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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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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심제량은 춘추 시대 초나라의 인물로, 섭공 또는 섭윤으로 불리며 자는 자고이다. 그는 초나라의 지방관인 섭의 섭공이 되었으며, 백공 승의 난을 진압하고 초 혜왕을 복위시킨 공로로 영윤과 사마 직을 겸임했다. 심제량은 공자에게 정치에 대한 가르침을 청하고, 엽공호룡(葉公好龍) 고사의 주인공으로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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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제량 - [인물]에 관한 문서
인물 정보
이름심제량
원어 이름沈諸梁
원어 이름 (언어)zh
자고 (子高)
다른 이름섭공 (叶公), 섭공고 (叶公高)
국적초나라, 고대 중국
출생 및 사망
출생 추정 년도기원전 529년경
사망 년도기원전 478년 이후
주요 활동
직업초나라의 장군 및 재상
작위섭공, 영윤, 사마 (司馬)
기념물섭공 묘 및 사당, 허난성 예현
알려진 이유섭씨의 시조
가계
부모심윤수
기타 정보
관련 인물백공승, 자서, 공자결, 자국, 공손관

2. 가계

심윤술의 아들이다.

3. 생애

심제량은 춘추 전국 시대 초나라 인물로, 섭공(葉公) 또는 섭윤(葉尹)으로도 불린다. 자는 자고(子高)이며, 심윤술의 아들이다.[7] 기원전 506년 아버지 심윤술이 초나라 좌사마(左司馬) 겸 총사령관으로 오나라의 침공을 막다가 부사령관 낭와(자상)의 욕심으로 전사하자, 심제량은 섭(葉)의 지방관인 섭공(葉公)이 되어 엽(葉)씨의 시조가 되었다.[7]

기원전 487년 초 혜왕(楚惠王) 10년, 심제량은 영윤(令尹) 자서(子西)에게 백공 승(伯公 勝)을 귀국시키지 말라고 충고했으나, 자서는 이를 듣지 않았다. 기원전 479년 백공 승이 난을 일으켜 자서를 살해하고 혜왕을 위협하자, 심제량은 채(蔡)[8]에서 군사를 모아 진압했다. 심제량이 도성 북문에 진입할 때 잠윤(箴尹) 고(固)와 백성들의 협력으로 백공 승을 패배시키고, 산중으로 도망간 백공 승은 자살했다. 심제량은 초 혜왕을 복위시킨 뒤 영윤(재상)과 사마(司馬) 직을 겸했다. 『논어』에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가르침을 청한 기록이 있다.[9]

3. 1. 초기 활동

춘추 전국 시대 초나라 인물로, 섭공(葉公) 또는 섭윤(葉尹)으로도 불린다. 자는 자고(子高)이다. 심윤술의 아들이다.[7] 기원전 506년 아버지 심윤술이 초나라의 좌사마(左司馬) 겸 총사령관으로 초나라에 침공한 오나라를 막으려다 부사령관 낭와(자상)의 욕심으로 전쟁에서 패배하고 전사했다. 심제량은 후에 초나라의 현, 섭(葉)의 지방관인 섭공(葉公)이 되어 전세계 엽(葉)씨의 시조가 되었다.[7] 기원전 487년, 초 혜왕(楚惠王) 10년에 심제량은 일찍이 영윤(令尹) 자서(子西)에게 백공 승(伯公 勝)을 귀국시키지 말라고 충고했지만 자서는 이를 듣지 않았다. 8년 후인 기원전 479년 백공 승이 난을 일으켜 자서를 살해하고 혜왕을 위협했다. 섭공(葉公) 심제량(沈諸梁)은 채[8]에 있다가 백공이 난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군사를 모아 진압하러 갔다. 심제량이 도성 북문에서 도성 안으로 진입하려고 하자, 잠윤(箴尹) 고(固)와 나랏사람들의 협력을 얻어 백공 승을 패배시켰다. 백공 승은 산중으로 도망갔다가 목을 매어 자살했다. 초 혜왕을 복위시킨 뒤 심제량은 영윤(재상)과 사마(司馬) 직을 겸했다. 『논어』에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가르침을 청한 기록이 있다.[9]

