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명례리 명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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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밀양 명례리 명례성당은 1897년 순교자 신석복 마르코의 출생지 옆에 건립된 경남 지역 최초의 천주교회 본당이다. 신석복은 병인박해 때 순교했으며, 초대 주임신부 강성삼은 한국에서 세 번째 신부였다. 1928년 기와지붕 성전이 봉헌되었으나 태풍으로 파괴되어 1938년 잔해를 이용하여 축소 복원되었다. 낙동강 하류에 위치하며, 민속건축적 요소와 일식 건축 요소가 혼합된 근대기 과도기적 건축 양식을 보여주며, 종교사적, 역사적, 근대건축사적으로 보존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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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 명례리 명례성당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 | |
| 명칭 | 밀양 명례리 명례성당 |
| 한자 명칭 | 密陽 明禮里 明禮聖堂 |
| 위치 |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명례안길 44-3 |
| 문화재 정보 | |
| 국가 | 대한민국 |
| 유형 | 문화재자료 |
| 지정 번호 | 526 |
| 지정일 | 2011년 2월 24일 |
| 시대 | 일제강점기 |
| 소유자 | (재) 마산교구 천주교유지재단 |
| 면적 | 65m2 |
| 수량 | 1동 |
2. 역사
명례성당은 1897년 순교자 신석복 마르코(1828~1866년)의 출생지 바로 옆에 건립된 성당으로, 경남지역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천주교회 본당이다. 신석복은 1828년 명례리 1209번지에서 태어난 소금장수로, 1866년 병인박해 때 김해 가산에서 체포되어 대구감영에서 순교하였다. 그는 순교 당시 "나를 놓아준다 해도 다시 천주교를 봉행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으며, 그의 유해는 현재 강 건너 진영 천주교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명례 본당의 초대 주임 신부였던 강성삼 신부(1866~1903년)는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에 이어 한국에서 세 번째로 신부가 된 인물이다. 1926년 명례에 부임한 권영조 신부는 1928년 기와지붕 성전을 봉헌하였으나, 안타깝게도 1936년 태풍으로 인해 건물이 파괴되어 현재는 주춧돌만 남아있다. 현재의 성당 건물은 1938년 파괴된 성당의 잔해를 이용하여 축소 복원한 것이다. 성당은 낙동강 하류 좌안의 독립구릉 남사면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명례성당이 위치한 수산 지역은 낙동강과 인접하여 수운과 육로가 발달한 곳이었다. 성당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홑처마 우진각지붕 형태이다. 정면 중앙칸에는 현관을 설치하고 별도의 박공지붕을 덧붙여 전체적으로 T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평면은 좌측부터 제의실 1칸, 경당 4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좌측에 제대를 배치하고 내부에는 나무 기둥과 인방을 사용하여 남녀 공간을 구분하고 출입구도 আলাদা 설치하였다. 공포 양식은 도리만 있는 민도리집이며, 상부 가구는 도리가 3개인 3량가 구조이다. 바닥은 장마루로 마감되어 있다.
2. 1. 설립 배경
명례성당은 1897년 순교자 신석복 마르코(1828~1866년)의 출생지 바로 옆에 있는 성당으로 경남지역에서 가장 일찍 설립된 천주교회 본당이다. 신석복은 1828년에 명례리 1209년에 출생한 소금장수였는데 1866년 병인박해 때 김해 가산에서 붙잡혀 대구감영에서 순교했다. 순교할 때 “나를 놓아준다 해도 다시 천주교를 봉행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유해는 지금 강 건너 진영 천주교 묘지에 봉안되어 있다.명례 본당의 초대 주임이었던 강성삼 신부(1866~1903년)는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에 이어 한국의 세 번째 신부이다. 1926년에 명례에 부임한 권영조 신부는 1928년에 기와지붕의 성전을 봉헌하였는데 안타깝게도 그 건물은 1936년 태풍으로 전파되고 주춧돌만 남아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38년에 파괴된 성당의 잔해를 사용하여 축소 복원한 것이다. 본당은 낙동강 하류역의 좌안에 독립구릉 남사면부에 남향하여 자리잡고 있다.
