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코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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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다이코지정은 쓰가루 평야의 중심부에 위치했던 지역으로, 군사적, 경제적, 교통의 요충지로서 고대부터 분쟁이 잦았다. 헤이안 시대에 다이코지라는 사찰에서 유래한 지명은 겐코 4년(1334년)의 다이코지 전투 기록에서 처음 확인된다. 가마쿠라 시대부터 무로마치 시대 후기까지 쓰가루 소가 씨가 본거지로 다이코지 성을 축조했으나, 전국 시대에 쓰가루 씨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히로사키 번이 히로사키성을 본거지로 삼고 다이코지 성을 파각하여 농촌이 되었으며, 1889년 주변 10개 촌이 합병하여 다이코지 촌이 되었다. 1943년 정으로 승격되었으나, 1955년 주변 지역과 합병하여 히라카 정이 되었고, 2006년 히라카와 시로 통합되었다. 현재는 고난 철도 고난선이 지나가며, 히라카 역이 중심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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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코지정 - [옛 지명]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 자치체 명칭 | 다이코지정 (大光寺町) |
| 읽는 법 | 다이코지마치 (daikoujimachi) |
| 구분 | 정 (町) |
| 소재지 | 아오모리현미나미쓰가루군 다이코지정 오아자 혼마치 아자 산무라이 141번지 (青森県南津軽郡大光寺町大字本町字三村井141番地) |
| 폐지 정보 | |
| 폐지일 | 1955년 3월 1일 |
| 폐지 이유 | 신설 합병 |
| 폐지 상세 | 가시와기정, 다이코지정, 다케다테촌, 마치이촌, 오자키촌 → 히라카정 |
| 현재 자치체 | 히라카와시 |
| 통계 정보 | |
| 면적 | 11.22 |
| 인구 (1950년) | 6283명 |
| 인구 출처 | 국세조사 |
| 인접 자치체 | |
| 인접 자치체 | 오노에정, 오자키촌, 마치이촌, 가시와기정, 나카쓰가루군도요타촌・호리코시촌 |
| 상징 | |
| 나무 | 알 수 없음 |
| 꽃 | 알 수 없음 |
| 심볼 이름 | 알 수 없음 |
| 새 등 | 알 수 없음 |
2. 역사
쓰가루 평야의 중심에 위치한 이 지역은 군사, 경제, 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옛날부터 이 땅을 둘러싼 전투가 반복되었다. 겐코 4년(1334년)에 이 지역에서 일어난 다이코지 전투를 알리는 서찰에서 '다이코지'라는 지명이 처음으로 확인된다.
가마쿠라 시대부터 무로마치 시대 후기까지 쓰가루 평야의 중심지로 여겨졌으며, 난부씨, 안토씨 등 다양한 세력이 이 지역을 지배했다. 인접한 3곳에서 다이코지성이라고 총칭되는 성터가 발견되었으며, 각각 다이코지 고성, 다이코지 신성, 이츠카이치성이라고 불린다.
전국 시대에는 쓰가루 씨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에도 시대에 쓰가루 씨는 히로사키성을 본거지로 삼고 다이코지 성을 파괴하여, 다이코지는 농촌이 되었다.
1889년(메이지 22년) 정촌제 시행으로 '''다이코지 촌'''(다이코지무라)이 발족하였고, 1943년(쇼와 18년) 정제(町制) 시행으로 '''다이코지 정'''이 되었다. 1955년 (쇼와 30년) 주변 정촌과 합병하여 '''히라카 정'''이 되었고, 2006년 (헤이세이 18년) 추가 합병을 통해 히라카와 시의 일부가 되었다.
