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텔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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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비텔로니》는 페데리코 펠리니가 감독한 1953년 이탈리아 영화이다. 아드리아 해안의 한 지방 도시에서 여름을 보내는 다섯 명의 젊은 남성들의 삶을 그린 작품으로, 그들의 방황, 사랑, 꿈, 그리고 현실 사이의 갈등을 보여준다. 영화는 미인대회, 결혼, 무도회 등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젊은 세대의 불안과 허무함을 묘사하며, 펠리니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비텔로니》는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하며 비평적으로 호평을 받았고, 마틴 스코세이지, 스탠리 큐브릭 등 많은 영화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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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텔로니 - [영화]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 | |
| 원제 | I Vitelloni (이 비텔로니) |
| 감독 | 페데리코 펠리니 |
| 제작 | 로렌초 페고라로, 마리오 데 베키, 자크 바 |
| 각본 | 페데리코 펠리니, 엔니오 플라이아노, 툴리오 피넬리 |
| 원작 | 페데리코 펠리니, 툴리오 피넬리 |
| 출연 | 알베르토 소르디, 프랑코 파브리치, 프랑코 인테르렌기, 레오폴도 트리에스테 |
| 음악 | 니노 로타 |
| 내레이터 | 리카르도 쿠촐라 |
| 촬영 | 카를로 카를리니, 오텔로 마르텔리, 루치아노 트라사티 |
| 편집 | 롤란도 베네데티 |
| 제작사 | 페그-필름, 시테 필름 |
| 배급사 | ENIC (이탈리아) RKO 픽처스 (프랑스) |
| 개봉일 | 1953년 8월 26일 (베네치아) 1953년 9월 17일 (이탈리아) 1954년 4월 23일 (프랑스) |
| 상영 시간 | 108분 |
| 제작 국가 | 이탈리아, 프랑스 |
| 언어 | 이탈리아어 |
| 수상 | |
| 국립 영화 비평가 협회상 | 외국어 영화상 |
| 베네치아 영화제 | 은사자상 |
| 기타 | |
| 문화재 | 보존할 이탈리아 영화 100선 선정 |
2. 등장인물
영화의 중심에는 '비텔로니'라 불리는 다섯 명의 젊은 친구들이 있다. 이들은 아드리아 해안의 작은 지방 도시에 살며, 직업 없이 부모에게 의존하고 유치한 장난이나 치며 시간을 보낸다.[5]
- 파우스토 모레티: 그룹의 리더 격이지만 책임감 없는 바람둥이이다. 미인대회 우승자인 산드라 루비니를 임신시켜 강제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 후에도 여성 편력을 버리지 못하고 직장에서도 문제를 일으켜 해고당한다. 아내 산드라가 집을 나가자 뒤늦게 후회하고 아버지에게 호되게 혼난 뒤 아내와 화해한다.
- 모랄도 루비니: 산드라의 남동생이자 다섯 친구 중 가장 생각이 깊고 내성적인 인물이다. 답답한 고향을 떠나 로마와 같은 대도시에서의 새로운 삶을 갈망하며, 친구들의 철없는 행동과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뇌한다. 결국 영화 마지막에 홀로 기차를 타고 고향을 떠난다.
- 알베르토: 어머니와 여동생 올가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며 살아간다. 감정적이고 유약하며, 특히 어머니에게 강한 애착을 보인다.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집을 떠나는 누이 올가 때문에 크게 상심한다.
- 리카르도: 가수나 배우가 되기를 꿈꾸지만, 다소 허황된 야망을 가진 인물이다.
- 레오폴도 바누치: 작가를 꿈꾸며 희곡을 쓰는 지적인 인물이다. 자신의 작품을 올려줄 것으로 기대했던 나이 든 연극 배우 세르지오 나탈리가 동성애적인 접근을 해오자 충격을 받고 도망친다.
이들 외에도 파우스토 때문에 속앓이를 하면서도 그를 받아주는 아내 산드라 루비니, 아들의 무책임함에 분노하는 파우스토의 아버지 프란체스코 모레티, 알베르토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지만 결국 유부남과 함께 떠나는 누이 올가, 파우스토에게 일자리를 주지만 그의 불성실함과 아내에 대한 접근 시도 때문에 해고하는 미켈레 쿠르티와 그의 아내 줄리아 쿠르티, 레오폴도에게 접근하는 연극 배우 세르지오 나탈리 등이 등장하여 극을 이끌어간다.
