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스터 왕당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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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얼스터 왕당파는 아일랜드 자치와 대영 제국으로부터의 독립에 반대하는 개신교도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1790년대 아일랜드 정치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19세기 말 아일랜드 자치 운동과 민족주의의 부상에 대응하여 등장했으며, 북아일랜드의 영국 잔류를 지지하며, 가톨릭 신자와의 갈등을 겪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의 북아일랜드 분쟁 동안 왕당파 준군사 조직은 폭력 행위에 연루되었으며, 성금요일 협정 이후에도 일부 준군사 조직은 활동을 지속했다. 현재는 민주연합당(DUP) 등 여러 정당과 관련되어 있으며, 친목 단체와 행진 밴드를 통해 문화적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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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스터 보수당과 연합당은 2009년 유럽 의회 선거에서 얼스터 보수당의 당선과 얼스터 연합당의 유럽 연합 잔류 지지, 그리고 2010년 영국 총선에서 얼스터 연합의 득표율 감소 및 2011년 북아일랜드 의회 선거에서 얼스터 연합당의 의석 확보와 연립 내각 구성 등의 정치적 활동을 보여주었다.
얼스터 왕당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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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 | |
유형 | 민족주의, 정치 이념 |
지지 기반 | 얼스터 개신교 공동체, 특히 노동자 계급 |
목표 | 북아일랜드의 영국 잔류, 얼스터 개신교 문화 및 정체성 유지 |
이념 및 정치 | |
핵심 신념 | 영국 연합주의, 충성주의, 개신교 근본주의 |
관련 이념 | 보수주의, 우익 포퓰리즘, 반공주의 (역사적) |
정치적 입장 | 우익 |
방법 | 정치적 로비, 시위, 준군사 조직 활동 (역사적) |
역사적 배경 | |
기원 | 17세기 얼스터 식민지화 |
주요 사건 | 북아일랜드 분쟁, 굿 프라이데이 협정 |
현재 상황 | 정치적 영향력 감소, 준군사 조직 해체 |
문화 및 사회 | |
상징 | 얼스터 배너, 영국 국기, 오렌지 기사단 |
문화 행사 | 7월 12일 행진 (오렌지 오더) |
사회적 특징 | 강한 공동체 의식, 종교적 보수주의 |
지리적 분포 | |
주요 지역 | 북아일랜드, 특히 벨파스트, 앤트림, 다운 주 |
관련 지역 | 스코틀랜드 서부 (역사적 연관성) |
주요 인물 및 조직 | |
관련 단체 | 오렌지 오더, 얼스터 방위 협회, 얼스터 의용군, 진보 연합당, 민주 연합당 |
2. 역사
얼스터 왕당파는 19세기 후반, 아일랜드 자치 운동과 가톨릭 아일랜드 민족주의에 대한 반발로 나타났다. 아일랜드 대부분은 가톨릭 토착민이었지만, 얼스터 지방은 스코틀랜드 이주민의 후손인 프로테스탄트가 거의 과반수였다. 얼스터는 아일랜드 다른 지역보다 산업화되어 영국과의 무역에 크게 의존했다. 왕당파는 독립된 아일랜드의 일부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 얼스터 프로테스탄트의 민족 자결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아일랜드 가톨릭교도 중에도 연합주의자가 있었지만, 왕당파는 프로테스탄트와 영국의 유산을 강조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1921년 아일랜드 분할로 이어졌다. 아일랜드 대부분은 독립 국가가 되었고, 얼스터의 약 3분의 2는 북아일랜드라는 자치령으로 영국에 남았다.
분할 이후, 대부분의 왕당파는 북아일랜드가 영국의 일부로 남는 것을 지지해 왔다. "연합주의자"와 "왕당파"라는 용어는 종종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된다. 왕당파는 영국 정부나 제도보다는 주로 프로테스탄트 영국 왕정에 충성한다고 표현된다.[68] 개릿 피츠제럴드는 왕당파가 "연방"이 아닌 "얼스터"에 주로 충성한다고 주장했다.[69] 소수의 왕당파는 영국 정부에 의존할 수 없다고 믿고, 독립된 얼스터 프로테스탄트 국가를 요구한다.
북아일랜드에는 프로테스탄트 충성파의 마칭 밴드 전통이 있다. 수백 개의 밴드가 있으며, 매년 다수의 퍼레이드를 한다. "로열리스트"라는 단어는 1790년대 아일랜드 정치에서 가톨릭 해방과 아일랜드의 영국 독립에 반대하는 개신교도를 지칭하기 위해 처음 사용되었다.[70] 한국어에서는 "영국 왕당파", "왕국 충성파"라고도 번역된다.
