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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순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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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갑순양함은 1880년대 후반 속사포의 등장으로 방호순양함의 방어력 부족이 드러나면서, 함체 주요부에 장갑을 두르고 속력을 높인 순양함이다.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에서 활약했으나,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순양전함의 등장과 함께 쇠퇴했다. 이후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 등으로 인해 대부분 폐기되었고, 일부는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현재 그리스 해군의 게오르요스 아베로프가 유일하게 남아 박물관으로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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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순양함
장갑 순양함 정보
뤼리크 2세
뤼리크 2세
개요
유형순양함
기원19세기 후반 ~ 20세기 초
특징
무장대구경 함포, 어뢰
방어장갑 갑판, 측면 장갑
속도고속
역할
임무정찰
통신
수송선 공격
해상 통상 파괴
구조 및 능력
공격력전함 다음으로 강력함
속력높음
방어력상당한 수준의 장갑 장착 (측면, 포탑, 사령탑 등)
추진 기관강력한 엔진 및 보일러 필요
석탄 저장량많음
임무
주 임무전함과 함께 주력 함대 편성
고속을 이용한 적 함대 포격 위치 선점
도주하는 적 함 추격
수송선단 공격
강행 정찰

2. 역사

1880년대 후반 속사포의 보급은 방호순양함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방호순양함은 선체 내 주요 부위를 방호 갑판 아래에 배치하고 상부 구조물은 침수되어도 격벽으로 막을 수 있다는 가정하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시켰다. 그러나 1894년 청일 전쟁황해 해전에서 일본 제국 연합함대와 청나라 북양 함대가 격돌하면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났다.[28] 단시간에 많은 유탄이 쏟아지면서, 함정 주요 부위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지 않아도 비장갑 부위가 심하게 파괴되어 전투 능력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수직 방어가 없는 방호순양함의 가치는 크게 떨어졌다.[28]

러일 전쟁에서 일본 해군과 러시아 해군의 장갑순양함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31] 러시아 제국 해군블라디보스토크 순양함대는 장갑순양함 3척과 방호순양함 1척을 주력으로 하여, 러일 전쟁 발발과 동시에 일본 열도 근해에서 통상 파괴를 실시하여 일본군에게 위협을 가했다. 가미무라 히코노조 중장이 이끄는 일본 해군 제2함대 소속 6척의 장갑순양함(이즈모, 야쿠모, 이와테, 아즈마, 아사마, 도키와) 전대는 '''가미무라 함대'''로 불리며 블라디보스토크 함대를 끈질기게 추적하여 울산 해전에서 격파했다.[31] 가미무라 함대의 장갑순양함은 여순항 공격, 황해 해전, 쓰시마 해전에서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의 제1함대와 함께 연합함대를 구성하여 러시아 해군의 태평양 함대(여순 함대) 및 발트 함대 주력함과 교전했다. 쓰시마 해전 당시 연합함대는 전함 2척을 상실했기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장갑순양함 2척을 제1함대에 편입했다.[31]

이러한 해전에서 장갑순양함의 공격력 부족이 드러나자, 일본 해군은 방어력을 일부 포기하고 공격력과 속력을 강화한 쓰쿠바형 장갑순양함을 건조했다.[35] 영국 해군이 인빈시블급 장갑순양함을 완성하면서, 장갑순양함에서 발전한 '순양전함'이라는 새로운 함종이 등장했다.[36]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독일 제국의 장갑순양함과 영국 해군의 순양전함 사이에 여러 차례 해전이 벌어졌다. 1914년 12월 8일 포클랜드 해전에서는 독일 동양 함대의 샤른호르스트급 장갑순양함 2척 및 소형 순양함 2척과 인빈시블급 순양전함을 주력으로 하는 스터디 제독의 영국 함대가 교전하여 독일 동양 함대는 전멸했다.[47] 1915년 1월 24일 도거 뱅크 해전에서는 영국 순양전함 5척이 독일 정찰 전대를 추격했고, 독일 순양전함 3척은 도주했지만, 독일 장갑순양함 블뤼허는 격침되었다.[49] 이처럼 장갑순양함이 순양전함에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이 명확해지면서 그 존재 의의는 사라졌다.[52]

유틀란트 해전에서는 독일 제국의 제이들리츠 등 독일 순양전함이 견고함을 과시한 반면, 영국 해군의 순양전함은 방어력 부족을 드러냈다. 각국은 건조 중인 순양전함의 설계를 변경했고, 순양전함은 고속 전함으로 변화해 갔다.[50] 장갑순양함은 순양전함에 대항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명백해지면서[52], 결국 폐지되었다.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 체결로 일부 함정이 배수량 1만 톤 이상의 주력함 보유 제한 대상이 되었다. 신형 순양전함은 잇따라 건조가 중지되었고, 기존의 순양전함도 점차 폐기되었다.[52] 1930년 런던 해군 군축 회의에서는 1등 순양함(중순양함)과 2등 순양함(경순양함)이라는 새로운 정의가 내려졌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순양함은 대체로 중순양함 또는 경순양함 두 종류로 좁혀졌으며, 장갑순양함은 존재 의의를 상실했다. 일본 해군의 장갑순양함도 구식화되어 해방함으로 함종이 변경되었다. 그러나 칠레 해군의 "제너럴 오히긴스"나 스웨덴 해군의 필기아 등 일부 해군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도 운용되었다. 일본 해군의 장갑순양함(해방함)도 연습 함대로 장기간 운용되었고, 이즈모는 제3함대나 중국 방면 함대 기함으로 중일 전쟁에 참전했으며, 도키와는 기뢰 부설함으로 개조되어 태평양 전쟁에서도 활약했다. 태평양 전쟁에서는 1942년에 해방함의 정의가 변경되어 이즈모, 야쿠모, 이와테가 "1등 순양함"으로 함종이 변경되었다.[56]