2. 1. 주요 인물
- 프랑코 인테르렝기 - 모랄도 루비니 역
- 알베르토 소르디 - 알베르토 역
- 프랑코 파브리지 - 파우스토 모레티 역
- 레오폴도 트리에스테 - 레오폴도 바누치 역
- 리카르도 펠리니 - 리카르도 역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의 동생)
- 레오노라 루포 - 산드라 루비니 역 (모랄도의 여동생)
- 장 브로샤르 - 프란체스코 모레티 역 (파우스토의 아버지)
- 클로드 파렐 - 올가 역 (알베르토의 여동생)
- 카를로 로마노 - 미켈레 쿠르티 씨 역
- 리다 바아로바 - 줄리아 쿠르티 부인 역
- 엔리코 비아리시오 - 루비니 씨 역 (모랄도의 아버지)
- 파올라 보르보니 - 루비니 부인 역 (모랄도의 어머니)
- 아킬레 마예로니 - 세르지오 나탈리 역
- 아를레트 소바쥬 - 영화관의 미스터리한 여성 역
- 실비오 바골리니 - 단순한 시골 사람 / 주디치오 역
- 비라 실렌티 - 지젤라 역
- 마야 니포라 - 카테리나 역 (소브레트(여가수))[6]
- 지제타 모라노 - 알베르토의 어머니 역
- 귀도 마르투피 - 귀도 역
- 밀비아 키아넬리 - 마리아 역
- 릴리아 란디 - 본인 역
- 리카르도 쿠치올라 - 내레이션 목소리 역
2. 2. 조연
- Leonora Ruffoita - 산드라 루비니, 모랄도의 여동생 역
- 장 브로샤르 - 프란체스코 모레티, 파우스토의 아버지 역
- Claude Farell|클로드 파렐deu - 올가, 알베르토의 여동생 역
- Carlo Romanoita - 미켈레 쿠르티 씨 역
- 리다 바아로바 - 줄리아 쿠르티 부인 역
- 엔리코 비아리시오 - 루비니 씨, 모랄도의 아버지 역
- Paola Borboni|파올라 보르보니ita - 루비니 부인, 모랄도의 어머니 역
- 아킬레 마예로니 - 세르지오 나탈리 역
- 아를레트 소바쥬 - 영화관의 미스터리한 여성 역
- 실비오 바골리니 - 단순한 시골 사람 역 / 주디치오 역
- 비라 실렌티 - 지젤라 역
- 마야 니포라 - 카테리나, 소브레트(여가수) 역[6]
- 지제타 모라노 - 알베르토의 어머니 역
- 귀도 마르투피 - 귀도 역
- 밀비아 키아넬리 - 마리아 역
- 릴리아 란디 - 본인 역
- 리카르도 쿠치올라 - 내레이션 목소리 역
3. 줄거리
1953년 여름 끝 무렵, 아드리아 해 연안의 한 지방 도시에서 열린 미인대회에서 '미스 인어'로 뽑힌 산드라 루비니가 갑자기 쓰러진다. 그녀가 바람둥이 파우스토 모레티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파우스토는 아버지의 압력으로 산드라와 강제 결혼을 하게 된다.
영화는 파우스토와 그의 네 친구들, 즉 '비텔로니'라 불리는 젊은이들의 삶을 따라간다. 이들은 20대 청년들로, 변변한 직업 없이[5] 부모에게 의지하며 지방 소도시에서 무위도식하는 나날을 보낸다. 다섯 친구는 각각 산드라의 남동생이자 현실 탈출을 꿈꾸는 모랄도, 어머니에게 의존하는 몽상가 알베르토, 가수 지망생 리카르도, 그리고 작가 지망생 레오폴도이다.
결혼 후에도 파우스토는 책임감 없는 태도와 바람기를 버리지 못하고, 친구들 역시 각자의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 방황하며 유치한 장난으로 시간을 때운다. 이야기는 이들의 성장하지 못한 모습과 지방 생활의 단조로움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젊음의 불안과 좌절을 그려낸다.
