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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그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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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랑그도크는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역사적 지역으로, 로마 시대부터 프랑스 혁명까지 다양한 시기를 거치며 변화를 겪었다. 서고트 왕국, 코르도바 에미르국 등의 지배를 받았으며, 알비 십자군 이후 프랑스 왕국에 귀속되었다. 1542년에는 툴루즈를 중심으로 한 오트-랑그도크와 몽펠리에를 중심으로 한 바-랑그도크로 나뉘었고, 1789년 프랑스 혁명까지 지속되었다. 랑그도크는 현재 프랑스 내 여러 지역으로 분할되어 있으며, 와인 생산, 항공우주 산업, 관광 등 다양한 경제 활동이 이루어진다. 이 지역은 라그비 유니온과 같은 독특한 문화적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1999년 기준 약 365만 명이 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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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그도크
지도 정보
기본 정보
공식 명칭랑그도크 정부 (Gouvernment de Languedoc)
현지 명칭랑가도크 (Lengadòc)
위치프랑스
수도툴루즈
면적42,700 km²
역사
형성1229년, 정부 형성
소멸1791년, 주 폐지
이전 국가툴루즈 백국
이후 국가로트주
타른에가론주
아베롱주
로트에가론주
로제르주
오트루아르주
아르데슈주
정치
정치 체제
국왕루이 14세 (1682–1715 재임)
루이 16세 (1774–1791 재임)
랑그도크 주지사루이 오귀스트 드 부르봉 (1682–1736 재임)
루이 앙투안 드 공토-비롱 (1775–1788 재임)
기타
랑그도크 문장
랑그도크 문장
미디피레네 깃발
깃발
프랑스 내 랑그도크 위치 (1789년 경계)
프랑스 내 랑그도크 위치 (1789년 경계)

2. 역사

갈리아 나르보넨시스 로마 속주는 5세기부터 8세기까지 서고트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719년부터 759년까지 짧은 기간 동안 코르도바 에미르국에 점령되었으나, 759년 푸앵의 핍팽에 의해 나르본 공성전 이후 프랑크 왕국에 정복되어 편입되었다.

카롤링거 제국의 쇠퇴 이후 정치적 지배는 작은 영토 단위로 분열되었다.[1] 잉글랜드의 존 왕은 랑그도크 북부의 영지를 프랑스필리프 2세에게 잃었다. 그는 1214년에 그 땅의 회복을 요청하기 위해 이 지역을 방문했다.[2]

13세기에는 로마 교황청이 이 지역의 종교적 신념에 도전했고, 알비 십자군 (1208–1229) 이후 이 지역은 프랑스 왕국에 귀속되었다. 이 십자군은 가톨릭 교회가 카타르파 이단으로 간주한 것을 종식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로써 카페 왕조는 루아르 강 남쪽으로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이 과정의 일환으로 트랑카벨의 이전 공국들 (알비/Albi프랑스어 백작령, 카르카손/Carcassonne프랑스어 백작령, 베지에/Béziers프랑스어 백작령, 아그드/Agde프랑스어 백작령, 님/Nîmes프랑스어 백작령)이 1224년 프랑스 왕령에 통합되었다. 툴루즈 백작령은 1271년에 이어졌다. 남아 있는 봉건 영지는 16세기 초까지 점진적으로 흡수되었는데, 1258년에는 제보당 백작령, 1293년에는 멜괴이/Melgueil프랑스어 백작령 (모기오/Mauguio프랑스어), 1349년에는 몽펠리에 영지, 1507년에는 나르본 백작령이 통합되었다.

1346년에 처음 소집된 랑그도크 삼부회의 관할권에 속하는 영토는 점차 축소되어, 고대 제도 시대에는 랑그도크 지방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359년은 이 지방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다.[3] 보케르, 카르카손, 툴루즈의 세 개의 베일리윅/bailiwick프랑스어 (세네쇼세/sénéchaussées프랑스어)은 "봉 빌" (프랑스 국왕에게 무장 병력을 제공하는 대가로 특권과 보호를 받은 도시)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 해에 이 세 곳은 영구적 연합을 맺었고, 그 이후로는 세 개의 세네쇼세 각각에 대해 따로 소집되었던 왕실 관리들의 기여가 공동으로 소집되었다.[4][5][6][7]

14세기 말 무렵, 나중에 랑그도크로 알려지게 될 "세 세네샬리의 영토"라는 용어는 보케르-의 두 개의 베일리윅과 카르카손, 그리고 브레티뉴 조약에 따라 유지된 툴루즈의 동부 지역을 가리켰다. 그 당시, 1333년까지 카르카손의 세네샬에 속했던 후 툴루즈로 넘어간 푸아 백작령은 랑그도크에 더 이상 속하지 않게 되었다. 이때 랑그도크 공국과 스페인의 간디아 공국 (오수나/Osunaes)은 두 상속인의 결혼으로 하나가 되었다. 후에 랑그도크 공작은 랑그도크와 프로방스의 총독이 되었는데, 비록 총독 직책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랑그도크와 라방두/Lavandou프랑스어 공작의 칭호는 여전히 남아있다.

1542년, 이 지방은 툴루즈를 중심으로 하는 오트-랑그도크/Haut-Languedoc프랑스어몽펠리에를 중심으로 하는 바-랑그도크/Bas-Languedoc프랑스어의 두 개의 제네랄리테/généralité프랑스어로 나뉘었다. 이는 1789년 프랑스 혁명까지 지속되었다. 17세기부터는 몽펠리에에 본부를 둔 랑그도크 전체에 대한 단 하나의 인텐단시/intendance프랑스어만 존재했다.

