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비푸리주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비푸리 주는 스웨덴, 러시아, 핀란드의 영토 분쟁으로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1812년 핀란드 대공국에 편입되어 비푸리 주로 설립되었다. 핀란드가 독립한 후에도 주 지위는 유지되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중 소련에 영토가 할양되었다. 이로 인해 많은 핀란드인이 이주하였고, 핀란드 영토는 퀴미 주로 개칭되었다가 남부 핀란드 주에 통합되었다. 비푸리 주는 행정 구역으로 9개의 지구와 주요 도시 및 타운으로 구성되었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와의 근접성으로 경제가 발달했다. 이 지역은 칼 야니쉬, 마르티 아티사리 등 다양한 분야의 저명한 인물들을 배출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카렐리야 - 카렐리야 지협
    카렐리야 지협은 핀란드와 러시아 사이에 위치하며 렘볼로보 고지를 최고점으로 하고, 부오크시 강이 라도가 호로 흘러 지협을 양분하며, 11세기부터 지배권 경쟁이 있었고, 펄프 및 제지, 목재 산업이 발달하고, E18 고속도로, 사이마 운하, 여러 철도가 지나가는 지역이다.
  • 카렐리야 - 카렐리야 공화국
    카렐리야 공화국은 러시아 북서부에 위치하며 핀란드와 국경을 접하고, 임업, 광업, 관광업, 어업 등을 기반으로 경제 활동을 하며, 수도는 페트로자보츠크이다.
  • 핀란드의 주 - 올란드 제도
    올란드 제도는 발트해 보트니아만 입구에 있는 핀란드의 스웨덴어 사용 자치령이자 비무장 지대로, 국제 연맹 결정에 따라 핀란드에 속하게 되었으며 독자적인 의회와 정부를 구성하고 해운, 관광, 무역, 면세 판매 등의 산업을 통해 자치권을 누리고 있다.
  • 핀란드의 주 - 바사주
    바사 주는 1634년에 설립되어 1997년에 폐지된 핀란드의 역사적 행정 구역으로, 오스트로보트니아 주에서 분리되었고 중앙수오미 주가 분리되는 등 변화를 거쳐 서핀란드 주 등으로 통합되었다.
비푸리주
지도
일반 정보
원래 이름langx|fi|Viipurin lääni (핀란드어)
langx|sv|Viborgs län (스웨덴어)
langx|ru|Выборгская губерния (러시아어)
통칭비푸리 주
국가핀란드
수도비푸리
역사
시작사건: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할양되어 성립
년도: 1812년
종료사건:
주 영역의 대부분이 소비에트 연방에 점령되어 붕괴
년도: 1945년
이전p1: 비보르크 현
flag_p1: Coat of Arms of Vyborg (Vyborg Governorate) (1788).png
border_p1: no
이후s1: 카렐리야-핀란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flag_s1: Flag of the Karelo-Finnish SSR.svg
s2: 레닌그라드 주
flag_s2: Flag of Leningrad Oblast.svg
s3: 퀴미 주
flag_s3: Kymen lääni.vaakuna.svg
border_s3: no
통치
직함주지사
통계
기준 연도1939년
면적32,134 제곱킬로미터
인구620,838명
상징
비푸리 주의 문장
1913년 비보르크 현 지도
1913년 비보르크 현 지도

2. 역사

비푸리 주의 역사는 스웨덴 제국, 러시아 제국, 핀란드 세 국가 간의 복잡한 영토 분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 비푸리 주 성립 이전 ===

1721년 니스타드 조약과 1743년 오보 조약을 통해 스웨덴 제국러시아 제국카렐리야 지역을 할양했다.[1] 1721년 비보리 및 뉘슬로트 주와 케크홀름 주, 1743년 사볼락스 및 키메네고르드 주의 일부에서 유래한 할양된 영토는 1744년에 비보르크 현으로 설립되었으며, 구 핀란드로도 알려졌다.[1]

나폴레옹 전쟁 동안, 스웨덴 왕국은 영국 등과 함께 프랑스 제1제국에 맞서 러시아 제국과 동맹을 맺었다.[1] 그러나 1807년 틸지트 조약 이후 러시아는 프랑스와 평화 조약을 맺었고, 1808년 프랑스의 지원을 받은 러시아는 핀란드 전쟁에서 핀란드에 대한 스웨덴의 지배에 성공적으로 도전했다.[1] 1809년 9월 17일 프레데릭스함 조약에서 스웨덴은 토르네 강 동쪽의 모든 핀란드 영토를 러시아에 할양해야 했다.[1] 러시아 제국은 새로운 영토를 자치적인 핀란드 대공국으로 재구성했고, 러시아 차르대공을 맡았다.[1]

