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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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두리는 길가메시 서사시에 등장하는 인물로, 여관 주인이자 신으로 추정된다. 이름의 어원은 아카드어 또는 후르리어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다양한 여신에게 적용되는 칭호로도 사용되었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고대 바빌로니아 판본에서 시두리는 길가메시에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현재의 삶을 즐기라고 조언하며, 표준 바빌로니아 판본에서는 우트나피쉬팀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시두리의 조언은 전도서와 오디세이아에 영향을 주었다는 해석이 존재하지만, 학계에서는 직접적인 연관성에 대한 논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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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두리 | |
---|---|
기본 정보 | |
이름 | 시두리 |
다른 이름 | 사비투 |
신화 | 메소포타미아 신화 |
역할 | 여관 여주인 맥주 양조자 |
관련 인물 | 길가메시 |
2. 이름과 어원
시두리(Šiduri)라는 이름은 길가메시 서사시 외 다른 표기법을 바탕으로 앤드류 R. 조지는 Šiduri(시두리)가 더 정확한 표기라고 결론 내렸다.[1] 길가메시 서사시의 고(古) 바빌로니아 단편에서는 여관 주인의 이름이 없으며, 표준 판본에서도 한 줄만이 그녀를 Šiduri라고 직접 언급한다.[2] 이름 앞에는 "신성한 결정사"인 dingir 부호가 붙어 있어, 여신으로 이해된다.
이름의 어원은 논쟁의 대상이며, 윌프레드 G. 램버트는 우르 제3왕조 시대부터 알려진 아카드어 인명 Šī-dūrī("그녀는 나의 벽(보호)")에서 파생되었을 가능성과 후르리어 단어 'šiduri'("젊은 여성")와 연관성을 제시했다. 어휘 목록에서는 'šiduri'를 아카드어 'ardatu'(젊은 여성)의 동의어로 나열한다. 앤드류 R. 조지는 아카드어 인명이 아카드어 민간어원이 부여된 후르어 차용어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게리 베크만은 하투사 단편의 후르어 및 히타이트어 번역에서 여관 주인이 Naḫmazulel 또는 Naḫmizulen이라는 후르어 이름을 가지지만, 그녀를 'šiduri'라고 부른다고 언급한다. 그는 이 용어가 별칭으로 작용, 나중에 표준 바빌로니아 버전에서 이름으로 재해석되었다고 제안한다. Naḫmazulel의 이름도 dingir 부호로 쓰여 있다.
2. 1. 이름의 표기
'시두리'라는 이름은 종종 시두리로 표기되지만, 길가메시 서사시 밖의 다른 표기법을 바탕으로 앤드류 R. 조지는 'Šiduri'(시두리)가 더 정확한 표기라고 결론 내린다.[1] 보존된 길가메시 서사시의 고(古) 바빌로니아 단편에서는 여관 주인의 이름이 없으며, 표준 판본에서도 단 한 줄만이 그녀를 Šiduri라고 직접 언급한다.[2] 그녀의 이름 앞에는 "신성한 결정사"라고 불리는 dingir 부호가 붙어 있어, 그녀를 여신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추정된다.이 이름의 어원은 논쟁의 대상이며, 현재 두 가지 이론이 타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윌프레드 G. 램버트에 따르면, 이는 우르 제3왕조 시대부터 알려진 일반적인 아카드어 인명 Šī-dūrī에서 파생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는 이를 "그녀는 나의 벽(비유적으로: 보호)"으로 해석했지만, 램버트는 두 번째 제안으로 후르리어 단어 'šiduri', "젊은 여성"과 연관시켰다. 한 어휘 목록에서는 'šiduri'라는 용어를 아카드어 'ardatu'의 동의어로 나열하며, 역시 젊은 여성을 지칭한다. 앤드류 R. 조지는 아카드어 인명이 아카드어 민간어원이 부여된 후르어 차용어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게리 베크만은 하투사의 단편에서 알려진 서사시의 후르어 및 히타이트어 번역에서 여관 주인이 평범한 후르어 이름인 Naḫmazulel 또는 Naḫmizulen을 가지고 있지만, 그녀를 'šiduri'라고 부른다고 언급한다. 그는 이 용어가 이 맥락에서 별칭으로 작용했으며, 나중에 표준 바빌로니아 버전에서 이름으로 재해석되었다고 제안한다. Naḫmazulel의 이름도 dingir 부호로 쓰여 있다.
