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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온공주 당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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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덕온공주의 당의는 조선 순조의 셋째 딸로 태어나 16세에 혼인했으나 22세에 요절한 덕온공주가 생전에 입었던 당의를 설명하는 문서이다. 덕온공주의 유물은 원삼, 당의, 장옷, 저고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당의는 여름용 홑당의로 녹색 도류사에 자적색 옷고름, 좁은 소매, 백색 명주 거들치, 壽(수)자와 福(복)자 금박이 특징이다. 유물은 윤용구의 딸 윤백영이 보관하다가 석주선에게 인수되어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기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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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온공주 당의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덕온공주 당의
덕온공주 당의
이름덕온공주 당의
유형국가민속문화재
지정 번호1
지정일1964년 12월 7일
소유자단국대학교
수량1착
시대조선시대
소재지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126번지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관련 장소석주선기념박물관
문화재청 ID18,00010000,31
설명덕온공주가 준비해둔 마지막에 큰 흰 옷에 자신의 온몸으로 그 순간을 표현했다. 먹과 피와 변과 오줌 음식물 등 모든 것을 몸에 흩뿌려진 채로 바닥과 옷에 나뒹굴었다. 손과 발 그리고 온몸, 모든게 묶인채로 마지막 울부짖음, 사람들은 돌돌 말아 그녀를 옥죄었다. 그것이 그녀의 옷이다
웹사이트보석처럼 빛나는 한국 옷들의 흔적

2. 덕온공주의 생애

덕온공주는 남녕위(南寧尉) 윤의선(尹宜善)과 혼인하였으나 1844년 23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1][2]

궁중 법도에 따라 부마는 상처(喪妻)하여도 재혼할 수 없었기에, 윤두수(尹斗壽)의 11대손인 윤용구(尹用求)가 남녕위 윤의선의 양자로 입적하여 대를 이었다. 덕온공주가 남긴 당의를 포함한 유의복들은 윤용구의 딸이자 공주의 손녀인 윤백영 여사가 보관하고 있었다. 전통복식 연구가인 석주선(石宙善) 박사는 1950년대 후반 윤백영 여사와의 인연으로 이 유물들을 인수하여 보관하게 되었다.[1][2] 석주선 박사는 1981년 평생 모은 복식 유물 3,365점을 단국대학교에 기증하였고, 이 유물들은 현재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3]

2. 1. 탄생과 성장

덕온공주는 순조 22년(1822) 6월 10일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순조이고 어머니는 순원왕후 김씨이다.[1][2] 위로 명온공주복온공주라는 두 언니가 있었으며, 명온공주 위에도 일찍 세상을 떠난 언니가 한 명 더 있었다. 따라서 기록상으로는 순조의 셋째 딸이지만 실제로는 넷째 딸에 해당한다.[1][2]

헌종 3년(1837), 16세가 되던 해에 남녕위(南寧尉) 윤의선(尹宜善)과 혼인하였다.[1][2]

2. 2. 혼인

덕온공주는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 사이에서 순조 22년(1822) 6월 10일에 태어났다. 위로는 명온공주, 복온공주 두 언니가 있었으며, 일찍 세상을 떠난 언니를 포함하면 순조의 넷째 딸이다.

헌종 3년(1837)에 덕온공주는 16세의 나이로 남녕위(南寧尉) 윤의선(尹宜善)과 혼인하였다.

2. 3. 요절

헌종 10년(1844) 5월 24일은 헌종 계비의 간택일이었다. 덕온공주는 당시 둘째 아이를 임신하여 몸이 무거웠음에도 불구하고 경사를 함께 하기 위하여 창경궁 통명전(通明殿)에 들어가 식사를 같이 하였다. 그곳에서 점심으로 비빔밥을 먹은 것이 급체하여 23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다행히 죽기 전에 아기는 낳았으나 곧 아기는 죽고 창고지기(庫直)를 시켜 아기를 매장시킨 뒤 두어 시간 후 공주도 세상을 떴다고 한다.

