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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서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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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임신서기석은 신라 시대에 제작된 금석문 유물로, 5줄 74글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맹세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한자·한문을 한국어 표기에 활용한 훈석식 표기의 증거로 여겨진다. 임신년은 552년 또는 612년으로 추정되며, 서예사적으로 6세기 신라 석문의 특징을 보여준다. 또한, 신라 국학 설치 이전의 기록으로, 춘추전 대신 논어가, 예기에는 중용과 대학이 포함되어 있어, 시경, 서경, 예기, 중용, 대학, 논어 등 6과목을 학습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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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서기석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문화재 정보
이름임신서기석
임신서기석
유형보물
번호1411
지정일2004년 6월 26일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국립경주박물관 (인왕동,국립경주박물관)
시대신라
소유자국유
수량1점
문화재청 ID12,14110000,37

2. 비문의 내용 및 해석

비문은 5줄로 새겨져 있으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1]

: 壬申年六月十六日二人幷誓記天前誓今自

: 三年以後忠道執持過失无誓若此事失

: 天大罪得誓若國不安大亂世可容

: 行誓之又別先辛未年七月卄二日大誓

: 詩尙書禮傳倫得誓三年

이를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1]

: 壬申年六月十六日二人幷誓記|임신년 6월 16일에 두 사람이 함께 맹세하여 기록한다.중국어

: 天前誓|하느님 앞에 맹세한다.중국어

: 今自三年以後忠道執持過失无誓|지금으로부터 3년 이후에 충도(忠道)를 지키고 허물이 없기를 맹세한다.중국어

: 若此事失天大罪得誓|만일 이 서약을 어기면 하느님께 큰 죄를 지는 것이라고 맹세한다.중국어

: 若國不安大亂世可容行誓之|만일 나라가 편안하지 않고 세상이 크게 어지러우면 ‘충도’를 행할 것을 맹세한다.중국어

: 又別先辛未年七月卄二日大誓|또한 따로 앞서 신미년 7월 22일에 크게 맹세하였다.중국어

: 詩尙書禮傳倫得誓三年|곧 시경(詩經)·상서(尙書)·예기(禮記)·춘추전(春秋傳)을 차례로 3년 동안 습득하기로 맹세하였다.중국어

이는 한자·한문을 받아들여 한국어 표기 수단으로 삼을 때, 향찰식(鄕札式) 표기, 한문식(漢文式) 표기 외에 훈석식(訓釋式) 표기가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일한 금석문 유물이다.[1] 세속 5계 중 ‘교우이신(交友以信)’, 즉 신라 젊은이들의 신서(信誓) 관념을 보여주며, 한민족의 고대 신앙 중 ‘천(天)’의 성격의 일단을 시사해 주는 자료이다.[1]

명문의 임신년(壬申年)은 552년(진흥왕 13) 또는 612년(진평왕 34) 중 한 해일 것으로 보인다.[1] 서예사적(書藝史的) 측면에서도 자형과 획법, 그리고 명문의 새김 방식에서 6세기 신라 시대 석문(石文)의 일반적 특징을 보여준다.[1]

명문 작성 년도가 신라 국학 설치 이전이므로, 원문 ['詩尙書禮傳']에 '전(傳)'으로만 되어 있는 과목은 춘추전이나 춘추좌씨전 등이 아니라 논어일 가능성이 있다. 또한, 예기에는 중용과 대학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송나라 때에야 비로소 나타나는 사서삼경 또는 사서오경을 고려할 때 임신서기석의 과목들은 맹자, 주역, 춘추를 제외한 시경, 서경, 예기, 중용, 대학, 논어 등 모두 6과목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3. 역사적 의의

임신서기석은 6세기 신라 시대의 금석문으로, 신라 젊은이들이 유교 경전을 공부하고 충성을 맹세한 내용을 담고 있어, 신라의 사상, 문화, 교육, 서예 등 다양한 분야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특히, 명문 작성 시기가 신라 국학 설치 이전이므로 더욱 중요한 사료이다.[1]

비석은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길쭉한 점판암 형태로, 한 면에 5줄 74글자가 새겨져 있다. '임신(壬申)'이라는 간지와 충성 서약 글귀 때문에 '임신서기명석(壬申誓記銘石)'이라고 불린다.[1]

임신년(壬申年)은 552년(진흥왕 13) 또는 612년(진평왕 34) 중 하나로 추정되며, 6세기 신라 석문(石文)의 일반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서예사적 가치도 지닌다.[1]

