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 핀투라스 암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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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리오 핀투라스 암각화는 아르헨티나 산타크루스 주에 위치한 핀투라스 강 협곡에 있는 동굴 유적이다. 기원전 7,300년경부터 서기 700년경까지 제작된 암각화는 손 모양, 과나코, 기하학적 문양 등을 포함하며, 남아메리카 고고 시대의 수렵 채집인들의 문화와 예술을 보여준다. 이 유적은 1999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현재 관광객 증가에 따른 훼손 위험에 직면하여 보존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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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 핀투라스 암각화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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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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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명칭 | 핀투라스 강의 쿠에바 데 라스 마노스 |
위치 | 산타크루스, 아르헨티나 |
세계 유산 정보 | |
기준 | (iii) |
지정 연도 | 1999년 |
면적 | 600 헥타르 |
완충 구역 | 2,331 헥타르 |
ID | 936 |
상세 정보 | |
설명 | 쿠에바 데 라스 마노스는 페리토 모레노에서 떨어진 핀투라스 강 계곡에 위치한 동굴이다. 동굴 이름은 벽에 찍힌 수많은 손 그림에서 유래되었다. |
역사 | 이 동굴의 예술은 기원전 7300년에서 서기 70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그림 | 그림은 손 외에도 과나코, 타조, 고양이 및 기타 동물을 묘사하고, 인간, 기하학적 모양, 태양을 묘사하기도 한다. |
기술 | 대부분의 손은 왼손이며, 이는 화가들이 오른손으로 스프레이 파이프를 잡았음을 시사한다. 그림은 산화철, 소다 철명반석, 적철광, 망가니즈 이산화물과 같은 천연 미네랄을 사용하여 만들어졌다. |
2. 위치
고대 인디언 시대, 대략 플라이스토세 말기에서 홀로세 초기의 지질 시대에 해발 고도 400~500m 사이의 지역은 협곡 내에 미기후를 형성하여 많은 동물에게 적합한 초원 생태계를 조성했다.[9] 이 생태계에는 수지 및 접착제 형성, 장작 공급원으로 사용된 ''후추나무'',[9] 식용 채소와 약용으로 사용될 수 있는 식물, 덩이줄기 (예: 부들 뿌리), 그리고 ''매자나무''의 열매와 같은 수많은 과일이 서식했다.[9]
이 지역이 점유되었을 때, 핀투라스 강과 데세아도 강은 대서양으로 흘러들어 과나코 무리에게 물을 공급하여 이 지역을 고(古)인디언에게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빙상이 녹으면서 바커 강이 동쪽으로 흐르는 강의 물줄기를 빼앗았다. 그 결과 핀투라스 강과 데세아도 강 수위가 감소하면서 쿠에바 데 라스 마노스 유적은 점진적으로 버려졌다.[18]
쿠에바 데 라스 마노스는 동굴의 주요 유적지와 이를 포함하는 주변 암각화 유적 단지를 모두 가리킨다.[1] 이 동굴은 파타고니아의 외딴 지역인 데세아도 강 상류 유역의 핀투라스 강 협곡에 있는 층계 모양 절벽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90][2][3] 이곳은 아르헨티나 산타 크루스 주 북서부에 있는 도시인 페리토모레노에서 남쪽으로 약 165 km 떨어져 있다.[5][6] 이곳은 페리토 모레노 국립공원[7] 및 쿠에바 데 라스 마노스 주립공원[8]의 일부이다.
3. 기후
현재 동굴 지역의 기후는 전산맥 스텝 (또는 "초원 구릉")으로 묘사될 수 있다.[10][11] 기후는 춥고 건조하며,[12] 습도가 매우 낮다.[94] 이안 N. M. 웨인라이트(Ian N. M. Wainwright)와 동료들은 이 지역의 연간 총 강수량이 20mm 미만이라고 말하는 반면,[73] 글래디스 I. 갈렌데(Gladys I. Galende)와 로시오 베가(Rocío Vega)는 연간 평균 200mm라고 말한다.[14] 협곡의 지형은 이 지역에서 흔한 강한 서풍을 막아 겨울을 덜 혹독하게 만든다.[13] 평균 기온은 8°C이며,[39] 최고 기온은 약 38°C이고 최저 기온은 약 -10°C이다.[14] 가장 추운 달은 7월이며, 가장 따뜻한 달은 2월로, 평균 기온은 각각 -3°C와 21°C이다.[14]
4. 역사
과나코, 퓨마, 여우, 새, 기타 작은 동물의 유해와 함께 투사체, 볼라 돌 조각, 긁개, 화덕이 발견되었다.[19][2][20] 과나코는 원주민의 주요 식량 공급원이었으며, 사냥 방법에는 볼라스, 매복[21][22], 몰이 사냥이 있었는데, 그들은 과나코를 협곡 및 기타 좁은 지역으로 몰아 집단적으로 사냥했다.[23] 이 기법은 동굴의 예술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 지역의 지형이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어떻게 창작되었는지를 보여준다.[79] 다트와 창 투척기도 묘사되어 있지만, 파타고니아에서 이러한 유형의 무기가 사용되었다는 고고학적 증거는 거의 없다.[24]
