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레오노르 (나바라)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레오노르(1426-1479)는 나바라 왕국의 여왕으로, 아라곤 왕국의 왕 후안 2세와 나바라 여왕 블랑슈 1세 사이에서 태어났다. 1427년 팜플로나 의회에서 나바라의 상속인으로 추대되었고, 1436년 푸아 백작 가스통 4세와 결혼했다. 오빠인 비아나 공 카를로스가 왕위 계승권을 박탈당하고 내전이 발발하자, 레오노르는 섭정으로 임명되었다. 1479년 부친 후안 2세 사후 나바라 여왕이 되었으나, 즉위 2주 만에 사망했다. 레오노르 사후에는 그녀의 손자인 프란치스코가 왕위를 이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나바라 여왕 - 호아나 2세
    호아나 2세는 나바라의 루이 10세의 딸로, 프랑스 왕위 계승에서 제외되었지만 1328년 나바라 여왕으로 즉위하여 남편과 공동 통치하며 내정에 힘쓰다 1349년 흑사병으로 사망했다.
  • 나바라 여왕 - 호아나 1세
    호아나 1세는 나바라의 헨리 1세의 딸로 샹파뉴 여백작이자 나바라 여왕이었으며, 프랑스 필리프 4세와 결혼하여 프랑스 왕비가 되었고, 루이 10세 등을 낳았으며 1305년에 사망했다.
  • 1479년 사망 - 밀성군
    밀성군 이침은 조선 세종의 아들로 밀성군에 봉해졌으며, 오위도총부 도총관을 역임하고 공신에 책록되는 등 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고, 그의 묘소는 하남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었다.
  • 1479년 사망 - 안토넬로 다 메시나
    안토넬로 다 메시나는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로, 플랑드르 회화의 영향을 받아 유화 기법을 발전시키고 이탈리아에 전파하는 데 기여했으며, 이탈리아 회화의 간결함과 플랑드르 회화의 세밀한 묘사가 결합된 독특한 화풍으로 알려져 있다.
  • 1426년 출생 - 금성대군
    금성대군은 조선 세종의 여섯째 아들로, 단종 복위를 꾀하다 실패하여 세조에 의해 처형되었으며, 사후 신원되고 관작이 복구되었다.
  • 1426년 출생 - 크리스티안 1세
    크리스티안 1세는 올덴부르크 가문 출신으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의 국왕을 지냈으며 슐레스비히 공작과 홀슈타인 백작을 겸했고 코펜하겐 대학교 설립에 기여했으나 칼마르 동맹 재건 시도는 실패했다.
레오노르 (나바라)
기본 정보
엘레오노르의 서명
엘레오노르의 서명
군주
칭호나바라 여왕
재위1479년 1월 28일 – 1479년 2월 12일
대관식1479년 1월 28일
이전 군주후안 2세
다음 군주프랑시스 페뷔스
혼인과 자녀
배우자가스통 4세, 푸아 백작 (1441년 결혼, 1472년 사별)
자녀가스통 드 비안
피에르 드 푸아 르 죈
장 드 푸아, 비콩트 드 나르본
마르그리트, 브르타뉴 여공작
카트린, 캉달 백작부인
자크 드 푸아, 콩트 드 몽포르
기타 자녀 정보 링크#결혼_및_자녀
가문
왕가트라스타마라 가문
아버지후안 2세
어머니블랑카 1세
출생과 사망
출생일1426년 2월 2일
출생지올리테, 나바라 왕국
사망일1479년 2월 12일
사망지투델라, 나바라

2. 생애

레오노르는 발라게르의 영주 추안(아라곤 왕국의 왕 페란도 1세의 아들)과 나바라 왕국의 여왕 수리아 1세 사이에서 태어났다. 추안은 수리아 여왕과 혼인하여 나바라의 명예왕 호아네스 2세[4]로 불렸다. 1427년8월 9일 팜플로나 의회에서 레오노르는 블랑카 1세와 오빠인 비아나 공 카를로스의 상속인으로 승인되었다.

1436년 장 1세 드 푸아 백작 겸 베아른 자작의 아들 가스통 드 푸아그레일리와 결혼했다.[3]

어머니 수리아 1세 사후, 아버지 호아네스 2세[4]는 오빠 비아나 공을 나바라 부왕으로 임명하며 왕위를 찬탈했다. 이로 인해 나바라 내전이 발발했고, 비아나 공은 왕위계승권을 박탈당했다. 호아네스 2세는 레오노르에게 오빠의 권리를 대신하게 하여 섭정으로 임명했다.[3] 나바라 귀족들은 비아나 공과 수리아 공주(레오노르의 언니)를 적법한 왕위 계승자로 추대했으나 실패했다.

비아나 공은 알리폰소 5세에게 중재를 요청했으나 알리폰소 5세의 사망으로 무산되었다. 이후 호아네스 2세가 아라곤 연합왕국 왕으로 즉위한 후에도 비아나 공은 카탈루냐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구금되어 독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리아 공주 역시 엔리케 4세에게 이혼당한 후 나바라 여왕으로 추대되어 내전을 일으켰지만 실패하고 독살당했다.

레오노르는 남편 가스통 4세와 함께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어 섭정 지위를 잃었으나, 이후 통치권을 인정받고 아버지 사후 나바라 영지를 분할받았다. 1479년 1월 20일 아버지 사망 후 나바라 여왕으로 즉위했으나,[3] 3주 만인 2월 12일 53세로 사망했다.[3] 왕위는 아들 가스통의 아들 프란시스코가 이었다.