2. 1. 배경 (1870년대 이전)

1870년대 장갑순양함은 장갑 철갑선과 당시 빠르고 항속거리가 길지만 비장갑인 순양함의 장점을 결합하려는 시도로 개발되었다. 이러한 군함은 해외 무역을 보호하고, 특히 프랑스와 영국에게는 광대한 해외 제국을 감시하기 위해 필요했다. 고위 해군 관계자들은 이러한 요구 사항을 충족하고 새로운 기술을 통합할 수 있는 군함이 없으면 해상 전쟁이 발생할 경우 함대가 구식으로 변하고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1] 공식적인 자리에서 구식화에 대한 우려는 해군 함포의 크기가 증가하는 것과 이러한 포격을 견딜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장갑 간의 경쟁으로 더욱 심화되었다. 1860년에 표준으로 사용되던 가장 큰 해군 함포 중 하나는 약 20.32cm 구경이었고 약 30.84kg 고체 철탄 또는 대략 약 23.13kg 구형 포탄을 발사했다. 1884년에는 약 41.27cm 구경의 함포가 해군 함정에 장착되어 약 816.47kg 폭발성 포탄을 발사했다. 이 함포는 초기 해군 장갑 형태인 최대 34인치의 연철을 관통할 수 있었다. 이들은 1500년대부터 선박에 사용되었던 전장식 함포였다. 1870년대에 해군에서 재사용된 후장식 함포는 발사 속도가 더 빨라 전장식 함포보다 더 파괴적이었다. 강선포의 개발로 정확성이 향상되었고, 포탄의 발전도 다른 요인이었다. 순양함은 전함의 가장 큰 구경 함포와 마주칠 가능성은 낮았고, 많은 해군은 더 작은 무기를 흔히 사용했는데, 이는 더 큰 무기만큼 빨리 마모되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순양함은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떤 형태의 보호가 필요했다.[2]

1865년 롤드 철갑과 1870년 샌드위치 장갑의 채택으로 군함은 더 큰 함포의 사격을 견딜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 두 가지 보호 방식 모두 나무를 중요한 구성 요소로 사용했기 때문에 매우 무거웠고, 순양함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중요한 요소인 속도를 제한했다.[3] 최초의 원양 항해 철갑선이 1860년경에 진수되었지만, 영국 와 프랑스 와 같이 장거리 식민지 임무를 위해 건조된 "정박 철갑선"은 각각 13노트와 11노트로 적의 상선을 약탈하거나 적의 상선 약탈함을 추격하기에는 너무 느렸다. 이러한 임무는 일반적으로 프리깃함이나 코르벳함에 할당되었다. 돛과 증기 엔진을 모두 사용했지만 장갑의 추가 무게가 없었기 때문에 이 함선들은 최대 16 또는 17노트의 속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들 중 가장 강력한 함선은 영국 , 미국 해군의 및 프랑스 였다. 특히 영국은 이러한 함선이 제국의 더 먼 지역에서 봉사하기를 희망했다. 1862년 햄프턴 로드 해전에서 미국 목조 군함이 남부 연합의 철갑선 에 패배한 후, 해군성은 자국 함선이 이론적으로 모든 작전 지역에서 철갑선과 마주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4]

선박 추진 기술이 개선되고 있었지만 개발에는 시간이 걸렸다. 1860년대의 해군 엔진은 증기가 실린더로 팽창하여 피스톤을 밀어내고 배출되는 단팽창형이었다. 증기가 방출되기 전에 크기가 증가하는 일련의 실린더를 통과하는 복합 엔진은 더 효율적인 프로세스였으며, 증기가 더 많은 에너지를 생성하고 동일한 거리를 이동하는 데 더 적은 석탄을 사용하도록 했다. 더 큰 효율성과 함께 점점 더 복잡한 기계와 고장의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야금 및 엔지니어링의 발전, 더 작은 연료 벙커의 가능성 및 상업용 엔진에서 복합의 성공적인 사용은 해군 엔진에도 매력적인 옵션이 되었다. 1870년대에 복합 엔진은 군함의 표준이 되었다. 복합 자체는 동력이나 속도를 크게 증가시키지 않았지만 훨씬 더 넓은 운용 범위를 허용했다. 강제 통풍 시스템은 동력과 속도를 증가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1890년대 초까지 사용되지 않았다.[5]

2. 2. 초기 장갑순양함 (1870년대)