3. 2. 백공 승의 난 진압

기원전 487년 초 혜왕(楚惠王) 10년, 심제량은 영윤(令尹) 자서(子西)에게 백공 승(伯公 勝)을 귀국시키지 말라고 충고했지만, 자서는 이를 듣지 않았다.[8] 기원전 479년, 백공 승이 난을 일으켜 자서를 살해하고 혜왕을 위협했다. 섭공(葉公) 심제량은 채(蔡)에[8]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 군사를 모아 진압에 나섰다. 심제량이 도성 북문으로 진입하려 하자, 잠윤(箴尹) 고(固)와 백성들의 협력을 얻어 백공 승을 패배시켰다. 백공 승은 산중으로 도망갔다가 목을 매어 자살했다. 심제량은 초 혜왕을 복위시킨 뒤 영윤(재상)과 사마(司馬) 직을 겸했다.[9]

3. 3. 정치적 업적

심제량은 춘추 전국 시대 초나라 인물로, 섭공(葉公) 또는 섭윤(葉尹)으로도 불린다. 자는 자고(子高)이다.[7] 기원전 487년 (초 혜왕 10년) 심제량은 영윤(令尹) 자서(子西)에게 백공 승(伯公 勝)을 귀국시키지 말라고 충고했지만, 자서는 이를 듣지 않았다. 기원전 479년 백공 승이 난을 일으켜 자서를 살해하고 혜왕을 위협하자, 심제량은 채[8]에서 군사를 모아 진압했다. 심제량이 도성 북문으로 진입할 때, 잠윤(箴尹) 고(固)와 백성들의 협력을 얻어 백공 승을 패배시켰다. 백공 승은 산중으로 도망가 자살했고, 심제량은 초 혜왕을 복위시킨 뒤 영윤(재상)과 사마(司馬) 직을 겸했다. 『논어(論語)』에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가르침을 청한 기록이 있다.[9]

4. 공자와의 일화

섭공(葉公)은 춘추시대 초나라 사람으로, 본명은 심제량(沈諸梁)이며 섭 지역의 장관이었다. 섭공은 공자와의 여러 일화로 유명하다.


  •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 섭공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는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이 찾아오게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10][11] 이는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 섭공호룡(葉公好龍): 섭공은 용을 매우 좋아했지만, 진짜 용이 나타나자 겁에 질려 도망쳤다.[12][13] 이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 무신불립(無信不立): 공자는 섭공에게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14]
  • 발분망식(發憤忘食): 섭공이 공자에 대해 묻자, 자로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훗날 공자는 자신을 "발분하면 식사도 잊는 사람"이라고 설명했어야 했다고 질책했다.[15] 이는 공자의 학문적 열정을 보여준다.
  • 정직과 인간의 정: 섭공은 아들의 고발을 정직하다고 했지만, 공자는 "아버지는 자식의 죄를 숨기는 것이 인간의 정"이라고 반박했다.[16] 이는 가족 간의 윤리와 정직에 대한 유교적 관점을 보여준다.

4. 1. 정치에 대한 문답

沈諸梁|심제량중국어은 춘추시대 초나라의 정치가로, 섭(葉) 지역의 장관이었다. 그는 공자에게 정치에 대한 질문을 던진 것으로 유명하다.

  •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 섭공이 공자에게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자, 공자는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이 찾아오게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10][11] 이는 선정(善政)을 통해 백성들을 만족시키면, 그 소문을 듣고 다른 지역의 백성들도 스스로 찾아온다는 의미이다. 당시 초나라는 식민지 건설 및 유민 포섭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섭공은 백성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고민하고 있었다. 공자의 조언은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다.[10][11]
  • 섭공호룡(葉公好龍): 섭공은 용을 매우 좋아하여 집안 곳곳에 용 그림을 그리고 용 무늬를 새겨 넣었다. 그러나 진짜 용이 나타나자 섭공은 겁에 질려 도망쳤다.[12][13] 이 이야기는 겉으로만 좋아하고 실제로는 좋아하지 않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12][13]
  • 무신불립(無信不立): 공자는 섭공과의 문답에서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고 말했다.[14]
  • 발분망식(發憤忘食): 섭공이 공자에 대해 묻자, 자로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훗날 공자는 자로에게 "발분하면 식사도 잊고, 즐거움에 근심도 잊으며, 늙음이 닥쳐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설명했어야 했다고 질책했다.[15]
  • 정직과 인간의 정: 섭공은 아버지가 양을 훔친 것을 관청에 고발한 아들을 정직하다고 칭찬했다. 그러나 공자는 "아버지는 자식의 죄를 숨기고, 자식은 아버지의 죄를 숨기는 것이 인간의 정"이라며, 진정한 정직은 인간의 정에서 나온다고 반박했다.[16]