오크어가 사용되었던 지역의 일부는 langue d'oc, Lengadòc 또는 랑그도크로 불리게 되었다.

2. 1. 고대 로마 시대

갈리아 나르보넨시스 로마 속주는 5세기부터 8세기까지 서고트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719년부터 759년까지 짧은 기간 동안 코르도바 에미르국에 점령되었으나, 759년 푸앵의 핍팽에 의해 나르본 공성전 이후 프랑크 왕국에 정복되어 편입되었다.

카롤링거 제국의 쇠퇴 이후 정치적 지배는 작은 영토 단위로 분열되었다.[1] 잉글랜드의 존 왕은 랑그도크 북부의 영지를 프랑스필리프 2세에게 잃었다. 그는 1214년에 그 땅의 회복을 요청하기 위해 이 지역을 방문했다.[2]

13세기에는 로마 교황청이 이 지역의 종교적 신념에 도전했고, 알비 십자군 (1208–1229) 이후 이 지역은 프랑스 왕국에 귀속되었다. 이 십자군은 가톨릭 교회가 카타르파 이단으로 간주한 것을 종식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로써 카페 왕조는 루아르 강 남쪽으로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이 과정의 일환으로 트랑카벨의 이전 공국들 (알비/Albi프랑스어 백작령, 카르카손/Carcassonne프랑스어 백작령, 베지에/Béziers프랑스어 백작령, 아그드/Agde프랑스어 백작령, 님/Nîmes프랑스어 백작령)이 1224년 프랑스 왕령에 통합되었다. 툴루즈 백작령은 1271년에 이어졌다. 남아 있는 봉건 영지는 16세기 초까지 점진적으로 흡수되었는데, 1258년에는 제보당 백작령, 1293년에는 멜괴이/Melgueil프랑스어 백작령 (모기오/Mauguio프랑스어), 1349년에는 몽펠리에 영지, 1507년에는 나르본 백작령이 통합되었다.

1346년에 처음 소집된 랑그도크 삼부회의 관할권에 속하는 영토는 점차 축소되어, 고대 제도 시대에는 랑그도크 지방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359년은 이 지방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다.[3] 보케르, 카르카손, 툴루즈의 세 개의 베일리윅/bailiwick프랑스어 (세네쇼세/sénéchaussées프랑스어)은 "봉 빌" (프랑스 국왕에게 무장 병력을 제공하는 대가로 특권과 보호를 받은 도시)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 해에 이 세 곳은 영구적 연합을 맺었고, 그 이후로는 세 개의 세네쇼세 각각에 대해 따로 소집되었던 왕실 관리들의 기여가 공동으로 소집되었다.[4][5][6][7]

14세기 말 무렵, 나중에 랑그도크로 알려지게 될 "세 세네샬리의 영토"라는 용어는 보케르-의 두 개의 베일리윅과 카르카손, 그리고 브레티뉴 조약에 따라 유지된 툴루즈의 동부 지역을 가리켰다. 그 당시, 1333년까지 카르카손의 세네샬에 속했던 후 툴루즈로 넘어간 푸아 백작령은 랑그도크에 더 이상 속하지 않게 되었다. 이때 랑그도크 공국과 스페인의 간디아 공국 (오수나/Osunaes)은 두 상속인의 결혼으로 하나가 되었다. 후에 랑그도크 공작은 랑그도크와 프로방스의 총독이 되었는데, 비록 총독 직책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랑그도크와 라방두/Lavandou프랑스어 공작의 칭호는 여전히 남아있다.

1542년, 이 지방은 툴루즈를 중심으로 하는 오트-랑그도크/Haut-Languedoc프랑스어몽펠리에를 중심으로 하는 바-랑그도크/Bas-Languedoc프랑스어의 두 개의 제네랄리테/généralité프랑스어로 나뉘었다. 이는 1789년 프랑스 혁명까지 지속되었다. 17세기부터는 몽펠리에에 본부를 둔 랑그도크 전체에 대한 단 하나의 인텐단시/intendance프랑스어만 존재했다.

오크어가 사용되었던 지역의 일부는 langue d'oc, Lengadòc 또는 랑그도크로 불리게 되었다.

2. 2. 중세 시대

랑그도크는 5세기부터 8세기까지 서고트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719년부터 759년까지는 코르도바 에미르국의 지배를 받았으나, 759년 푸앵의 핍팽이 나르본 공성전에서 승리한 후 프랑크 왕국에 편입되었다.[1] 카롤링거 제국 쇠퇴 이후 랑그도크 지역의 정치적 지배는 분열되었다.[1]

13세기에는 교황청이 이 지역의 종교적 신념에 도전하여 알비 십자군(1208–1229)이 일어났고, 그 결과 프랑스 왕국에 귀속되었다. 이 십자군은 카타르파 이단을 종식시키고 카페 왕조의 영향력을 루아르 강 남쪽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트랑카벨 가문의 영지(알비, 카르카손, 베지에, 아그드, 님 백작령)는 1224년, 툴루즈 백작령은 1271년에 프랑스 왕령에 통합되었다. 이후 제보당 백작령(1258년), 멜괴이 백작령(1293년), 몽펠리에 영지(1349년), 나르본 백작령(1507년) 등이 점진적으로 프랑스에 흡수되었다.[1]

1346년 처음 소집된 랑그도크 삼부회의 관할권은 점차 축소되어, 앙시앵 레짐 시대에는 랑그도크 지방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359년은 랑그도크 지방 역사의 전환점으로, 보케르, 카르카손, 툴루즈의 세 베일리윅이 "봉 빌"의 지위를 얻어 영구적 연합을 맺었다.[3][4][5][6][7] 14세기 말에는 "세 세네샬리의 영토"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으며, 브레티뉴 조약에 따라 툴루즈의 동부 지역이 유지되었다.

