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줄리아니
1. 개요
루돌프 줄리아니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뉴욕에서 태어나 검사, 변호사,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그는 1983년 뉴욕 남부 연방 검사로 임명되어 마피아 조직을 소탕하는 데 주력했으며, 1994년부터 2001년까지 뉴욕 시장을 역임했다. 시장 재임 기간 동안 범죄율 감소에 기여했으나, 인종 차별적 정책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9.11 테러 당시 뛰어난 위기 관리 능력으로 칭송받았으나,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법률 고문으로 활동하며 선거 부정 주장을 펼쳐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했다.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 한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여러 논란과 법적 문제에 연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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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시장 -
마이클 블룸버그
마이클 블룸버그는 블룸버그 L.P.의 설립자이자 전 뉴욕 시장인 미국의 기업인이자 정치인으로, 금융 데이터 및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뉴욕 시장 3선, 자선 활동, 그리고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출마 등의 행보를 보였다. -
뉴욕 시장 -
에드 코흐
에드 코흐는 1978년부터 1989년까지 뉴욕 시장을 세 번 역임했으며, 재임 기간 동안 도시 재건에 힘썼고, 2013년 사망했다. -
9·11 테러 관련자 -
조지 W. 부시
조지 W. 부시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텍사스 주지사를 거쳐 제43대 미국 대통령을 역임했으며,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감세 정책과 허리케인 카트리나 대응으로 논란을 겪었다. -
9·11 테러 관련자 -
딕 체니
딕 체니는 공화당 소속으로 하원의원, 백악관 비서실장, 국방부 장관을 역임하고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제46대 부통령을 지낸 미국의 정치인이자 기업인이다. -
20세기 미국 사람 -
앤드루 쿠오모
앤드루 쿠오모는 뉴욕 주지사를 역임한 미국 민주당 정치인으로, 코로나19 팬데믹 대응과 요양원 사망자 은폐 의혹 및 성추행 혐의로 논란이 되었다. -
20세기 미국 사람 -
지미 카터
지미 카터는 해군 장교와 땅콩 농장 운영을 거쳐 조지아 주지사를 역임하고 도덕적, 진보적 이미지로 미국의 제39대 대통령을 지냈으며, 퇴임 후 카터 센터 설립과 인도주의 활동으로 200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고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최장수 기록을 세웠다.
2. 어린 시절
1944년 5월 28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경찰과 소방관이 많았던 이탈리아계 미국인 대가족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로마 가톨릭 신자로 자랐다.
그의 모친 헬렌(결혼 전 성씨 D'Avanzo)은 서기로 일했고, 부친 해럴드 안젤로 줄리아니는 배관공이자 바텐더였으며, 술집을 운영하고 처남의 마피아와 연결된 대출 회사의 채권 추심원으로 일했다. 해럴드는 우유 배달부를 강탈한 죄로 1934년 체포되어 1년 반 동안 싱싱 교도소에서 징역을 살기도 했다.
7세 때, 가족은 브루클린에서 롱아일랜드의 가든 시티 사우스로 이주했다. 그는 현지 가톨릭 학교인 세인트 안 학교에 다녔고, 이후 브루클린으로 통학하여 비숍 라플린 기념 고등학교를 1961년에 졸업했다.
브롱크스의 리버데일에 있는 맨해튼 칼리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철학을 부전공했다. 2학년 때 학급 회장으로 선출되었지만, 3학년 때는 재선되지 못했다. 피 로 파이 대학 법정 동아리이자 명예 사회에 가입했고, 1965년에 졸업했다.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뉴욕 대학교 법학대학원에서 수학하였다. 1968년 준최우등으로 졸업한 후, 뉴욕 남부 구역 미국 연방지방법원의 판사 로이드 맥마혼의 서기가 되었다.
