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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추 (남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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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원추는 남송 시대의 학자이자 관료로, 건주 젠안 현 출신이다. 1163년 진사가 되었으며, 예부시관, 온주 판관, 엄주 교수를 역임했다.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바탕으로 『통감기사본말』 42권을 편찬하여 효종에게 헌상했다. 장돈의 전기 미화 요청을 거절하고 랭스광을 탄핵하는 등 강직한 면모를 보였으며, 영종 치세에는 강릉부 지부로 부임하여 선정을 펼쳤다. 『통감기사본말』은 역사 서술 방식에 영향을 미쳤으며, 『역학색인』, 『주역변이』 등의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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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추 (남송)
기본 정보
원술의 초상화
원술의 초상화
원 (袁)
이름술 (術)
공로 (公路)
시호위황제(僞皇帝)
생몰년155년 ~ 199년 6월
출생지여남군 여양현
사망지회남군 수춘현
시대후한 말기
직업군벌
가족 관계
아버지원봉 (袁逢)
원소 (袁紹)
아들원요 (袁耀), 원환 (袁奐)
황제비
관직
벼슬후장군 (後將軍), 좌장군 (左將軍)
봉작양책후 (陽翟侯)
작위황제
기타
관련 인물손견
여포
조조
유비
기령
장훈
교유
한섬
양봉
낙준
이풍
염상
우미
뇌박
진기
곽가

2. 경력

건주젠안 현 출신이다. 융흥 원년(1163년) 진사가 되었고, 건도 7년(1171년) 예부시관이 되었으나, 고관에게 아첨하지 않아 지방으로 파견되어 온주 판관, 엄주 교수를 역임했다.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애독하여, 쓰여진 사건을 이해하기 쉽도록 기술 체재를 바꾸어 『통감기사본말』 42권을 편찬했다. 참지정사였던 공량무가 이 저서를 효종에게 헌상했고, 효종은 이를 가납하여 동궁(태자) 등에게 나누어주고, 원추를 대종정부로 삼았다. 태부승에 국사원 편수를 겸임하고 있을 때, 동향인 장돈의 전기를 만들 때 장돈의 자손에게 미화해줄 것을 요청받았으나 단호하게 거절했다. 또한, 전중시어사 랭스광을 탄핵하기도 했다. 대리소경·공부시랑·국자감좨주를 거쳐, 영종 치세에 우문전수찬이 되었고, 더 나아가 강릉부 지부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았다.

3. 저술

원추는 『통감기사본말』을 편찬하여 역사 서술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통감기사본말』은 양만리, 장학성에게 칭찬을 받았고, 『사고제요』에서는 읽기 쉬운 점에 있어 "전고의 미견(前古之未見)"이라고 평가받았다. 원추의 기사본말체는 장충의 『춘추좌씨전사류시말』, 양중량의 『황송통감장편기사본말』 등에 영향을 주었다. · 시대에는 풍기, 진방첨의 『송사기사본말』, 장감의 『서하기사본말』, 이유당의 『요사기사본말』과 『금사기사본말』, 진방첨의 『원사기사본말』, 곡응태의 『명사기사본말』 등 기사본말체 역사서가 유행했다.

집에 장서가 많았으며, 그 외에 『역학색인』, 『주역변이』 등의 저서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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