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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브리티시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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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YBA)는 1990년대 영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젊은 예술가 그룹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1992년 처음 사용되었으며, 1980년대 후반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교를 중심으로 미술 학사 과정을 졸업한 데미안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세라 루카스 등을 포함한다. 이들은 찰스 사치의 후원을 받아 1988년 'Freeze' 전시를 시작으로, '센세이션' 전시 등을 통해 논란과 함께 영국 현대 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했다. YBA는 기존 미술계의 틀을 깨는 파격적인 작품과 마케팅으로 주목받았지만, 여성 예술가의 소외, 작품성에 대한 논란 등 긍정적, 부정적 평가를 동시에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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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브리티시 아티스트
기본 정보
다른 이름브릿아트 (Britart)
시작 시기1980년대 후반
종료 시기1990년대
일반적인 미디어설치
조각
회화
영향 받은 것개념미술
미니멀리즘
상업미술
팝 아트
영향을 준 것신 회화 (Neo-Painting)
신 조각 (Neo-Sculpture)
새로운 영국 조각 (New British Sculpture)
저명한 인물
관련 인물

2. 역사

"영국 젊은 예술가"(Young British Artists)라는 용어의 첫 사용 시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뉜다. 테이트[5]는 1992년 5월 아트포럼에 실린 마이클 코리스의 글에서 처음 사용되었다고 주장하는 반면,[6] 미술품 수집가 찰스 사치가 이미 1992년 3월 자신의 전시회 제목으로 "영국 젊은 예술가 I"을 사용했다는 주장도 있다.[7] "YBA" 또는 "yBa"라는 약어는 1994년에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8] 이 그룹의 작가 대부분이 1960년대 중반에 태어났기 때문에, 현재 "영국 젊은 예술가"는 역사적인 용어로 간주된다.[9]

2. 1. 등장 배경

"영국 젊은 예술가"(Young British Artists, YBA)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시점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견 차이가 있다. 테이트[5]는 1992년 5월 아트포럼에 실린 마이클 코리스의 글 각주에서 이 용어가 처음 등장했다고 본다.[6] 반면, 찰스 사치가 이미 1992년 3월 자신의 전시회 제목으로 "영국 젊은 예술가 I" (Young British Artists I)을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시각도 있다.[7] "YBA" 또는 "yBa"라는 약어는 1994년에 처음 사용되었다.[8] 대부분의 YBA 작가들이 1960년대 중반에 태어났으므로, 현재 이 용어는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9]

YBA의 핵심 작가들은 1988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미술 학생이었던 시절은 마거릿 대처 정권 하에서 미술에 대한 정부 지원이 삭감되었고, 기존 화상들은 젊은 영국 작가들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88년 7월, 런던 동부 도클랜즈의 비어있던 항만국 건물(종종 '창고'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항만국 청사)에서 16명의 골드스미스 칼리지 학생들이 직접 기획한 전시 '프리즈(Freeze)'가 열렸다. 이 전시의 주된 기획자는 당시 2학년이었던 데이미언 허스트였다. 런던 도클랜즈 개발 공사와 개발업체 올림피아 & 요크의 후원으로 수준 높은 카탈로그까지 제작되었으나, 당시 영국의 주요 화랑들은 이 전시에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골드스미스의 강사이자 학생들의 스승이었던 마이클 크레이그-마틴은 자신의 인맥을 활용하여 런던 미술계의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초대했고, 큐레이터 노먼 로젠탈과 니콜라스 세로타 등이 전시를 관람했다. 또한, 이후 YBA의 강력한 후원자가 되는 컬렉터 찰스 사치(사치 앤드 사치 광고 대행사 경영자, 사치 갤러리 소유주)도 이 전시에서 허스트 등을 만나게 되었다.

'프리즈' 전시는 화랑이나 미술관이 아닌,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는 창고 같은 "얼터너티브 스페이스"를 활용한 작가 주도 기획 전시의 시초가 되었다. 이는 당시 창고를 점거하여 레이브 파티를 여는 등 서브컬처의 흐름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었다.

허스트의 리즈 시절 친구이자 그의 첫 전시를 도왔던 칼 프리드먼은 빌리 셀먼과 함께 1990년, 런던 버몬지의 빈 공장 건물에서 '모던 메디슨(Modern Medicine)'과 '갬블러(Gambler)'라는 두 개의 영향력 있는 전시를 기획했다. '모던 메디슨' 전시를 위해 그들은 찰스 사치를 비롯한 영국 미술계 인사들로부터 1000GBP의 후원을 받았으나,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사우스 런던의 시티 레이싱과 같은 비영리 얼터너티브 스페이스는 많은 젊은 미술가들에게 첫 전시 기회를 제공했다. 이스트 런던의 혹스턴과 쇼디치 지역에서는 조슈아 콤스턴의 갤러리가 이들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1991년에는 공공 미술관인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허스트의 기획으로 신세대 미술가들을 조명하는 첫 전시 '브로큰 잉글리시(Broken English)'가 열렸다. 결정적으로 1992년, 찰스 사치는 자신의 사치 갤러리에서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라는 제목의 연작 전시를 시작했다. 제1회 전시에서는 데이미언 허스트, 사라 루카스, 마크 워린저, 레이철 화이트리드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YBA의 두 번째 물결은 1992년부터 1993년 사이에 '뉴 컨템포러리즈(New Contemporaries)', '뉴 브리티시 서머타임(New British Summertime)', '민키 맹키(Minky Manky)'와 같은 전시들을 통해 등장했다. 이 그룹에는 더글러스 고든, 트레이시 에민, 크리스틴 볼랜드, 피오나 배너, 타시타 딘, 조지나 스타, 윌슨 시스터스 등이 포함된다.

