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얀급 장갑순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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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얀급 장갑순양함은 1890년대 말 러시아 제국 해군을 위해 설계된 함선으로, 1900년 진수된 바얀을 포함하여 총 4척이 건조되었다. 이 순양함은 기존의 러시아 장갑순양함보다 작고 함대 정찰에 적합하도록 설계되었으며, 프랑스 조선소에 의해 건조되었다. 바얀급은 러일 전쟁에 참전하여 일본에 노획되기도 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에도 투입되었으나, 1920년대 초 대부분 퇴역하거나 침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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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배경

바얀급은 이전의 러시아 장갑순양함과는 다른 점을 보였는데, 통상 파괴함보다는 함대의 정찰을 위해 설계된 더 작은 함선이었다.[1] 1896~1902년 건조 계획에 따라 승인된 이 설계는 러시아 제국의 조선소가 이미 가동률이 포화 상태였기 때문에 프랑스 조선소인 포르제 에 샹티에 드 라 메디테라네에 외주를 맡겼다.[1] 1897년 3월에 협상이 시작되었고, 1898년 5월에 36개월 이내에 1척을 인도하는 계약이 체결되었다.[1]
러시아 제국 해군은 첫 번째 함선인 ''바얀''에 상당히 만족했고, 1904년 2월 러일 전쟁이 시작된 후 또 다른 순양함을 주문하기로 결정했다. 러시아 조선소는 여전히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해군은 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약간의 수정 사항을 적용하여 동일한 함선을 주문하기로 결정했다.[2] 이것은 해군 기술 위원회(''Morskoi tekhnicheskii komitet'')의 작업 부하를 최소화하기 위한 시도였지만, 계획보다 더 많은 관심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드러났고, 계약은 1905년 4월 20일에 체결되었다.[2] 계약에는 모든 도면을 넘겨 새로 사용할 수 있는 선대를 사용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동일한 함선 2척을 건조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2] 이러한 변경 사항으로 일반적으로 무게가 증가했고, 하비 강철에서 더 저항력이 강한 크루프 강철로의 변경으로 방어력에 실제 손실이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장갑의 두께가 줄어들었다.[3]
2. 1. 개발 경위
바얀급은 이전의 러시아 장갑순양함과는 다른 점을 보였는데, 통상 파괴함보다는 함대의 정찰을 위해 설계된 더 작은 함선이었다.[1] 1896~1902년 건조 계획에 따라 승인된 이 설계는 러시아 조선소가 이미 가동률이 포화 상태였기 때문에 프랑스 조선소인 포르제 에 샹티에 드 라 메디테라네에 외주를 맡겼다.[1] 1897년 3월에 협상이 시작되었고, 1898년 5월에 36개월 이내에 1척을 인도하는 계약이 체결되었다.[1]
해군은 첫 번째 함선인 ''바얀''에 상당히 만족했고, 1904년 2월 러일 전쟁이 시작된 후 또 다른 순양함을 주문하기로 결정했다. 러시아 조선소는 여전히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해군은 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약간의 수정 사항을 적용하여 동일한 함선을 주문하기로 결정했다.[2] 이것은 해군 기술 위원회(''Morskoi tekhnicheskii komitet'')의 작업 부하를 최소화하기 위한 시도였지만, 계획보다 더 많은 관심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드러났고, 계약은 1905년 4월 20일에 체결되었다.[2] 계약에는 모든 도면을 넘겨 새로 사용할 수 있는 선대를 사용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동일한 함선 2척을 건조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2] 이러한 변경 사항으로 일반적으로 무게가 증가했고, 하비 강철에서 더 저항력이 강한 크루프 강철로의 변경으로 방어력에 실제 손실이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장갑의 두께가 줄어들었다.[3]