파타고니아의 콜럼버스 이전 경제는 수렵 채집에 의존했다. 고고학자 프란시스코 메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 홀로세 중후반 시대 파타고니아의 적응에서는 ... 농업도 완전한 목축도 결코 나타나지 않았다."[25] 아르헨티나 측량사이자 고고학자인 카를로스 J. 그라딘은 이 지역의 모든 암각화가 이를 만든 예술가들의 수렵 채집 생활 방식을 보여준다고 저술했다.[89] 동굴 근처에 있는 흑요석의 존재는 이 지역에는 자연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동굴 지역 주민과 멀리 떨어진 부족 간의 광범위한 교역 네트워크를 의미한다.[26][27][15]
기원전 7,500년경부터 이 유적은 부름이스터 호수 근처의 세로 카사 데 피에드라-7 유적과 함께 핀투라스 협곡과 그 주변 지역, 중앙 고원 서부, 그리고 생태 천이대의 초원 및 숲, 그리고 안데스의 산악 호수 환경의 초원 및 숲 사이의 유목 회로에서 중요한 랜드마크가 되었다.[28] 이 회로의 이동 패턴은 각 지역의 채소의 풍부함과 고도에 따라 다른 과나코의 출생에 따라 계절적이었다.[23] 신생 과나코의 모피는 원주민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었으며, 과나코의 출생 패턴은 계절적 이동 시기의 중요성을 증가시켰다.[23] 쿠에바 데 라스 마노스 근처의 신생 과나코의 최적기는 11월경이었다.[23] 이 지역에 거주했던 집단에는 기원전 3천년기 또는 2천년기까지 동굴에 살았던 톨덴세 사람들이 포함되었다.[29] 이 지역을 점유할 때, 확대 가족 또는 대규모 집단이 모이는 임시 캠프 부지가 동굴 주변에 만들어지곤 했다.[23] 이러한 캠프 부지에 모인 집단은 주민들이 과나코 집단 사냥을 조직할 수 있게 했을 것이다.[23]
이 유적의 가장 오래된 암각화는 기원전 7,300년경에 만들어졌다.[3] 쿠에바 데 라스 마노스는 이 시대의 암각화가 있는 이 지역의 유일한 유적으로, 동굴의 A1 및 A2 스타일로 분류되지만, 기원전 6,800년 이후 A3, A4, A5 스타일의 사냥 장면과 같은 유사한 예술이 이 지역의 다른 유적에서 창작되었다.[23] 이 유적은 서기 700년경에 마지막으로 거주되었으며, 마지막 동굴 거주자는 테우엘체 부족의 조상이었을 가능성이 있다.[30][31][50]
4. 1. 고대
이 지역이 점유되었을 때, 핀투라스 강과 데세아도 강은 대서양으로 흘러들어 과나코 무리에게 물을 공급하여 이 지역을 고(古)인디언에게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빙상이 녹으면서 바커 강이 동쪽으로 흐르는 강의 물줄기를 빼앗았다. 그 결과 핀투라스 강과 데세아도 강 수위가 감소하면서 쿠에바 데 라스 마노스 유적은 점진적으로 버려졌다.[18]
과나코, 퓨마, 여우, 새, 기타 작은 동물의 유해와 함께 투사체, 볼라 돌 조각, 긁개, 화덕이 발견되었다.[19][2][20] 과나코는 원주민의 주요 식량 공급원이었으며, 사냥 방법에는 볼라스, 매복[21][22], 몰이 사냥이 있었는데, 그들은 과나코를 협곡 및 기타 좁은 지역으로 몰아 집단적으로 사냥했다.[23] 이 기법은 동굴의 예술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 지역의 지형이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어떻게 창작되었는지를 보여준다.[79] 다트와 창 투척기도 묘사되어 있지만, 파타고니아에서 이러한 유형의 무기가 사용되었다는 고고학적 증거는 거의 없다.[24]
파타고니아의 콜럼버스 이전 경제는 수렵 채집에 의존했다. 고고학자 프란시스코 메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 홀로세 중후반 시대 파타고니아의 적응에서는 ... 농업도 완전한 목축도 결코 나타나지 않았다."[25] 아르헨티나 측량사이자 고고학자인 카를로스 J. 그라딘은 이 지역의 모든 암각화가 이를 만든 예술가들의 수렵 채집 생활 방식을 보여준다고 저술했다.[89] 동굴 근처에 있는 흑요석의 존재는 이 지역에는 자연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동굴 지역 주민과 멀리 떨어진 부족 간의 광범위한 교역 네트워크를 의미한다.[26][27][15]
기원전 7,500년경부터 이 유적은 부름이스터 호수 근처의 세로 카사 데 피에드라-7 유적과 함께 핀투라스 협곡과 그 주변 지역, 중앙 고원 서부, 그리고 생태 천이대의 초원 및 숲, 그리고 안데스의 산악 호수 환경의 초원 및 숲 사이의 유목 회로에서 중요한 랜드마크가 되었다.[28] 이 회로의 이동 패턴은 각 지역의 채소의 풍부함과 고도에 따라 다른 과나코의 출생에 따라 계절적이었다.[23] 신생 과나코의 모피는 원주민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었으며, 과나코의 출생 패턴은 계절적 이동 시기의 중요성을 증가시켰다.[23] 쿠에바 데 라스 마노스 근처의 신생 과나코의 최적기는 11월경이었다.[23] 이 지역에 거주했던 집단에는 기원전 3천년기 또는 2천년기까지 동굴에 살았던 톨덴세 사람들이 포함되었다.[29] 이 지역을 점유할 때, 확대 가족 또는 대규모 집단이 모이는 임시 캠프 부지가 동굴 주변에 만들어지곤 했다.[23] 이러한 캠프 부지에 모인 집단은 주민들이 과나코 집단 사냥을 조직할 수 있게 했을 것이다.[23]
이 유적의 가장 오래된 암각화는 기원전 7,300년경에 만들어졌다.[3] 쿠에바 데 라스 마노스는 이 시대의 암각화가 있는 이 지역의 유일한 유적으로, 동굴의 A1 및 A2 스타일로 분류되지만, 기원전 6,800년 이후 A3, A4, A5 스타일의 사냥 장면과 같은 유사한 예술이 이 지역의 다른 유적에서 창작되었다.[23] 이 유적은 서기 700년경에 마지막으로 거주되었으며, 마지막 동굴 거주자는 테우엘체 부족의 조상이었을 가능성이 있다.[30][31][50]