4. 2. 섭공호룡(葉公好龍)

葉公好龍|섭공호룡중국어은 겉으로는 좋아하지만 속으로는 좋아하지 않거나, 실제로는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을 좋아하는 척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성어이다.[12][13]

전한의 학자 유향의 《신서(新序)》 〈잡사편(雜事篇)〉에 나오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12][13] 춘추시대 초나라의 섭공(본명: 심제량, 자: 자고(子高))은 섭 지역의 봉토를 이어받아 섭공이라 불렸다.[12] 그는 용을 매우 좋아하여 집안의 벽과 기둥뿐 아니라 가구나 그 밖의 다른 물건에도 용을 그리거나 용의 무늬를 새겨 넣었다.[12] 하늘의 용이 이 소문을 듣고 인간 세상에 내려와 섭공을 찾아갔으나, 섭공은 창문으로 용의 머리가 들어오고 몸체가 건넌방에서 꿈틀거리자 기겁하여 도망쳤다.[12]

공자의 제자 자장노나라 애공이 선비를 좋아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으나, 일주일이 지나도록 만나주지 않자 애공이 선비를 좋아하는 것은 섭공이 용을 좋아하는 것과 흡사하다고 말하고 떠났다.[12] 섭공이 좋아했던 것은 진짜 용이 아니라 사이비 용이었던 것처럼, 애공이 좋아하는 것도 진짜 선비가 아니라 선비 같으나 선비는 아닌 사람이었다는 것이다.[12]

4. 3. 기타 일화

섭공(심제량)과 관련된 여러 일화가 전해진다.

  • 섭공문정(葉公問政): 섭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는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이 오도록 만드는 것(近者悅 遠者來)"이라고 답했다.[10][11] 이는 백성을 위한 정치를 강조한 것으로, 춘추시대 국력의 상징이었던 백성의 수를 늘리기 위한 방안에 대한 조언이었다. 섭공은 초나라의 식민지 건설 및 유민 포섭 정책을 추진하던 인물로, 백성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고민하던 중 공자에게 조언을 구했다. 공자의 답변은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통해 먼 곳의 사람들까지 불러들일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섭공호룡(葉公好龍): 섭공이 용을 매우 좋아하여 집안 곳곳에 용 그림을 새겨 넣었으나, 진짜 용이 나타나자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는 이야기다.[12][13] 이는 겉으로만 좋아하고 속으로는 좋아하지 않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겉과 속이 다른 위선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공자의 제자 자장(子張)이 선비를 좋아한다는 노(魯)나라 애공(哀公)을 찾아갔으나 만나주지 않자, 섭공의 이야기를 인용하여 애공이 좋아하는 것은 진짜 선비가 아니라 겉모습만 선비인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 무신불립(無信不立): 공자가 섭공에게 치국의 요체는 백성의 신뢰를 얻는 것(無信不立)이라고 강조한 일화다.[14] 섭공이 정치의 핵심을 묻자, 공자는 "가까운 곳의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먼 곳의 사람들이 스스로 모여드는 것(近者說 遠者來)"이라고 답했다. 이는 백성의 신뢰를 얻어야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는 공자의 정치 철학을 보여준다.
  • 발분망식(發憤忘食): 섭공이 공자가 어떤 사람인지 묻자, 자로(子路)가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나중에 공자는 자로에게 "발분하면 식사도 잊고, 즐거움에 근심도 잊으며, 늙음이 닥쳐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지 않은 것을 질책했다.[15] 이는 공자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몰입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 정직(正直)에 대한 논쟁: 섭공은 아버지가 양을 훔친 것을 아들이 고발한 것을 정직하다고 칭찬했지만, 공자는 아버지는 자식의 죄를 숨기고 자식은 아버지의 죄를 숨기는 것이 인간의 정(情)이며, 진정한 정직은 자신의 진심을 속이지 않는 것이라고 반박했다.[16] 이는 유교적 가치관에서 가족 간의 윤리와 정직의 의미를 보여주는 중요한 논쟁이다.