3. 1. 주요 사건
여름 끝 무렵, 아드리아 해 연안의 한 지방 도시에서 열린 미인대회는 폭우로 중단된다. 대회에서 "1953년 미스 인어"(또는 "미스 수영복")로 뽑힌 산드라 루비니는 갑자기 쓰러지고, 그녀가 바람둥이 파우스토 모레티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문이 퍼진다. 파우스토는 아버지 프란체스코의 압력에 못 이겨 산드라와 강제 결혼을 하게 되고, 조촐한 결혼식 후 신혼여행을 떠난다.파우스토의 친구들인 모랄도, 알베르토, 리카르도, 레오폴도는 20대 청년들로, 변변한 직업 없이[5] 부모에게 의지하며 살아간다. 이들은 카페나 당구장을 전전하고, 텅 빈 해변을 거닐며 시간을 보낸다. 때로는 유치한 장난을 치기도 하는데, 자신들이 번 적 없는 고급 차를 타고 가다 성실한 도로 노동자들을 조롱하다 차가 고장 나 매를 맞기도 한다.
다섯 친구, 즉 '비텔로니' 중 막내이자 산드라의 남동생인 모랄도는 파우스토의 끊임없는 여성 편력을 불편하게 여기며 현실에서 벗어나 대도시(로마)로 떠날 날을 꿈꾼다. 리카르도는 가수가 되겠다는 비현실적인 야망을 품고 있고, 몽상가 알베르토는 어머니와 자립심 강한 누나 올가에게 의지해 살아간다. 알베르토는 누나가 유부남과 비밀 연애를 하는 것을 알고 괴로워한다. 극작가를 지망하는 레오폴도는 자신의 희곡을 써서 괴짜 연극 배우 세르지오 나탈리에게 보여주며 공연 기회를 얻으려 한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파우스토는 장인이 친구 미켈레 쿠르티가 운영하는 종교 용품점에 창고 보조원으로 취직하지만, 타고난 바람기를 버리지 못하고 아내가 있는 자리에서도 다른 여자들에게 눈길을 보낸다. 연례 가장 무도회에서 파우스토는 고용주의 아내 줄리아 쿠르티에게 매료되어 유혹하려 하지만 실패하고, 이 일로 해고당한다. 같은 날 밤, 술에 취해 여장을 하고 춤을 추던 알베르토는 새벽녘에 누나 올가가 유부남 애인과 함께 야반도주하는 모습을 보고 절망한다.
해고된 파우스토는 복수심에 전 고용주의 가게에서 금색 천사 조각상을 훔쳐 모랄도와 함께 팔아보려 하지만 실패하고, 결국 시골 농부에게 맡긴다. 한편, 레오폴도는 자신의 희곡에 대해 이야기하려 배우 세르지오와 해변을 걷다가 그가 동성애적인 접근을 해오자 겁에 질려 도망친다.
파우스토가 버라이어티 쇼 공연자와 하룻밤을 보낸 사실을 알게 된 산드라는 아기를 데리고 집을 나간다. 파우스토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필사적으로 아내를 찾아 나서고, 결국 아버지 프란체스코의 집에서 산드라를 발견한다. 격분한 프란체스코는 벨트로 아들 파우스토를 때린다. 이후 파우스토는 잘못을 뉘우치고 산드라와 화해하여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지방 생활의 단조로움과 답답함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 모랄도는 어느 날 아침, 잠든 친구들을 뒤로하고 로마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기차 안에서 그는 여전히 잠들어 꿈을 꾸고 있을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4. 제작 과정
영화의 미술은 마리오 시아리가 담당했다.
1952년, 페데리코 펠리니는 툴리오 피넬리와 함께 구상한 영화 길의 초기 각본을 프로듀서 루이지 로베레에게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이는 펠리니의 전작 하얀 시크의 흥행 실패와 길 각본의 생소함 때문이었다. 대신 로베레는 하얀 시크를 호평했던 제작자 로렌초 페고라로에게 각본을 소개했고, 페고라로는 길의 흥행 가능성을 낮게 보고 펠리니에게 코미디 제작을 제안했다. 《비텔로니》의 아이디어 구체화 과정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7][8] 펠리니는 피넬리, 엔니오 플라이아노와 함께 각자의 사춘기 경험을 바탕으로 빠르게 각본을 공동 집필했다. 영화 제목 '비텔로니(I Vitelloniita)'는 배급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펠리니가 고수한 이름이다.