2. 2. 설계 특징
바얀급은 이전의 러시아 장갑순양함과는 다른 점을 보였는데, 통상 파괴함보다는 함대의 정찰을 위해 설계된 더 작은 함선이었다.[1] 1896~1902년 건조 계획에 따라 승인된 이 설계는 러시아 조선소가 이미 가동률이 포화 상태였기 때문에 프랑스 조선소인 포르제 에 샹티에 드 라 메디테라네에 외주를 맡겼다.[1] 1897년 3월에 협상이 시작되었고, 1898년 5월에 36개월 이내에 1척을 인도하는 계약이 체결되었다.[1]해군은 첫 번째 함선인 ''바얀''에 상당히 만족했고, 1904년 2월 러일 전쟁이 시작된 후 또 다른 순양함을 주문하기로 결정했다.[2] 러시아 조선소는 여전히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해군은 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약간의 수정 사항을 적용하여 동일한 함선을 주문하기로 결정했다.[2] 이것은 해군 기술 위원회(''Morskoi tekhnicheskii komitet'')의 작업 부하를 최소화하기 위한 시도였지만, 계획보다 더 많은 관심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드러났고, 계약은 1905년 4월 20일에 체결되었다.[2] 계약에는 모든 도면을 넘겨 새로 사용할 수 있는 선대를 사용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동일한 함선 2척을 건조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2] 이러한 변경 사항으로 일반적으로 무게가 증가했고, 하비 강철에서 더 저항력이 강한 크루프 강철로의 변경으로 방어력에 실제 손실이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장갑의 두께가 줄어들었다.[3]
2. 3. 추가 건조
러일 전쟁 발발 이후, 해군은 첫 번째 함선인 ''바얀''에 만족하여 추가 순양함 주문을 결정했다.[2] 러시아 조선소의 가동률 포화로 인해, 해군은 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일부 수정을 적용하여 동일한 함선을 주문했다.[2] 이는 해군 기술 위원회의 작업 부하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였으나, 계획보다 더 많은 관심을 필요로 했다.[2] 1905년 4월 20일 체결된 계약에는 모든 도면을 넘겨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동일한 함선 2척을 건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명시되었다.[2] 이러한 변경으로 무게가 증가했으며, 하비 강철에서 더 저항력이 강한 크루프 강철로 변경되어 방어력에 큰 손실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장갑 두께가 감소했다.[3]3. 구조
선체 형상은 외양 항해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높은 건현을 가진 긴 선루형 선체로, 외양에서의 내파성은 양호했다. 함수에서 앞쪽으로 20.3cm 속사포를 수납한 단장 주포탑 1기를 배치, 사령탑을 하부에 통합한 함교 구조는 상자형으로, 사령탑과 함교 주변에 상하 2단 함교를 가지고 있었다. 그 뒤에 1단의 망루를 가진 단각식 전부 마스트가 서 있다. 함교 뒤에 등간격으로 늘어선 4개 굴뚝이 서 있다. 굴뚝 주변은 함재정 배치 구역으로, 현측에 2기 1조의 보트 다비드(davits)가 현측 2조씩 총 4조로 운용되었다. 4번 굴뚝 뒤는 간소한 단각식 후부 마스트, 뒤쪽으로 주포탑 1기가 얹혀있다. 함미 수면 아래에 한 개의 방향타를 사이에 두고 현측 1축씩의 샤프트에 4엽 스크류가 부착되었다. 부포는 현측에 등간격으로 배치된 돌출부에서 15.2cm 단장 속사포가 케이스메이트(casemate) 배치로 현측 4기, 총 8기를 갖추었다.