YBA 작가 중에는 Liam Gillick|리암 길릭eng이나 Angela Bulloch|앤젤라 불록eng처럼 사회적 실천과 연계하여 활동하는 이들도 있었다. 길릭은 경제나 노동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설치 미술 작업을 선보였다.

2. 2. Freeze 전시 (1988)

1988년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YBAs)의 핵심 작가들이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영국은 마거릿 대처 정권 하에서 미술에 대한 공적 지원이 삭감되었고, 기존 화랑들도 젊은 영국 미술가들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1988년 7월, 16명의 골드스미스 대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런던 도클랜즈의 설리 상업 도크에 위치한 항만국의 빈 건물(종종 "창고"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항만국 청사)에서 자주 기획 전시회인 ''Freeze''를 개최했다. 이 전시회의 주요 기획자는 당시 골드스미스 대학교 순수 미술 학사 과정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데이미언 허스트였다.

''Freeze'' 전시에 참여한 주요 작가는 다음과 같다.

  • 데이미언 허스트
  • 세라 루커스
  • 안젤라 불럭
  • 맷 콜리쇼
  • 이안 데이븐포트
  • 앵거스 페어허스트
  • 아냐 갈라시오
  • 게리 흄
  • 마이클 랜디
  • 아비가일 레인
  • 랄라 메레디스 불라
  • 리차드 패터슨
  • 스티브 파크
  • 피오나 래


상업 갤러리들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전시는 저렴한 비예술 공간에서 열렸다. 런던 도클랜즈 개발 공사와 당시 도클랜즈 개발에 참여하던 개발업체 올림피아 & 요크가 전시를 후원했으며, 매우 수준 높은 카탈로그도 제작되었다. 이 행사는 당시 유행했던 '애시드 하우스' 창고 레이브 문화와 공명하는 면이 있었지만, 주요 언론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골드스미스의 강사이자 학생들의 스승이었던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자신의 인맥을 동원하여 런던 미술계의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전시회에 초대했다. 큐레이터 노먼 로젠탈과 니콜라스 세로타 등이 전시를 방문했으며, 이후 YBAs의 중요한 후원자가 되는 아트 컬렉터 찰스 사치(사치 갤러리 소유주) 역시 이 전시회에서 허스트 등을 소개받았다.

''Freeze'' 전시는 화랑이나 미술관이 아닌,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는 창고 부지 같은 "얼터너티브 스페이스"를 활용한 예술가 기획형 전시의 시초가 되었다. 또한 예술가가 직접 큐레이터 역할을 수행하는 사례를 제시하며, 1990년대 중반 런던 미술계에서 예술가들이 직접 운영하는 전시 공간과 갤러리가 활성화되는 특징을 만드는 데 영향을 미쳤다.[10]

2. 3. 기타 초기 전시

1988년 당시 미술계는 마거릿 대처 정권 하에서 공적 지원이 줄어든 상태였고, 기존 화상들은 영국의 젊은 미술가들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10] 이러한 상황에서 미술 학생이었던 YBA 작가들은 스스로 전시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1988년 7월, 골드스미스 대학교 2학년이던 데미안 허스트가 주도하여 16명의 학생들과 함께 런던 도클랜즈의 빈 행정 건물(흔히 '창고'로 불림)에서 개최한 ''Freeze'' 전시이다.[10] 런던 도클랜즈 개발 공사와 개발업체 올림피아 & 요크의 후원으로 수준 높은 카탈로그도 제작되었지만, 상업 화랑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하지만 골드스미스의 강사 마이클 크레이그-마틴의 도움으로 큐레이터 노먼 로젠탈, 니콜라스 세로타, 그리고 훗날 YBA의 주요 후원자가 되는 컬렉터 찰스 사치 등이 전시를 방문했다.[10] 이 전시는 값싼 비미술 공간을 활용하고 당시 유행하던 '애시드 하우스' 레이브 문화와도 연결되었으며,[10] 예술가가 직접 큐레이팅하는 모델을 제시하여 1990년대 중반 런던 미술계의 특징이 된 예술가 운영 공간의 시초가 되었다.[10]

앵거스 페어허스트는 데미안 허스트, 애비게일 레인, 맷 콜리쇼와 함께 런던 대학교 블룸스버리 갤러리에서 "Progress by Degree"라는 소규모 전시를 열었다.[11] 한편, 허스트의 친구였던 칼 프리드먼과 빌리 셀먼은 1990년 버몬지의 공장 건물 '빌딩 원'에서 ''모던 메디신''과 ''갬블러''라는 두 개의 영향력 있는 창고 전시를 기획했다. 이들은 ''모던 메디신'' 전시를 위해 찰스 사치 등으로부터 1000GBP의 후원을 받았으나, 프리드먼은 이 초기 전시들에 많은 관람객이 오지는 않았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10]

1990년, 아냐 갈라치오의 설치 작품이 앞에 있는 ''이스트 컨트리 야드 쇼''의 모습.


