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봉은사 영산회상도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서울 봉은사 영산회상도는 1895년 제작된 불화로,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6보살, 제자, 사천왕, 금강신 등을 묘사한 작품이다. 가로로 긴 직사각형 화면에 인물들을 3열로 배치했으며, 녹색과 적색을 주조색으로 화려하고 장식적인 느낌을 준다. 화주 해옹 자선 등이 시주하고, 금어 덕월응륜 등이 제작했다. 19세기 말 불화의 양식을 잘 보여주는 수작으로 평가받아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895년 작품 - 봉은사 영산전 십육나한도
봉은사 영산전 십육나한도는 1895년 영산전 건립 당시 제작된 불화로, 십육나한을 4폭에 나누어 그린 그림이며, 일부 결실된 존자도는 1955년에 다시 그려졌고, 각 존자도에는 존자명이 적혀 있으며 심산유곡을 배경으로 나한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고, 불화 제작 관련 정보가 화기에 기록되어 있다. - 영산회상도 - 진천 영수사 영산회괘불탱
진천 영수사 영산회괘불탱은 1730년 영수사에서 조성된 영산회상도로,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보살, 제자 등을 묘사한 17세기 후반 불교 미술의 특징을 보여주는 밝고 선명한 채색과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조선 후기 불교 회화이다. - 영산회상도 - 서울 진관사 영산회상도
서울 진관사 영산회상도는 1884년 제작된 불화로 석가모니가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하며, 왕실 상궁의 발원으로 조성되어 조선 왕실의 불교 후원 전통을 보여주는 19세기 말 불화의 특징을 나타낸다. - 봉은사 - 봉은사 칠성도
봉은사 칠성도는 1895년에 조성된 불화로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여러 불교적 존재들이 묘사되었으며, 19세기 후반 서울·경기 지역 칠성도상의 특징을 계승하고 예술적,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봉은사 - 봉은사 삼장보살도
봉은사 삼장보살도는 1892년에 제작되어 봉은사에 봉안된 불화로, 천장보살을 중심으로 지지보살과 지장보살 및 권속들이 묘사되었고, 민두호가 시주하여 제작되었으며, 강한 음영법과 세밀한 필선이 특징으로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서울 봉은사 영산회상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봉은사 영산회상도 | |
![]() | |
문화재 정보 | |
이름 | 봉은사 영산회상도 |
한자 이름 | 奉恩寺 靈山會上圖 |
국가 | 서울특별시 |
유형 | 유형문화재 |
지정 번호 | 237 |
지정일 | 2007년 9월 27일 |
주소 |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73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미상 |
참고 | 미상 |
면적 | 미상 |
수량 | 1幅 |
전승지 | 미상 |
전승자 | 미상 |
지도 | 대한민국 |
꼬리표 | 서울 봉은사 |
너비 | 미상 |
대체 지도 | 미상 |
설명 | 미상 |
웹사이트 | 미상 |
문화재청 ID | 21,02370000,11 |
2. 도상 및 양식적 특징
세로 114.8cm, 가로 196.5cm 크기의 직사각형 화면에 여러 인물들을 3열로 배열하였다. 본존 석가모니는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을 하고 있으며, 이는 당시 화장사 아미타후불화(1870년), 미타사 아미타후불화(1873년)의 초본을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1]
석가모니 옆으로는 제자와 보살, 사천왕, 금강 등이 좌우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1] 최상단에는 제자들이 좌우로 나란히 서있는데, 12명의 나한들을 그렸다.[1] 나한들은 젊은 사미승에서부터 나이가 든 비구에 이르기까지 그 모습이 다양하며, 붉은색의 장삼을 입고 합장을 하거나 병, 좌고 등을 들고 있다.[1] 화면 가장자리의 2명은 8금강 중 2구를 표현한 것이다.[1]
