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길 (1954년 영화)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길》(La Strada)은 1954년 개봉한 이탈리아 영화로, 페데리코 펠리니가 감독했다. 가난한 젤소미나가 떠돌이 차력사 잠파노에게 팔려가 조수 역할을 하며 겪는 고독과 성장을 그린다. 잠파노는 쇠사슬 끊기 묘기를 선보이며 젤소미나를 학대하지만, 젤소미나는 순수함을 잃지 않고 그를 따르며, 또 다른 거리 공연자 '미친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 영화는 베네치아 영화제 은사자상 수상,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수상 등 비평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펠리니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이탈리아의 영화 감독 - 석양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는 남북전쟁 시대를 배경으로, 20만 달러의 남부 동맹 군자금을 쫓는 세 인물, 블론디, 투코, 엔젤 아이즈의 협력, 배신, 추격을 그린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이다.
  • 이탈리아의 영화 감독 - 이탈리아 여행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의 1954년 영화 《이탈리아 여행》은 영국 부부가 이탈리아 별장 여행 중 겪는 갈등과 화해를 그리며, 프랑스 뉴웨이브 영화에 영향을 주고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을 넘어선 영화로 재평가받는 작품이다.
  • 광대를 소재로 한 영화 - 왕의 남자
    조선 연산군 시대를 배경으로 왕을 웃기려 궁에 들어간 광대들의 비극을 그린 영화 《왕의 남자》는 김태웅의 연극 《이》를 각색하여 감우성, 이준기, 정진영 등이 출연했으며, 흥행과 함께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 광대를 소재로 한 영화 - 라임라이트
    1914년 런던을 배경으로 한 영화 《라임라이트》는 한때 유명했던 광대 칼베로와 자살하려던 젊은 무용수 테리가 만나 서로에게 희망을 주는 이야기로, 찰리 채플린이 감독, 각본, 제작, 음악, 주연을 맡았으며 예술가의 고뇌와 삶의 희망, 인간애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 이탈리아의 독립 영화 작품 - 비텔로니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1953년 이탈리아 영화 비텔로니는 해안 도시를 배경으로 20대 남성 다섯 명의 무기력한 일상을 통해 청춘의 방황과 사회적 책임을 다루고, 꿈과 현실의 괴리 속 좌절하는 인물들의 심리적 갈등을 묘사하여 베니스 국제 영화제 은사자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
  • 이탈리아의 독립 영화 작품 - 아임 낫 스케어드
    아임 낫 스케어드는 2003년 개봉한 이탈리아 영화로, 9살 소년 미켈레가 유괴된 또래 소년 필리포를 구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길 (1954년 영화) - [영화]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영화 장면 속의 퀸과 마시나
퀸과 마시나 영화 장면
원제La Strada
감독페데리코 펠리니
각본페데리코 펠리니
툴리오 피넬리
엔니오 플라이아노
제작디노 데 라우렌티스
카를로 폰티
주연줄리에타 마시나
앤서니 퀸
리처드 베이스하트
음악니노 로타
촬영오텔로 마르텔리
카를로 카를리니
편집레오 카토초
제작사폰티-데 라우렌티스 치네마토그라피카
배급사파라마운트 픽처스
개봉일1954년 9월 6일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1954년 9월 22일 (이탈리아)
1957년 5월 25일 (일본)
1957년 10월 3일 (대한민국)
상영 시간108분
제작 국가이탈리아
언어이탈리아어
제작비
제작비(정보 없음)
흥행 수익
일본 흥행 수익1억 1156만 엔
수상 정보
아카데미상제29회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수상

2. 줄거리

홀어머니와 여동생들과 함께 외딴 마을에서 가난하게 살던 젤소미나는 언니 로사가 잠파노라는 떠돌이 차력사의 조수로 길을 떠났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잠파노가 다시 찾아와 로사 대신 젤소미나를 조수로 삼겠다고 하자, 젤소미나의 엄마는 10000L를 받고 딸을 보낸다. 잠파노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쇠사슬을 가슴으로 끊는 묘기를 보여주고 돈을 받았다.

두 사람은 어느 수녀원에 묵게 된다. 젤소미나는 나팔을 불어 수녀의 호감을 얻는다. 젤소미나가 떠돌이라고 소개하자 수녀는 자신들도 어딘가에 정을 붙이지 않기 위해 여러 수녀원을 돌아다닌다고 말해준다. 그날 밤, 젤소미나는 헛간에서 잠을 자다가 은 장신구를 훔치려는 잠파노를 발견하고 그를 막는다.

이후 그들은 길을 가던 중 인적 없는 갓길에서 펑크난 차 바퀴를 갈고 있는 '미친 사람'과 재회한다. 잠파노는 자신을 또다시 놀리는 '미친 사람'에게 주먹을 날리고, 이 일로 '미친 사람'은 손목시계가 망가졌다며 불평하더니 쓰러져 그대로 죽어버린다. 젤소미나는 충격에 울부짖고, 잠파노는 당황하다가 다시 잡혀들어갈 순 없다며 '미친 사람'의 시체를 냇가 동굴에 유기하고 차를 폭파시킨다.

2. 1. 젤소미나와 잠파노

가난한 홀어머니는 젤소미나를 떠돌이 차력사 잠파노에게 팔아넘긴다.[114] 잠파노는 젤소미나에게 조수 역할을 가르치지만, 그녀를 학대하고 무시한다. 잠파노는 젤소미나에게 광대 노릇을 하며 북을 치게 시키지만, 젤소미나가 잘 해내지 못하자 매를 때리며 가르쳤다.[114] 젤소미나는 그의 마음에 들려고 하지만, 잠파노는 그녀를 겁주고 폭행하며 잔혹하게 대한다. 젤소미나는 잠파노에게 애정을 느끼지만, 어느 날 밤 잠파노가 다른 여자와 함께 떠나면서 거리에 버려진다.[114]

2. 2. '미친 사람'과의 만남

결국 잠파노에게 질린 젤소미나는 달아나 인근 마을로 도망갔다가, '일 마토(Il Matto, 광대)'라는 또 다른 거리 공연자를 만난다.[114] 일 마토는 지라타 서커스라는 유랑 서커스에서 일하고 있었다. 잠파노는 지라타 서커스와 계약을 하고 한동안 서커스에서 공연을 하는데, 잠파노가 차력쇼를 할 때마다 일 마토가 비웃고 장난을 쳤고 둘 사이가 나빠졌다.[114] 어느 날 일 마토는 젤소미나에게 나팔 부는 법을 알려주고 자신의 조수가 되지 않겠느냐고 유혹했다.[114] 잠파노가 나타나 막으려 하자 일 마토는 잠파노에게 물을 끼얹었고, 화가 난 잠파노가 칼을 빼들고 일 마토를 쫓다가 경찰에 붙들려 잡혀가고 만다.[114]

서커스는 그들을 내버리고 떠나려고 하고, 젤소미나는 자신을 잘 대해줬던 서커스를 따라갈지, 잠파노에게 계속 남아있을지 고민한다. 그날 밤, 아무 데도 쓸모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젤소미나에게 일 마토는 '세상에 하찮은 돌멩이라도 쓸모가 있으며, 너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해준다.[114] 젤소미나는 다음날 유치장에서 나오는 잠파노를 맞이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114]

2. 3. 젤소미나의 절망과 잠파노의 후회

'미친 사람'가 죽은 후, 젤소미나는 큰 충격을 받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잠파노는 젤소미나를 위로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잠파노는 젤소미나가 잠든 사이 그녀를 버리고 떠난다.[114]

몇 년 후, 잠파노는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젤소미나가 자주 연주하던 나팔곡을 듣게 된다.[114] 그 곡을 부른 여인의 아버지가 젤소미나를 해변에서 발견하여 보살폈지만, 결국 젤소미나는 병들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114] 이 소식을 들은 잠파노는 깊은 슬픔과 후회에 빠져 술을 마시고 바닷가에서 오열한다.[114]

3. 등장인물


  • 줄리에타 마시나 - 젤소미나 역
  • 앤서니 퀸 - 잠파노 역
  • 리처드 베이스하트 - 일 마토(광대) 역
  • 알도 실바니 - 지라파 씨(서커스단주) 역
  • 마르첼라 로베레 - 과부 역
  • 리비아 벤투리니 - 수녀 역


젤소미나, 잠파노, 일 마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각 등장인물 항목을 참조.