3. 검사 시절
1970년 연방 검사로 임관하여 법무부 차관보, 법무부 장관 수석 보좌관 등을 역임했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법무부 서열 3위인 법무차관으로 임명되었다. 1983년에는 뉴욕 남부 연방 검사로 임명되어 마약, 폭력과 결부된 토착 범죄와의 장기적 싸움을 시작하였다.
검사로 재직하는 6년 동안 마약상들을 투옥하고, 공무원과 회사원의 부정 행위를 기소하고, 조직 범죄와 정부의 부패를 일소하는 데 집중하여 4,152개의 유죄 판결을 얻어냈다. 이를 통해 미국 역사상 가장 효과적인 검사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다만, 홍보를 위해 범죄 용의자들의 '퍼프 워크(perp walk)'를 활용하는 방식을 개발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사 시절, 주가 조작꾼 아이반 보우스키와 "정크본드의 왕"으로 불린 투자 은행가 마이클 밀켄 등 월가의 거물들을 내부자 거래 혐의로 기소하여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마크 리치 등 다른 거물 투자자들도 내부자 거래로 기소했다. 또한, 갬비노 패밀리의 보스였던 폴 카스텔라노를 비롯한 뉴욕 5대 마피아 조직의 두목들을 마피아 위원회 재판을 통해 기소하여 유죄 판결을 받게 했다.
4. 뉴욕 시장
1989년 뉴욕 시장 선거에서 줄리아니는 민주당 후보 데이비드 딘킨스에게 뉴욕 역사상 가장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다. 1993년 시장 선거에서 줄리아니는 다시 딘킨스에게 도전했다. 당시 100만 명 이상의 뉴욕 시민들이 복지 혜택을 잃고 범죄율이 높아지는 등 딘킨스의 인기가 하락한 상황이었다. 줄리아니는 1994년 1월 1일, 53,367표 차이로 딘킨스를 누르고 제107대 뉴욕 시장으로 취임했다.
줄리아니는 윈스턴 처칠이 1940년 런던을 지도한 것에 자신을 비유하며, 뉴욕의 문제들을 강경책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그는 '깨진 유리창 이론'을 바탕으로 경범죄 단속을 강화하고, 컴스탯(CompStat) 시스템을 도입하여 범죄율을 획기적으로 감소시켰다. 그의 임기 첫 2년 동안 중대 범죄는 1/3, 살인율은 절반으로 감소했다. 경찰 총격 사건은 40% 감소했고, 감옥 내 폭력 사건은 95% 감소했다. 또한 줄리아니의 복지 정책은 60만 명 이상의 뉴욕 시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그러나 줄리아니는 소수 인종에 대한 인종 프로파일링을 확대하고, 공공 학교 제도 개혁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한 무단 횡단, 노점상 단속, 논란이 되는 예술에 대한 공공 자금 지원 거부 등 이른바 "정중" 캠페인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97년 줄리아니는 전립선암 진단을 받았으나 치료 후 회복했다. 같은 해 뉴욕 시장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로 재선되었지만, 두 번째 임기 말에는 경찰의 인종 차별적 범죄 처리 논란 등으로 인기가 하락했다. 1997년 8월 아이티 이민자 아브네르 루이마가 경찰에 의해 고문당하고, 1999년 무장하지 않은 아마두 디알로가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 등이 발생했다.
4.1. 9.11 테러 대응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 테러리스트들이 항공기를 공중 납치하여 맨해튼에 있는 세계 무역 센터의 쌍둥이 빌딩으로 충돌시켰다. 이 테러로 인해 몇 시간 만에 두 건물이 모두 무너지고 2,752명이 사망했다. 줄리아니는 테러 발생 직후 현장에 도착하여 구출 작전을 지휘하고, 20,000명 이상의 생명을 구했다.