바얀급 군함은 전체 길이 137.0 m였고, 수선 간의 길이는 135.0 m였다. 최대 선폭은 17.5 m, 흘수는 6.7 m였으며, 표준 배수량은 7,750-7,802 톤(t)였다. 승무원은 장교와 사병을 합하여 573명이었다.[4]
26기의 벨빌 보일러에서 공급되는 증기를 사용하여, 각각 하나의 프로펠러 샤프트를 구동하는 2개의 수직 3단 팽창 증기 기관을 탑재했다. 총 16,500 킬로와트(kW)의 출력을 내도록 설계되어 순양함을 21노트(kn)의 속도로 추진할 예정이었으나,[12] 실제 엔진은 해상 시운전 동안 17,400-19,320 킬로와트(kW)의 출력을 냈고, 이로 인해 최대 20.9-22.55 노트(kn)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4] 최대 1,100-1,200 톤(t)의 석탄을 적재할 수 있었으며, 첫 번째 ''바얀''은 10노트(kn) 속도로 3,900 해리(nmi)의 항속 거리를 가졌다.[4]
3. 1. 선체
선체 형상은 외양 항해 성능을 높이기 위해 높은 건현을 가진 긴 뱃머리 누각형 선체로 외양에서 능파성은 양호했다. 함수에서 앞쪽을 향해 203mm 속사포를 올린 단장 주포탑 1개를 배치하고, 사령탑을 하부로 편입하였으며, 함교 구조는 상자형이다. 사령탑과 함교 주위에 상하 2단의 선교를 가지고 있었다. 그 뒤에는 1단의 감시소가 있는 단각형의 정면 마스트가 서 있다. 함교 뒤로는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4개의 굴뚝이 서 있다. 굴뚝 주위에는 함재정 보관소가 있으며, 현측에 2개를 1세트로 함재정이 편현에 2쌍식 모두 4조로 운용된다. 4번 굴뚝 뒤쪽은 간소한 단각형 후방 마스트가 있고, 후방으로 향해 있는 주 포탑 1기가 실려 있다. 함미 수면 아래에 방향타가 자리를 잡고, 현마다 1축씩 통로에 4장 날개 프로펠러가 달려있다. 부포는 현측에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된 돌출부에 152mm 단장 속사포가 케이스 메이트 배치로 현마다 4기씩 총 8개를 가진다.3. 2. 기관
26기의 벨빌 보일러에서 공급되는 증기를 사용하여, 각각 하나의 프로펠러 샤프트를 구동하는 2개의 수직 3단 팽창 증기 기관을 탑재했다. 총 16,500 킬로와트(kW)의 출력을 내도록 설계되어 순양함을 21노트(kn)의 속도로 추진할 예정이었으나,[12] 실제 엔진은 해상 시운전 동안 17,400-19,320 킬로와트(kW)의 출력을 냈고, 이로 인해 최대 20.9-22.55 노트(kn)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4] 최대 1,100-1,200 톤(t)의 석탄을 적재할 수 있었으며, 첫 번째 ''바얀''은 10노트(kn) 속도로 3,900 해리(nmi)의 항속 거리를 가졌다.[4]3. 3. 방호
바얀급 군함의 수선부 장갑은 기관 구역 위에서 175-200mm[4] 두께였다. 전후방은 90-100mm로 감소했다. 상부 장갑 스트레이크와 포곽을 보호하는 장갑은 60mm 두께였다. 장갑 갑판의 두께는 50mm였으며, 중앙 포대 위에서는 단일 판으로 이루어졌지만, 다른 곳에서는 30mm 판 위에 두 개의 10mm 판으로 구성되었다. 포탑 측면은 132-150mm 두께의 장갑으로 보호되었고, 상부는 1.2인치 두께였다. 바베트는 170mm 두께의 장갑판으로 보호되었다. 항해교 측면은 136-160mm 두께였다.4. 무장

''바얀''급 군함의 주 무장은 8인치 45-구경포 2문으로, 상부 구조물의 앞뒤에 각각 단일 포탑에 장착되었다. 이 포는 87.8kg의 포탄을 포구 속도 891m/s로 발사했다. +15°의 고각에서 사거리는 11,163m였다.[5] 이 포는 신설계의 단장식 포탑에 수납되었다. 포탑의 앙각 능력은 앙각 18도, 부각 5도이다. 선회 각도는 단독 선미선을 0도로 하여 좌우 135도의 선회 각도를 가진다. 주포신의 앙각, 포탑의 선회, 포탄의 양탄, 장전은 주로 전동으로 이루어졌으며, 보조적으로 인력을 필요로 했다. 발사 속도는 1분당 1발이었다.