같은 해, 헨리 본드와 사라 루카스는 런던 도클랜즈의 사용되지 않는 창고에서 4층 규모, 16000m2 면적의 ''이스트 컨트리 야드 쇼''를 기획했다. 미술 평론가 앤드루 그레이엄-딕슨은 더 인디펜던트에 기고한 글에서 이들 젊은 작가들의 자주적인 전시 기획을 높이 평가하며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 "골드스미스 졸업생들은 자신과 자신의 작품을 홍보하는 데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중략) ... 야망, 전시 방식에 대한 관심, 순전한 대담함의 측면에서 볼 때, 이러한 전시와 견줄 만한 것이 영국의 기존 현대 미술 기관에는 거의 없었다... (중략) ... 그들은 리버풀 테이트가 자체적으로 수백만 파운드를 투자한 도클랜드 부지에서 개최한 모든 현대 미술 전시보다 훨씬 뛰어났다."[12]

런던 오벌의 시티 레이싱이나 밀흐(Milch) 같은 기존의 대안 공간들과 혹스턴/쇼디치 지역의 조슈아 콤프턴 갤러리 등도 초기 YBA 작가들에게 전시 기회를 제공했다.[10] 1991년, 공영 미술관 서펜타인 갤러리는 허스트의 기획으로 'Broken English' 전시를 개최하여 이 새로운 세대의 예술가들을 조명했다.[10] 이듬해인 1992년부터는 찰스 사치가 자신의 갤러리에서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Young British Artists)''라는 제목의 연작 전시를 시작했으며, 첫 전시에는 데미안 허스트, 사라 루카스, 마크 워린저, 레이철 화이트리드 등의 작품이 포함되었다.[10]

YBA의 두 번째 물결은 1992년에서 1993년에 걸쳐 'New Contemporaries', 'New British Summertime', 'Minky Manky'(칼 프리드먼 기획) 등의 전시회를 통해 등장했다.[10] 여기에는 더글러스 고든, 크리스틴 볼런드, 피오나 배너, 트레이시 에민, 타시타 딘, 조지나 스타 및 제인 앤 루이스 윌슨 등이 포함된다.[10] YBA 작가 중 리암 길릭이나 앤젤라 불록처럼 사회적 실천과 연계하여 활동하는 작가도 있었다. 길릭은 경제나 노동 등을 비판하는 설치 미술을 제작했다.[10]

2. 4. 찰스 사치의 후원과 YBAs의 부상

1988년, 골드스미스 칼리지의 미술 학생들이 주축이 된 YBAs는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영국 미술계는 마거릿 대처 정권 하에서 공적 지원이 삭감되었고, 기존 화상들은 영국의 젊은 미술가들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5] 같은 해 7월, 데미안 허스트를 중심으로 한 16명의 골드스미스 학생들은 런던 동부 도클랜즈의 빈 항만국 건물을 빌려 자주 기획 전시회 '프리즈'를 개최했다. 이 전시는 런던 도클랜즈 개발 공사 등의 후원을 받아 수준 높은 카탈로그까지 제작되었으나, 당시 영국의 화랑들은 여전히 무관심했다. 하지만 골드스미스의 강사였던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노력으로 큐레이터 노먼 로젠탈과 니콜라스 세로타 등이 전시를 방문했고, 이때 아트 컬렉터이자 사치 앤드 사치 광고 대행사의 공동 창립자인 찰스 사치가 허스트 등을 소개받았다. 이는 화랑이나 미술관이 아닌 창고 같은 "얼터너티브 스페이스"를 활용한 예술가 주도 전시의 시작이었으며, 당시 서브컬처였던 레이브 파티 문화와도 연결되었다.

허스트의 친구인 칼 프리드먼은 빌리 셀먼과 함께 1990년 런던 버몬지의 빈 공장에서 '모던 메디슨(Modern Medicine)'과 '갬블러(Gambler)'라는 두 개의 중요한 전시를 기획했다. 이들은 '모던 메디슨' 전시를 위해 찰스 사치를 포함한 미술계 인사들로부터 1000GBP의 후원을 모으기도 했다. '갬블러' 전을 방문한 사치는 허스트의 첫 주요 동물 설치 미술 작품인 ''A Thousand Years'' (썩어가는 소머리와 구더기, 파리로 구성된 유리 상자)를 보고 크게 감명받아 구매했다. 이 작품은 훗날 ''센세이션 전시''에서도 주목받았다.

데미안 허스트의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1991). YBA 미술계의 상징적인 작품.