캐스팅 과정에서 펠리니는 전작의 흥행 실패에도 불구하고 알베르토 소르디 캐스팅을 추진했으며,[11] 레오폴도 트리에스테, 프랑코 인테르렝기, 레오노라 루포, 프랑코 파브리지 등 당시 비교적 덜 알려진 배우들을 기용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스타 배우 부재는 제작자와 재정 후원자들의 우려를 샀으나,[13] 펠리니는 자신의 선택을 관철했다.
촬영은 주연 배우 알베르토 소르디의 버라이어티 쇼 일정에 맞춰 이탈리아 전역을 이동하며 진행되는 이른바 "방랑 제작" 방식으로 이루어졌다.[16] 제한된 예산으로 인해 오스티아의 부두나 피우미치노의 호텔 테라스 등 실제 장소가 적극 활용되었고, 펠리니는 인물들의 삶을 반영하는 느린 트래킹 샷 위주의 카메라 스타일을 개발했다.[17]
편집은 롤란도 베네데티가 맡아 짧은 장면은 갑작스러운 컷으로, 긴 장면은 디졸브로 연결하는 독특한 리듬을 만들었다. 여러 에피소드는 각자의 논리에 따라 구성되었으며 특정 편집 패턴으로 통합되었고, 영화 마지막 장면은 정지 화면으로 처리되었다.
4. 1. 각본
1952년, 공동 각본가 툴리오 피넬리와 함께 초기 버전의 영화 길을 완성한 후, 펠리니는 그들의 "현대 동화"를 당시 계약 관계에 있던 프로듀서 루이지 로베레에게 제안했다. 로베레는 이전 작품인 하얀 시크가 비평과 흥행 모두에서 실패했고, 길의 각본 역시 알아보기 어려운 장르였기 때문에 이를 거절했다. 로베레는 하얀 시크를 높이 평가했던 베네치아 출신의 영화 제작자 로렌초 페고라로에게 각본을 넘겼다. 페고라로는 길이 흥행하기 어려울 것이라 판단하고, 펠리니에게 대신 코미디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누가 《비텔로니》의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렸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뉜다. 툴리오 케지치는 펠리니가 엔니오 플라이아노와 상의한 후 아이디어를 냈다고 주장한다.[7] 반면, 홀리스 알퍼트는 피넬리가 펠리니, 플라이아노와 함께 브레인스토밍을 하던 중 "지방 소도시에서 성장하는 즐거움과 좌절"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고 말한다.[8] 펠리니의 감독 아래, 세 사람은 각자의 사춘기 시절 기억을 모으고 새로운 이야기를 더하며 빠르게 각본을 완성했다.
배급사들은 대중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영화 제목 변경을 요구했지만, 펠리니는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는 "자신의 장난에 불만을 표하는 한 노부인으로부터 '비텔로네(vitelloneita)'라는 말을 들은 후 영화 제목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펠리니에게 '비텔로니(vitelloniita)'는 "중산층의 실업자, 엄마의 애완동물 같은 존재들이다. 그들은 휴가철에 빛을 발하고, 그것을 기다리며 나머지 한 해를 보낸다"는 의미였다. 전기 작가 앨퍼트에 따르면, 이 용어는 로마냐 방언에서 유래했으며 "송아지 또는 어린 송아지... 미숙한 젊은이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이 용어는 "큰 송아지"로 번역되기도 한다.
이 용어의 실제 기원은 송아지(vitelloita)와 쇠고기(bovinoita)를 합친 말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명확한 정체성이나 개념이 없는 미성숙하고 게으른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의되었다.[9] 1971년 서한에서 공동 각본가 엔니오 플라이아노는 이 단어의 더 구체적인 의미를 설명했다. "‘비텔로네(vitelloneita)'라는 용어는 내가 젊었을 때 평범한 집안 출신의 청년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는 학생일 수도 있지만, 이미 정해진 학업 기간을 넘겼거나 아니면 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 용어가 '부델로네(budelloneita)', 즉 큰 창자, 또는 음식을 많이 먹는 사람이라는 단어의 변형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창자처럼 채워지기만을 기다리는, 먹기만 하고 '생산'하지 않는 가족의 아들을 묘사하는 방식이었다."[10]
4. 2. 캐스팅
페데리코 펠리니는 이전 작품인 하얀 시크의 흥행 실패에도 불구하고, 제작자 페고라로의 반대에도 알베르토 소르디를 주요 배역으로 다시 캐스팅하고자 했다. 소르디는 주연을 원했기에 제작 후반부에야 펠리니의 제안을 수락했다.[11] 배급사들은 소르디의 흥행성에 회의적이었고, 계약서에 그의 이름을 영화 포스터에서 제외하는 조항까지 요구했다.[12]펠리니는 캐스팅 과정에서 여러 도전을 감행했다. 하얀 시크에 출연했던 레오폴도 트리에스테를 극작가 역할로, 자신의 동생인 리카르도 펠리니를 리카르도 역할로 캐스팅했다. 또한 당시 무명이었던 프랑코 인테르렝기와 레오노라 루포를 캐스팅했으며, 체코 배우 리다 바르바는 나치의 요제프 괴벨스와의 관계로 인해 당시 더 주목받던 인물이었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사랑의 연대기로 데뷔했지만 최근 출연작의 흥행 부진을 겪었던 프랑코 파브리지를 파우스트 역으로 선택했다.