줄리아니는 테러 직후 "내일 뉴욕은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라고 선언하며, "우리는 재건할 것이고, 우리는 이전에 우리였던 것보다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테러리즘이 우리를 멈출 수 없다는 것을 뉴욕 시민들이 국가와 세계에 보여주는 본보기가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연설하여 시민들을 안심시키고 재건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줄리아니는 911 테러 현장에서 장기간 활동한 후, 노동자 안전 문제와 장기적인 건강 문제에 대한 비판을 받았다. 수천 명의 복구 근로자들이 그라운드 제로 청소 작업과 관련된 장기적인 건강 문제에 직면했고, 10,000명 이상의 근로자들이 뉴욕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600 이상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줄리아니는 9.11 테러 대응과 리더십으로 2001년 타임지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고, 2002년에는 영국 여왕으로부터 명예 기사 작위(대영 제국 훈장, KBE)를 받았다.
5. 시장 퇴임 후
911 테러 후 무너진 세계 무역 센터의 그라운드 제로에서 시장직을 마무리한 줄리아니는 2001년 12월 31일 시장직에서 퇴임했고, 그의 지지를 받았던 마이클 블룸버그가 뒤를 이었다.
퇴임 후인 2002년, 줄리아니는 비즈니스 컨설팅 회사인 '줄리아니 파트너스'를 설립하여 CEO로 활동했다. 이 회사는 국제적인 연결을 통해 다백만 달러 규모로 성장했지만, 카타르와의 부동산 거래 등 풍미롭지 않은 거래로 인해 정밀 조사와 비판을 받았다. 또한 주요 고객이었던 제약 회사 퍼듀 파마가 오피오이드 중독 문제와 관련하여 대중을 오도했다는 혐의로 마약단속국으로부터 2백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받는 데 연루되기도 했다.
2005년에는 법률회사 '브레이스웰 & 줄리아니'의 파트너로 합류했다.
2008년에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을 위해 출마했으나, 초기 플로리다주 예비 선거에서 3위에 그친 후 사퇴했다.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공화당 후보 밋 롬니를 지지했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며 그의 법률 고문으로 활동했다. 2019년에는 트럼프-우크라이나 스캔들에 연루되어 조사를 받았다.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가 패배한 후, 줄리아니는 선거 결과 불복 소송을 주도하며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 이로 인해 2021년 뉴욕주 변호사 협회는 줄리아니 제명을 위한 조사를 시작했고, 결국 변호사 자격이 정지되거나 박탈되었다.
6. 도널드 트럼프와의 관계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며 그의 법률 고문으로 활동했다. 2016년 공화당 전당대회 첫날 프라임타임 연설을 했다. 같은 날 벤 카슨과 함께 트럼프 지지 단체인 그레이트 아메리카 PAC 행사에 참석하고, "리더십"이라는 제목의 광고에도 출연했다. 줄리아니와 제프 세션스는 트럼프 선거 유세의 주요 인물이었다.
선거 운동 기간 동안 줄리아니는 트럼프의 업적과 뉴욕 시민들을 도운 점을 칭찬하며, 인종차별, 성폭행, 최대 20년간 연방 소득세를 내지 않은 혐의 등에 대해 트럼프를 변호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공식 직책을 맡지는 않았으나, 2017년 1월 12일 비공식 사이버보안 고문으로 임명되었다. 2018년 4월 트럼프의 법률팀에 합류하여 로버트 뮬러의 러시아 스캔들 조사에 대응했다.
2019년 9월, 하원 민주당원들은 트럼프와 줄리아니가 우크라이나 정부에 2020년 대통령 후보 조 바이든의 아들 헌터 바이든을 조사하도록 압박했는지 조사에 착수했다. 줄리아니는 우크라이나 공무원들과 이 문제를 논의했지만, 미국 국무부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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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우크라이나 스캔들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어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탄핵 조사 대상이 되었다. 위원회는 그에게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된 서류를 공개하도록 소환장을 발부했다.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트럼프의 선거 결과 불복 소송을 주도하며 각종 음모론과 허위 주장을 펼쳤다. 2020년 11월 7일, 필라델피아의 포시즌스 토탈 랜드스케이핑에서 기자 회견을 열어 펜실베이니아 주 투표 집계에 이의를 제기했는데, 이 회견 도중 언론들은 바이든의 대통령 당선을 보도했다. 트럼프는 줄리아니를 수장으로 하는 법률팀을 구성하고,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해 "맘껏 하라"고 지시했다.