1921년 아일랜드 분할 당시, 얼스터 지방 9개 카운티 중 6개는 아일랜드 자유국(후의 아일랜드)에 가입하지 않고 영국에 남았다. 1926년 기록에 따르면, 북아일랜드 인구의 33.5%가 로마 가톨릭이었고, 62.2%가 3대 개신교(장로교 31.3%, 아일랜드 성공회 27%, 감리교 3.9%)에 속했다.[71]
북아일랜드 가톨릭 신자(아일랜드 통일 지지)와 개신교 신자(영국 잔류 지지) 사이의 긴장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분쟁"으로 알려진 유혈 사태를 지속했다.
2. 1. 초기 역사 (1790년대 ~ 19세기 말)
"얼스터 왕당파"라는 용어는 1790년대 아일랜드 정치에서 가톨릭 해방과 대영 제국으로부터의 아일랜드 독립에 반대하는 개신교도들을 지칭하면서 처음 사용되었다.[11]19세기 말, 아일랜드 자치 운동과 아일랜드 민족주의가 부상하면서 얼스터 왕당파가 나타났다. 당시 아일랜드는 연합 왕국의 일부였다. 아일랜드 섬 전체에는 자치를 원하는 아일랜드 가톨릭교도가 다수였지만, 북부 얼스터 지역은 영국과의 긴밀한 연합을 유지하려는 개신교도가 다수였다. 이러한 정치적 전통은 연합주의라고 불렸다. 이는 주로 얼스터 플랜테이션 때문이었다. 동부 얼스터는 아일랜드의 다른 지역보다 산업화가 더 진행되었고, 영국과의 무역에 더 의존했다. 모든 연합주의자가 개신교도이거나 얼스터 출신은 아니었지만, 왕당파는 얼스터 개신교 유산을 강조했다. 이들은 가톨릭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에게 지배될 것이라고 믿고 자치 아일랜드의 일부가 되기를 원치 않았던 얼스터 개신교도의 자기 결정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2. 2. 홈룰 위기와 분할 (1912년 ~ 1926년)
1912년 영국 정부가 세 번째 자치법안을 도입하면서 홈룰 위기가 발생했다. 얼스터 서약에 서명한 얼스터 연합주의자들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아일랜드 자치에 반대할 것을 다짐했다. 그들은 대규모 준군사 조직인 얼스터 의용군(UVF)을 창설하여 얼스터에 대한 아일랜드 정부의 권한에 폭력적으로 저항하겠다고 위협했다. UVF는 독일 제국에서 수천 정의 소총과 탄약을 얼스터로 밀수했다.[12] 이에 대응하여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은 홈룰 시행을 보장하기 위해 아일랜드 의용군을 창설했다. 홈룰은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발발로 연기되었고, 충성파와 민족주의자 모두 전쟁에 참전했으며, 많은 얼스터 의용군이 제36 (얼스터) 사단에 합류했다.
전쟁이 끝날 무렵, 대부분의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은 완전한 독립을 원했다. 1918년 총선에서 아일랜드 의석 대부분을 차지한 아일랜드 공화주의자들은 아일랜드 공화국을 선포했고, 이로 인해 아일랜드 공화국군(IRA)과 영국군 간의 아일랜드 독립 전쟁이 발발했다. 한편, 네 번째 자치법안은 1920년 영국 의회를 통과했다. 이 법안은 아일랜드를 영국 내 두 개의 자치 정치체로 아일랜드 분할했는데, 하나는 프로테스탄트가 다수인 북아일랜드였고, 다른 하나는 가톨릭이 다수인 남아일랜드였다.