본존의 신광 좌우로는 6보살이 본존을 향하여 나란히 서있다.[1] 본존 바로 옆에 있는 보살은 석가모니의 좌우보처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로 생각되며, 그 옆에는 각각 아미타불과 정병이 그려진 보관을 쓰고 있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그려져 있다.[1] 그리고 가장자리의 보살들은 지물이 명확하지 않아 존명을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법화경》에서 석가모니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모인 보살 중 2구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1] 보살은 모두 녹색의 두광을 지니고 붉은 색의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살이 많은 얼굴에 작은 이목구비 등 비슷한 모습이다.[1] 관음보살이 백련이 꽂힌 정병을 들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합장을 하고 있다.[1]
사천왕은 하단의 양쪽에 2구씩 큼직하게 묘사되어 있다.[1] 화면이 가로로 길어서인지 4구 모두 금색의 탁자 위에 앉아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향우측의 천왕은 비파와 검, 향좌측의 천왕은 당(幢)과 탑(塔), 용(龍)과 여의주(如意珠)를 각각 들고 있다.[1] 다른 권속들이 매우 정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데 비하여 사천왕은 과장될 정도로 몸을 굽히거나 다리를 벌리고 있어 정적인 화면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지만 천의의 휘날림이 번잡하여 다소 산만한 느낌을 준다.[1]
전체적으로 많은 인물들을 배치하면서도 위로 갈수록 인물의 크기를 작게 하여 답답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채색은 녹색과 적색이 주조색을 이루고 있으며 청색과 살색, 흰색이, 황색, 금니와 금박 등이 어우러져 화려하면서도 장식적인 느낌이 든다.[1] 필선은 철선묘를 사용하여 곧고 강한 편이며, 특히 사천왕의 얼굴에 음영법을 사용하고 수염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등 정성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하다.[1]
2. 1. 본존 석가모니불
본존 석가모니는 이중륜광(二重輪光)을 지니고 수미대좌 위 연화좌에 결가부좌한 모습이다. 나발(螺髮)의 머리는 위가 뾰족하며, 둥근 얼굴에 이마가 넓고 턱이 좁아 원만한 인상을 준다. 착의법은 우견편단으로, 대의 가장자리에는 연화문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수인은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을 하고 있는데, 이는 조선후기 불상과 불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수인을 그린 것은 화장사 아미타후불화(1870년), 서울 미타사 대웅전 아미타후불화(1873년)의 초본을 그대로 이용하여 제작하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두광은 녹색, 신광은 황색으로 아무런 무늬 없이 간단하게 처리되었다.2. 2. 제자 및 보살
이 불화는 석가모니 옆으로 제자와 보살, 사천왕, 금강 등이 좌우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1] 최상단에는 12명의 나한들이 좌우로 나란히 서 있는데, 젊은 사미승부터 나이가 든 비구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되었다.[1] 이들은 붉은색 장삼을 입고 합장하거나 병, 좌고 등을 들고 있다.[1] 화면 가장자리의 2명은 8금강 중 2구를 표현한 것이다.[1]본존 신광 좌우에는 6보살이 본존을 향해 시립하고 있다.[1] 본존 바로 옆에는 석가모니의 좌우보처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있고, 그 옆에는 각각 아미타불과 정병이 그려진 보관을 쓴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묘사되어 있다.[1] 가장자리의 보살들은 지물이 명확하지 않아 존명을 알 수 없지만, 《법화경》에서 석가모니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모인 보살 중 2구를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1] 보살들은 모두 녹색 두광과 붉은색의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얼굴 생김새가 비슷하다.[1] 관음보살이 백련이 꽂힌 정병을 들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모두 합장하고 있다.[1]