2021년 1월 6일 미국 국회의사당 폭동 선동 혐의로 비판을 받았고, 뉴욕주 변호사 협회에서 제명 조사를 받았다.
7. 논란 및 법적 문제
2019년 9월, 트럼프와 줄리아니가 우크라이나 정부에 2020년 대통령 선거 후보였던 조 바이든의 아들 헌터 바이든에 대한 조사를 압박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하원 민주당은 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줄리아니는 우크라이나 공무원들과 이 문제를 논의한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 국무부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줄리아니의 측근 2명(레프 파르나스와 이고르 프루만)이 선거 자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면서 더욱 복잡해졌다. 이들은 바이든의 선거 운동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정보를 찾기 위해 우크라이나에서 뮬러 특검 수사를 방해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줄리아니는 최소 2019년 5월부터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에게 조 바이든 부자와 부리즈마에 대한 조사, 폴 매너포트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조사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며 조사를 촉구해왔다. 그는 자신의 노력이 트럼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2019년 7월, 버즈피드 뉴스는 레프 파르나스와 이고르 프루만이 이 과정에서 줄리아니와 우크라이나 정부 관리들 사이의 연락책이었다고 보도했다. 줄리아니는 "이 (보도)는 바이든 가족의 엄청난 범죄 혐의를 은폐하려는 애처로운 시도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2019년 9월까지 바이든 가족의 비행에 대한 명확한 증거는 없었다.
2019년 10월, 하원 정보위원회는 줄리아니에게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된 문서를 제출하라는 소환장을 발부했다. 뉴욕 타임스는 줄리아니가 뉴욕 남부 지방 검찰청으로부터 우크라이나에서의 활동과 관련하여 로비 법률 위반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후, 블룸버그 뉴스는 조사가 외국 관리 뇌물 수수 또는 공모 혐의로 확대될 수 있다고 보도했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줄리아니가 우크라이나 천연가스 사업에서 이익을 추구했는지 조사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줄리아니는 우크라이나 천연가스 사업에 대한 어떤 이해관계도 없다고 부인했다. 11월 말, 월스트리트 저널은 연방 검사들이 줄리아니를 포함한 일부 개인들을 돈세탁, 사법 방해, 미국 사기 공모, 연방 정부에 대한 허위 진술, 우편/전신 사기 등 여러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9년 10월 9일, 파르나스와 프루만은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선거 자금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다. 줄리아니는 레브 파르나스의 회사인 "사기 보증"의 컨설팅으로 500000USD를 받았다.
2019년 9월, 줄리아니는 CNN에 출연하여 우크라이나 관리들에게 바이든에 대한 조사를 시도했는지 묻는 질문에 처음에는 부인했지만, 곧이어 "물론 그랬다"라고 인정했다. 그는 트위터에서 우크라이나가 조사를 하지 않으면 트럼프가 군사 원조 자금을 보류했다는 보도를 확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톰 보서트 전 국토안보보좌관은 줄리아니의 주장을 거짓이라고 비판했지만, 줄리아니는 보서트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고 반박했다.
2019년 9월 30일, 하원 정보위원회는 줄리아니에게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된 서류를 2019년 10월 15일까지 위원회 위원들에게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소환장을 발부했다.