러시아 해군은 1873년에 통상 파괴를 목적으로 장갑 군함 Генерал-Адмирал|제너럴 아드미랄ru를 건조했는데, 이 배는 최초의 장갑순양함으로 평가받는다.[6] 포 6문과 포 2문으로 무장한 이 함선과 자매함 Герцог Эдинбургский|게르초크 에딘부르크스키ru수선 근처의 좁은 벨트로만 부분적으로 장갑화되었다. 이 벨트는 너무 무거워 선체 수면 아래에 위치하여 방호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철제 선체를 사용하여 목재 선체보다 내구성이 좋았지만, 의 낮은 최고 속도와 높은 연료 소비량 때문에 완전한 돛 장비를 갖춰야 했고, 순양함 역할에는 부적합했다.[7]

러시아 장갑순양함


영국은 1875년에 를 건조하여 대응했다. 이 배는 포 2문과 강선포 7문을 장착했다. 이후 포 4문과 포 8문을 갖춘 넬슨급 2척이 건조되었다. 이 초기 장갑순양함들은 일등 철갑함의 축소판이자 벨트 순양함이었다. 벨트는 러시아의 벨트보다 두꺼웠지만, 무게 때문에 선체 전체에 확장되지 않고 양쪽 끝에서 가늘어졌다. 벨트 안쪽에는 장갑 갑판을 설치하여 탄약고와 기계를 보호했다. 갑판 위에는 석탄 벙커와 창고를 배치하여 추가적인 방호 기능을 제공하고, 전투 피해 시 부력을 유지하도록 했다. 이러한 비장갑 보호 기능 덕분에 이 함선들은 최초의 방호순양함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Shannon''의 최고 속도는 , ''Nelson''의 속도는 로, 빠른 순양함에 대처하기에는 느렸고, 일류 전함을 상대하기에는 장갑이 충분하지 않았다. 장갑 벨트가 선체 수면 아래에 위치하여 효용성이 제한적인 문제점도 있었다.[8]

1886년 2월 ''Harper의 Monthly Magazine''에 실린 의 평면도 및 단면도


이 초기 군함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당시 기술이 요구 사항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효율성이 낮은 복동 증기 엔진과 개선된 엔진을 사용하더라도 해외 급유 기지가 부족하여 돛 장비가 필요했다. 돛을 사용하는 배는 높은 여유갑판과 상당한 복원성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모니터와 일부 전함에 사용된 장갑 포탑의 사용은 배제되었다. 결과적으로 장갑순양함은 전통적인 측면 포 배치 방식을 유지했다. 장갑은 선체 길이 대부분을 따라 수선 부근에 두꺼운 벨트로 분산되었고, 갑판의 포 배치 위치는 장갑화되지 않았다. 이러한 한계는 건조된 지 수십 년 후에야 해결되었다.[9]

2. 3. 방호순양함의 등장과 발전 (1880년대)

1870년대에 철갑탄을 사용하는 포의 크기와 위력이 크게 증가하면서, 전함과 순양함 설계에 변화가 필요하게 되었다. 당시의 함선들은 신형 포에 의해 장갑이 관통될 위험에 처해 있었다. 이에 해군 설계자들은 새로운 장갑 방식을 고안했다. 엔진, 보일러, 탄약고 등 함선의 주요 부분은 수선 아래의 장갑 갑판 아래에 배치하고, 측면은 무장갑으로 두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으로 설계된 순양함을 보호순양함이라고 불렀으며, 1880년대와 1890년대 초에 장갑순양함을 대체했다.[11]

보호순양함의 도식도. 빨간색 선: 장갑 갑판과 포방패. 회색 영역: 방어용 석탄 벙커


장갑순양함 ''섀넌''은 장갑 갑판을 처음 사용한 함선이었다. 1870년대 말에는 측면 장갑이 거의 없고 전체 길이에 걸쳐 장갑 갑판을 갖춘 함선들이 등장했다. 이탈리아의 급 전함은 장갑 갑판과 포를 갖추었지만 측면 장갑은 없었다. 영국의 급 코르벳함도 전체 길이의 장갑 갑판을 사용했지만, 의 속도만 낼 수 있어 통상 보호나 함대 임무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보호순양함 설계의 획기적인 발전은 영국의 엘스윅 조선소에서 설계하고 건조한 칠레의 에서 비롯되었다. 의 빠른 속도를 가진 ''에스메랄다''는 10인치 포 2문과 6인치 포 6문을 탑재하고, 두께의 보호 갑판과 코르크로 채워진 코퍼댐을 갖춘 방어 체계를 갖추었다. ''에스메랄다''는 이후 순양함 건조의 방향을 제시했으며, 이탈리아, 중국, 일본,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 및 미국에서 유사한 설계의 "엘스윅 순양함"이 건조되었다. 보호순양함은 장갑순양함 개념이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여러 해군이 장갑 두께와 주포 크기 경쟁에 갇혀 전함과 장갑순양함에 투자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매력적이었다.[12]

프랑스 장갑순양함


프랑스 해군은 1880년대에 보호순양함을 적극적으로 채택했다. 젊은 학파(Jeune Ecole)의 사상은 프랑스에서 특히 영향력이 컸다. 최초의 프랑스 보호순양함은 1882년에 기공된 였으며, 이후 6척의 보호순양함급이 건조되었다. 1888년에 기공된 는 프랑스 최초로 돛대를 완전히 제거하고 강철 장갑으로 덮인 함선이었지만, 내항성이 부족하고 장갑이 속사포에 관통될 수 있었다. 따라서 1891년부터 1897년까지 프랑스는 다시 보호순양함 건조로 돌아갔다.[13]