2. 1. 지명의 유래
겐코 4년(1334년), 이 지역에서 일어난 다이코지 전투 상황을 알리는 서찰에서 '다이코지(大光寺)'라는 지명이 사료상 처음으로 확인된다.이 전투는 남북조 시대에 일어났지만, 다이코지라는 지명 자체는 그보다 오래전부터 있었다고 전해진다. 헤이안 시대 말기 이 지역에 있던 다이코지라는 사찰 이름이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2. 2. 가마쿠라 시대
고대, 다이코지 부근( 무쓰 국 히라카 군)은 안토 씨의 세력하에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윽고 미나모토 씨가 쓰가루 지방까지 세력을 뻗치자, 일대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직할지가 되었다。 이곳에 요리토모의 대관(지토다이)으로 파견된 것이 소가 씨의 일족이다. 소가 씨는 사가미 국의 소가 향(현재의 오다와라 시)을 본거로 하는 가마쿠라 막부의 고케닌이며, 쓰가루로 간 것은 그 지류였지만, 이윽고 히라카 군의 지토로서 토착했다(쓰가루 소가 씨)。쓰가루 소가 씨는 다이코지에 본거를 두고, 다이코지 타테 (다이코지관, 다이코지 성, 다이코지 고성)를 축조했다. 여기에 근거한 쓰가루 소가 씨의 본가를 다이코지 소가 씨라고 부른다. 분가는 인근의 이와타테(이와타테)에 거처를 마련하고, 이와타테 소가 씨라고 불렸다. 그러나 이 일문은 본가가 가마쿠라 시대 말기에 멸망하고, 분가도 남북조 시대에 멸망했기 때문에 사료가 부족하여, 특히 본가인 다이코지 소가 씨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1222년(조큐 4년)의 사료에 쓰가루 소가 씨의 서류, 이와타테 소가 씨의 동태가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소가 코레시게라는 인물이 호조 요시토키의 승인을 얻어 히라카 향 이와타테(이와타테)의 지토다이 직을 아버지 소가 사네미츠로부터 계승했다는 것이다. 이때 쓰가루 소가 씨가 둘로 나뉘어, 소가 스케미츠가 본가인 다이코지 소가 씨가 되었고, 소가 코레시게가 분가인 이와타테 소가 씨가 되었다고 추측된다. (단, 소가 스케미츠에 관한 직접적인 사료는 없다.) 그들의 조상이며 최초로 다이코지에 토착한 것은 소가 토키히로라고 하며, 지토다이 직으로서는 사네미츠가 3대째라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부자 형제 관계에 대해서는 사료가 부족하여 불확실하며, 계보에 대해서는 추정에 근거한 여러 설이 있다。
| 추측되는 쓰가루 소가 씨의 지토다이 직 계승자 | ||||||
|---|---|---|---|---|---|---|
| 소가 토키히로 | ─ | 소가 히로타다 | ─ | 소가 사네미츠 | ┬ | 소가 스케미츠(다이코지 소가 씨) |
| (초대・이와타테 지토다이) | │ | |||||
| └ | 소가 코레시게(이와타테 소가 씨) | |||||
| ※ 히로타다는 초대 토키히로의 아들. 초대 토키히로와 사네미츠의 혈연 관계는 불확실하며, 『소가 계도』에서는 부자라고 되어 있지만 신빙성이 부족하다. 1222년의 사료에 의해 사네미츠와 코레시게가 부자라는 것은 확인되지만, 스케미츠와의 관계는 불확실하며, 스케미츠는 히로타다의 아들일 것이라고 추정하는 설과, 사네미츠의 적자가 스케미츠, 차남이 코레시게라고 추정하는 설 등이 있다. 스케미츠・코레시게의 그 후의 계보도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후의 다이코지 전투에서 패사한 자와의 관계도 불확실하다。 | ||||||
대대로 소가 씨의 본거지인 다이코지관(고성)에서 1.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는 이츠카이치관이 있었다고 한다. 이츠카이치관을 처음 축조한 것은 원래 주산졸(주산호)을 본거로 한 주산 후지와라 씨(오슈 후지와라 씨의 일파)라고 한다. 그들은 주산호의 거점을 안토 씨에게 빼앗기고, 이곳으로 옮겨와 이츠카이치관을 축조했다. 그러나 그 주산졸은 쓰나미로 궤멸되었고, 거처를 잃은 안토 씨가 이츠카이치관을 빼앗았다고 한다. 그 후, 안토 씨와 소가 씨는 인근에 있으면서 공존했다고 추측된다。
