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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용문사 대장전과 윤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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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예천 용문사 대장전과 윤장대는 고려 명종 3년(1173년)에 건립된 건물로, 대장전은 윤장대를 보관하는 국내 유일의 경장건축이며, 윤장대는 고려 초 중국 송대의 전륜장 형식을 받아들여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17세기에 수리되어 현재까지 보존되어 왔으며, 동아시아에서 유일한 사례라는 희소성과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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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용문사 대장전과 윤장대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명칭
이름예천 용문사 대장전과 윤장대
로마자 표기Yecheon Yongmunsa Daejangjeon-gwa Yunjangdae
영문 표기Daejangjeon Hall and Rotating Sutra Cases of Yongmunsa Temple, Yecheon
일반 정보
유형국보
지정 번호328
지정일2019년 12월 2일
주소경상북도 예천군 용문사길 285-30 (용문면, 용문사)
시대대장전(조선시대)/윤장대(고려시대)
관리용문사
참고구조/형식: 대장전(목구조/오량가/맞배지붕), 윤장대(목구조/불교공예/팔각지붕)
규모: 대장전 정면 3칸, 측면 2칸 / 윤장대 높이 4.2m, 둘레 3.5m
면적지정면적 135.6m2 / 보호구역 14,060.4m2
수량대장전 1동/윤장대 2좌
예천 용문사 대장전 (지정 해제)
지정 종류보물
지정 번호145
지정일1963년 1월 21일
해제일2019년 12월 2일
영문 명칭Daejangjeon Hall of Yongmunsa Temple, Yecheon
예천 용문사 윤장대 (지정 해제)
지정 종류보물
지정 번호684
지정일1980년 9월 16일
해제일2019년 12월 2일
영문 명칭Rotating Sutra Case of Yongmunsa Temple, Yecheon

2. 역사

예천 용문사는 신라 경문왕 때 두운선사(杜雲禪師)가 창건한 후, 후삼국 시대를 거쳐 고려 왕건과의 인연으로 사찰의 면모를 갖추었다.[1] 고려 명종 3년(1173년)에는 국난 극복을 염원하며 조응대선사(祖膺大禪師)의 발원으로 대장전과 윤장대가 조성되었다.[1] 이 건물들은 건립 목적과 시기 등이 명확히 기록된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대장전은 윤장대를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국내 유일의 경장(經藏) 건축물이며, 윤장대는 회전식 경장으로 당시 불교 신앙과 예술적 역량을 보여준다.[1] 창건 이후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특히 조선 시대인 17세기에 중수된 모습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1] 오랜 역사 속에서도 원형의 특징과 시대적 변화를 잘 간직하고 있으며, 특히 한 쌍으로 구성된 윤장대는 동아시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독창성과 희소성을 지닌다.[1]

2. 1. 창건과 고려시대

신라 경문왕(景文王) 대에 당나라에서 돌아온 두운선사(杜雲禪師)가 작은 암자를 짓고 수행하면서 예천 용문사가 시작되었다. 이후 후삼국 시대의 혼란기에 고려를 건국한 왕건(王建)과 인연을 맺으며 사찰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1]

용문사의 대장전(大藏殿)과 윤장대(輪藏臺)는 고려 명종 3년인 1173년에 조성되었다. 당시 김보당의 난과 같은 국가적 어려움을 불교의 힘으로 극복하고자 조응대선사(祖膺大禪師)가 발원하여 세운 것이다. 1185년에 작성된 '중수용문사기'(重修龍門寺記) 기록을 통해 발원자와 건립 시기, 목적이 명확하게 밝혀진 드문 사례이다.[1]

대장전은 본래 불교 경전을 보관하는 건물이지만, 용문사 대장전은 윤장대를 보호하기 위해 특별히 건립된 건물이라는 특징을 지녔다. 다포계 양식에 맞배지붕 형태를 한 이 건물은 초창(1173년) 이후 여러 차례 수리가 있었으나 처음의 규모와 구조는 유지되고 있다. 무엇보다 대장전은 윤장대를 보관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경장(經藏)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독특한 가치를 지닌다.[1]

윤장대는 불교 경전을 넣어 돌릴 수 있도록 만든 회전식 경장(經藏)으로, 전륜장(轉輪藏), 전륜경장(轉輪經藏), 전륜대장(轉輪大藏)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윤장대를 한 번 돌리면 경전을 한 번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이 쌓인다고 여겨져, 불경을 직접 읽을 시간이 부족했던 대중들에게 각광을 받았다.[1]

