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게아스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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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게아스 왕조는 고대 마케도니아를 통치한 왕조로, 기원전 808년경부터 기원전 310년까지 존속했다. 이 왕조는 그리스 아르고스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며, 전설적인 영웅 헤라클레스의 후손을 자처했다. 아르게아스 왕조는 필리포스 2세와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기에 마케도니아 왕국의 세력을 확장하며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왕위 계승 분쟁과 디아도코이 전쟁으로 인해 결국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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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게아스 왕조 - [전쟁]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아르게아스 왕조 |
원어명 | Ἀργεάδαι (Argeádai) |
다른 이름 | 테메니드 왕조 (Τημενίδαι) |
유형 | 왕가 |
국가 | 마케도니아 왕국 (고대 그리스) |
창건 연도 | 기원전 7세기 |
해체 연도 | 기원전 310년 |
설립자 | 카라노스 (전설) |
최종 통치자 | 알렉산드로스 4세 |
모가 | 테메노스 (헤라클레스) |
분가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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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 | |
통치 국가 | 마케도니아 |
칭호 | 마케도니아의 바실레우스 페르시아 왕 아시아 왕 이집트 파라오 헬라스 동맹의 헤게몬 그리스의 스트라테고스 아우토크라토르 |
역사 | |
건국 | 기원전 700년경 |
멸망 | 기원전 310년 |
이전 | 암흑 시대 (고대 그리스) |
이전 국가 | 아케메네스 제국 |
이후 | 안티파트로스 왕조 |
이후 국가 | 셀레우코스 제국 |
이후 국가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
기타 | |
사용 언어 | 그리스어 |
수도 | 펠라 |
2. 기원
고대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아르게아스 왕조는 그리스 아르고스에서 기원했다. 왕조의 이름인 '아르게아스'는 펠로폰네소스반도 아르고스의 테메노스 가문 출신임을 주장한 데서 유래했다. 전설에 따르면 초대 왕은 헤라클레스의 손자의 손자인 테메노스였다. 아이가이 왕궁 발굴 과정에서 마놀리스 안드로니코스는 돔 형태의 방(알현실로 추정)에서 이와 관련된 비문을 발견했는데, 이는 헤로도토스의 《역사》 기록과 일치한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테메노스의 후손인 가우아네스, 아에로포스, 페르디카스 삼형제는 아르고스에서 일리리아를 거쳐 상부 마케도니아의 레바이아 마을로 가서 왕을 섬겼다. 왕은 페르디카스에게 큰 일이 일어날 징조를 보고 그들에게 왕국을 떠나라고 했다. 삼형제는 베르미오산 기슭의 미다스 정원 근처로 가서 정착하여 점차 왕국을 건설했다.[34]
헤로도토스는 또한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드로스 1세가 기원전 504년 또는 500년 고대 올림픽에 참가하려 할 때, 그리스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다른 참가자들이 이의를 제기했던 사건을 언급한다. 그러나 헬라노디카이는 알렉산드로스 1세가 아르고스 출신이라는 주장을 조사하여 마케도니아인들이 그리스인임을 확인하고 참가를 허용했다.[35]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따르면, 아르게아스 가문은 본래 아르고스 출신 테메노스의 후손으로, 고지대에서 하부 마케도니아로 내려와 피에리아에서 피에리아 인들을 몰아내고, 아크시오스 강을 따라 펠라와 바다까지 이르는 파이오니아 지역을 차지했다. 또한 에도니 족, 에오르디아 인, 알모피아 인들을 몰아내고 미그도니아를 영토에 추가했다.[36]
2. 1. 명칭
‘아르게아드’(Argead)와 ‘아르기베’(Argive)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아르게이오스(Ἀργεῖοςgrc, Argeiosla) 또는 아르고스[31]에서 라틴어 ''아르기보스''(Argīvusla)를 거쳐[32], 호메로스에서 최초로 등장하며, 그리스인들을 묶어 부르는 ''아르기베 다나안스''(Ἀργείων Δαναῶνgrc, Argive Danaansla)로 사용되었다.[33]고대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아르게아스 왕조는 그리스 아르고스에서 기원한다. 아르게아스라는 이름은 펠로폰네소스반도 아르고스의 테메노스 가문 출신임을 주장한 것이다.