부포는 당시 러시아 제국이 프랑스 기업에 의존했기 때문에 카네사의 "Pattern 1892 15.2cm (45구경) 속사포"를 채용했다. 그 성능은 41.4kg의 포탄을 최대 앙각 20도로 11,520m까지 날릴 수 있었다. 이 포는 단장 포가로 함측 포방호실(케이스메이트)에 배치하여 좌우 현에 각 4문씩 총 8문을 배치했다. 앙각은 20도, 부각은 5도였다. 선회 각도는 100도의 선회 각도를 가졌으며, 포신의 앙각, 포탑의 선회, 포탄의 양탄, 장전은 주로 인력을 필요로 했다. 발사 속도는 1분에 7발로 빨랐다.[6][7]
어뢰정에 대한 근접 방어를 위해 소구경포 여러 문이 탑재되었다. 여기에는 20문의 50구경 75mm 카네 1891년식 QF포가 포함되었다. 이 중 8문은 선체 측면과 상부 구조물에 있는 포방호실에 장착되었다. 나머지 포는 6인치 포 포방호실 위에 포 방패가 있는 회전식 마운트에 위치했다.[8] 이 포는 4.91kg의 포탄을 +20° 고각에서 약 7,869m 사거리로, 862m/s의 포구 속도로 발사했다.[9] ''바얀''급은 또한 8문(''바얀'') 또는 후기 3척의 함선에 4문의 47mm 핫치키스포를 장착했다.[4] 이 포는 1.5/3.2영어kg 포탄을 발사했다.[10] 또한 ''바얀''에는 37/37영어mm 핫치키스포 2문이 장착되었으며[4] 이는 0.5/1.1영어kg 포탄을 470/1540영어m/s의 포구 속도로 발사했다.[11]
''바얀''에는 측면에 잠수형 381mm 어뢰 발사관 2문이 장착되었으며, 후기 3척의 함선은 457mm 크기였다.[12]
4. 1. 주포
바얀급의 주포는 '패턴 1892 203mm (45 구경) 속사포'를 채택했다. 87.8kg의 포탄을 최대 18도의 앙각으로 16,100m까지 발사할 수 있었다. 이 포는 단장식 포탑에 설치되었으며, 포탑은 앙각 18도, 부각 5도로 움직일 수 있었다. 포탑의 회전 각도는 좌우 135도였다. 포신의 부앙, 포탑 회전, 포탄의 양탄 및 장전은 주로 전동식이었고, 보조 인력이 필요했다. 발사 속도는 분당 1발이었다.''바얀''급 군함의 주 무장은 8인치 45-구경포 2문으로, 상부 구조물의 앞뒤에 각각 단일 포탑에 장착되었다. 이 포는 87.8kg의 포탄을 포구 속도 891m/s로 발사했다. +15°의 고각에서 사거리는 11,163m였다.[5]
4. 2. 부포
바얀급 장갑순양함은 당시 러시아 제국이 프랑스 기업에 의존했기 때문에 부포로 카네사의 '패턴 1892 152mm (45 구경) 속사포'를 채택했다.[6][7] 이 포는 41.4kg의 포탄을 최대 앙각 20도에서 11,520m까지 쏘아 보낼 수 있었다. 단장포가에 올려서 현측 케이스 메이트(포곽)에 현마다 4기씩 총 8기를 배치했다. 부앙각은 앙각 20도, 부각 5도이며, 회전 각도는 100도였다. 포신의 부앙, 포탑의 선회, 포탄의 양탄, 장전은 주로 인력을 필요로 했다. 발사 속도는 분당 7발이었다.그 외에도, 어뢰정 요격을 위해 패턴 1892 75mm (50구경) 속사포를 단장포가에 20문,[8][9] 근접전투용으로 Hotchkiss영어사의 '호치키스 47mm (40구경) 기관포'를 단장포 차체에 8개(바얀은 4문)를 장착했다.[4][10] 또한 바얀에는 37mm 핫치키스포 2문이 장착되었다.[4][11] 대함 공격용으로 457mm(후기 3척은 18인치) 어뢰 발사관을 현측 부에 단장 발사관으로 2개를 배치했다.[12]
4. 3. 기타 무장
어뢰정에 대한 근접 방어를 위해 여러 소구경포가 탑재되었다. 패턴 1892 75mm (50구경) 카네 1891년식 QF포 20문이 장착되었는데, 이 중 8문은 선체 측면과 상부 구조물에 있는 포방호실에, 나머지는 152mm 포 포방호실 위에 포 방패가 있는 회전식 마운트에 위치했다.[8] 이 포는 4.91kg의 포탄을 862m/s의 포구 속도로 발사했으며, +20° 고각에서 약 7,869m의 사거리를 가졌다.[9] ''바얀''급은 또한 8문(''바얀'') 또는 후기 3척의 함선에 4문의 47mm 핫치키스포를 장착했다.[4] 이 포는 1.5kg 포탄을 발사했다.[10] 또한 ''바얀''에는 37mm 핫치키스포 2문이 장착되었으며,[4] 이는 0.5kg 포탄을 470m/s의 포구 속도로 발사했다.[11] 대함 공격용으로, ''바얀''에는 측면에 381mm 어뢰 발사관 2문이, 후기 3척의 함선은 457mm 어뢰 발사관이 장착되었다.[12]5. 동급함