고든 선들랜드 유럽연합 주재 미국 대사는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외교 정책을 줄리아니에게 위임했다고 증언했다. 2019년 후반의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탄핵 조사는 우크라이나와 관련된 줄리아니의 행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줄리아니가 로건 법을 위반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2019년 12월 초, 줄리아니는 탄핵 절차를 불신하게 하려는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위해 전 우크라이나 관리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우크라이나로 돌아왔다. 미국 관리들은 워싱턴 포스트에 줄리아니가 러시아의 공격을 받고 러시아 정보 기관의 심각한 침투를 받고 있는 전 소련 공화국에 초점을 맞춘 후 러시아 정보 기관의 표적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20년 12월 NBC 뉴스는 SDNY 수사관들이 워싱턴 법무부 관리들과 변호사-의뢰인 특권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는 줄리아니의 이메일을 확보할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는 2021년 2월 SDNY가 2020년 여름 줄리아니의 전자 기록에 대한 수색 영장을 요청했지만, 선거가 임박했기 때문에 워싱턴 본부의 고위 정치 임명 관리들이 저항에 직면했으며, 경력 관리들은 수색 영장을 지지했다고 보도했다.
맨해튼의 연방 수사관들은 2021년 4월 28일 새벽 줄리아니의 사무실과 어퍼 이스트 사이드 아파트에 수색 영장을 집행하여 그의 전자 기기를 압수하고 아파트를 수색했다.
2020년 11월, 트럼프는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의 유권자 부정 행위 의혹과 관련된 소송을 담당하도록 줄리아니를 임명했다. 11월 7일, 줄리아니는 필라델피아의 포시즌스 토탈 랜드스케이핑에서 기자 회견을 열었다. 트럼프는 줄리아니를 수장으로 하는 법률팀을 구성하고,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한 노력에서 "맘껏 하라"고 지시했다. 이 팀은 시드니 파웰, 조셉 디제노바, 빅토리아 투엔싱, 그리고 트럼프 선거 운동 변호사 제나 엘리스를 포함했다.11월 19일 기자 회견에서 이들은 국제 공산주의 음모, 조작된 투표 기계, 투표소 부정 행위 등에 관한 수많은 허위 주장과 근거 없는 주장을 했다.
줄리아니는 임시 투표용지 사용을 반복적으로 비난했지만, 줄리아니 자신도 2020년 10월 31일 맨해튼에서 이러한 유형의 투표를 했다.
2021년 1월 8일까지 트럼프와 그의 팀은 63건의 소송에서 패소했다.
초기 소송 중 하나는 우편투표 70만 표까지 무효화하고 펜실베이니아주가 선거 결과를 인증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줄리아니는 펜실베이니아주 및 기타 지역에서 유권자 사기와 선거 관리원의 부정행위를 증명하는 진술서에 서명했다고 말했다. 30년 이상 법정에서 사건을 변론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줄리아니는 펜실베이니아주 연방 법원에서 트럼프 대통령 선거 캠페인을 대리할 특별 허가를 신청했다. 그 과정에서 줄리아니는 워싱턴 D.C. 변호사 협회의 회원 자격을 잘못 진술했다. 2020년 11월 17일, 첫 법정 출두일에 줄리아니는 기본적인 법적 절차에 어려움을 겪었고, 펜실베이니아주 국무장관 측 변호사로부터 "미국 법정에서 부끄러운" 법적 주장을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2020년 11월 21일, 펜실베이니아주를 상대로 제기한 그의 연방 소송은 "근거 없는 억지 법적 주장과 추측성 비난"이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판사의 판결로 기각되었다.
트럼프 캠페인은 제3순회 항소법원(Third Circuit Court of Appeals)에 소송을 항소했고, 11월 27일 3명의 판사로 구성된 패널은 트럼프 캠페인의 펜실베이니아주 투표 인증 무효화 시도를 기각했다. 트럼프 캠페인의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줄리아니는 투표 기계가 조작되었다는 주장의 일환으로 도미니언 보팅 시스템과 스마트매틱이라는 두 경쟁사에 대해 여러 가지 허위 주장을 했다.
두 회사 모두 줄리아니와 폭스 뉴스를 고소했다. 도미니언은 2021년 1월 줄리아니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고, 별도로 폭스 뉴스를 상대로 1600의 소송을 제기했다. 폭스 뉴스는 도미니언 보팅 시스템 대 폭스 뉴스 네트워크 소송을 787.5에 합의했으며; 선거 관련 거짓말에 대한 줄리아니와 시드니 파웰(Sidney Powell)에 대한 회사의 소송은 2023년 8월 현재도 진행 중이다.