=== 핀란드 대공국 시대 ===

나폴레옹 전쟁 동안 스웨덴 왕국은 영국 등과 함께 프랑스 제1제국에 맞서 러시아 제국과 동맹을 맺었으나, 1807년 틸지트 조약 이후 러시아는 프랑스와 평화 조약을 맺었다.[1] 1808년, 프랑스의 지원을 받은 러시아는 핀란드 전쟁에서 핀란드에 대한 스웨덴의 지배에 성공적으로 도전했다.[1] 1809년 9월 17일 프레데릭스함 조약에서 스웨덴은 토르네 강 동쪽의 모든 핀란드 영토를 러시아에 할양해야 했다.[1] 러시아 제국은 새로운 영토를 자치적인 핀란드 대공국으로 재구성했고, 러시아 차르대공을 맡았다.[1]

1812년, 비보르크 현의 영토는 러시아 본토에서 핀란드 대공국으로 이관되어 비푸리 주가 설립되었다. 1811년 12월 23일 구력 (1812년 1월 4일 신력)에 차르 알렉산드르 1세가 발표한 이관은 강제로 자국을 정복당한 핀란드 국민의 감정을 달래기 위한 상징적인 제스처이자 시도로 볼 수 있다. 1864년에는 세스트로레츠크가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현으로 이관되었다.

=== 핀란드 독립과 내전 ===

1917년 핀란드가 러시아로부터 독립했을 때 비푸리 주의 지위는 변동이 없었다. 당시 주도인 비보리(Viborgsv, Viipurifi)는 핀란드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였다. 핀란드 내전에서 비푸리 주는 핀란드 사회주의 노동자 공화국 편에 섰으며,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과의 국경을 통해 병력과 물자를 지원받았다.

=== 제2차 세계 대전 ===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폴란드 제2공화국을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다.[2] 같은 해 9월 17일, 독소 불가침 조약과 함께 체결된 비밀 조약에 따라 소비에트 연방이 폴란드를 침공했다. 1939년 11월 28일, 소비에트 연방은 핀란드에 불가침 조약의 폐기를 통고했고,[2] 11월 30일 소련군이 비푸리 주 국경을 넘어 핀란드를 침공, 겨울 전쟁이 시작되었다.[3]

1940년 모스크바 평화 조약으로 핀란드는 비푸리를 포함한 비푸리 주 대부분을 소련에 할양했다.[3] 할양된 면적은 22,973km²로 비푸리 주의 71.5%에 달했으며, 카렐리야-핀란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편입되었다. 이로 인해 42만 명 이상의 핀란드인이 핀란드로 이주하거나 난민이 되었다.

1941년 핀란드와 소비에트 연방 간에 계속 전쟁이 발발하여 핀란드는 일시적으로 비푸리 주 대부분을 탈환했다. 그러나 1944년 비보르크-페트로자보츠크 공세로 인해 다시 소비에트 연방에 점령되었고, 1947년 파리 조약으로 영토 할양이 확정되었다.

1941년부터 1944년까지 핀란드군이 비푸리 주를 탈환하면서 이주했던 사람들이 돌아왔으나, 소비에트 연방에 재점령되자 다시 핀란드로 이주하여 비푸리 주의 인구는 격감했다. 소비에트 연방은 다른 지역에서 사람들을 이주시켜 인구를 보충했다. 두 번째 점령 시 카렐리야 지협은 레닌그라드 주의 비보르크스키 구와 프리오제르스키 구에, 라도가 카렐리야와 보르델 카렐리야는 카렐리야-핀란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편입되었다. 라도가 카렐리야의 지명은 대부분 유지되었지만, 카렐리야 지협 주변의 지명은 1948년까지 대부분 소비에트 연방 정부에 의해 변경되었다.[4]

=== 전후 ===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비푸리 주의 핀란드 영토는 퀴미 주로 개칭되었다.[1] 퀴미 주는 1997년 남부 핀란드 주로 통합되었다.[1]

2. 1. 비푸리 주 성립 이전

1721년 니스타드 조약과 1743년 오보 조약을 통해 스웨덴 제국러시아 제국카렐리야 지역을 할양했다.[1] 1721년 비보리 및 뉘슬로트 주와 케크홀름 주, 1743년 사볼락스 및 키메네고르드 주의 일부에서 유래한 할양된 영토는 1744년에 비보르크 현으로 설립되었으며, 구 핀란드로도 알려졌다.[1]

