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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판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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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판 전투는 208년 조조가 형주를 공격하면서 벌어진 전투이다. 유표 사후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하자 유비는 백성들과 함께 남쪽으로 피난을 가던 중 조조군에게 기습을 받았다. 유비는 가족을 버리고 도주했지만, 조운은 아두(유선)와 감부인을 구출했다. 장비는 장판교에서 조조군의 추격을 막아 유비가 시간을 벌 수 있게 했다. 이 전투 이후 유비는 손권과 동맹을 맺고, 이는 적벽 대전으로 이어져 삼국 시대의 기반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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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판 전투 - [전쟁]에 관한 문서
전투 개요
전투명장판 전투
관련 전쟁적벽 전투 전역
시기208년 10월경
장소형주 당양 장판 (현재 후베이성 징먼 시 쭤다오 구 남쪽)
원인알 수 없음
결과조조군 승리, 유비는 하구로 퇴각
교전 세력
교전 대상 1조조
교전 대상 2유비
지휘관 및 지도자
조조군 지휘관조조 , 조순, 문빙
유비군 지휘관유비, 유기, 관우, 장비, 제갈량, 조운
병력 규모
조조군정예 기병 5,000명
유비군보병 2,000 ~ 10,000명, 비무장 민간인 100,000명
피해 규모
조조군 피해알 수 없음
유비군 피해알 수 없음
기타 정보
장판파에서 싸우는 조운
베이징 이화원의 장랑에 있는 그림 "장판파에서 조운의 싸움"

2. 배경

207년 후한의 승상 조조는 화북을 평정하고 형주 지역으로 눈을 돌렸다. 당시 형주는 일대 세력을 구축한 형주 자사 유표가 다스리고 있었기에, 두 사람은 형주의 패권을 두고 다투게 되었다. 조조는 형주 지역에 자신의 일족이자 중신인 하후돈을 대장으로 삼고 이전과 함께 별동대로 파견했으나, 박망파 전투에서 유비에게 대패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유표가 갑자기 병으로 쓰러졌다. 유표는 생전에 후계자 문제를 명확히 하지 않아, 그의 사후 가문은 분열되었고, 이는 조조에게 형주를 쉽게 넘겨주는 결과를 낳았다.

유표 사후, 형주의 유력 호족이었던 채씨 가문의 수장 채모를 필두로 형주 유력 호족들은 책동을 시작했다. 그들은 채모의 누이이자 유표의 후실이었던 채씨 부인과 공모하여 유표의 차남 유종을 옹립했다. 이들은 유표의 유언으로 본래 가문을 상속받아야 했던 장남 유기를 버리고, 유종을 정식 후계자로 삼아 가문을 계승시켰다. 이때 형주의 내분을 지켜본 조조는 약 10~15만 명에 달하는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기 시작했다.[1]

3. 전투의 전개 (정사)

유종은 가문을 계승하여 조조에 대해 대항할 의사가 없었다. 부손은 유비와 함께 조조를 막아봐야 결국 형주는 유비의 차지가 된다고 진언했고, 유종은 이에 따라 조조가 신야에 도달하자 항복했다. 번성에 주둔하던 유비는 불시에 양쪽에 포위당한 형국이 되자 몹시 당혹하여 양양으로 향했다. 제갈량은 유종을 공격하여 형주를 지배하자고 진언했으나, 유비는 유표의 은혜를 생각해 이 제안을 거절했다. 유비는 유종을 불렀으나 유종은 두려워하며 나가지 않았다.

이에 유종의 측근 및 다수의 형주 사람들은 유비에게 귀순했다. 많은 백성들이 유비를 따라 움직였기에 유비는 하루 10여 리(4~5km) 밖에 전진하지 못했다. 여기서 유비는 관우에게 수백 척의 배에 그들의 일부를 탑승시켜 강릉으로 보내고 미리 접선 준비를 하게 하였다.

조조는 유비가 군수 물자가 풍부한 강릉을 점거하는 걸 두려워해 수송부대를 후방에 배치하고 신속하게 양양을 점거했다. 조조는 조순과 함께 몸소 5천 정예기병대 호표기를 이끌고 하루 밤낮으로 유비를 추격하였고, 이들은 당양현 장판에서 유비 군의 후미를 급습하게 된다.

장판 전투 지도


유비가 이끌던 피난민 무리는 급습에 붕괴되어 흩어져 곧 조조군에게 사로잡혔다. 조조가 이렇게까지 서둘러 급습할 거라 생각을 못한 유비는 처자를 버리고 제갈량과 함께 수십 기의 병력만을 데리고 도주했으며, 이때 피난민 사이에 있던 유비 가신들의 친족들과 유비 자신의 가족들도 무사하지 못하였다. 유비의 가신 서서의 모친이 사로잡혀 그가 유비에게 이별을 고하고 조조 진영으로 투항했으며, 조순은 유비의 두 딸을 노획하였다. 이런 혼란 속에서 조운은 호표기 사이로 들어가 아두(후에 유선)와 감부인을 구해내어 지키면서 그들의 추격을 뿌리쳐 무사히 합류하였으며, 이후 아문장군(牙門將軍)이 되었다.