4. 2. 현대 연구 및 보호
1941년, 이탈리아 출신의 선교사이자 탐험가인 알베르토 마리아 데 아고스티니 신부가 처음 이 유적지에 대해 기록했다.[32][53] 이후 1949년 라플라타 박물관의 탐사대가 조사를 실시했다.[1] 1964년부터 아르헨티나 측량사이자 고고학자인 카를로스 그라딘과 그의 팀은 이 동굴과 그 예술품에 대한 30년 간의 연구를 시작하며, 이 유적지에 대한 가장 실질적인 연구를 시작했다.[33][21] 그라딘의 연구는 동굴의 다양한 양식적 계열을 식별하는 데 기여했다.[3]
쿠에바 데 라스 마노스는 1993년부터 아르헨티나의 국립 역사 기념물로 지정되었다.[34][35] 1995년에는 국립 인류학 및 라틴 아메리카 사상 연구소(INAPL)가 시작한 아르헨티나 암석 예술 연구의 주요 대상이 되었다.[38] 이 연구를 통해 1999년 쿠에바 데 라스 마노스는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었다.[38] 2015년에는 환경 단체인 Rewilding Argentina가 개인 목장에서 이 토지를 매입했다.[36] 2018년에는 자체 주립 공원을 조성했으며,[8] 2020년 현재 Rewilding Argentina가 기증하여 주 정부가 직접 관리하고 있다.[36]
5. 지질
이 동굴은 이그님브라이트[37]와 바히아 라우라 군[38]의 다른 화산암으로 구성된 협곡 벽에 위치해 있다. 이 암석은 약 1억 5천만 년 전 쥐라기 시대에 더 큰 데세라도 매시프의 일부로 형성되었다.[38][39] 동굴과 주변의 돌출부는 약한 암석이 침식되어 강한 암석으로 구성된 지형을 남기는 차등 침식을 통해 암벽에서 조각되었다.[38] 이러한 침식은 빙하의 유출수에 의해 공급되어 촌 아이케 지층을 깎아 핀투라스 협곡을 형성한 핀투라스 강에 의해 발생했다.[38] 동굴 자체는 강이 주변 협곡 벽보다 더 많이 침식한 암벽의 균열에 위치해 있다.[39]
이 유적지는 깊이가 약 20 미터인 동굴 자체, 두 개의 노두, 입구 양쪽 벽으로 구성되어 있다.[40] 입구는 북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높이는 약 15 미터이고 너비는 15 미터이다.[40] 동굴 벽의 그림은 약 60 x 200 미터에 걸쳐 있다.[40] 동굴의 초기 높이는 10 미터이다.[62] 내부의 지면은 위쪽으로 경사져 있으며, 결과적으로 높이는 결국 2 미터 이하로 줄어든다.[62]
6. 암각화
쿠에바 데 라스 마노스(Cueva de las Manos)는 암벽에 여러 콜라주로 새겨진 수백 개의 손 그림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41] 쿠에바 데 라스 마노스의 예술 작품은 신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예술 작품 중 일부이며, 파타고니아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암각화이다.[21][31][42][43] 이 예술 작품은 기원전 7,300년경에서 서기 700년 사이, 선 콜럼비아 시대 남아메리카의 고고 시대에 제작되었다.[44][45] 학자 랄프 크레인(Ralph Crane)과 리사 플레처(Lisa Fletcher)는 쿠에바 데 라스 마노스의 암각화가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동굴 벽화를 포함한다고 주장한다.[46]
이 예술 작품은 동굴 내부와 주변 절벽 표면을 장식한다.[47] 주제별로 사람, 그들이 먹었던 동물, 그리고 사람의 손의 세 가지 기본 범주로 나눌 수 있다.[21] 이 지역의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과나코를 사냥했는데, 이는 그들의 예술 작품에서 이 생물을 토템처럼 묘사하는 방식으로 반영되었다.[21]
여러 시기에 걸쳐 여러 파의 사람들이 동굴을 점유했다.[30] 그림의 연대는 손 콜라주의 스텐실 예술 작품을 만들기 위해 동굴 벽에 페인트를 뿌리는 데 사용된 뼈 파이프의 잔해,[48] 예술 작품 자체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76] 그리고 예술 작품이 새겨진 암벽 조각을 포함한 층위 연대 측정을 통해 계산할 수 있다.[49] 그림을 만드는 데 사용된 안료의 화학 분석, 예술의 다양한 부분의 스타일리시한 측면과 중첩 (겹침) 분석을 통해 진품임이 확인되었다.[3][51] 학자 아이린 패닝(Irene Fanning)과 동료들에 따르면, 이는 "남아메리카 초창기 수렵 채집 집단에 대한 최고의 물질적 증거"이다.[50]
전문가들은 카를로스 그라딘이 제안하고 다른 연구자들이 수정 및 적용한 바에 따라, 암각화를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양식 그룹으로 분류했다:[77] A, B, B1, C이며,[78] 각각 ''리오 핀투라스 I'', ''II'', ''III'', ''IV''로도 알려져 있다.[3] 처음 두 그룹은 A 그룹의 역동적인 과나코 묘사와 B 그룹의 정적인 묘사를 구별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고안되었다.[78]
;'''형태'''
동굴 초기 작품들은 대상이 실제 삶에서 보였을 모습과 거의 흡사한 자연주의적인 형태였다.[51]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묘사는 추상적으로 변했고, 대상이 일반적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다른 형태를 띠게 되었다.[21][3]