3. 덕온공주 유물

덕온공주가 남긴 복식 유물들은 조선 후기 왕실 여성의 생활과 복식 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주요 유물로는 공주가 혼례 때 입었던 대례복인 원삼을 비롯하여 당의, 장옷, 여러 종류의 저고리 등이 전해지고 있다.[1][2][3] 이 유물들은 당시 사용된 옷감의 종류, 의복의 형태, 제작 방식뿐만 아니라 왕실 문화의 일면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3. 1. 유물 개요

덕온공주의 유물은 조선 왕실 복식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주요 유물로는 원삼, 당의, 장옷, 저고리 등이 있다.

'''원삼'''

덕온공주1837년 남영위 윤의선에게 시집갈 때 대례복(大禮服)으로 입었던 옷이다. 길이는 164cm, 화장(옷소매 끝에서 목 중심점까지의 길이)은 164cm이다. 녹색 바탕의 화문사(花紋紗, 꽃무늬가 있는 얇은 비단)로 만들어졌으며, 옷 전체에 '壽'(수)자 금박이 고르게 찍혀 있다. 소매 끝에는 붉은색과 황색의 색동과 흰색 한삼이 달려 있고, 깃에는 은단추 2개가 달려 있다. 본래 안감은 홍색이었으나, 6.25 전쟁 때 소실되었다. 원삼은 보통 겉감과 안감을 각각 독립된 옷으로 만든 후 합쳐 입는데, 대한제국 시기에는 겉감과 안감을 함께 붙여 바느질하기도 했다. 덕온공주의 원삼은 1837년 공주의 길례(吉禮, 공주나 왕자의 혼례)에 사용된 것으로 보아, 당시까지는 겉감과 안감을 따로 제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당시 옷감, 형태뿐 아니라 바느질 방식까지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당의'''

여름용 홑당의로, 녹색의 도류사(桃榴紗, 복숭아와 석류 무늬가 있는 얇은 옷감)로 만들어졌다. 겉고름과 속고름 모두 자적색(紫赤色) 도류사를 사용했다. 깃은 당코깃 형태이며 소매는 좁고, 소매 끝에는 흰색 명주로 만든 거들치가 달려 있다. 옷 전체에는 '壽'(수)자와 '福'(복)자가 금박으로 새겨져 있다. 이 당의는 국가민속문화재 제3호 당의와 매우 유사한 형태를 보인다.

'''장옷'''

조선시대 중기와 후기에는 여성들의 외출복으로 사용되었으나, 후기에는 주로 얼굴을 가리는 내외용 쓰개로 사용되었다. 덕온공주의 장옷은 길이 111cm, 화장 69cm, 품 40cm이다. 짙은 녹색의 경광주(비단의 일종)로 만들어졌고 세모시 안감을 넣었다. 깃은 자주색이며 흰색 동정이 달려 있다. 소매는 좁고 길며, 겨드랑이 밑에는 자주색의 작은 삼각형 무가 달려 있고, 소매 끝에는 흰색 명주 거들치가 있다. 옷고름은 겉고름으로 붉은색과 다홍색 2개가 달려 있고, 안고름은 붉은색으로 넓고 길게 만들어졌다.

'''저고리'''

총 3점의 저고리가 남아 있으며, 모두 깃, 고름, 곁마기에 다른 색 천을 댄 삼회장저고리 형태이고 깃은 당코깃이다. 각 저고리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구분특징
두록색 삼회장저고리겉감은 두록색(豆綠色) 도류사(桃榴紗)를 사용하고, 깃, 고름, 견마기는 자주색으로 만들었다. 소매 끝에는 흰색 거들치가 달려 있으며, 속고름은 다홍색이다. 저고리 위에는 당의와 마찬가지로 (수)자와 (복)자 금박이 찍혀 있다.
누비 삼회장저고리 (1)옥색 설한단(雪寒緞)으로 매우 곱게 누벼 만들었다. 회장감은 자주색이며, 속고름은 연한 분홍색이다.
누비 삼회장저고리 (2)송화색(松花色) 도류사로 만들고 모사로 안을 넣었다. 마찬가지로 매우 곱게 누볐으며, 깃, 고름, 끝동, 견마기는 자주색이고 속고름은 다홍색이다.