2. 2. 신화적 기원
‘아르게아드’(Argead)와 ‘아르기베’(Argive)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아르게이오스(Ἀργεῖοςgrc)에서 유래되었으며,[31] 호메로스의 글에서 최초로 등장한다. 여기서 그리스인들을 묶어서 부르는 ''아르기베 다나안스''(Ἀργείων Δαναῶνgrc)라는 표현이 나왔다.[33]고대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아르게아스 왕조는 그리스 아르고스에서 기원했다. 왕조의 이름인 '아르게아스'는 펠로폰네소스반도 아르고스의 테메노스 가문 출신임을 주장한 데서 유래했다. 전설에 따르면 초대 왕은 헤라클레스의 손자의 손자인 테메노스였다. 아이가이 왕궁 발굴 과정에서 마놀리스 안드로니코스는 돔 형태의 방(알현실로 추정)에서 이와 관련된 비문을 발견했는데, 이는 헤로도토스의 《역사》 기록과 일치한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테메노스의 후손인 가우아네스, 아에로포스, 페르디카스 삼형제는 아르고스에서 일리리아를 거쳐 상부 마케도니아의 레바이아 마을로 가서 왕을 섬겼다. 왕은 페르디카스에게 큰 일이 일어날 징조를 보고 그들에게 왕국을 떠나라고 했다. 삼형제는 베르미오산 기슭의 미다스 정원 근처로 가서 정착하여 점차 왕국을 건설했다.[34] 헤로도토스는 또한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드로스 1세가 기원전 504년 또는 500년 고대 올림픽에 참가하려 할 때, 그리스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다른 참가자들이 이의를 제기했던 사건을 언급한다. 그러나 헬라노디카이는 알렉산드로스 1세가 아르고스 출신이라는 주장을 조사하여 마케도니아인들이 그리스인임을 확인하고 참가를 허용했다.[35]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따르면, 아르게아스 가문은 본래 아르고스 출신 테메노스의 후손으로, 고지대에서 하부 마케도니아로 내려와 피에리아에서 피에리아 인들을 몰아내고, 아크시오스 강을 따라 펠라와 바다까지 이르는 파이오니아 지역을 차지했다. 또한 에도니 족, 에오르디아 인, 알모피아 인들을 몰아내고 미그도니아를 영토에 추가했다.[36]
2. 3. 역사적 기원 논쟁
‘아르게아드’(Argead)와 ‘아르기베’(Argive)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아르게이오스(Ἀργεῖοςgrc, Argeiosla) 또는 아르고스에서 유래되었으며,[31] 라틴어 ''아르기보스''(Argīvusla)를 거쳐,[32] 호메로스에서 최초로 등장하며, 그리스인들을 집합 명칭을 나타내는 ''아르기베 다나안스''(Ἀργείων Δαναῶνgrc, Argive Danaansla)로 사용되었다.[33]고대 그리스의 신화적인 설명에 따르면, 아르게아스 왕조의 기원은 그리스의 아르고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르게아스라는 이름은 펠로폰네소스에 있는 아르고스의 테메노스 가문에 이어지는 가계임을 주장했다. 초대 조상은 전설상의 헤라클레스의 손자의 손자인 테메노스이다. 아이가이에서 왕궁을 발굴한 마놀리스 안드로니코스는 돔 모양의 방(이것을 알현실이라고 하는 학자도 있다)에서 이 전승과 관련된 비문을 발견했다. 이것은 헤로도토스의 《역사》의 설명과 일치한다.[34]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테메노스의 일족인 가우아네스, 아에로포스, 페르디카스 삼형제는 아르고스에서 일리리아로, 그리고 상부 마케도니아의 레바이아라는 마을로 도망을 가서 그곳에서 왕을 섬겼다. 왕은 페르디카스에게 뭔가 대단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징조를 믿고 그들에게 왕의 영지에서 떠나도록 요구했다. 삼형제는 마케도니아의 다른 지역으로 길을 떠나 베르미오 산기슭의 미다스의 동산 근처에 옮겨갔다. 그들은 그곳을 거점으로 삼고 점차 왕국을 형성했다.