1542년, 랑그도크 지방은 오트-랑그도크와 바-랑그도크의 두 개의 제네랄리테로 나뉘었고, 이는 1789년 프랑스 혁명까지 지속되었다. 17세기부터는 몽펠리에에 랑그도크 전체를 관할하는 인텐단시가 설치되었다. 오크어가 사용된 지역은 랑그도크(Languedoc)로 불리게 되었다.

2. 3. 근세 시대

5세기부터 8세기까지 랑그도크는 서고트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719년부터 759년까지는 코르도바 에미르국에 점령되기도 하였으나, 푸앵의 핍팽이 나르본 공성전에서 승리한 후 프랑크 왕국에 편입되었다.[1] 카롤링거 제국 쇠퇴 이후 랑그도크의 정치적 지배는 분열되었다.[1]

13세기에는 로마 교황청이 알비 십자군(1208–1229)을 일으켜 이 지역의 카타르파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진압하였다. 그 결과 카페 왕조는 루아르 강 남쪽으로 영향력을 확장하였고, 트랑카벨 가문의 영지( 알비 백작령, 카르카손 백작령, 베지에 백작령, 아그드 백작령, 백작령)는 1224년, 툴루즈 백작령은 1271년에 프랑스 왕령에 통합되었다. 이후 16세기 초까지 제보당 백작령(1258년), 멜괴이 백작령(1293년), 몽펠리에 영지(1349년), 나르본 백작령(1507년) 등이 점진적으로 프랑스에 흡수되었다.[1]

1346년 처음 소집된 랑그도크 삼부회의 관할 영토는 점차 축소되어, 앙시앵 레짐 시대에는 랑그도크 지방으로 불리게 되었다.[1] 1359년, 보케르, 카르카손, 툴루즈는 "봉 빌"의 지위를 얻어 영구적 연합을 맺었다.[3][4][5][6][7]

1542년, 랑그도크 지방은 툴루즈 중심의 오트-랑그도크와 몽펠리에 중심의 바-랑그도크로 나뉘었다. 이러한 구분은 1789년 프랑스 혁명까지 지속되었으며, 17세기부터는 몽펠리에에 랑그도크 전체를 관할하는 인텐단시가 설치되었다.[1]

2. 4. 프랑스 혁명 이후

랑그도크는 5세기부터 8세기까지 서고트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719년부터 759년까지는 코르도바 에미르국의 지배하에 있었으나, 푸앵의 핍팽이 나르본 공성전에서 승리한 후 프랑크 왕국에 정복되어 편입되었다.[1]

카롤링거 제국이 쇠퇴하면서 랑그도크 지역의 정치적 지배는 여러 작은 영토로 분열되었다.[1] 13세기에는 교황청이 이 지역의 종교적 신념에 도전하여 알비 십자군(1208–1229)을 일으켰고, 그 결과 랑그도크는 프랑스 왕국에 귀속되었다.[1] 이 십자군은 카타르파 이단을 종식시키기 위한 것이었으며, 카페 왕조가 루아르 강 남쪽으로 영향력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트랑카벨 가문의 영지 (알비, 카르카손, 베지에, 아그드, 님 백작령)는 1224년 프랑스 왕령에 통합되었고, 툴루즈 백작령은 1271년에 통합되었다. 나머지 봉건 영지들은 16세기 초까지 점진적으로 흡수되었다.[1]

1346년 처음 소집된 랑그도크 삼부회의 관할권은 점차 축소되어, 앙시앵 레짐 시대에는 랑그도크 지방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359년은 랑그도크 지방 역사의 전환점으로, 보케르, 카르카손, 툴루즈의 세 베일리윅이 "봉 빌"의 지위를 얻어 영구적 연합을 맺었다.[3][4][5][6][7]

1542년, 랑그도크 지방은 오트-랑그도크와 바-랑그도크의 두 개의 제네랄리테로 나뉘었고, 이는 1789년 프랑스 혁명까지 지속되었다. 17세기부터는 몽펠리에에 본부를 둔 랑그도크 전체에 대한 단 하나의 인텐단시가 존재했다.

오크어가 사용되었던 이 지역은 langue d'oc, Lengadòc 또는 랑그도크(Languedoc)로 불리게 되었다.

3. 지리



프랑스 왕국의 전통적인 주(province)는 공식적으로 정의되지 않았으며, 공통된 전통과 관습을 가진 영토였지만 정치적 조직은 없었다. 오늘날 프랑스의 옛 주를 언급할 때는 1789년 당시 존재했던 주(gouvernements)를 가리키며, 이는 16세기 중반 왕실에 의해 설립된 군사 지역으로 전통적인 주의 영토와 거의 일치했다. 그러나 작은 주들이 하나의 큰 주와 합쳐져 하나의 주(gouvernement)를 형성했으므로, 주(gouvernements)는 전통적인 주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이 지역은 툴루즈 백국(County of Toulouse)이라고 불렸으며, 랑그도크 외에도 퀘르시 주(로트 주와 타른에가론주의 북부 절반)와 루에르그 주(아베롱주)를 포함했다. 때로는 아제네 주(로트에가론주의 동부 절반), 제보당 주(로제르주), 벨레 주(오트루아르주의 중앙 및 동부), 비바레 주의 남부(아르데슈주의 남부) 및 프로방스의 북부 절반까지 포함하기도 했다. 프랑스 정복 후 백국은 해체되었고, 중심부가 현재 랑그도크라고 불린다.