영국 해군은 1887년까지 어떤 방어 체계를 사용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1881년에 시작된 급은 장갑순양함으로 건조되었지만, 두께의 장갑 갑판과 석탄 벙커 배치로 방어되었다. 이 함선들은 돛을 갖도록 설계되었지만, 시험 결과 돛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밝혀져 제거되었다.[14]



영국 해군은 급 보호순양함 이후 급 장갑순양함으로 돌아갔지만, ''올랜도''급을 열등하다고 판단하고 이후 보호순양함만을 건조했다. ''올랜도''급은 삼단 팽창 엔진을 사용한 최초의 순양함으로, 연료 효율이 높고 더 높은 압력의 증기를 사용할 수 있어 돛 없이 증기 구동 방식만으로 운항할 수 있었다.[15]

1880년대에 장갑순양함을 선호한 유일한 주요 해군은 러시아였다. 러시아 해군은 10년 동안 4척의 장갑순양함과 1척의 보호순양함을 기공했으며, 모두 돛을 갖춘 대형 함선이었다.[16]

2. 4. 전노급 전함 시대의 장갑순양함 (1890년대 ~ 1900년대 초)

1880년대 후반 속사포의 등장은 순양함 설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방호순양함의 방수 구획 효과가 떨어지면서 측면 장갑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었다. 또한, 알프레드 테이어 메이헌이 1890년에 출판한 《해양력의 역사에 미치는 영향》은 장갑순양함을 2급 전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전략적 가치를 제시하며 장갑순양함 부활에 영향을 주었다.[17]

1890년대 중후반 건조된 장갑순양함은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에 필적하는 크기와 비용을 가졌다. 하비 장갑크루프 장갑 같은 새로운 침탄강 기술 덕분에, 더 가벼우면서도 효과적인 장갑 벨트를 장착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벨트는 선체 중앙부를 폭넓게 보호했으며, 강철 격벽, 장갑 포탑, 함교 방호 등 전반적인 방어 체계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화부 인력이 더 필요했기에 유지 비용이 높았다.[18]

1911년의 프랑스 순양함 에드가 퀴네


프랑스 해군은 에르네스트 프랑수아 푸르니에 제독의 주장에 따라 장갑순양함 건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1896년 기공된 프랑스 순양함 잔 다르크를 시작으로, 프랑스 순양함 레옹 강베타, 프랑스 순양함 에드가 퀴네 등 대형 장갑순양함이 건조되었다. 레옹 강베타급은 194mm 주포와 150mm 크루프 장갑 벨트를, 에드가 퀴네급은 194mm 주포와 최대 170mm 장갑 벨트를 갖추었다.[19]



영국 해군은 1898년 영국 순양함 크레시 건조를 시작으로 장갑순양함 건조를 재개했다. 크레시급은 약 15.24cm 크루프 강철 벨트와 9.2인치(233.7mm), 6인치(152mm) 포를 장착하여, 프랑스 순양함보다 느렸지만 강력한 화력을 제공했다. 1899년부터 1905년 사이 영국은 35척의 장갑순양함을 건조했다.[20]

1905년의 일본 순양함 야쿠모


일본청일 전쟁 이후 삼국 간섭을 겪으면서 해군력 증강을 추진했다. "육육 계획"의 일환으로 건조된 일본 순양함 야쿠모는 약 20.29cm 주포와 약 15.24cm 부포, 약 8.89cm에서 약 17.02cm 벨트 장갑을 갖추고 20.5kn의 속력을 냈다. 이들은 전투 함대의 주력 함선으로 설계되었다.[21][22]



미국 해군 최초의 장갑순양함 미국 순양함 메인은 1895년에 완성되었지만, 하비 장갑이나 크루프 장갑이 나오기 전에 기공되어 무게 이점을 누리지 못했다. 1898년 하바나 항구에서 메인함이 파괴되면서 미국-스페인 전쟁이 발발했다.[24]

(1898)


미국 순양함 뉴욕과 미국 순양함 브루클린은 메인함보다 발전된 장갑을 갖추었고, 브루클린함은 더 많은 무장을 탑재했다.[25] 미국-스페인 전쟁 이후, 미국 해군은 미국 순양함 펜실베이니아급 장갑순양함 6척을 기공했다. 이들은 약 20.32cm 주포와 약 15.24cm 부포, 약 15.24cm 벨트 장갑을 갖추었으며, 약 3.81cm ~ 약 7.62cm 갑판 장갑은 속도를 위해 희생되었다.[27]

청일 전쟁미국-스페인 전쟁에서의 장갑순양함의 활약은 해군 강국들의 순양함 건조 경쟁을 가속화했다. 그러나 장갑순양함은 봉쇄선 역할 외에는 전투 대열에서 싸우는 경우가 많았고, 제1차 세계 대전까지 설계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28]

청일 전쟁에서 1894년 황해 해전이 발발하여 순양함을 주력으로 하는 연합함대와 정원급 전함을 주력으로 하는 북양 함대가 대결하면서, 뜻밖의 교훈을 얻었다. 단시간에 대량의 유탄이 투사된 결과, 함정 주요부가 직격탄을 받지 않아도 비장갑부가 철저하게 파괴되어 전투 능력을 상실하는 예가 다발했다. 이 전훈으로부터 수직 방어를 갖지 않은 방호순양함의 가치는 급격히 쇠퇴했다.

