26] 국민투표는 부결되었고, 아일랜드 정부가 EU 회원국들과 추가적인 법적 보장 및 확약을 협상한 후, 녹색당은 2009년 7월 18일 더블린에서 두 번째 리스본 국민투표에 대한 입장을 결정하기 위한 또 다른 특별 당대회를 열었다. 참석 당원의 정확히 3분의 2가 국민투표에서 '찬성'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이는 녹색당 역사상 유럽 조약을 지지하기 위해 캠페인을 벌인 첫 번째 사례였다.[27]
2008년 이후 금융 위기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녹색당의 지지율에 큰 영향을 미쳤고, 2009년 지방 선거에서 총 3석의 군 의회 의석만을 확보하고 전통적인 더블린 지역 기반을 발브리건의 시 의회 의석을 제외하고 모두 잃었다.
2007년 버티 아헌이 임명한 두 명의 녹색당 상원 의원 중 한 명인 데어드레 드 부르카는 녹색당과 의석에서 사퇴했는데, 부분적으로는 녹색당이 유럽 연합 집행위원회에서 일자리를 확보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28] 2010년 2월 23일, 트레버 사전트는 유권자와 관련된 형사 사건에 대해 가르다에 연락했다는 의혹으로 식량 및 원예 담당 장관직에서 사임했고,[29] 다음 해 3월 키어런 커프가 그의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2010년 여론 조사에 따르면 녹색당의 지지율은 2%에 불과했으며, 즉각적인 총선에 대한 지지가 높았다.[11]
녹색당은 아일랜드 은행 구제 금융을 위한 EC-ECB-IMF의 재정 지원 법안 통과를 지지했다. 1월 19일, 녹색당은 브라이언 코웬 타오이세흐가 의도한 대체 장관들을 지지하지 않음으로써 그의 내각 개편 계획을 무산시켰고, 코웬은 현직 장관들에게 공석을 재분배해야 했다. 녹색당은 이러한 노력에 대해 협의하지 못한 것에 분노했고, 코웬이 그 해 봄에 있을 선거에 대한 확정적인 날짜를 정하지 않으면 연정에서 탈퇴하겠다고 까지 위협했다. 결국 그는 3월 11일을 선거일로 정했다.[30]
2011년 1월 23일, 녹색당은 전날 오후 연정 파트너인 피아나 파일의 대표로서 코웬이 사임한 후 그와 만났다.[31] 그 후 녹색당은 연정에서 탈퇴하고 즉시 야당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32] 존 고름리와 이먼 라이언 장관이 내각에서 사퇴했고, 키어런 커프와 메리 화이트 장관도 사임했다.[33] 녹색당 대표 존 고름리는 연정 탈퇴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녹색당은 오랫동안 피아나 파일이 당 지도부에 대한 지속적인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지켜보았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고, 우리의 인내심도 끝에 이르렀습니다."라고 말했다.[34][35]
2007년부터 2011년까지 거의 4년 동안 정부에 참여하면서 녹색당은 동성 커플의 시민 동반자 관계,[36] 주요 도시 계획 개혁,[37] 재생 에너지 생산량의 대폭 증가,[38] 진보적인 예산,[39] 그리고 전국적인 주택 단열 개조 계획[40]의 통과에 기여했다.