3. 1. 젤소미나 (줄리에타 마시나)

Gelsominait는 자스민꽃으로, 순수의 상징이다. 이 짧은 머리(쇼트컷 헤어)의 소녀 젤소미나를 연기한 배우 줄리에타 마시나페리니 감독의 아내이며, 무솔리니 정권으로부터 숨어 살던 두 사람은 정권 붕괴 후인 1943년 10월에 결혼했다. 젤소미나는 영화에서 잔파노에게 함부로 대해지며, 때로는 " Siete una bestia!it / 짐승!"(시에테 우나 베스티아!)라고 잔파노를 욕한다. 그녀는 여행 중에 토마토를 재배하려는 돌출 행동을 하고, 아랑곳하지 않고 순회 공연을 떠나는 잔파노에게 " Che pomodoriit / 쳇, 토마토라고"(케 뽀모도리)라며 경멸하면서 사과를 받는다. 그녀는 중반에 줄타기 광대 일 마토를 따르며, 잔파노가 일 마토를 죽인 후에는 "으으"하고 소리를 내면서 횡설수설한다. 잔파노와 헤어진 후 몇 년 후에 생을 마감한다. 젤소미나는 마치 천사와 같은 역할이다.[117]

광대 젤소미나로 분장한 줄리에타 마시나의 얼굴.

3. 2. 잠파노 (앤서니 퀸)

안토니 퀸이 연기한 잠파노(Zampanò)는 힘세고 거친 떠돌이 차력사이다. Zampanòit라는 이름은 이탈리아어로 동물의 다리나 발굽을 의미하는 zampait에서 유래했다.[115] 이는 유머로 인간의 다리를 지칭하기도 하며, 야만성을 상징으로 사용된다. 돼지 요리인 잠포네(Zamponeit)는 이 단어의 변형이다.

잠파노는 주로 몸에 감은 철사슬을 끊는 거리 공연을 했다.[115] 그는 "강철 허파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으며,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처럼 쇠사슬을 가슴에 감고 갈고리(후크)를 파괴하여 봉인을 푸는 묘기를 선보였다. 조수였던 여자가 죽자 여자의 여동생 젤소미나를 헐값에 사들여 함께 오토바이 삼륜차를 타고 여행한다. 젤소미나는 그의 조수가 되지만, 거칠고 폭력적인 잠파노에게 질려 그를 떠나기도 한다.

잠파노의 난폭함은 여러 장면에서 나타난다. 동업자인 줄타기 광대 일 마토를 때려눕히고, 자동차를 강에 빠뜨리며, 와인주점에서 싸움을 벌여 쫓겨나는 등의 행동을 한다.[115] 또한, 가게 밖에 있는 드럼통을 스크린 쪽으로 집어던지기도 한다. 이야기 전개중에 그는 일 마토를 죽이고, 젤소미나를 버리고 떠나는 등 냉혹한 모습을 보인다. 몇 년 후, 늙고 기량이 떨어진 잠파노는 젤소미나의 소식을 듣고 죄책감과 슬픔에 빠져 통곡한다.

영화 속에서 잠파노의 행동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115] 여행 중 여성들과의 관계, 수도원에서 은색 하트 장식품을 훔쳤는지 여부, 쇠사슬 곡예의 성공 여부 등은 관객의 해석에 맡겨진다.

Dove vai?it (도베 바이?)라는 잠파노의 대사는 라틴어 Quo vadis?la (쿼 바디스?)와 같은 의미로, 영화 『쿼 바디스』의 제목과 연결된다.[115]

3. 3. '미친 사람' (리처드 베이스하트)

리처드 베이스하트 (아이카와 킨야) - il Mattoit: 미치광이라는 뜻이다.[119]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 타이틀에 " Il “Matto”it"라는 역할 이름이 나온다. "일 마토" 또는 "바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기교가 뛰어난 그는 줄타기 줄 위에 테이블과 의자를 설치하고 스파게티를 먹는다. 로마의 어떤 공연에서는 공중 그네 곡예를 선보인다. 이 외에도, 작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슬픈 멜로디(영화 『길』테마곡)를 연주하면서, 자신의 엉덩이를 향해 젤소미나에게 나팔을 "뿌"하고 불게 하는 장면이 있다. 일 마토는 젤소미나에게, 잔파노라는 남자는 개와 같아서 젤소미나를 좋아하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짖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는 잔파노를 끝까지 놀리고, 잔파노는 폭발한다. 잔파노는 희극에서 소총을 들고, 소총의 의미인 단어 " fucileit"(푸칠레)를 제대로 발음하지 않고, "ciufile"(추필레)이라는 유치하고 인축무해한 인상을 주는 말투를 사용하여, 그 때문에 젤소미나는 잔파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118] 그에 따라 사람들을 웃기지만, "강철 허파의 사나이"인 잔파노는 일 마토에게 귀엽게 "추필레"라고 불리는 것에 상당히 화가 나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잔파노의 3발(후에 잔파노는 2발이라고 말한다)의 타격으로 치명상을 입고 죽는다. 일 마토를 때려눕혔을 때, 그는 "추필레"의 사례라고 빈정거린다.

3. 4. 기타 등장인물


  • 알도 실바니 - 지라파 씨(서커스단주) 역[1]
  • 마르첼라 로베레 - 과부 역[1]
  • 리비아 벤투리니 - 수녀 역[1]

4. 제작 과정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라 스트라다』는 "어떤 종류의 분위기"와 같은 모호한 감정에서 시작되어,[9] 눈 내리는 풍경, 구름, 노래하는 나이팅게일 등의 이미지로 구체화되었다.[10] 펠리니는 이러한 이미지들을 스케치하며 시나리오를 구상했다.[11] 젤소미나 캐릭터는 펠리니의 아내 줄리에타 마시나를, 잠파노 캐릭터는 펠리니의 유년 시절 기억 속 인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13][14]

'미친 사람' 역의 리처드 베이스하트




펠리니는 엔니오 플라이아노(Ennio Flaiano), 툴리오 피넬리(Tullio Pinelli)와 함께 대본을 썼다.[15] 루이지 로베레(Luigi Rovere)에게 처음 보여줬을 때, 로베레는 영화로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지만,[21] 최종 촬영 대본은 거의 600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상세했다.[16]

제작자 디노 드 로렌티스카를로 폰티는 다른 배우를 원했지만, 펠리니는 줄리에타 마시나, 안토니 퀸, 리처드 베이스하트를 캐스팅했다.[18][21]