용문사 윤장대는 고려 초기에 중국 송대(宋代)의 전륜장 형식을 받아들여 제작한 것으로 생각되며, 과거 영동 영국사나 금강산 장안사 등에도 윤장대가 있었다는 기록이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러나 현재는 예천 용문사 윤장대만이 유일하게 같은 자리에서 846년 동안 그 형태와 기능을 이어오며 불교 경장신앙을 대변하고 있다. 대장전 내부 양쪽 옆면 칸에 좌우 대칭적으로 1좌씩 설치되어 있으며, 8각형의 불전 형태로 제작되어 중앙의 목재기둥이 회전축 역할을 하여 돌릴 수 있다. 8각 면의 창호 안쪽에는 경전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1]

특히, 윤장대 동쪽은 교살창, 서쪽은 꽃살창으로 간결함과 화려함을 서로 대비시킨 점, 음양오행과 천원지방의 동양적 사상을 의도적으로 내재시켜 조형화했다는 점에서 뛰어난 독창성과 예술성이 인정된다. 또한, 그 세부 수법 등에서 건축‧조각‧공예‧회화 등 당시의 기술과 예술적 역량이 결집된 종합예술품이라는 점에서도 가치가 크다.[1]

2. 2. 조선시대와 중수

대장전과 윤장대는 고려 명종 3년(1173년)에 처음 만들어진 이후 여러 차례 수리되었다.[1] 최근 동쪽(건물을 바라보는 사람 기준 오른쪽) 윤장대에서 천계 5년(1625년)에 작성된 묵서명이 발견되었으며, 이 묵서명과 건축 양식을 통해 볼 때 현재의 모습은 17세기 조선 시대에 수리된 후 이어져 온 것으로 여겨진다.[1]

대장전은 처음 지어진 1173년 이후 8번 이상 중수되었으나, 다행히 처음 지어졌을 때의 규모와 구조는 유지되고 있다.[1] 여러 차례 중수를 거치면서 건축 양식은 17세기 말의 특징을 보이게 되었지만, 대들보와 종보의 단면이 항아리 모양인 점이나 짧은 기둥인 동자주가 꽃병 또는 절구 형태인 점 등에서는 여말선초 시기의 옛 건축 기법(고식, 古式)도 찾아볼 수 있다.[1]

3. 특징

예천 용문사 대장전과 윤장대는 고려 명종 3년(1173년)에 김보당의 난과 같은 국난 극복을 기원하며 조응대선사(祖膺大禪師)가 발원하여 함께 조성한 것이다.[1] 고대 건축물로는 매우 드물게 발원자와 건립 시기, 건립 목적이 1185년에 작성된 '중수용문사기(重修龍門寺記)'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1]

대장전은 일반적으로 불교 경전을 보관하는 건물이지만, 용문사 대장전은 내부에 있는 윤장대를 보호하기 위해 특별히 건립되었다는 중요한 특징을 지닌다. 이는 국내에서는 유일한 경장(經藏, 경전을 보관하는 곳) 건축의 사례이다.[1]

윤장대는 불교 경전을 넣어 돌릴 수 있게 만든 회전식 서가로, 한번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이 있다는 신앙과 결부되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다.[1] 영동 영국사나 금강산 장안사 등에도 윤장대가 있었다는 기록이나 흔적이 있지만, 현재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예천 용문사의 것뿐이다. 특히 용문사 윤장대는 846년 동안(1173년 건립 기준) 같은 자리를 지키며 그 형태와 기능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1]

또한, 대장전 내부에 좌우 대칭으로 한 쌍이 설치된 형태는 동아시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구성이며, 뛰어난 독창성과 예술성을 보여준다.[1]

이처럼 예천 용문사 대장전과 윤장대는 고려 시대에 건립되어 여러 국난을 겪으면서도 불교 경장 건축의 원형과 시대별 변화를 잘 간직하고 있다. 국내 유일이라는 희소성과 상징성, 그리고 건축, 조각, 공예, 회화 등 당대 기술과 예술 역량이 집약된 종합 예술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되었다.[1]

3. 1. 대장전

예천 용문사 대장전은 일반적으로 불교 경전을 보관하는 건물이지만, 윤장대를 보호하기 위해 특별히 건립되었다는 특징이 있다.[1] 이 건물은 고려 명종 3년(1173년)에 김보당의 난과 같은 국난 극복을 위해 조응대선사(祖膺大禪師)가 발원하여 조성한 것으로, 고대 건축물로는 매우 드물게 건립 시기와 목적이 분명하게 밝혀져 있다.[1]