16세기 중반에 설립된 랑그도크 주(gouvernement)는 랑그도크 자체 외에도 제보당, 벨레, 비바레의 세 개의 작은 주를 포함했다. 알비주아(타른 주)는 랑그도크의 일부로 간주되기도 한다. 퀘르시 주와 루에르그 주는 기옌 주(gouvernement)에 속했으며, 이는 툴루즈 백국의 부활을 막기 위한 의도적인 결정이었을 것이다.

랑그도크 지방은 프랑스 남부 중앙부에 위치하며, 면적은 약 42,700 km2였다. 론강과 가론강 사이에 위치하며, 북쪽으로는 세브르 산맥과 마시프 상트랄까지 뻗어 있다.

3. 1. 위치 및 범위

프랑스 왕국의 전통적인 주(province)는 공식적으로 정의되지 않았으며, 공통된 전통과 관습을 가진 영토였지만 정치적 조직은 없었다. 오늘날 프랑스의 옛 주를 언급할 때는 1789년 당시 존재했던 주(gouvernements)를 가리키며, 이는 16세기 중반 왕실에 의해 설립된 군사 지역으로 전통적인 주의 영토와 거의 일치했다. 그러나 작은 주들이 하나의 큰 주와 합쳐져 하나의 주(gouvernement)를 형성했으므로, 주(gouvernements)는 전통적인 주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이 지역은 툴루즈 백국(County of Toulouse)이라고 불렸으며, 랑그도크 외에도 퀘르시 주(로트 주와 타른에가론주의 북부 절반)와 루에르그 주(아베롱주)를 포함했다. 때로는 아제네 주(로트에가론주의 동부 절반), 제보당 주(로제르주), 벨레 주(오트루아르주의 중앙 및 동부), 비바레 주의 남부(아르데슈주의 남부) 및 프로방스의 북부 절반까지 포함하기도 했다. 프랑스 정복 후 백국은 해체되었고, 중심부가 현재 랑그도크라고 불린다.

16세기 중반에 설립된 랑그도크 주(gouvernement)는 랑그도크 자체 외에도 제보당, 벨레, 비바레의 세 개의 작은 주를 포함했다. 알비주아(타른 주)는 랑그도크의 일부로 간주되기도 한다. 퀘르시 주와 루에르그 주는 기옌 주(gouvernement)에 속했으며, 이는 툴루즈 백국의 부활을 막기 위한 의도적인 결정이었을 것이다.

랑그도크 지방은 프랑스 남부 중앙부에 위치하며, 면적은 약 42,700 km2였다. 론강과 가론강 사이에 위치하며, 북쪽으로는 세브르 산맥과 마시프 상트랄까지 뻗어 있다.

3. 2. 전통적 범위



프랑스 왕국의 전통적인 주(province)는 공식적으로 정의되지 않은, 공통된 전통과 관습을 가진 영토였다. 오늘날 프랑스의 옛 주를 언급할 때는 1789년 프랑스 혁명 이전의 주(gouvernements)를 가리키며, 이는 16세기 중반 왕실이 설립한 군사 지역으로, 전통적인 주의 영토와 거의 일치한다. 그러나 작은 주들이 합쳐져 하나의 주(gouvernement)를 형성하는 경우도 있어, 전통적인 주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역사적으로 이 지역은 툴루즈 백국(County of Toulouse)으로 불렸으며, 현재 랑그도크 외에도 퀘르시 주 (로트 주와 타른에가론주 북부), 루에르그 주 (아베롱주)를 포함했다. 때로는 아제네 주 (로트에가론주 동부), 제보당 주 (로제르주), 벨레 주 (오트루아르주 중동부), 비바레 주의 남부 (아르데슈주 남부), 심지어 프로방스 북부까지 포함하기도 했다. 프랑스 정복 후 백국은 해체되었고, 중심부가 현재 랑그도크로 불린다.

16세기 중반 설립된 랑그도크 주(gouvernement)는 랑그도크 자체 외에도 제보당, 벨레, 비바레를 포함했다. 알비 주변 지역(현재 타른주)은 알비주아(Albigeois)로 불리기도 하지만, 대부분 랑그도크의 일부로 간주된다. 툴루즈와 오래된 유대 관계에도 불구하고, 퀘르시 주와 루에르그 주는 기옌 주(gouvernement)에 속했으며, 이는 독립적인 툴루즈 백국의 부활을 막기 위한 의도였을 것이다.

3. 3. 현대 행정 구역

1956년부터 2016년까지 랑그도크 지방은 프랑스의 4개 지역으로 나뉘었다. 랑그도크의 옛 영토 55.5%는 몽펠리에를 중심 도시로 하는 랑그도크루시용 지역에 속했으며, 가르, 에로, 오드, 로제르 주와 피레네-오리엔탈 주의 북쪽 끝부분을 포함한다. 옛 영토의 24.8%는 툴루즈를 중심 도시로 하는 미디피레네 지역에 속했으며, 타른 주와 상가론 주의 동쪽 절반, 타른-에-가론 주의 남동쪽, 아리에주 주의 북서쪽과 북동쪽을 포함한다. 13%는 아르데슈 주를 포함하는 론알프 지역에, 6.7%는 오트-루아르 주의 중앙부와 동부를 포함하는 오베르뉴 지역에 속했다.

2016년 프랑스 지역 개편으로 랑그도크루시용과 미디피레네가 합쳐져 오크시타니가 되었고, 오베르뉴와 론알프가 합쳐져 오베르뉴론알프가 되었다.