1953년 10월 촬영이 시작되었으나, 마시나의 발목 부상으로 중단되었다가 1954년 2월에 재개되었다.[27] 겨울 촬영과 빡빡한 예산, 퀸의 이중 스케줄 등 어려움이 많았지만,[29][31] 제작진은 임기응변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33] 펠리니의 완벽주의적인 성격은 배우들을 힘들게 하기도 했다.[35]

영화는 바뇨레지오(Bagnoregio), 비테르보주(Province of Viterbo), 라치오주(Lazio)와 오빈돌리(Ovindoli), 라퀼라주(Province of L'Aquila), 압루초주(Abruzzo)에서 촬영되었다.[24][25]

4. 1. 배경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은 모호한 감정과 "어떤 종류의 분위기"에서 영화 『라 스트라다'의 창작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숨어 있었고, 나를 우울하게 만들고 마치 그림자처럼 나를 덮치는 죄책감"을 느꼈다고 말했다.[9] 이러한 감정은 바다에 조용히 내리는 눈, 다양한 구름의 구성, 노래하는 나이팅게일 같은 특정 이미지로 발전했다.[10] 펠리니는 이러한 이미지들을 스케치했는데, 이는 그가 지방의 음악 홀에서 일했을 때 배우와 세트를 그려야 했던 초기 경력에서 배운 습관이었다.[11]

젤소미나 캐릭터는 펠리니의 아내였던 줄리에타 마시나의 실제 성격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펠리니는 "나는 실제 줄리에타를 활용했지만, 내가 그녀를 본 대로 말입니다. 나는 그녀의 어린 시절 사진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젤소미나의 요소들은 10살짜리 줄리에타를 반영합니다."라고 말했다.[13]

잠파노 캐릭터는 펠리니가 해안 도시 리미니(Rimini)에서 보낸 유년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펠리니는 여자를 밝히는 것으로 알려진 돼지 거세자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 남자는 마을의 모든 여자들과 잠자리를 갖고 다녔습니다. 한 번은 불쌍한 바보 여자를 임신시켰고, 모두들 그 아기가 악마의 자식이라고 말했습니다."라고 회상했다.[14]

펠리니는 공동 각본가 툴리오 피넬리(Tullio Pinelli)와 함께 영화를 구상했는데, 이는 일종의 "열정적인 동시성(synchronicity)"이었다고 한다. 피넬리는 산길을 운전하다 타포린으로 덮인 수레를 끌고 가는 남자와 뒤에서 수레를 미는 작은 여자를 보았고, 이 경험을 펠리니에게 이야기했다. 펠리니는 자신이 상상했던 이야기와 피넬리가 본 이야기가 비슷하지만, 젤소미나라는 젊은 여성이 있는 작은 순회 서커스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차이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로마의 두 서커스 소유주의 이름을 따서 잠파노라는 이름을 지었다.[15]

4. 2. 캐스팅



젤소미나 역에는 줄리에타 마시나가 캐스팅되었다. 펠리니는 젤소미나 캐릭터를 구상할 때, 5년간 그의 아내였던 마시나의 실제 성격과 어린 시절 사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13] 로저 에버트는 마시나의 연기에 대해 "마시나의 캐릭터는 그녀의 둥근 광대 같은 얼굴과 넓고 순진한 눈에 완벽하게 어울립니다."라고 평했다.[8]

잠파노 역에는 안토니 퀸이 캐스팅되었다. 펠리니는 리미니(Rimini) 해안 도시에서의 유년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잠파노 캐릭터를 구상했다. 그곳에는 여자를 밝히는 돼지 거세자가 살았는데, 펠리니는 "이 남자는 마을의 모든 여자들과 잠자리를 갖고 다녔습니다."라고 회상했다.[14] 펠리니는 제작 초기 비전문 배우를 캐스팅하려 했으나 실패했다.[19] 퀸은 처음에 펠리니의 제안을 거절했으나,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잉그리드 버그만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펠리니의 영화 ''이 비텔로니''를 본 후 마음을 바꾸었다.[21]

'미친 사람' 역에는 리처드 베이스하트가 캐스팅되었다. 펠리니는 베이스하트의 연기, 특히 영화 ''14시간''에서의 연기에 깊은 인상을 받아 그에게 배역을 제안했다.[22] 베이스하트는 ''이 비텔로니''에 감명을 받았고, 펠리니의 열정과 유머에 매료되어 평소보다 적은 보수를 받고 배역을 수락했다.[23]

펠리니는 제작자 디노 드 로렌티스카를로 폰티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려 했으나, 그들은 젤소미나 역에 실바나 망가노, 잠파노 역에 버트 랭커스터를 원했다. 하지만 펠리니는 마시나가 이 프로젝트 전체의 영감이었기에 다른 배우를 고려하지 않았다.[18]

4. 3. 촬영

1953년 10월, 줄리에타 마시나가 수녀원 장면 촬영 중 발목이 탈구되어 제작이 몇 주간 중단되었다.[27] 촬영 중단 틈을 타 제작자 디노 데 라우렌티스는 마시나를 교체하려 했다. 그는 애초부터 마시나를 원하지 않았고, 계약도 맺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28] 그러나 파라마운트 픽처스 임원들이 촬영본(러시(Dailies))을 보고 마시나의 연기를 칭찬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드 로렌티스는 마시나와 독점 계약을 맺고, 안소니 퀸 급여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계약서에 서명하도록 했다.[28]

이 지연으로 전체 제작 일정이 변경되었고, 촬영 감독 카를로 칼리니는 오텔로 마르텔리로 교체되었다.[16] 1954년 2월 촬영이 재개되었을 때는 겨울이었다. 기온이 -5°C까지 떨어지고 난방이나 온수가 없는 경우가 많아 출연진과 스태프는 옷을 입은 채로 자야 했다.[29]

새로운 일정은 안소니 퀸에게도 문제를 일으켰다. 그는 피에트로 프란치스키 감독의 아틸라 (1954년 영화)에 출연하기로 계약했기 때문이다.[30] 퀸은 두 영화를 동시에 촬영하기로 했다. 아침에는 '길'을, 오후와 저녁에는 '아틸라'를 촬영했다. 이 때문에 퀸은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길' 촬영장에 갔다가, 10시 30분에 로마로 가서 '아틸라' 촬영을 해야 했다.[31] 퀸은 이 일정 때문에 두 영화에서 모두 야윈 모습이 나왔다고 회상했다.[32]

제작 감독 루이지 지아코시는 빡빡한 예산에도 불구하고 작은 서커스를 빌렸다. 서커스 주인 사비트리는 퀸에게 서커스 전문 용어와 쇠사슬 끊는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18] 지아코시는 또한 잠페르라 서커스의 도움을 받아 스턴트맨들을 제공받았다. 스턴트 더블(Stunt double)도 있었는데, 그는 소방관이 안전 그물을 가져오자 공연을 거부했다.[33]

서커스 단장 사비트리는 페데리코 펠리니가 잠파노가 일 마토를 죽인 후 장면에서 파괴한 낡은 자동차를 제공했다.[33]

자금 부족으로 지아코시는 임기응변으로 대처해야 했다. 촬영이 봄까지 계속되자 지아코시는 침구에 석고 주머니를 쌓아 눈 풍경을 재현했다.[33] 군중 장면이 필요했을 때는 지역 사제를 설득해 마을 수호성인 축제를 며칠 앞당겨 4,000명의 엑스트라를 확보했다.[33] 군중이 해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페리니는 조감독에게 토토(Totò)와 소피아 로렌(Sophia Loren)을 위한 방을 준비하라고 외치게 했다.[34]