[34] 또한 헤로도투스는 그리스에서 이민족 취급을 받던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드로스 1세가 기원전 504년 또는 500년에 개최된 고대 올림픽에 참여하였는데, 그리스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관계자로부터 이의를 제기받았던 사건에 대해 말하고 있다. 헬라노디카이는 알렉산드로스 1세가 아르고스 출신이라는 주장을 조사한 후, 마케도니아인이 사실상 그리스인임을 인정하고 그의 참여를 인정했다.[35]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따르면, 아르게아스 가문은 원래는 아르고스 출신의 테메노스이며, 고원에서 하부 마케도니아로 내려왔고, 피에리아에서 피에리아 인들을 쫓아내고 아크시오스강을 따라 펠라와 바다로 도달하는 길쭉한 토지인 파이오니아를 손에 넣었다. 그들은 또한 에도니족, 에오르디아인들과 알모피아인들을 내쫓고 미그도니아를 영지로 추가하였다고 전한다.[36]
3. 역사
고대 그리스의 신화에 따르면, 아르게아스 왕조는 그리스의 아르고스에서 기원했으며, 왕조의 이름 '아르게아스'는 여기서 유래했다.[31][32][33]
아르게아스 가문은 펠로폰네소스에 있는 아르고스의 테메노스 가문과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했으며, 전설에 따르면 초대 왕은 헤라클레스의 현손(손자의 손자)인 테메노스이다. 아이가이 왕궁 발굴에서 마놀리스 안드로니코스는 돔형 방(일부 학자들은 옥좌의 방이라고도 함)에서 이 전승과 관련된 비문을 발견했다. 이는 헤로도토스의 『역사』 기록과도 일치한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테메노스의 후손인 가우아네스, 아에로포스, 페르디카스 세 형제는 아르고스에서 일리리아를 거쳐 상부 마케도니아의 레바이아라는 마을로 도망쳐 왕을 섬겼다. 왕은 페르디카스에게 뭔가 대단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징조를 믿고 그들에게 왕국을 떠나라고 요구했다. 삼형제는 마케도니아의 다른 지역인 베르미오 산 기슭의 미다스 정원 근처로 이주하여 그곳을 거점으로 점차 왕국을 세웠다.[34] 헤로도토스는 그리스에서 이민족 취급을 받던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드로스 1세가 기원전 504년 또는 500년에 개최된 고대 올림픽에 참여했다가 그리스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의를 제기받았으나, 헬라노디카이가 알렉산드로스 1세가 아르고스 출신임을 확인하고 마케도니아인이 그리스인임을 인정하여 참가를 허락한 사건을 언급했다.[35]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따르면, 아르게아스 가문은 원래 아르고스 출신의 테메노스이며, 고지대에서 하부 마케도니아로 내려와 피에리아에서 피에리아 인들을 몰아내고 아크시오스강을 따라 펠라와 바다로 이어지는 파이오니아 지역을 차지했다. 또한 에도니 족, 에오르디아 인, 알모피아 인들을 몰아내고 미그도니아를 영토에 추가했다.[36]
필리포스 2세 시대에 마케도니아는 상부 마케도니아의 모든 나라를 지배하에 두었다. 필리포스 2세와 알렉산드로스 3세(대왕)의 지도 아래 마케도니아 왕국은 그리스 전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고 아케메네스 왕조를 멸망시켰으며, 이집트와 인도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 왕위는 지적 장애가 있던 필리포스 3세와 갓난아기였던 알렉산드로스 4세에게 돌아갔으나, 이들은 명목상의 왕이었다. 실권은 후계 장군들(디아도코이)과 남은 왕족들에게 넘어가 권력 투쟁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대왕의 이복 누이 테살로니케와 결혼한 장군 카산드로스가 왕위를 찬탈하면서 아르게아스 왕조는 막을 내렸다.