1920년부터 1922년까지, 북아일랜드가 된 지역에서는 분할에 찬성하고 반대하는 양측에서 모두 폭력이 수반되었다. 벨파스트에서는 주로 프로테스탄트 충성파와 가톨릭 민족주의 민간인들 사이에 "잔혹하고 전례 없는" 공동체 폭력이 발생했다.[12] 충성파는 IRA의 행동에 대한 보복으로 가톨릭 소수를 공격했다. 수천 명의 가톨릭 신자와 "불충"한 프로테스탄트가 특히 조선소에서 일자리를 잃었고, 리스번과 밴브리지에서 가톨릭 주택과 사업체가 대량 방화되었다.[13] 분할 기간 동안 북아일랜드에서 500명 이상이 사망했으며,[14] 1만 명 이상이 난민이 되었는데, 그들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였다.[15]
1926년, 북아일랜드 인구의 약 33~34%가 로마 가톨릭 신자였으며, 62%는 세 주요 프로테스탄트 교파 (장로교 31%, 아일랜드 교회 27%, 감리교 4%)에 속했다.[16]
2. 3. 분쟁 시기 (The Troubles, 1960년대 후반 ~ 1998년)

얼스터 왕당파는 1921년부터 1972년까지의 북아일랜드 정부가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와 가톨릭 소수자를 차별하면서 시작되었다. 1960년대 후반, 비폭력적인 북아일랜드 시민권 협회가 차별을 종식시키기 위한 운동을 시작했다. 왕당파는 이 시민권 운동에 반대했는데, 그들은 이 운동을 공화주의 전선이라고 비난했다.[17] 왕당파의 반대 운동은 주로 개신교 근본주의 설교자인 이안 페이즐리가 이끌었다. 그들은 맞불 시위를 벌였고, 시민권 행진을 공격했으며, 온건한 연합주의자들에게 압력을 가했다. 왕당파 무장 세력은 공화주의자와 시민권 운동가에게 책임을 돌리기 위해 위장 기습 폭탄 테러를 자행했다.[18][19] 이러한 불안으로 인해 1969년 북아일랜드 폭동이 발생했다. 아일랜드 민족주의자/공화주의자들은 경찰과 왕당파 모두와 충돌했으며, 왕당파는 수백 채의 가톨릭 가옥과 사업체를 불태웠다.[20] 이 폭동으로 영국군이 투입되었고, 이는 종종 더 트러블스의 시작으로 여겨진다.
더 트러블스의 시작은 왕당파 준군사 조직의 부활을 가져왔는데, 특히 얼스터 자원군 (UVF)과 얼스터 방위 협회 (UDA)가 두드러졌다. 그들의 명시된 목표는 개신교 지역을 방어하고, "얼스터의 적" (즉, 공화주의자)으로 간주하는 사람들과 싸우며,[21] 아일랜드 통일로 향하는 모든 단계를 좌절시키는 것이었다. 임시 아일랜드 공화국군 (IRA)은 북아일랜드에서 영국군의 철수를 강요하기 위해 준군사 작전을 벌였다. 왕당파 준군사 조직은 IRA의 행동에 대한 보복으로 가톨릭 공동체를 공격했고, 희생자의 대다수는 무작위로 선택된 가톨릭 민간인이었다.[22] 더 트러블스 동안 영국 보안군은 왕당파 준군사 조직과 공모하는 사건이 있었고,[23] 예를 들어 글레난 갱의 공격이 있었다.
1973년에 서명된 서닝데일 협정은 연합주의자와 아일랜드 민족주의자 간의 권력 분점 정부를 수립하고, 아일랜드 공화국과의 더 큰 협력을 보장함으로써 분쟁을 종식시키려 했다. 이에 항의하여 왕당파는 1974년 5월 얼스터 노동자 평의회 파업을 조직했다. 이는 왕당파 준군사 조직에 의해 시행되었고, 북아일랜드의 상당 부분을 마비시켰다. 파업 동안 왕당파는 아일랜드 공화국 내 더블린과 모나한에서 일련의 차량 폭탄 테러를 감행했다. 이로 인해 34명의 민간인이 사망했으며, 이는 더 트러블스 기간 중 가장 치명적인 공격이었다. 이 파업으로 협정과 권력 분점 정부가 무너졌다.[24]
왕당파는 1985년 영국-아일랜드 협정에 반대하는 주요 시위 운동에 참여했다. 그들은 이 협정을 주권 침해로 간주했는데, 이는 아일랜드 공화국에 일부 북아일랜드 문제에 대한 자문 역할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많은 거리 시위로 인해 왕당파와 로열 얼스터 경찰 (RUC) 간의 충돌이 발생했는데, 왕당파는 RUC가 협정을 시행하고 개신교 공동체를 배신했다고 비난했다. 이로 인해 왕당파와 경찰 사이에 균열이 생겼고, 시위 동안 경찰관의 집에 대한 수많은 왕당파 공격이 발생했다.[25]
1980년대 후반부터 영국-아일랜드 협정에 대한 분노를 부분적인 이유로 왕당파 준군사 폭력이 증가했다.[26] 이는 또한 브라이언 넬슨이라는 영국 정보 요원이 감독하여 남아프리카로부터 밀수된 무기로 왕당파 단체가 재무장한 결과이기도 했다.[27] 1992년부터 1994년까지 왕당파는 공화주의자보다 더 많은 살인을 저질렀다.[28] 이 기간 동안 가장 치명적인 공격은 UDA의 그레이스틸 학살과 UVF의 로기니슬랜드 학살이었다.