4. 행정

랑그도크의 총독들은 지중해 연안 근처의 페제나스에 거주했는데, 툴루즈와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몽펠리에와는 가까웠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은 군사 문제를 훨씬 넘어 권력을 확장하여 지방의 실질적인 행정 및 집행 권력이 되었고, 이러한 경향은 프랑스의 다른 주(gouvernements)에서도 나타났지만 특히 랑그도크에서 두드러졌다. 랑그도크 총독인 몽모랑시 공작은 심지어 왕에게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고, 1632년 리슐리외의 명령에 따라 툴루즈에서 패배하고 참수당했다. 프랑스 국왕들은 총독들의 권력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루이 14세(태양왕) 이후로는 베르사유에 거주해야 했고 그들의 주(gouvernement) 영토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었다. 따라서 주(gouvernements)는 공허한 구조가 되었지만, 여전히 옛 지방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고, 그 이름과 경계는 오늘날까지도 인기가 있다.

thumb (Saint-Sernin Basilica)은 툴루즈에 있으며, 상 랑그도크의 전형적인 분홍색 벽돌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행정 목적으로 랑그도크는 두 개의 관할구(généralités)인 툴루즈 관할구와 몽펠리에 관할구로 나뉘었는데, 두 관할구의 영토를 합친 것이 랑그도크 주(gouvernement)의 영토와 정확히 일치했다. 관할구의 수장은 감찰관(intendant)이었지만, 랑그도크의 경우 두 관할구 모두를 책임지는 감찰관이 한 명뿐이었고, 기술적으로는 툴루즈 관할구 감찰관이자 몽펠리에 관할구 감찰관이었지만, 흔히 랑그도크 감찰관이라고 불렸다. 툴루즈 관할구는 상 랑그도크(Haut-Languedoc)라고도 불리고, 몽펠리에 관할구는 해안까지 이르는 하 랑그도크(Bas-Languedoc)라고 불린다. 랑그도크의 감찰관들은 몽펠리에에 거주했고, 툴루즈에는 부관이 있었다. 몽펠리에는 매우 영향력이 있고 툴루즈 백작령의 옛 독립 정신을 상징하는 툴루즈의 의회(parlement)의 권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택되었다. 감찰관들은 랑그도크의 행정관으로서 총독을 대체했지만, 왕에 의해 임명되고 해임될 수 있었으므로 베르사유의 중앙 정부에 위협이 되지 않았다. 1789년까지 그들은 왕국의 지방 행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사법 및 입법 문제에 있어 랑그도크는 15세기 중반에 설립된 툴루즈 의회의 감독을 받았다. 이는 프랑스 국왕들이 파리 의회와 동등한 기관으로 왕국의 멀리 떨어진 남부 영토에 설립한 파리 이외 최초의 의회였다. 툴루즈 의회의 관할권은 랑그도크 주(gouvernement) 전체를 포함했지만, 루에르그 지방, 케르시 지방의 대부분, 그리고 가스코뉴의 일부도 포함했다. 툴루즈 의회는 프랑스의 이 광대한 지역에 대한 최고 사법 재판소이자, 파리 의회에도 상고할 수 없는 최종심 재판소였다. 툴루즈 의회는 또한 판결을 통해 판례를 만들고 법을 해석할 수 있었다. 또한 새로운 왕실 포고령과 법률을 등록할 책임이 있었고, 그것이 랑그도크의 자유와 법률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면 차단할 수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조세 목적으로 랑그도크는 랑그도크 자체(및 알비주아 포함)만 관할권을 가진 랑그도크 지방 의회의 통치를 받았지만, 제보당, 벨레이, 비바라는 1789년까지 각각 자체 지방 의회를 유지했다. 랑그도크 자체는 프랑스의 소수 지방 중 하나로서 조세 문제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는데, 프랑스 국왕들은 왕국의 다른 대부분의 지방에서 지방 의회를 폐지했었다. 이것은 베르사유에서 멀리 떨어진 독립적인 정신을 가진 지역이 중앙 정부에 충실하게 남도록 하기 위한 국왕의 특별한 호의였다. 랑그도크 지방 의회는 여러 도시에서 회합했고, 한동안 페제나스에 자리를 잡았지만, 18세기에는 몽펠리에로 최종적으로 이전하여 1789년까지 매년 한 번 회합했다.

기독교 종교 목적으로 랑그도크는 툴루즈 대교구, 나르보네 대교구, 알비 대교구를 포함한 여러 교구로 나뉘었다.

4. 1. 앙시앵 레짐 시대

랑그도크의 총독들은 페제나스에 거주하며 군사 문제를 넘어 지방 행정 및 집행 권력을 확장했다. 특히 몽모랑시 공작은 왕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리슐리외의 명령으로 처형되기도 했다. 프랑스 국왕들은 총독들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루이 14세 이후 총독들이 베르사유에 거주하게 하고 지방 출입을 금지했다.

thumb은 툴루즈에 있는 상 랑그도크의 분홍색 벽돌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행정적으로 랑그도크는 툴루즈와 몽펠리에 두 개의 관할구(généralités)로 나뉘었고, 랑그도크 감찰관이 두 곳을 모두 관리했다. 감찰관은 몽펠리에에 거주하며 툴루즈 백작령의 독립 정신을 상징하는 툴루즈 의회의 권력을 약화시키려 했다. 이들은 왕이 임명하고 해임할 수 있어 중앙 정부에 위협이 되지 않았고, 1789년까지 지방 행정의 핵심 요소였다.

사법 및 입법은 툴루즈 의회가 담당했는데, 이는 프랑스 남부 지역을 관할하는 최고 사법 재판소이자 판례를 만들고 법률을 해석하는 기관이었다. 또한 왕실 포고령과 법률 등록을 담당하며, 지방의 자유와 법률에 위배되면 차단할 권한도 있었다.