재정 후원자들은 스타 배우 부재에 불만을 표했고, 제작자 페고라로는 펠리니에게 "소르디는 관객을 도망가게 만든다"며 스타 배우 캐스팅을 압박했다.[13] 펠리니는 이를 달래기 위해 비토리오 데 시카에게 노배우 세르지오 나탈리 역을 제안했다. 데 시카는 역할의 동성애적 뉘앙스를 듣고 "인간적인 면을 많이 담는다면" 수락하겠다고 했으나,[14] 결국 "실제로 게이로 낙인찍힐까 봐 걱정된다"며 거절했다.[15] 펠리니는 데 시카가 역할에 "너무 친절하고, 너무 매력적이고, 너무 산만할 것"이라 판단하고, 연극 배우 아킬레 마예로니를 최종적으로 캐스팅했다.
주요 출연진은 다음과 같다.
| 역할 | 배우 |
|---|---|
| 모랄도 | 프랑코 인테르렝기 |
| 알베르토 | 알베르토 소르디 |
| 파우스트 | 프랑코 파브리지 |
| 레오폴도 | 레오폴도 트리에스테 |
| 리카르도 | 리카르도 펠리니 |
| 산드라 (모랄도의 여동생) | 레오노라 루포 |
| 프란체스코 (파우스트의 아버지) | 장 브로샤르 |
| 올가 (알베르토의 누나) | 클로드 파렐 |
| 미켈레 (고용주) | 카를로 로마노 |
| 시뇨라 줄리아 (고용주의 아내) | 리다 바르바 |
| 모랄도의 아버지 | 엔리코 비아리지오 |
| 모랄도의 어머니 | 파올라 보보니 |
| 영화관의 신비로운 여성 | 아르레테 소바주 |
| 단순한 농민 | 실비오 바고리니 |
| 지젤라 | 비라 실렌티 |
| 시녀 | 마야 니폴라 |
4. 3. 촬영
"방랑 제작"으로 묘사된 촬영은 배우 알베르토 소르디의 버라이어티 쇼 일정에 맞춰 진행되었다. 전후 이탈리아의 중요한 코미디언이었던 소르디는 펠리니의 전작 《하얀 추장》에 이어 출연했으며,[37]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과 제작진은 소르디를 따라 이탈리아 전역을 순회해야 했다. 소르디는 ''빅 라커스'' 투어 중 역할을 연습했고, 휴식 시간에 촬영 준비를 마쳤다. 이에 따라 1952년 12월 초, 소르디가 피렌체를 순회할 때 도시의 테아트로 골도니에서 밤샘 파티 장면 촬영으로 영화 제작이 시작되었다.[16] 펠리니가 전쟁 중 트리폴리에서 처음 만났던 제작 관리자 루이지 지아코시가 제작을 감독했으며, 베테랑 촬영 감독 오텔로 마르텔리가 촬영한 초기 촬영분(러시)은 가면무도회 장면의 기초가 되었다.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제작이 중단된 후, 1953년 1월 15일에 촬영이 재개되었다.제한된 예산 때문에 많은 장면이 실제 장소에서 촬영되었다. 로마 근교의 오스티아에서는 부두가 파우스트와 친구들이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며 방황하는 겨울 장면의 배경이 되었고, 피우미치노에서는 쿠르살 호텔의 테라스가 영화 시작 부분의 미인 대회 장면 배경으로 사용되었다. 제작 관리자 지아코시는 빠듯한 일정 속에서도 배우와 스태프들이 방문한 도시의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도록 하여 팀의 사기를 유지했다.