2. 5. 쓰시마 해전과 순양전함의 등장 (1905년 ~ 1910년대)

쓰시마 해전에서 일본 장갑순양함들은 큰 활약을 했다. 닛신은 8발의 포탄을 맞았지만, 이와테는 16번 피격되었음에도 인명 피해가 적었다. 가사기를 제외한 모든 일본 장갑순양함은 전투 후에도 전투 준비가 되어 있었다.[31]

이러한 일본 장갑순양함의 성능은 전 세계 해군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일부 해군 관계자들은 장갑순양함의 빠른 속도가 전함과의 전투에서 생존성을 보장한다고 판단했다. 존 피셔는 "속도는 장갑이다"라는 신념으로 순양전함 개발을 이끌었다.[32] 윌리엄 호브가드는 순양함의 속도와 주력함의 화력을 갖춘 "전함-순양함"을 주장했다.[33] 그러나 메이언은 장갑순양함에 대한 관심을 "유행"이라고 비판하며, 톤수에 비해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34]

쓰시마 해전의 성공에 힘입어 일본은 쓰쿠바급 장갑순양함 4척을 건조했다. 이들은 20.5노트의 속도와 포 4문을 탑재하여 노후화된 전함을 대체하고자 했다.[35] 미국은 테네시급 장갑순양함을 통해 순양함 주포 구경을 포로 늘렸지만, 톤수 제한으로 장갑이 얇아졌다.[35]

영국은 미노타우르급 장갑순양함에 포와 포를 고려했지만, 최종적으로 포 4문과 포 10문을 장착했다.[36] 독일은 샤른호르스트급 장갑순양함을 건조하여 포 8문을 탑재했다.[36] 러시아는 류릭을 영국에서 건조하여 포 4문과 포 8문을 장착했다.[37]

로버트 K. 매시에 따르면, "장갑순양함의 궁극적인 구현"은 독일의 블뤼허였다.[38] 포 12문과 포 8문을 장착한 블뤼허는 영국의 인빈시블급에 대한 오해로 인해 장갑순양함으로 계획되었지만, 실제로는 순양전함보다 약했다.[39],[40],[41]

1910년경, 장갑순양함은 기술 발전으로 인해 한계에 도달했다. 대구경 포와 빠른 속도를 요구하는 전술 변화에 따라, 장갑순양함은 순양전함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42] 미국 해군 연구소는 1908년 회보에서 장갑순양함이 전함과 싸우기에는 부적합하며, 정찰이나 통상 파괴에는 더 작은 배가 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43],[44]

2. 6. 제1차 세계 대전과 장갑순양함의 쇠퇴 (1914년 ~ 1918년)

코로넬 해전에서 독일 장갑순양함 와 는 영국 해군에게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우수한 사격술과 최적의 병참을 갖춘 독일군은 영국 해군 장갑순양함 와 를 격침시켜 1,500명 이상의 영국 해군 장교와 사병(소장 Christopher Cradock)이 사망했다.[45]

5주 후, 포클랜드 해전은 기술과 전술이 얼마나 변화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SMS ''Scharnhorst''와 SMS ''Gneisenau''는 영국 순양전함 HMS ''Invincible''과 , 3척의 장갑순양함, 그리고 2척의 경순양함으로 구성된 영국 함대에 의해 격침되었다. 독일 장갑순양함은 추격자보다 속도가 느렸고, 영국 12인치 함포에 의해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47]

도거 뱅크 해전 동안, 는 영국 순양전함의 포탄에 의해 손상되어 속도가 17노트로 느려졌고 결국 침몰했다. Franz von Hipper 제독은 자신의 더 가치 있는 순양전함이 탈출할 수 있도록 ''Blücher''의 침몰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49]

, 및 는 유틀란트 해전에서 독일 해군의 전열(순양전함과 전함 포함)의 시야와 사정거리에 실수로 들어감으로써 손실되었다.[50] 장갑 벨트는 보다 현대적인 전함과 순양전함의 280mm(11인치) 및 300mm(12인치) 포탄을 견디기에 너무 약했고, 순양함은 그들로부터 벗어나기에는 너무 느렸다.[51] 장갑순양함 유형의 최종적인 종말은 캡형 철갑탄의 개발에 있었다. 충분히 큰 크기의 연성 캡형 철갑탄에 의해 맞았을 때 보호 기능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였던 하비 및 크루프 시멘트 장갑이 실패했다. 이후 경질 캡형 철갑탄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52]

2. 7. 전후 시대와 장갑순양함의 종말 (1919년 이후)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살아남은 장갑순양함 대다수는 고철로 팔렸다. 1922년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은 열강 해군의 "주력함" 숫자에 엄격한 제한을 두었다. "주력함"은 배수량 10,000톤 이상, 8인치 이상 함포를 장착한 군함으로 정의되었고, 이 조약으로 많은 장갑순양함이 퇴역했다. 1930년 런던 해군 군축 조약은 순양함 톤수 제한을 추가했고, 장갑순양함의 역할은 경순양함중순양함(독일 해군은 장갑함)이 대신했다.