3. 1. 한국어 표기 연구

임신서기석은 한자, 한문을 받아들여 한국어를 표기할 때, 향찰식 표기, 한문식 표기 외에 훈석식(訓釋式) 표기가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일한 금석문 유물이다.[1] 이 비석은 세속오계 중 '교우이신(交友以信)', 즉 신라 젊은이들의 신의와 맹세 관념을 보여주는 자료이며, 한민족의 고대 신앙 중 '하늘(天)'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1]

3. 2. 신라 시대 사상 연구

임신서기석 비문을 통해 신라 시대 젊은이들의 신서(信誓) 관념, 특히 세속오계 중 '교우이신(交友以信)'과의 관련성을 확인할 수 있다.[1] 이 비석은 한자, 한문을 받아들여 한국어를 표기할 때 향찰식, 한문식 표기 외에 훈석식(訓釋式) 표기가 실제로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유일한 금석문 유물이다.[1] 또한, 한민족의 고대 신앙 중 '천(天)'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1]

비문에 따르면, 국학 설치 이전에 작성되었기에, 원문에 '전(傳)'으로만 표기된 과목은 춘추전이나 춘추좌씨전이 아닌 논어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또한 예기중용과 대학이 포함되므로, 임신서기석의 과목들은 맹자, 주역, 춘추를 제외한 시경, 서경, 예기, 중용, 대학, 논어 등 6과목으로 추정할 수 있다.

3. 3. 고대 신앙 연구

임신서기석 비문에 나타난 '천(天)' 신앙은 고대 한국인의 신앙 체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비문에는 "하느님 앞에 맹세한다", "이 서약을 어기면 하느님께 큰 죄를 지는 것"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이 하늘을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닌, 인간의 행동을 심판하고 상벌을 내리는 절대적인 존재로 인식했음을 보여준다.[1]

이러한 '천' 신앙은 세속 5계 중 '교우이신(交友以信)', 즉 신라 젊은이들의 신의와 서약 관념과 연결된다. 두 사람이 맹세하고 이를 어기면 하늘의 벌을 받는다는 믿음은, 약속과 신뢰를 중요하게 여겼던 당시 사회의 가치관을 반영한다.[1]

3. 4. 유교 수용 연구

임신서기석은 신라의 젊은이들이 유교 경전을 학습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다. 비문에 따르면, 두 사람은 시경(詩經), 상서(尙書), 예기(禮記), 춘추전(春秋傳)을 3년 동안 배우기로 맹세했다.[1] 이는 국학 설치 이전부터 신라에서 유교 경전 학습이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명문에 '전(傳)'으로만 표기된 과목은 춘추좌씨전 등이 아니라 논어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또한 예기에는 중용과 대학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사서삼경 또는 사서오경 체계와 비교할 때 임신서기석의 과목은 맹자, 주역, 춘추를 제외한 시경, 서경, 예기, 중용, 대학, 논어 등 6과목으로 추정할 수 있다.

4. 서예사적 가치

임신서기석은 6세기 신라 석문(石文)의 일반적 특징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서예사적(書藝史的) 측면에서 자형과 획법, 그리고 명문의 새김방식에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다.[1] 명문의 임신년(壬申年)은 552년(진흥왕 13) 또는 612년(진평왕 34) 중 어느 한 해일 것으로 추정된다.[1]

5. 제작 연대 논란

비문에 명시된 '임신년(壬申年)'은 552년(진흥왕 13) 또는 612년(진평왕 34) 중 어느 해에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 서예사적 측면에서도 자형, 획법, 명문 새김 방식 등에서 6세기 신라 시대 석문의 일반적 특징을 보여준다.[1]

명문 작성 연도가 신라 국학 설치 이전이므로, 원문의 '시상서예전(詩尙書禮傳)' 중 '전(傳)'으로만 표기된 과목은 춘추전이나 춘추좌씨전이 아니라 논어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또한, 예기에는 중용과 대학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사서삼경 또는 사서오경 체계와 비교할 때 임신서기석의 과목은 맹자, 주역, 춘추를 제외한 시경, 서경, 예기, 중용, 대학, 논어 등 6과목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

6. 경전 해석 논란

명문에 작성된 연도가 신라 국학 설치 이전이므로, 원문('詩尙書禮傳')에 '전(傳)'으로만 표기된 과목은 춘추전이나 춘추좌씨전 등이 아니라 논어일 가능성이 있다.[1] 예기에는 중용과 대학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송나라 때 비로소 나타나는 사서삼경 또는 사서오경을 참고하면 임신서기석의 과목들은 맹자, 주역, 춘추를 제외한 시경, 서경, 예기, 중용, 대학, 논어 등 모두 6과목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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