주요 왕당파 준군사 조직은 임시 IRA의 휴전과 북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 시작 직후인 1994년에 휴전을 선언했다. 이 휴전은 1990년대 중후반의 드럼크리 분쟁 동안 긴장되었다. 개신교 오렌지 기사단은 가톨릭 지역인 포타다운을 통과하는 전통적인 행진 경로를 행진할 수 없게 되었다. 가톨릭 주민들은 매년 행진에 대한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이를 득의양양하고 우월주의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경찰이 행진을 중단하도록 강요했다.[29] 왕당파는 이를 얼스터 개신교 전통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북아일랜드 전역에서 폭력 시위를 벌였다. 포타다운에서는 수천 명의 왕당파가 가톨릭 지역을 지키는 경찰과 군인들을 공격했다. 새로운 UVF 분파인 왕당파 자원군 (LVF)은 휴전을 선언하기 전 2년 동안 가톨릭 신자들을 공격했다.[29]
2. 4. 성금요일 협정 이후 (1998년 ~ 현재)
1998년 성금요일 협정 협상에 왕당파 대표들이 참여했으며, 이는 진보연합당(UVF 연계)과 얼스터 민주당(UDA 연계)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협정에 대한 더 광범위한 왕당파의 지지는 처음부터 미약했으며,[30] 이들 정당은 협정을 지지하는 UUP와 협정을 반대하는 DUP와 같은 주요 연합당보다 훨씬 적은 표를 얻었다.[30]협정 이후 왕당파 준군사 조직은 폭동, 왕당파 간의 분쟁, 조직 범죄,[30] 자경 활동(예: 처벌 사격) 및 인종 차별 공격에 연루되었다.[31][32] 일부 UDA 및 LVF 여단은 휴전을 깨고 레드 핸드 디펜더스라는 이름으로 가톨릭 신자를 공격했지만, 준군사적 캠페인은 재개되지 않았다.
2001년 홀리 크로스 시위는 왕당파가 어린 가톨릭 학동과 부모에게 욕설과 미사일, 일부 폭발물, 다른 것에는 배설물을 던지는 모습이 전 세계적으로 비난을 받았다. 왕당파 주민들은 이 지역 가톨릭 신자의 종교 차별 혐의에 항의하며 학교를 점거했다.[30] 2005년 화이트록 폭동과 같이 오렌지 행진에 대한 제한으로 인해 많은 다른 왕당파 시위와 폭동이 촉발되었다. 광범위한 왕당파 2012-13년 깃발 시위와 폭동은 벨파스트 시의회가 시의회 건물에서 유니언 깃발 게양을 제한하기로 투표한 후에 발생했다. 왕당파는 이를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했다.[33]
왕당파 공동체 위원회는 2015년에 UVF와 UDA의 지원을 받아 출범했다. 이 위원회는 성금요일 협정 이후 노동 계급 왕당파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소외라고 인식하는 것을 되돌리려 한다.[34] 2021년에는 브렉시트의 결과로 북아일랜드와 영국 간의 무역 국경이 생겨 협정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이로 인한 여파는 그해 봄에 발생한 왕당파 폭동에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3. 정치
얼스터 왕당파는 19세기 후반 아일랜드 자치법과 가톨릭 아일랜드 민족주의의 부상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났다.[68] 얼스터 지방은 프로테스탄트가 다수였고, 아일랜드의 다른 지역보다 산업화가 더 진행되어 영국과의 무역에 크게 의존했다. 왕당파는 독립된 아일랜드의 일부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 얼스터 프로테스탄트 사이에서 일어난 민족 자결 운동이었다.
아일랜드 가톨릭교도 중에도 연합주의자가 있었지만, 왕당파는 프로테스탄트와 영국의 유산을 강조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1921년 아일랜드 분할로 이어졌다. 아일랜드의 대부분은 독립 국가가 되었고, 얼스터의 약 3분의 2는 북아일랜드라는 자치령으로 영국에 남았다.