펠리니는 6개월에 걸쳐 여러 촬영 감독과 협력하며 등장인물들의 "무기력하고 목적 없는 삶"을 표현하기 위해 느린 트래킹 샷을 주로 사용하는 카메라 스타일을 개발했다.[17] 카메라는 종종 극적인 사건을 강조하기 위해 인물에게 다가가는 돌리 인(dolly in) 기법을 사용했는데, 특히 산드라가 미인 대회에서 아프거나 아이를 낳은 후, 그리고 프란체스코가 방탕한 아들을 때리는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편집자 롤란도 베네데티와 함께 펠리니는 짧은 장면들은 갑작스러운 컷으로 연결하고, 긴 장면들은 디졸브(dissolve) 효과를 사용하는 편집 리듬을 만들었다. 수많은 짧고 서로 다른 에피소드들은 "각각의 내부 논리"에 따라 구성되었으며, 특정 편집 패턴을 통해 하나로 묶였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모랄도의 친구인 어린 귀도가 철길 위에서 균형을 잡는 모습은 정지 화면으로 처리되었다.
4. 4. 편집
편집자 롤란도 베네데티와 함께 페데리코 펠리니는 영화의 독특한 리듬을 만들어냈다. 짧은 시퀀스는 갑작스러운 컷 편집으로 분리하고, 더 긴 시퀀스는 디졸브를 사용하여 연결하는 방식을 확립했다. 영화 속 수많은 짧고 서로 다른 에피소드들은 "자체 내부 논리에 의해 지배"되며, 특정한 편집 패턴을 통해 하나로 묶였다. 예를 들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모랄도의 친구인 어린 귀도가 철길 위에서 균형을 잡는 모습은 정지 화면으로 처리되었다.이러한 편집 스타일은 펠리니가 촬영 단계에서 개발한 카메라 스타일과도 연관된다. 그는 등장인물들의 "무기력하고 목적 없는 삶"을 표현하기 위해 느린 트래킹 샷을 주로 사용했으며[17], 종종 달리 숏 기법을 통해 산드라가 미인 대회에서 쓰러지거나 아이를 낳는 장면, 프란체스코가 아들을 때리는 장면 등 극적인 순간을 강조했다.
5. 평가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초기 걸작으로 평가받는 《비텔로니》는 1953년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하며 처음부터 비평가와 대중 모두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18] 이탈리아뿐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이후 영국, 북미, 아르헨티나 등 국제적으로 배급되어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23]
미국에서는 1956년 개봉하여 뉴욕 타임스의 보슬리 크로더[27] 등 주요 평론가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영화의 분위기를 살리는 니노 로타의 음악 역시 높은 평가를 받았다.[28] 시간이 흘러 펠리니 감독 사망 10주년을 맞아 2003년 재개봉되었을 때에도 여전히 "감수성, 관찰력, 유머가 있는 영화"라는 찬사를 받으며[29]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특히 이탈리아계 미국인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는 자신의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비텔로니》를 펠리니의 첫 걸작으로 꼽으며 자신의 성장기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밝혔고, 스탠리 큐브릭 감독 역시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로 이 작품을 언급하는 등[38] 후대 거장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리뷰 집계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는 26개의 평론가 리뷰를 바탕으로 100%의 신선도 지수를 기록하며 비평적으로 만장일치의 호평을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평균 평점 8.70/10).[32]
5. 1. 이탈리아와 프랑스
1953년 8월 26일, 제14회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 상영되었으며, 심사위원장을 맡은 이탈리아 시인 에우제니오 몬탈레로부터 은사자상을 받았다. 영화는 대중의 기립 박수와 함께 대부분의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18] "매력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평가 속에서 1953년 9월 17일 이탈리아에서 개봉하여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마리오 그로모는 ''라 스탐파''에 기고한 평론에서 이 영화를 "많은 지적인 순간, 지방의 삶을 훌륭하게 묘사하며, 젊고 재능 있는 감독의 두 번째 영화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 이탈리아 영화 산업은 이제 새로운 감독을 갖게 되었으며, 그는 관습적인 전통보다 자신의 개인적인 아이디어를 먼저 생각한다. 