조세는 랑그도크 지방 의회가 담당했는데, 이는 프랑스에서 조세 결정 특권을 가진 소수 지방 중 하나였다. 이는 독립적인 지역을 중앙 정부에 충성하게 하려는 국왕의 호의였다. 지방 의회는 여러 도시에서 회합하다가 18세기에는 몽펠리에로 이전하여 매년 회합했다.

종교적으로는 툴루즈 대교구, 나르보네 대교구, 알비 대교구 등 여러 교구로 나뉘었다.

4. 2. 현대

1956년부터 2016년까지 랑그도크 지방은 프랑스의 4개 지역으로 나뉘었다. 몽펠리에를 중심 도시로 하는 랑그도크루시용 지역은 랑그도크의 55.5%를 차지했으며, 가르, 에로, 오드, 로제르 주와 피레네-오리엔탈 주의 북쪽 끝부분을 포함한다. 툴루즈를 중심 도시로 하는 미디피레네 지역은 랑그도크의 24.8%를 차지했으며, 타른 주와 상가론 주의 동쪽 절반, 타른-에-가론 주의 남동쪽, 아리에주 주의 북서쪽과 북동쪽을 포함한다.

론알프 지역은 아르데슈 주를 포함하여 랑그도크의 13%를, 오베르뉴 지역은 오트-루아르 주의 중앙부와 동부를 포함하여 랑그도크의 6.7%를 차지했다.

2016년 프랑스 지역 개편으로 랑그도크루시용과 미디피레네가 합쳐져 오크시타니가 되었고, 오베르뉴론알프가 합쳐져 오베르뉴론알프가 되었다.

5. 인구

전통적인 랑그도크 지방에는 1999년 인구 조사 기준으로 약 365만 명이 거주하며, 이 중 52%는 랑그도크루시용 레지옹, 35%는 미디피레네 레지옹, 8%는 론알프 레지옹, 5%는 오베르뉴 레지옹에 거주하고 있다.

옛 랑그도크 지방의 영토는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해안 평야와 내륙의 툴루즈 광역권)과 인구 밀도가 매우 낮은 구릉 및 산악 지대 사이에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해안 평야의 인구 밀도는 150명/km², 툴루즈 평야는 300명/km²인 반면, 로제르 남부의 세브네 지역은 유럽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 중 하나로, 인구 밀도가 7.4명/km²에 불과하다.

1999년 인구 조사 기준 랑그도크 지방의 5대 광역권은 툴루즈(964,797명), 몽펠리에(459,916명), (221,455명), 베지에(124,967명), 알레(89,390명)이다.

랑그도크 지방의 인구는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유럽에서도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지역 중 하나이다. 이는 북부 프랑스와 유럽 북부에서 랑그도크가 위치한 유럽의 선벨트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툴루즈몽펠리에 광역권의 인구 증가가 두드러지며, 현재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두 개의 광역권이다. 그러나 랑그도크 내륙 지역은 여전히 인구가 감소하고 있어 앞서 언급한 인구 밀도 차이가 더욱 커지고 있다.

랑그도크 해안과 툴루즈 지역의 인구는 비교적 젊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부유한 반면, 내륙 지역의 인구는 고령층 비율이 높고 소득이 훨씬 낮으며 고등학교 및 특히 대학 졸업자 비율이 낮은 경향이 있다.

5. 1. 인구 변화

전통적인 랑그도크 지방에는 1999년 인구 조사 기준으로 약 365만 명이 거주하며, 이 중 52%는 랑그도크루시용 레지옹, 35%는 미디피레네 레지옹, 8%는 론알프 레지옹, 5%는 오베르뉴 레지옹에 거주하고 있다.

옛 랑그도크 지방의 영토는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해안 평야와 내륙의 툴루즈 광역권)과 인구 밀도가 매우 낮은 구릉 및 산악 지대 사이에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해안 평야의 인구 밀도는 150명/km², 툴루즈 평야는 300명/km²인 반면, 로제르 남부의 세브네 지역은 유럽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 중 하나로, 인구 밀도가 7.4명/km²에 불과하다.

1999년 인구 조사 기준 랑그도크 지방의 5대 광역권은 툴루즈(964,797명), 몽펠리에(459,916명), (221,455명), 베지에(124,967명), 알레(89,390명)이다.

랑그도크 지방의 인구는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유럽에서도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지역 중 하나이다. 북부 프랑스와 유럽 북부에서 랑그도크가 위치한 유럽의 선벨트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툴루즈몽펠리에 광역권의 인구 증가가 두드러지며, 현재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두 개의 광역권이다. 그러나 랑그도크 내륙 지역은 여전히 인구가 감소하고 있어 앞서 언급한 인구 밀도 차이가 더욱 커지고 있다.

랑그도크 해안과 툴루즈 지역의 인구는 비교적 젊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부유한 반면, 내륙 지역의 인구는 고령층 비율이 높고 소득이 훨씬 낮으며 고등학교 및 특히 대학 졸업자 비율이 낮은 경향이 있다.

5. 2. 인구 분포

전통적인 랑그도크 지방에는 1999년 인구 조사 기준으로 약 365만 명이 거주하며, 이 중 52%는 랑그도크루시용 레지옹, 35%는 미디피레네 레지옹, 8%는 론알프 레지옹, 5%는 오베르뉴 레지옹에 거주하고 있다.

옛 랑그도크 지방의 영토는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해안 평야와 내륙의 툴루즈 광역권)과 인구 밀도가 매우 낮은 구릉 및 산악 지대 사이에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해안 평야의 인구 밀도는 150명/km², 툴루즈 평야는 300명/km²인 반면, 로제르 남부의 세벤 지역은 유럽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 중 하나로, 인구 밀도가 7.4명/km²에 불과하다.

