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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쓰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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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야쓰하시는 일본 교토의 전통 과자로, 쌀가루, 설탕, 계피를 섞어 구운 센베의 일종이다. 1689년 쇼고인의 숲 찻집에서 제공된 것이 기원으로, 고토의 형태를 본떴다는 설과 《이세 이야기》의 '미카와노야쓰하시'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현재는 다양한 종류의 야쓰하시가 판매되고 있으며, 주요 제조업체 간에는 기원과 관련된 논쟁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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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쓰하시 - [음식]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야쓰하시
야쓰하시 (이즈쓰 야쓰하시 본점 제조)
국가일본
지역교토
종류와가시 (미야게가시)
주요 재료찹쌀 쌀가루
설탕
계피
상세 정보
창시자불명
창작 연도1689년 (겐로쿠 2년) (일설)
변형나마야쓰하시
나마야쓰하시
창작 연도1960년경
주요 재료쌀가루
설탕
계피
부가 재료팥소
말차
유사 음식나마센베이

2. 기원 및 유래

에도 시대 중기에 해당하는 1689년(겐로쿠 2년), 쇼고인의 숲 쿠로타니 산도의 자야에서 제공되던 것이 그 시작이다.[24]

야쓰하시의 이름 유래는 확실한 것이 없으나, 소쿄쿠의 시조, 야쓰하시 겐교를 그리워해 고토 모양을 본뜬 것이 유래라는 설, 《이세모노가타리》 아홉 단의 가키쓰바타의 무대 〈미카와쿠니야쓰하시〉가 유래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24]

금계광명사에 있는 야쓰하시 검교의 묘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미카와의 야쓰하시 고지도


야쓰하시의 기원은 불분명한 부분이 많지만, 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설이 제기된다.[9][10][11]

# 고토의 개조로 칭송받는 야쓰하시 검교를 기리고, 고토의 형태를 본뜬 건과자를 "야쓰하시"라고 이름 붙였다는 설

# 가인으로 유명한 아리와라노 나리히라를 기리고, 『이세 이야기』 제9단 "붓꽃"의 무대인 "미카와국야쓰하시"에 걸어, 8개의 다리판 모양을 본뜬 과자를 만들었다는 설

교토의 야쓰하시 제조업체 단체인 '''교토 야쓰하시 상공업 협동조합'''[12]에 가맹한 14개사 중 "야쓰하시 검교"의 설을 지지하는 곳은 쇼고인 야쓰하시 총본점・이즈쓰 야쓰하시 본포 등 6개사[9], "이세 이야기"의 설을 지지하는 곳은 혼케 니시오 야쓰하시・혼케 야쓰하시의 2개사이다.[13] 위의 두 설 모두 겐로쿠 연간에 원형이 만들어졌고, 현재와 가까운 형태가 된 것은 교호 연간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한다.[6]

원래의 발매 시기도 불분명하지만, 1879년 (메이지 10년)에 교토에 철도가 개통되자 니시오 마쓰타로가 교토역에서 토산품으로 판매를 시작했고[14][9], 1915년 (다이쇼 4년)의 다이쇼 천황 즉위 축하 행사에서 교토를 방문한 사람들이 구입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고 한다.[9][15] 그 사이에 니시오 마쓰타로로부터 사업을 물려받은 아들 니시오 타메지가, 1900년 (메이지 33년)의 파리 만국 박람회에 야쓰하시를 출품하여 은상을 수상했다.[9] 이 무렵의 출판물에는 1926년 (다이쇼 15년)에 교토부 내무부가 발행한 교토 명물 소개 책 『교토의 꽃』이 있으며, 그 안에서 야쓰하시의 기원에 대해 "니시오 타메지의 조상이 미카와의 승려로부터 제조법을 전수받아, 1689년 (겐로쿠 2년)에 쇼고인의 숲에서 판매를 시작했다"는 기술이 있지만, 그 이상의 자세한 내용은 쓰여 있지 않고 진위 여부도 불분명하다.[9][11]

1960년대에는 "생 야쓰하시"가 고안되었고[6], 이어서 미토가 생 야쓰하시로 앙금을 감싸는 상품을 고안했다고 한다.[15]