동굴 안팎에는 2,000개가 넘는 손자국이 있는데,[62] 대부분은 네거티브, 즉 스텐실 방식으로 칠해졌다.[52] 왼손이 829개, 오른손이 31개로,[53][54][52] 대부분의 화가들이 오른손으로 뼈로 만든 분사 도구를 잡았음을 알 수 있다.[52][55][56][76] 일부 손자국에는 손가락이 없는데, 이는 괴사, 절단, 기형 때문일 수 있지만, 수화를 사용했거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손가락을 구부린 것을 나타낼 수도 있다.[57][58]
바위 표면의 다양한 깊이는 작품의 "캔버스"를 변화시키고, 보는 사람과의 다양한 깊이는 관람객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이미지가 보이는 방식을 변화시킨다.[59] 서로 다른 영역에서 손자국이 많이 겹쳐져 있으며,[21][3] 일부 지역에는 너무 많은 손자국이 있어서 팔림프세스트 배경을 형성한다.[60][61]
또한 인간, 과나코,[30] 레아, 고양이과 동물, 남안데스 사슴,[80] 및 기타 동물뿐만 아니라 기하학적 모양, 지그재그 패턴, 태양의 표현, 사냥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62][56] 사냥 장면은 볼라 사용을 포함한 다양한 사냥 기술을 자연주의적으로 묘사한 것이다.[30][22] 천장에는 빨간 점들도 있는데, 이는 아마도 사냥용 볼라스를 잉크에 담가 위로 던져서 만든 것일 것이다.[3][56]
예술 작품에 묘사된 야생 동물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지역에서 발견된다.[47][7]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원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의존했던 과나코이다.[21] 사냥꾼들이 과나코를 포위하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묘사되어[62] 이것이 선호되는 사냥 전술이었음을 시사한다.[21]
;'''문화적 맥락'''
이 작품을 만든 사람들의 문화에 대해서는 그들이 사용한 도구와 사냥했던 것 외에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현대 연구는 그들의 문화와 그것을 창조한 사회의 삶이 어떠했는지 추측하는 데 그치고 있다.[21] 하지만, 수천 년 동안 매우 많은 사람들이 이 예술 작품에 기여했다는 사실은 이 동굴이 그 벽에 그림을 그린 예술가들에게 매우 큰 의미를 지녔음을 시사한다.[3] 이 예술 작품은 이 지역 사람들이 그들 문화에 상징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65]
그 목적에 관계없이, 이 예술 작품은 이 지역에 거주했던 사람들의 집단 기억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초기 집단은 수천 년에 걸쳐 이어진 이야기를 통해 후기 집단에게 영향을 미쳤다.[66] 과나코의 생식 주기와 집단 사냥과 같은 예술 주제에서 수렵 채집인 문화의 중요한 측면이 드러난다.[66] 이 유적지는 또한 예술가들과 깊은 사회적, 개인적 연관성을 지녔으며, 같은 집단이 계절마다 이곳으로 돌아와 동굴에서 예술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는 일종의 의식이었다.[66]
;'''목적'''
이 예술 작품의 정확한 기능이나 목적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부 연구에 따르면 종교적 또는 의례적 목적[21][67]과 장식적 목적[57]을 모두 가졌을 수 있다고 한다. 메리 비스너-행크스와 같은 일부 학자들은 손자국이 기억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55], 또는 그들이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기록하려는 욕망[56][68]을 나타낸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장 클로테스는 "그러한 행동의 가능성은 사실상 0에 가깝다"라고 말하며 이러한 관점에 이의를 제기했다.[67] 대신, 클로테스는 선사 시대의 샤머니즘이 "우리가 결코 알 수 없을 의례"의 일부로서 예술 작품의 목적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설명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가설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으며, 여전히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한다.[67] 또 다른 가설은 이 예술 작품이 민족 간의 경계 표지 역할을 하며, 영토성을 보여주고 집결지 역할을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협력을 보장했다는 것이다.[69][70] 또한 이 작품들이 사냥 마법의 일부였다는 가설[71]도 있으며, 앨런 손은 사냥할 수 있는 동물의 수를 늘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제작되었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72]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한 장소에 모여 암각화에 기여했다는 사실은 참여자들에게 큰 문화적 중요성, 또는 최소한 유용성을 보여준다.[3]
;'''재료'''