페데리코 펠리니는 완벽주의자로 유명했고,[35] 이는 배우들에게 힘든 일이었다. 퀸은 페리니가 담배꽁초를 넣는 상자를 고르는 데 500개가 넘는 상자를 조사했다고 말했다.[31] 퀸은 자신의 연기가 호평을 받았던 장면에 대해 페리니가 다시 촬영해야 한다고 통보한 일화를 회상했다.[16] 마시나의 경우, 페리니는 그녀가 어린 시절 사진에서 보았던 얇은 입술 미소를 재현하도록 했다. 머리카락을 자르고 비누를 발라 삐죽삐죽하게 만들고, 얼굴에 활석 가루를 뿌려 창백하게 만들었다. 낡은 망토를 입혀 목을 파고들게 했다.[31]

페리니와 제작자 간의 계약에 따라 예산 초과분은 페리니가 부담해야 했다.[16] 페리니는 영화를 완성할 자금이 부족해지자, 제작자들이 그에게 자금 계약을 농담으로 생각하자고 했다고 회상했다.[16] 그러나 퀸은 페리니가 ''아틸라''의 일부 픽업 샷(Pick-up (filmmaking))을 촬영하는 데 동의함으로써 이런 관용을 얻었다고 말했다.[32]

피우미치노(Fiumicino) 부두에서 마지막 장면을 촬영하는 동안 페리니는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37] 그는 정신 분석가의 치료를 받고 나서야 촬영을 완료할 수 있었다.[38] 영화는 바뇨레지오(Bagnoregio), 비테르보주(Province of Viterbo), 라치오주(Lazio)와 오빈돌리(Ovindoli), 라퀼라주(Province of L'Aquila), 압루초주(Abruzzo)에서 촬영되었다.[24][25]

4. 4. 음향 및 음악

La Stradait의 음향은 당시 이탈리아 영화 제작 관행에 따라 촬영 후 나중에 추가되었다.[39] 촬영 당시에는 배우들이 각자 모국어를 사용했는데, 안토니 퀸과 리처드 베이스하트는 영어로,[40] 줄리에타 마시나를 비롯한 다른 배우들은 이탈리아어로 연기했다.[40]

페데리코 펠리니의 오랜 조수인 릴리아나 베티는 촬영 중 대사에 대한 감독의 독특한 방법을 "숫자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41] 배우들은 대사 대신 숫자를 순서대로 세었고, 펠리니는 이를 통해 원하는 반응을 얻어낼 수 있었다.[42] 예를 들어, "27로 돌아가세요. 하지만 이번에는 미소를 지으세요."와 같이 지시했다.[42] 펠리니는 소음에 대한 걱정 없이 촬영 내내 해설을 덧붙였는데, 이는 엘리아 카잔과 같은 전통적인 영화 제작자들을 놀라게 했다.[43]

퀸과 베이스하트는 이탈리아어를 구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탈리아어 원본에서는 다른 배우들이 더빙했다.[44] 펠리니는 아르놀도 포아가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 이탈리아어판에서 미후네 도시로의 목소리를 연기한 것에 감명을 받아, 잠파노 역의 더빙 배우로 포아를 기용했다.[33]

미셸 시옹은 펠리니가 목소리와 입술 움직임의 동기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연출했다고 평가했다.[45] La Stradait 이탈리아어판에서는 배우의 입이 다물어져 있는 동안에도 캐릭터의 목소리가 들리는 경우가 있다.[39]

펠리니는 주변 소리 처리에도 자유로웠는데, 토마스 반 오더는 이를 통해 "청각 지점의 주관적인 감각"을 만들어냈다고 분석했다.[46] 예를 들어, 젤소미나가 수녀와 대화할 때, 닭과 오리의 울음소리가 노랫소리로 바뀌는 것은 젤소미나의 깨달음을 반영한다.[39]

1956년 영어판 La Stradait는 뉴욕의 티트라 스튜디오에서 펠리니의 참여 없이 재편집되었다.[47] 영어판에서는 퀸과 베이스하트가 직접 더빙했지만, 마시나는 다른 여배우가 더빙했다.[39]

La Stradait의 음악은 니노 로타가 작곡했다.[51] 주요 테마는 애수 어린 선율로, 광대가 키 바이올린으로 연주하고 젤소미나가 트럼펫으로 연주한다.[39] 펠리니는 촬영 중 아르칸젤로 코렐리의 변주곡을 틀어놓고 촬영했으며, 로타는 이에 맞춰 원곡 모티프를 작곡했다.[51]

5. 평가 및 유산

》은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출세작으로, 네오 리얼리즘 수법을 사용하면서도 백치 여인이 간직한 맑은 혼을 통해 인간의 고독을 묘사하여 현대인과 신(神)의 문제를 제기한 작품이다. 줄리에타 마시나의 연기와 니노 로타의 음악이 널리 알려졌다.[54]

이 영화는 1954년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하며 처음 공개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1954년, 미국에서는 1956년에 개봉했다.[54] 1994년에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지원으로 새로운 필름 프린트가 제작되었다.[54] 스코세이지는 어린 시절부터 잠파노라는 인물에 공감했으며, 자신의 영화 《택시 드라이버》, 《분노의 황소》에 그 영향을 반영했다고 밝혔다.[55]

영화에 대한 초기 평가, 후대 평가, 그리고 영화가 영화계에 남긴 영향과 유산은 다음과 같다.


  • 초기 반응: 1954년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상영된 후, 비평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일부는 참신하고 감동적이라고 호평했지만, 다른 일부는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기술적으로 미흡하다고 비판했다.
  • 후대 평가: 시간이 지나면서 《길》에 대한 평가는 점차 높아졌다. 오늘날에는 펠리니의 대표작 중 하나이자, 영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 영향 및 유산: 《길》은 이후 많은 영화감독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영화, 음악, 연극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1956년 ''라 스트라다'' 예고편 캡처


1957년 인터뷰에서 페리니는 영화를 본 후 버려진 여성들과 장애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많은 편지를 받았다고 전하며, 그들이 영화를 통해 자존감을 얻었다고 말했다.[76] 펠리니는 《길》을 자신의 가장 대표적이고 자전적인 영화라고 느꼈으며,[77] 세 주연 배우, 특히 잠파노에게 가장 가깝게 느꼈다.[78] 안소니 퀸은 페리니와의 작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회고했으며,[21] 1990년에는 펠리니와 줄리에타 마시나에게 "두 분은 제 인생의 최고의 순간입니다"라는 편지를 보냈다.[28]

《길》(1954)은 50개가 넘는 국제적인 상을 수상했으며, 그중에는 1957년 최초로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것도 포함되어 있다.[91]

시상식/영화제부문수상자결과
아카데미상[5]외국어 영화상디노 드 로렌티스, 카를로 폰티수상
각본상(각색상)페데리코 페리니, 툴리오 피넬리, 엔니오 플라이아노후보
보딜상[92]최우수 유럽 영화상페데리코 페리니수상
블루 리본상최우수 외국어 영화상페데리코 페리니수상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최우수 작품상페데리코 페리니후보
여우주연상줄리에타 마시나후보
나스트로 다르젠토최우수 감독상페데리코 페리니수상
최우수 제작상디노 드 로렌티스, 카를로 폰티수상
최우수 각본상디노 드 로렌티스, 툴리오 피넬리수상
키네마 준포상, 일본최우수 외국어 영화상페데리코 페리니수상
뉴욕 영화 비평가 협회상최우수 외국어 영화상페데리코 페리니수상
베니스 영화제[93]은사자상페데리코 페리니수상
황금사자상페데리코 페리니후보