2. 1. 야쓰하시 겐교 유래설

에도 시대 중기인 1689년(겐로쿠 2년), 쇼고인의 숲 구로타니 산도의 자야에서 제공되던 것이 야쓰하시의 시작이다.[24] 야쓰하시라는 이름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으나, 소쿄쿠의 시조인 야쓰하시 겐교를 기려 고토 모양을 본뜬 것이라는 설과 《이세모노가타리》 아홉 단의 가키쓰바타의 무대 〈미카와쿠니 야쓰하시〉가 유래라는 설이 있다.[24]

2. 2. 이세모노가타리 유래설

야쓰하시는 에도 시대 중기인 1689년(겐로쿠 2년)에 쇼고인의 숲 구로타니 산도의 자야에서 제공되기 시작했다.[24] 야쓰하시라는 이름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으나, 소쿄쿠의 시조인 야쓰하시 겐교를 기려 고토 모양을 본뜬 것이라는 설과 《이세모노가타리》 아홉 단의 가키쓰바타의 무대인 〈미카와쿠니 야쓰하시〉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24]

2. 3. 쇼고인 숲 찻집 유래설

에도 시대 중기인 1689년(겐로쿠 2년), 쇼고인의 숲 쿠로타니 산도의 자야에서 제공되던 것이 야쓰하시의 시작이다.[24] 야쓰하시라는 이름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으나, 소쿄쿠의 시조인 야쓰하시 겐교를 기려 고토 모양을 본뜬 것이라는 설과 《이세모노가타리》 아홉 단의 가키쓰바타의 무대 〈미카와쿠니야쓰하시〉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24]

3. 역사

야쓰하시의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주로 다음 두 가지 설이 제기된다.[9][10][11]

# 고토의 개조로 칭송받는 야쓰하시 검교를 기리고, 고토의 형태를 본뜬 건과자를 "야쓰하시"라고 이름 붙였다는 설

# 가인으로 유명한 아리와라노 나리히라를 기리고, 『이세 이야기』 제9단 "붓꽃"의 무대인 "미카와국야쓰하시"에 걸어, 8개의 다리판 모양을 본뜬 과자를 만들었다는 설

금계광명사에는 야쓰하시 검교의 묘가 있다. 가쓰시카 호쿠사이는 미카와의 야쓰하시를 그리기도 했다.

교토의 야쓰하시 제조업체 단체인 '''교토 야쓰하시 상공업 협동조합'''[12]에 가맹한 14개사 중 "야쓰하시 검교"의 설을 지지하는 곳은 쇼고인 야쓰하시 총본점, 이즈쓰 야쓰하시 본포 등 6개사[9], "이세 이야기"의 설을 지지하는 곳은 혼케 니시오 야쓰하시, 혼케 야쓰하시의 2개사이다[13]。위의 두 설 모두 겐로쿠 연간에 원형이 만들어졌고, 현재와 가까운 형태가 된 것은 교호 연간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한다[6]

원래의 발매 시기도 불분명하지만, 1879년(메이지 10년)에 교토에 철도가 개통되자 니시오 마쓰타로가 교토역에서 토산품으로 판매를 시작했고[14][9], 1915년(다이쇼 4년)의 다이쇼 천황 즉위 축하 행사에서 교토를 방문한 사람들이 구입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고 한다[9][15]。그 사이에 니시오 마쓰타로로부터 사업을 물려받은 아들 니시오 타메지가, 1900년(메이지 33년)의 파리 만국 박람회에 야쓰하시를 출품하여 은상을 수상했다[9]。이 무렵의 출판물에는 1926년(다이쇼 15년)에 교토부 내무부가 발행한 교토 명물 소개 책 『교토의 꽃』이 있으며, 그 안에서 야쓰하시의 기원에 대해 "니시오 타메지의 조상이 미카와의 승려로부터 제조법을 전수받아, 1689년(겐로쿠 2년)에 쇼고인의 숲에서 판매를 시작했다"는 기술이 있지만, 그 이상의 자세한 내용은 쓰여 있지 않고 진위 여부도 불분명하다[9][11]

1960년대에는 "생 야쓰하시"가 고안되었고[6], 이어서 미토가 생 야쓰하시로 앙금을 감싸는 상품을 고안했다고 한다[15]

3. 1. 근대 이전

3. 2. 근대

3. 3. 현대

4. 제조법 및 종류

계피맛 나마야쓰하시


쌀가루, 설탕, 계피(육계, 시나몬)을 섞어 찐 뒤 얇게 편 반죽을 구운 가타야키센베의 일종으로, 고토의 형태를 본따서[26] 장축 방향으로 볼록하게 된 활모양으로 굽은 직사각형 모양이다.