2021년 2월 4일, 스마트매틱은 줄리아니, 폭스 뉴스 및 일부 진행자, 파웰을 상대로 회사에 대한 "허위 정보 캠페인"을 벌였다고 고소했고, 2700의 손해 배상을 청구했다.
2021년 12월, 조지아주 선거 관계자 루비 프리먼과 그의 딸 완드레아 아샤예 모스는 줄리아니가 그들이 투표 집계를 조작했다는 허위 주장을 한 것에 대해 워싱턴 D.C. 연방 지방 법원에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줄리아니는 그들이 마치 헤로인이나 코카인 병인 것처럼 USB를 돌리고 은밀한 불법 활동을 했다고 비난했다. 모스는 미국 하원에 출석하여 줄리아니의 발언 이후 자신과 가족이 인종차별적인 위협을 엄청나게 받았다고 증언했다.
2023년 7월, 줄리아니는 증거 제출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제재를 받은 후 선거 관계자들에게 변호사 수임료를 지불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같은 달, 줄리아니는 자신의 발언이 "자체 명예훼손(defamatory per se)"이었다고 인정했지만, "어떤 손해도" 야기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2023년 12월 15일, 연방 배심원단은 줄리아니에게 75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포함하여 프리먼과 모스에게 148를 지불하라고 명령했다. 평결 후 줄리아니는 후회하는 것이 없다고 말했고 항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변호사 중 한 명은 파산 신청을 할 것이라고 시사했다. 12월 21일, 그는 파산 신청을 했다.
2021년 1월 6일, 줄리아니는 엘립스에서 열린 "미국 구하기 행진"(Save America March) 집회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이 선거 결과에 항의하는 자리에서 연설했다. 그는 선거에 사용된 투표 기계가 "부정직하다"는 음모론을 반복적으로 주장했고, "결투 재판"을 요구했다. 그는 폭동 이후 이 발언이 폭력을 선동한 것이 아니라 왕좌의 게임을 언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후 트럼프 지지자들은 미국 연방 의사당을 습격하는 폭동을 일으켰다.
줄리아니는 선거인단 투표 집계를 지연시켜 결국 트럼프에게 승리를 안겨주기 위해 공화당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알려졌다.
줄리아니는 집회 참석과 그에 따른 의사당 폭동에 대해 비판을 받았다.
2021년 1월 11일, 뉴욕주 변호사 협회는 줄리아니의 회원 자격 박탈 여부를 조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23년 8월 1일, 도널드 트럼프의 2020년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를 수사하는 법무부 특별검사는 트럼프를 관련 혐의로 4건의 형사 기소했다. 뉴스 보도에서는 루디 줄리아니를 익명의 "공모자 1"로 널리 지목했다.
2023년 8월 14일, 줄리아니는 도널드 트럼프와 다른 17명과 함께 조지아주 애틀랜타 대배심에 의해 기소되었다.
2024년 4월, 줄리아니는 애리조나주 2020년 대선 관련 혐의로 기소된 18명 중 한 명이었다.
2021년 6월 24일, 뉴욕 주 항소 법원은 줄리아니의 변호사 면허를 정지시켰다. 그의 면허는 2021년 7월 7일 워싱턴 D.C.에서도 정지되었다.
2024년 7월 2일, 뉴욕 주 항소 법원은 대규모 유권자 사기에 대한 허위 주장을 함으로써 2020년 선거를 뒤엎으려 한 그의 노력으로 인해 줄리아니의 변호사 자격을 박탈했다.
