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라클라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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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발라클라바는 크림 반도에 위치한 도시로,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역사를 지니며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고대에는 심볼론으로 불렸고, 중세 시대에는 비잔틴 제국, 제노바 공화국,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특히 제노바 시대에는 흑해와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였으며, 제노바 요새가 남아있다. 1783년 러시아 제국에 병합되었고, 크림 전쟁 중 발라클라바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는 경기병 여단의 돌격으로 유명하며, 이 도시의 이름을 딴 발라클라바 (의류)가 군인들에게 처음 착용되었다. 1954년 우크라이나 SSR로 이관되었고, 1957년 세바스토폴에 편입되어 도시 지위를 잃었으나, 소련 붕괴 후 우크라이나의 일부가 되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 반도 병합 이후 러시아 행정 하에 있으며, 과거 소련의 비밀 잠수함 기지가 현재는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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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클라바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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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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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공식 명칭 | 발라클라바 |
기타 명칭 | 켐발로 (1475년까지) 얌볼리 심볼론 |
토착어 명칭 | |
행정 구역 | |
국가 | 분쟁 지역 , |
지역 | 세바스토폴 |
지리 정보 | |
고도 | 10m |
인구 통계 | |
총 인구 | 18,649명 |
인구 조사 기준 연도 | 2014년 |
행정 및 기타 정보 | |
우편 번호 | 299xxx |
지역 번호 | +380-692 |
웹사이트 | 발라클라바 웹사이트 |
2. 역사
발라클라바는 역사를 통틀어 여러 차례 소유주가 바뀌었다. 발라클라바 입구 절벽 꼭대기에 있는 제노바 요새 폐허는 인기 있는 관광 명소이며, 최근에는 중세 축제의 무대가 되었다. 이 요새는 1826년 미츠키에비츠의 《크림 소네트》 연작 중 두 번째 시의 주제이기도 하다.
2. 1. 고대와 중세
고대 그리스인들이 현재 위치에 정착지를 상업 도시로 건설하였으며, 당시에는 심볼론(Σύμβολονel)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중세 시대에는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얌볼리라고 불렸다. 1365년에는 제노바 공화국에 정복되어 쳄발로라고 불렸다. 제노바인들은 지중해와 흑해에 걸쳐 거대한 무역 제국을 건설하여 동유럽에서 노예를 사들여 크림 반도를 통해 이집트로 보냈으며, 이는 베네치아 공화국과의 치열한 경쟁 시장이었다.[5]
1475년, 쳄발로시는 오스만 제국에게 정복당했고, 이후 "발릭-유바"(물고기 둥지)라는 뜻의 발라클라바로 이름이 바뀌었다.[5]
2. 2.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 제국
1475년, 셈발로시는 오스만 제국에 정복당했고, 이후 "발릭-유바"(물고기 둥지)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발라클라바가 되었다.[5]러시아-투르크 전쟁 (1768-1774) 중, 러시아 제국군은 1771년 크림 반도를 침공했다. 13년 후, 크림 반도는 러시아 제국에 완전히 병합되었다. 그 후, 크림 타타르족과 터키인들은 에게해에서 온 그리스 정교회 신자들에 의해 강제로 대체되었다.