쪄낸 후 얇게 편 반죽을 굽지 않고 일정 크기로 꺼낸 나마야쓰하시는 1960년대에 등장하였다. 순수하게 반죽만 하는 것과 정사각형의 반죽을 삼각형이 되도록 반으로 접어 팥소를 싼 것도 있다. 특히, 후자는 제조업체마다 다양한 종류를 만든다. 일반적인 반죽 이외에도 녹차나 참깨를 섞은 것이 있으며, 소도 팥 이외에 과일이나 초콜릿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과거의 나마야쓰하시는 죽피로 포장하였으나, 오늘날에는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대부분 진공 포장으로 마무리한다. 진공 포장을 개봉하지 않으면 9일에서 11일 정도 두고 먹을 수 있다. 전통 제조법을 특징으로 삼는 업체의 상품은 품질 유지도 그대로이기 때문에 유통기한이 계절에 따라 이틀에 나흘 정도로 다른 제품과 비교할 때 매우 짧은 편이다.

녹차맛, 딸기맛, 초콜릿이 든 야쓰하시도 있으며, 많은 종류가 고안되고 있다.[24]

4. 1. 구운 야쓰하시

쌀가루, 설탕, 계피(육계, 시나몬)을 섞어 찐 뒤 얇게 편 반죽을 구운 가타야키센베의 일종으로, 고토의 형태를 본따서[26] 장축 방향으로 볼록하게 된 활모양으로 굽은 직사각형 모양이다.

쪄낸 후 얇게 편 반죽을 굽지 않고 일정 크기로 꺼낸 나마야쓰하시는 1960년대에 등장하였다. 녹차맛, 딸기맛, 초콜릿이 든 야쓰하시도 있으며, 많은 종류가 고안되고 있다.[24]

4. 2. 생 야쓰하시



1960년대에는 쪄낸 후 얇게 편 반죽을 굽지 않고 일정 크기로 꺼낸 나마야쓰하시가 등장하였다. 순수하게 반죽만 하는 것과 정사각형의 반죽을 삼각형이 되도록 반으로 접어 팥소를 싼 것도 있다. 특히, 후자는 제조업체마다 다양한 종류를 만든다. 일반적인 반죽 이외에도 녹차나 참깨를 섞은 것이 있으며, 소도 팥 이외에 과일이나 초콜릿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24]

녹차맛, 딸기맛, 초콜릿이 든 야쓰하시도 있으며, 많은 종류가 고안되고 있다.[24]

4. 2. 1. 다양한 맛



1960년대에는 쪄낸 후 얇게 편 반죽을 굽지 않고 일정 크기로 꺼낸 나마야쓰하시가 등장하였다. 순수하게 반죽만 하는 것과 정사각형의 반죽을 삼각형이 되도록 반으로 접어 팥소를 싼 것도 있다. 특히, 후자는 제조업체마다 다양한 종류를 만든다. 일반적인 반죽 이외에도 녹차나 참깨를 섞은 것이 있으며, 소도 팥 이외에 과일이나 초콜릿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24]

녹차맛, 딸기맛, 초콜릿이 든 야쓰하시도 있으며, 많은 종류가 고안되고 있다.[24]

5. 주요 제조업체

쇼고인 야쓰하시 총본점(현학당)은 1689년 (겐로쿠 2년) 창업, 1926년 (다이쇼 15년) 법인화되었다. 앙금 넣은 생 야쓰하시는 "히지리"라는 명칭으로 판매한다.[23]

본가 니시오 야쓰하시는 1689년 (겐로쿠 2년) 창업, 1948년 (쇼와 23년) 법인화되었다. 앙금 넣은 생 야쓰하시는 "안나마"라는 명칭으로 판매한다.[23]

이즈츠 야쓰하시 본점은 1805년 (분카 2년) 창업, 1960년 (쇼와 35년) 법인화되었다. 앙금 넣은 생 야쓰하시는 "유코"라는 명칭으로 판매한다.[23]