대장전은 다포계(공포를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배열한 공포 형식) 양식의 맞배지붕(책을 엎어놓은 듯한 모양의 지붕) 건물이다. 처음 지어진(1173년) 이후 8차례 이상 수리되었으나, 처음 지어졌을 때의 규모와 구조는 유지되고 있다.[1] 여러 차례 수리를 거치면서 현재는 17세기 말의 건축 양식을 보이지만, 대들보와 종보의 항아리 모양 단면이나 꽃병 또는 절구 형태의 짧은 기둥(동자주) 등에서는 여말선초(고려 말기~조선 초기)의 오래된 건축 기법(고식, 古式)을 확인할 수 있다.[1]

무엇보다 대장전은 윤장대를 보관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경장건축(경전을 보관하는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독특한 가치를 지닌다.[1]

3. 2. 윤장대

윤장대(輪藏臺)는 불교 경전을 보관하는 회전식 경장(經藏)으로, 전륜장, 전륜경장, 전륜대장이라고도 불린다. 예로부터 윤장대를 한번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이 있다는 신앙이 더해져, 불경을 가까이 할 시간이 없는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다.[1]

고려중국 송대(宋代)의 전륜장 형식을 받아들여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영동 영국사나 금강산 장안사 등에도 윤장대 설치 흔적과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현재는 예천 용문사의 윤장대만이 유일하게 같은 자리에서 846년 동안 그 형태와 기능을 이어오며 불교 경장 신앙을 대변하고 있다.[1]

용문사의 윤장대는 고려 명종 3년(1173년) 김보당의 난과 같은 국난 극복을 위해 조응대선사(祖膺大禪師)가 발원하여 조성한 것이다. 이는 고대 건축물로는 드물게 발원자, 건립 시기, 건립 목적이 분명하게 기록(重修龍門寺記, 1185년)으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여러 차례 수리된 것으로 확인되는데, 동쪽(오른쪽) 윤장대에서 발견된 천계오년(天啓午年, 1625) 묵서명과 건축 양식으로 미루어 17세기에 수리되어 현재 모습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1]

대장전 내부 양쪽 옆면 칸에 좌우 대칭으로 1쌍이 설치되어 있으며, 8각형의 불전 형태로 제작되었다. 중앙의 목재 기둥이 회전축 역할을 하여 돌릴 수 있으며, 8각 면의 창호 안쪽에는 경전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1]

3. 2. 1. 예술적 가치

대장전은 윤장대를 보관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경장 건축이라는 점에서 독특한 가치를 지닌다.[1]

윤장대는 그 자체로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준다. 특히 동쪽 윤장대의 교살창과 서쪽 윤장대의 꽃살창은 서로 간결함과 화려함을 대비시켜 조형미를 더한다. 또한, 음양오행과 천원지방이라는 동양적 사상을 의도적으로 조형화한 점이 돋보인다. 이는 회전축에 원기둥과 각기둥을 함께 사용하고, 머름청판의 풍혈을 양각과 음각으로 다르게 조각하며, 회전축 밑단의 초석 부재를 오목하고(凹) 볼록한(凸) 형태와 음(陰)과 양(陽)의 수로 구성한 것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윤장대의 뛰어난 독창성과 예술성을 잘 보여준다.[1]

더불어 윤장대는 세부적인 수법에서 건축, 조각, 공예, 회화 등 당시의 기술과 예술적 역량이 결집된 종합예술품으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1] 예천 용문사의 윤장대는 현재 한국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윤장대이며, 같은 자리에서 846년 동안 그 형태와 기능을 이어오며 불교 경장 신앙을 대변하고 있다. 한 쌍으로 이루어진 윤장대는 동아시아에서도 그 사례를 찾기 어려워 절대적인 희소성과 상징성을 가지며,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되었다.[1]

4. 국보 지정

대장전윤장대고려 시대에 건립되어 여러 국난을 겪으면서도 초창 당시 불교 경장 건축의 특성과 시기적 변천 특징이 기록 요소와 함께 잘 남아있다.[1] 특히 윤장대는 불교 경전신앙의 한 파생 형태로, 한 쌍으로 된 윤장대는 동아시아에서도 그 사례가 없고 국내 유일이라는 절대적 희소성과 상징성을 지닌다.[1] 이러한 점에서 국보로 승격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1]

5. 갤러리

(내용 없음)

5. 1. 대장전

5. 2. 윤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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