2022년 6월 10일, 워싱턴 D.C. 변호사협회의 징계위원회는 워싱턴 D.C. 항소법원의 전문직 책임위원회에 줄리아니에 대한 징계 조치를 제기했다. 징계 사유는 줄리아니가 2020년 펜실베이니아주 대통령 선거와 관련하여 연방 법원에 제출한 서류에 트럼프를 지지하는 근거 없는 주장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2023년 7월 7일, 전문직 책임위원회의 임시 심사위원회는 그의 변호사 자격 박탈을 권고했으며, 2024년 5월 31일, 위원회 자체가 이에 동의했다. 그는 2024년 9월 26일 워싱턴 D.C. 항소법원에 의해 변호사 자격이 박탈되었다.
2022년 6월 27일, 줄리아니는 뉴욕 주지사 공화당 후보가 되려던 아들 앤드루를 위해 스태튼 아일랜드의 슈퍼마켓인 샵라이트에서 선거운동을 벌였다. 줄리아니의 등장 후, 39세의 슈퍼마켓 직원 다니엘 길이 줄리아니의 등을 때렸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줄리아니는 "거대한 바위에 맞은 것 같았다" 또는 "누군가가 나를 쏜 것 같았다"며 "엄청나게 아팠다"고 말했다.
2023년 5월, 길은 줄리아니를 상대로 "위법 체포(false arrest), 위법 체포 및 위법 감금으로 인한 시민권 음모, 명예훼손, 고의적 정신적 고통 유발, 과실로 인한 정신적 고통 유발"에 대한 금전적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2023년 5월 15일, 줄리아니의 비공식 직원이었던 노엘 던피는 그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그녀는 줄리아니를 성폭행, 임금 절도, 불법적인 권력 남용으로 고발했다.
2023년 9월, 법률회사 데이비드오프 허처 앤 시트론은 줄리아니를 상대로 미지급 법률 수임료 1300 이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역시 2023년 9월, 헌터 바이든은 줄리아니, 그의 회사들, 그리고 변호사 로버트 코스텔로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그들이 수년 동안 자신의 개인 기기에서 가져오거나 훔친 데이터를 "해킹하고, 조작하고, 변조하고, 복사하고, 유포하고, 전반적으로 집착하여" 그의 디지털 프라이버시를 "완전히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2023년 10월, 줄리아니는 뉴햄프셔주에서 2020년 대선 토론 중 그를 "러시아의 꼭두각시"라고 언급한 조 바이든 대통령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8. 개인사
줄리아니는 3번 결혼했다. 1968년 10월 26일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촌 동생인 레지나 페루지(Regina Peruggi)와 결혼했지만, 1970년대 중반 결혼 생활에 문제가 생겨 1975년 별거에 들어갔다. 1982년 언젠가 현지 TV 진행자인 도나 해노버(Donna Hanover)를 만났고, 그녀가 마이애미에서 일할 때부터 데이트를 시작했다. 줄리아니는 1982년 8월 12일 페루지와의 법적 분리(legal separation)를 신청했다. 줄리아니와 페루지의 결혼은 1982년 말 민사상 이혼, 1983년 말에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결혼 무효(annulment)가 허가되었다. 이는 줄리아니가 자신과 페루지가 사촌 동생(second cousins)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줄리아니와 페루지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다.
줄리아니는 1984년 4월 15일 맨해튼의 세인트 모니카 교회에서 해노버와 결혼했다. 슬하에 앤드류 줄리아니(Andrew Giuliani)와 캐롤라인 로즈 두 자녀를 두었다. 캐롤라인 로즈는 LGBTQ+ 커뮤니티에서 영화 제작자로 활동하며 자신을 아버지와 "다중 우주만큼이나 다르다"고 묘사했다.
