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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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1952년 북한 공산 정권에 의해 해체된 톡원과 옌지 수도원의 한국인 수도자들이 대한민국 왜관에 설립한 수도원이다. 1909년 서울에 파견된 독일 상트오틸리엔 수도자들에 의해 시작된 한국 베네딕도회의 역사와 한국 전쟁 전후의 시련을 거쳐 설립되었다. 1955년 수도원이 완공되었으며, 1964년 수도원으로 승격되었다. 기도와 노동을 중시하며, 분도출판사 운영, 사도직 활동, 피정 시설 운영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서울, 부산, 뉴저지 등 여러 분원을 두고 있으며, 2011년 기준 111명의 종신 서원 수도자가 소속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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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 |
---|---|
기본 정보 | |
![]() | |
공식 명칭 | 왜관수도원 |
다른 이름 | 성 마우로와 성 플라치도 수도원 |
소속 수도회 | 성 오틸리엔 선교 베네딕도 수도회 성 베네딕도회 |
위치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
일반 정보 | |
설립일 | 1952년 7월 6일 |
소속 교구 | 대구대교구 |
설립자 | 팀 모테오 비터리 신부 |
아빠스 | 박현동 블라시오 |
원장 | 박안셀모 |
표어 |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 |
회원수 | 138명 (2014년 기준) |
시설 | |
주요 시설 | 왜관 본원과 6개 분원(서울, 부산, 화순, 금남, 미국 뉴저지 뉴튼) |
기타 시설 | 분도출판사 순심교육재단 분도빌딩(서울 장충동) 명상의 집(부산) 서울 피정의 집 왜관 피정의 집 금속공예실 스테인드글라스 공예실 분도가구공예사 |
웹사이트 | 왜관수도원 공식 웹사이트 |
2. 역사적 배경
1909년 독일 상트오틸리엔 수도원 소속 수도자 2명이 서울에 파견되어 백동수도원에서 한국 수도생활을 시작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에도 덕원수도원과 만주 연길 수도원을 중심으로 선교 및 문화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그러나 한국 전쟁 전후 북한 공산 정권의 박해로 큰 시련을 겪게 되었고, 많은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희생되었다. 1952년 7월 6일 베네딕도회 덕원수도원과 옌지 수도원 수도자들은 경상북도 왜관읍에 현재의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2. 1. 한국 베네딕도회의 시작과 시련
1909년 독일 상트오틸리엔 수도원 소속 수도자 2명이 서울에 파견되면서 한국 베네딕도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13] 이들은 백동수도원에서 한국 수도생활을 시작했고, 일제강점기에도 덕원수도원과 만주 연길 수도원을 중심으로 선교 및 문화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그러나 한국 전쟁 전후 북한 공산 정권의 박해로 큰 시련을 겪게 된다. 많은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희생되었으며, 2009년 이들에 대한 시복 소송이 시작되었다.[13]2. 2. 왜관 수도원의 설립과 성장
1952년 7월 6일 군사분계선 이북 지역에 있던 베네딕도회 덕원수도원과 중국에 있던 베네딕도회 옌지 수도원 수도자들이 월남하여 경상북도 왜관읍 현재 터에 수도원을 설립하였다.[13]성 오틸리엔 선교 베네딕토회의 톡원과 옌지에 있던 수도원들은 중국과 북한에서 공산주의가 부상하면서 해체되었다. 많은 수의 독일인, 한국인, 스위스인 수도사들이 강제 수용소에 수감되었고, 그 중 일부는 처형되었다. 생존한 26명의 한국인 수도사들은 대한민국으로 피신했다. 부산에서 그들이 초창기 수도 공동체를 형성했다는 소식을 들은 성 오틸리엔의 대수도원장 크리소스토무스 슈미트(Chrysostomus Schmid)는 당시 미국 뉴저지주 뉴턴 인근의 성 바오로 수도원에 거주하던 스위스 출신 선교 베네딕토회 수도사 티모시 비터리(Timothy Bitterli) 신부에게 한국 수도 공동체를 돕도록 지시했다.