2. 3. 남북조 시대
가마쿠라 막부가 고다이고 천황을 받드는 세력에 의해 타도된 후, 막부 측 잔당은 동북 지방으로 도망쳐 와 다이코지 성의 소가 씨에게 의지했다. 본가인 다이코지 소가 씨는 이들을 맞이했지만, 조정 측의 기타바타케 아키이에가 추토군을 보내자, 분가인 이와타테 소가 씨는 이에 굴복하여 다이코지 본가를 공격했다. 이것이 '''다이코지 전투'''이다。 이 전투로 다이코지 소가 씨는 패퇴하여 멸망했고, 이와타테 소가 씨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기타바타케 씨에게 종속된 이와타테 소가 씨는 고다이고 천황 측과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다투게 되자, 처음에는 천황 측(남조)에 가담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북조로 전향하여, 랴쿠오 2년(1339년) 남조 측의 난부 씨 (난부 마사나가)와 다이코지 성을 무대로 싸웠다. 이때는 3개월에 걸친 전투 끝에 이와타테 소가 씨가 난부 씨를 격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1360년 (쇼헤이 15년)의 사료에는 일대의 영지가 난부 씨에게 분배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이보다 조금 전에 이와타테 소가 씨가 난부 씨에 의해 멸망했다고 여겨진다。
| 연도 | 사건 |
|---|---|
| 겐무 1년(1334년) | 다이코지 전투. 다이코지 소가 씨가 패주하고, 수개월 후에 멸망。 |
| 랴쿠오 2년(1339년) | 이와타테 소가 씨(북조)와 난부 씨(남조)가 다이코지 성에서 싸운다. 3개월의 싸움 끝에 난부 씨가 패퇴。 |
| 쇼헤이 14년(1359년)경 | 이때쯤 이와타테 소가 씨가 일대의 지배를 잃는다。 |
2. 4. 무로마치 시대 ~ 전국 시대
다이코지 소가 씨가 멸망한 연대와 그 후의 경과에 대해서는 서로 모순되는 사료, 전승, 여러 설이 있어 정해지지 않았다. 갓사이 씨, 안도 씨, 난부 씨 등 다양한 세력이 다이코지를 지배했다. 덴쇼 3년-4년(1575년-1576년)에 오우라 타메노부(쓰가루 타메노부)가 다이코지 성을 함락시키고 쓰가루 씨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다이코지 갓사이(葛西) 씨에 관한 여러 설
- 쇼헤이 4년 (1349년) - 갓사이 요리키요(葛西頼清)가 다이코지 신성(大光寺新城)을 축성했다는 설.
- 오에이 연간 (1394년 - 1427년) - 안도 씨에 신종하는 갓사이 요리키요(葛西頼清)가 다이코지에 들어가, 난부 씨와 다투게 되었다는 설.
; 다이코지 갓사이 씨의 멸망에 관한 여러 설
- 에이쿄 연간 (1429년 - 1441년) - 난부 모리유키 (13대 난부 씨 당주)가 다이코지를 공격하여, 갓사이 요리키요(葛西頼清)는 패사.
- 분메이 15년 (1483년) - 난부 씨가 다이코지를 점령.
- 분키 2년 (1502년) - 난부 씨가 안도 노리모토(안도 유키)와 갓사이 씨를 공격하여 멸망.
- 덴분 2년 (1533년) - 난부 다카노부가 갓사이 씨를 공격하여 멸망.
- 갓사이 씨가 멸망한 후, 안도 시키가 다이코지에 들어감.
- 분키 2년 (1502년) - 안도 시키의 후예, 안도 노리모토가 난부 씨에 의해 추방됨.
; 난부 씨 지배 하의 다이코지 성에 관한 여러 설
- 난부 쓰네유키가 쓰가루 군대(津軽郡代)가 되어 다이코지에 들어가, 이후 다이코지 씨를 칭함. 이후, 그 아들, 마사유키, 더 나아가 그 아들, 노부치카 (?-1570)가 성대(城代)가 됨.
- 갓사이 씨가 멸망한 후, 난부 마사유키가 다이코지의 성대가 됨.
