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리 아시마노프는 1962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러시아의 IT 기업가이다. 그는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했으며, 자연어 처리, 검색 엔진 최적화, 인공 지능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1980년대에는 도로드니친 계산 센터와 Informatic사에서 근무하며 ORFO 맞춤법 검사기를 개발했다. 이후 MediaLingua와 람블러에서 일했으며, 2001년에는 검색 엔진 최적화 컨설팅 회사인 아시마노프 & 파트너스를 설립했다. 그는 또한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디지털 경제 관련 정부 실무 그룹에서 활동하고 있다. 2001년부터 나탈리아 카스퍼스키와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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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국립대학교 기계-수학부에서 추상대수학을 전공했다. 1983년 '자유군의 비구면 공표 및 필립 홀의 문제에 관한 연구'(On aspheric co-presentations of free groups and a problem by Philip Hall영어)라는 졸업 논문을 제출하고 졸업했다.
1985년부터 1987년까지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기계-수학부 추상대수학과의 대학원생으로 재학했다. 이후 1995년, ORFO 소프트웨어의 아키텍처 및 알고리즘 설명을 기반으로 한[27] '응용 언어 시스템의 아키텍처 및 산업적 구현'(Архитектура и промышленная реализация прикладных лингвистических системru)이라는 논문으로 '''과학 박사'''(Doctor of Science영어) 학위를 취득했다.[28]
2000년부터 2001년까지는 러시아 대통령 국가 경제 및 공공 행정 아카데미 고등 국제 비즈니스 학교에서 '전략 관리'(Strategic Management영어) 과정의 MBA를 수료했다.[29]
3. 경력
이고리 아시마노프는 도로드니친 계산 센터의 인공 지능 부서에서 인턴 연구원으로 IT 경력을 시작했으며, 1985년에는 정식 연구원이 되어 자연어 처리 시스템 등을 개발했다. 1987년부터는 'Informatic'사에서 ORFO 맞춤법 검사기 개발에 참여했고, 1991년 소련 쿠데타 시도 이후 프로젝트 리더 역할을 맡았다. ORFO가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된 후 1995년 Informatic사를 떠나 'MediaLingua'를 공동 설립하고 CEO를 역임하며 전자 사전 사업을 이끌었다.
1999년에는 회사 개발 전략 변경으로 MediaLingua를 떠나[9] 람블러로 옮겨 소프트웨어 연구 개발 이사를 거쳐 2001년 최고 운영 책임자(COO)가 되었다. 그러나 회사 소유주 변경 과정에서 검색 엔진 개발에 대한 지원 부족으로 같은 해 회사를 떠났다. 이후 람블러에서의 경험을 담은 책 《Жизнь внутри пузыря|지즌 브누트리 푸지랴ru》(거품 속의 삶)를 출간하여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01년 말, 아시마노프는 자신의 컨설팅 회사인 '''아시마노프 & 파트너스'''(Ashmanov & Partners)를 설립하여 러시아 검색 엔진 최적화 및 온라인 마케팅 시장을 개척하고 선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10] 이 회사는 현재 다수의 자회사를 거느리며 통합 온라인 마케팅 서비스 제공, 기술 개발, 전문가 교육(온라인 마케팅 아카데미 운영[12])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11년 기준 월 1,000명 이상의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며 러시아 온라인 마케팅 시장의 5~10%를 점유했다.[11]
3. 1. 도로드니친 컴퓨팅 센터 (1985-1987)
이고리 아시마노프는 도로드니친 계산 센터의 인공 지능 부서에 인턴 연구원으로 합류하며 IT 분야 경력을 시작했다. 1985년 센터의 연구원이 되었으며, 이 시기에 자연어 기반 대화 시스템, 경제 컴퓨팅 등을 개발했다.
3. 2. 인포매틱 (1987-1995)
1987년, 아시마노프는 Informatic사에서 ORFO 맞춤법 검사기 개발팀에 합류하여 언어 말뭉치를 담당했다. 그는 또한 Context 전자 사전, Logos 행간 번역 프로그램, Calligraph 하이픈 분리 시스템, Sphinx 전체 텍스트 검색 엔진, Jordan 행렬 계산기 개발을 지휘했다.
8월 쿠데타 당시 팀 리더를 포함한 대부분의 ORFO 개발자들이 러시아를 떠나 미국으로 향했다. 아시마노프는 남아서 ORFO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1992년, ORFO는 IBM에 라이선스되었고, 1994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사의 주력 제품인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의 러시아어 버전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는 ORFO를 인수했고, 아시마노프는 Informatic사를 퇴사하였다.
3. 3. MediaLingua (1995-1999)
1995년, 이고리 아시마노프는 ''MediaLingua''를 공동 설립하고 CEO가 되었다. 이 회사는 러시아어 출판사로부터 전자 사전에 대한 독점권을 획득하고 전자 이중 언어 사전의 MultiLex 제품군을 만들었다.
1999년, MediaLingua의 최대 주주인 올레그 세레브렌니코프는 회사의 개발 전략을 변경하기로 결정했고,[9] 이고리 아시마노프는 소프트웨어 연구 개발 이사로 람블러에 합류하기 위해 회사를 떠났다.
