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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도스의 멤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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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도스의 멤논은 기원전 4세기에 활동한 로도스 출신의 그리스 용병으로, 아케메네스 제국을 섬기며 페르시아와 마케도니아 사이의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필리포스 2세와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에 페르시아 군을 지휘하며, 특히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 당시 효과적인 방어 전략을 구사했다. 멤논은 초토화 작전을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할리카르나소스 공방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에게 해 섬들을 점령하고 그리스 본토에서 반 마케도니아 봉기를 계획했지만, 기원전 333년 미틸레네 공방전 중 사망했다. 그의 뛰어난 전략과 군사적 역량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큰 위협이 되었으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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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도스의 멤논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멤논
원어 이름Μέμνων (그리스어)
출생기원전 380년경
출생지로도스
사망기원전 333년 여름 (47세)
배우자바르시네 (기원전 340년경)
군사 정보
소속아케메네스 제국
복무 기간기원전 339년 - 기원전 333년
주요 전투그라니코스 전투
할리카르나소스 공방전

2. 생애

알렉산드로스 3세가 동방 원정을 시작했을 때, 멤논은 다리우스 3세에게 적의 식량 보급을 끊는 초토화 작전을 제안했다. 그러나 현지 사트라프(태수)들은 멤논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영토를 약탈하는 것에 반대했다. 그들은 ‘우리 백성의 집에 불을 붙이는 터무니없는’ 일이며, ‘그리스 용병에게는 전쟁이 길어지면 보수가 많아서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3]

결국 페르시아 군은 그라니코스 강 전투에서 크게 패했고, 다리우스 3세는 “멤논의 말대로 했더라면...”하고 후회했다.[3]

이후 멤논은 소아시아에서 페르시아 군을 재정비하여 알렉산드로스 3세가 쉽게 공격할 수 없는 상황을 일시적으로 만들었다. 그는 그리스에 대한 반격 작전까지 계획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병으로 사망했다.[3]

2. 1. 초기 생애와 페르시아 복무

멤논은 기원전 380년경 로도스에서 태어났으며, 평생의 대부분을 아케메네스 제국을 섬겼다. 기원전 358년에 그의 형 멘토르와 함께 페르시아 사트라프(총독)인 아르타바조스 2세 밑에서 복무하며 경력을 시작했다. 아르타바조스 2세는 멤논의 형 멘토르가 자신의 딸 바르시네와 결혼하도록 허락했다. 같은 해, 아르타바조스 2세는 당시 페르시아의 지배자였던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며, 멤논과 멘토르는 그의 장군으로 활동했다. 반란이 실패하자 멤논과 아르타바조스 2세는 펠라, 즉 마케도니아의 수도로 도망쳤고, 멤논의 형 멘토르는 이집트로 도망쳤다. 멘토르는 기원전 343년경 페르시아 군에 다시 합류했다.

2. 2. 마케도니아에서의 망명과 귀환

기원전 358년, 아르타바조스 2세의 반란 실패 후 멤논은 마케도니아의 수도 펠라로 망명했다. 멤논은 망명 기간 동안 필리포스 2세와 당시 7살이었던 어린 왕자 알렉산드로스 3세(훗날 알렉산드로스 대왕)를 알게 되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멤논과 알렉산드로스는 장시간 토론을 나눴으며, 알렉산드로스는 무엇보다도 페르시아의 군사력과 전술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멤논은 펠라에 머무는 동안 필리포스 2세를 통치자, 군사 지도자, 외교관으로서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페르시아를 침공하려는 필리포스 2세의 의도를 확신하게 되었으며, 마케도니아의 그리스 지배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뿌리 깊은 불만, 그리고 마케도니아인들에게 따르는 정치적 문제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갖게 했다.

멤논은 형 멘토르의 "영향"을 통해 마케도니아에서 약 3~4년 동안 머무른 후 "마케도니아의 군사적 능력을 명확히 이해한 채" 페르시아 군에 다시 합류했다.

2. 3. 아케메네스 제국 방어

알렉산드로스 3세가 동방 원정을 시작하자, 멤논은 직접적인 대결을 피하고 적의 식량 보급을 끊는 초토화 작전을 다리우스 3세에게 제안했다. 그러나 현지 총독들은 이 제안에 반대하며, "우리 백성의 집에 불을 지르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발했다. 또한, 그들은 멤논이 그리스 용병이기 때문에 전쟁이 길어질수록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어 이런 제안을 한다고 의심했다.[3]

결국 페르시아 군은 그라니코스 강 전투에서 크게 패했고, 그리스 군은 막대한 전리품을 챙겼다. 다리우스 3세는 패전 소식을 듣고 "멤논의 말대로 했더라면..."하고 후회했다.[3]