3. 1. 초기 발전
고대 그리스의 신화에 따르면, 아르게아스 왕조는 그리스의 아르고스에서 기원했다. 왕조의 이름인 '아르게아스'는 여기서 유래되었다.아르게아스 가문은 펠로폰네소스에 있는 아르고스의 테메노스 가문과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했으며, 전설에 따르면 초대 왕은 헤라클레스의 현손(손자의 손자)인 테메노스이다. 아이가이 왕궁 발굴에서 마놀리스 안드로니코스는 돔형 방(일부 학자들은 옥좌의 방이라고도 함)에서 이 전승과 관련된 비문을 발견했다. 이는 헤로도토스의 『역사』 기록과도 일치한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테메노스의 후손인 가우아네스, 아에로포스, 페르디카스 세 형제는 아르고스에서 일리리아를 거쳐 상(上) 마케도니아의 레바이아라는 도시로 도망쳐 왕을 섬겼다. 왕은 페르디카스에게 뭔가 대단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징조를 믿고 그들에게 왕국을 떠나라고 요구했다. 세 형제는 마케도니아의 다른 지역인 베르미오 산기슭의 미다스 정원 근처로 이주하여 그곳을 거점으로 점차 왕국을 세웠다.[29]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따르면, 아르게아스 가문은 원래 아르고스 출신의 테메노스 가문이며, 고지대에서 하(下) 마케도니아로 내려와 피에리아에서 피에리아인을 몰아내고, 파이오니아에서는 펠라와 바다에 이르는 아시오스강을 따라 길게 뻗은 땅을 차지했다. 또한 에도노이족을 추방하여 미그도니아를, 에오르다이아인과 알모피아인을 몰아내어 에오르다이아와 알모피아를 각각 영토에 추가했다.[30]
처음에는 아르게아스족이 통치했지만, 필리포스 2세 시대에 이르러 지배력이 더욱 확대되어 상 마케도니아의 모든 나라를 마케도니아 지배하에 두었다.
3. 2. 필리포스 2세의 통치
필리포스 2세 시대에 마케도니아는 그 지배력을 더욱 확대하여 상 마케도니아의 모든 나라를 마케도니아의 지배하에 두었다.[36]3. 3.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필리포스 2세와 알렉산드로스 3세(대왕)의 지도 아래 마케도니아 왕국은 모든 그리스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고, 아케메네스 왕조를 멸망시키고 이집트와 인도까지 영토를 확장했다.3. 4. 왕위 계승 분쟁과 왕조의 몰락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 왕위는 지적 장애가 있던 필리포스 3세와 갓난아기였던 알렉산드로스 4세에게 돌아갔으나, 이들은 명목상의 왕이었을 뿐이었다.[21] 실권은 후계 장군들(디아도코이)과 남은 왕족들에게 넘어가 권력 투쟁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대왕의 이복 누이 테살로니케와 결혼한 장군 카산드로스가 왕위를 찬탈하면서 아르게아스 왕조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왕의 죽음은 거의 예외 없이 아르게아스 왕조 구성원 간의 왕위 계승 분쟁과 종종 왕위 계승 전쟁을 촉발하여 정치적, 경제적 불안정을 야기했다.[21]
발생 기간 | 분쟁 | 주요 인물 | 설명 |
---|---|---|---|
기원전 399년 ~ 393년 | 6년간의 마케도니아 공위 시대 | 오레스테스, 에어로푸스 2세, 아미타스 2세, 파우사니아스 | 아르켈라오스 1세 사망 이후 발생.[22] |
기원전 393년 ~ 392년 | 마케도니아 왕위 계승 전쟁 | 아미타스 3세, 아르가이오스 2세 | 파우사니아스 사망 이후 발생.[23] |
기원전 369년 ~ 368년 | 마케도니아 왕위 계승 전쟁 | 알로루스의 프톨레마이오스, 알렉산드로스 2세 | 아미타스 3세 사망 이후 발생. |
기원전 360년 ~ 359년 | 마케도니아 왕위 계승 전쟁 | 필리포스 2세 (아민타스 4세를 폐위), 아르가이오스 (아테네 지원), 파우사니아스 (트라키아 지원), 아르켈라오스 (할키디케 동맹 지원) | 페르디카스 3세 사망 이후 발생.[21] |
기원전 323년 ~ 277년 | 디아도코이 전쟁 |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디아도코이 ("계승자") |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망 이후 발생. |
또한, 오랫동안 재위한 군주도 전임자의 왕권이 약하다고 인식될 경우 친척에 의한 반란에 직면할 수 있었다. 그 예로, 펠로폰네소스 전쟁 (기원전 433–431년)의 서막에서 필리포스가 형이자 왕인 페르디카스 2세에 대항하여 일으킨 반란이 있다.