2. 2. 다른 문헌에서의 칭호 'šiduri'
후르리안 자료에서 "시두리"라는 칭호는 알란주(헤바트의 딸), 알라니, 이쉬하라를 포함한 다양한 여신에게 적용되었다.[1]"시두리"는 ''니푸르 여왕 찬가'', 신 목록 ''안 = 아눔''(4번 태블릿, 4행), 주술 연작 ''슈르푸''에서 이슈타르의 칭호로도 확인되었다.[2] 윌프레드 G. 램버트에 따르면, 이 여신에게 이 칭호가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중 바빌로니아 시대이며, 원래는 다른 인물을 지칭했다.[2] 그는 "길가메시 서사시"에 묘사된 시두리는 이슈타르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1] "슈르푸"는 시두리를 지혜의 여신으로 언급하는데, 앤드루 R. 조지에 따르면 이는 "길가메시 서사시"와의 연관성을 나타낼 수 있다.[1]
시두리로 언급된 이슈타르의 형태는 니푸르의 E-바라두르가라 신전에서 숭배받았던 사르라트-니푸리(아카드어: "니푸르의 여왕", 수메르어 형태 웅갈-니브루도 증명됨)였다. 그녀는 카시트 시대 자료에서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사르라트-니푸리는 닌-니브루(수메르어: "니푸르의 여인", 아카드어로는 벨레트-니푸리)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이는 닌투르타의 배우자 칭호이며, 굴라 또는 니님마에게 적용될 수 있었다.
3. 길가메시 서사시에서의 시두리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시두리는 중요한 조언자 역할을 한다. 시두리는 고대 바빌로니아 판본과 표준 바빌로니아 판본에서 다르게 나타난다. 고대 바빌로니아 판본에서는 이름 없는 여관 주인으로 등장하여 길가메시에게 삶의 유한함을 받아들이고 현재를 즐기라는 카르페 디엠과 유사한 조언을 건넨다.[2] 하지만 길가메시는 이 조언을 따르지 않고 우트나피쉬팀에게 가는 길을 묻는다.
표준 바빌로니아 판본에서 시두리는 자신의 이름을 가진 인물로 등장하며, 바닷가 선술집에서 길가메시를 맞이한다.[1] 그녀는 길가메시에게 우트나피쉬팀으로 가는 험난한 여정을 안내하지만, 이전 판본과 달리 삶에 대한 직접적인 조언은 하지 않는다.
3. 1. 고대 바빌로니아 판본
길가메시 서사시의 고대 바빌로니아어 판본에는 시파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는, 시두리(Šiduri)에 해당하는 이름 없는 여관 주인이 등장한다.[1] 엔키두의 죽음을 슬퍼하던 길가메시가 이 여관 주인을 만났을 때, 여관 주인은 불멸을 추구하는 대신 인간의 운명은 죽음이므로 이 세상에서 삶을 즐기고 가정을 이루라고 조언한다.[2] 길가메시는 이 조언에 반응하지 않고, 우트나피쉬팀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 달라고 요청한다. 벤트 알스터(Bendt Alster)는 여관 주인의 조언을 ''카르페 디엠'' 주제의 최초 기록된 사례로 해석했다. 앤드루 R. 조지(Andrew R. George)는 이 구절이 쾌락주의 철학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자신은 이 추정에 동의하지 않으며, 단순히 사람이 삶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위치에 만족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주장한다. 수잔 애커먼(Susan Ackerman)은 여관 주인이 길가메시에게 슬픔을 버리고 "애도의 한계적 의식을 뒤집어 메소포타미아 사회의 정상적이고 규범적인 행동으로 돌아가라"고 촉구한다고 주장한다.최소한 같은 토판에 기록된 장면에서 태양신 샤마쉬는 길가메시에게 불멸을 향한 그의 탐구가 헛됨을 경고하는데, 샤마쉬의 조언은 나중에 여관 주인이 한 조언과 매우 유사하다.
3. 2. 표준 바빌로니아 판본
표준 바빌로니아 판본의 《길가메시 서사시》는 제10판의 첫 줄에서 시두리(Šiduri)를 소개한다.[1] 그녀는 바다 가장자리에 있는 선술집에 살며,[2] 바빌로니아 여관 주인이 흔히 하지 않는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독자들에게 더욱 신비롭게 보이게 한다. 그녀는 처음에 길가메시를 잠재적인 문제아인 거대 사냥꾼으로 오인하고 문을 막고 지붕에 숨는다. 길가메시는 처음에는 문을 치겠다고 위협했지만, 시두리가 그의 행방을 묻자 자신을 소개하고, 훔바바와 하늘의 황소를 물리친 것과 같은 다양한 업적을 묘사한다. 또한 엔키두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 때문에 좋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하고, 우트나피쉬팀에게 가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간청한다. 시두리는 그 길이 어렵고 바다와 더 멀리 떨어진 "죽음의 물"을 지나야 하며, 길가메시는 우트나피쉬팀의 뱃사공인 우르샤나비의 도움을 구해야 하고, 그의 배가 그를 목적지로 데려다줄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전 판본에서 그녀가 제공한 여행과 관련 없는 조언은 사라졌다.앤드루 R. 조지는 여관 주인이 제공한 조언의 변화가 신-레키-운닌니가 도입한 혁신 중 하나였다고 제안한다. 신-레키-운닌니는 네오-아시리아 제국의 설형 문자 텍스트 및 작가 목록에 따르면, 《길가메시 서사시》의 표준 판을 준비하는 데 책임이 있는 서기관으로 여겨진다. 훨씬 후대의 자료는 시대 착오적으로 그를 길가메시의 동시대인으로 간주하지만, 실제로는 그는 카시트 시대에 활동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4. 시두리의 조언과 그 의미
시두리는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길가메시에게 중요한 조언을 해주는 인물이다. 엔키두의 죽음으로 슬픔에 빠진 길가메시에게 인간의 유한성을 받아들이고 현재의 삶을 즐기라고 조언한다.[1]
고대 바빌로니아어 판본에서 시두리는 이름 없는 여관 주인으로 등장하며, 시파르 출신으로 추정된다.[1] 그녀는 길가메시에게 불멸을 추구하는 대신 죽음을 받아들이고 삶을 즐기며 가정을 이루라고 제안한다.[1] 벤트 알스터는 이 조언을 카르페 디엠 주제의 최초 기록으로 보았다.[2] 앤드루 R. 조지는 이 구절이 쾌락주의 철학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삶에서 주어진 위치에 만족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1] 수잔 애커먼은 시두리가 길가메시에게 슬픔을 버리고 정상적인 사회생활로 돌아가라고 촉구한다고 주장한다.