1999년 인구 조사 기준 랑그도크 지방의 5대 광역권은 툴루즈(964,797명), 몽펠리에(459,916명), (221,455명), 베지에(124,967명), 알레(89,390명)이다.

랑그도크 지방의 인구는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유럽에서도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지역 중 하나이다. 이는 북부 프랑스와 유럽 북부에서 랑그도크가 위치한 유럽의 선벨트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툴루즈몽펠리에 광역권의 인구 증가가 두드러지며, 현재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두 개의 광역권이다. 그러나 랑그도크 내륙 지역은 여전히 인구가 감소하고 있어 앞서 언급한 인구 밀도 차이가 더욱 커지고 있다.

랑그도크 해안과 툴루즈 지역의 인구는 비교적 젊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부유한 반면, 내륙 지역의 인구는 고령층 비율이 높고 소득이 훨씬 낮으며 고등학교 및 특히 대학 졸업자 비율이 낮은 경향이 있다.

5. 3. 주요 도시

랑그도크는 해안 평야와 툴루즈 광역권과 같이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과 구릉 및 산악 지대처럼 인구 밀도가 매우 낮은 지역 간의 차이가 크다. 해안 평야의 인구 밀도는 150명/km², 툴루즈 평야는 300명/km²인 반면, 로제르 남부의 세브네 지역은 유럽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 중 하나로, 인구 밀도가 7.4명/km²에 불과하다.

1999년 인구 조사 기준으로 랑그도크의 5대 광역권은 툴루즈(964,797명), 몽펠리에(459,916명), (221,455명), 베지에(124,967명), 알레(89,390명)이다.

랑그도크의 인구는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유럽에서도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지역 중 하나인데, 이는 북부 프랑스와 유럽 북부에서 랑그도크가 위치한 유럽의 선벨트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툴루즈몽펠리에 광역권의 인구 증가가 두드러지며, 현재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두 개의 광역권이다. 그러나 랑그도크 내륙 지역은 여전히 인구가 감소하고 있어 인구 밀도 차이가 더욱 커지고 있다.

랑그도크 해안과 툴루즈 지역의 인구는 비교적 젊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부유한 반면, 내륙 지역의 인구는 고령층 비율이 높고 소득이 훨씬 낮으며 고등학교 및 특히 대학 졸업자 비율이 낮은 경향이 있다.

6. 경제

6. 1. 농업

랑그도크는 중요한 와인 생산지이다. 현재 프랑스 포도 생산량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며, 해외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랑그도크 지중해 연안에서 생산된 와인은 랑그도크라는 라벨이 붙고, 내륙 지역의 와인은 서쪽의 프롱통, 가이야크, 리무 와 같은 다른 라벨이나 동쪽의 론 꼬뜨 와 같은 라벨을 사용한다.

다른 농작물로는 (전통적인 농작물로, 툴루즈에 기반을 둔 지주와 의원들의 부를 가져다주었고, 유명한 미디 운하가 건설된 이유이기도 하다), 옥수수(새로운 농작물이며 현재 이 지역에서 가장 일반적인 농작물이다), 올리브(랑그도크 지중해 연안에서만 재배), 과일, 그리고 쌀(일부 해안 지역)이 있다. 내륙의 구릉지대와 산악지대에서는 고기와 치즈를 위해 양과 염소를 사육한다. 해안 지역은 당연히 어류와 조개류의 원천이다.

6. 2. 산업



툴루즈에는 항공우주(에어버스(Airbus), CNES 등), 전자(프리스케일(Freescale) 등) 및 바이오 기술 산업이 발달해 있다. 몽펠리에에는 첨단 기술, 전자 및 컴퓨터(IBM(IBM)) 산업이, 카스트르에는 제약 산업(피에르 파브르 그룹(Pierre Fabre Group))이 있다.

툴루즈에는 상당한 규모의 화학 산업 부문도 있었으나, 2001년 9월 21일 발생한 AZF 참사 이후 큰 타격을 입었다. 그 결과, 툴루즈에서 화학 산업을 이전하기로 결정되었으며, 해당 부지에는 암 연구 및 바이오 기술 연구개발을 위한 대규모 캠퍼스가 조성될 예정이다.

이 지역의 다른 곳에서는 특히 이 지역 내부의 알레(Alès)와 카르모(Carmaux)의 과거 광산 지역 주변과 같이 산업 규모가 작고 쇠퇴하고 있다.

6. 3. 서비스 및 관광

랑그도크 지역 경제에서 서비스업이 가장 큰 부문을 차지한다.[8] 특히 정부 서비스 부문은 상당한 노동력을 고용하고 있으며, 특히 소규모 도시에서 그 비중이 크다.[8] 1982년 프랑스 기상청(Météo-France)이 파리에서 툴루즈(Toulouse)로 이전하는 등 주요 행정기관들이 이 지역으로 이전했다.[8]

이 지역은 주요 관광지이기도 하다.[8] 크게 세 가지 유형의 관광이 존재하는데, 첫째는 1970년대에 건설된 카프다그드(Cap d'Agde), 팔라바스레플로(Palavas-les-Flots), 르그로드루아(Le Grau-du-Roi)와 같은 대규모 해변 휴양지가 있는 해안 지역의 대규모 여름 관광 산업이다.[8]