나폴레옹 전쟁 동안, 스웨덴 왕국은 영국 등과 함께 프랑스 제1제국에 맞서 러시아 제국과 동맹을 맺었다.[1] 그러나 1807년 틸지트 조약 이후 러시아는 프랑스와 평화 조약을 맺었고, 1808년 프랑스의 지원을 받은 러시아는 핀란드 전쟁에서 핀란드에 대한 스웨덴의 지배에 성공적으로 도전했다.[1] 1809년 9월 17일 프레데릭스함 조약에서 스웨덴은 토르네 강 동쪽의 모든 핀란드 영토를 러시아에 할양해야 했다.[1] 러시아 제국은 새로운 영토를 자치적인 핀란드 대공국으로 재구성했고, 러시아 차르대공을 맡았다.[1]

2. 2. 핀란드 대공국 시대

나폴레옹 전쟁 동안 스웨덴 왕국은 영국 등과 함께 프랑스 제1제국에 맞서 러시아 제국과 동맹을 맺었으나, 1807년 틸지트 조약 이후 러시아는 프랑스와 평화 조약을 맺었다.[1] 1808년, 프랑스의 지원을 받은 러시아는 핀란드 전쟁에서 핀란드에 대한 스웨덴의 지배에 성공적으로 도전했다.[1] 1809년 9월 17일 프레데릭스함 조약에서 스웨덴은 토르네 강 동쪽의 모든 핀란드 영토를 러시아에 할양해야 했다.[1] 러시아 제국은 새로운 영토를 자치적인 핀란드 대공국으로 재구성했고, 러시아 차르대공을 맡았다.[1]

1812년, 비보르크 현의 영토는 러시아 본토에서 핀란드 대공국으로 이관되어 비푸리 주가 설립되었다. 1811년 12월 23일 구력 (1812년 1월 4일 신력)에 차르 알렉산드르 1세가 발표한 이관은 강제로 자국을 정복당한 핀란드 국민의 감정을 달래기 위한 상징적인 제스처이자 시도로 볼 수 있다. 1864년에는 세스트로레츠크가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현으로 이관되었다.

2. 3. 핀란드 독립과 내전

1721년 니스타드 조약과 1743년 오보 조약을 통해 스웨덴 제국이 러시아에 할양한 영토는 1744년 비보르크 현으로 설립되었다.[1] 이 영토는 1721년 비보리 및 뉘슬로트 주와 케크홀름 주, 1743년 사볼락스 및 키메네고르드 주의 일부에서 유래했으며, 구 핀란드로도 알려졌다.

나폴레옹 전쟁 동안 스웨덴 왕국은 영국 등과 함께 프랑스 제1제국에 맞서 러시아 제국과 동맹을 맺었으나, 1807년 틸지트 조약 이후 러시아는 프랑스와 평화 조약을 맺었다. 1808년, 프랑스의 지원을 받은 러시아는 핀란드 전쟁에서 승리했고, 1809년 프레데릭스함 조약에서 스웨덴은 토르네 강 동쪽의 모든 핀란드 영토를 러시아에 할양해야 했다. 러시아 제국은 새로운 영토를 자치적인 핀란드 대공국으로 재구성했고, 러시아 차르대공을 맡았다.[1]

1812년, 비보르크 현의 영토는 러시아 본토에서 핀란드 대공국으로 이관되어 비푸리 주가 되었다. 1811년 12월 23일 구력 (1812년 1월 4일 신력)에 차르 알렉산드르 1세가 발표한 이관은 강제로 자국을 정복당한 핀란드 국민의 감정을 달래기 위한 상징적인 제스처이자 시도로 볼 수 있다.[1] 세스트로레츠크1864년 상트페테르부르크 현으로 이관되었다.

1917년 핀란드가 러시아로부터 독립했을 때 비푸리 주의 지위는 변동이 없었다. 당시 주도인 비보리(Viborgsv, Viipurifi)는 핀란드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였다. 핀란드 내전에서 비푸리 주는 핀란드 사회주의 노동자 공화국 편에 섰으며,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과의 국경을 통해 병력과 물자를 지원받았다.