5. 명언


  • '''섭공문정 자왈 근자열 원자래'''(葉公問政 子曰 近者悅 遠者來):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을 오게 하는 것."[10][11] 섭공(葉公)공자에게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자, 공자는 백성을 기쁘게 하면 먼 곳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라고 답했다.[10] 이는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이 정치의 근본임을 강조한 것이다. 춘추시대에는 백성의 수가 국력의 상징이었기에, 섭공은 백성들이 떠나지 않도록 천리장성을 쌓을까 고민하기도 했다.[10] 하지만 공자는 백성들이 기뻐하며 따르게 하는 것이 진정한 해결책이라고 제시했다.[10]
  • '''섭공호룡'''(葉公好龍): 겉으로는 좋아하지만 실제로는 좋아하지 않는 것을 비유하는 말.[12][13] 섭공은 용을 매우 좋아하여 집안 곳곳에 용 그림을 그렸지만, 진짜 용이 나타나자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12] 이는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을 풍자하는 것으로, 공자의 제자 자장(子張)이 선비를 좋아한다는 노(魯)나라 애공(哀公)을 만났으나 환영받지 못하자 섭공의 이야기를 인용하여 비판했다.[12]
  • '''무신불립'''(無信不立):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14] 공자는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 정치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14] 섭공이 정치의 요체를 묻자, 공자는 "근자열 원자래"(近者說 遠者來), 즉 선정(善政)을 베풀면 가까운 곳의 사람들이 기뻐하고, 먼 곳의 사람들도 스스로 찾아올 것이라고 답했다.[14]
  • '''발분망식'''(發憤忘食): 어떤 일에 열중하여 식사하는 것조차 잊는다는 뜻.[15] 섭공이 공자에 대해 묻자, 자로(子路)가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15] 이에 공자는 자로에게 왜 발분망식하는 자신의 모습을 말하지 않았느냐고 질책했다.[15]
  • '''정직과 인간의 정''': 섭공은 아버지가 양을 훔치자 아들이 이를 증언한 것을 정직하다고 칭찬했지만, 공자는 아버지는 자식의 죄를, 자식은 아버지의 죄를 숨기는 것이 인간의 정(情)이며, 이것이 진정한 정직이라고 말했다.[16]

참조

[1] 웹사이트 葉姓來源及郡望堂號 (Origin of the Ye surname) https://web.archive.[...] 2008-05-30
[2] 웹사이트 新百家姓 (Top 100 Surnames) https://web.archive.[...] 2006-01-10
[3] 웹사이트 叶公简介 (Duke of Ye) http://www.pds.gov.c[...] Pingdingshan null
[4] 웹사이트 Zi Lu http://ctext.org/ana[...] null
[5] 웹사이트 Shu Er http://ctext.org/ana[...] null
[6] 웹사이트 BOOK XII. DUKE AI http://www2.iath.vir[...] null
[7] 문서 지금의 하남성 섭현(葉縣) 남쪽 지역
[8] 문서 蔡, 州来라고도 함, 지금의 안휘 성 鳳台
[9] 문서 중국역대인명사전
[10] 웹인용 이코노믹리뷰 - <김성회의 소통리더십> 직원의 자부심을 북돋우라 http://www.econovill[...] 2019-03-21
[11] 문서 논어 자로편
[12] 뉴스 국제신문 - <안병화의 시사 한자성어> 섭공호룡(葉公好龍) http://www.kookje.co[...]
[13] 문서 유향(劉向)의 신서 잡사편(新序 雜事篇)
[14] 문서 논어
[15] 문서 논어 술이편
[16] 문서 논어 자로편 제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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