1990년대 초, 영국의 현대 미술 시장은 경제 침체로 인해 심각하게 위축되었고 많은 상업 갤러리들이 문을 닫았다. 이전까지 앤디 워홀, 리처드 세라, 안젤름 키퍼, 지그마르 폴케, 게르하르트 리히터 등 주로 미국과 독일의 유명 작가 작품을 수집했던 사치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영국의 젊고 무명인 예술가들에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는 기존 컬렉션을 시장에 내놓으며 이들 작가의 시세에 영향을 줄 정도로 YBA 작품 수집에 집중했다. 이는 당시 큰 화제가 되었다. 사치는 런던 북부 세인트 존스 우드에 있는 대형 공장 건물을 개조하여 사치 갤러리를 이전했고, 이곳의 넓은 공간은 젊은 예술가들이 기존의 소규모 갤러리에서는 전시하기 어려웠던 대형 컨셉 미술 작품을 제작하도록 고무했다.[14]

1992년부터 사치는 자신의 갤러리에서 "영국 젊은 예술가들(Young British Artists)"이라는 제목의 전시 시리즈를 시작했다. 이 전시명은 곧 이 세대의 예술가들을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제1회 전시에서는 데미안 허스트, 사라 루카스, 마크 워린저, 레이철 화이트리드 등이 소개되었다. 특히 허스트의 상어 작품(''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은 이 전시를 통해 큰 주목을 받으며 1990년대 영국 미술과 브리트아트 전체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15][16]

사치의 후원은 YBAs가 재정적 안정을 얻고 미디어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치 본인의 유명세와 더불어, 그가 논쟁적이고 때로는 불쾌하게 여겨지는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에 거액을 투자하는 행위 자체가 큰 뉴스거리가 되어 고급지와 대중지 모두에서 다루어졌다. 또한, YBAs 작가들이 터너상 후보에 오르거나 수상하면서 논란과 함께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고, 채널 4가 시상식을 중계하면서 이들은 영국 안방에도 알려진 인물이 되었다.

YBAs의 부상은 침체되었던 영국 미술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카르스텐 슈베르트 갤러리, 세이디 콜스 갤러리, 빅토리아 미로 갤러리, 모린 페일리의 인터림 아트, 제이 조플링의 화이트 큐브 등 새로운 세대의 현대 미술 갤러리들이 등장하거나 활성화되었다.[13] 미술 잡지 시장 역시 YBAs에 대한 관심 증가와 광고 수입 증대로 활기를 띠었다. 1991년 창간된 ''프리즈''는 초기부터 YBA를 적극적으로 다루었고, 기존의 ''Art Monthly'', ''Art Review'' 등도 젊은 영국 예술가들에게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며 재조명했다. YBAs 작가들은 영국을 넘어 유럽과 미국에서도 명성을 얻게 되었다.

YBAs의 작품들은 종종 충격적인 내용과 형식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데미안 허스트의 포르말린에 담긴 동물 사체나 트레이시 에민이 자신의 흐트러진 침대와 주변의 콘돔, 담배꽁초 등을 그대로 옮겨온 작품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미디어의 비판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YBAs의 명성을 더욱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2. 5. 센세이션 전시 (1997)

1997년, 로열 아카데미 오브 아츠는 찰스 사치의 개인 소장품을 기반으로 한 전시회 ''센세이션'' (Sensation)을 개최했다. 이 전시에는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YBA)들의 작품이 다수 포함되었으며,[19] 전시는 1997년 9월 18일부터 12월 28일까지 열렸다.

이 전시는 찰스 사치가 소장한 YBA 작가들의 주요 작품들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보수적인 성향의 로열 아카데미에서 전시가 열릴 수 있었던 것은 아카데미 소속 큐레이터 노먼 로젠탈의 역할이 컸지만, 내부적으로는 강한 반발이 있어 회원 3명이 항의의 표시로 아카데미를 탈퇴하기도 했다.

전시 내용은 상당히 파격적이어서, 발표되자마자 미술계는 물론 타블로이드 언론까지 큰 관심을 보이며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작품들에 대한 찬사도 있었지만, "이것이 예술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함께 동물의 사체나 범죄자를 다룬 작품들에 대한 윤리적 논쟁이 뜨겁게 벌어졌다. 특히 마커스 하비의 작품 ''마이라''는 무어스 살인 사건의 범인 마이라 힌들리를 아동의 손도장으로 그린 초상화였는데, 이는 희생자 유족과 대중의 거센 반발을 샀다. 결국 전시 기간 중 해당 작품이 관람객에게 공격받아 훼손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19]

전시는 이후 1999년까지 베를린뉴욕에서도 순회 전시되었다. 하지만 당초 예정되었던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전시 자체가 거부되었다. 뉴욕 전시에서는 크리스 오필리의 작품 ''The Holy Virgin Mary''(1996)가 또 다른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이 작품은 성모 마리아를 흑인 여성으로 묘사하면서 코끼리 배설물과 포르노 잡지에서 오려낸 여성의 성기 사진 콜라주를 사용했는데, 이는 당시 뉴욕 시장이었던 루돌프 줄리아니의 강한 반발을 사며 법적 분쟁으로까지 이어졌다.[19]