펠리니의 접근 방식은 신선하다"고 평가했다.[19] ''가제타 델 루네디''의 프란체스코 칼라리는 "이 특별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분위기이다. 지방색과는 전혀 다른 강렬한 인간적이고 시적인 분위기 ... 펠리니는 할 말이 있고, 예리한 관찰력으로 그것을 말한다 ... 그는 전후 이탈리아 영화의 다른 젊은 감독들과는 다르다. 펠리니는 마법 같은 손길을 가지고 있다"고 썼다. ''일 세콜로 XIX''의 에르마노 콘티니는 베니스에서의 성공을 칭찬하면서도 영화의 약점을 지적했다. "''비텔로니''는 특히 탄탄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이야기는 에피소드와 세부 사항의 복잡한 공생을 통해 통일성을 추구하며 단절되어 있다 ... 강렬한 감정과 강력한 상황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견고한 유기적 통일성이 부족하며, 때로는 이것이 이야기의 창의적인 힘을 약화시켜 톤과 속도의 불균형과 약간의 지루함을 초래한다. 그러나 그러한 단점은 영화의 진정성과 사실성으로 충분히 보상된다."[20] ''코리에레 델라 세라''의 아르투로 라노치타는 "''비텔로니''는 어떤 목적 없는 저녁, 한가한 젊은이들이 모여 있는 거리를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 이 영화는 통일성 없이 일련의 주석, 암시, 힌트이다 ... 펠리니는 아이러니를 통해 등장인물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실제 모습의 차이를 보여주려 한다.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최근 몇 년간 최고의 영화 중 하나이다."라고 썼다.[21] ''시네마 VI''의 줄리오 체사레 카스텔로는 이 영화가 "펠리니가 이탈리아 영화 산업의 가장 재능 있는 풍자 작가이자 인간 행동의 예리한 관찰자이자 심리학자임을 증명했다. 모든 훌륭한 도덕주의자처럼, 그는 이야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단순한 오락 그 이상을 제공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평가했다.[22]
펠리니의 첫 번째 국제 배급 영화로서[23] ''비텔로니''는 영국과 북미에서 상당한 흥행 성적을 거두었으며, 아르헨티나에서는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고 전해진다. 1954년 4월 23일 프랑스에서 개봉하여 특히 좋은 반응을 얻었다. ''카이에 뒤 시네마''의 앙드레 마르탱은 "서사의 질, 영화 전체의 균형과 통제 덕분에, ''비텔로니''는 상업적이지도 않고, 일반적으로 예술 작품이 칭송되고 정의될 수 있게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놀랍고 효과적인 영화적 감각으로, 펠리니는 등장인물들에게 단순하면서도 실제적인 삶을 부여한다"고 주장했다.[24] 영화 평론가 제네비에브 아젤은 거장의 상징주의에 감탄하며 "펠리니는 밤에 비어 있는 광장을 촬영한다. 그것은 고독, 공동의 기쁨 다음에 오는 허무함, 무리 지어 다니는 군중 다음에 오는 암울한 무기력을 상징한다. 마치 낮과 삶이 남긴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것처럼 항상 종이 조각들이 흩어져 있다."고 묘사했다.[25] 이 영화는 1954년 카이에 뒤 시네마의 연례 10대 영화 목록에서 6위를 차지했다.[26]
5. 2. 미국
''나는 건달들''은 1956년 11월 7일 미국에서 개봉하여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뉴욕 타임스의 평론가 보슬리 크로더는 펠리니가 "그의 변덕스러운 성격과 통렬한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망으로 ... 현지 당구장에 모여앉아 일하기를 싫어하는 과도하게 성장하고 성적으로 문란한 젊은이들에게 강력한 채찍질을 가한다"고 평했다. 그는 펠리니가 "그들의 자만심이 슬프게 미숙하고 터무니없음을 드러내며, 그의 날카로운 신사실주의 스타일로 그들을 조롱한다"고 덧붙였다. 크로더는 펠리니가 이러한 젊은이들의 나태한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불쌍하고 어느 정도 동정을 받을 가치가 있음을 시사한다"고 보도했다.[27] 존 시몬은 니노 로타의 음악을 영화의 "가장 훌륭한 특징 중 하나"로 꼽았다. 그는 두 가지 주요 테마 중 첫 번째는 "향수, 사랑, 존재의 비애를 표현할 수 있는 웅장하고 낭만적인 멜로디"이며, 두 번째 주요 테마는 느려지면 "음울해진다"고 설명했다. 시몬은 "음악의 쾌속적인 변화는 이야기의 변화하는 분위기를 뒷받침한다"고 분석했다.[28]이탈리아계 미국인 영화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는 1999년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이탈리아 영화 여행》에서 이 작품을 다루었다. 그는 이 영화가 "펠리니가 '펠리니'가 되고, '그 이탈리아 감독'이 되기 전, '펠리니적'이라는 단어가 생기기 훨씬 전에 그가 고향 리미니를 무대로 찍은 그의 청춘 시대를 그린 영화"라고 소개하며, "그의 세 번째 장편이자 첫 번째 걸작"이라고 평가했다. 스코세이지는 "내가 매우 '연결'을 느끼는 작품이며, (내용은) 성장기의 나의 생활과 거의 같다"고 덧붙였다. 또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잡지 《시네마》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 10편을 묻는 질문에 이 작품을 1위로 꼽았으며, 평생 가장 사랑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38]