한편 장비는 후군을 맡아 조조군의 추격을 막기 위해 20여 기를 이끌고 강을 방패삼아 다리를 끊어버린 후 '''"나는 장익덕이다. 누가 나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는가!"'''라고 외쳐 조조군은 겁을 먹어 누구도 가까이 다가서지 못했고, 유비는 귀중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이렇게 유비를 놓친 조조는 추격을 단념하고 곧바로 강릉을 점거한다.

유비는 한진(漢津)에서 관우가 이끌던 선단을 만났고, 또한 유표의 장남 유기의 군사와 만나 함께 유기의 본거지인 하구에 도달했다. 유비는 손권의 가신 노숙을 만났고 제갈량을 오나라에 파견해 손권과 동맹을 맺었다. 손권은 수만 명의 군대를 파견해 유비와 함께 적벽에서 조조군을 격퇴한다.[1]

4.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유표의 비호 아래 신야를 수비하던 유비는 유종의 항복으로 고립되었다. 이를 기회로 여긴 조조군의 공격에 신야는 위태로웠다. 조조는 조인과 조홍을 선봉으로 삼아 신야로 진격했으나, 이는 제갈량의 계략이었다. 조조군은 신야성 안 복병에 의해 격퇴되었고, 유비는 신야를 버리고 형주로 후퇴했다.

유비는 번성을 거쳐 양양으로 향했으나, 장윤에 의해 입성을 거부당했다. 위연이 성문을 열려고 했으나 실패했고, 유비는 강릉을 목표로 유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남하하는 유비 일행은 백성들과 합류하여 이동 속도가 느렸다. 당양현 장판에 도착했을 때 조조군의 공격을 받았다. 장비가 후군을 맡아 방어했으나, 유비는 처자식을 버리고 후퇴했다. 혼란 중에 미부인아두는 위나라 병사에게 생포되었으나, 조운이 단기로 뛰어들어 구출했다.

조운은 순우도를 죽이고 미축과 감부인을 구출하고, 다시 미부인과 아두를 찾기 위해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하후은을 죽이고 미부인을 발견했으나, 미부인은 중상을 입고 아두를 맡긴 채 우물에 뛰어들어 자결했다. 조운은 아두를 품에 안고 조조군 진영을 돌파하며 안명, 장합, 초촉, 장남, 마연, 장의, 종진, 종신 등 많은 장수를 베었다.

장비의 장판교(長阪橋)에서의 모습 (, 츠키오카 요시토시의 우키요에)


장판교에서 장비는 홀로 조조군을 막아섰다. 장비의 고함에 하후걸이 놀라 죽고, 조조군은 숲에 먼지가 자욱한 것을 보고 매복을 의심하여 후퇴했다. 장비는 다리를 끊고 후퇴했다. 유비 일행은 관우, 제갈량의 수군과 합류하여 장강 연안으로 남하, 하구에서 유기와 노숙을 만나고, 적벽대전으로 이어진다. 장판에서 활약한 조운은 아문장군(牙門将軍)으로 승진했다.[2]

4. 1. 연의와 정사의 차이점

삼국지연의에서 장판 전투는 장비조운의 용맹함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장면으로 묘사된다.[2]

유비의 부인 미부인과 어린 아들 아두(유선)는 조조 군대의 공격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 떨어지게 된다. 조운은 미부인과 아두를 찾기 위해 적진을 뚫고 들어가, 적장 하후은을 죽이고 조조의 보물인 청강검을 빼앗는다. 조운이 우물가에서 미부인과 아두를 발견했을 때, 미부인은 조운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아두를 맡기고 우물에 몸을 던져 자결한다. 조운은 아두를 몸에 묶고 압도적인 수의 적군에 맞서 싸워 아두를 유비에게 안전하게 데려온다.

조조의 군대는 장판교까지 조운을 추격하고, 그곳에서 장비가 혼자 경계를 선다. 장비는 적에게 고함을 질러 하후걸을 놀라 죽게 만든다. 조조의 병사들은 장비 뒤 숲의 먼지를 보고 매복이 있다고 믿고 후퇴하며, 장비는 다리를 파괴하고 후퇴한다. 장비는 부하들에게 말꼬리에 나뭇가지를 묶고 숲을 돌아다니며 먼지를 일으켜 매복의 환상을 만들도록 했다.

조운이 아두를 유비에게 데려갔을 때, 유비는 아들을 땅에 던지며 아들이 훌륭한 전사를 잃게 할 뻔했다고 외친다. 조운은 아두를 잡고 유비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아두가 아버지를 계승할 때까지 섬긴다.