이 '센세이션' 전시는 YBA 현상의 정점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3. YBAs의 영향과 평가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YBA)의 등장은 침체되었던 영국 미술계에 큰 자극을 주었다. 이들은 새로운 세대의 현대 상업 갤러리들을 활성화시키거나 탄생시키는 데 기여했으며[13], ''프리즈''를 비롯한 현대 영국 미술 잡지 시장의 성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YBA의 부상에는 아트 컬렉터 찰스 사치의 역할이 컸다. 1990년대 초 경제 침체기에 사치는 기존의 유명 미국독일 작가 중심 컬렉션에서 영국의 젊은 작가들로 관심을 전환했다. 그는 《프리즈》전과 《갬블러》전을 방문하여 데미안 허스트의 초기 설치 미술 작품인 《천 년》 등에 주목하며 YBA 작가들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사치는 런던 북부의 세인트 존스 우드에 있는 큰 공장 부지를 사들여 개조하여 사치 갤러리를 이전했고, 1992년부터 전시회 시리즈 《영국 젊은 예술가들》을 열어 화제를 모았다. 이 전시회의 명칭에서 비롯되어 동시대 젊은 미술가들을 "영국 젊은 예술가들(Young British Artists)"이라 부르게 되었다. 사치의 후원은 YBA 작가들에게 금전적 지원뿐 아니라 미디어의 높은 주목도를 안겨주었으나, 그의 공격적인 수집 방식과 시장 영향력은 논쟁과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YBA 작가들은 영국의 권위 있는 미술상인 터너상 등을 통해 제도권 미술계에서도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다. 1997년 길리언 웨어링, 1998년 크리스 오필리가 터너상을 수상했으며, 1999년에는 트레이시 에민이 후보에 올랐다. 특히 에민의 출품작 ''내 침대(My Bed)''는 실제로 헝클어지고 얼룩진 그녀의 침대에 콘돔, 슬리퍼, 더러워진 속옷 등 잔해들이 널려 있는 모습으로,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미디어 파급 효과를 일으키며 그녀의 명성을 더욱 높였다. 같은 시기, YBA에 반대하는 예술가 그룹 스턱주의의 등장은 미디어 보도에 또 다른 각도를 제공했다. 2003년에는 YBA 소속인 제이크와 디노스 채프먼 형제와 아냐 갈라치오가 터너상 후보에 올랐다.

YBA와 관련된 주요 사건들도 이어졌다. 2004년 5월 24일 발생한 모마르 창고 화재로 채프먼 형제의 ''지옥''(Hell)과 트레이시 에민의 ''내가 잠자리를 함께 한 모든 사람들 1963–1995(Everyone I Have Ever Slept With 1963–1995)'' 등 사치 컬렉션에 포함된 다수의 YBA 작품이 소실되는 큰 손실을 겪었다.[20] 2008년에는 YBA의 주요 멤버였던 앵거스 페어허스트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한편, 2011년에는 샘 테일러-우드와 길리언 웨어링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대영 제국 훈장(OBE)을 받으며 이들의 사회적 영향력을 확인시켜 주었다.[21]

YBA 작가들은 데미안 허스트의 상어나 동물의 포르말린 절임 작품, 트레이시 에민콘돔과 담배가 널린 침대를 사용한 작품 등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작품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이러한 작품들은 종종 미디어에서 공격을 받았지만, 오히려 유명해졌다. 이들의 활동은 영국 미술계의 지형을 바꾸었을 뿐 아니라, 예술의 정의와 역할에 대한 광범위한 논쟁을 촉발하며 현대 미술사에 중요한 흔적을 남겼다.

3. 1. 긍정적 평가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YBA)는 카르스텐 슈베르트 갤러리, 세이디 콜스 갤러리, 빅토리아 미로 갤러리, 모린 페일리의 인터림 아트, 제이 조플링의 화이트 큐브와 같은 새로운 세대의 현대 상업 갤러리들을 활성화시키거나 탄생시키는 데 기여했다.[13] YBA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면서 광고와 발행 부수가 증가했고, 이는 현대 영국 미술 잡지 시장을 개선하는 효과로 이어졌다. 1991년에 창간된 ''프리즈''는 초기부터 YBA를 적극적으로 다루었으며, ''Art Monthly'', ''Art Review'', ''Modern Painters'', ''Contemporary Art''와 같은 기존 간행물들도 젊은 영국 예술가들에게 더 초점을 맞추며 새롭게 변화했다.

미술계의 주요 인사들도 YBA를 지지했다. 당시 ''The Times''의 미술 평론가였던 리처드 코크는 이들의 열렬한 지지자였으며, 미술 저술가 루이자 벅과 전 ''Time Out'' 미술 편집자 사라 켄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테이트 미술관 관장이었던 니컬러스 세로타 경은 여러 YBA 작가들을 터너상 후보로 지명하고 테이트 미술관 컬렉션에 작품을 포함시키며 이들의 가치를 인정했다.

갤러리스트 모린 페일리는 "YBA 세대가 보여준 것은 대담함, 즉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고 평가했다.[23] 2009년 화이트채플 미술관 관장 이보나 블라즈윅은 "YBA의 시대는 확실히 끝났지만, 그들이 단절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틀렸다. 그들은 그 이후로 계속 성장해 온 무언가를 시작했다.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며 YBA의 지속적인 영향력을 강조했다.[24]

3. 2. 부정적 평가와 논란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YBA) 그룹의 부상과 함께 이들에 대한 비판과 논란도 꾸준히 제기되었다.