1999년 5월 해노버와 결혼한 상태였지만 제약 회사의 영업 관리자인 주디스 네이선(Judith Nathan)을 어퍼 이스트 사이드(Upper East Side)의 시가 바(cigar bar)인 클럽 마카누도(Club Macanudo)에서 만났다. 2000년 3월까지 줄리아니는 결혼 반지를 끼지 않았다. 2000년 5월 10일, 줄리아니는 해노버와 별거할 의향이 있음을 발표하는 기자 회견을 열었다. 줄리아니는 기자 회견 전에 해노버에게 자신의 계획을 알리지 않았다. 줄리아니는 2001년 8월 그레이시 맨션(Gracie Mansion)에서 나와 친한 부부와 함께 아파트로 이사했다. 줄리아니는 2000년 10월 해노버와의 이혼을 신청했고, 2002년 7월에 이혼 소송을 마무리했고, 줄리아니는 해노버에게 6800의 합의금을 지불하고 자녀의 양육권을 그녀에게 넘겼다. 줄리아니는 2003년 5월 24일 네이선과 결혼했고, 의붓딸인 휘트니를 얻었다. 이는 두 번의 이혼 후 네이선의 세 번째 결혼이었다.
네이선은 15년간의 결혼 생활 끝에 2018년 4월 4일 줄리아니와의 이혼을 신청했다. 이혼은 2019년 12월 10일에 합의되었다.
2000년 4월, 당시 55세였던 줄리아니는 전립선 특이 항원(prostate specific antigen, PSA) 수치 상승 후 전립선 생검을 통해 전립선암 진단을 받았다. 줄리아니는 완치되었고, 이후 암 생존자 대변인이 되었다.
줄리아니는 종교적 실천과 신앙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거부했지만, 종교를 자신의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여긴다고 밝혔다. 그가 실천하는 가톨릭 신자냐는 질문에 줄리아니는 "나의 종교적 소속, 종교적 실천, 그리고 내가 얼마나 좋은 또는 그렇지 못한 가톨릭 신자인지는 사제들에게 맡기는 것이 좋겠다"고 답했다.
9. 수상 및 영예
* 1989년, 시러큐스 대학교는 줄리아니에게 명예 법학 박사 학위를 수여했고, 2022년에 해당 대학교는 줄리아니의 학위를 취소하는 절차를 개발 중이라고 발표했다.
* 1998년, 줄리아니는 뉴욕 100년 협회로부터 "뉴욕시에 대한 뛰어난 공헌"을 인정받아 금메달 상을 수상했다.
* 2001년, 타임지는 줄리아니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 2002년 2월 13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911 테러 이후 그의 리더십에 대한 공로로 줄리아니에게 명예 대영 제국 훈장 기사 휘장을 수여했다.
* 2002년 10월 28일, 체코 공화국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은 줄리아니에게 영웅 훈장을 수여했다.
* 2002년, 뉴욕 성공회 교구는 줄리아니에게 세계적 위기 시 용기와 리더십을 보여준 공로로 피오렐로 라과르디아 공공봉사상을 수여했다.
* 2002년, 전 영부인 낸시 레이건은 줄리아니에게 로널드 Reagan 자유상을 수여했다.
* 2002년, 줄리아니는 선출 또는 임명된 공무원의 가장 위대한 공공 봉사에 대한 미국 상원의원 존 하인츠 상을 받았는데, 이 상은 매년 제퍼슨 상에서 수여한다.
* 2003년, 줄리아니는 업적 아카데미의 골든 플레이트 상을 받았다.
* 2003년, 로드아일랜드 대학교에서 법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2022년 1월 취소)
* 2005년, 줄리아니는 메릴랜드 로욜라 대학교와 미들베리 대학교로부터 명예 학위를 받았다. 2021년, 미들베리는 줄리아니에게 수여한 학위를 취소했다고 발표했다.
* 2007년, 줄리아니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육군사관학교로부터 공공행정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 2007년, 줄리아니는 미국 이탈리아계 미국인 재단(NIAF)으로부터 공공봉사에 대한 NIAF 특별 공로상을 받았다.
* 2007년, 줄리아니는 대서양 브리지로부터 마거릿 대처 자유 훈장을 받았다.
* 2009년, 드렉셀 대학교 얼 마크 로스쿨 졸업식에서 줄리아니는 기조연설자이자 명예 학위 수여자였다. 2021년, 드렉셀은 해당 학위를 취소했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