2. 3. 크림 전쟁
1854년 크림 전쟁 중 발라클라바 전투는 러시아군이 세 면에서 강력하게 방어하는 계곡으로 영국 경기병 여단이 돌격한 사건으로, 이 무모한 돌격으로 약 250명의 군인이 죽거나 다쳤고, 400마리 이상의 말이 희생되어 경기병 여단의 규모가 3분의 2로 줄었다. 또한, 군사적 성과 없이 세계 최고 수준의 경기병대가 파괴되었다. 알프레드 테니슨은 그의 시 《경기병의 돌격》에서 이 전투를 영원히 기억되도록 묘사했다.[5]발라클라바는 눈과 입을 위한 구멍이 있는, 머리 전체와 목을 덮는 꽉 짜인 의류로, 이 정착지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크림 전쟁 당시 영국 군인들이 처음 착용했다.[5]
2. 4. 소련 시대
1954년, 발라클라바는 크림 반도 전체와 함께 러시아 SFSR에서 우크라이나 SSR로 이관되었다. 1957년에는 소련 정부에 의해 세바스토폴 시 경계에 공식적으로 편입되어 도시 지위를 잃었다. 소련 붕괴 후, 이 도시는 크림 반도 전체와 함께 현대 우크라이나의 구성 부분이 되었다. 대조국 전쟁, 크림 전쟁, 러시아 내전 등 과거 전쟁에서의 군사적 용맹을 기리는 수십 개의 기념비가 이 도시에 세워져 있다.[5]2. 5. 현대
크림 전쟁 중 발라클라바 전투는 러시아가 세 면에서 강력하게 지배하는 계곡으로 보낸 자살적인 경기병 여단 돌격으로 유명해졌다. 이 돌격으로 약 250명의 군인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했고, 400마리 이상의 말이 손실되어 기병 여단의 규모가 3분의 2로 줄었으며, 군사적 목적 없이 세계 최고의 경 기병대가 파괴되었다.[1] 알프레드 테니슨은 그의 시 《경기병의 돌격》에서 이 전투를 불멸화했다.[1]눈과 입을 위한 구멍이 있는 머리 전체와 목을 덮는 꽉 짜인 의류인 발라클라바는 이 정착지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군인들이 처음으로 착용했다.[1] 19세기 후반에 영어권 국가에서 설립된 수많은 도시들이 "발라클라바"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발라클라바 (동음이의) 참조).[1]
1954년, 발라클라바는 크림 반도 전체와 함께 러시아 SFSR에서 우크라이나 SSR로 이관되었다.[1] 1957년에는 소련 정부에 의해 세바스토폴의 시 경계에 공식적으로 편입되어 도시 지위를 잃었다.[1] 소련 붕괴 후, 이 도시는 크림 반도 전체와 함께 현대 우크라이나의 구성 부분이 되었다.[1] 대조국 전쟁, 크림 전쟁, 러시아 내전을 포함한 과거 전쟁에서의 군사적 용맹을 기리는 수십 개의 기념비가 이 도시에 세워져 있다.[1]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않은 2014년 러시아 연방의 크림 반도 병합 이후, 발라클라바는 크림 반도의 나머지 지역과 함께 러시아의 행정 하에 있다.[1] 2019년 러시아 당국은 발라클라바에 세바스토폴 내의 도시 지위를 부여했다.[1]
3. 군사 유적
발라클라바의 주요 군사 유적은 1993년까지 기밀로 운영되었던 지하 잠수함 기지이다. 이 기지는 핵 공격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소련 시절 발라클라바는 가장 비밀스러운 거주 지역 중 하나였으며, 기지 관계자와 그 가족들만이 거주할 수 있었다. 가족 구성원조차도 허가 없이는 발라클라바를 방문할 수 없었다. 1993년 폐쇄 절차가 시작되어 1996년 마지막 러시아 잠수함이 기지를 떠났고, 현재는 발라클라바 해군 박물관 단지로 공개되어 있다.
3. 1. 잠수함 기지 (발라클라바 해군 박물관 단지)
기념물 중 하나는 1993년까지 운영되었던 지하의, 이전에는 기밀이었던 잠수함 기지이다. 이 기지는 사실상 파괴 불가능하며 직접적인 원자 공격에도 살아남도록 설계되었다. 당시 발라클라바는 소련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거주 지역 중 하나였다. 한때 발라클라바 인구 거의 전체가 기지에서 일했으며, 가족 구성원조차도 정당한 이유와 적절한 신분증 없이는 발라클라바를 방문할 수 없었다. 이 기지는 1991년 소련의 붕괴 이후에도 운영되다가 1993년 폐쇄 절차가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탄두와 저위력 어뢰가 제거되었다. 1996년, 마지막 러시아 잠수함이 기지를 떠났다. 이후 기지는 발라클라바 해군 박물관 단지로 대중에 공개되었다.참조
[1]
서적
The Black Sea Encyclopedia
Springer
2014
[2]
서적
Hell Riders: The Truth about the Charge of the Light Brigade
Penguin
2005
[3]
뉴스
Балаклава официально стала городом
https://an-crimea.ru[...]
Аргументы Недели. Крым
2019-08-04
[4]
웹사이트
http://publication.p[...]
pravo.gov.ru
2019-08-04
[5]
웹사이트
TDK Online - Balıklava entry
http://www.tdk.o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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