분할 이후, 대부분의 왕당파는 북아일랜드가 영국의 일부로 남는 것을 지지한다. "연합주의자"와 "왕당파"라는 용어는 종종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된다. 왕당파는 영국 정부나 제도보다는 주로 프로테스탄트의 영국 왕정에 충성한다고 표현된다.[68] 개릿 피츠제럴드는 왕당파가 "연방"이 아닌 "얼스터"에 주로 충성한다고 주장했다.[69] 소수의 왕당파는 영국 정부에 의존할 수 없다고 믿고, 독립된 얼스터 프로테스탄트 국가를 요구하기도 한다.
"로열리스트"라는 단어는 1790년대 아일랜드 정치에서 가톨릭 해방과 아일랜드의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에 반대하는 개신교도를 지칭하기 위해 처음 사용되었다.[70] 한국어로는 "영국 왕당파", "왕국 충성파"라고도 번역된다.
1921년 아일랜드 분할 당시, 얼스터 지방 9개 카운티 중 6개는 영국에 남았다. 1926년 기록에 따르면, 북아일랜드 인구의 33.5%가 로마 가톨릭이었고, 62.2%가 3대 개신교(장로교 31.3%, 아일랜드 성공회 27%, 감리교 3.9%)에 속했다.[71] 북아일랜드의 가톨릭 신자(아일랜드 통일 지지)와 개신교 신자(영국 잔류 지지) 사이의 긴장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분쟁"으로 알려진 유혈 사태를 일으켰다.
북아일랜드에는 프로테스탄트 충성파의 마칭 밴드 전통이 있다. 수백 개의 밴드가 존재하며, 매년 다수의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3. 1. 정당
- 민주연합당(DUP)[35][36]: 북아일랜드 의회 내 두 번째로 큰 정당이다.
- 전통 연합당(TUV)[37]
- 진보 연합당(PUP): 얼스터 자원군(UVF) 및 레드 핸드 코만도(RHC)와 연관되어 있다.
- 개신교 연합 (2013–2015)
- 얼스터 민주당 (1981–2001)
- 얼스터 뱅가드(Vanguard Unionist Progressive Party) (1972–1978)
- 자원 봉사 정치당(Volunteer Political Party) (1974)
- 얼스터 개신교 연맹 (1930년대)
3. 2. 이념 및 주장
얼스터 왕당파는 19세기 후반 아일랜드 자치법과 가톨릭의 아일랜드 민족주의 부상에 대한 반발로 등장했다.[68] 얼스터 지방은 프로테스탄트가 다수였고, 다른 아일랜드 지역보다 산업화되어 영국과의 무역에 크게 의존했다. 왕당파는 독립된 아일랜드의 일부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 얼스터 프로테스탄트 사이에서 일어난 민족 자결 운동으로 시작되었다.[68]아일랜드 가톨릭교도 중에도 연합주의자가 있었지만, 왕당파는 프로테스탄트와 영국의 유산을 강조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1921년 아일랜드 분할로 이어져 아일랜드 대부분은 독립 국가가 되었고, 얼스터의 약 3분의 2는 북아일랜드라는 자치령으로 영국에 남았다.[68]
분할 이후, 대부분의 왕당파는 북아일랜드가 영국의 일부로 남는 것을 지지해 왔다. "연합주의자"와 "왕당파"라는 용어는 종종 서로 바꿔 쓰이기도 한다.[68] 왕당파는 영국 정부나 제도보다는 주로 프로테스탄트의 영국 왕정에 충성한다고 표현된다.[68] 개릿 피츠제럴드는 왕당파가 "연방"이 아닌 "얼스터"에 주로 충성한다고 주장했다.[69]
소수의 왕당파는 영국 정부에 의존할 수 없다고 믿고 독립된 얼스터 프로테스탄트 국가를 요구하기도 한다.[68]
"로열리스트"라는 단어는 1790년대 아일랜드 정치에서 가톨릭 해방과 아일랜드의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에 반대하는 개신교도를 지칭하기 위해 처음 사용되었다.[70] 한국어로는 "영국 왕당파", "왕국 충성파"라고도 번역된다.
1921년 아일랜드가 분할되었을 때, 얼스터 지방의 9개 카운티 중 6개는 영국에 남았다. 1926년 기록에 따르면, 북아일랜드 인구의 33.5%가 로마 가톨릭이었고, 62.2%가 3대 개신교(장로교 31.3%, 아일랜드 성공회 27%, 감리교 3.9%)에 속했다.[71]
북아일랜드의 가톨릭 신자 (아일랜드 통일 지지)와 개신교 신자 (영국 잔류 지지) 사이의 긴장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분쟁"으로 알려진 유혈 사태를 일으켰다.