페리니는 신사실주의 운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지만,[95] 《길》은 신사실주의의 특정 정치적 성향이나 "사실주의" 스타일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념적 결별로 여겨진다.[99] 이로 인해 일부 비평가들은 페리니가 개인주의, 신비주의 등으로 회귀했다고 비난했지만,[100] 페리니는 "어떤 사람들은 신사실주의가 특정 종류의 현실만을 보여주는 데 적합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사회적 현실이라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삶의 특정 측면만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입니다."라며 반박했다.[100] 영화 평론가 밀리센트 마커스는 "《길》은 정통 신사실주의의 사회적, 역사적 관심사와 무관한 영화로 남아 있다"고 썼다.[100] 이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로베르토 로셀리니 등 다른 이탈리아 영화 제작자들도 페리니의 선례를 따라 사회적 현실을 넘어선 개인적, 감정적 문제를 다루었다.[101] 영화 학자 마크 쉴은 《길》이 새로운 유형의 신사실주의, "씁쓸하고 자의식이 강한" 신사실주의의 예로 국제적인 성공을 거둔 최초의 영화가 되었다고 지적했다.[102]

《길》은 스탠리 콴, 안톤 코르바인, 길리스 맥킨논, 안드레아스 드레센, 지리 메젤, 아두르 고팔라크리슈난, 마이크 뉴웰, 라지코 그르리치, 라이라 파칼니냐, 앤 후이, 구로사와 아키라,[103] 소다 가즈히로, 줄리안 자롤드, 크쥐슈토프 자누시, 안드레이 콘찰롭스키 등 여러 감독들에게 영향을 주었다.[104]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는 어린 시절 《길》을 보고 영화의 가능성을 깨달았다고 한다.[105]

밥 딜런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은 각각 "미스터 탐부린 맨"과 "나와 바비 맥기"에 영감을 준 영화로 《길》을 언급했고,[106][107] 세르비아 록 밴드는 이 영화의 이름을 밴드 이름으로 사용했다.

니노 로타의 주요 테마는 페리 코모의 싱글 "길의 사랑 테마 (외로운 길을 따라)"라는 제목으로 편곡되었고,[108] 12년 후에는 영화 음악을 확장하여 《길》이라는 발레를 만들었다.[109]

뉴욕에서는 이 영화를 바탕으로 한 두 편의 작품이 공연되었다. 하나는 1969년 브로드웨이에서 단 한 번 공연된 뮤지컬이고,[110] 다른 하나는 낸시 카트라이트의 1인극 《펠리니를 찾아서》이다.[111]

1991년에는 《길》을 각색한 만화책이 출간되었는데, 미키 마우스를 비롯한 디즈니 캐릭터들이 등장한다.[112]

마크 Z. 다니엘레프스키의 소설 《나뭇잎의 집》에는 잠파노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5. 1. 초기 반응

1954년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길>이 은사자상을 수상했을 때, 루키노 비스콘티의 <센소>가 아닌 <길>을 선택한 심사 결과에 불만을 품은 비스콘티의 조수 프랑코 제피렐리가 페리니의 수상 연설 도중 휘파람을 불었고, 이에 모랄도 로시가 공격하면서 난투극이 벌어졌다.[59] 이 소동으로 페리니는 창백해지고 흔들렸으며, 줄리에타 마시나는 눈물을 흘렸다.[60] 티노 라니에리에 따르면 베네치아 초연은 "이유 없이 차가운 분위기" 속에서 시작되었고, "상영이 시작될 때 오히려 영화를 싫어했던 관객들은 끝날 무렵 의견을 약간 바꾼 것 같았지만, 어떤 의미에서도 영화는 마땅히 받아야 할 반응을 얻지 못했다."라고 한다.[61]

''일 라보로 누오보''의 툴리오 치차렐리는 이 영화를 "미완성의 시"로 보았는데, 이는 영화 제작자가 "비평의 무관심이나 분류의 모호함 속에서 그 본질이 잃어버릴까 봐" 의도적으로 미완성으로 남겨두었다고 보았다.[57] 반면 ''일 세콜로 XIX''의 에르만노 콘티닌은 페리니를 "뛰어난 이야기꾼"이라고 칭찬했다.

''코리에레 델라 세라''의 아르투로 라노치타는 이 영화가 "단지 이야기의 요점만을 암시하는 대략적인 사본처럼 보인다…페리니는 강렬한 대조가 더 효과적이었을 자리에 그림자를 선호했던 것 같다."라고 주장했다.[62] ''비앙코 에 네로''의 니노 겔리는 "훌륭한 시작 후, 두 주인공이 헤어지는 순간까지는 영화의 스타일이 상당 기간 조화를 이루지만, 그 시점부터는 점점 인위적이고 문학적으로, 속도는 점점 단편적이고 불일치하게 된다."라고 아쉬워했다.[63]

툴리오 케지크는 이탈리아 비평가들이 "베네치아 개봉 후 [페리니의] 영화의 결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어떤 이들은 시작은 괜찮지만 이야기가 완전히 엉망이 된다고 말한다. 다른 이들은 결말의 비애를 인정하지만 전반부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라고 언급했다.[64]

이듬해 프랑스에서 개봉하면서 더 따뜻한 반응을 얻었다.[65] ''카이에 뒤 시네마''의 도미니크 오비에는 ''라 스트라다''가 "아마도 일반 대중보다는 비평가들을 사로잡기 위한 신화적인 계급에 속한다."라고 평가하며, "페리니는 다른 영화 감독들이 거의 도달하지 못하는 정점에 도달한다. 즉, 예술가의 신화적 세계관에 봉사하는 스타일이다. 이 예는 영화가 기술자(이미 너무 많다)보다 창조적인 지능이 덜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한다. 이러한 영화를 만들려면 작가는 상당한 표현력뿐만 아니라 특정 영적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라고 결론지었다.[66] 이 영화는 1955년 카이에 뒤 시네마의 연간 톱 10 영화 목록에서 7위를 차지했다.[67]

''아르츠'' 잡지의 1955년 3월호 리뷰에서 장 오렐은 줄리에타 마시나의 연기를 "최고의 샤플린에서 직접 영감을 받았지만, 이 영화를 위해 고안된 것처럼 보이는 신선함과 타이밍 감각을 지녔다."라고 언급했다. 그는 이 영화를 "쓰라리지만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인생과 매우 흡사하다."라고 평가했다.[68] ''르 피가로''의 루이 쇼베는 "드라마의 분위기"가 "거의 필적할 수 없는 시각적 힘"과 결합되었다고 지적했다.[68]

영국과 미국의 비평 반응은 엇갈렸는데, ''Films in Review''("싸구려 멜로드라마의 수렁"),[70] ''사이트 앤 사운드''("시인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그렇지 못한 감독"),[71] 런던의 ''타임스''("쓰레기 더미 위에서 우는 리얼리즘")[72]과 같은 비판적인 리뷰가 있었던 반면, ''뉴스위크''("참신하고 논쟁의 여지가 있다"),[73] ''새터데이 리뷰''("''라 스트라다''를 통해 페리니는 로셀리니와 데 시카의 진정한 후계자로 자리매김한다.")[74] 와 같은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다.