펠리니의 사망 10주년을 기념하여 2003년에 국제적으로 재개봉되었을 때에도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졌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믹 라살은 ''나는 건달들''이 "감수성, 관찰력, 유머가 있는 영화이며 - 펠리니 애호가라면 꼭 봐야 하고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가치 있는 투자이다"라고 언급하며, "거장에 대해 덜 호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나는 건달들''을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여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29] 시카고 트리뷴의 마이클 윌밍턴은 "이탈리아에서 그것은 펠리니의 가장 꾸준히 사랑받는 영화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미국에서도 그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러분이 아직도 그 끔찍한 술 취한 장면, 알베르토 소르디의 ''뜨거운 것이 좋아'' 이전의 드래그 탱고, 또는 마지막에 어린 소년이 기찻길 위에서 균형을 잡는 방식을 기억한다면, 이 영화가 1956년이나 여러분이 처음 봤을 때만큼이나 강력하게 상영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다시 ''나는 건달들''을 보면서 즐거웠다. 그것은 나에게 옛 친구들을 생각나게 했다"고 썼다.[30] 뉴욕 타임스의 A. O. 스콧은 이 영화가 "펠리니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모든 미덕, 즉 그의 서정적인 장소 감각, 그의 가장 불행한 등장인물들에게조차 변함없는 애정, 그의 맑고 분주한 구성을 위한 그의 자연스러운 재능, 그리고 그의 가상적인 악덕들을 거의 보여준다"고 칭찬했다.[31]
리뷰 집계 웹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나는 건달들''은 26개의 리뷰를 바탕으로 100%의 긍정적 평가를 받았으며, 평균 평점은 10점 만점에 8.70점이다.[32]
5. 3. 수상 및 후보
1954년 이탈리아 영화 기자 협회는 페데리코 펠리니에게 감독상, 제작자에게 제작자상, 알베르토 소르디에게 남우조연상으로 은리본상을 수여했다.| 영화제 및 시상식 | 부문 | 후보 | 결과 |
|---|---|---|---|
| 제30회 아카데미상 | 각본상 | 툴리오 피넬리, 페데리코 펠리니, 엔니오 플라이아노 | 후보 |
| 제14회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 황금사자상 | 페데리코 펠리니 | 후보 |
| 은사자상 | 페데리코 펠리니 | 수상 |
6. 영향
이 영화는 페데리코 펠리니의 작품 중 가장 많이 모방된 영화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33], 후대의 많은 영화 감독과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
6. 1. 다른 영화에 미친 영향
페데리코 펠리니의 가장 많이 모방된 영화 중 하나로[33], 《비텔로니》는 후안 안토니오 바르뎀, 마르코 페레리, 리나 베르트뮐러 등 유럽 감독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또한 마틴 스코세지의 《비열한 거리》(1973), 조지 루카스의 《청춘 낙서》(1973), 그리고 조엘 슈마허의 《세인트 엘모의 열정》(1985)을 포함한 많은 영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케치치는 언급했다. 여기에는 필립 카우프만의 《방랑자들》(1979)도 포함된다. 배리 레빈슨의 《다이너》(1982) 역시 비슷한 젊은이들의 그룹을 다루고 있지만, 레빈슨은 자신의 영화를 만들기 전에 《비텔로니》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34]1963년 《시네마》 잡지 인터뷰에서, 감독 스탠리 큐브릭은 이 영화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10편 중 하나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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