샤마쉬 역시 길가메시에게 불멸 추구의 헛됨을 경고하는데, 이 조언은 이후 여관 주인의 조언과 매우 유사하다.[1]
표준 바빌로니아어 판본에서 시두리는 바다 가장자리의 선술집에 살며,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신비로운 인물로 묘사된다. 길가메시를 처음에는 문제아로 오해하지만, 그의 업적과 슬픔을 듣고 우트나피쉬팀에게 가는 길을 안내해 준다. 하지만 이전 판본에 있던 삶에 대한 조언은 사라졌다.[1] 앤드루 R. 조지는 이러한 변화가 신-레키-운닌니의 혁신 중 하나라고 제안한다.
츠비 아부쉬는 시두리가 길가메시에게 결혼을 제안하는 세 번째 버전의 장면이 존재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본다.
4. 1. 전도서와의 연관성
길가메시 서사시의 고(古) 바빌로니아어 판에는 시파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는, 시두리에 해당하는 이름 없는 여관 주인이 등장한다. 그녀는 길가메시에게 불멸을 추구하는 대신 인간의 운명인 죽음을 받아들이고, 삶을 즐기며 가정을 이루라고 조언한다.[1] 벤트 알스터(Bendt Alster)는 이 조언을 ''카르페 디엠'' 주제의 최초 기록으로 해석했다.[2] 앤드루 R. 조지(Andrew R. George)는 이를 쾌락주의 철학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삶의 주어진 위치에 만족해야 한다는 의미로 본다.[1]시두리의 조언이 전도서 (9:7-9)에 나오는 좋은 삶에 대한 조언에 영감을 주었다는 학문적 전통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1] 이 이론은 1902년 브루노 마이스너가 처음 제시했으며, Nili Samet과 같은 일부 연구자들은 여전히 이 이론을 지지한다. 그러나 두 텍스트 사이의 직접적인 연결은 성서 연구나 아시리아학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많은 학자들은 두 구절이 단순히 "세계 문학의 공통 주제"를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앤드루 R. 조지는 두 구절의 내용이 유사하지만, 여관 주인의 조언은 고대 바빌로니아 단편에만 나타나고 서사시의 후기 버전에는 나오지 않기 때문에 직접적인 연결은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1]
4. 2. 오디세이아와의 연관성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시두리와 길가메시의 만남은 오디세이아의 키르케와 오디세우스 만남에 영감을 주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1] 이 주장을 처음 제기한 사람은 마틴 리치필드 웨스트였다.[1] 그는 시두리를 ''길가메시 서사시''에 묘사된 "이슈타르의 한 형태"라고 잘못 언급하며, 시두리와 키르케의 차이점(특히 시두리에게만 나타나는 야생 동물과의 연관성)을 설명하려 했다.[1]그러나 앤드루 R. 조지는 길가메시 신화와 ''오디세이아''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는 웨스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2] 그는 그리스 작가들이 ''길가메시 서사시''의 표준 바빌로니아 판본을 알았을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2] 오히려 그리스인들은 메소포타미아 설형 문자 텍스트와 달리 남아있지 않은 서부 페니키아 문학 전통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 과정에서 ''길가메시 서사시''의 어떤 버전이 그리스인에게 전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2] 또한 텍스트 간 유사성은 직접적인 영향보다는 공통된 신화적 요소에 의존한 결과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2]
게리 벡크먼 역시 앤드루 R. 조지와 마찬가지로 그리스 문학과 메소포타미아 문학 간의 직접적인 연관성에 회의적인 입장을 취한다.
참조
[1]
논문
On Beer and Brewing Techniques in Ancient Mesopotamia
http://www.assyriolo[...]
Supplement to the Journal of the American Oriental Society, 10
2013-09-18
[2]
서적
The Epic of Gilgamesh
Penguin Books Ltd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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