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치오 비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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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파치오 비탈레는 이탈리아 파시즘이 추구한 생존권 개념으로, 독일 나치즘의 레벤스라움과 유사하게 이탈리아의 식민지 확장을 정당화하는 이념이었다. 베니토 무솔리니는 정복된 민족의 집단 학살 대신 이탈리아 인종을 우월한 문명의 전달자로 제시하며 식민지화를 추진했다. 스파치오 비탈레는 동남유럽과 북아프리카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영토 확장을 목표로 했으며, 유럽과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유라프리카' 구상을 통해 지중해 지배 및 아프리카 식민지와의 통합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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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진군은 1922년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끄는 파시스트들이 로마로 진군하여 권력을 장악한 사건으로, 이탈리아의 사회적 혼란 속에서 파시즘 세력을 확장한 무솔리니가 국왕으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아 파시스트당이 정권을 잡는 계기가 되었다. - 이탈리아 파시즘 - 이탈리아 제국
이탈리아 제국은 19세기 말 이탈리아 통일 후 유럽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에 참여하여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일부를 지배했으나, 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며 식민지를 상실하고 해체된 제국주의의 팽창과 몰락 사례이다. - 추축국 - 나치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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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치오 비탈레 | |
---|---|
스파치오 비탈레 | |
정의 | 이탈리아 파시스트의 팽창주의 정치적 프로젝트 |
의미 | '생존 공간' |
역사적 맥락 | |
어원 | 레벤스라움(Lebensraum)에서 유래 |
개념 발전 | 이탈리아 파시즘에서 "생존에 필수적인 영토"를 의미하는 정치적 목표로 발전 |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목표 | 이탈리아 제국의 확립 지중해와 북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 확대 알프스 산맥에서 인도양까지 이탈리아의 영향력 확보 |
핵심 지역 | |
목표 지역 | 지중해 전체 (마레 노스트룸) 북아프리카 발칸 반도 소아시아 |
포함 국가 | 이탈리아 그리스 튀르키예 알바니아 유고슬라비아 이집트 이라크 키프로스 |
관련 개념 | |
마레 노스트룸 (Mare Nostrum) | 지중해를 "우리의 바다"로 간주하는 고대 로마의 개념 |
레벤스라움 (Lebensraum) | 독일의 "생존 공간" 개념, 스파치오 비탈레의 이론적 배경 |
같이 보기 | |
관련 항목 | 이탈리아 제국 대이탈리아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파시즘 민족주의 제국주의 레벤스라움 |
2. 이념적 특징
이탈리아 파시즘의 정치 철학에서 이탈리아의 식민지 확장을 정당화하는 ''스파치오 비탈레''는 독일 나치즘의 ''레벤스라움'' 개념에 해당했다.[1] 그러나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스파치오 비탈레''는 이탈리아 인종을 우월한 문명의 수호자이자 전달자로 제시하며, 정복된 민족의 집단 학살을 수반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유럽에서 이탈리아의 ''스파치오 비탈레''는 동남유럽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이탈리아는 1941년, 여러 국가를 포함하는 동남유럽에서의 ''그란데 스파치오'' 확장 계획을 정의했다.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목재, 소 떼, 광물 자원 때문에, 세르비아는 축소된 영토와 광물 자원(특히 보르의 구리) 때문에 ''스파치오 비탈레''에 포함될 예정이었다. 불가리아는 에게해 출구 확보, 유채, 콩, 와인 생산 및 크롬 매장량으로 인해 이탈리아와 주요 무역 파트너가 될 예정이었다. 그리스는 천연 자원 개발과 철강 산업 개발을 지원받고, 이탈리아는 그리스와의 무역으로 이익을 얻는 방식으로 포함될 예정이었다.[1]
헝가리는 강 항구, 관광, 농업 기계, 전기 제품, 제약 및 목재 생산으로 인해, 루마니아는 무솔리니와 이탈리아 참모총장 알베르토 파리아니가 추진한 계획의 대상이었다.[2] 파리아니는 1939년, 루마니아에 대한 이탈리아의 군사 개입으로 트란실바니아를 헝가리에, 남 도브루자를 불가리아에 양도하고, 이탈리아군이 유고슬라비아를 거쳐 루마니아의 유전을 점령하여 소련의 발칸 반도 진출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2]
아프리카에서 ''스파치오 비탈레''는 북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의 광대한 영토를 포함하려 했다. 파시스트 정권은 현대 이탈리아를 로마 제국의 계승자로 간주하고, 북아프리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이 지역에 대한 역사적인 로마의 지배를 선례로 활용했다.[3] 북아프리카 해안선은 파시스트들의 지중해 지배 및 통제를 위한 ''마레 노스트럼''의 전략적 중요성을 띄었다.[3]
파시스트 정권은 유럽과 아프리카의 정치적, 경제적 연결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하며, 때로는 이 두 지역을 "유라프리카"로 통칭하기도 했다.[3] 이탈리아는 아프리카 식민지인 리비아를 통해 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로 뻗어나가는 가상의 철도 노선과 수력 발전 네트워크를 표시한 지도를 제작하여, 이탈리아 본토와 아프리카 영토를 더욱 긴밀하게 통합하려는 제안을 했다.[3]
2. 1.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문명화 사명
이탈리아 파시즘에서 이탈리아의 식민지 확장을 정당화하는 '스파치오 비탈레' 개념은 독일 나치즘의 레벤스라움 개념과 유사했다.[1] 그러나 베니토 무솔리니가 제안한 '스파치오 비탈레'는 정복된 민족의 집단 학살을 수반하지 않았으며, 이탈리아 인종을 우월한 문명의 수호자이자 전달자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스파치오 비탈레'의 이념적 목적은 정복된 민족을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식민지로 문명화하기 위해 혁명적 파시즘을 수출하여 토착 정치 체제를 대체하는 것이었다.