암각화에 사용된 접착제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광물 안료에는 산화철, 고령토, 나트로자로사이트, 이산화 망간(연망간석)[73], 산화구리[74][30][7] 등이 포함되어 있다. 산화철은 빨강과 보라색을, 고령토는 흰색을, 나트로자로사이트는 노란색을, 이산화 망간은 검은색을 낸다. 산화구리는 녹색을 낸다.[74] 헤마타이트, 갈철석, 녹토, 석영, 그리고 수산석회도 검출되었다.[73][75] 석고가 사용되었으며,[73] 이를 통해 안료가 암벽 표면에 더 잘 부착될 수 있었다.[76]
;'''양식 그룹 A'''
A 양식(Estilo Aes 또는 리오 핀투라스 I)은 이 지역에 살았던 최초의 수렵 채집인들의 예술이다.[3] 이 양식은 동굴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기원전 7,3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50][31][21] 이 양식은 자연주의적이고 역동적이며, 다색의 역동적인 사냥 장면과 부정적인 인간 손 모티프를 포함한다.[31][3] 이 이미지는 예술의 일부를 형성하기 위해 암석 표면 자체의 홈과 불규칙성을 활용한다.[3][79] 이는 특히 이러한 불규칙성을 협곡 묘사와 같이 이미지의 배경 지형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는 점에서 사실이다.[79] 이 장면에 묘사된 사냥꾼들은 아마도 장거리 사냥꾼이었을 것이며, 이 장면은 종종 과나코 사냥 시 사용된 매복 또는 포위 전술을 묘사했다.[3]
2010년부터 이 양식 그룹은 색상/재료별로 분류된 5가지 하위 양식 또는 연작으로 더 세분화되었다.[80] 이 연작은 주로 황토색과 약간의 붉은색으로 구성된 A1(황토색 연작), 주로 검은색이지만 약간의 짙은 보라색을 포함하는 A2(검은색 연작), 주로 붉은색을 통합하는 A3(붉은색 연작), 보라색 붉은색과 짙은 붉은색을 사용하는 A4(보라색/짙은 붉은색 연작), 그리고 주로 흰색을 사용하지만 황토색을 통합하는 A5(흰색/노란색 연작)로 분류된다.[80] 층서학 측면에서 A2는 일반적으로 A1을 덮고, A3는 A1과 A2를 덮으며, A4는 A3과 A2를 덮고, A5는 다른 모든 층 위에 위치한다.[80] A 양식 그룹의 하위 양식은 연대순으로 번호가 매겨진다. 즉, A1이 가장 오래되었고 A5가 가장 젊다.[81]
특히 검은색 연작은 후속 예술 양식으로 이어지는 여러 예술적 혁신을 도입했다.[19] 여기에는 후기 예술 작품에 통합될 조감도 및 계층적 비례 원근법 도입이 포함된다.[19] 또한 검은색과 짙은 보라색 형태의 대비되는 색상을 도입하여 별개의 표현을 구분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이는 동굴 예술 역사 전반에 걸쳐 사용될 방법이다.[19] 이러한 영향의 대부분은 기원전 5,400년까지 사냥 장면의 양식으로 이어진다.[82]
A 양식은 기원전 4,770/4,675년경에 발생한 허드슨 산의 H1 분화로 인해 종료되었으며,[84] 리오 핀투라스 지역의 폐지로 이어졌다.[83] 이 분화가 이 양식 그룹의 종말을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84]
;'''양식 그룹 B와 B1'''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붉은색으로 묘사된 사람 형상의 막대 인물, 양식화된 스타일은 양식 그룹 C의 특징이다. 양식 그룹 B에 속하는 붉은색 과나코.
기원전 5,000년경부터 기원전 1,300년경까지 존속했던 새로운 문화 집단이 현재 양식 그룹 B(리오 핀투라스 II)와 B1(리오 핀투라스 III)으로 간주되는 예술을 창조했다.[3][31] 이전 집단의 특징이었던 활기찬 사냥 장면을 대신하여, 임신했을 가능성이 있는 큰 배를 가진 정적이고 고립된 과나코 무리가 등장한다.[31][3][85] 이 임신한 과나코와 그들의 스타일과 구성은 처음에는 양식 그룹 A의 흑색 계열의 일부로 소개되었다.[19] 여러 색상의 2,000개 정도의 겹쳐진 손자국이 그룹 B와 관련되어 있으며,[3] 사람과 동물의 발자국을 드물게 묘사한 모티프도 이에 속한다.[21]
B의 하위 그룹인 그룹 B1에서는 형태가 점점 더 도식적으로 변하고, 사람과 동물의 형상이 더욱 양식화된다.[86] 이 그룹에는 손 스텐실, 볼라 자국, 점선 패턴이 포함된다.[3][31]
;'''양식 그룹 C'''
리오 핀투라스 IV의 양식 그룹 C는 서기 700년경에 시작되었으며 동굴 내 양식 시퀀스의 마지막을 장식한다.[3][31] 이 그룹은 추상적인 기하학적 도형을 중심으로 하며,[31] 동물과 사람의 매우 도식적인 실루엣, 원, 지그재그 패턴, 점, 그리고 더 큰 그룹 위에 겹쳐진 더 많은 손들을 포함한다.[3][31] 주요 색상은 붉은색이다.[3][31]
6. 1. 형태
동굴 초기 작품들은 대상이 실제 삶에서 보였을 모습과 거의 흡사한 자연주의적인 형태였다.[51]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묘사는 추상적으로 변했고, 대상이 일반적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다른 형태를 띠게 되었다.[21][3]동굴 안팎에는 2,000개가 넘는 손자국이 있는데,[62] 대부분은 네거티브, 즉 스텐실 방식으로 칠해졌다.[52] 왼손이 829개, 오른손이 31개로,[53][54][52] 대부분의 화가들이 오른손으로 뼈로 만든 분사 도구를 잡았음을 알 수 있다.[52][55][56][76] 일부 손자국에는 손가락이 없는데, 이는 괴사, 절단, 기형 때문일 수 있지만, 수화를 사용했거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손가락을 구부린 것을 나타낼 수도 있다.[57][58]