미토 (오타베)는 1957년 (쇼와 32년) 창업, 1969년 (쇼와 44년) 법인화되었다. 앙금 넣은 생 야쓰하시는 "오타베"라는 명칭으로 판매한다.[23]

6. 논란

야쓰하시의 보급에는 니시오 마츠타로・타메지 부자와 그 조상이 관련되어 있지만,[9] 야쓰하시에 관한 문헌의 대부분은 전후에 발행되었고, 쇼고인 야쓰하시 총본점(聖護院八ツ橋総本店)・이즈츠 야쓰하시 본포(井筒八ッ橋本舗)로부터의 청취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아, 전전에 발행된 교토 명물 소개 서적 『교토의 화(京の華)』도 타메지 본인에게서 들은 내용을 게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정확성・중립성이 보장되지 않는다.[9] 그렇기에, 업계 각사에서 발상 등을 둘러싸고 대립하는 경우가 존재한다.[9]

쇼고인 야쓰하시 총본점과 본가 니시오 야쓰하시는 모두 창업에 대해 1689년에 쇼고인(護聖院)의 숲에서 과자를 판매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이는 양사의 설립 경위와 관련이 있다.[9] 1926년 법인화된 쇼고인 야쓰하시 총본점은 경영 위기로 1930년 니시오 타메지의 파산, 경영권이 스즈카 타로에게 승계되었다.[9] 니시오 타메이치는 1947년 야쓰하시 제조 판매를 재개, 1952년 「본가 야쓰하시 쇼고인 니시오」를 법인화하지만, 쇼고인 야쓰하시 총본점으로부터 제소당한다.[9] 1959년 화해가 성립, 지금의 사명이 되었다.[9] 1969년 교토부가 『100년 이상 지속된 전통 있는 업체』를 표창했을 때 「가장 오래된 야쓰하시 업체」로서 본가 니시오 야쓰하시가 표창을 받자,[9] 쇼고인 야쓰하시 총본점은 자사가 표창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자를 배포했다.[9]

니시오 타메지를 뿌리로 하는 업체로는, 타메지의 차남의 「야쓰하시 니시오 타메타다 상점」, 삼남의 「본가 야쓰하시」가 존재한다.[9] 본가 야쓰하시는 본가 니시오 야쓰하시와 같은 창업지·창업 연도를 내걸고 있지만, 창업자에 대해, 본가 야쓰하시는 「니시무라 겐자에몬」이라고 구체적인 이름을 언급하고 있다.[9] 「니시무라」성은 니시오 마츠타로의 옛 성씨이다.[9]

재판에서 쟁점이 된 "since1689" 표시의 예


니시오 타메지를 시조로 하는 업체는 1689년에 쇼고인(護聖院) 숲에서 과자를 판매했다고 선전하지만,[6] 기원에 대해서는 불명확한 점이 많다. 2017년 5월, '''교토 명과 야쓰하시 공업 협동조합'''은 쇼고인 야쓰하시 총본점을 상대로 민사 조정을 신청했지만 불성립으로 끝났다.[6][9]

2018년 6월, 이즈츠 야쓰하시 본포가 쇼고인 야쓰하시 총본점을 상대로 표시 중지 등을 요구하며 교토 지방 법원에 제소했다.[9][16][17] 2020년 6월 10일, 법원은 이즈츠 야쓰하시 본포의 청구를 기각했다.[18][19] 항소는 2021년 3월 11일에 오사카 고등 법원이,[21] 상고는 9월 14일에 최고 재판소가 각각 기각하여 이즈츠 야쓰하시 본포의 패소가 확정되었다.[22]

니시오 타메지를 시조로 하는 업체는 "1689년(겐로쿠 2년)에 쇼고인(護聖院) 숲에서 과자를 판매했다"고 공표하여 선전에 이용하는 경우가 있지만[6], 기원에 대해서는 불명확한 점이 많다.