4. 무장 투쟁
얼스터 왕당파 무장 단체 및 자경단은 20세기 초부터 활동해 왔다. 1912년 얼스터 의용군은 영국 정부가 아일랜드에 자치를 허용하거나 얼스터를 제외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결성되었다. 이는 홈룰 위기로 이어졌고, 제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위기가 완화되었다. 왕당파 무장 단체는 아일랜드 독립 전쟁 (1919–22) 동안[38], 그리고 더 두드러지게는 분쟁 (1960년대 후반–1998) 동안 얼스터에서 다시 활동했다. 가장 크고 활동적인 무장 단체는 분쟁 중에 존재했으며, 얼스터 의용군(UVF)과 얼스터 방위 연합(UDA)/얼스터 자유 투사(UFF)가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의 다른 왕당파 무장 단체와 함께 테러 조직으로 분류된다.
분쟁 기간 동안 그들의 명시된 목표는 아일랜드 공화주의 — 특히 임시 아일랜드 공화군(IRA) — 에 맞서 싸우고 프로테스탄트 왕당파 지역을 방어하는 것이었다.[39][40] 그러나 희생자 대부분은 아일랜드 가톨릭 민간인이었고, 종종 종교 분쟁 공격으로 무작위로 살해되었다.[41][39] 왕당파는 일반적으로 표적이 된 사람들이 IRA 구성원이거나 IRA를 돕고 있다고 주장했다.[42] M.L.R. 스미스는 "처음부터 왕당파 무장 단체는 모든 가톨릭 신자를 잠재적 반군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썼다.[43] 때로는 가톨릭 민간인에 대한 공격이 IRA의 행동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했는데, IRA가 가톨릭 공동체로부터 대부분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39][41][44]
왕당파 무장 단체는 분쟁에서 모든 사망자의 29%를 차지했으며,[48] 모든 민간인 사망자의 약 48%를 차지했다.[49] 이들은 공화파 무장 단체와 영국 보안군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민간인을 살해했다.[50]
이들의 ''수법''은 암살, 대량 총격, 폭탄 테러 및 납치를 포함했다. 기관단총, 돌격 소총, 권총, 수류탄 (수제 수류탄 포함), 소이탄, 부비트랩 폭탄 및 자동차 폭탄을 사용했다. 폭탄 공격은 일반적으로 경고 없이 이루어졌으나, 총기 공격이 폭탄 테러보다 더 흔했다.[45] 1994년 1월, UDA는 영국군이 북아일랜드에서 철수할 경우 시행될 '최후의 날 계획'을 수립했는데, 북아일랜드를 완전히 프로테스탄트로 만들기 위한 목표로 인종 청소와 아일랜드 재분할을 요구했다.[53]
일부 왕당파 무장 단체는 영국의 극우 및 신나치주의 단체와 연계되어 있었는데, 여기에는 컴뱃 18,[54][55] 영국 민족 사회주의 운동,[56] 및 국민 전선이 포함된다.[57] 1990년대 이후, 왕당파 무장 단체는 왕당파 지역에서 수많은 인종 차별 공격에 대한 책임을 져 왔다.[58]
1990년대에 주요 왕당파 무장 단체는 휴전을 선언했다.
4. 1. 준군사 조직 및 자경단
얼스터 왕당파는 1969년 북아일랜드 폭동을 거치며 북아일랜드 시민권 협회에 대항하고, 아일랜드 통일을 저지하기 위해 활동했다. 이 과정에서 얼스터 자원군(UVF), 얼스터 방위 협회(UDA) 등 준군사 조직이 부활했다.[21] 이들은 개신교 지역을 방어하고 "얼스터의 적"과 싸우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21]임시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의 활동에 대한 보복으로, 왕당파 준군사 조직은 가톨릭 공동체를 공격했으며, 희생자의 대다수는 무작위의 가톨릭 민간인이었다.[22] 더 트러블스 동안 영국 보안군은 왕당파 준군사 조직과 공모하기도 했다.[23]
1973년 서닝데일 협정에 항의하여 왕당파는 1974년 5월 얼스터 노동자 평의회 파업을 조직했고, 이 과정에서 더블린 및 모나한 폭탄 테러를 감행하여 34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24]
1985년 영국-아일랜드 협정에 반대하는 시위 과정에서 왕당파와 로열 얼스터 경찰(RUC) 간의 충돌이 발생했고, 이는 왕당파와 경찰 사이의 균열을 야기했다.[25]
1980년대 후반, 왕당파 준군사 폭력이 증가했으며,[26] 1992년부터 1994년까지 왕당파는 공화주의자보다 더 많은 살인을 저질렀다.[28] 이 기간 동안 가장 치명적인 공격은 UDA의 그레이스틸 학살과 UVF의 로기니슬랜드 학살이었다.