비터리 신부는 1952년에 도착하여 대구에서 한국인 수도사들을 만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동체는 왜관에 부지를 구입했고, 1955년에 수도원이 완공되었다. 이 무렵 톡원의 성 베네딕토 수도원과 옌지의 성 십자가 수도원에서 봉사했던 여러 독일 및 스위스 출신 수도사들이 선교 사도직을 계속 수행하기 위해 동아시아로 돌아왔다.[1]
1956년까지 수도원은 비터리의 지도 아래 단순 수도원으로 승격되었다. 1964년 2월 17일, 수도원은 수도원이 되었다. 이때 오도 하스(Odo Haas) 신부가 공동체의 초대 아빠스로 선출되었다. 하스 아빠스 재임 기간 동안 부산과 대구에 분원이 설립되었다. 1971년, 하스 아빠스의 뒤를 이어 플라시두스 리(Placidus Ri) 신부가 수도원장이 되었는데, 이는 선교 베네딕토회 수도원의 첫 아시아인 출신 지도자가 되었다. 플라시두스 아빠스 재임 기간 중 1975년에 새로운 수도원 교회가 건설되었고, 수도원의 인쇄 및 출판 사업이 확장 및 현대화되었다. 또한 플라시두스 아빠스는 왜관 수도원의 서울 재단을 확장하여 성직자들을 위한 공부방에서 피정 센터와 왜관 출판사의 지점까지 포함하도록 했다. 1985년, 왜관 수도원 수도사들은 필리핀의 디고스에 있는 초창기 수도 공동체를 돕기 위해 파견되었다.[2]
3. 주요 활동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의 주요 활동은 '기도와 노동'을 중심으로 하는 수도 생활과 출판, 교리 교육, 교육, 피정, 사회 사업 등의 사도직 활동으로 나뉜다. 이러한 활동들은 성 베네딕도회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와 교회에 기여하고 있다.
3. 1. 기도와 노동 (Ora et Labora)
성 베네딕도회는 노동과 기도를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모든 수도자가 한 가지 이상 노동한다.[3] 분도출판사를 직영하여 평신도 직원들과 수도자들이 함께 일한다. 그 외에도 성당의 성물이나 가구를 제작하는 분도목공예사와 금속공예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양초 공예실, 조각실,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실 등이 있다. 또한 인근의 논에서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쌀농사를 짓고 있다. 성 베네딕도회에서 생산되는 세공품은 수도자들이 손으로 직접 만든 물건이기에, 타사에서 판매되는 성물보다 가격이 비싸지만 품질은 좋은 편이다.3. 2. 사도직 활동
- 출판 — 옌지와 덕원 시절부터 인쇄는 수도사들의 주요 사도직이었다. 초창기에는 연간 몇 권의 책만 인쇄되었으나, 1990년에는 매년 평균 50권의 신간과 60권의 재판이 인쇄되었다. 왜관 출판사에서는 김지하의 시집과 이해인 (수녀)|이해인한국어 수녀의 작품을 출판했다. 또한 사회 정의와 인권에 관한 책 제작에도 노력을 기울였다.[3]
- 교리 교육 — 선교 베네딕토회의 정신에 따라, 왜관 수도원의 수도사들은 교리 교육 활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관련 시청각 자료 제작 외에도, 1986년 1월 수도사들은 교리 통신 교육 과정을 시작했다. 3년 안에 이 과정은 완전히 전산화되었고 104,000명 이상의 예비신자와 관심 있는 가톨릭 신자들이 등록했다.
- 교육 — 왜관의 수도사들은 교육에도 관여해 왔다. 1969년에 설립된 대구의 신학원은 수녀와 평신도를 위한 포괄적인 2년 과정을 제공한다. 수도사들은 수도 서원을 하기 전에 이 신학원을 거쳐야 한다. 1955년부터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왜관 순심 학교는 약 2000명의 학생이 있었으나,[4] 1983년에는 정부의 교육 정책으로 인해 부설 소신학교가 폐쇄되었다.[5]
- 피정 — 왜관 수도원은 세 곳의 피정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수도원 자체에 있는 대규모 피정 수련원은 매년 약 2300명의 피정 참가자를 수용한다. 매년 부산에 있는 피정 수련원은 약 8000명의 손님을 맞이한다. 또한 서울에도 피정 센터가 있다.
- 사회 사업 — 수도사들은 산업 근로자를 돕기 위해 1974년 공업 도시인 구미에 "노동자 집"을 설립했다. 이곳에서 수도사들은 결혼 준비, 전통 한국 문화, 도자기, 서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강좌를 가르친다. 사회 정의와 노동 권리에 대한 가톨릭 가르침에 대한 교육도 제공된다. 수도원의 목공과 농업 사업은 많은 수의 평신도를 고용한다.[6]
4. 수도원 시설
2007년 수도원 구관 건물 화재로 선배 수도자들의 유품 등 수도원 역사가 담긴 물품들이 피해를 보았으나, 대한민국 천주교의 도움으로 2009년 복구되었다.[15][16] 2010년에는 독일 얀 오르간 회사에서 제작한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었다.