"야쓰하시 검교"의 설을 지지하는 6개사 중, 쇼고인 야쓰하시 총본점을 제외한 이즈츠 야쓰하시 본포 등 5개사로 구성된 '''교토 명과 야쓰하시 공업 협동조합'''은, 2017년 5월에 쇼고인 야쓰하시 총본점을 상대로 "발상에 관한 오해를 일으키는 표현"이라며 시정을 요구하는 민사 조정을 신청했지만, 이에 대해 쇼고인 야쓰하시 총본점 측은 "법으로 정해진 민사 조정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여 불성립으로 끝났다[6][9]

2018년 6월에는 이즈츠 야쓰하시 본포가 단독으로 쇼고인 야쓰하시 총본점을 상대로 표시 중지 등을 요구하며 교토 지방 법원에 제소했다[9][16][17]。 재판에서는 쇼고인 야쓰하시 총본점이 사용하는 『창업 겐로쿠 2년』 『since1689』와 같은 표시가 부정경쟁방지법이 금지하는 "오인 표시"에 해당하는지가 다투어졌지만, 2020년 6월 10일에 "표시는 창업 연도로 해석된다", "품질 등을 오인하게 하는 표시에 해당하지 않는다" 등으로 판단하여 이즈츠 야쓰하시 본포의 청구는 기각되었다[18][19]。 이즈츠 야쓰하시 본포는 계속 다투는 자세를 보였지만[20], 항소는 2021년 3월 11일에 오사카 고등 법원이[21], 상고는 9월 14일에 최고 재판소가 각각 기각하여 이즈츠 야쓰하시 본포의 패소가 확정되었다[22]

6. 1. 원조 논쟁

야쓰하시의 보급에는 니시오 마츠타로・타메지 부자와 그 조상이 관련되어 있지만,[9] 야쓰하시에 관한 문헌의 대부분은 전후에 발행되었고, 쇼고인 야쓰하시 소本店(聖護院八ツ橋総本店)・이즈츠 야쓰하시 본포(井筒八ッ橋本舗)로부터의 청취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아, 전전에 발행된 교토 명물 소개 서적 『교토의 화(京の華)』도 타메지 본인에게서 들은 내용을 게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정확성・중립성이 보장되지 않는다.[9] 그렇기에, 업계 각사에서 발상 등을 둘러싸고 대립하는 경우가 존재한다.[9]

성호원 야쓰하시 총본점과 본가 니시오 야쓰하시는 모두 창업에 대해 1689년에 성호원의 숲에서 과자를 판매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이는 양사의 설립 경위와 관련이 있다.[9] 1926년 법인화된 성호원 야쓰하시 총본점은 경영 위기로 1930년 니시오 타메지의 파산, 경영권이 스즈카 타로에게 승계되었다.[9] 니시오 타메이치는 1947년 야쓰하시 제조 판매를 재개, 1952년 「본가 야쓰하시 성호원 니시오」를 법인화하지만, 성호원 야쓰하시 총본점으로부터 제소당한다.[9] 1959년 화해가 성립, 지금의 사명이 되었다.[9] 1969년 교토부가 『100년 이상 지속된 전통 있는 업체』를 표창했을 때 「가장 오래된 야쓰하시 업체」로서 본가 니시오 야쓰하시가 표창을 받자,[9] 성호원 야쓰하시 총본점은 자사가 표창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자를 배포했다.[9]

니시오 타메지를 뿌리로 하는 업체로는, 타메지의 차남의 「야쓰하시 니시오 타메타다 상점」, 삼남의 「본가 야쓰하시」가 존재한다.[9] 본가 야쓰하시는 본가 니시오 야쓰하시와 같은 창업지·창업 연도를 내걸고 있지만, 창업자에 대해, 본가 야쓰하시는 「니시무라 겐자에몬」이라고 구체적인 이름을 언급하고 있다.[9] 「니시무라」성은 니시오 마츠타로의 옛 성씨이다.[9]

니시오 타메지를 시조로 하는 업체는 1689년에 쇼고인 숲에서 과자를 판매했다고 선전하지만,[6] 기원에 대해서는 불명확한 점이 많다. 2017년 5월, '''교토 명과 야쓰하시 공업 협동조합'''은 쇼고인 야쓰하시 총본점을 상대로 민사 조정을 신청했지만 불성립으로 끝났다.[6][9]

2018년 6월, 이즈츠 야쓰하시 본포가 쇼고인 야쓰하시 총본점을 상대로 표시 중지 등을 요구하며 교토 지방 법원에 제소했다.[9][16][17] 2020년 6월 10일, 법원은 이즈츠 야쓰하시 본포의 청구를 기각했다.[18][19] 항소는 2021년 3월 11일에 오사카 고등 법원이,[21] 상고는 9월 14일에 최고 재판소가 각각 기각하여 이즈츠 야쓰하시 본포의 패소가 확정되었다.[22]