- 마사유키의 아들, 노부치카가 다이코지 성의 성주가 됨.
- 노부치카가 1570년에 병사하여, 난부 씨 가신 다키모토 시게유키 (?-?)가 다이코지 성의 성대가 됨.
- 겐키 연간 (1570년 - 1573년) - 다키모토 시게유키가 히로사키(弘前)의 치치이 씨(乳井氏)를 공격하여, 영지를 빼앗음.
; 쓰가루 씨에 의한 지배
- 덴쇼 3년 - 4년 (1575년 - 1576년) - 오우라 타메노부(쓰가루 타메노부)가 다이코지 성의 다키모토 시게유키를 공격, 다음 해에 함락. 오우라 가신인 치치이 겐세이가 다이코지 성의 성대가 됨.
- 게이초 4년 (1599년) - 쓰가루 타케히로가 다이코지 성주가 됨.
- 게이초 13년 - 14년 (1609년) - 쓰가루 씨의 가독 상속 문제 (쓰가루 오구마 사건)를 둘러싸고, 쓰가루 타케히로가 추방됨.
- 게이초 15년 (1610년) - 쓰가루 씨가 히로사키 성의 건설을 시작. 다이코지 성은 해체되어, 히로사키 성으로 이축됨.
2. 5. 에도 시대
쓰가루 씨는 히로사키성을 축성하여 본거지로 삼고, 다이코지 성을 파각했다. 그 결과 다이코지는 농촌이 되었다. 히로사키 번에서는 영내를 '견(遣)'이라는 행정 구역으로 나누어 통치했으며, 이 일대는 다이코지 견이 되었다. 히로사키 번은 1687년(조쿄 4년)에 영내를 25개의 '조(組)'로 재편성했고, 이전의 다이코지 견은 다이코지 조와 오자키 조로 분할되었다. 시대에 따라 변동은 있었지만, 에도 시대의 다이코지 조는 대략 17개 전후의 촌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1899년(메이지 22년)에 편성된 다이코지 촌은 그중 10개 촌을 모체로 하고 있다.쓰가루 씨가 새로운 본거지로서 히로사키 성을 건축함에 따라, 다이코지 성을 해체하고 그 일부는 히로사키 성에 사용했다. 다이코지 성의 오테몬(大手門)이 히로사키 성의 깃코몬(亀甲門)이 되었고, 석축이 재이용되었다고 한다.
2. 6. 근대
1889년(메이지 22년) 정촌제 시행에 따라 미나미쓰가루군 다이코지 촌, 혼마치 촌, 고와모리 촌, 아라타 촌, 나에우마쓰 촌, 다테다 촌, 마쓰자키 촌, 다테야마 촌, 마쓰다테 촌, 스기타테 촌이 합병하여 '''다이코지 촌'''(다이코지무라)이 발족하였다. 각 구 촌은 그대로 대자(大字)가 되었다.1943년(쇼와 18년) 4월 1일 정제(町制) 시행으로 '''다이코지 정'''이 되었다.
1955년 (쇼와 30년) 3월 1일 미나미쓰가루 군 가시와기 정, 다케다테 촌, 마치이 촌, 오자키 촌과 합병하여 '''히라카 정'''이 되면서 소멸하였다. 이후 2006년 (헤이세이 18년) 히라카 정은 추가 합병을 통해 히라카와 시의 일부가 되었다.
근대 시기 다이코지 정의 변천 과정은 아래 표와 같다.