3. 4. 램블러 (1999-2001)
2001년 아시마노프는 람블러(Rambler)의 최고 운영 책임자가 되었다. 그가 회사에 약 1년 반 동안 재직하는 동안, 새로운 검색 코어인 람블러 2.0이 개발 및 배포되었고, 웹 포털의 20개 이상의 새로운 서비스가 출시되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람블러의 소유권은 세 번이나 바뀌었으며, 새로운 소유주들은 검색 엔진 개발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아시마노프는 2001년 5월 회사를 떠났다.
이후 그는 람블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Жизнь внутри пузыря|지즌 브누트리 푸지랴ru''(거품 속의 삶)라는 책을 출판했다. 이 책은 대형 인터넷 지주 회사의 내부 운영 실상을 다루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3. 5. 아시마노프 & 파트너스 (2001-현재)
2001년 후반, 아시마노프는 러시아에서 검색 엔진 최적화 시장을 개척하고 선두 주자가 된 컨설팅 회사 '''아시마노프 & 파트너스'''(Ashmanov & Partners)를 설립했다.[31][10] 그는 람블러(Rambler)의 전 동료들과 합류했으며, 이들은 나중에 회사의 주주가 되었다.
"아시마노프 & 파트너스"와 그 자회사는 현재 300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다. 2011년 The Firm's Secret 잡지에 따르면[32][11], 아시마노프 & 파트너스는 매달 1,000개 이상의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했으며, 러시아 온라인 마케팅 산업에서 총 5~10%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했다.
A&P는 통합 온라인 마케팅 서비스 제공 외에도, 마케팅 전문가를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업계 선두 컨퍼런스를 조직하며, A&P 및 경쟁 회사 전문가들이 학생들을 교육하는 온라인 마케팅 아카데미[33]를 운영하고 있다.[12] 2005년에는 인공지능 연구를 위한 자회사로 나노세만틱스(Nanosemantics)를 설립했다.
2007년, 아시마노프 & 파트너스의 연간 총 거래량은 피남 홀딩스(Finam Holdings)에 의해 250만달러로 추산되었다. 공개된 세금 보고서를 기반으로 한 팩투스(Factus)의 연간 웹 스튜디오 평가에 따르면, 2015년 아시마노프 & 파트너스의 총 거래량은 VAT 미포함 3억러시아 루블 이상이었다.[34][13]
아시마노프 & 파트너스는 회사가 인수하거나 시작한 여러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자회사들은 공식적인 지주회사 그룹의 일부는 아니지만, 아시마노프 & 파트너스와 자매 회사의 자원을 모두 사용한다.
4. 주요 성과 및 평가
이고리 아시마노프는 러시아의 인터넷 산업 분야에서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으며, 그의 사업적 성과와 사회적 영향력은 여러 매체를 통해 조명되었다. 그는 주요 인터넷 사업가 및 백만장자 순위에 이름을 올렸고,[19][16][17]디지털 마케팅 분야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18] 또한 정부의 디지털 경제 관련 위원회에 참여하고 교육 및 정치 활동에도 관여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20]
4. 1. 재산
러시아 잡지 Финанс|피난스ru(Finace)는 2010년과 2011년에 아시마노프의 재산을 각각 5000만달러로 추정했다.[14][15]
2012년 잡지 'The Firm's Secret'는 그의 재산을 5600만달러로 추정했으나, 2014년에는 2200만달러로 하향 조정했다.[16][17]
4. 2. 수상 및 업적
이고리 아시마노프는 2004년과 2006년에 ROTOR의 '올해의 인물' 후보에 올랐으며, 2008년에는 2위를 차지했다.
2011년, ''포브스 러시아''는 아시마노프를 '러시아 인터넷 사업가 TOP30' 목록에 포함시켰다.[19]
그는 또한 잡지 ''The Firm's Secret''이 선정한 '러시아 인터넷 백만장자 TOP100'에 이름을 올렸는데, 2012년에는 35위, 2014년에는 84위를 기록했다.
광고 회사 'Tagline'의 '러시아 디지털 마케팅 및 웹 개발 시장의 핵심 인물' 평가에서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4년 연속으로 아르테미 레베데프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18]
4. 3. 사회 활동
이고리 아시마노프는 여러 정부 실무 그룹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대통령 행정실 산하 디지털 경제 실무 그룹(이고리 쇠골레프가 이끄는 ''인터넷 + 사회'' 및 ''인터넷 + 주권'' 소그룹), 뱌체슬라프 볼로딘이 위원장을 맡은 국가두마 산하 디지털 경제 위원회, 통신부 산하 디지털 경제 실무 그룹(''정보 보안'' 소그룹) 등이 있다.
또한 그는 스콜코보 재단 전문가[20] 이며, 전략 미사일 부대 군사 아카데미와 러시아군 참모본부 군사 아카데미에서 빅 데이터, 소셜 네트워크, 정보전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2001년부터 두 번째 부인인 나탈리아 카스퍼스키와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나탈리아 카스퍼스키는 IT 기업가이며, 안티바이러스 소프트웨어 개발사인 카스퍼스키 랩의 창업자 예브게니 카스퍼스키의 전 부인이기도 하다. 이고리 아시마노프는 나탈리아와의 사이에서 세 딸 알렉산드라(2005년생), 마리아(2009년생), 바르바라(2012년생)를 두었다. 또한 부부는 나탈리아가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두 아들 막심과 이반도 함께 키우고 있다.[42][4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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