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비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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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비복부는 백제 멸망 후 일본으로 망명한 인물이다. 665년, 억례복류와 함께 쓰쿠시국에 파견되어 오노성과 키이성을 축성하는 일을 맡았으며, 다자이후가 백제의 도성과 유사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비복부의 일족은 724년과 766년에 씨성을 하사받았고, 714년에는 사비 신사가 효도로 인해 과역을 면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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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복부 - [인물]에 관한 문서 | |
---|---|
인물 정보 | |
작위 | 백제의 달솔 |
군주 | 국왕 |
국적 | 백제→일본 |
성별 | 남성 |
가계 | |
가문 | 사씨(추정) |
2. 생애
660년 백제가 멸망하고 백제부흥운동까지 실패하자 일본으로 망명했다.[1] 당시 달솔이었던 사비복부는 같은 달솔인 억례복류와 함께 지쿠시국(지금의 규슈 북부)에 보내져 오노와 기에 성을 축성하는 일을 맡았다.[1]
2. 1. 백제 멸망과 일본 망명
660년 백제가 멸망하고 백제부흥운동까지 실패하자 일본으로 망명했다.[1]당시 달솔이었던 사비복부는 같은 달솔인 억례복류와 함께 지쿠시국(지금의 규슈 북부)에 보내져 오노와 기에 성을 축성하는 일을 맡았다.[1] 기시 토시오는 "사비"는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냐는 설을 제창하고 있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덴지 천황 4년(665년) 8월, 같은 백제의 유신인 달솔 억례복류와 함께 쓰쿠시국에 파견되어 오노 및 연 두 성을 쌓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1] 두 개의 고대 산성을 쌓아 각각 다자이후의 배후와 남부를 방위하게 했다. 이러한 성들이 복류나 복부 등 망명 백제인에 의해 지도되어 축성된 점으로 미루어, 다자이후도 백제의 도성에 상사하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쇼쿠니혼기』에 따르면, 진키 원년(724년)에 일족의 사비 충용에게 시이노 연의 씨성이 하사되었고,[2] 덴표진고 2년(766년) 3월에 사비 하수도 같은 씨성을 하사받았다.[3] 와도 7년(714년) 11월에는 사비 신사가 망부의 부모에 대한 효도로 인해 과역을 면제받은 것이 기술되어 있다.[4]
2. 2. 쓰쿠시국에서의 활동
665년, 백제 유신(遺臣)이었던 달솔 억례복류와 함께 쓰쿠시국에 파견되어 오노성(오호노) 및 기이성(키)을 쌓았다.[1] 이 성들은 다자이후의 배후와 남부를 방위하는 역할을 했다. 이처럼 망명 백제인들이 성을 쌓는 데 지도적인 역할을 한 점을 미루어 볼 때, 다자이후도 백제의 도성과 비슷한 점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2. 3. 사비 씨와 그 후손
기시 토시오는 "사비"가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냐는 설을 제창하고 있다.『일본서기』에 따르면, 덴지 천황 4년(665년) 8월, 백제의 유신인 달솔 억례복류와 함께 쓰쿠시국에 파견되어 오노 및 연 두 성을 쌓았다.[1] 이들은 다자이후의 배후와 남부를 방위하는 고대 산성이었다. 이러한 성들이 복류나 복부 등 망명 백제인에 의해 지도되어 축성된 점으로 미루어, 다자이후도 백제의 도성과 유사한 점이 지적되고 있다.
『쇼쿠니혼기』에 따르면, 진키 원년(724년)에 사비 충용에게 시이노 연의 씨성이 하사되었고,[2] 덴표진고 2년(766년) 3월에는 사비 하수도 같은 씨성을 하사받았다.[3] 와도 7년(714년) 11월에는 사비 신사가 망부의 부모에 대한 효도로 과역을 면제받았다.[4]
3. 역사적 의의
기시 토시오는 "사비"가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냐는 설을 제창하고 있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덴지 천황 4년(665년) 8월에 백제 유신인 달솔 억례복류와 함께 쓰쿠시국에 파견되어 오노 및 연 두 성을 쌓아 다자이후의 배후와 남부를 방위하게 하였다.[1] 이 성들이 복류나 복부 등 망명 백제인에 의해 지도되어 축성된 점으로 미루어, 다자이후도 백제의 도성과 유사한 점이 있다는 것이 지적된다.
쇼쿠니혼기에 따르면, 진키 원년(724년)에 사비 충용에게 시이노 연의 씨성이 하사되었다.[2] 덴표진고 2년(766년) 3월에 사비 하수도 같은 씨성을 하사받았다.[3] 와도 7년(714년) 11월에는 사비 신사가 망부의 부모에 대한 효도로 인해 과역을 면제받았다.[4]
참조
[1]
서적
日本書紀』巻第二十七、天智天皇4年8月条
[2]
서적
続日本紀』巻第九、聖武天皇、神亀元年5月13日条
[3]
서적
続日本紀』巻第二十七、称徳天皇、天平神護2年3月17日条
[4]
서적
続日本紀』巻第六、元明天皇、和銅7年11月4日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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