바위 표면의 다양한 깊이는 작품의 "캔버스"를 변화시키고, 보는 사람과의 다양한 깊이는 관람객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이미지가 보이는 방식을 변화시킨다.[59] 서로 다른 영역에서 손자국이 많이 겹쳐져 있으며,[21][3] 일부 지역에는 너무 많은 손자국이 있어서 팔림프세스트 배경을 형성한다.[60][61]
또한 인간, 과나코,[30] 레아, 고양이과 동물, 남안데스 사슴,[80] 및 기타 동물뿐만 아니라 기하학적 모양, 지그재그 패턴, 태양의 표현, 사냥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62][56] 사냥 장면은 볼라 사용을 포함한 다양한 사냥 기술을 자연주의적으로 묘사한 것이다.[30][22] 천장에는 빨간 점들도 있는데, 이는 아마도 사냥용 볼라스를 잉크에 담가 위로 던져서 만든 것일 것이다.[3][56]
예술 작품에 묘사된 야생 동물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지역에서 발견된다.[47][7]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원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의존했던 과나코이다.[21] 사냥꾼들이 과나코를 포위하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묘사되어[62] 이것이 선호되는 사냥 전술이었음을 시사한다.[21]
6. 2. 문화적 맥락
이 작품을 만든 사람들의 문화에 대해서는 그들이 사용한 도구와 사냥했던 것 외에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현대 연구는 그들의 문화와 그것을 창조한 사회의 삶이 어떠했는지 추측하는 데 그치고 있다.[21] 하지만, 수천 년 동안 매우 많은 사람들이 이 예술 작품에 기여했다는 사실은 이 동굴이 그 벽에 그림을 그린 예술가들에게 매우 큰 의미를 지녔음을 시사한다.[3] 이 예술 작품은 이 지역 사람들이 그들 문화에 상징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65]그 목적에 관계없이, 이 예술 작품은 이 지역에 거주했던 사람들의 집단 기억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초기 집단은 수천 년에 걸쳐 이어진 이야기를 통해 후기 집단에게 영향을 미쳤다.[66] 과나코의 생식 주기와 집단 사냥과 같은 예술 주제에서 수렵 채집인 문화의 중요한 측면이 드러난다.[66] 이 유적지는 또한 예술가들과 깊은 사회적, 개인적 연관성을 지녔으며, 같은 집단이 계절마다 이곳으로 돌아와 동굴에서 예술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는 일종의 의식이었다.[66]
6. 2. 1. 목적
이 예술 작품의 정확한 기능이나 목적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부 연구에 따르면 종교적 또는 의례적 목적[21][67]과 장식적 목적[57]을 모두 가졌을 수 있다고 한다. 메리 비스너-행크스와 같은 일부 학자들은 손자국이 기억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55], 또는 그들이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기록하려는 욕망[56][68]을 나타낸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장 클로테스는 "그러한 행동의 가능성은 사실상 0에 가깝다"라고 말하며 이러한 관점에 이의를 제기했다.[67] 대신, 클로테스는 선사 시대의 샤머니즘이 "우리가 결코 알 수 없을 의례"의 일부로서 예술 작품의 목적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설명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가설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으며, 여전히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한다.[67] 또 다른 가설은 이 예술 작품이 민족 간의 경계 표지 역할을 하며, 영토성을 보여주고 집결지 역할을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협력을 보장했다는 것이다.[69][70] 또한 이 작품들이 사냥 마법의 일부였다는 가설[71]도 있으며, 앨런 손은 사냥할 수 있는 동물의 수를 늘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제작되었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72]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한 장소에 모여 암각화에 기여했다는 사실은 참여자들에게 큰 문화적 중요성, 또는 최소한 유용성을 보여준다.[3]6. 3. 재료
암각화에 사용된 접착제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광물 안료에는 산화철, 고령토, 나트로자로사이트, 이산화 망간(연망간석)[73], 산화구리[74][30][7] 등이 포함되어 있다. 산화철은 빨강과 보라색을, 고령토는 흰색을, 나트로자로사이트는 노란색을, 이산화 망간은 검은색을 낸다. 산화구리는 녹색을 낸다.[74] 헤마타이트, 갈철석, 녹토, 석영, 그리고 수산석회도 검출되었다.[73][75] 석고가 사용되었으며,[73] 이를 통해 안료가 암벽 표면에 더 잘 부착될 수 있었다.[76]6. 4. 양식 그룹