4. 역대 군주
사진 | 재위 기간 | 군주 이름 | 참고사항 |
---|---|---|---|
기원전 808년경-기원전 778년경 | 카라노스 | 아르게아스 왕조의 창시자이자 마케도니아의 첫 번째 왕 (아마도 가공 인물) | |
기원전 778년경-기원전 750년경 | 코이노스 | (아마도 가공 인물) | |
기원전 750년경-기원전 700년경 | 투리마스 | (아마도 가공 인물) | |
기원전 700년경-기원전 678년경 | 페르디카스 1세 | ||
기원전 678년경-기원전 640년경 | 아르가이오스 1세 | ||
기원전 640년경-기원전 602년경 | 필리포스 1세 | ||
기원전 602년경-기원전 576년경 | 아에로포스 1세 | ||
기원전 576년-기원전 547년 | 알케타스 1세 | ||
기원전 547년-기원전 498년 | 아민타스 1세 | 기원전 512/511년에 아케메네스 제국의 봉신. 역사가들은 아민타스를 역사적으로 중요한 첫 번째 마케도니아 군주로 인정함. | |
![]() | 기원전 498년-기원전 454년 | 알렉산드로스 1세 | 기원전 492년 이후 아케메네스 제국에 완전히 종속되었으나, 아케메네스 군대가 철수한 기원전 479년 이후 완전한 독립을 달성. |
![]() | 기원전 454년-기원전 413년 | 페르디카스 2세 | |
![]() | 기원전 413년-기원전 399년 | 아르켈라오스 | |
기원전 399년-기원전 396년 | 오레스테스 | 아에로포스 2세에게 살해당할 때까지 아에로포스 2세와 공동 통치 | |
![]() | 기원전 399년-기원전 394/393년 | 아에로포스 2세 | 기원전 396년까지 오레스테스와 공동 통치, 이후 단독 통치 |
![]() | 기원전 393년 | 아민타스 2세 | 엘리미오티스(Elimiotis)의 데르다스라는 귀족에게 암살당하면서 매우 짧은 재위 기간을 보냄 |
![]() | 기원전 393년 | 파우사니아스 | 아민타스 3세에게 즉위년도에 암살당함 |
![]() | 기원전 393년 | 아민타스 3세 (1차 재위) | |
기원전 393년-기원전 392년 | 아르가이오스 2세 | 일리리아인의 도움을 받아 아민타스 3세로부터 약 1년 동안 왕위를 찬탈 | |
기원전 392년-기원전 370년 | 아민타스 3세 (2차 재위) | 약 1년 후에 왕위 복귀 | |
기원전 370년-기원전 368년 | 알렉산드로스 2세 | 외삼촌인 프톨레마이오스에게 암살당함 | |
![]() | 기원전 368년-기원전 359년 | 페르디카스 3세 | 프톨레마이오스가 기원전 368년-365년까지 섭정, 이후 페르디카스 3세에게 살해당함 |
기원전 359년 | 아민타스 4세 | 페르디카스 3세의 어린 아들, 필리포스 2세에게 왕위를 찬탈당함 | |
![]() | 기원전 359년-기원전 336년 | 필리포스 2세 | 마케도니아 영토와 영향력을 확장하여 발칸 반도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코린토스 동맹에서 대부분의 그리스 도시 국가들을 자신의 헤게모니 아래 연합시킴. |
![]() | 기원전 336년-기원전 323년 | 알렉산드로스 3세 대왕 | 마케도니아 왕이자 군사 전략가. 마케도니아의 왕, 이집트의 파라오, 페르시아의 왕을 동시에 지냈으며, 이전의 모든 아케메네스 제국과 서부 인더스 계곡의 일부를 정복함. |
![]() | 기원전 323년-기원전 317년 | 필리포스 3세 아르히다이오스 |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이복형제, 초기 디아도코이 전쟁 동안 마케도니아 제국의 명목상 군주. 올림피아스에 의해 처형됨. |
![]() | 기원전 323/317년-기원전 309년 | 알렉산드로스 4세 |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박트리아의 록사네의 아들, 초기-중기 디아도코이 전쟁 동안 마케도니아 제국의 명목상 군주. 카산드로스에 의해 처형됨. |
5. 가계도
현대 역사가들은 아르게아스 왕조의 계보에 대해 여러 견해차를 보인다. 예를 들어, 로빈 레인 폭스는 프톨레마이오스가 아민타스 2세의 아들이라는 니콜라스 햄먼드의 주장을 반박하며, 프톨레마이오스가 그의 아들이 아니며 아르게아스 왕조 출신도 아니라고 주장한다.[24]
따라서 아래 가계도는 모든 연대기적, 계보적, 왕조적 복잡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대신, 햄먼드, 엘리자베스 D. 카니, 조셉 로이스먼과 같은 역사가들이 제시한 아르게아스 왕조의 일반적인 재구성을 나타낸다.[25][26][27][2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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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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