6. 2. 'Since 1689' 표기 논란

니시오 타메지를 시조로 하는 업체는 "1689년(겐로쿠 2년)에 쇼고인 숲에서 과자를 판매했다"고 공표하여 선전에 이용하는 경우가 있지만[6], 기원에 대해서는 불명확한 점이 많다. "야쓰하시 검교"의 설을 지지하는 6개사 중, 쇼고인 야쓰하시 총본점을 제외한 이즈츠 야쓰하시 본포 등 5개사로 구성된 '''교토 명과 야쓰하시 공업 협동조합'''은, 2017년 5월에 쇼고인 야쓰하시 총본점을 상대로 "발상에 관한 오해를 일으키는 표현"이라며 시정을 요구하는 민사 조정을 신청했지만, 이에 대해 쇼고인 야쓰하시 총본점 측은 "법으로 정해진 민사 조정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여 불성립으로 끝났다[6][9]

2018년 6월에는 이즈츠 야쓰하시 본포가 단독으로 쇼고인 야쓰하시 총본점을 상대로 표시 중지 등을 요구하며 교토 지방 법원에 제소했다[9][16][17]。 재판에서는 쇼고인 야쓰하시 총본점이 사용하는 『창업 겐로쿠 2년』 『since1689』와 같은 표시가 부정경쟁방지법이 금지하는 "오인 표시"에 해당하는지가 다투어졌지만, 2020년 6월 10일에 "표시는 창업 연도로 해석된다", "품질 등을 오인하게 하는 표시에 해당하지 않는다" 등으로 판단하여 이즈츠 야쓰하시 본포의 청구는 기각되었다[18][19]。 이즈츠 야쓰하시 본포는 계속 다투는 자세를 보였지만[20], 항소는 2021년 3월 11일에 오사카 고등 법원이[21], 상고는 9월 14일에 최고 재판소가 각각 기각하여 이즈츠 야쓰하시 본포의 패소가 확정되었다[22]

참조

[1] 웹사이트 京のこだわり「伝統は法律より厳しい」八ツ橋創業年訴訟は続く https://www.sankeibi[...] Sankei Business 2020-07-07
[2] 웹사이트 観光客の動向等に係る調査 https://www.kyokanko[...] Kyoto City
[3] 웹사이트 Yatsuhashi http://thisis-japan.[...] 2017-05-09
[4] 웹사이트 なぜ老舗同士がトラブル?~京菓子「八ツ橋」騒動 https://news.yahoo.c[...] Yahoo News Japan 2018-06-06
[5] 웹사이트 八つ橋と焼き八つ橋の違いは? 生八つ橋を焼くと焼き八つ橋になる!? https://omiyagejohok[...] 2020-10-31
[6] 웹사이트 なぜ老舗同士がトラブル? ~ 京菓子「八ツ橋」騒動 https://news.yahoo.c[...] Yahoo! Japan 2018-06-06
[7] PDF 平成18年京都市観光調査年表 http://raku.city.kyo[...]
[8] 문서 え、これ全部…?原材料:八つ橋/意外に合う!?
[9] 웹사이트 「八ッ橋」訴訟、なぜ業界各社は沈黙するのか https://toyokeizai.n[...] 東洋経済ONLINE 2018-07-07
[10] 웹사이트 華麗なる八ッ橋 https://wagashi.koto[...] コトログ京都 和菓子
[11] 웹사이트 京のこだわり「伝統は法律より厳しい」 八ツ橋創業年訴訟は続く https://www.sankeibi[...] 2020-07-07
[12] 웹사이트 「京都八ツ橋商工業協同組合」の店舗一覧 http://kyoto-okashi.[...] 京都府菓子工業組合
[13] 웹사이트 京都「八ツ橋」の老舗同士が裁判…同じ“1689年創業”の老舗が語る“根拠” https://www.fnn.jp/a[...] FNNプライムオンライン 2018-06-05
[14] 문서 사典 和菓子の世界 155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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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뉴스 京都八つ橋の乱勃発!老舗「井筒八ッ橋本舗」がライバルを提訴「1689年創業はウソ」 https://hochi.news/a[...] 2018-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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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문서 쇼고인 야쓰하시 총본점의 설명으로, 다리 모양을 본뜨고 있다는 이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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