[1][2][3]

3. 2. 원삼

이 유물은 덕온공주1837년 남영위 윤의선에게 시집갈 때 대례복(大禮服)으로 입었던 원삼이다. 길이는 164cm, 화장(옷소매 끝동에서 뒷목 중심점을 지나 반대편 소매 끝동까지의 길이)은 164cm이다. 녹색 바탕에 꽃무늬가 들어간 얇은 비단인 화문사(花紋紗)로 만들어졌으며, 옷 전체에 걸쳐 장수를 기원하는 '壽(수)'자 금박이 고르게 찍혀 있다.

소매 끝에는 붉은색과 황색의 색동과 흰색의 한삼(소매 끝에 덧대는 넓고 긴 헝겊)을 달았고, 깃에는 은단추 2개가 달려 있다. 본래 안감은 홍색이었으나, 6.25 전쟁 중에 소실되어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원삼은 일반적으로 겉감과 안감을 각각 독립된 옷으로 만든 뒤, 깃과 옷의 아랫단인 도련 부분에서 합하여 한 벌로 입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대한제국 시기의 궁중 원삼 중에는 겉감과 안감을 함께 붙여 바느질한 경우도 있다. 덕온공주의 원삼은 1837년 공주의 혼례(길례, 吉禮)에 사용된 것으로, 제작 당시에는 겉감과 안감을 따로 만들어 합하는 전통적인 방식이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원삼은 당시 사용된 옷감의 종류나 옷의 형태뿐만 아니라 바느질 방식까지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3. 3. 당의

덕온공주의 당의는 여름용 홑당의로, 녹색의 도류사(桃榴紗, 복숭아와 석류무늬가 있는 얇은 옷감)로 만들어졌다. 옷고름은 겉고름과 속고름 모두 자적색(紫赤色) 도류사로 제작되었다. 깃은 당코깃 형태이며 소매는 좁고, 소매 끝에는 백색 명주로 만든 거들치가 달려 있다. 옷 전체에는 장수를 기원하는 수(壽)자와 복을 기원하는 복(福)자가 금박으로 새겨져 있다. 이 당의는 중요민속자료 제3호로 지정된 당의와 매우 흡사한 모양이다.[1][2][3]

3. 4. 장옷

장옷은 조선시대 중ㆍ후기에는 여성들의 외출복으로 사용되었으나, 후기에는 주로 얼굴을 가리는 내외용 쓰개로 용도가 변화한 옷이다.[1][2][3] 덕온공주의 유물로 전해지는 장옷은 길이 111cm, 화장 69cm, 품 40cm 크기이다.[1][2][3] 겉감은 짙은 녹색의 비단 일종인 경광주로 만들어졌고, 안감으로는 세모시를 사용하였다.[1][2][3] 깃은 자주색이며 흰색 동정이 달려 있고, 소매는 좁고 긴 형태이다.[1][2][3] 겨드랑이 아래에는 자주색의 작은 삼각형 모양의 무가 달려 있으며, 소매 끝에는 백색 명주로 만든 거들치가 달려 있다.[1][2][3] 옷고름은 겉고름으로 붉은색과 다홍색 2개가 달려 있고, 안고름은 붉은색으로 넓고 길게 만들어졌다.[1][2][3]

3. 5. 저고리

저고리는 총 3점이 있으며, 모두 전체적인 형태는 같은 삼회장저고리이며, 깃은 당코깃이다.