1998년, ''인디펜던트''의 존 윈저는 YBA의 작품이 1970년대 니콜라스 트레드웰 갤러리 등에서 선보였던 "충격 예술"(shock art)에 비하면 오히려 온순해 보인다고 평가했다.[25] 1999년에는 YBA에 명확히 반대하는 예술가 그룹인 스턱주의(Stuckism)가 빌리 차일디시 등에 의해 결성되었다.[26] 같은 해 터너상 후보에 오른 트레이시 에민의 ''내 침대(My Bed)''는 실제 사용한 침대와 주변의 지저분한 물건들을 그대로 전시한 작품으로 큰 미디어 파장을 일으켰고, 스턱주의자들의 등장은 이러한 논란에 또 다른 관점을 제공했다.

YBA 현상에 대한 비판은 미술계 외부에서도 나왔다. 2002년 지휘자 사이먼 래틀 경은 영국 미술계를 강하게 비판했으나, 일각에서는 그가 개념 미술시각 예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반론도 제기되었다. 극작가 톰 스토파드 역시 공개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으며, ''이브닝 스탠다드''의 미술 평론가 브라이언 수웰과 ''잭도''의 편집장 데이비드 리는 일관되게 YBA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유지했다.[27] 텔레비전 진행자이자 예술가인 롤프 해리스는 트레이시 에민의 ''내 침대''를 언급하며 "침대에서 일어나 정리하지 않은 채 전시하고 3.1만파운드의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사기라고 생각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제임스 하트필드는 "1990년대의 예술 붐은 엉성함을 조장했다"고 지적하며, YBA 작가들이 "끈기 있는 작업보다 영감을 받은 몸짓을 선호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YBA가 대중의 분노를 이용했지만 그 효과는 빠르게 사라졌다고 평가했다.[28] 또한, 영국의 풍자 잡지 ''프라이빗 아이''는 "영국 젊은 예술가들"(Young British Artists)이라는 제목의 정기 만화를 통해 이들을 풍자하기도 했다.

컬렉터 찰스 사치의 역할 역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사치는 YBA 작가들의 작품을 대거 구매하고 사치 갤러리에서 전시하며 이들의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그의 막대한 자본력과 공격적인 컬렉션 전환(기존의 유명 미국, 독일 작가 컬렉션을 처분하고 YBA에 집중)은 미술 시장에 충격을 주었으며, 예술의 본질보다는 상업적 성공과 화제성에 치중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의 행보는 "논쟁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고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1997년 로열 아카데미 오브 아츠에서 열린 《센세이션》 전시는 YBA 논란의 정점이었다. 보수적인 로열 아카데미에서 이 전시가 열린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으며, 일부 회원들은 이에 반발하여 아카데미를 탈퇴하기도 했다. 전시는 작품의 과격함으로 인해 "이것이 예술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부터 특정 작품에 대한 윤리적 논쟁까지 다양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마커스 하비가 아동 연쇄 살인범 마이라 힌들리의 얼굴을 아동의 손자국으로 그린 작품 '마이라'는 엄청난 사회적 반발을 샀고, 전시 도중 관람객에게 훼손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전시는 1999년 베를린뉴욕으로 순회했지만, 뉴욕에서는 크리스 오필리의 작품 '홀리 버진 마리'(1996년)가 코끼리 똥과 흑인 여성의 누드 사진을 콜라주한 성모 마리아 초상이라는 이유로 당시 시장이었던 루돌프 줄리아니의 강한 반발과 소송 위협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것이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 붐의 하나의 정점으로 여겨진다.

2000년대 들어 YBA의 활동은 다소 잠잠해졌지만, 이들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엇갈린다. 개념적인 작품들이 거액에 거래되는 현상에 대한 대중의 비판은 여전하며, 미술계 내에서도 특정 작가들에게만 관심이 집중되고 가십거리로 소비되는 경향에 대한 비판이 존재한다.

3. 3. 여성 YBAs 예술가

여성 예술가들은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Young British Artists, YBA)'의 남성 중심적 환경 속에서 소수에 불과했다. 세라 루카스, 제니 사빌, 레이첼 휘트리드 같은 작가들은 언론의 주목도에서 차별을 겪었으며, 데미언 허스트와 같은 남성 동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29]

1980년대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 YBA 작가들의 작품 활동에 영향을 미쳤다. 서섹스 대학교 미술 협회 저널에 따르면, 이들 작가들은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집는 전략을 작품에 활용했다.[29]

레이첼 휘트리드의 조각 작품은 이러한 경향을 보여주는 예시 중 하나이다. 그녀는 여성이 소위 '여성적인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도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30] 대표작 《아홉 개의 테이블》(Nine Tables)은 물리적으로 성별을 가질 수 없는 형태를 통해, 여성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모호한 영역을 탐구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30] 다니엘 오길비는 주디스 버틀러의 이론을 인용하며, 휘트리드의 작품에서 '단순히 행위하는 것', 즉 사물을 던지는 행위 자체가 성별을 표현하며, 작품 자체에 부여된 의인화된 연관성과는 별개로 여성성을 구성한다고 설명했다.[30]