2. 4. 제2차 세계 대전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폴란드 제2공화국을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다.[2] 같은 해 9월 17일, 독소 불가침 조약과 함께 체결된 비밀 조약에 따라 소비에트 연방이 폴란드를 침공했다. 1939년 11월 28일, 소비에트 연방은 핀란드에 불가침 조약의 폐기를 통고했고,[2] 11월 30일 소련군이 비푸리 주 국경을 넘어 핀란드를 침공, 겨울 전쟁이 시작되었다.[3]

1940년 모스크바 평화 조약으로 핀란드는 비푸리를 포함한 비푸리 주 대부분을 소련에 할양했다.[3] 할양된 면적은 22,973km²로 비푸리 주의 71.5%에 달했으며, 카렐리야-핀란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편입되었다. 이로 인해 42만 명 이상의 핀란드인이 핀란드로 이주하거나 난민이 되었다.

1941년 핀란드와 소비에트 연방 간에 계속 전쟁이 발발하여 핀란드는 일시적으로 비푸리 주 대부분을 탈환했다. 그러나 1944년 비보르크-페트로자보츠크 공세로 인해 다시 소비에트 연방에 점령되었고, 1947년 파리 조약으로 영토 할양이 확정되었다.

1941년부터 1944년까지 핀란드군이 비푸리 주를 탈환하면서 이주했던 사람들이 돌아왔으나, 소비에트 연방에 재점령되자 다시 핀란드로 이주하여 비푸리 주의 인구는 격감했다. 소비에트 연방은 다른 지역에서 사람들을 이주시켜 인구를 보충했다. 두 번째 점령 시 카렐리야 지협은 레닌그라드 주의 비보르크스키 구와 프리오제르스키 구에, 라도가 카렐리야와 보르델 카렐리야는 카렐리야-핀란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편입되었다. 라도가 카렐리야의 지명은 대부분 유지되었지만, 카렐리야 지협 주변의 지명은 1948년까지 대부분 소비에트 연방 정부에 의해 변경되었다.[4]

2. 5. 전후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비푸리 주의 핀란드 영토는 퀴미 주로 개칭되었다.[1] 퀴미 주는 1997년 남부 핀란드 주로 통합되었다.[1]

3. 행정 구역

3. 1. 지구

비푸리 주는 9개의 지구(kihlakuntafi, häradsv)로 나뉘어 있었다. 란타(Strandasv), 에이랴패(Äyräpääsv), 캐키살미(Kexholmsv), 쿠르키요키(Kurkijoki)(Kronoborgsv), 퀴미(Kymi)(Kymmenesv), 라페(Lappvesisv), 살미(Salmissv), 소르타발라(Sordavalasv), 얘스키(Jäskissv)가 있었다.

3. 2. 주요 도시

제2차 세계 대전소련에 할양된 지역은 ''이탤릭체''로 표시된다.

  • 20px
    '''하미나''' – 프레드릭스함
  • 20px
    '''코트카'''
  • ''캐키살미 – 켁스홀름''
  • 20px
    '''라펜란타''' – 빌만스트란드 ([http://www.lappeenranta.fi/ 웹사이트])
  • ''소르타발라 – 소르다발라'' ([http://www.sortavala.fi/ 웹사이트])
  • ''비푸리 – 비보르'' ([http://www.viipuri.net/ 웹사이트 1], [http://www.virtuaaliviipuri.tamk.fi/ 웹사이트 2])


코우볼라, 코이비스토, 라덴포야는 비푸리 주의 타운이다.

3. 3. 주요 타운

20px
'''코우볼라'''는 비푸리 주의 주요 타운 중 하나이다. 발케알라는 2009년 코우볼라에 합병되었다.

'''코트카'''는 비푸리 주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이다. 하아파사리는 1974년 코트카에, 키미는 1977년 코트카에 각각 합병되었다.

'''라펜란타'''는 비푸리 주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이다. 라우리찰라와 라페는 1967년 라펜란타에, 누이아마는 1989년 라펜란타에, 요우첸노는 2009년 라펜란타에, 윌라마는 2010년 라펜란타에 각각 합병되었다.

'''하미나'''는 비푸리 주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이다. 베흐칼라흐티는 2003년 하미나에 합병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소련에 할양된 지역은 ''이탤릭체''로 표시된다.

''캐키살미''

''소르타발라''

''비푸리''

''코이비스토''

''라덴포야''

'''농촌 자치구'''

핀란드어/스웨덴어 이름. 달리 언급되지 않는 한 같은 이름의 주요 마을.