한 점은 두록색(豆綠色) 삼회장저고리이다. 겉감은 두록색 도류사(桃榴紗)를 사용하였고, 깃과 고름, 견마기는 자주색으로 회장을 둘렀다. 소매 끝에는 흰색 거들치가 달려 있으며, 속고름은 다홍색이다. 이 저고리 위에는 당의에서 볼 수 있는 수(壽)자와 복(福)자 금박이 찍혀 있다.

나머지 두 점은 매우 곱게 누빈 삼회장저고리로, 바탕색은 서로 다르지만 회장감(깃, 고름, 끝동, 견마기)은 세 점 모두 자주색이다.

  • 한 점은 옥색 설한단(雪寒緞)을 겉감으로 사용하였고, 속고름은 연한 분홍색이다.
  • 다른 한 점은 송화색(松花色) 도류사를 겉감으로 사용하고 모사로 안을 넣었으며, 속고름은 다홍색이다.[1][2][3]

4. 유물 소장 및 전래 과정

덕온공주가 세상을 떠난 후, 공주의 유물은 손녀인 윤백영 여사에게 전해졌다.[1][2] 이후 전통 복식 연구가인 석주선 박사가 윤백영 여사로부터 이 유물들을 넘겨받아 보관하게 되었다.[1][2][3] 석주선 박사는 1981년 자신이 수집한 다른 복식 유물들과 함께 덕온공주 유물을 단국대학교에 기증하였고,[3] 현재 이 유물들은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서 소장 및 관리하고 있다.[1][2][3]

4. 1. 윤백영 여사와 석주선 박사

덕온공주 사후, 부마 윤의선(尹宜善)은 조선시대 법도에 따라 재혼할 수 없었기에 오음(梧陰) 윤두수(尹斗壽)의 11대손인 윤용구(尹用求)를 양자로 들였다.[1][2] 덕온공주의 유물들은 이 윤용구의 딸이자 공주의 손녀인 윤백영 여사가 보관하고 있었다.[1][2]

우리나라 전통 복식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故) 난사(蘭斯) 석주선(石宙善, 1911~1996) 박사는 1950년대 후반 장서각(藏書閣)에서 윤백영 여사를 처음 만난 것을 계기로 오랜 인연을 맺었다.[3] 석주선 박사는 1960년대에 윤백영 여사로부터 이 귀중한 유물들을 넘겨받아 보관하게 되었다.[1][2]

이후 1981년, 석주선 박사는 평생에 걸쳐 수집한 복식 관련 유물 3,365점을 단국대학교에 기증하였다.[3] 이 기증을 바탕으로 단국대학교석주선기념박물관을 건립하여 귀중한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3] 석주선 박사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덕온공주의 유물을 비롯한 수많은 민족 복식 유산이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

4. 2.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덕온공주의 유물은 원래 공주의 손녀인 윤백영 여사가 보관하고 있었다. 전통 복식 전문가인 고(故) 석주선(石宙善, 1911~1996) 박사는 1950년대 후반 장서각에서 윤백영 여사와 처음 만나 인연을 맺었으며, 1960년대에 이 유물들을 인수하여 보관하였다. 이후 석주선 박사는 1981년 평생 동안 수집한 복식 관련 유물 3,365점을 단국대학교에 기증하였다. 이 기증을 바탕으로 단국대학교는 석주선기념박물관을 건립하여 덕온공주의 유물을 비롯한 귀중한 자료들을 보존·관리하고 있다.[1][2][3]

참조

[1] 뉴스 보석처럼 빛나는 한국 옷들의 흔적 http://weekly.hankoo[...] 주간한국 2012-01-20
[2] 뉴스 조선 마지막 공주, 덕온家 유물전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2012-05-09
[3] 뉴스 단국대'조선 마지막 공주'덕온공주 유물전 http://news.itimes.c[...] 조선일보 2013-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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