제니 사빌 역시 사회와 현대 미술계에 퍼진 페미니즘 이념의 영향을 받아, 1990년대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인위적인 '여성성' 개념을 탐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31] 신시내티 미술 학교 재학 시절, 사빌은 미술사에서 여성 작가들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페미니즘에 눈뜨게 되었다. 그녀는 "역사상 왜 여성 예술가가 없었는지 항상 궁금했다. 여성 예술가들이 존재했지만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남성적인 사고방식에 영향을 받았고, 남성이 지배하는 미술 대학에 다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32]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사빌은 이상화되지 않은 여성 누드를 그리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 남성적 시각에 의해 대상화된 여성의 몸을 답습하는 대신, 배와 허벅지 주변의 음모, 변색된 피부, 과도한 살집 등 여성 신체의 자연스러운 모습과 결점을 그대로 드러냈다.[32] 사빌은 자신의 작업을 통해 여성 신체를 해체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토론하고, 여성이 남성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게 하려는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은 보통 여성의 신체에 대한 남성적인 이미지이다. 내 여성들은 그들의 개별성 속에서 아름답다."[33]

4. 주요 YBAs 작가

캠버웰에 위치한 골드스미스 대학교 밀라드 빌딩. 1980년대 후반 YBA(Young British Artists)의 많은 멤버들이 이 곳에서 미술 학사 과정을 함께했다.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YBA) 그룹의 핵심 멤버들은 대부분 1987년부터 1990년 사이에 골드스미스 대학교 미술 학사 과정을 졸업한 이들이다. 당시 골드스미스 교수진으로는 마이클 크레이그-마틴, 리처드 웬트워스 등이 이들의 활동에 영향을 주었다.

YBA 그룹 형성과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은 아트 컬렉터 찰스 사치이다. 그는 1988년 ''Freeze'' 전시와 이후의 전시들을 통해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주목하고 수집하기 시작했다. 특히 데이미언 허스트의 초기 설치 미술 작품인 《천 년》(A Thousand Years)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0년대 초 경제 침체로 미술 시장이 위축되었을 때, 사치는 기존의 유명 해외 작가 컬렉션 대신 영국의 젊고 무명인 작가들에게 집중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는 런던 북부에 새로운 사치 갤러리를 열고 1992년부터 《영국 젊은 예술가들》(Young British Artists)이라는 제목의 전시 시리즈를 개최했는데, 이것이 'YBA'라는 명칭이 널리 쓰이는 계기가 되었다. 사치의 후원은 YBA 작가들에게 경제적 안정과 함께 미디어의 큰 주목을 가져다주었다. 그의 파격적인 작품 수집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YBA 작가들의 명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YBAs는 데이미언 허스트의 포름알데히드 작품이나 트레이시 에민의 설치 작품처럼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작업으로 유명하며, 이는 종종 미디어의 비판 대상이 되었으나 오히려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의 등장은 침체되었던 영국 미술계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화이트 큐브, 세이디 콜스 HQ, 빅토리아 미로 등 새로운 현대 미술 갤러리들의 등장을 촉진했으며, 터너상 등 주요 미술상을 휩쓸며 영국 현대 미술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4. 1. Freeze 전시 참여 작가

1988년 7월, 골드스미스 대학교 학생 16명이 주축이 되어 자주 기획 전시회인 ''Freeze''를 개최했다. 당시 순수 미술 학사 과정 2학년이었던 데이미언 허스트가 주요 기획자 역할을 맡았다. 이 시기는 마거릿 대처 정권 하에서 미술에 대한 공적 지원이 삭감되었고, 상업 갤러리들도 영국의 젊은 미술가들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때였다.

전시는 상업 갤러리의 지원 없이,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는 비예술 공간인 런던 동부 도클랜즈 설리 상업 도크의 항만국 빈 건물(종종 "창고"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행정 건물)에서 열렸다. 런던 도클랜즈 개발 공사와 개발업체 올림피아 & 요크가 후원하여 수준 높은 카탈로그가 제작되었으나, 당시 영국의 주요 갤러리들은 이 전시회에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골드스미스 강사였던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노력으로 큐레이터 노먼 로젠탈, 니콜라스 세로타 등 미술계 주요 인사들이 전시를 방문했으며, 이후 YBAs의 주요 후원자가 된 아트 컬렉터 찰스 사치도 이 전시를 통해 허스트 등을 알게 되었다.

''Freeze'' 전시는 당시 유행했던 창고를 점거하여 열리는 애시드 하우스 레이브 문화와도 연결되었지만, 주요 언론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전시는 예술가가 직접 큐레이터 역할을 수행하는 모델을 제시했으며, 1990년대 중반 런던 미술계에서 예술가들이 직접 운영하는 전시 공간과 갤러리가 활성화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10]

''Freeze'' 전시에 참여한 작가는 다음과 같다.