이러한 제한 속에서도 살아남은 소수의 장갑순양함은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헬레네 해군의 Θωρηκτό Γ. Αβέρωφ|게오르기오스 아베로프el는 1909년에 건조되었으며, 그리스 함락 후 영국 해군과 함께 인도양에서 호송 임무를 수행했다. 여러 일본 장갑순양함은 기뢰 부설함이나 훈련함으로 활동했다.

일본 제국 해군의 아사마, 이즈모, 도키와, 이와테, 야쿠모, 아즈마, 카스가는 일본 본토 인근 해역에서 훈련, 지원, 대공 방어 함정으로 사용되었다. 대부분은 일본 항구에서 연합군의 폭격으로 격침되었다.

이탈리아 왕립 해군의 산 조르지오는 스페인 내전 당시 이탈리아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스페인에 배치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토브루크 공방전에서 이탈리아 부대에 대공 엄호 및 해상 포격을 지원했다. 영국 항공기에 의해 심하게 손상되어 자침되었다. 자매함 산 마르코는 1931년 퇴역하여 무선 조종 표적함으로 사용되다 1943년 자침되었다.

미국 해군의 USS 로체스터는 1933년부터 퇴역하여 수빅 만에 정박, 수용선 및 대공 플랫폼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필리핀 침공 당시 일본군의 나포를 막기 위해 자침되었다.

아르헨티나 해군의 ARA 헤네랄 벨그라노와 ARA 푸에르레돈은 각각 1947년과 1954년까지 운용되었다.

스웨덴 해군의 HSwMS 필기아는 1939년부터 1940년까지 현대화 작업을 거쳐 제2차 세계 대전 중 발트해에서 중립국 순찰을 수행했다. 1953년까지 운용되었다.

현재 유일하게 현존하며 현역으로 간주되는 장갑순양함은 Θωρηκτό Γ. Αβέρωφ|게오르기오스 아베로프el로, 그리스 팔라이오 팔리론에 박물관으로 보존되어 있다.

3. 각국의 장갑순양함

프랑스 해군이 증기 기관만으로 항해하는 최초의 장갑순양함을 완공한 것을 시작으로, 여러 국가에서 장갑순양함을 건조하였다. 주요 해군 국가별 장갑순양함은 다음과 같다.

3. 1. 프랑스 해군

프랑스 해군은 증기 기관만으로 항해하는 최초의 장갑순양함을 완공했다. 주요 장갑순양함은 다음과 같다.

함명완공 연도배수량(톤)주포속력(노트)비고
뒤피 드 롬1890년6,67619cm(45구경) 단장포 2기19.71척
아미랄 샤르네급1894년4,68119cm(45구경) 단장포 2기19아미랄 샤르네, 브뤼, 샹지, 라투슈 트레빌 (4척)
포토1897년5,37519cm(40구경) 단장포 2기191척
잔 다르크1902년11,09219cm(40구경) 단장포 2기21.81척
게이동급1902년9,36719cm(40구경) 단장포 2기21.8뒤프티 투아르, 게이동, 몽칼름 (4척)
뒤플렉스급1903년7,43216cm(45구경) 연장포 4기21두제, 뒤플렉스, 클레베 (3척)
아미랄 오브급1903년9,53419cm(40구경) 단장포 2기, 16cm(45구경) 단장포 8기21.5아미랄 오브, 콩데, 글루아르, 마르세예즈, 쉴리 (5척)
레옹 갱베타급1905년11,95919cm(40구경) 연장포 2기, 16cm(45구경) 연장포 6기 + 동 단장포 4기22.5레옹 갱베타, 줄 페리, 빅토르 위고 (3척)
줄 미슐레1908년13,10519cm(50구경) 연장포 2기, 16cm(45구경) 단장포 12기22.5
에르네스트 르낭1909년13,50419cm(50구경) 연장포 2기, 16cm(45구경) 단장포 12기23
에드가 키네급1911년13,87419cm(50구경) 연장포 2기 + 동 단장포 10기23에드가 키네, 왈데크 루소 (2척)


3. 2. 러시아 제국 해군

함명준공년도배수량주포부포최대 속력
파미야트 아조바급1890년6,670톤20.3cm (35구경) 단장포 2기15.2cm (35구경) 단장포 13기17노트
류리크 (I)1895년11,690톤20.3cm (35구경) 단장포 4기15.2cm (45구경) 단장포 16기18.7노트
로시야1897년12,195톤20.3cm (45구경) 단장포 6기15.2cm (45구경) 단장포 14기19노트
그로모보이1900년11,359톤20.3cm (45구경) 단장포 6기15.2cm (45구경) 단장포 20기20노트
바얀 (I)1902년7,835톤20.3cm (45구경) 단장포 2기15.2cm (45구경) 단장포 8기22.5노트
아드미랄 마카로프급1906년7,835톤20.3cm (45구경) 단장포 2기15.2cm (45구경) 단장포 8기22.5노트
아드미랄 마카로프1906년7,835톤20.3cm (45구경) 단장포 2기15.2cm (45구경) 단장포 8기22.5노트
바얀 (II)1906년7,835톤20.3cm (45구경) 단장포 2기15.2cm (45구경) 단장포 8기22.5노트
팔라다1906년7,835톤20.3cm (45구경) 단장포 2기15.2cm (45구경) 단장포 8기22.5노트
류리크 (II)1906년15,170톤25.4cm (50구경) 연장포 2기20.3cm (45구경) 연장포 4기21.5노트