주요 왕당파 준군사 조직은 1994년에 휴전을 선언했지만, 드럼크리 분쟁 등으로 인해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새로운 UVF 분파인 왕당파 자원군(LVF)은 휴전을 선언하기 전 2년 동안 가톨릭 신자들을 공격했다.[29]
왕당파 무장 단체는 제1차 세계 대전 이전 얼스터 의용군 결성을 시작으로, 아일랜드 독립 전쟁 (1919–22) 동안, 그리고 더 트러블스 (1960년대 후반–1998) 동안 활동했다.[38] UVF와 UDA는 대부분의 다른 왕당파 무장 단체와 함께 테러 조직으로 분류된다.
분쟁 기간 동안 왕당파 무장 단체의 목표는 아일랜드 공화주의에 맞서 싸우고 프로테스탄트 왕당파 지역을 방어하는 것이었다.[39][40] 그러나 희생자 대부분은 아일랜드 가톨릭 민간인이었고, 종종 종교 분쟁 공격으로 무작위로 살해되었다.[41][39] 왕당파는 공격의 표적이 된 사람들이 IRA를 돕고 있다고 주장했다.[42]
왕당파 무장 단체는 분쟁에서 모든 사망자의 29%,[48] 민간인 사망자의 약 48%를 차지했다.[49] 이들은 공화파 무장 단체와 영국 보안군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민간인을 살해했다.[50]
왕당파 무장 단체는 기관단총, 돌격 소총, 권총, 수류탄, 소이탄, 부비트랩 폭탄 및 자동차 폭탄을 사용했다. 폭탄 공격은 일반적으로 경고 없이 이루어졌지만, 총기 공격이 더 흔했다.[45] 1994년 UDA는 인종 청소와 아일랜드 재분할을 요구하는 '최후의 날 계획'을 수립하기도 했다.[53]
일부 왕당파 무장 단체는 영국의 극우 및 신나치주의 단체와 연계되어 있었으며,[54][55][56][57] 1990년대 이후 왕당파 지역에서 수많은 인종 차별 공격에 대한 책임을 져 왔다.[58]
4. 2. 비판적 분석
얼스터 왕당파는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와 가톨릭 소수자에 대한 차별에서 비롯되었다. 1960년대 후반, 북아일랜드 시민권 협회의 비폭력 운동에 왕당파는 반대했고, 이 운동을 공화주의 전선이라고 비난했다.[17] 왕당파 무장 세력은 위장 기습 폭탄 테러를 자행하여 1969년 북아일랜드 폭동을 일으켰고, 수백 채의 가톨릭 가옥과 사업체를 불태웠다.[18][19][20]더 트러블스 동안 왕당파 준군사 조직은 "얼스터의 적"과 싸우고 아일랜드 통일을 막는 것을 목표로 했다.[21] 이들은 임시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의 행동에 대한 보복으로 가톨릭 공동체를 공격했고, 희생자의 대다수는 무작위의 가톨릭 민간인이었다.[22] 영국 보안군은 왕당파 준군사 조직과 공모하기도 했다.[23]
1974년 얼스터 노동자 평의회 파업 동안 왕당파는 더블린 및 모나한 폭탄 테러를 감행하여 더 트러블스 기간 중 가장 많은 민간인 사망자를 냈다.[24] 1985년 영국-아일랜드 협정에 반대하는 시위에서 왕당파는 로열 얼스터 경찰(RUC)과 충돌했고, 경찰관의 집에 대한 공격이 발생했다.[25]
1980년대 후반, 왕당파 준군사 폭력이 증가했고,[26] 1992년부터 1994년까지 왕당파는 공화주의자보다 더 많은 살인을 저질렀다.[28] 1994년, 주요 왕당파 준군사 조직은 휴전을 선언했지만, 드럼크리 분쟁 동안 긴장이 고조되었고, 왕당파 자원군(LVF)은 휴전 전까지 가톨릭 신자들을 공격했다.[29]
왕당파 무장 단체는 홈룰 위기와 아일랜드 독립 전쟁 때도 활동했고,[38] 분쟁 기간 동안 얼스터 의용군(UVF)과 얼스터 방위 연합(UDA)이 가장 컸으며, 이들은 테러 조직으로 분류된다.