5. 1. 바얀 (1900)
바얀은 완공 후 제1 태평양 전대에 배속되어 1903년 말부터 포트 아서에 주둔했다.[27] 러일 전쟁 초기에 포트 아서 해전에서 경미한 피해를 입었고, 1904년 4월 13일에는 부제독 토고 헤이하치로가 부제독 스테판 마카로프의 기함인 전함 페트로파블로프스크/Петропавловскru를 포함한 태평양 전대의 일부를 성공적으로 유인하는 작전에 참여했다. 마카로프는 5척의 일본 전함을 발견하자 포트 아서로 방향을 돌렸으나, ''페트로파블로프스크''는 기뢰에 충돌하여 탄약고 중 하나가 폭발하면서 빠르게 침몰했다.[17] 7월 27일, ''바얀''은 해상 포격 지원으로 일본 제국 육군 진지를 폭격하다가 기뢰에 맞아 다음 달까지 수리를 받았다. 그 후 포트 아서에 갇힌[17] ''바얀''은 1904년 12월 8일 일본 곡사포 포탄에 의해 계류장에서 침몰했다.[18]이 함선은 이듬해 일본 엔지니어에 의해 인양되었다. 수리, 재보일러 설치, 일본 무기로의 무장 교체 작업은 1908년까지 완료되었다.[18] 일본 해군은 ''바얀''을 아소로 개명하고, 1920년 기뢰 부설함으로 개조되기 전까지 훈련함으로 사용했다.[19] ''아소''는 1930년 4월 1일 퇴역하여 ''하이 칸 4호''로 개명되었다.[18] 이후 1932년 8월 4일, ''아소''는 두 척의 잠수함 어뢰에 의해 표적함으로 침몰되었다.[20]
5. 2. 아드미랄 마카로프
아드미랄 마카로프는 프랑스 라센쉬르메르의 지중해 조선소에서 건조되어 1905년 4월 3일에 기공, 1906년 4월 25일에 진수되어 1908년 4월에 취역했다.[30] 완공 후 발트 함대에 배속되었으며,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기 전 여러 차례 지중해로 파견되었다.[21]1차 세계대전 발발후 ''아드미랄 마카로프''는 자매함들과 함께 기뢰 부설을 위해 개조되었다. 그들은 전쟁 동안 기뢰를 부설했고, 다른 함선들이 기뢰밭을 설치하는 것을 엄호했다.[25] ''아드미랄 마카로프''는 1915년 중반 올란드 제도 해전을 포함하여 전쟁 동안 독일 함선들과 몇 차례의 결정적인 전투를 벌였다.[23] 1916~1917년에 75mm 함포는 제거되었고, 203mm 함포 1문과 152mm 함포 4문으로 교체되었으며, 대공포도 한 쌍 추가되었다.[25]
1918년 3월 핀란드가 독립을 선언했을 때 헬싱포스에 있었고, 핀란드만이 여전히 얼어붙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피해야 했다. "빙상 항해" 이후 크론슈타트에 도달했으며, 1918년에 퇴역했고, 1922년에 스크랩으로 판매되었다.[26]
5. 3. 바얀 (1907)
바얀 (1907)은 아드미랄티 조선소에서 1905년 8월 15일에 기공되어[29] 1907년 8월 2일에 진수되었고,[29] 1911년 11월 30일에 취역하였다.[29] 러일 전쟁 이후 건조된 이 함선은 이전의 바얀급 장갑순양함과 구별하기 위해 '바얀 (1907)'로 불린다. 완공 후 발트 함대에 배속되었다.[26]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직후, 바얀 (1907)은 기뢰 부설함으로 개조되었다.[25] 전쟁 동안 기뢰를 부설하고 다른 함선들의 기뢰밭 설치를 엄호했다.[25] 1915년 중반 올란드 제도 해전에 참가했고,[23] 1917년 말에는 에스토니아 섬에 대한 독일의 침공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문 사운드를 방어하다가 큰 피해를 입었다.[24] 1916~1917년에 걸쳐 75mm 함포가 제거되고 203mm 함포 1문과 152mm 함포 4문으로 교체되었으며, 대공포도 한 쌍 추가되었다.[25] 1918년에 퇴역하여[26] 1922년에 스크랩을 위해 판매되었다.[26]
