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준
1. 개요
쇼준은 1873년 류큐 왕국의 쇼타이 왕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류큐 처분 이후 도쿄에서 성장했으며, 오키나와로 귀향하여 류큐 신보 설립, 오키나와 은행 설립, 모모바루 농원 설립 등 근대화에 기여했다. 귀족원 남작 의원을 지냈으며, 1945년 오키나와 전투에서 사망했다. 그는 명필이자 문화예술 애호가였으며, 특히 아와모리에 조예가 깊었고, 미식가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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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큐국 사람 -
쇼텐 (1864년)
쇼 텐은 류큐 왕국의 마지막 국왕의 장남으로 류큐 왕세자였으며, 류큐 처분 이후 도쿄로 이주하여 일본 귀족원 의원을 역임하다가 슈리에서 사망했다. -
류큐국 사람 -
오야케 아카하치
오야케 아카하치는 15세기 말 류큐 왕국에 반기를 든 야에야마 제도의 호족으로, 이시가키 섬을 중심으로 독립을 시도했으나 류큐 왕국에 의해 진압되었으며, 류큐 왕국에서는 반역자로, 이시가키 섬에서는 영웅으로 여겨진다. -
훈4등 욱일소수장 수훈자 -
마쓰모토 레이지
마쓰모토 레이지는 《은하철도 999》, 《우주전함 야마토》 등 SF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일본의 만화가로, 고단샤 출판문화상, 쇼가쿠칸 만화상 등을 수상하며 SF 애니메이션 분야에 큰 업적을 남겼으며, 2023년 급성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
훈4등 욱일소수장 수훈자 -
노구치 히데요
노구치 히데요는 1876년 일본에서 태어나 2살 때 화상을 입었지만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미국에서 매독과 황열병 연구를 수행하며 매독 스피로헤타를 발견하는 등 업적을 남겼지만 황열병으로 사망한 세균학자이다. -
1945년 사망 -
존 커틴
존 커틴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정치가이자 노동당 소속 총리로, 제2차 세계 대전 중 일본에 독자적으로 선전포고하고 미국과의 동맹 강화, 징병제 도입, 사회 복지 제도 확대 등의 정책을 추진했다. -
1945년 사망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20세기 중반 대공황과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 미국의 32대 대통령을 4번 연임하며 뉴딜 정책으로 경제 회복과 사회 안정을 추구하고, 연합국을 이끌어 추축국에 맞서 승리하며 전후 국제 질서 형성에 기여했다.
2. 생애
쇼준은 1873년 5월 2일(음력 4월 6일) 쇼타이 왕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류큐 처분으로 류큐 왕국이 멸망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도쿄로 상경했다. 1892년 형 쇼인과 함께 오키나와로 귀향한 후, 1893년 류큐 신보를 창립하고 1899년 오키나와 은행을 설립하는 등 오키나와의 근대화에 기여했다. 모모바루 농원을 설립하여 파인애플 등 여러 아열대 식물을 오키나와에 도입하기도 했다. 1904년 귀족원 남작 의원으로 선출되었으나, 1915년 사직했다. 1945년 오키나와 전투에서 본인과 가족 일부가 사망했다. 향년 72세.
2.1. 출생과 성장
1873년 5월 2일(음력 4월 6일) 쇼타이 왕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마츠카와 아지이다. 마츠야마 왕자, 마츠야마 고텐(마치야마 우둔) 등으로 불렸다. 류큐 처분으로 류큐 왕국이 멸망하면서, 7세 때 아버지와 함께 도쿄로 상경했다.
2.2. 오키나와 귀향과 근대화 노력
1892년 20세에 형 쇼인과 함께 오키나와로 귀향했다. 그 후 다음 해인 1893년 오타 조시키, 고데쿠 조이, 도미구스쿠 세이와, 다카미네 조쿄 등과 함께 류큐 신보를 창립하여 오키나와 언론 발전에 기여했다. 1899년에는 오키나와 은행을 설립하여 오키나와 경제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모모바루 농원을 설립하여 파인애플 등의 과수, 관상용 식물 등을 오키나와에 도입했다.
4.1. 문화예술 애호가
쇼준은 명필로 알려져 있으며, 건축가 이토 주타, 화가 후지타 츠구하루, 민예가 야나기 소에츠, 도예가 가와이 간지로 등과 교류하였다. 미식가로도 유명하여, 후년에 "경이로운 미식가", "미식 남작" 등으로 불렸다. 특히 아와모리에 대한 조예가 깊어, 그의 유고집에서도 아와모리에 대해 많은 언급을 하고 있다. 같은 유고집에서 "슈리성 인도·인물 군상"이라는 제목으로 슈리성 인도에 대해 당시 6세였던 추억, 마츠다 미치유키를 본 추억, 그 당시 아버지 쇼타이의 태도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4.2. 미식가
미식가로도 유명하여 "경이로운 미식가", "미식 남작" 등으로 불렸다. 특히 아와모리에 대한 조예가 깊어, 그의 유고집에서도 아와모리에 대해 많은 언급을 하고 있다. 이토 주타, 후지타 쓰구하루, 야나기 소에츠, 가와이 간지로 등과도 교류하였다.
4.3. 슈리성 회고
유고집에서 首里城引渡し・人物群像일본어이라는 제목으로, 슈리성 인도에 대해 당시 6세였던 추억, 마츠다 미치유키를 본 추억, 그 당시 아버지 쇼타이의 태도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5. 가훈
尚順일본어 가문의 가훈은 다음과 같다.
: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라.
: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라.
: 남들보다 더 맛있는 음식을 먹어라.
: 남들보다 더 예쁜 옷을 입어라.
: 남들보다 더 즐겁게 놀아라.
6. 친족
가독은 쇼준의 차남 쇼세이가 이었다. 쇼세이는 남동생(쇼준의 여섯째 아들) 쇼센에게 재산 관리를 부탁했고, 쇼센은 형을 대신하여 마츠야마 고텐의 재산을 관리했다. 쇼센은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모모바루 농원의 부흥에 착수했다. 쇼센의 아내는 류큐 대학 명예교수인 쇼 히로코이다. 쇼세이의 장남 쇼 아츠시(모모바루 농원 사장)가 마츠야마 고텐의 재산을 물려받았다. 쇼세이의 장녀는 백광진굉회 제2대 회장인 서원사 창미이다.
쇼준의 여섯째 딸 지명무자는 『마츠야마 고텐의 나날』을 저술했다. 1917년에 태어난 지명무자는 1938년에 슈리의 옛집인 지명가에 시집을 갔고, 대만으로 부임했다. 전후에 오키나와로 귀향하여 삼남 일녀를 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