이후 멤논은 소아시아에서 페르시아 군을 재정비하여 알렉산드로스 3세가 쉽게 공격할 수 없는 상황을 일시적으로 만들었다. 그는 그리스에 대한 반격 작전까지 계획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병으로 사망했다.[3]

2. 3. 1. 필리포스 2세와의 전쟁

기원전 339년, 멤논은 필리포스 2세의 공격을 받는 비잔티움을 방어하는 데 기여했다.[1][2] 기원전 336년, 필리포스 2세는 서부 해안과 섬에 거주하는 그리스인들을 아케메네스 왕조의 지배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침공 준비를 하기 위해 파르메니온을 아민타스, 안드로메네스, 아탈루스와 함께 10,000명의 군대를 아나톨리아로 보냈다.[1][2] 처음에는 모든 것이 잘 진행되었다. 아나톨리아 서부 해안의 그리스 도시들은 필리포스 2세가 살해당하고 그의 어린 아들 알렉산드로스가 왕위를 계승했다는 소식이 도착할 때까지 반란을 일으켰다. 마케도니아인들은 필리포스 2세의 죽음에 사기가 떨어졌고, 이후 마그네시아 근처에서 로도스의 멤논이 지휘하는 아케메네스군에게 패배했다.[2][1]

2. 3. 2. 알렉산드로스 대왕과의 전쟁

기원전 334년, 알렉산드로스 3세가 아케메네스 제국을 침공했을 때, 멤논은 다리우스 3세에게 적의 식량 보급을 끊기 위한 초토화 작전을 제안했다.[3] 그러나 현지 사트라프(태수)들은 멤논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영토를 약탈하는 것에 반대했다.[3] 이들은 ‘우리 백성의 집에 불을 붙이는 터무니없는’ 일이며, ‘그리스 용병에게는 전쟁이 길어지면 보수가 많아서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3] 결국 페르시아 군은 그라니코스 전투에서 참패했고, 다리우스 3세는 “멤논의 말대로 했더라면...”하고 한탄했다.

그라니쿠스 강 전투에서 패배한 후, 다리우스 3세는 멤논을 서부 사트라피(지방)의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멤논은 할리카르나소스 공방전에서 주도적인 지휘관으로 활약하며 알렉산드로스의 공격을 거의 격퇴할 뻔했다.[3] 이후 멤논은 제국의 해군 우위를 이용하여 에게 해 섬들을 점령하고, 스파르타와 협상하여 전쟁을 그리스 본토로 확대하려 했다.[3]

멤논은 페르시아 함대를 이용하여 키오스 섬과 레스보스 섬 대부분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데모스테네스는 멤논의 성공 소식을 듣고 아테네에서 다른 그리스 도시들과 함께 알렉산드로스에 대항하는 반란을 준비했고, 스파르타는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틸레네 공방전 중 멤논이 병사하면서 그의 계획은 중단되었다.[3]

3. 평가

멤논은 알렉산드로스 3세에게 가장 큰 위협을 가한 인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의 전략과 군사적 역량은 당대 최고 수준이었으며, 만약 그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이 좌절되었을 수도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해상 작전과 스파르타에서 그가 조직한 봉기는 알렉산드로스에게 큰 위협이었다.

다리우스 3세에게 적의 식량 보급을 끊기 위한 초토화 작전을 제안하였으나, 이는 현지 태수의 반대로 기각되었다. 페르시아 군은 그라니코스 전투에서 참패하였고, 다리우스 3세는 멤논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다.

멤논은 소아시아에서 페르시아 군을 재정비하고 알렉산드로스 3세가 섣불리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으며, 그리스 본토 봉기 계획까지 세웠지만, 병으로 사망했다. 그의 죽음 이후, 알렉산드로스는 아케메네스 페니키아 침공을 결정하며 전략을 수정해야 했다.

4. 대중문화에서의 등장


  • 1956년 역사 영화 알렉산더 대왕에서 피터 쿠싱이 멤논 역을 맡았다.
  • 이와아키 히토시의 일본 만화 히스토리에서 멤논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주요 적대자로 등장한다.
  • 넷플릭스의 2024년 드라마 다큐멘터리 시리즈 알렉산더: 신의 탄생에서 스티븐 하틀리가 멤논 역을 연기했다.

참조

[1] 서적 From Cyrus to Alexander: A History of the Persian Empire https://books.google[...] Eisenbrauns 2002
[2] 서적 Who's Who in the Age of Alexander the Great: Prosopography of Alexander's Empire https://books.google[...] John Wiley & Sons 2008
[3] 간행물 Wars of Alexander the Great: Battle of the Granicus https://www.historyn[...] 199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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