5. 4. 팔라다

''팔라다''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아드미랄티 조선소에서 건조되어 1905년 8월에 기공, 1906년 10월 28일에 진수, 1911년 2월 8일에 취역하였다.[29][31] 완공 후 발트 함대에 배속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첫 달 동안 ''팔라다''는 좌초된 독일 순양함 에서 암호책을 노획했다.[21] 1914년 10월 11일, 팔라다는 독일 잠수함 의 어뢰 공격을 받아 승무원 전원과 함께 침몰했다.[21] 그녀의 잔해는 2000년에 발견되었다.[22]
6. 운용
1903년 말, ''바얀''은 제1 태평양 전대에 배속되어 포트 아서에 주둔했다.[17] 러일 전쟁 초기 포트 아서 해전에서 경미한 피해를 입었고, 1904년 4월 13일에는 부제독 토고 헤이하치로가 부제독 스테판 마카로프의 기함인 전함 페트로파블로프스크를 포함한 태평양 전대의 일부를 유인하는 작전에 참여했다. 마카로프는 5척의 일본 전함을 발견하고 포트 아서로 귀환하던 중, ''페트로파블로프스크''가 기뢰에 충돌하여 탄약고 중 하나가 폭발하면서 빠르게 침몰했다.[17]
1904년 7월 27일, ''바얀''은 해상 포격 지원으로 일본 제국 육군 진지를 폭격했으나, 기뢰에 맞아 수리를 받아야 했다.[17] 이후 포트 아서에 갇힌[17] ''바얀''은 1904년 12월 8일 일본 곡사포 포탄에 의해 계류장에서 침몰했다.[18]
1905년, ''바얀''은 일본 엔지니어에 의해 인양되었다. 이후 수리 및 재보일러 설치, 일본 무기로의 무장 교체 작업이 1908년까지 완료되었다.[18] 일본 해군은 ''바얀''을 ''아소''로 개명하고, 처음에는 훈련함으로 사용하다가 1920년 기뢰부설함으로 개조했다.[19] ''아소''는 1930년 4월 1일 퇴역하여 ''하이 칸 4호''로 개명되었고,[18] 1932년 8월 4일 두 척의 잠수함 어뢰에 의해 표적으로 침몰했다.[20]
6. 1. 러일전쟁
1903년 말, ''바얀''은 제1 태평양 전대에 배속되어 포트 아서에 주둔했다.[17] 러일 전쟁 초기 포트 아서 해전에서 경미한 피해를 입었고, 1904년 4월 13일에는 부제독 토고 헤이하치로가 부제독 스테판 마카로프의 기함인 전함 페트로파블로프스크를 포함한 태평양 전대의 일부를 유인하는 작전에 참여했다. 마카로프는 5척의 일본 전함을 발견하고 포트 아서로 귀환하던 중, ''페트로파블로프스크''가 기뢰에 충돌하여 탄약고 중 하나가 폭발하면서 빠르게 침몰했다.[17]1904년 7월 27일, ''바얀''은 해상 포격 지원으로 일본 제국 육군 진지를 폭격했으나, 기뢰에 맞아 수리를 받아야 했다.[17] 이후 포트 아서에 갇힌[17] ''바얀''은 1904년 12월 8일 일본 곡사포 포탄에 의해 계류장에서 침몰했다.[18]
1905년, ''바얀''은 일본 엔지니어에 의해 인양되었다. 이후 수리 및 재보일러 설치, 일본 무기로의 무장 교체 작업이 1908년까지 완료되었다.[18] 일본 해군은 ''바얀''을 ''아소''로 개명하고, 처음에는 훈련함으로 사용하다가 1920년 기뢰부설함으로 개조했다.[19] ''아소''는 1930년 4월 1일 퇴역하여 ''하이 칸 4호''로 개명되었고,[18] 1932년 8월 4일 두 척의 잠수함 어뢰에 의해 표적으로 침몰했다.[20]
6. 2. 제1차 세계 대전