2. 1. 결혼과 가족

1434년 레오노르는 장 1세 드 푸아 백작 겸 베아른 자작의 아들 가스통 드 푸아그레일리와 약혼하였고 2년 뒤인 1436년에 결혼하였다.[3]

1436년 푸아 백작가스통 4세와 결혼하여 다음과 같은 자녀를 두었다.

이름출생사망비고
가스통1444년1470년비아나 공. 샤를 7세의 딸 마들렌과 결혼. 두 자녀 프란시스코와 카타리나가 나바라 왕위를 계승.
피에르1449년1490년추기경, 아를주교
1450년1500년나르본 자작. 프랑스 장군 가스통 드 푸아, 페르난도 2세(레오노르의 이복 동생)의 두 번째 왕비 제르멘의 아버지.
자크1455년1500년코르테스 백작
마리1452년1497년몬페라토 후작 구리에르모 8세와 결혼.
1454년1476년아르마냐크 백작 장 5세와 결혼.
카트린1455년?켄달(칸달) 백작 가스통 2세 드 푸아와 결혼. 헝가리보헤미아의 왕 울라슬로 2세의 왕비 안의 어머니.
마르그리트1458년1486년브르타뉴공 프랑수아 2세와 결혼. 브르타뉴 여공, 프랑스 왕비 안의 어머니.
이자벨1462년?기 드 퐁스와 결혼.
엘레오노르


2. 2. 나바라 내전과 섭정

여왕 레오노르의 문장


레오노르는 1434년에 장 1세 드 푸아 백작 겸 베아른 자작의 아들 가스통 드 푸아그레일리와 약혼하였고, 1436년에 결혼하였다.[3]

어머니 수리아 1세 여왕 사후, 아버지 호아네스 2세[4]는 레오노르의 오빠 카를로스 아 비아나 공을 나바라 부왕으로 임명하여 그의 왕위를 찬탈하였다. 이로 인해 나바라 내전이 일어났고, 내전의 영향으로 비아나 공은 나바라 왕위계승권을 박탈당했다. 아버지 호아네스는 레오노르가 오빠 비아나 공의 권리를 대신하게 하여 나바라 왕국의 섭정으로 임명하였다.[3]

나바라의 일부 귀족은 비아나 공과 수리아 1세의 딸 수리아 공주(레오노르의 언니)를 차례로 나바라의 적법한 왕, 여왕으로 추대했지만 실패했다.

비아나 공은 내전에서 패배해 아버지 호아네스의 형 알리폰소 5세(비아나 공, 수리아, 레오노르 남매의 백부)에게 나바라 왕위계승권 회복에 대해 중재를 부탁했으나, 알리폰소는 얼마 안 되어 사망하였고 중재는 수포로 돌아갔다. 알리폰소의 나폴리 왕국 왕위(알리폰소의 사생아 페란도에게 수여됨)를 제외한 모든 왕위는 아버지 호아네스에게 돌아가 아라곤 연합왕국의 왕 추안 2세로 불리게 된다. 아버지 추안이 아라곤 왕으로 등극한 이후에도 비아나 공은 포기하지 않고 카탈루냐에서 반란을 일으키다 결국 구금되고 이듬해에 독살(추정)당한다.

비아나 공이 살해당한 후, 나바라의 일부 귀족은 아스투리아스 공(카스티야 왕국의 왕세자) 엔리케에게 이혼당한 수리아 공주를 나바라의 적법한 여왕으로 추대하여 내전을 일으키지만, 또다시 실패하여 수리아마저 구금 및 독살당하고 만다.

오빠와 언니를 내전으로 잃은 레오노르는 남편 푸아 백작 가스통 4세와 함께 아버지 추안에게 반기를 들어 나바라 왕국의 섭정 지위를 잃었으나, 후에 아버지 추안에게 나바라 왕국의 통치권을 인정받았으며, 아버지 사후 나바라 영지를 분할받게 된다.

2. 3. 여왕 즉위와 사망

1479년 1월 20일, 아버지 추안 2세가 사망하자 레오노르는 나바라 여왕으로 즉위했다.[3] 그러나 즉위한 지 불과 3주 만인 2월 12일에 레오노르 역시 5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3]

레오노르의 장남 비아나 공 가스통은 1470년에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왕위는 가스통과 그의 아내 마들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즉 레오노르의 손자인 프란시스코가 계승했다.

3. 가계도

아라곤나바라 국왕 가계도
아라곤부모출생 및 사망
아라곤의 페르난도 1세[1]카스티야의 후안 1세[2], 아라곤의 레오노르[2]1380년 - 1416년
아라곤의 후안 2세아라곤의 페르난도 1세[1], 알부르케르케의 레오노르[1]1398년 - 1479년
레오노르아라곤의 후안 2세, 나바라의 블랑슈 1세1426년 - 1479년



'''굵은 글씨'''는 나바라 왕위에 오른 인물, 숫자는 즉위 순서이다.(< >는 분열 후 프랑스 측, ( )는 스페인 측)

참조

[1] 서적 John II of Aragon EB1911
[2] 서적 Ferdinand I, King of Aragon Britannica
[3] 문서 카스티야어와 바스크어로는 레오노르, 아라곤어로는 알리오노르
[4] 문서 참고로 장 1세 (프랑스)|호아네스 1세 유복자왕은 프랑스 왕국의 왕을 겸함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