당시의 명례성당이 입지한 수산은 낙동강과 인접하여 수운과 육로가 발달한 곳이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이며 홑처마 우진각지붕이다. 정면에 어칸(중앙칸)에 현관을 두고 별도의 박공지붕을 부가하여 전체적인 평면은 T자형이다. 평면구성은 좌측부터 제의실 1칸, 경당 4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좌측에 제대를 두고 내부에는 나무기둥과 인방으로 남녀의 사용공간을 구분하였고 출입구도 남녀 따로 두었다. 공포 양식은 도리만 있는 민도리집이며 상부가구는 도리가 3개 있는 3량가이다. 바닥은 장마루널로 마감되어 있다.
2. 2. 초기 역사 (1897년 ~ 1936년)
명례성당은 1897년 순교자 신석복 마르코(1828~1866년)의 출생지 바로 옆에 있는 성당으로 경남지역에서 가장 일찍 설립된 천주교회 본당이다. 신석복은 1828년에 명례리 1209번지에서 출생한 소금장수였는데 1866년 병인박해 때 김해 가산에서 붙잡혀 대구감영에서 순교했다. 순교할 때 “나를 놓아준다 해도 다시 천주교를 봉행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유해는 지금 강 건너 진영 천주교 묘지에 봉안되어 있다.명례 본당의 초대 주임이었던 강성삼 신부(1866~1903년)는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에 이어 한국의 세 번째 신부이다. 1926년에 명례에 부임한 권영조 신부는 1928년에 기와지붕의 성전을 봉헌하였는데 안타깝게도 그 건물은 1936년 태풍으로 전파되고 주춧돌만 남아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38년에 파괴된 성당의 잔해를 사용하여 축소 복원한 것이다. 본당은 낙동강 하류역의 좌안에 독립구릉 남사면부에 남향하여 자리잡고 있다.
당시의 명례성당이 입지한 수산은 낙동강과 인접하여 수운과 육로가 발달한 곳이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이며 홑처마 우진각지붕이다. 정면에 어칸(중앙칸)에 현관을 두고 별도의 박공지붕을 부가하여 전체적인 평면은 T자형이다. 평면구성은 좌측부터 제의실 1칸, 경당 4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좌측에 제대를 두고 내부에는 나무기둥과 인방으로 남녀의 사용공간을 구분하였고 출입구도 남녀 따로 두었다. 공포 양식은 도리만 있는 민도리집이며 상부가구는 도리가 3개 있는 3량가이다. 바닥은 장마루널로 마감되어 있다.
2. 3. 복원과 현재 (1938년 ~ 현재)
명례성당은 1897년 순교자 신석복 마르코(1828~1866년)의 출생지 바로 옆에 있는 성당으로 경남지역에서 가장 일찍 설립된 천주교회 본당이다. 신석복은 1828년에 명례리 1209년에 출생한 소금장수였는데 1866년 병인박해 때 김해 가산에서 붙잡혀 대구감영에서 순교했다. 순교할 때 “나를 놓아준다 해도 다시 천주교를 봉행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유해는 지금 강 건너 진영 천주교 묘지에 봉안되어 있다.명례 본당의 초대 주임이었던 강성삼 신부(1866~1903년)는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에 이어 한국의 세 번째 신부이다. 1926년에 명례에 부임한 권영조 신부는 1928년에 기와지붕의 성전을 봉헌하였는데 안타깝게도 그 건물은 1936년 태풍으로 전파되고 주춧돌만 남아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38년에 파괴된 성당의 잔해를 사용하여 축소 복원한 것이다. 본당은 낙동강 하류역의 좌안에 독립구릉 남사면부에 남향하여 자리잡고 있다.
당시의 명례성당이 입지한 수산은 낙동강과 인접하여 수운과 육로가 발달한 곳이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이며 홑처마 우진각지붕이다. 정면에 어칸(중앙칸)에 현관을 두고 별도의 박공지붕을 부가하여 전체적인 평면은 T자형이다. 평면구성은 좌측부터 제의실 1칸, 경당 4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좌측에 제대를 두고 내부에는 나무기둥과 인방으로 남녀의 사용공간을 구분하였고 출입구도 남녀 따로 두었다. 공포 양식은 도리만 있는 민도리집이며 상부가구는 도리가 3개 있는 3량가이다. 바닥은 장마루널로 마감되어 있다.
3. 건축
3. 1. 위치와 구조
3. 2. 내부 구성
3. 3. 건축 양식
4. 지정 사유
명례성당은 전통적인 고급건축방식이 아닌 민속건축적 요소에 일식건축 요소가 가미된 건물로서 근대기의 과도기적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는 문화유산이다. 종교사적 의미는 물론 지역의 역사성과 근대건축사적으로도 보존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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