나중에 건조된 바얀급 장갑순양함인 아드미랄 마카로프, 바얀, 팔라다는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21][23][24] 세 함선은 모두 완공 후 발트 함대에 배속되었으며, ''아드미랄 마카로프''는 전쟁 발발 전 지중해로 여러 차례 파견되었다.[21]
전쟁 첫 달 동안 ''팔라다''는 좌초된 독일 순양함 에서 암호책을 노획했다.[21] 그러나 1914년 10월 11일, ''팔라다''는 독일 잠수함 의 어뢰 공격을 받고 승무원 전원과 함께 침몰했다.[21] ''팔라다''의 잔해는 2000년에 발견되었다.[22]
생존한 ''아드미랄 마카로프''와 ''바얀''은 전쟁 초기에 기뢰 부설함으로 개조되어, 기뢰 부설 작전을 수행하고 다른 함선의 기뢰밭 설치를 엄호했다.[25] 두 함선은 1915년 중반 올란드 제도 해전을 포함하여 독일 함선들과 여러 차례 교전했고,[23] 1917년 말에는 에스토니아 섬에 대한 독일의 침공에 맞서 문 사운드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바얀''이 큰 피해를 입었다.[24]
1916~1917년에 걸쳐 이들 함선의 75mm 함포는 제거되고, 203mm 함포 1문과 152mm 함포 4문으로 교체되었으며, 대공포도 추가되었다.[25] ''아드미랄 마카로프''는 1918년 3월 핀란드 독립 선언 당시 헬싱포스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빙상 항해"를 통해 크론슈타트로 대피했다.[26] 이후 두 자매함은 1918년에 퇴역했고, 1922년에 스크랩을 위해 매각되었다.[26]
6. 3. 전후
''바얀''은 일본 제국 해군에 의해 인양되어 수리 및 재무장 후 ''아소''로 개명되어 훈련함으로 사용되었다. 1920년에는 기뢰 부설함으로 개조되었고, 1930년 4월 1일 퇴역하여 ''하이 칸 4호''로 개명되었다.[18] 1932년 8월 4일, ''아소''는 두 척의 잠수함 어뢰에 의해 표적으로 침몰했다.[20]
''팔라다''는 제1차 세계 대전 첫 달 동안 좌초된 독일 순양함 에서 암호책을 노획했으나, 1914년 10월 11일 독일 잠수함 의 어뢰 공격을 받아 승무원 전원과 함께 침몰했다.[21] ''팔라다''의 잔해는 2000년에 발견되었다.[22]
''아드미랄 마카로프''와 ''바얀''은 전쟁 동안 기뢰를 부설했고, 다른 함선들이 기뢰밭을 설치하는 것을 엄호했다.[25] ''아드미랄 마카로프''와 ''바얀''은 1915년 중반 올란드 제도 해전을 포함, 독일 함선들과 몇 차례 전투를 벌였고,[23] 1917년 말 에스토니아 섬에 대한 독일의 침공 동안 문 사운드를 방어했으며, 이때 ''바얀''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24] 1916~1917년에 걸쳐 두 함선의 75mm 함포는 제거되었고, 203mm 함포 1문과 152mm 함포 4문으로 교체되었으며, 대공포도 한 쌍 추가되었다.[25] ''아드미랄 마카로프''는 핀란드가 1918년 3월 독립을 선언했을 때 헬싱포스에 있었고, "빙상 항해"를 통해 크론슈타트에 도달했다. 두 자매함은 1918년에 퇴역했고, 1922년에 스크랩으로 판매되었다.[26]
7. 평가
7. 1. 기술적 측면
7. 2. 전술적 측면
7. 3. 역사적 의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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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singin Sanomat
2012-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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