3. 3. 미국 해군


  • 메인 (1895년 준공, 6682ton, 25.4cm(30구경) 연장포 2기, 16노트) 1척
  • 뉴욕 (1893년 준공, 8150ton, 20.3cm(35구경) 연장포 2기 + 동 단장포 2기, 20노트) 1척

: → 1911년 2월, 새러토가로 개명 → 1917년 12월, 로체스터로 개명

  • 브루클린 (1896년 준공, 9215ton, 20.3cm(35구경) 연장포 4기, 20노트) 1척
  • 펜실베이니아급 (1901년~1908년 준공, 13680ton, 20.3cm(40구경) 연장포 2기, 22노트) 6척
  • * 펜실베이니아, 웨스트버지니아,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메릴랜드, 사우스다코타
  • 테네시급 (1904년~1908년 준공, 14733ton, 25.4cm(40구경) 연장포 2기, 22노트) 4척
  • * 테네시, 워싱턴, 노스캐롤라이나, 몬태나

3. 4. 이탈리아 왕립 해군

함명취역 연도배수량 (톤)주포속력 (노트)비고
마르코 폴로1894년4580ton15.2cm(40구경) 단장포 6문171척
베토르 피사니급1898년6720ton15.2cm(40구경) 단장포 6문19베토르 피사니, 카를로 알베르토 2척
주세페 가리발디급1901년7350ton25.4cm(40구경) 단장포 1문 + 20.3cm(45구경) 연장포 1기19.7주세페 가리발디, 발레세, 프란체스코 페루치오 3척
피사급1909년9960ton25.4cm(45구경) 연장포 2기, 19cm(45구경) 연장포 4기23피사, 아말피 2척
산 조르조급1910년9832ton25.4cm(45구경) 연장포 2기, 19cm(45구경) 연장포 4기23.2산 조르조, 산 마르코 2척
자라급1931년11870ton20.3cm(53구경) 연장포 4기33자라, 피우메, 고리치아, 폴라 4척


3. 5. 일본 제국 해군

러일 전쟁에서 일본 해군의 장갑순양함은 크게 활약했다. 가미무라 히코노조 중장이 이끄는 제2함대 소속 순양함 전대(통칭 '''가미무라 함대''')는 이즈모, 야쿠모, 이와테, 아즈마, 아사마, 도키와 등 6척의 장갑순양함으로 구성되었다.[18] 가미무라 함대는 블라디보스토크를 근거지로 일본 열도 근해에서 통상 파괴를 실시하던 러시아 제국 해군블라디보스토크 순양함대를 수색, 울산 해전에서 격파하는 전과를 올렸다.[18] 또한 여순항 공격, 황해 해전, 쓰시마 해전 등 주요 해전에서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의 제1함대와 함께 연합함대를 편성하여 러시아 해군과 교전했다.

쓰시마 해전 당시, 연합함대는 전함 2척을 상실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탈리아제 장갑순양함 2척(카스가, 닛신)을 제1함대에 편입하여 전력을 보강했다.

이러한 해전을 통해 장갑순양함의 공격력 부족 문제가 제기되자, 일본 해군은 방어력을 일부 희생하고 공격력과 속력을 강화한 쓰쿠바형 장갑순양함을 건조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과 런던 해군 군축 회의를 거치면서 장갑순양함은 점차 구식화되어 해방함으로 함종이 변경되거나, 연습함 등으로 운용되었다. 일부 함정은 기뢰 부설함으로 개조되어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일본 제국 해군의 주요 장갑순양함은 다음과 같다.

함명건조배수량주요 무장속력비고
아사마형
(아사마, 도키와)
1899년, 영국 암스트롱사9,700톤20.3cm (45구경) 연장포 2기21.5노트
야쿠모1900년, 독일 불칸 조선소9,695톤20.3cm (45구경) 연장포 2기20.5노트
아즈마1900년, 프랑스 루아르사 생나제르 조선소9,326톤20.3cm (45구경) 연장포 2기20노트
이즈모형
(이즈모, 이와테)
1900년, 영국 암스트롱사9,775톤20.3cm (45구경) 연장포 2기20.8노트
카스가형
(카스가, 닛신)
1904년, 이탈리아 안살도사7,700톤카스가: 25.4cm (40구경) 단장포 1기, 20.3cm (45구경) 연장포 1기
닛신: 20.3cm (45구경) 연장포 2기
20.0노트이탈리아에서 수입
쓰쿠바형
(쓰쿠바, 이코마)
1907년13,750톤30.5cm (45구경) 연장포 2기20.5노트일본에서 건조
쿠라마형
(쿠라마, 이부키)
1911년14,636톤30.5cm (45구경) 연장포 2기, 20.3cm (45구경) 연장포 4기21.25노트일본에서 건조, 1912년 순양전함으로 함종 변경


3. 6. 독일 제국 해군

함명준공 연도배수량주포속력
퓌르스트 비스마르크1900년10700ton24cm(40구경) 연장포 2기18.7노트
프린츠 하인리히1902년8890ton24cm(40구경) 단장 속사포 2기19.9노트
프린츠 아달베르트급1903년9090ton21cm(40구경) 연장 속사포 2기20.4노트
프린츠 아달베르트
프리드리히 카를
론급1905년9550ton21cm(40구경) 연장 속사포 2기21.1노트
요르크
샤른호르스트급1907년11610ton21cm(40구경) 연장 속사포 2기 + 동 단장 속사포 4기23.5노트
샤른호르스트
그나이제나우
블뤼허1909년15840ton21cm(44구경) 연장 속사포 6기25.4노트