  • ''안트레아''
  • ''할루''
  • ''헤인요키''
  • ''히이톨라''
  • ''임필라흐티''
  • ''야키마''
  • ''요하네스''
  • ''야스키''
  • ''칸넬랴르비''
  • ''카우콜라''
  • ''키르부''
  • ''키베나파''
  • ''코이비스톤 마알라이스쿤타''
  • ''코르피셀캬''
  • ''쿠올레마야르비''
  • ''쿠르키요키''
  • ''캐키살멘 마알라이스쿤타''
  • ''라반사리''
  • 레미
  • ''루미바라''
  • 루우마키
  • ''메체피르티''
  • 미에히키얄라
  • ''무올라''
  • 파리칼라
  • 피흐티애
  • ''퓌해야르비''
  • 라우탸르비
  • ''라우투''
  • 루오코라흐티
  • ''루스케알라''
  • ''래이사래''
  • ''사콜라''
  • ''살미''
  • 사비타이팔레
  • ''세이스카리''
  • 심펠레
  • 시폴라
  • ''소안라흐티''
  • ''소르타발란 마알라이스쿤타''
  • ''수이스타모''
  • ''수오야르비''
  • 수오멘니에미
  • ''수르사리''
  • ''새키야르비''
  • 타이팔사리
  • ''테리요키''
  • ''튓태르사리''
  • 우우쿠니에미
  • ''우시키르코''
  • ''바흐비알라''
  • ''발크야르비''
  • ''비이푸린 마알라이스쿤타''
  • 비롤라흐티
  • ''보욱셀라''
  • ''보욱센란타''
  • ''애이랴패''

사리는 2005년 파리칼라에 합병되었다.

4. 경제

러시아 제국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와의 근접성으로 인해 경제가 발달했다. 1856년 사이마 운하가 개통되어 사이마호와 핀란드 호수 지역을 비보르크만과 연결했다. 1870년 상트페테르부르크-리히미키 철도, 1894년 비보르크-요엔수 철도, 1917년 페트로그라드-히이톨라 철도가 건설되면서 지역 개발이 더욱 촉진되었다.

화강암, 대리석(루스케알라), 습지 철광 채굴과 벌목은 중요한 산업 분야였다. 20세기 초부터 우옥시 강 상류 지역에 수력 발전소가 여러 개 건설되어 스토라 엔소의 제지 공장에 전력을 공급했다.

5. 저명한 출신 인물

에른스트 뢰프스트룀


리디아 세제만


배이뇌 쿠나스 자화상, 1926


에스테르 토이보넨, 1930년대


1812년에서 1917년 사이 핀란드 대공국의 일부였던 비푸리주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다.