파시스트 사상가 주세페 보타이는 '스파치오 비탈레'의 역사적 사명이 고대 로마의 그것과 같았으며, 새로운 로마, 즉 이탈리아 제국은 "그들의 예술로 세계를 밝히고, 그들의 지식으로 교육하고, 그들의 행정 기술과 능력으로 새로운 영토에 강력한 구조를 부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로마의 패권적 통치하에 정복된 민족은 이탈리아 제국 내에서 그들의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1]
파시스트 정권은 이탈리아의 '스파치오 비탈레' 달성은 단기, 중기, 장기의 세 단계로 나뉠 것이라고 선언했다.[1] 이 일정은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인해 가속화되었다.[1]
3. 유럽에서의 확장 계획
이탈리아 파시즘의 생존권 개념은 이탈리아인만 거주하는 소권역(''piccolo spazio'')과 이탈리아 식민 제국이 들어설 대권역(''grande spazio'')으로 나뉘었다.[7] 이탈리아의 ''스파치오 비탈레''는 유럽에서 동남유럽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3. 1. 동남유럽 국가들에 대한 계획
이탈리아의 ''스파치오 비탈레''는 동남유럽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이탈리아는 여러 국가를 포함하는 동남유럽에서의 ''그란데 스파치오'' 확장을 단기 계획으로 삼았다. 1941년, 이탈리아는 이러한 계획을 정의했다.[1]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목재 자원, 소 떼, 풍부한 탄소, 갈탄, 철, 구리, 크롬, 망간, 황철광, 안티몬, 수은 매장량 때문에 이탈리아에게 가치가 있었다. 세르비아는 영토적으로 "실질적인 비율로 축소"된 후, 그 광물 자원, 특히 보르의 구리 매장량이 ''스파치오 비탈레'' 안에 포함될 예정이었다. 불가리아는 에게해로의 "정당한" 출구를 확보한 후 지중해의 ''스파치오 비탈레''에 통합될 예정이었으며, 유채와 콩 생산, 와인 생산 및 크롬 매장량으로 인해 이탈리아와 주요 무역 파트너가 될 예정이었다. 그리스가 포함될 예정이었으며, 이탈리아는 그리스의 천연 자원 개발을 돕고 달성되지 못한 철강 산업을 개발할 예정이었다. 그리스는 이탈리아와의 무역으로 이익을 얻고, 이탈리아는 이러한 자원에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었다.[1]
헝가리는 강 항구, 관광, 대규모 농업 기계, 전기 제품, 제약 및 목재 생산으로 인해 포함될 관심 대상이었다. 루마니아는 무솔리니와 이탈리아 참모총장 알베르토 파리아니가 추진한 계획에 포함된 이탈리아의 야망의 대상이었다.[2] 1939년, 파리아니는 루마니아에 대한 이탈리아의 지원을 받는 군사 개입이 루마니아가 트란실바니아를 헝가리에, 남 도브루자를 불가리아에 양도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2] 파리아니는 헝가리 관리들과의 논의에서 이탈리아군이 유고슬라비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여 루마니아의 유전을 점령하고 소련의 발칸 반도 진출을 막기 위해 유고슬라비아 영토를 건너갈 수 있다는 무솔리니의 주장을 반복했다.[2]
3. 2. 루마니아에 대한 군사 개입 계획
1939년, 이탈리아 참모총장 알베르토 파리아니는 루마니아에 이탈리아가 지원하는 군사 개입을 할 경우, 루마니아가 트란실바니아를 헝가리에, 남 도브루자를 불가리아에 양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2] 파리아니는 헝가리 관리들과의 논의에서 베니토 무솔리니의 주장을 반복했는데, 이탈리아군이 유고슬라비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여 루마니아의 유전을 점령하고 소련이 발칸 반도로 진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유고슬라비아 영토를 건너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2]4. 아프리카에서의 확장 계획
이탈리아 파시즘의 생존권 개념에서, 이탈리아인들만 거주하는 소권역(''piccolo spazio'')과 이탈리아 식민 제국이 들어설 대권역(''grande spazio'')으로 나뉘는 영토 확장이 구상되었다.[7] 이탈리아의 아프리카에서의 ''스파치오 비탈레''는 북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의 광대한 영토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4. 1. 북아프리카에 대한 영유권 주장
파시스트 정권은 현대 이탈리아를 로마 제국의 계승자로 간주하고, 북아프리카에 대한 역사적인 로마의 지배를 근거로 이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했다.[3] 북아프리카 해안선은 파시스트들의 지중해 지배 및 통제를 위한 야망인 ''마레 노스트럼''에 전략적으로 중요했다.[3]파시스트 정권은 유럽과 아프리카의 정치적, 경제적 연결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하며, 때로는 이 두 지역을 "유라프리카"로 통칭하기도 했다.[3] 이러한 입장의 일환으로, 정권은 이탈리아의 아프리카 식민지인 리비아를 통해 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로 뻗어나가는 가상의 철도 노선과 수력 발전 네트워크를 표시한 지도를 제작하여 이탈리아의 아프리카 영토와 이탈리아 본토를 더욱 긴밀하게 통합하려는 제안을 했다.[3]