《삼국지》의 조운전에는 장판 전투에서 유비가 가족을 버리고 도주한 후 조운이 아두를 보호하고 감부인을 호송했다는 간략한 언급이 있다.[3] 감부인과 미부인은 모두 전투에서 살아남았다. 장비의 전기에는 장비가 20명의 기병과 함께 남아 조조의 추격 부대를 막았다는 내용이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다. 장비가 고함을 질렀지만, 적에게 과장된 효과를 주지는 않았다. 다리는 이미 파괴되었고, 조조의 병사들은 접근하지 못해 장비는 안전했다. 하후은과 하후걸은 가공의 인물이다.

5. 전투의 의의와 영향

장판에서 유비가 패배한 후, 형주의 한수 서쪽 땅은 조조의 영토가 되었다. 조조는 강릉현에 입성하여 그곳의 관리와 백성들을 안정시켰다. 조조의 책사 가후는 형주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군대를 안정시킨 후 영토를 확장할 것을 제안했지만, 조조는 승리의 기세를 몰아 강남 (혹은 오) 지역을 공격하는 것을 선호했다.[1]

강동의 군벌 손권의 책사 노숙은 원래 유표의 죽음을 조문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그러나 그가 형주에 도착했을 때, 유총은 이미 항복했고 유비는 남쪽으로 도망친 상태였다. 노숙은 장판에서 유비를 만나 그가 패배한 후 하구로 함께 이동했다. 거기서 노숙은 유비에게 어디로 갈 것인지 물었고, 유비는 오랜 친구인 오거에게 몸을 의탁할 계획이라고 대답했다. 노숙은 유비에게 오거와 합류하지 말라고 설득하며, 오거는 독립을 유지하기 어려운 평범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대신 조조에 대항하기 위해 자신의 군주 손권과 동맹을 맺을 것을 설득했다. 유비는 이 제안에 기뻐하며 제갈량을 노숙과 함께 손권에게 보내 동맹을 확정하도록 했다.[1]

손-유 동맹의 성공적인 결성은 같은 해 곧 적벽 전투로 이어졌고, 연합군은 압도적인 조조의 함대를 격파하여 그를 북쪽으로 몰아내고 삼국 시대의 기반을 다졌다.[1]

6. 대중문화에서의 장판 전투

삼국지연의에서 장판 전투는 장비조운의 용맹함을 보여주는 극적인 장면으로 묘사된다.[1]

유비의 부인 미부인과 어린 아들 아두(유선)는 조조와 그의 기병의 공격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 떨어지게 된다. 조운은 미부인과 아두를 찾기 위해 적진을 뚫고 위험을 무릅쓴다. 그는 적장 하후은과 마주쳐 그를 물리치고, 갑옷을 자를 수 있는 조조의 보물인 청강검을 빼앗는다. 조운이 마침내 우물가에서 미부인과 아두를 발견했을 때, 그는 그들에게 자신의 말에 빨리 타라고 재촉했지만, 미부인은 조운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거절한다. 그녀는 아두를 조운에게 맡기고 우물에 몸을 던져 자결한다. 조운은 아두를 몸에 묶고 압도적인 수의 적군에 맞서 싸우며 아두를 안전하게 유비에게 데려온다.[1]

조조의 군대는 장판교에 도착할 때까지 조운을 추격하고, 그곳에서 장비가 혼자 경계를 선다. 장비는 적에게 도전하며 고함을 질러 하후걸을 놀라 죽게 만든다. 조조의 병사들은 또한 장비 뒤의 숲에 먼지가 자욱한 것을 보고 매복이 있다고 믿고 싸우지 않고 후퇴하며, 장비는 다리를 파괴하고 또한 후퇴한다. 장비는 앞서 자신의 부하들에게 말꼬리에 나뭇가지를 묶고 숲을 돌아다니며 먼지를 일으켜 매복의 환상을 만들도록 명령했다.[1]

그때쯤, 조운은 아두를 아버지에게 안전하게 데려왔다. 그가 아두를 유비에게 데려갔을 때, 유비는 그의 어린 아들을 땅에 던지고 그의 아들이 그에게 가장 훌륭한 전사 중 한 명을 잃게 할 뻔했다고 외친다. 조운은 아두를 제때 잡고 유비에 대한 충성을 재확인하며, 그의 생명으로 그의 주군을 섬길 것을 맹세하고, 아두가 나중에 그의 아버지를 계승할 때까지 그를 섬긴다.[1]

장판 전투는 코에이의 비디오 게임 시리즈인 ''진 삼국무쌍''에서 조운과 장비의 스토리 모드의 하이라이트이다.[1]

이 전투는 또한 2008–2009년의 2부작 대서사 영화 ''적벽''에도 등장한다.[1]

참조

[1] 웹사이트 History of Duodao District http://www.duodao.go[...] 2007-06-27
[2] 서적 Sanguozhi vol. 36
[3] 서적 Sanguozhi vol.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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