  • 칼 야니쉬 (1813–1872) 핀란드 출신 러시아 체스 선수이자 이론가
  • 스테판 뵈케바 (1833년 사키얘르비 출생 - 1910년) 핀란드 출신 러시아 은세공인, 파베르제 직인
  • 율리우스 크론 (1835, 비푸리 출생 - 1888) 핀란드 시 연구자, 핀란드 문학 교수이자 페노만
  • 레오 메켈린 (1839년 하미나 출생 – 1914) 핀란드 교수, 정치가, 상원 의원, 자유주의 개혁가
  • 카를로 베르그봄 (1843, 비푸리 출생 – 1906) 연극 감독, 핀란드 국립 극장 설립
  • 리디아 세제만 (1845–1925) 핀란드 화학 박사
  • 알렉산드라 그리펜베르크 (1857, 쿠르키요키(핀란드어 ''Kurkijoki'') 출생 - 1913) 핀란드 사회 운동가, 신문 발행인, 페노만
  • 에른스트 뢰프스트룀 (1865–1937) 핀란드 장군
  • 구스타프 콤파 (1867, 비푸리 출생 – 1949) 핀란드 화학자
  • 아르마스 예르네펠트 (1869, 비푸리 출생 – 1958) 핀란드 작곡가이자 지휘자
  • 마그누스 엥켈 (1870년 하미나 출생 – 1925) 핀란드 상징주의 화가
  • 게오르그 슈네보이그트 (1872–1947) 핀란드 지휘자이자 첼리스트
  • 후고 심베르그 (1873–1917) 핀란드 상징주의 화가이자 그래픽 아티스트.
  • 에르키 멜라르틴 (1875년 캐키살미 출생 – 1937) 핀란드 작곡가
  • 에른스트 미엘크 (1877년 비푸리 출생 – 1899) 핀란드 작곡가
  • 온니 탈라스 (1877년 라펜란타 출생 — 1958) 핀란드 변호사, 정치인, 교수, 외교관
  • 아이노 칼라스 (1878년 키스킬라 출생 – 1956) 핀란드-에스토니아 단편 소설 작가
  • 우노 울베르그 (1879, 비푸리 출생 – 1944) 핀란드 건축가
  • 라우리 크리스티안 렐란데르 (1883, 쿠르키요키 출생 – 1942) 제2대 핀란드 대통령
  • 케르스티 베르그로트 (1886–1975) 핀란드 작가이자 극작가.
  • 알고트 니스카 (1888, 비푸리 출생 – 1954) 핀란드 밀수업자, 축구 선수, 모험가
  • 유호 니우카넨 (1888년 키르부 출생 – 1954) 핀란드 장관
  • 카를 레나르트 외쉬 (1892년 퓌해얘르비 출생 – 1978) 핀란드 장군
  • 엘사 아로칼리오 (1892년 쿠르키요키 출생 - 1982) 핀란드 건축가
  • 에드빈 린코미에스 (1894, 비푸리 출생 – 1963) 핀란드 총리
  • 배이뇌 쿠나스 (1896–1929) 핀란드 표현주의 화가
  • 사라 라닌 (1898년 하미나 출생 – 1992) 핀란드 배우이자 감독
  • 튀네 레이보-라르손 (1902년 우시키르코 출생 – 1977) 핀란드 대사이자 국회의원
  • 케이 순드스트룀 (1902년 하미나 출생 - 1959) 핀란드 치과 의사, 정치인, 외교관
  • 시모 해위해 (1905년 라우테르비 출생 - 2002) 핀란드 군인
  • 헬비 해멀래이넨 (1907년 하미나 출생 – 1998) 핀란드 작가, 산문과 시 출판
  • 빌요 베스테리넨 (1907년 테리요키 출생 – 1961) 핀란드 아코디언 연주자이자 작곡가.
  • 샘 반니 (1908–1992) 핀란드 화가, 추상 미술의 선구자
  • 베이코 라비 (1912년 코트카 출생 – 1996) 핀란드 가수, 작곡가, 작가
  • 해리 린드블라드 (1912–1984) 핀란드 아이스하키 협회 회장
  • 아르미 라티아 (1912년 펄키얘르비 출생 – 1979) 핀란드 섬유 및 의류 회사 마리메코 설립자
  • 실비 사이모 (1914년 얘키마 출생 – 2004) 핀란드 카누 선수, 금메달리스트, 1952년 하계 올림픽
  • 바실리 호프딩 (1914년 무스타매키 출생 – 1991) 핀란드 통계학자이자 확률론
  • 요한네스 비롤라이넨 (1914년 비푸리 근처 출생 - 2000) 제30대 핀란드 총리
  • 마사 니에미 (1914, 비푸리 출생 – 1960) 드러머, 배우, 코미디언
  • 미하일 보그다노프 (1914–1995) 소련 프로덕션 디자이너
  • 에스테르 토이보넨 (1914년 하미나 출생 — 1979) 1933년 미스 핀란드, 1934년 미스 유럽, 이후 영화 배우
  • 에르나 타우로 (1916–1993) 핀란드-스웨덴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1917년 이후 비보르크에서 태어난 사람은 다음과 같다.

  • 마르티 아티사리 (1937년 비푸리 출생), 핀란드 제10대 대통령, 노벨 평화상 수상자
  • 에릭 브룬 (1926년 비푸리 출생), 그래픽 디자이너
  • 라일라 히에타미에스 (1938년 비푸리 출생), 작가
  • 구스타프 해글룬드 (1938년 비푸리 출생), 군인
  • 시모 해위해 (1905년 라우토얘르비 출생 - 2002년 루오콜라흐티 사망), 군인, 저격수 (저격수 역사상 최고 확인 전과, 505명 사살 기록)
  • 막스 야콥슨 (1923년 비푸리 출생), 외교관
  • 아르마스 얘르네펠트 (1869년 비푸리 출생 – 1958년 스톡홀름 사망), 작곡가, 지휘자
  • 아르네 유틸라이넨 (1904년 소르타발라 출생 - 1976년 사망), 군인
  • 술로 온니 콜카 (1904년 사키얘르비 출생 - 1988년 캉가살라 사망), 군인, 저격수
  • 구스타프 콤파 (1867년 비푸리 출생 – 1949년 사망), 화학자
  • 율리우스 크론 (1835년 비푸리 출생 - 1888년 사망), 페노만
  • 에드빈 린코미에스 (1894년 비푸리 출생 – 1963년 헬싱키 사망), 총리
  • 베이요 메리 (1928년 비푸리 출생), 작가
  • 에른스트 미엘크 (1877년 비푸리 출생 – 1899년 사망), 작곡가
  • 마사 니에미 (1914년 비푸리 출생 - 1960년 탐페레 사망), 코미디언
  • 알고트 니스카 (1888년 비푸리 출생 - 1954년 사망), 탐험가
  • 유호 니우카넨 (1888년 키르부 출생 – 1954년 헬싱키 사망), 총리
  • 칼 레나르트 외슈 (1892년 피해얘르비 출생 - 1978년 헬싱키 사망), 군인
  • 라우리 크리스티안 렐란데르 (1883년 쿠르키요키 출생 - 1942년 헬싱키 사망), 제2대 대통령
  • 우스코 산타부오리 (1922년 비푸리 출생 – 2003년 에스포 사망), 라디오 리포터
  • 라우리 알란 퇼르니 (1919년 비푸리 출생 – 1965년 베트남 사망), 군인
  • 우노 울베리 (1879년 비푸리 출생 –1944년 헬싱키 사망), 건축가
  • 요한네스 비롤라이넨 (1914년 비푸리 근교 출생 - 2000년 사망), 총리