5. 2. 후대 평가

''일 라보로 누오보''의 툴리오 치차렐리는 이 영화를 "미완성의 시"로 보았으며, ''일 세콜로 XIX''의 에르만노 콘티닌은 페리니를 "뛰어난 이야기꾼"이라고 칭찬했다.[57]

하지만 1954년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루키노 비스콘티의 ''센소''가 아닌 ''라 스트라다''에 은사자상을 수여하자, 비스콘티의 조수인 프랑코 제피렐리가 페리니의 수상 연설 도중 휘슬을 불어 난투극이 벌어지기도 했다.[59] 티노 라니에리에 따르면 베네치아 초연은 "이유 없이 차가운 분위기" 속에서 시작되었고, "상영이 시작될 때 오히려 영화를 싫어했던 관객들은 끝날 무렵 의견을 약간 바꾼 것 같았지만, 어떤 의미에서도 영화는 마땅히 받아야 할 반응을 얻지 못했다."라고 한다.[61] ''코리에레 델라 세라''에서 비평한 아르투로 라노치타는 이 영화가 "단지 이야기의 요점만을 암시하는 대략적인 사본처럼 보인다"라고 주장했다.[62] ''비앙코 에 네로''의 니노 겔리는 "훌륭한 시작 후, 두 주인공이 헤어지는 순간까지는 영화의 스타일이 상당 기간 조화를 이루지만, 그 시점부터는 점점 인위적이고 문학적으로, 속도는 점점 단편적이고 불일치하게 된다."라고 아쉬워했다.[63] 페리니의 전기 작가인 툴리오 케지크는 이탈리아 비평가들이 "베네치아 개봉 후 [페리니의] 영화의 결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라고 언급했다.[64]

이듬해 프랑스에서 개봉하면서 더 따뜻한 반응을 얻었다.[65] ''카이에 뒤 시네마''의 도미니크 오비에는 ''라 스트라다''가 "아마도 일반 대중보다는 비평가들을 사로잡기 위한 신화적인 계급에 속한다."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1955년 카이에 뒤 시네마의 연간 톱 10 영화 목록에서 7위를 차지했다.[67] ''아르츠'' 잡지의 1955년 3월호 리뷰에서 장 오렐줄리에타 마시나의 연기를 "최고의 샤플린에서 직접 영감을 받았지만, 이 영화를 위해 고안된 것처럼 보이는 신선함과 타이밍 감각을 지녔다."라고 언급했다. 그는 이 영화를 "쓰라리지만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인생과 매우 흡사하다."라고 평가했다.[68] ''르 피가로''의 루이 쇼베는 "드라마의 분위기"가 "거의 필적할 수 없는 시각적 힘"과 결합되었다고 지적했다.[68]

영국과 미국의 비평 반응은 엇갈렸는데, ''Films in Review''("싸구려 멜로드라마의 수렁"),[70] ''사이트 앤 사운드''("시인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그렇지 못한 감독"),[71] 런던의 ''타임스''("쓰레기 더미 위에서 우는 리얼리즘")[72]과 같은 비판적인 리뷰가 있었던 반면, ''뉴스위크''("참신하고 논쟁의 여지가 있다"),[73] ''새터데이 리뷰''("''라 스트라다''를 통해 페리니는 로셀리니와 데 시카의 진정한 후계자로 자리매김한다.")[74] 와 같은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다.

1957년 인터뷰에서 페리니는 마시나가 영화를 본 후 남편이 돌아온 버려진 여성들로부터 1,000통이 넘는 편지를 받았고, 장애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본 후 자존감을 새롭게 얻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한 편지는 전 세계에서 온다."라고 했다.[76] 후년에 페리니는 감정적인 측면에서 자신이 가장 애착을 가졌던 영화가 ''라 스트라다''라고 설명했다.[77] 안소니 퀸은 페리니와 함께 일하는 것이 매우 값진 경험이었다고 말했다.[21] 오랜 시간이 흐른 후인 1990년, 퀸은 감독과 공동 주연 배우에게 편지를 보냈다. "두 분은 제 인생의 최고의 순간입니다. 안토니오(Antonio)." [28]

비평가 로저 이버트는 그의 저서 ''위대한 영화들(The Great Movies)''에서 당시 비평계의 중론은 ''라 스트라다''가 페리니 경력의 정점이었으며, 이 영화 이후 그의 작품은 "프로이트, 기독교, 성적, 자전적인 과잉의 정글을 헤쳐 나갔다"는 것이라고 기술했다.[79] 이버트 자신의 의견은 ''라 스트라다''를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1960), 8½(8½)(1963), 아마코드(Amarcord)(1974)와 같은 걸작으로 이어지는 발견의 과정의 일부"로 보았다.[8]

초기 개봉 이후 수년 동안 ''라 스트라다''에 대한 높은 평가는 더욱 확고해졌다. 리뷰 집계 웹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평균 10점 만점에 8.3점을 받은 80명의 평론가로부터 98%의 평점을 받았다. 해당 웹사이트의 비평가들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줄리에타 마시나와 안소니 퀸의 불쌍한 아웃사이더 커플은 페데리코 페리니의 잊을 수 없는 우화에서 온유함과 위대함 사이의 애절한 대조를 보여준다."[80]

''라 스트라다''는 최고 영화 목록에 여러 번 등장했는데, 여기에는 1992년 영국영화협회(British Film Institute) 감독들의 투표(4위),[81] ''뉴욕 타임스(New York Times)'' "역대 최고의 영화 1,000편",[82] 그리고 가장 호평받는 영화를 통계적으로 계산하는 웹사이트 ''They Shoot Pictures, Don't They''의 "최고 영화" 목록(67위)이 포함된다.[83] 2002년 1월, 이 영화는 (''카비리아의 밤(Nights of Cabiria)''과 함께) 전미영화비평가협회(National Society of Film Critics)가 선정한 "역대 최고의 필수 영화 100편" 목록에서 85위를 차지했다.[84][85] 2009년, 이 영화는 일본 영화 잡지 키네마 준포(Kinema Junpo)의 "역대 최고의 비일본 영화 10편" 목록에서 10위를 차지했다.[86] 영국영화협회(British Film Institute)의 2012년 ''사이트 앤 사운드(Sight & Sound)'' 역대 최고의 영화 사이트 앤 사운드 2012(The Sight & Sound Greatest Films of All Time 2012) 투표에서 ''라 스트라다''는 감독들 사이에서 26위를 차지했다. 이 영화는 전 세계 43개국의 209명의 영화 평론가들이 투표한 BBC의 2018년 최고의 외국어 영화 100편 목록에 포함되었다.[87]

1995년, 가톨릭교회의 교황청 사회통신위원회는 "...12명의 국제 영화 학자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선정한 뛰어난 영화들의 대표적인 45편의 목록"을 발표했다. 이것은 "바티칸 영화 목록"으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예술"이라는 하위 범주에 있는 15편의 영화 중 하나로 ''라 스트라다''를 포함하고 있다.[88]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의 이름과 관련된 암시적인 언급 때문에 "아마도 제가 가장 좋아했던 영화"라고 말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Francis of Assisi).[89]

일본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는 이 영화를 자신의 가장 좋아하는 영화 100편 중 하나로 언급했다.[90]

《라 스트라다》(1954)는 50개가 넘는 국제적인 상을 수상했으며, 그중에는 1957년 최초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아카데미상도 포함되어 있다.[91]