전문가들은 카를로스 그라딘이 제안하고 다른 연구자들이 수정 및 적용한 바에 따라, 암각화를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양식 그룹으로 분류했다:[77] A, B, B1, C이며,[78] 각각 ''리오 핀투라스 I'', ''II'', ''III'', ''IV''로도 알려져 있다.[3] 처음 두 그룹은 A 그룹의 역동적인 과나코 묘사와 B 그룹의 정적인 묘사를 구별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고안되었다.[78]=== 양식 그룹 A ===
A 양식(Estilo Aes 또는 리오 핀투라스 I)은 이 지역에 살았던 최초의 수렵 채집인들의 예술이다.[3] 이 양식은 동굴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기원전 7,3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50][31][21] 이 양식은 자연주의적이고 역동적이며, 다색의 역동적인 사냥 장면과 부정적인 인간 손 모티프를 포함한다.[31][3] 이 이미지는 예술의 일부를 형성하기 위해 암석 표면 자체의 홈과 불규칙성을 활용한다.[3][79] 이는 특히 이러한 불규칙성을 협곡 묘사와 같이 이미지의 배경 지형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는 점에서 사실이다.[79] 이 장면에 묘사된 사냥꾼들은 아마도 장거리 사냥꾼이었을 것이며, 이 장면은 종종 과나코 사냥 시 사용된 매복 또는 포위 전술을 묘사했다.[3]
2010년부터 이 양식 그룹은 색상/재료별로 분류된 5가지 하위 양식 또는 연작으로 더 세분화되었다.[80] 이 연작은 주로 황토색과 약간의 붉은색으로 구성된 A1(황토색 연작), 주로 검은색이지만 약간의 짙은 보라색을 포함하는 A2(검은색 연작), 주로 붉은색을 통합하는 A3(붉은색 연작), 보라색 붉은색과 짙은 붉은색을 사용하는 A4(보라색/짙은 붉은색 연작), 그리고 주로 흰색을 사용하지만 황토색을 통합하는 A5(흰색/노란색 연작)로 분류된다.[80] 층서학 측면에서 A2는 일반적으로 A1을 덮고, A3는 A1과 A2를 덮으며, A4는 A3과 A2를 덮고, A5는 다른 모든 층 위에 위치한다.[80] A 양식 그룹의 하위 양식은 연대순으로 번호가 매겨진다. 즉, A1이 가장 오래되었고 A5가 가장 젊다.[81]
특히 검은색 연작은 후속 예술 양식으로 이어지는 여러 예술적 혁신을 도입했다.[19] 여기에는 후기 예술 작품에 통합될 조감도 및 계층적 비례 원근법 도입이 포함된다.[19] 또한 검은색과 짙은 보라색 형태의 대비되는 색상을 도입하여 별개의 표현을 구분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이는 동굴 예술 역사 전반에 걸쳐 사용될 방법이다.[19] 이러한 영향의 대부분은 기원전 5,400년까지 사냥 장면의 양식으로 이어진다.[82]
A 양식은 기원전 4,770/4,675년경에 발생한 허드슨 산의 H1 분화로 인해 종료되었으며[84] 리오 핀투라스 지역의 폐지로 이어졌다.[83] 이 분화가 이 양식 그룹의 종말을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84]
=== 양식 그룹 B와 B1 ===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붉은색으로 묘사된 사람 형상의 막대 인물, 양식화된 스타일은 양식 그룹 C의 특징이다. 양식 그룹 B에 속하는 붉은색 과나코.
기원전 5,000년경부터 기원전 1,300년경까지 존속했던 새로운 문화 집단이 현재 양식 그룹 B(리오 핀투라스 II)와 B1(리오 핀투라스 III)으로 간주되는 예술을 창조했다.[3][31] 이전 집단의 특징이었던 활기찬 사냥 장면을 대신하여, 임신했을 가능성이 있는 큰 배를 가진 정적이고 고립된 과나코 무리가 등장한다.[31][3][85] 이 임신한 과나코와 그들의 스타일과 구성은 처음에는 양식 그룹 A의 흑색 계열의 일부로 소개되었다.[19] 여러 색상의 2,000개 정도의 겹쳐진 손자국이 그룹 B와 관련되어 있으며,[3] 사람과 동물의 발자국을 드물게 묘사한 모티프도 이에 속한다.[21]
B의 하위 그룹인 그룹 B1에서는 형태가 점점 더 도식적으로 변하고, 사람과 동물의 형상이 더욱 양식화된다.[86] 이 그룹에는 손 스텐실, 볼라 자국, 점선 패턴이 포함된다.[3][31]
=== 양식 그룹 C ===
리오 핀투라스 IV의 양식 그룹 C는 서기 700년경에 시작되었으며 동굴 내 양식 시퀀스의 마지막을 장식한다.[3][31] 이 그룹은 추상적인 기하학적 도형을 중심으로 하며,[31] 동물과 사람의 매우 도식적인 실루엣, 원, 지그재그 패턴, 점, 그리고 더 큰 그룹 위에 겹쳐진 더 많은 손들을 포함한다.[3][31] 주요 색상은 붉은색이다.[3][31]
6. 4. 1. 양식 그룹 A
A 양식(Estilo Aes 또는 리오 핀투라스 I)은 이 지역에 살았던 최초의 수렵 채집인들의 예술이다.[3] 이 양식은 동굴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기원전 7,3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50][31][21] 이 양식은 자연주의적이고 역동적이며, 다색의 역동적인 사냥 장면과 부정적인 인간 손 모티프를 포함한다.[31][3] 이 이미지는 예술의 일부를 형성하기 위해 암석 표면 자체의 홈과 불규칙성을 활용한다.[3][79] 이는 특히 이러한 불규칙성을 협곡 묘사와 같이 이미지의 배경 지형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는 점에서 사실이다.[79] 이 장면에 묘사된 사냥꾼들은 아마도 장거리 사냥꾼이었을 것이며, 이 장면은 종종 관코 사냥 시 사용된 매복 또는 포위 전술을 묘사했다.[3]2010년부터 이 양식 그룹은 색상/재료별로 분류된 5가지 하위 양식 또는 연작으로 더 세분화되었다.[80] 이 연작은 주로 황토색과 약간의 붉은색으로 구성된 A1(황토색 연작), 주로 검은색이지만 약간의 짙은 보라색을 포함하는 A2(검은색 연작), 주로 붉은색을 통합하는 A3(붉은색 연작), 보라색 붉은색과 짙은 붉은색을 사용하는 A4(보라색/짙은 붉은색 연작), 그리고 주로 흰색을 사용하지만 황토색을 통합하는 A5(흰색/노란색 연작)로 분류된다.[80] 층서학 측면에서 A2는 일반적으로 A1을 덮고, A3는 A1과 A2를 덮으며, A4는 A3과 A2를 덮고, A5는 다른 모든 층 위에 위치한다.[80] A 양식 그룹의 하위 양식은 연대순으로 번호가 매겨진다. 즉, A1이 가장 오래되었고 A5가 가장 젊다.[81]