분쟁 기간 동안 왕당파는 IRA에 맞서 싸우고 프로테스탄트 왕당파 지역을 방어하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39][40] 희생자 대부분은 가톨릭 민간인이었다.[41][39] 왕당파는 표적이 된 사람들이 IRA를 돕고 있다고 주장하거나,[42] 가톨릭 공동체에 대한 공격을 IRA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했다.[39][41][44]
왕당파 무장 단체는 분쟁에서 모든 사망자의 29%,[48] 민간인 사망자의 약 48%를 차지했고,[49] 공화파 무장 단체와 영국 보안군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민간인을 살해했다.[50] 얼스터 방위 연대(UDR)와 RUC는 왕당파와 공모했다.[51][52]
왕당파 무장 단체의 ''수법''은 암살, 대량 총격, 폭탄 테러 및 납치를 포함했고, 기관단총, 돌격 소총, 권총, 수류탄, 소이탄, 부비트랩 폭탄 및 자동차 폭탄을 사용했다. 폭탄 공격은 일반적으로 경고 없이 이루어졌고, 총기 공격이 더 흔했다.[45] 1994년, UDA는 인종 청소와 아일랜드 재분할을 요구하는 '최후의 날 계획'을 수립했다.[53]
일부 왕당파 무장 단체는 영국의 극우 및 신나치주의 단체와 연계되었고,[54][55][56][57] 1990년대 이후 왕당파 지역에서 수많은 인종 차별 공격에 대한 책임을 져 왔다.[58] 2006년 보고서에 따르면 이전 2년 동안 발생한 인종 차별 공격의 90%가 주로 왕당파 지역에서 발생했다.[59]
1990년대에 주요 왕당파 무장 단체는 휴전을 선언했지만, 소규모 분리 단체는 폭력적인 캠페인을 계속했고, 왕당파 단체의 구성원들은 산발적인 폭력을 계속 저질렀다.
5. 문화
북아일랜드에는 오렌지 결사단과 데리의 견습 소년단을 포함하여 매년 퍼레이드를 개최하는 다수의 개신교 단체와 행진 밴드가 있다. 이들은 "왕당파 단체"라고도 불리며, 열한 번째 밤 (7월 11일) 불꽃놀이와 12일 (7월 12일) 퍼레이드와 같은 연례 행사는 왕당파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8][61][62]
5. 1. 친목 단체 및 행진 밴드
북아일랜드에는 매년 퍼레이드를 개최하는 다수의 개신교 단체와 행진 밴드가 있다. 여기에는 오렌지 결사단과 데리의 견습 소년단이 포함된다. 종종 "왕당파 단체"라고 묘사되는 이들 단체는 오랫동안 유니오니즘/왕당파와 연관되어 왔다.[8][61] 열한 번째 밤 (7월 11일) 불꽃놀이[62]와 12일 (7월 12일) 퍼레이드와 같은 연례 행사는 왕당파와 강력하게 연관되어 있다.2013년에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북아일랜드에는 최소 640개의 행진 밴드가 있으며 총 회원 수는 약 30,000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63] 퍼레이드 위원회에 따르면 2007년 북아일랜드에서 총 1,354개의 왕당파 퍼레이드(장례식 제외)가 열렸다.[64] 북아일랜드 경찰청은 다른 통계를 사용하며, 2007년에 총 2,863개의 퍼레이드를 기록했다. 이 중 2,270개(약 80%)는 왕당파 행진 밴드에서 주최했다.[65]
5. 2. 사회적 영향
북아일랜드에는 오렌지 결사단과 데리의 견습 소년단을 포함하여 매년 퍼레이드를 개최하는 다수의 개신교 프래터니티와 행진 밴드가 있다. 이들 프래터니티는 "왕당파 단체"라고도 불리며,[8] 오랫동안 유니오니즘/왕당파와 연관되어 왔다.[61] 열한 번째 밤 (7월 11일) 불꽃놀이[62]와 12일 (7월 12일) 퍼레이드와 같은 연례 행사는 왕당파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2013년 보고서에 따르면 북아일랜드에는 최소 640개의 행진 밴드가 있으며 총 회원 수는 약 30,000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63] 2007년 북아일랜드에서는 총 1,354개의 왕당파 퍼레이드(장례식 제외)가 열렸다고 퍼레이드 위원회는 밝혔다.[64] 반면 북아일랜드 경찰청은 다른 통계를 사용하여 2007년에 총 2,863개의 퍼레이드가 있었고 이 중 2,270개(약 80%)가 왕당파 행진 밴드에 의해 개최되었다고 기록했다.[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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