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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모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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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왕모중은 본래 고려인으로, 당나라 현종의 신하가 되었다. 그는 동궁에서 낙타, 말, 매, 개 등의 가축을 관리했으며, 가축 사육에 능통하여 대장군과 삼품의 지위에 올랐다. 왕모중은 『구당서』에 고려인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낙랑군 출신이 아닌 고구려에 동화된 인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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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모중 - [인물]에 관한 문서
인물 정보
이름왕모중
한글왕모중
한자王毛仲
히라가나오우 모우츄우
한국어 표기왕모중례
기본 정보
출생일미상
출생지미상
사망일731년
사망지당나라 영주
국적당나라
성별남성
본관낙랑(추정)
주군당 현종
부모왕구루
경력
복무당나라군
최종 계급금군장령

2. 왕모중

왕모중은 본래 고려 사람으로, 현종의 신하가 되었다.[1] 그는 동궁에서 낙타, , , 등의 가축 사육을 담당하는 일에 능통하여, 몇 년 지나지 않아 대장군이 되었고 삼품의 지위에 올랐다.[1]구당서』 권 106 왕모중전에는 그가 "본래 고려 사람(本高麗人也)"이며, "동궁의 낙타·말·매·개 등의 사육장에 통달하여(專知東宮駝馬鷹狗等坊)" 능력을 인정받아 빠르게 승진했다고 기록되어 있다.[1]

2. 1. 역사적 배경

중국에는 예로부터 사육을 담당하는 관리가 있었다. 당나라 시대에도 동궁에는 낙타, , , 등을 기르는 사육장이 있었으며, 왕모중은 이곳에서 가축 사육을 담당했다.

남북조 시대부터 수나라, 당나라 시대에 활동했던 낙랑왕씨 출신 인물들(왕파, 왕반, 왕정국, 왕당성, 왕광조, 왕진, 왕기, 명덕황후, 왕맹 등)은 대부분 낙랑군 출신이 아닌 중국 출신으로 여겨진다. 다만, 조선에서 중국으로 이주한 낙랑왕씨 후예도 상당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2]. 왕모중의 경우, 『구당서』 권 106 왕모중전에서 '본래 고려인(本高麗人也)'이라고 명시하고 있어, 낙랑군에서 시간이 상당히 흐르면서 고구려에 현저하게 동화된 인물로 추정된다[2].

2. 2. 낙랑 왕씨

남북조 시대부터 수나라, 당나라 시대에 걸쳐 낙랑왕씨 출신 인물들이 활동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왕파, 왕반, 왕정국, 왕당성, 왕광조, 왕진, 왕기, 명덕황후, 왕맹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낙랑군 출신이라기보다는 중국 출신이었으며, 조선에서 중국으로 이주한 경우가 상당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2] 당나라 시대의 인물인 왕모중의 경우, 『구당서』 권 106 왕모중전에서 '본래 고려 사람(本高麗人也)'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1], 이는 낙랑군 설치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고구려에 상당히 동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된다.[2]

참조

[1] 서적 中国古代のイヌの品種改良 ヒトと動物の関係学会 2004-08
[2] 서적 中国古代少数民族姓氏研究 吉林文史出版社 199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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