2. 3. 사천왕 및 금강
이 불화에서 사천왕은 하단의 양쪽에 2구씩 큼직하게 묘사되어 있다. 화면이 가로로 길어서인지 4구 모두 금색 탁자 위에 앉아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향우측의 천왕은 비파와 검, 향좌측의 천왕은 당(幢)과 탑(塔), 용(龍)과 여의주(如意珠)를 각각 들고 있다. 다른 권속들이 매우 정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데 비하여 사천왕은 과장될 정도로 몸을 굽히거나 다리를 벌리고 있어 정적인 화면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지만 천의의 휘날림이 번잡하여 다소 산만한 느낌을 준다.3. 제작 배경 및 화기(畵記)
이 불화는 화주(化主) 해옹 자선(海翁 慈船)과 청신녀(淸信女) 금원상행(金圓相行), 상궁(尙宮) 김청정화(金淸淨花), 이대각화(李大覺花) 등이 시주하여 제작되었다.[1] 돌아가신 은사 춘담 세은(春潭 世恩)과 남편 김재룡(金在龍), 상궁 유최□화(劉最□花) 등의 영가천도를 위한 목적이었다.[1] 금어(金魚) 덕월응륜(德月應崙), 편수(片手) 상규(尙奎), 선명(善明), 완근(玩根) 등이 제작하였다.[1]
화기(畵記)에는 제작 시기(1895년), 봉안 장소(광주 수도산 봉은사), 연화 질, 증명, 송주, 지전, 금어, 공사, 별공, 종두, 도감, 화주, 산중 질, 시주 등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1]
1895년 영산전의 불상과 좌우 보처, 나한상 등을 개금할 때 나한도 4폭, 사자도 1폭과 함께 제작된 세로 114.8cm, 가로 196.5cm의 가로로 긴 직사각형의 화면에 석가모니와 6보살, 제자, 사천왕, 금강신 등을 배치한 그림이다.[1]
화면에는 많은 인물들을 꽉 차게 표현하였으면서도 여유로운 배치와 안정감있는 신체표현, 섬세한 인물묘사와 강한 음영법, 금니를 사용했다.[1] 19세기 말 불화의 양식이 잘 드러나 있어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1]
4. 봉은사와 정치적 논란
4. 1. 명진 스님과 이명박 정부의 갈등
5. 가치 및 의의
이 불화는 1895년 영산전의 불상과 좌우 보처, 나한상 등을 개금할 때 나한도 4폭, 사자도 1폭과 함께 제작된 것이다.[1] 세로 114.8cm, 가로 196.5cm의 가로로 긴 직사각형 화면에 석가모니와 6보살, 제자, 사천왕, 금강신 등을 배치하였는데, 인물들은 3열로 가지런하게 배열하여 화면을 꽉 채우고 있다.[1] 많은 인물들을 배치하면서도 위로 갈수록 인물의 크기를 작게 하여 답답한 느낌을 주지 않으며, 섬세한 묘사와 안정감 있는 구성, 화려한 채색 등에서 높은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1]
채색은 녹색과 적색이 주조색을 이루고 있으며 청색과 살색, 흰색이, 황색, 금니와 금박 등이 어우러져 있다.[1] 보살의 두광과 붉은 천의로 인하여 다소 어두운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본존의 신광 내부를 옅은 황색으로 칠하고 사천왕이 앉아있는 탁자와 갑옷 일부, 무기 등에 금니를 설채하여 화려하면서도 장식적인 느낌이 든다.[1] 필선은 철선묘를 사용하여 곧고 강한 편이며, 특히 사천왕의 얼굴에 음영법을 사용하고 수염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등 정성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하다.[1]
화주인 해옹 자선(海翁 慈船)과 청신녀(淸信女) 금원상행(金圓相行), 상궁(尙宮) 김청정화(金淸淨花), 이대각화(李大覺花) 등이 돌아가신 은사 춘담 세은(春潭 世恩)과 남편 김재룡(金在龍), 상궁 유최□화(劉最□花) 등의 영가천도를 위해 시주하여 금어 덕월응륜(德月應崙), 편수(片手) 상규(尙奎), 선명(善明), 완근(玩根) 등이 그린 영산전의 후불탱화(영산회상도)이다.[1]
이러한 특징을 바탕으로, 19세기 말 불화의 양식을 잘 보여주는 수작으로 평가되어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 및 관리되고 있다.[1]
참조
[1]
간행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및 문화재자료 지정
http://event.seoul.g[...]
서울특별시장
2007-09-27
[2]
간행물
서울특별시 지정 문화재 지정명칭 변경
http://event.seoul.g[...]
서울특별시장
2009-06-04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