| 서기 | 1878-1899 | 1899-1943 | 1943-1955 | 1955-2006 | 2006- | ||||
|---|---|---|---|---|---|---|---|---|---|
| 일본 연호 | 메이지 11 | 메이지 22-쇼와 18 | 쇼와 18-쇼와 30 | 쇼와 30-헤이세이 18 | 헤이세이 18- | ||||
| 제도 | 군구정촌 편제법 | 정촌제 | 대자 | colspan=2 | | 쇼와의 대합병 | 헤이세이의 대합병 | |||
| 아오모리현 | 미나미쓰가루군 | 이카리가세키촌 | 히라카와시 | rowspan=2 | | |||||
| 오노에정 | |||||||||
| 다이코지 촌 | 다이코지 | 다이코지 정 | 다이코지 | 히라카정 | 다이코지 | 다이코지 | |||
| 모토마치 | 모토마치 | 모토마치 | 모토마치 | ||||||
| 고와모리 | 고와모리 | 고와모리 | 고와모리 | ||||||
| 아라타 | 아라타 | 아라타 | 아라타 | ||||||
| 난바이마츠 | 난바이마츠 | 난바이마츠 | 난바이마츠 | ||||||
| 타치타 | 타치타 | 타치타 | 타치타 | ||||||
| 마츠자키 | 마츠자키 | 마츠자키 | 마츠자키 | ||||||
| 타테야마 | 타테야마 | 타테야마 | 타테야마 | ||||||
고난 철도 고난선이 이 지역을 지나간다. 중심역은 히라카역이며, 가시와노 고교 앞역은 구 정역에 있다.
3. 지리
쓰가루 평야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었다。 평야를 흐르는 이와키강의 지류 중 남쪽에서 흘러오는 히라카와, 동쪽에서 흘러오는 히키자강 등이 선상지를 형성하고 있다. 정역은 이 두 강 사이에 해당하며, 점재하는 해발 35m 정도의 소규모 대지 위에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그 주변의 저지는 벼농사나 사과 재배에 이용되고 있다。
중앙부를 로쿠하강과 고고강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 히키자강으로 흘러들어가며, 이들 지천의 양쪽 기슭에도 취락이 이어져 있다。 택지화로 인해 옛 모습을 엿보기는 어렵지만, 로쿠하강과 고고강 사이에 위치한 지역에는 과거 다이코지성 (다이코지 타테)이 있었다. 그 성내가 현재의 다이코지 지구에 해당한다。
동부에는 히로후네강이 흘러 히키자강과 합류한다。
4. 교통
4. 1. 철도
고난 철도 고난선이 이 지역을 지나간다. 히라카역이 중심역 역할을 했으며, 현재는 구 정역에 가시와노 고교 앞역이 있다.
5. 행정 구역 변천
1687년(조쿄 4년) 히로사키 번은 영내를 25개의 '조(組)'로 재편성하면서, 이전의 다이코지 견은 다이코지 조와 오자키 조로 분할되었다. 에도 시대 다이코지 조는 대략 17개 전후의 촌으로 구성되었으며, 1899년 편성된 다이코지 촌은 그 중 10개 촌을 모체로 한다.
| 서기 | 1687 | 1871 | 1871-1873 | 1873-1878 | 1878-1899 | 1899-1943 | 1943-1955 | 1955-2006 | 2006- |
|---|---|---|---|---|---|---|---|---|---|
| 일본 연호 | 조쿄 4 | 메이지 4 7월 | 메이지 4 9월 | 메이지 6 | 메이지 11 | 메이지 22-쇼와 18 | 쇼와 18-쇼와 30 | 쇼와 30-헤이세이 18 | 헤이세이 18- |
| 제도 | 막번 체제 | 폐번치현 | 대구 소구 제도 | 군구정촌 편제법 | 정촌제 | 쇼와의 대합병 | 헤이세이의 대합병 | ||
| 히로사키 번 | 히로사키 현 | 아오모리 현 | |||||||
| 미나미쓰가루 군 | |||||||||
| 다이코지 촌 | 다이코지 조 | 제2대구 8소구 | 다이코지 촌 | 다이코지 촌 | 다이코지 정 | 히라카 정 | 히라카와 시 | ||
1889년 정촌제 시행에 따라 미나미쓰가루군 다이코지촌, 혼정촌, 고와모리촌, 아라타촌, 묘쇼마쓰촌, 다테다촌, 마쓰자키촌, 다테야마촌, 마쓰다테촌, 스기다테촌이 합병하여 '''다이코지촌'''이 발족했다. 1943년 정제 시행으로 '''다이코지정'''이 되었다. 1955년 미나미쓰가루군 가시와기정, 다케다테촌, 마치이촌, 오자키촌과 합병하여 히라카 정이 되면서 소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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