시상식/영화제부문수상자결과
아카데미상[5]외국어 영화상디노 드 로렌티스, 카를로 폰티수상
각본상(각색상)페데리코 페리니, 툴리오 피넬리 및 엔니오 플라이아노후보
보딜상[92]최우수 유럽 영화상페데리코 페리니수상
블루 리본상최우수 외국어 영화상페데리코 페리니수상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최우수 작품상페데리코 페리니후보
여우주연상줄리에타 마시나후보
나스트로 다르젠토은테이프상; 최우수 감독상페데리코 페리니수상
은테이프상; 최우수 제작상디노 드 로렌티스, 카를로 폰티수상
은테이프상; 최우수 각본상디노 드 로렌티스, 툴리오 피넬리수상
키네마 준포상, 일본최우수 외국어 영화상페데리코 페리니수상
뉴욕 영화 비평가 협회상최우수 외국어 영화상페데리코 페리니수상
베니스 영화제[93]은사자상페데리코 페리니수상
황금사자상페데리코 페리니후보


5. 3. 영향 및 유산

페데리코 펠리니의 《》은 단순한 영화를 넘어, 이후 영화, 음악, 연극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펠리니 감독의 작품 세계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특히 신사실주의와의 결별을 알리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99]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잠파노 캐릭터에 공감하며, 자신의 영화 《택시 드라이버》, 《분노의 황소》에 그 영향을 반영했다고 밝혔다.[55]

비평가 로저 이버트는 《길》을 펠리니의 걸작들(《달콤한 인생》, 《8½》, 《아마코드》)로 이어지는 "발견의 과정"의 일부로 보았다.[8]

《길》은 여러 영화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가톨릭 교회는 《길》을 "예술" 범주의 15편 중 하나로 "바티칸 영화 목록"에 포함시켰다.[88]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영화를 "아마도 제가 가장 좋아했던 영화"라고 말했다.[89]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이 영화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100편 중 하나로 꼽았다.[90]

밥 딜런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은 각각 "미스터 탐부린 맨"과 "나와 바비 맥기"에 영감을 준 영화로 《길》을 언급했다.[106][107]

니노 로타의 주요 테마는 페리 코모의 싱글 "길의 사랑 테마"로 편곡되었고,[108] 12년 후에는 발레 《길》로 만들어졌다.[109]

뉴욕에서는 이 영화를 바탕으로 한 두 편의 작품이 공연되었다. 하나는 1969년 브로드웨이에서 단 한 번 공연된 뮤지컬이고,[110] 다른 하나는 낸시 카트라이트의 1인극 《펠리니를 찾아서》이다.[111]

1991년에는 《길》을 각색한 만화책이 출간되었는데, 미키 마우스를 비롯한 디즈니 캐릭터들이 등장한다.[112]

마크 Z. 다니엘레프스키의 소설 《나뭇잎의 집》에는 잠파노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등려군은 젤소미나의 이름을 딴 노래 "젤소미나가 걸어간 길"을 불렀다.

오오츠키 켄지는 자신의 저서에서 《길》을 여러 번 봐도 눈물이 난다고 언급하며, 자신의 단편 소설의 바탕으로 사용했음을 밝혔다.[125]

남자는 괴로워》의 야마다 요지 감독은 이 작품의 영향을 받았다고 공언했다.[125]

아라키 테츠로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버블》에서 주인공 우타는 젤소미나를 모티브로 했다.

닌텐도 64 게임 원더 프로젝트 J2 콜로의 숲의 조젯의 거리 공연단 잠파뉴는 잠파노를 모델로 했다.

페데리코 펠리니는 인터뷰에서 버려진 여성들과 장애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많은 편지를 받았다고 전하며, 그들이 영화를 통해 자존감을 얻었다고 말했다.[76] 펠리니는 《길》을 자신의 가장 대표적이고 자전적인 영화라고 느꼈으며,[77] 세 주연 배우, 특히 잠파노에게 가장 가깝게 느꼈다.[78]

안토니 퀸은 펠리니와의 작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회고했으며,[21] 1990년에는 펠리니와 줄리에타 마시나에게 "두 분은 제 인생의 최고의 순간입니다"라는 편지를 보냈다.[28]

6. 한국어 더빙

La Strada|길it의 한국어 더빙판 성우진은 다음과 같다.


  • '''SBS (1993년)'''[1]

배역성우
잠파노 (안소니 퀸)이치우
젤소미나 (줄리에타 마시나)성병숙
나자레노 (리처드 베이스하트)남궁윤
서커스 단장 (알도 실바니)신세인
젤소미나의 엄마 (애나 프리뮬러)정민희
서커스 단원 (추리에토 마시바)한수경
위도우 (마르셀라 로베나) / 수녀 (리비아 벤투리니)유명숙
술집 남성 (구스타보 조르지)유영환
술집 여성 (조바나 갈리)최문자
결혼식 하객 (피에트로 세카렐리)홍시호


  • '''KBS (1996년)'''[2]

배역성우
잠파노 (안소니 퀸)이치우
젤소미나 (줄리에타 마시나)성병숙
마토 (리처드 베이스하트)장정진
기타정민희, 정기항, 성선녀, 김새영, 김창주, 신흥철, 정옥주, 차명화, 김소형