분류:비푸리주 출신

5. 1. 핀란드 대공국 시대 출생



1812년에서 1917년 사이 핀란드 대공국의 일부였던 비푸리주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다.

  • 칼 야니쉬 (1813–1872) 핀란드 출신 러시아 체스 선수이자 이론가
  • 스테판 뵈케바 (1833년 사키예르비 출생 - 1910년) 핀란드 출신 러시아 은세공인, 파베르제 직인
  • 율리우스 크론 (1835, 비푸리 출생 - 1888) 핀란드 시 연구자, 핀란드 문학 교수이자 페노만
  • 레오 메켈린 (1839년 하미나 출생 – 1914) 핀란드 교수, 정치가, 상원 의원, 자유주의 개혁가
  • 카를로 베르그봄 (1843, 비푸리 출생 – 1906) 연극 감독, 핀란드 국립 극장 설립
  • 리디아 세제만 (1845–1925) 핀란드 화학 박사
  • 알렉산드라 그리펜베르크 (1857, 쿠르키요키 [핀란드어 ''Kurkijoki''] 출생 - 1913) 핀란드 사회 운동가, 신문 발행인, 페노만
  • 에른스트 뢰프스트룀 (1865–1937) 핀란드 장군
  • 구스타프 콤파 (1867, 비푸리 출생 – 1949) 핀란드 화학자
  • 아르마스 예르네펠트 (1869, 비푸리 출생 – 1958) 핀란드 작곡가이자 지휘자
  • 마그누스 엥켈 (1870년 하미나 출생 – 1925) 핀란드 상징주의 화가
  • 게오르그 슈네보이그트 (1872–1947) 핀란드 지휘자이자 첼리스트
  • 후고 심베르그 (1873–1917) 핀란드 상징주의 화가이자 그래픽 아티스트.
  • 에르키 멜라르틴 (1875년 캐키살미 출생 – 1937) 핀란드 작곡가
  • 에른스트 미엘크 (1877년 비푸리 출생 – 1899) 핀란드 작곡가
  • 온니 탈라스 (1877년 라펜란타 출생 — 1958) 핀란드 변호사, 정치인, 교수, 외교관
  • 아이노 칼라스 (1878년 키스킬라 출생 – 1956) 핀란드-에스토니아 단편 소설 작가
  • 우노 울베르그 (1879, 비푸리 출생 – 1944) 핀란드 건축가
  • 라우리 크리스티안 렐란데르 (1883, 쿠르키요키 출생 – 1942) 제2대 핀란드 대통령
  • 케르스티 베르그로트 (1886–1975) 핀란드 작가이자 극작가.
  • 알고트 니스카 (1888, 비푸리 출생 – 1954) 핀란드 밀수업자, 축구 선수, 모험가
  • 유호 니우카넨 (1888년 키르부 출생 – 1954) 핀란드 장관
  • 카를 레나르트 외쉬 (1892년 퓌해르비 출생 – 1978) 핀란드 장군
  • 엘사 아로칼리오 (1892년 쿠르키요키 출생 - 1982) 핀란드 건축가
  • 에드빈 린코미에스 (1894, 비푸리 출생 – 1963) 핀란드 총리
  • 배이뇌 쿠나스 (1896–1929) 핀란드 표현주의 화가
  • 사라 라닌 (1898년 하미나 출생 – 1992) 핀란드 배우이자 감독
  • 튀네 레이보-라르손 (1902년 우시키르코 출생 – 1977) 핀란드 대사이자 국회의원
  • 케이 순드스트룀 (1902년 하미나 출생 - 1959) 핀란드 치과 의사, 정치인, 외교관
  • 시모 해위해 (1905년 라우테르비 출생 - 2002) 핀란드 군인
  • 헬비 해멀래이넨 (1907년 하미나 출생 – 1998) 핀란드 작가, 산문과 시 출판
  • 빌요 베스테리넨 (1907년 테리요키 출생 – 1961) 핀란드 아코디언 연주자이자 작곡가.
  • 샘 반니 (1908–1992) 핀란드 화가, 추상 미술의 선구자
  • 베이코 라비 (1912년 코트카 출생 – 1996) 핀란드 가수, 작곡가, 작가
  • 해리 린드블라드 (1912–1984) 핀란드 아이스하키 협회 회장
  • 아르미 라티아 (1912년 펄키에르비 출생 – 1979) 핀란드 섬유 및 의류 회사 마리메코 설립자
  • 실비 사이모 (1914년 야키마 출생 – 2004) 핀란드 카누 선수, 금메달리스트, 1952년 하계 올림픽
  • 바실리 호프딩 (1914년 무스타매키 출생 – 1991) 핀란드 통계학자이자 확률론
  • 요한네스 비롤라이넨 (1914년 비푸리 근처 출생 - 2000) 제30대 핀란드 총리
  • 마사 니에미 (1914, 비푸리 출생 – 1960) 드러머, 배우, 코미디언
  • 미하일 보그다노프 (1914–1995) 소련 프로덕션 디자이너
  • 에스테르 토이보넨 (1914년 하미나 출생 — 1979) 1933년 미스 핀란드, 1934년 미스 유럽, 이후 영화 배우
  • 에르나 타우로 (1916–1993) 핀란드-스웨덴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5. 2. 핀란드 독립 이후 출생