특히 검은색 연작은 후속 예술 양식으로 이어지는 여러 예술적 혁신을 도입했다.[19] 여기에는 후기 예술 작품에 통합될 조감도 및 계층적 비례 원근법 도입이 포함된다.[19] 또한 검은색과 짙은 보라색 형태의 대비되는 색상을 도입하여 별개의 표현을 구분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이는 동굴 예술 역사 전반에 걸쳐 사용될 방법이다.[19] 이러한 영향의 대부분은 기원전 5,400년까지 사냥 장면의 양식으로 이어진다.[82]
A 양식은 기원전 4,770/4,675년경에 발생한 허드슨 산의 H1 분화로 인해 종료되었으며[84] 리오 핀투라스 지역의 폐지로 이어졌다.[83] 이 분화가 이 양식 그룹의 종말을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84]
6. 4. 2. 양식 그룹 B와 B1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붉은색으로 묘사된 사람 형상의 막대 인물, 양식화된 스타일은 양식 그룹 C의 특징이다. 양식 그룹 B에 속하는 붉은색 과나코.
기원전 5,000년경부터 기원전 1,300년경까지 존속했던 새로운 문화 집단이 현재 양식 그룹 B(리오 핀투라스 II)와 B1(리오 핀투라스 III)으로 간주되는 예술을 창조했다.[3][31] 이전 집단의 특징이었던 활기찬 사냥 장면을 대신하여, 임신했을 가능성이 있는 큰 배를 가진 정적이고 고립된 과나코 무리가 등장한다.[31][3][85] 이 임신한 과나코와 그들의 스타일과 구성은 처음에는 양식 그룹 A의 흑색 계열의 일부로 소개되었다.[19] 여러 색상의 2,000개 정도의 겹쳐진 손자국이 그룹 B와 관련되어 있으며,[3] 사람과 동물의 발자국을 드물게 묘사한 모티프도 이에 속한다.[21]
B의 하위 그룹인 그룹 B1에서는 형태가 점점 더 도식적으로 변하고, 사람과 동물의 형상이 더욱 양식화된다.[86] 이 그룹에는 손 스텐실, 볼라 자국, 점선 패턴이 포함된다.[3][31]
6. 4. 3. 양식 그룹 C
리오 핀투라스 IV의 양식 그룹 C는 서기 700년경에 시작되었으며 동굴 내 양식 시퀀스의 마지막을 장식한다.[3][31] 이 그룹은 추상적인 기하학적 도형을 중심으로 하며,[31] 동물과 사람의 매우 도식적인 실루엣, 원, 지그재그 패턴, 점, 그리고 더 큰 그룹 위에 겹쳐진 더 많은 손들을 포함한다.[3][31] 주요 색상은 붉은색이다.[3][31]7. 문화적 의의 및 보존
매년 2월, 인근 마을 모레노에서는 동굴을 기리는 "쿠에바 데 라스 마노스 민속 축제(Festival Folklórico Cueva de las Manos)"가 열린다.[3][87]
이 동굴은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한다.[89][2][90][91] 1999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목록에 등재된 이후, 이 유적지를 방문하는 관광객 수는 4배 증가했다.[92][93] 2020년 기준으로, 쿠에바 데 라스 마노스는 연간 약 8,000명이 방문하여 유적지 보존에 새로운 과제가 발생했다.[36][3] 현재 가장 심각한 위협은 낙서이며,[73][34] 방문객들이 벽에서 그림 조각을 가져가거나 그림을 만지는 등 다른 형태의 기물 파손이 뒤따른다.[94]
이에 대응하여 유적지에는 체인 링크 울타리가 설치되었고,[34][95] 방문객의 이동을 통제하기 위해 산책로가 설치되었다.[92] 유적지를 방문하려면 투어 가이드의 동반이 필수적이다.[96][95] 유적지에는 허가된 산책로, 가이드 숙소, 난간 및 주차장이 있으며,[89] INAPL(국립 선사학 연구소)과 국립 과학 기술 연구 위원회(CONICET)의 전문가팀이 이러한 시설의 건설을 감독했다.[89][97] 지역 가이드를 포함하여 유적지의 관광객 및 방문객을 교육하고[100][98] 지역 사회의 더 큰 참여를 촉진하기 위한 인식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89] 이 유적지의 암각화는 가상 현실 체험을 위해 360° 비디오로 기록 및 문서화되고 있다.[99]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지방 정부,[100] 아르헨티나 정부, 그리고 유네스코는 유적지 보호를 위해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101] 특히 지방 정부는 추가 인력 확보 및 상주 고고학자의 필요성을 포함하여 INAPL의 권고 사항을 제대로 따르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100]
8. 세계유산
쿠에바 데 라스 마노스는 1999년에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8. 1. 등록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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