참조

[1] 서적 undefined
[2] 서적 undefined
[3] 웹사이트 AFIPreview21.indd http://www.afi.com/s[...] 2018-09-28
[4] 서적 undefined
[5] 웹사이트 The 29th Academy Awards (1957) Nominees and Winners http://www.oscars.or[...] 2011-10-24
[6] 웹사이트 The Sight & Sound Top Ten Poll: 1992 http://old.bfi.org.u[...] 2012-06-15
[7] 웹사이트 Ecco i cento film italiani da salvare Corriere della Sera https://www.corriere[...] 2021-03-11
[8] 웹사이트 La Strada http://www.rogereber[...] Ebert Digital LLC 2013-10-06
[9] 서적 Chatting About Other Things: An Interview with Federico Fellini, in Federico Fellini: Interviews https://archive.org/[...] University of Mississippi Press
[10] 서적 undefined
[11] 서적 undefined
[12] 서적 Federico Fellini as Auteur: Seven Aspects of His Films https://books.google[...] Southern Illinois University Press
[13] 서적 I, Fellini https://books.google[...] Random House
[14] 서적 Fellini on Fellini
[15] 서적 undefined
[16] 서적 undefined
[17] 웹사이트 Federico Fellini: The Complete Films http://www.anotherma[...] anothermag.com 2013-05-30
[18] 서적 undefined
[19] 서적 undefined
[20] 서적 undefined
[21] 웹사이트 La Strada http://www.tcm.com/t[...] Turner Entertainment Networks 2013-09-21
[22] 서적 undefined
[23] 서적 undefined
[24] 서적 Federico Fellini: The Complete Films https://books.google[...] Taschen
[25] 웹사이트 La Strada filming locations
[26] 서적 undefined
[27] 서적 undefined
[28] 서적 undefined
[29] 서적 undefined
[30] 서적 One Man Tango https://archive.org/[...] HarperCollins
[31] 서적 undefined
[32] 서적 undefined
[33] 서적 undefined
[34] 서적 undefined
[35] 뉴스 Federico Fellini, Film Visionary, Is Dead at 73 https://www.nytimes.[...] 2013-10-03
[36] 서적 Baxter
[37] 서적 Fava & Vigano
[38] 서적 Kezich (2009)
[39] 서적 Listening to Fellini: Music and Meaning in Black and White https://archive.org/[...] Fairleigh Dickinson University Press
[40] 서적 Baxter
[41] 서적 Betti
[42] 문서 110
[43] 서적 italics in original. Baxter
[44] 웹사이트 La Strada http://www.dvdmoviec[...] DVD Movie Central 2013-10-06
[45] 서적 The Voice in Cinema https://archive.org/[...] Columbia University Press
[46] 서적 Audio-Vision: Sound on Screen https://archive.org/[...] Columbia University Press
[47] 웹사이트 Music and Meaning in Fellini's "La Strada" https://web.archive.[...] University of Carthage 2013-10-06
[48] 서적 Foreign Films in America: A History https://books.google[...] McFarland
[49] 웹사이트 La Strada: Fellini's Magic-Neo-Realism https://web.archive.[...] University of Central Oklahoma 2013-09-30
[50] 학술지 Music As Salvation: Notes on Fellini and Rota 1975-01-01
[51] 학술지 Federico Fellini: Discussion
[52] 웹사이트 Nino Rota - Le Molière imaginaire, ballet suite for orchestra http://www.allmusic.[...]
[53] 서적 Betti
[54] 웹사이트 La Strada Movie Review http://www.contactmu[...] Contactmusic.com Ltd 2013-09-30
[55] 웹사이트 Martin Scorsese on La Strada http://www.classicar[...] Classic Art Films 2013-09-30
[56] 뉴스 'La Strada' (NR) https://www.washingt[...] 1994-01-14
[57] 뉴스 First published 2 October 1954 in Il Lavoro nuovo Il Lavoro nuovo 1954-10-02
[58] 뉴스 First published 8 September 1954 in Il Secolo XIX Il Secolo XIX 1954-09-08
[59] 서적 Baxter
[60] 서적 Baxter
[61] 서적 Kezich (2006)
[62] 뉴스 Corriere della Sera Corriere della Sera 1954-09-08
[63] 뉴스 Bianco e Nero XV Bianco e Nero XV 1954-08-08
[64] 서적 Kezich (2006)
[65] 학술지 La Strada: Realism and the Cinema of Poverty
[66] 뉴스 First published in Cahiers du cinéma Cahiers du cinéma 1955-07-01
[67] 웹사이트 Cahiers du Cinema: Top Ten Lists 1951-2009 https://web.archive.[...] 2017-12-17
[68] 서적 The French New Wave Distributed Art Publishers
[69] 서적 La Strada: Un film de Federico Fellini
[70] 학술지 Venice, 1954
[71] 논문 The Signs of Predicament
[72] 뉴스 A Grim Italian Film 1955-11-25
[73] 뉴스 The Strong Grow Week 1956-07-16
[74] 논문 Italian Realism Refreshed 1956-06-30
[75] 뉴스 La Strada (1954) Screen: A Truthful Italian Journey; 'La Strada' Is Tender, Realistic Parable https://movies.nytim[...] 1956-07-17
[76] 논문 An Interview with Federico Fellini 1957-10
[77] 웹사이트 Ten Film Classics https://archive.org/[...] 2012-06-15
[78] 웹사이트 Federico Fellini https://books.google[...] 2012-06-15
[79] 서적 The Great Movies Broadway Books
[80] 웹사이트 La Strada (The Road) (1954) http://www.rottentom[...] Flixster, Inc.
[81] 웹사이트 The Sight & Sound Top Ten Poll: 1992 http://old.bfi.org.u[...] British Film Institute
[82] 뉴스 The Best 1,000 Movies Ever Made https://www.nytimes.[...] The New York Times Company
[83] 웹사이트 The 1000 Greatest Films(s) http://www.theyshoot[...] Bill Georgaris
[84] 서적 The A List: The National Society of Film Critics' 100 Essential Films https://archive.org/[...] Da Capo Press
[85] 웹사이트 100 Essential Films by The National Society of Film Critics https://www.filmsite[...]
[86] 웹사이트 「オールタイム・ベスト 映画遺産200」全ランキング公開 http://www.kinejun.j[...]
[87] 웹사이트 The 100 Greatest Foreign Language Films https://www.bbc.com/[...] 2018-10-29
[88] 웹사이트 The Vatican Film List http://www.decentfil[...] Steven D. Greydanus
[89] 뉴스 A big heart open to God: The exclusive interview with Pope Francis http://www.americama[...] 2013-09-30
[90] 웹사이트 From Stanley Kubrick to Martin Scorsese: Akira Kurosawa once named his top 100 favourite films of all time https://faroutmagazi[...]
[91] 서적 Kezich
[92] 웹사이트 1956 – Bodilprisen https://www.bodilpri[...]
[93] 뉴스 La Strada Review https://movies.nytim[...] 1956-07-17
[94] 논문 La Strada: Cinematic Intersections 1956-09
[95] 논문 Fellini's La Strada as Transitional Film: The Road from Classical Neorealism to Poetic Realism 2011-08
[96] 서적 Italian Neorealism and Global Cinema Wayne State University Press
[97] 서적 Bondanella
[98] 서적 Bondanella & Gieri
[99] 서적 Bondanella & Gieri
[100] 서적 Italian Film in the Light of Neorealism https://books.google[...] Princeton University Press
[101] 서적 Bondanella & Gieri
[102] 서적 Italian Neorealism: Rebuilding the Cinematic City https://books.google[...] Wallflower Press
[103] 웹사이트 Akira kurosawa Lists His 100 Favourite Films https://www.opencult[...]
[104] 웹사이트 strada, La http://explore.bfi.o[...] British Film Institute
[105] 비디오 Le Vidéo Club de David Cronenberg : de Brigitte Bardot à Total Recall (avec du Cannes et Star Wars) https://www.youtube.[...]
[106] 서적 Keys to the Rain: The Definitive Bob Dylan Encyclopedia Billboard Books
[107] DVD Two-Lane Blacktop Criterion Collection
[108] 웹사이트 Love Theme from "La Strada" http://kokomo.ca/pop[...] RCA 2013-09-30
[109] 서적 John Simon on Music: Criticism, 1979–2005 https://books.google[...] Applause Books
[110] 웹사이트 La Strada http://www.playbillv[...] Playbill, Inc. 2013-10-10
[111] 서적 My Life As a Ten Year-Old Boy https://books.google[...] Hyperion
[112] 웹사이트 Topolino presenta "La strada" un omaggio a Federico Fellini https://inducks.org/[...] 2022-12-06
[113] 서적 キネマ旬報ベスト・テン85回全史-1924→2011
[114] 웹사이트 THE 29TH ACADEMY AWARDS / 1957 https://www.oscars.o[...] AMPAS 2024-03-21
[115] 웹사이트 アーカイブス放送履歴 https://www.nhk.or.j[...] NHK 2013-02-19
[116] 서적 Fellini
[117] 웹사이트 2015/3/7〜3/13上映作品|フェデリコ・フェリーニ監督特集 『道』/『甘い生活』 http://www.wasedasho[...]
[118] 서적 https://books.google[...]
[119] 웹사이트 淀川長治 世界クラシック名画撰集:道 http://www.ivc-tokyo[...]
[120] 서적
[121] 서적
[122] 웹사이트 La Strada http://www.dvdmoviec[...] DVD Movie Central 2013-10-06
[123] 서적
[124] 트윗 https://twitter.com/[...] 2013-11-07
[125] 웹사이트 「サワコの朝 〜山田洋次▽寅さんが生まれた日〜」 2018年6月2日(土)放送内容 https://web.archive.[...] 2018-06-02
[126] 서적 Federico Fellini: The Films Rizzoli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