1917년 핀란드 독립 이후 비푸리 주에서 출생한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 마르티 아티사리 (1937년 비푸리 출생), 핀란드 제10대 대통령, 노벨 평화상 수상자
  • 에릭 브룬 (1926년 비푸리 출생), 그래픽 디자이너
  • 라일라 히에타미에스 (1938년 비푸리 출생), 작가
  • 구스타프 해글룬드 (1938년 비푸리 출생), 군인
  • 막스 야콥슨 (1923년 비푸리 출생), 외교관
  • 베이요 메리 (1928년 비푸리 출생), 작가
  • 우스코 산타부오리 (1922년 비푸리 출생 – 2003년 에스포 사망), 라디오 리포터
  • 라우리 알란 퇼르니 (1919년 비푸리 출생 – 1965년 베트남 사망), 군인


분류:비푸리주 출신

6. 더불어민주당 관점 추가 정보

핀란드 내전제2차 세계 대전 시기 비푸리 주의 역사는 핀란드 사회의 좌우 갈등과 이념 대립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특히 겨울 전쟁계속 전쟁에서 핀란드가 소련에 영토를 빼앗긴 것은 핀란드 국민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으며, 전후 핀란드 정치와 외교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비푸리 주 출신 인물 중에는 핀란드의 사회 개혁과 국제 평화 증진에 기여한 진보적 성향의 인물들이 있다. 레오 메켈린, 라우리 크리스티안 렐란데르, 에드빈 린코미에스 등이 이에 해당한다. 마르티 아티사리핀란드 제10대 대통령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국제 평화 증진에 기여했다.

반면, 핀란드의 국방력 강화와 반공주의 노선을 옹호한 보수적 성향의 인물들도 있다. 시모 해위해는 저격수 역사상 최고 확인 전과(505명 사살)를 기록한 군인이다. 요한네스 비롤라이넨은 총리를 역임했다.

참조

[1] 웹사이트 The history of the development of statehood in Finland https://www.eduskunt[...] 2024-04-15
[2] 뉴스 フィンランドとの不可侵条約廃棄を通告 朝日新聞 1939-11-30
[3] 뉴스 ソ連軍、国境全線で攻撃開始 東京日日新聞 1939-12-01
[4] 웹사이트 New regional administration model abolishes provinces in 2010 http://www.hs.fi/eng[...] HELSINGIN SANOMAT 2012-07-15
[5] 문서 カール・グスタフ・エミール・マンネルヘイムの祖父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