카르카손(Carcassonne), 툴루즈, 몽펠리에(Montpellier)와 같은 역사적인 도시들과 니므(Nîmes)의 로마 원형경기장과 같은 수많은 로마 유적, 중세 수도원,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 그리고 코르비에르 산맥에 있는 폐허가 된 카타르 성(피비린내 나는 알비 십자군의 증거)과 같은 옛 성곽 등 역사와 예술 관련 관광도 활발하다.[8]

최근에는 타른 강(Tarn (river)) 협곡, 아르데슈 협곡(Ardèche Gorges), 그리고 광활하게 보존된 세벤느(Cévennes), 아르데슈, 로라가(Lauragais) 등의 지역을 중심으로 "그린" 및 스포츠 관광이 증가하고 있다.[8]

미디 운하(Canal du Midi) 관광은 베지에(Béziers) 근처 폰세라네스(Fonseranes)의 9개 갑문을 보는 것과 같은 역사적 요소와 운하에서 보트를 타거나 끌어당기는 길에서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활동을 결합한다.[8]

툴루즈와 몽펠리에는 기업 회의와 컨벤션이 자주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2019년 4월, 가디언(The Guardian)의 여행 섹션에서는 랑그도크 지역의 두 곳을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20곳" 목록에 포함시켰다.[8] 두 곳은 "이 지역에서 가장 훌륭한 로마네스크 건축물 중 하나"인 생 기엠르데제르(Saint-Guilhem-le-Désert)와 "수세기 동안 거의 변하지 않은 좁은 거리"를 가진 에스탕(Estaing)이었다.[8]

7. 문화

랑그도크에서는 프랑스 대부분 지역에서 축구가 더 인기 있는 것과 달리 라그비 유니온이 "국민 스포츠"이다. 툴루즈의 라그비 클럽인 스타드 투루생은 유럽에서 가장 성공적인 클럽 중 하나이며, 정기적으로 프랑스 챔피언십에 참가하고 유럽 챔피언십 10년 동안 네 번의 유럽 타이틀(1996년, 2003년, 2005년, 2010년)을 획득했다.

투우 및 기타 황소 관련 행사는 랑그도크 동부 지역에서 인기가 있다.[9] 해상 기마전(''Joutes nautiques'')은 해안에서 열린다. 11세기부터 시작된 이 스포츠는 지역 리그가 있으며 많은 관중을 끌어 모은다.

마갈라스의 푸스테를 거리


랑그도크 지역의 부동산은 매우 다양하며, 수영장과 테니스 코트를 갖춘 새로 지은 빌라부터 고대 요새 도시의 옛 성벽에 자리 잡은 오래된 마을 주택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마을 주택 중 일부는 매우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에로 마갈라스 마을의 작은 주택 한 채에는 13세기 연대가 돌 조각으로 새겨져 있다. 넓은 지역이기 때문에 랑그도크에서 찾을 수 있는 부동산의 종류는 카프다드와 같은 해변 휴양지의 아파트부터 시골 내륙의 고립된 바스티드까지 매우 다양하다.

7. 1. 언어

7. 2. 스포츠

랑그도크에서는 축구보다 라그비 유니온이 "국민 스포츠"로 인기가 높다. 툴루즈의 라그비 클럽인 스타드 투루생은 유럽에서 가장 성공적인 클럽 중 하나로, 정기적으로 프랑스 챔피언십에 참가하며 1996년, 2003년, 2005년, 2010년에 유럽 타이틀을 획득했다.

투우 및 기타 황소 관련 행사는 랑그도크 동부 지역에서 인기가 있다.[9] 해상 기마전(''Joutes nautiques'')은 해안에서 열리는데, 11세기부터 시작된 이 스포츠는 지역 리그가 있으며 많은 관중을 끌어 모은다.

7. 3. 건축



랑그도크 지역의 부동산은 매우 다양하며, 수영장과 테니스 코트를 갖춘 새로 지은 빌라부터 고대 요새 도시의 옛 성벽에 자리 잡은 오래된 마을 주택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마을 주택 중 일부는 매우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에로 주 마갈라스 마을의 작은 주택 한 채에는 13세기 연대가 돌 조각으로 새겨져 있다. 넓은 지역이기 때문에 랑그도크에서 찾을 수 있는 부동산의 종류는 카프다드와 같은 해변 휴양지의 아파트부터 시골 내륙의 고립된 바스티드까지 매우 다양하다.

8. 한국과의 관계

참조

[1] 서적 The Middle Ages 2009
[2] 서적 God's War: A New History of the Crusades 2007
[3] 서적 "Identité régionale et conscience nationale en France et en Allemagne du Moyen Âge à l'époque moderne". actes du colloque organisé par l'université Paris XII – Val-de-Marne, l'Institut universitaire de France et l'Institut historique allemand à l'université Paris XII et à la fondation Singer-Polignac les 6 octobre 1993, 7 octobre 1993 et 8 octobre 1993 http://www.thorbecke[...] Thorbecke 2016-03-15
[4] 서적 Société politique, noblesse et couronne sous Jean le Bon et Charles V https://web.archive.[...] Droz (published with the help of National Center for Scientific Research) 1982-01
[5] 서적 Sur une province française http://www.persee.fr[...] 1968
[6] 서적 The States of Languedoc at 15th c. Éditions Privat 1965
[7] 서적 Henri Gilles. ''Les États de Languedoc au XV''. Toulouse, Édouard Privat, 1965. In-8o, 363 p., couverture illustrée. (Bibliothèque méridionale, 2e série, XL.) http://www.persee.fr[...] 1967
[8] 뉴스 20 of the most beautiful villages in France https://www.theguard[...] 2019-04-13
[9] 웹사이트 Bull Running and Bull Fighting in the Languedoc. https://www.midi-fra[...] 2024-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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