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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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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여우길은 조선 시대의 문신으로, 1591년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 정랑, 평안도 도사, 사간원 정언 등을 역임했다. 1596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으며,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 파견되어 포로 쇄환에 기여했다. 1607년에는 회답겸쇄환사로 일본을 방문하여 도쿠가와 히데타다를 알현하고 조선인 포로 송환 교섭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후 강원도 관찰사, 공홍도관찰사를 거쳐 경주부윤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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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길
기본 정보
한자 표기呂祐吉
로마자 표기Yeo Ugil
인물 정보
직업미상

2. 경력

여우길은 1591년(선조 24) 문과에 급제한 후, 명나라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되는 등 외교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보였다.[2] 1607년 조선통신사(회답겸쇄환사)로 일본을 방문, 에도성에서 도쿠가와 히데타다를 알현했다. 이 사절단은 조선 선조를 대표하여 파견되었으며, 양국 간 무역의 정치적 기반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3]

1607년 사절단은 정사 여우길, 부사 경선 등 3명으로 구성되었고, 서기관이 상세한 기록을 담당했다.[5][6]

2. 1. 관직 생활

1591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병조 정랑, 평안도 도사,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 장령, 성균관 직강 등 중앙과 지방의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596년에는 사절의 한 명으로서 나라에 파견되었다. 1603년 밀양부사를 거쳐 첨지중추부사를 지냈는데, 임진왜란이 끝난 후 사신으로서 일본에 내왕하면서 포로 쇄환 등의 공을 세웠다. 이후 연안부사, 평안도안무사를 지냈다.

1614년에 다시 진위사로서 명나라에 다녀왔다. 강원도 관찰사를 거쳐 1618년 공홍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623년 경주부윤(종2품)으로 부임했다.

2. 2. 외교 활동

1596년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2]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포로 쇄환 등의 공을 세웠다. 1607년 회답겸쇄환사(回答兼刷還使)로서 일본에 파견되어 도쿠가와 히데타다를 알현하고, 조선인 포로 송환 교섭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 이는 당시 경색되었던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4] 1607년 사절단에는 여우길 외에 경선이 부사절로 참여하였다.[6] 1614년 (광해군 6) 다시 진위사(陳慰使)로 명나라에 파견되었다.

3. 가족 관계

관계이름
증조부여세침
조부여숙
여순원
이영의 딸


참조

[1] 서적 Korea in the middle: Korean studies and area studies 2007
[2] 서적 Diplomacy and Ideology in Japanese-Korean Relations: from the Fifteenth to the Eighteenth Century 1997
[3] 논문 Foreign Affairs and Frontiers in Early Modern Japan: A Historiographical Essay 2002
[4] 서적 Frontier contact between Chosŏn Korea and Tokugawa Japan https://books.google[...] 2003
[5] 서적 Korea in the middle: Korean studies and area studies 2007
[6] 서적 The culture of copying in Japan: critical and historical perspectives https://books.google[...]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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