3. 7. 영국 해군

함급준공 연도톤수주포속력함선 수
크레시급1901년12,000톤23.4cm(40구경) 단장포 2기21노트6척
드레이크급1902년14,150톤23.4cm(45구경) 단장포 2기23노트4척
먼머스급1903년9,800톤15.2cm(45구경) 연장 속사포 2기 + 동 단장 속사포 10기23노트10척
데번셔급1905년10,850톤19.1cm(45구경) 단장 속사포 4기22.25노트6척
듀크 오브 에든버러급1906년13,550톤23.4cm(45구경) 단장포 6기23.25노트2척
워리어급1906년13,550톤23.4cm(45구경) 단장포 6기, 19.1cm(45구경) 단장포 4기23노트4척
마이노터급1908년14,600톤23.4cm(50구경) 연장포 2기, 19.1cm(50구경) 단장포 10기23노트2척


  • 크레시급: 아푸키아, 바칸트, 크레시, 유라이아스, 호그, 사트레지
  • 드레이크급: 드레이크, 굿 호프, 킹 알프레드, 리바이어선
  • 먼머스급: 에섹스, 켄트, 베드퍼드, 먼머스, 베릭, 콘월, 컴벌랜드, 도니골, 랭커스터, 서포크
  • 데번셔급: 앤트림, 아르가일, 카나본, 데번셔, 햄프셔, 록스버러
  • 듀크 오브 에든버러급: 블랙 프린스, 듀크 오브 에든버러
  • 워리어급: 아킬레스, 코크란, 나탈, 워리어
  • 마이노터급: 디펜스, 마이노터, 섀넌

3. 8.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

함명준공 연도배수량 (톤)주포속력 (노트)
카이제린 운트 쾨니긴 마리아 테레지아1895년5,164톤24cm(35구경) 단장포 2기18.9노트
카이저 카를 6세1900년6,970톤24cm(40구경) 단장 속사포 2기20.0노트
장크트 게오르크1905년8,070톤24cm(40구경) 연장 속사포 1기22.0노트


3. 9. 기타 국가 해군



국가함명준공 연도배수량(톤)주포속력(노트)
칠레에스메랄다es(Esmeralda)1895년8500ton20.3cm(40구경) 단장포 2문22.25
칠레제네랄 오히긴스(General O'Higgins)1896년8500ton20.3cm(45구경) 단장포 4문21.6
스페인크리스토발 콜론1897년6840ton24cm(42구경) 단장포 2기19.5
스페인인판타 마리아 테레사급1893년6890ton28cm(35구경) 단장포 2기20.25
스페인엠페라돌 카를로스 5세1898년9235ton28cm(35구경) 단장포 2기20.0
스페인프린세사 데 아스투리아스급?년6500ton24cm(42구경) 단장포 2기18.0
스웨덴필기아1907년4980ton15.2cm(50구경) 연장포 4기22
그리스게오르요스 아베로프


4. 중순양함과의 차이점

중순양함은 1930년 제1차 런던 해군 조약의 직접적인 산물로, 순양함을 6.1인치 이상의 주포를 가진 순양함과 그 이하의 주포를 가진 순양함으로 구분했으며, 두 종류 모두 워싱턴 해군 조약의 제한 내에서 표준 배수량 10000ton 이하, 주포 구경 8인치(203mm) 이하로 제한되었다.[53]

중순양함과 장갑순양함 사이에는 중요한 기술적 차이점이 있었는데, 이 중 일부는 세대 차이를 반영했다. 중순양함은 일반적으로 유류 연소 과열 증기 보일러와 증기 터빈 엔진으로 구동되었으며, 장갑순양함(당시 석탄 연소 왕복 증기 기관으로 추진)이 가질 수 있었던 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다.[53]

장갑순양함은 여러 기술이 등장하던 과도기에 등장했다. 보일러는 더 나아졌고(개선이 필요했지만), 크루프 강철 장갑과 복합 증기 기관이 등장했다. 변화의 속도는 엄청났고, 20년 이상 된 모든 군함은 완전히 구식이 되었다.[53]

참조

[1]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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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서적 Kaigun: strategy, tactics, and technology in the Imperial Japanese Navy https://books.google[...]
[23] 서적
[24] 서적 Battleships
[25] 서적
[26] 서적 Pas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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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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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서적 Brown
[37] 서적 Tucker & Roberts
[38] 서적 Ma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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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간행물 Stirling, Proceed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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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서적 Massie U9, Castles
[47] 서적 Massie, Cast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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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서적 Massie, Cast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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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웹사이트 History and Technology – Projectile AP Caps – NavWeaps http://www.navweaps.[...] 2018-04-28
[53] 서적 British Cruisers of the Victorian era
[54] 서적 British Cruisers of the Victorian era
[55] 서적 British Cruisers of the Victorian era
[56] 간행물 "昭和17年7月(1)」、昭和17年5月~8月 内令(防衛省防衛研究所)" アジア歴史資料センタ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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