2. 4. 재기와 두 번째 집권(2011년 ~ 현재): 부활과 과제
2011년 총선에서 녹색당은 하원 의원(TD) 6명 전원이 의석을 잃는 참패를 겪었다.[11] 이 중에는 전 장관이었던 존 고름리와 이먼 라이언도 포함되었다. 6명의 현직 의원 중 3명은 보증금을 잃었다. 녹색당의 득표율은 2% 미만으로 떨어져 선거 비용을 회수할 수 없었고, 의회 대표가 없어 당에 대한 국가 지원금도 중단되었다.[41] 2011년 상원 선거에서도 후보였던 댄 보일과 니얼 오 브롤케인이 모두 당선되지 못하여, 1989년 이후 처음으로 녹색당은 아일랜드 의회에 대표를 두지 못하게 되었다.총선 참패 이후, 2011년 5월 27일 이먼 라이언이 존 고름리의 뒤를 이어 당 대표로 선출되었고,[42] 캐서린 마틴이 부대표로 임명되었다.[43]

2016년 2월 하원 선거에서는 2석을 회복하였다. 2020년 2월 8일 실시된 2020년 아일랜드 총선거에서는 해산 전 2석에서 12석으로 의석수를 크게 늘렸다.[112]
3. 이념 및 정책
녹색당은 다음과 같은 7가지 창당 원칙을 가지고 있다.[86]
이러한 창당 원칙은 대체로 국제적으로 대다수의 녹색당이 따르는 녹색 정치의 "4대 기둥" (생태적 지혜, 사회 정의, 풀뿌리 민주주의, 비폭력)과 글로벌 그린스의 6가지 지침 원칙 (다양성 존중 포함)을 반영한다.[87]
녹색당은 환경 운동 정책 외에도 아일랜드어 보호,[88] 아일랜드 투표 연령을 16세로 낮추는 것,[89] 직선제 상원,[90] 보편적 의료 서비스 지원,[91] 아일랜드 물의 민영화 방지를 위한 헌법 개정[92] 등 다양한 정책을 가지고 있다. 또한, 말기 환자의 조력 자살 선택권을 주장하며, "사망에 이를 가능성이 높은 말기 질환자, 명확하고 확고한 의도로 서면 선언을 작성하고 서명, 두 명의 자격을 갖춘 의사의 공증" 등의 적용 조건을 명시하고 있다.[93]
4. 내부 분파
아일랜드 녹색당은 2016년 총선에서 다일(하원)에서 2석, 상원(Seanad Éireann)에서 1석을 추가하며 선전했다. 2019년 지방 선거와 유럽 의회 선거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며, 11월에는 상원 의석을 추가하고 보궐선거에서 처음으로 승리했다.[44][45][46][47][48]
그러나 이후 당은 내분과 탈당 사태를 겪었다.[55] 사오르세 맥휴(Saoirse McHugh)는 파인 게일(Fine Gael) 및 피아나 파일(Fianna Fáil)과의 연정 구성에 반대하며 탈당했다.[56][57] 2020년에는 당내 괴롭힘, 연정 및 정책 불만을 이유로 4명의 의원과 젊은 녹색당 대표, 퀴어 녹색당 대표 등이 탈당했다.[58][59][60] 탈당한 로르나 보그(Lorna Bogue) 의원과 리암 싱클레어는 2021년 6월 좌익 성향의 안 라하르타 글라스 – 그린 레프트(An Rabharta Glas – Green Left)를 창당했다.[61][62]
2021년에는 당시 더블린 시장이자 당 의장(Cathaoirleach)이었던 헤이즐 추(Hazel Chu)가 2021년 상원 보궐선거 출마를 시도했지만 당의 공식 지지를 받지 못했다.[63][64][65] 피파 해켓(Pippa Hackett), 폴린 오라일리(Pauline O'Reilly), 로이신 가르비(Róisín Garvey) 상원의원은 추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을 제출했고, 당 부대표 캐서린 마틴은 결의안 철회를 촉구했다.[66][67] 결국 추는 2021년 12월 임기 종료까지 의장직을 유지했다.[68] 이후 2022년 상원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당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다.[69]
2022년 5월, 니아사 후리건(Neasa Hourigan)과 패트릭 코스텔로 의원은 국립 산부인과 병원 건설 관련 결의안에 당론과 달리 찬성표를 던져 6개월 당원 정지 처분을 받았다.[70][71] 후리건은 2023년 3월 퇴거 금지 해제 문제에 반대표를 던져 15개월 정직 처분을 받았다.[72]
다른 녹색당들과 마찬가지로, 아일랜드 녹색당 내에는 생태사회주의/녹색좌파 성향과 온건 성향의 파벌이 존재한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현실주의자들"(레알로스, Realos)과 "원리주의자들"(펀디스, Fundies) 간의 분열이 있었다.[94][95] '현실주의자들'은 실용적인 정치 접근을, '원리주의자들'은 급진적인 정책을 주장했다. 2007년 당이 처음으로 정부에 참여하면서 '현실주의자들'이 우세해졌지만, 이 분열은 잠복해 있었다.[96]
2019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 이후 당원 수가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97] 2020년 7월 22일, 녹색좌파/생태사회주의적 관점을 가진 "정의로운 전환 그린당(Just Transition Greens)"이 결성되었다.[98][99][100] 이들은 "정의로운 전환"에 기반한 정책을 추구하며, 2020년 녹색당 당대표 선거에서 캐서린 마틴 후보를 지지했다.[101][102]
5. 조직
녹색당의 전국 집행위원회는 당 조직을 관리한다. 위원회는 당 대표 로데릭 오고르먼, 부대표 로이신 가르비, 의장 폴린 오라일리, 전국 조정관, 사무총장(비투표직), 청년 녹색당 대표, 재무 및 당 대회에서 매년 선출되는 10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