4. 1. 수도원 건물
2007년 4월 6일 오전 1시 30분경, 수도원 구관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조속한 진압으로 인명 피해는 없었다.[15] 단순 피해액은 1억원에 그치지만, 선배 수도자 유품인 개인 소장품, 성물, 서적, 사진, 앨범 등 수도원 역사가 담긴 물품들의 피해가 컸다. 이에 대한민국 천주교 내부에서 복구를 돕자는 여론이 일어나 많은 천주교인이 관심을 기울여서 2009년 8월 복구를 마쳤다.[16]4. 2. 수도원 오르간
2010년, 독일 얀 오르간 회사(Jann Orgelbau)에서 3단 건반, 총 41 레지스터(아래 표에서 Koppel 및 Tremulant 제외) 규모의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하였다.Pedal | Manual Ⅰ (Hauptwerk) | Manual Ⅲ (Schwellwerk) | Manual Ⅱ (Positiv) |
---|---|---|---|
5. 분원 및 부속 수도원
왜관수도원의 많은 수도자들은 여러 부속 수도원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 중 남양주 성 요셉 수도원은 1998년에 단순 프라이어리로 승격되었다. 뉴저지주 세인트 폴 수도원의 "뉴턴 II" 공동체는 원래 수도원의 감소하는 수도자 수를 대체하여 2004년에 단순 프라이어리로 승격되었다.[7]
수도원 이름 | 관할 교구 | 설립 연도 | 비고 |
---|---|---|---|
서울 성 베네딕도 수도원 | 천주교 서울대교구 | 1958년 | 클레멘스 인 신부, 수도자 10명 |
남양주 성 요셉 수도원 | 천주교 의정부교구 | 1987년 | 1998년 단순 프라이어리로 승격; 프란치스코 이 신부, 수도자 10명 |
부산 성 베네딕도 수도원 | 천주교 부산교구 | 1967년 | 모세 정 신부, 수도자 6명 |
대구 성 요한 세례자 수도원 | 천주교 대구대교구 | 1969년 | 바실리오 김수영 신부, 수도자 2명 |
금남 성 베네딕도 노인 마을 | 천주교 대구대교구 | 1992년 | 알렉산데르 김 수사, 수도자 3명 |
세인트 폴 수도원, 뉴턴 II | 천주교 파터슨교구 | 2002년 | 2004년 단순 프라이어리로 승격; 사무엘 김 신부, 수도자 14명 |
화순군 | 천주교 광주대교구 | 로무알도 허성석 신부, 수도자 5명 |
6. 수도 공동체
2011년 5월 18일 기준으로, 왜관 수도원에는 111명의 종신 서원 수도자 (그 중 46명은 가톨릭 사제)가 소속되어 있었다. 당시 수도원에는 17명의 유기 서원 수도자, 2명의 수련자, 1명의 봉헌자, 그리고 10명의 지원자도 있었다.[8]
현재 수도 공동체의 수도원장은 아빠스 시몬 베드로 리 신부이다. 그는 2001년 8월 23일에 선출 및 확정되었고, 2001년 9월 11일에 아빠스 축복을 받았다. 시몬 아빠스는 왜관의 네 번째 아빠스이다. 그는 원장 폴리카르포 김 신부와 부원장 안드레아 전 형제의 도움을 받아 직무를 수행한다.[9]
7. 수도원의 일과
시간 | 일과 |
---|---|
05:00 (일요일 06:00) | 기상 |
05:20 (일요일 06:20) | 독서의 기도, 아침기도 |
06:00 | 성서 묵상 |
06:30 (목요일 저녁 6시; 일요일 10:30 그레고리오 성가 미사) | 미사 |
07:10 | 아침식사 |
08:00 | 노동 |
11:45 | 낮기도 |
12:00 | 점심 식사 |
13:00 | 노동 |
17:30 | 성체조배 |
18:00 | 저녁기도 |
18:30 | 성서독서(렉시오 디비나) |
19:00 | 저녁식사 |
19:30 | 저녁 공동 휴게 |
20:00 | 끝기도 |
참조
[1]
서적
The Benedictine Congregation of St. Ottilien
EOS Verlag
[2]
서적
The Benedictine Congregation
[3]
서적
The Benedictine Congregation
[4]
서적
Schematismus
[5]
서적
The Benedictine Congregation
[6]
서적
The Benedictine Congregation
[7]
서적
Schematismus
[8]
서적
Schematismus
[9]
서적
Schematismus
[10]
서적
The Benedictine Congregation
[11]
서적
The Benedictine Congregation
[12]
서적
Schematismus
[13]
뉴스
20세기 한국 순교자 첫 시복재판
http://www.pbc.co.kr[...]
평화신문
2010-01-03
[14]
뉴스
하느님 밭의 소작인으로 복음 전하겠습니다
http://www.pbc.co.kr[...]
평화신문
2014-03-30
[15]
뉴스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화재 다행히 인명피해 없어
https://news.naver.c[...]
뉴시스
2007-04-06
[16]
뉴스
화마가 할퀸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2년 만에 '봄기지개'
http://www.imaeil.co[...]
매일신문
2009-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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