4. 2. 유라프리카 구상
아프리카에서 ''스파치오 비탈레''는 북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의 광대한 영토를 포함하려 했다. 현대 이탈리아를 로마 제국의 계승자로 간주한 파시스트 정권은 이 지역에 대한 역사적인 로마의 지배를 선례로 활용하여 북아프리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했다.[3] 북아프리카의 해안선은 파시스트들의 지중해 지배 및 통제를 위한 야망인 ''마레 노스트럼''에 전략적 중요성을 띄었다.[3]파시스트 정권은 유럽과 아프리카의 정치적, 경제적 연결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때로는 이 두 지역을 "유라프리카"로 통칭하기도 했다.[3] 이러한 입장의 일환으로, 정권은 이탈리아의 아프리카 식민지인 리비아를 통해 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로 뻗어나가는 가상의 철도 노선과 수력 발전 네트워크를 표시한 지도를 제작하여 이탈리아의 아프리카 영토와 이탈리아 본토를 더욱 긴밀하게 통합하려는 제안을 했다.[3]
5. 계획된 영토 범위
스파치오 비탈레로 실현될 제국의 영토 확장은 대서양에서 인도양까지, 지중해와 북아프리카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이탈리아 파시즘의 생존권은 이탈리아인만 거주하는 소권역(''piccolo spazio'')과, 이탈리아 식민 제국이 들어설 대권역(''grande spazio'')으로 나뉘었다.[7]
유럽에서 이탈리아의 ''스파치오 비탈레''는 동남유럽을 포함했다. 1941년 이탈리아는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불가리아, 그리스, 헝가리, 루마니아 등을 포함하는 ''그란데 스파치오'' 확장 계획을 구체화했다.[1] 각 지역별 주요 자원 및 이탈리아와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지역 | 주요 자원 및 이탈리아와의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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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목재, 소 떼, 탄소, 갈탄, 철, 구리, 크롬, 망간, 황철광, 안티몬, 수은 |
세르비아 | 광물 자원 (특히 보르의 구리 매장량) |
불가리아 | 에게해 출구 확보, 유채, 콩, 와인, 크롬 생산으로 이탈리아와 주요 무역 파트너가 될 예정 |
그리스 | 천연 자원 개발, 철강 산업 개발 (이탈리아 지원), 무역을 통해 이탈리아는 자원 접근, 그리스는 무역 이익 |
헝가리 | 강 항구, 관광, 농업 기계, 전기 제품, 제약, 목재 |
루마니아 | 트란실바니아 (헝가리에 양도), 남 도브루자 (불가리아에 양도), 유전 (이탈리아 군사 개입 가능성)[2] |
아프리카에서 ''스파치오 비탈레''는 북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의 광대한 영토를 포함하려 했다. 파시스트 정권은 현대 이탈리아를 로마 제국의 계승자로 간주하고, 북아프리카에 대한 역사적인 로마의 지배를 근거로 영유권을 주장했다.[3] 북아프리카 해안선은 지중해 지배 야망인 ''마레 노스트럼''에 전략적으로 중요했다.
파시스트 정권은 유럽과 아프리카의 정치적, 경제적 연결을 강조하며 "유라프리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3] 이탈리아는 아프리카 식민지인 리비아를 통해 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로 뻗어나가는 철도 및 수력 발전 네트워크 지도를 제작하여 본토와의 통합을 강화하려 했다.
참조
[1]
서적
Fascism's European Empire: Italian Occupation During the Second World War
Cambridge University Press
[2]
서적
European Neutrals and Non-Belligerents During the Second World War
Cambridge University Press
[3]
서적
The Power of Projections: How Maps Reflect Global Politics and History
https://archive.org/[...]
Praeger Publishers
[4]
서적
Fascism's European Empire: Italian Occupation During the Second World War
https://archive.org/[...]
Cambridge University Press
[5]
서적
Fascism's European Empire: Italian Occupation During the Second World War
https://archive.org/[...]
Cambridge University Press
[6]
문서
[7]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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