이름원어 이름
게리 흄Gary Hume
데이미언 허스트Damien Hirst
랄라 메러디스-불라Lala Meredith-Vula
리처드 패터슨Richard Patterson
마이클 랜디Michael Landy
맷 콜리쇼Mat Collishaw
사라 루커스Sarah Lucas
사이먼 패터슨Simon Patterson
스티븐 애덤슨Steven Adamson
스티븐 파크Stephen Park
아냐 갈라치오Anya Gallaccio
아비가일 레인Abigail Lane
앤젤라 불록Angela Bulloch
앵거스 페어허스트Angus Fairhurst
이안 데이븐포트Ian Davenport
피오나 레이Fiona Rae


4. 2. Brilliant! 전시 참여 작가

4. 3. 기타 YBAs 작가



YBA 그룹에는 핵심 멤버 외에도 다음과 같은 작가들이 속해 있다.[34][35]

  • 피오나 배너
  • 크리스틴 볼랜드
  • 타시타 딘
  • 더글러스 고든
  • 마커스 하비
  • 데이비드 립먼
  • 제이슨 마틴
  • 마크 퀸
  • 개빈 터크
  • 제인 앤 루이즈 윌슨
  • 제니 사빌


개빈 터크와 마크 프랜시스 또한 YBA 그룹에 속한다. 터크와 프랜시스는 1986년부터 1989년까지 첼시 예술학교에서, 1989년부터 1991년까지 왕립 예술학교에서 공부했으며, 로열 아카데미에서 열린 사치 갤러리의 전시회 ''Sensation''에 작품을 출품했다. 제이슨 마틴은 1993년에 골드스미스 대학교 미술 학사 과정을 졸업했다.

참조

[1] 문서 Sometimes with lower case, "young British artist(s)" or "yBa".
[2] 서적 Damien Hirst. Gallery Art in a Material World Tectum Verlag 2018
[3] 간행물 Young British art: the YBA sensation https://archive.toda[...] 2004-06
[4] 서적 Damien Hirst. Gallery Art in a Material World Tectum Verlag 2018
[5] 웹사이트 Young British Artists (YBAs) https://www.tate.org[...]
[6] 간행물 British? Young? Invisible? w/Attitude?. http://www.blumandpo[...] 1992-05
[7] 서적 Shark infested waters. The Saatchi Collection of British Art in the 90s London 1994
[8] 서적 Damien Hirst. Gallery Art in a Material World Tectum Verlag 2018
[9] 서적 Damien Hirst. Gallery Art in a Material World Tectum Verlag 2018
[10] 서적 Damien Hirst. Gallery Art in a Material World Tectum Verlag 2018
[11] 서적 Damien Hirst. Gallery Art in a Material World Tectum Verlag 2018
[12] 뉴스 The Midas Touch?: Graduates of Goldsmiths School of Art dominate the current British art scene The Independent 1990-07-31
[13] 서적 Damien Hirst. Gallery Art in a Material World Tectum Verlag 2018
[14] 서적 Damien Hirst. Gallery Art in a Material World Tectum Verlag 2018
[15] 뉴스 Hirst's shark is sold to America https://archive.toda[...] The Sunday Times 2005-01-16
[16] 뉴스 Why painting is back in the frame https://www.telegrap[...] The Daily Telegraph 2005-01-08
[17] 간행물 About Art Monthly http://www.artmonthl[...] 2010-06-19
[18] 서적 Damien Hirst. Gallery Art in a Material World Tectum Verlag 2018
[19] 서적 Damien Hirst. Gallery Art in a Material World Tectum Verlag 2018
[20] 서적 Damien Hirst. Gallery Art in a Material World Tectum Verlag 2018
[21] 서적 Damien Hirst. Gallery Art in a Material World Tectum Verlag 2018
[22] 웹사이트 RA list of Royal Academicians http://www.royalacad[...]
[23] 뉴스 Women at work https://www.independ[...] The Independent 2009-08-28
[24] 뉴스 Women at work: As the older generation of YBAs grows up, a new set of female creators is taking over https://www.independ[...] The Independent 2009-08-28
[25] 뉴스 Art 98: Collecting—Let the love affair begin https://www.independ[...] The Independent 1998-01-17
[26] 서적 Damien Hirst. Gallery Art in a Material World Tectum Verlag 2018
[27] 뉴스 London Standard’s AI imitation of Brian Sewell proves art critics cannot be easily replaced https://www.theguard[...] 2024-10-17
[28] 문서 James Heartfield: the creativity Gap. 2005. p. 23 http://www.heartfiel[...]
[29] 웹사이트 Tracey Emin, Sarah Lucas & Rachael Whiteread: Did feminism feature as a part of Young British Art? https://chalkjournal[...] 2015-12-07
[30] 웹사이트 Rachel Whiteread's Nine Tables: Formalist Object, Feminist Critique or Something In-Between? http://danploy.com/A[...] Danploy 2015-12-07
[31] 웹사이트 Jenny Saville: The Body Recovered {{!}} CUJAH https://web.archive.[...] 2015-12-07
[32] 웹사이트 Interview: This is Jenny, and this is her Plan: Men paint female https://www.independ[...] 2015-12-11
[33] 웹사이트 Interview: This is Jenny, and this is her Plan: Men paint female https://www.independ[...] 2015-12-07
[34] 간행물 Cultural propganda? http://www.apollo-ma[...] 2011-09-28
[35] 웹사이트 Fiona Banner born 1966 http://www.tate.org.[...]
[36] 문서 Sometimes with lower case, as "young British artist(s)" or "y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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