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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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부인은 유비의 아내로, 미축의 동생이다. 196년 유비가 원술과 싸우는 사이 여포에게 가족이 인질로 잡혔을 때 미축의 주선으로 유비와 혼인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에게 쫓기는 유비를 따라 장판파 전투에 참여했다가 부상을 입고 조운에게 아들 유선을 부탁한 뒤 우물에 몸을 던져 자결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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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부인 - [인물]에 관한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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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동해군 거현 (현재의 장쑤성 롄윈강) 출신이다. 그녀의 가문은 서주 (현재의 장쑤성) 지역의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집안이었으며, 오빠로 미축과 미방이 있었다. 이들은 본래 군벌 도겸을 섬겼으나, 도겸 사후 유비를 서주 자사로 추대하고 그를 따랐다. 미축의 가문은 자산가로 소작인을 만 명이나 거느릴 정도였다고 한다.
건안 원년(196년), 유비가 원술과 싸우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여포가 하비 (현재의 장쑤성 피저우)를 공격하여 점령하고 유비의 처자식을 사로잡았다. 유비가 해서(海西)로 물러나자, 미축은 막대한 재산과 소작인 2천 명을 유비에게 지원하며 자신의 여동생인 미부인을 유비에게 시집보냈다. 이로써 미부인은 유비의 부인이 되었다. 이후 유비는 여포와 화해하고 가족을 돌려받았다.
그러나 198년에 유비의 가족은 다시 여포에게 사로잡혔다가 여포가 패망한 후에야 돌아올 수 있었다. 200년에는 유비가 조조와 대립하게 되면서 조조가 하비를 공격했고, 이때 관우와 함께 유비의 처자식이 조조군에게 포로로 잡혔는데, 미부인도 이들 중에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후 미부인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유비가 형주에 머물던 시기에도 정실 부인이 있었으나, 이 부인은 장판 전투 중에 행방불명되었다. 미부인 역시 200년 이후의 기록이 없는 점으로 미루어 197년경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1]
2. 1. 삼국지연의에서의 모습
걸어서는 어린 황자를 구할 수 없었네.
그녀의 죽음은 유씨 왕조를 보존했으니:
과감한 결단력으로 이 여걸을 기억하세.
이후 관우는 감부인과 함께 탈출하여 유비를 만났을 때 미부인이 보이지 않자 그 이유를 물었다. 유비는 당양(장판파)에서 유선을 구하기 위한 그녀의 영웅적인 희생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관우는 한숨을 쉬며 과거 조조의 사냥 원정 때 자신의 충고를 따르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했다.[2]
3. 평가
(내용 없음)
3. 1. 현대의 재해석

14세기 역사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장판 전투 중 미부인의 이야기가 극적으로 묘사된다. 전투 중에 길을 잃은 미부인은 유비의 어린 아들 유선을 데리고 가다가 부상을 입었다. 조운이 그들을 찾아 우물가에서 발견했을 때, 조운은 함께 탈출하자고 권했지만 미부인은 짐이 되기를 원치 않아 거절했다. 유선을 조운에게 맡긴 후, 미부인은 우물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운은 추격자들이 미부인의 시신을 찾지 못하도록 우물에 흙벽을 무너뜨려 덮었다고 전해진다.
미부인의 희생을 기리는 시는 다음과 같다.
전투 중인 장수는 말을 가져야 했으니;
걸어서는 어린 황자를 구할 수 없었네.
그녀의 죽음은 유씨 왕조를 보존했으니:
과감한 결단력으로 이 여걸을 기억하세.
이후 관우는 감부인과 함께 탈출하여 유비를 만났을 때, 미부인이 보이지 않자 그 이유를 물었다. 유비는 당양(장판)에서 유선을 구하기 위한 미부인의 영웅적인 희생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관우는 한숨을 쉬며 과거 조조의 휘하에 있을 당시 사냥 원정에 대해 자신이 했던 충고를 유비가 따르지 않았음을 안타까워했다.[2]
게임 《결전 2》에 등장하는 미부인 캐릭터는 소설 속 미부인을 기반으로 한다. 게임 속에서 그녀는 유비, 관우, 장비의 오랜 친구이자 정치 고문으로 등장하며, 기병대를 이끌고 직접 전투에 참여하기도 한다.
4. 가계
미부인은 동해군 거현(현재의 장쑤성 롄윈강) 출신이다. 그녀에게는 미축과 미방이라는 두 오빠가 있었는데, 이들은 서주(현재의 장쑤성) 지역의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가문 출신이었다. 미씨 형제는 원래 군벌 도겸을 섬겼으나, 도겸이 사망한 후에는 유비를 서주의 새로운 지도자로 지지하며 유비의 편에 섰다.
여포가 군대를 이끌고 하비(현재의 장쑤성 피저우)를 점령하여 장비에게서 빼앗았을 때, 미축은 가문의 재산을 모두 동원하여 어려움에 처한 유비를 도왔다. 이 시기에 미부인은 유비의 첫 번째 부인이 되었다. 이후 유비는 여포와 잠시 화해하여 가족들을 돌려받았지만, 이 과정에서 가정 내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미부인에 대한 기록은 이 시점 이후로는 찾아볼 수 없다.
유비의 가족은 198년에 다시 여포에게 사로잡혔다가 풀려났고, 200년에는 조조에게 의탁하게 되면서 유비와 헤어지게 되었다. 만약 미부인이 이 사건들에 관련되었다면 기록에 남았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녀는 아마도 197년경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1]
참조
[1]
서적
A Biographical Dictionary of Later Han to the Three Kingdoms (23-220 AD)
[2]
서적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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